山居(산거)
수초(守初:1590~1668)
본관은 창녕성씨(昌寧成氏). 법명은 수초(守初), 호는 취미(翠微), 자는 태혼(太昏)이다.
성삼문의 후손, 벽암각성(碧巖覺性)의 수제자이며, 서산대사의 삼세법손(三世法孫)이다.
유학에도 통달하여 유학자들에게 높은 평가를 받았다.
제자로는 백암성총(柏巖性聰)이 있다.
저서로는 『취미시집』이 있다.
산은 나를 같이 살라고 부른 게 아닌데
山非招我住 산비초아주
나 또한 산에 대해 알지 못하네
我亦不知山 아역부지산
산과 나는 서로 사는 곳도 잊고
山我相忘處 산아상망처
각자 사는 곳에 또 다른 한가로움이 있네
方爲別有閑 방위별유한
*
한문의 품사가 있듯이
한문 구성에 따라
같은 글자도 다르게 해석되는 부분이 많다.
그것을 알면서도 변칙적으로 번역을 하는 것은
기존의 번역된 한시들이 많다 보니
도용(盜用)의 소지가 있어서
엉터리지만, 제 나름대로 가필하고 추론하여
기존의 원작자의 시상을 해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그러나 어차피 한시는 다의적인 한자 탓에
백인백색의 색깔이 있다.
그것은 한시가 가진 매력적인 요소 중에 하나지만
한 편으로 또 다른 시적 오류를 발생시킬 수도 있다.
아무튼 각설하고
시란 존재는 나를 떠나면
타인에게 맡겨야 한다
그것을 일일이 찾아다니며 설명할 수도 없거니와
고금을 떠나 옛사람이 더구다나
꿈속이라도 찾아와서
구구절절 설명해 주리라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읽다 보면 이것은 아니다, 싶을 때
저의 번역을 참고 삼아서 색다른 시상을 떠 올리면서
자기만의 독창적이고
원시(原詩) 보다 더 나은 시세계를 추구하시기 바랍니다
여기에 위의 시를 새삼스럽게 올린 이유는
산(山)도 나(我)도
서로 인정하면서도
서로에 대해서 무관심하다..
어쩌면 그 무관심이
각자 주워진 환경 속에 서로 사는 곳도 망각하는 것이
최상의 별유천지(別有天地)인데
사람만이 그것을 망각하고, 또 생각들을 떠 올리고 있다.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다”
그러나 사람만이
산이고 물이고 다 인간의 것이라고 착각을 하고 있다
내 것이라고 함부로 쓰고 있다
산을 깎아서 집을 짓고
흐르는 물을 막아서 전기를 얻고
우리 몸속에 흐르는 피와 같이
땅 속에 흐르는 지하수까지
무한정 뽑아 쓰고
뭇 생명들을 취미 삼아 도륙하고 있다
세상만사가 원인과 결과가 있다
세상에는 인연 아닌 게 없듯이
지금 우리가 저지른 죄악이 당대에 발현되고
또 후세까지 악업이 미칠까, 저어하노라!
시간상(후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