내 인생 후회는 없지만 / 양인자 작사, 김희갑 작곡 / 김국환 & photo by 김순용
https://youtu.be/qMcZ1JExpwU
음악편집:체칠리아
[오늘의 사건]
1996년 10월 18일
유엔 국제 해양법재판소 발족
1998년 국제 해양법재판소의 재판관들 모습.
동료 재판관들과 함께 한 박춘호 고려대 교수(오른쪽에서 두 번째)가 보인다.
국제법 해양재판소가 1996년 10월 18일 발족됐다.
1996년 8월 1일 유엔본부에서 해양법 협약에 가입한 1백2개국
대표들의 투표로 재판관 21명이 선출됐고 이들 중
가나 출신의 토마스 멘사 재판관이 초대 재판소장으로 선출됐다.
한국에서는 고려대 박춘호 교수가 재판관에 선출됐다.
국제 해양법재판소는 지난 1994년 발효된 유엔 해양법 협약에 근거해 만들어졌다.
이에 앞서 유엔은 지난 1982년 점증하는 해양분쟁의 틀을 잡기 위해 15년간의 작업 끝에
전문과 부칙 4백50개 조에 달하는 방대한 양의 ‘바다에 관한 세계 법’인 해양법을 만들었다.
해양법재판소는 이 법률을 만든 뒤 협약 가입국들이
법을 지키지 않을 경우를 상정해 강제수단으로 창설케 됐다.
[오늘의 인물]
1970년 10월 18일
장훈, 일본 프로야구 사상 최고 타율 기록
도에이에 갓 입단했을 때의 장훈.
1959년 4월 10일, 일본 프로야구 ‘도에이 플라이어즈
’(현 니혼햄 파이터스)의 장훈(1940~)이 타석에 들어섰다.
장훈으로서는 프로야구단에 입단한 후 처음 치르는 데뷔전이었다.
가난과 차별, 신체적인 어려움을 참아가며 손꼽아온 감격의 순간이기도 했다.
일본에서 태어나 ‘하리모토 이사오(張本勲)’란 이름으로 불리던
장훈은 어려서부터 장애자였다.
네 살 때인 1944년 오른손에 화상을 입어 오른손 엄지와 검지를
제외한 세 손가락이 모두 하나로 붙어버렸다.
오른손을 쓰지 못하면서도 장훈은 어려서부터 몸집이 커 자주 싸움에 휘말렸다.
이런 장훈을 구해준 것은 야구였다.
힘을 쓰지 못하는 오른손을 단련하기 위해 중학시절부터 손에 피가 나도록 타이어를 두들겼다.
학창 시절 장훈의 꿈은 고시엔(전국 고교야구 선수권대회) 출전이었다.
1958년 고교 3학년이 된 그에게 프로야구팀으로부터 입단 제의가 들어왔다.
파격적인 600만 엔의 계약금을 제시하며 적극적으로 나선 팀은 주니치 드래건스였다.
그러나 장훈은 200만 엔의 계약금을 제시한 도쿄의 ‘도에이 플라이어즈’ 팀에 입단했다.
창훈이 아무리 고교 최고의 강타 자였다지만 프로야구의 벽은 역시 높았다.
1959년 4월 10일 프로야구 데뷔전 첫 타석에서 상대 투수가
던진 단 3개의 공에 삼진을 당한 것이다.
수비에서도 날아오르는 타구를 잡지 못하고 머리 위로 넘기는 결정적인 실책까지 범했다.
장훈은 두 번째 타석에 들어서지도 못한 채 교체되었다.
4월 11일의 상대는 전년도 성적 14승 4패를 자랑하는 발군의 투수였다.
그러나 데뷔 두 번째 타석에 나선 장훈의 눈에 공이 선명하게 들어왔다.
좌중간 2루타였다. 데뷔 첫 안타이자 일본 프로야구 최다안타 기록인 3,085안타의 시작이었다.
다음 타석에서는 우측 담장을 넘기는 데뷔 첫 홈런을 기록했다.
점차 프로야구에 익숙해진 장훈은 맹타를 휘둘렀고 6월 13일 4번 타자가 되었다.
일본 프로야구 사상 최연소 4번 타자가 탄생한 것이다.
데뷔 첫해 장훈은 13개의 홈런과 57타점, 0.275의 타율로 신인왕을 수상했다.
순풍에 돛을 단 듯 1960년 올스타전에 뽑히고 1961년 0.336의 타율로 수위타자가 되었다.
1962년엔 0.333의 타율에 31개의 홈런으로 퍼시픽리그 최우수선수(MVP)에 뽑혔다.
1967년부터 4년 연속 수위타자가 되는 등 장훈 앞에는 거칠 것이 없었다.
1970년은 장훈에게 생애 최고의 해였다.
시즌 초반부터 3할대를 유지하며 톱타자의 위치를 놓치지 않더니
마침내 일본 프로야구 사상 전인미답의 최고 타율을 기록한 것이다.
10월 18일 장훈은 더블헤더 첫 경기에서 5타수 4안타를 터뜨려
타율을 0.3834로 끌어올렸다. 그전까지 일본 프로야구의 최고 타율은 19년 전
기록된 0.3831이었다. 좀처럼 깨질 것 같지 않던
장훈의 기록은 1985년 센트럴리그 한신팀의 미국 선수 랜디 바스에 의해 15년 만에 깨졌다.
장훈이 소속된 퍼시픽리그에서는 1994년 스즈키 이치로가
기록을 경신할 때까지 24년 동안 철옹성이었다.
1976년 요미우리 자이언츠로 이적한 장훈은 같은 팀 왕정치와
호흡을 맞춰 그해 요미우리에 우승컵을 안겨주었다.
1980년 1월 롯데 오리온즈로 이적했다가
그해 5월 28일 대망의 3,000안타를 기록한 뒤 1981년 10월 31일 23년간의
선수생활을 뒤로한 채 그라운드를 떠났다.
그 해, 오늘 무슨 일이... 총 48건
ㆍ2005년 · 한국·루마니아 확대정상회담(서울)
ㆍ2005년 · 2005 광주 디자인비엔날레 개막(김대중 컨벤션센터)
ㆍ2005년 · ‘만인의 연인’ 심은하 결혼식
ㆍ2004년 · 인도판 ‘로빈후드’ 쿠스 무니스 와미 비라파 사살
ㆍ2002년 · 약대 6년 제로 전환. 2007년까지 단계적으로 도입키로
ㆍ1997년 · 코카콜라 로베르토 고 이주에 타 회장 사망
ㆍ1996년 · 유엔 국제 해양법재판소 발족
ㆍ1990년 · 첫 남북통일음악제 평양서 개최
ㆍ1989년 · 에곤 크렌츠, 동독 공산당 서기장에 선출
ㆍ1989년 · 헝가리 41년 만에 헌법 개정안 통과. 국호를 `헝가리 인민공화국`에서 `헝가리공화국`으로 개명
ㆍ1989년 · 호네커 동독 공산당 서기장 퇴진
ㆍ1988년 · 노태우 대통령 유엔 연설, 6자 회담 제안
ㆍ1985년 · 서울 지하철 3~4호선 준공
ㆍ1984년 · 진도대교(첫 사장교) 개통
ㆍ1984년 · 시인 앙리 미쇼 사망
ㆍ1981년 · 그리스 총선, 사회운동당 승리
ㆍ1979년 · 부마사태로 비상계엄 선포
ㆍ1978년 · 카터 미국 대통령, 중성자탄 생산 명령
ㆍ1977년 · 서독 특공대, 인질구출작전 성공
ㆍ1972년 · 미국-소련, 통상협정 조인
ㆍ1970년 · 장훈, 일본 프로야구 사상 최고 타율 기록
ㆍ1967년 · 소련 인공위성 비너스 4호, 최초로 금성에 착륙
ㆍ1962년 · 케네디, 그로 마코 소련 외상과 독일문제 해결방안 토의
ㆍ1962년 · 알제리아와 쿠바 수교 합의
ㆍ1961년 · 라오스 왕국, 푸마를 임시정부 수상에 임명
ㆍ1950년 · 고당 조만식 선생 사망
ㆍ1950년 · 무공훈장령 공포
ㆍ1948년 · 소련군, 점령체제 끝내고 북한 철수 개시
ㆍ1947년 · 제2차 미소공동위원회 결렬. 무기 휴회
ㆍ1946년 · 1시간 반 길이의 정규방송 시작
ㆍ1941년 · 세기의 스파이 리하르트 조르게(Richard Sorge) 체포
ㆍ1941년 · 일본 도조(東條) 히데키 내각 성립. 이 내각이 태평양전쟁 개시
ㆍ1931년 · 발명가 토머스 에디슨 사망
ㆍ1923년 · 전국 산업 대회 열림
ㆍ1922년 · 윤덕병 등 조선노동연맹회 결성
ㆍ1918년 · 체코 독립선언
ㆍ1912년 · 제1차 발칸전쟁 발발
ㆍ1912년 · 이탈리아-터키, 로잔느 조약 조인(트리폴리 전쟁 종결)
ㆍ1907년 · 국제분쟁의 평화적 해결을 위한 `헤이그협약` 채택
ㆍ1906년 · 정부, 최초의 기념우표 발행
ㆍ1893년 · 프랑스 작곡가 구노 사망
ㆍ1867년 · 미국, 러시아로부터 알래스카 매입
ㆍ1859년 · 프랑스의 철학자 베르그송 출생. 1927년 노벨 문학상 수상
ㆍ1831년 · 천주교 조선교구 설정
ㆍ1775년 · 수도회 설립자 파울루스 사망
ㆍ1685년 · 낭트칙령 폐지
ㆍ1503년 · 교황 피우스 3세 사망
ㆍ1130년 · 주자학을 집대성한 중국의 유학자 주희 출생
[출처 : 조선닷컴]
제 컴엔 오늘도 역시 댓글을
쓸 수가 없어 답답합니다
게시물과 사진 불러 오기까진 되는데...?
첫댓글 오늘도 아름다운 우리 가요와 함께
유엔 국제 해양법재판소 발족
그런 재판소가 있어야 할 것 같습니다
장훈, 일본 프로야구 사상 최고 타율 기록
장훈은 그 시절 우리의 영웅이었죠
그런 애로점이 있는 줄 이 글을 읽고 알았답니다
그 외 좋은 자료들 게시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오늘은 날씨가 싸늘하네요
건강하시고 행복한 밤 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