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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감동을 주는 마더 데레사 노벨상 수락 연설문
(이 연설문은 이순영씨가 번역한 글을 옮긴 것입니다.
줄 바꾸기나 단락은 편자가 한 것입니다.
프란체스코의 기도문은 가톨릭에서 하는 기도문을 옮겼습니다.
마더 데레사는 책을 쓰지 않았습니다만 자서전을 비롯한 수십 권의 책이 나와 있습니다.
마더 마레사의 글 중 가장 믿음이 가는 글이 직접 쓰신 이 연설문(79년12월10일)입니다.
형식을 중시하는 연설문이 아니라 신앙 간증입니다.
바르게 사는 방법을 제시한 힘 있는 강론입니다.
자세히 읽어보니 직접 경험하신 감동적인 예화가 여덟이나 제시됩니다.
마더 데레사는 동서의 어떤 성인보다 행동으로 사랑과 복음을 실천하신 산 교과서입니다.
10쪽이나 되는 분량이지만 읽어보시면 후회는 없을 것입니다. 감동하신 분들은 이 글을
퍼 나르십시오. 세상이 좀 더 밝아질 것입니다.
2007년 7월 30일 편집-녹암 진장춘 )
노벨 평화상 수상을 주님께 감사드리기 위해 모인 이 자리에서,
내게 언제나 큰 감동을 주었던 아씨시의 성 프란체스코의 기도문을 암송한다면
이 시간이 더욱 빛날 것이라 생각합니다.
이 기도문이 우리 모두에게 유익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우리는 매일 성찬식이 끝나면 이 기도문을 낭송 합니다.
아씨시의 성 프란체스코가 이 기도문을 지었던 4-500년 전에도
우리가 오늘날 겪고 있는 것과 똑같은 어려움이 있어서
마치 이 기도문을 이미 알고 있는 사람들이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이제 그 기도문을 합께 낭송하려 합니다.
*평화를 구하는 기도*
주여 나를 평화의 도구로 써주소서
미움이 있는 곳에 사랑을
다툼이 있는 곳에 용서를
분열이 있는 곳에 일치를
의혹이 있는 곳에 신앙을
그릇됨이 있는 곳에 진리를
절망이 있는 곳에 희망을
어두움에 빛을
슬픔이 있는 곳에 기쁨을 가져오는 자 되게 하소서.
위로받기보다는 위로하고
이해받기보다는 이해하고
사랑 받기보다는 사랑하게 하여 주소서!
우리는 줌으로써 받고
용서함으로써 용서받으며
자기를 버리고 죽음으로써
영생을 얻기 때문입니다
아멘.
우리 모두 이 자리에 함께 있을 수 있는 기회를 주신데 대해,
이처럼 평화라는 선물을 주셔서 우리 모두 평화롭게 살기 위해
창조된 존재임을 알게 해 주신 데 대해,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셔서 가난한 이들에게 복음을 전해 주신데 대해
주님께 감사드립시다.
죄를 지은 존재라는 것만 제외하고 모든 것에서
우리와 같은 모습으로 세상에 오신 주님은
복음을 전하기 위해 오셨음을 분명히 선포하셨습니다.
그 복음은 모든 이들에게 평화와 위안이었으며,
이 마음의 평화는 우리 모두가 간절히 원하는 것이었습니다.
하느님은 세상을 너무도 사랑하셔서 독생자를 주셨습니다.
그것은 구원이었습니다.
그러니까 하느님은 세상을 너무 사랑하셔서 독생자를 주는 아픔을 감수하신 겁니다.
하느님은 독생자를 성모 마리아에게 주십니다.
그리고 성모 마리아는 예수 그리스도를 받으시고 어떻게 하셨습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받으시자마자 성모마리아는 서둘러 엘리사벳에게 그 소식을 알리셨습니다. 그리고 그 소식에 아직 태어나지도 않은 아이,
엘리사벳의 복중에 있던 아이는 기뻐 뛰어 놀았습니다.
그 아이, 아직 태어나지도 않은 아이가
평화를 처음으로 세상에 알린 자가 되었습니다.
그 아이는 그리스도가 여러분과 나에게
복음을 전하러 세상에 오실 것임을 알았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인간의 모습으로 세상에 오신 것만으로는 충분치 않으셨고,
십자가에 못 박히셔서 보다 위대한 사랑을 보이셨습니다.
그리스도는 여러분과 나, 나병환자, 굶주림으로 죽어가는 사람,
캘커타뿐 아니라, 아프리카, 뉴욕, 런던, 오슬로의 거리에서 발견된
벌거벗은 채 누워있는 사람들을 위해 죽으셨습니다.
그러면서 그리스도가 우리들 한 사람 한 사람을 사랑하시는 것처럼
우리도 서로를 사랑해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또 하느님은 그 아들을 더 크게 사랑하시어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그러니 우리도 서로 이처럼 사랑하여
부족함 속에서도 서로 나누어야 할 것입니다.
"나는 주님을 사랑하지만 내 이웃은 사랑하지 않습니다."라고 말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성 요한은 이웃을 사랑하지 않으면서 주님을 사랑한다 하는 것은 거짓이라 말합니다.
눈에 보이고, 만질 수 있고, 함께 살 수 있는 이웃을 사랑하지 못하는데
어떻게 보이지 않는 주님을 사랑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사랑이 진실한 것이 되기 위해서는 고통을 느끼는 것이
필요함을 우리는 분명히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사랑하기 위해 고통을 기꺼이 감수하셨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그 큰 사랑을 분명히 기억하도록 하기위해,
스스로 생명의 양식이 되시어
주님의 사랑과 주님에 대한 우리의 허기를 채워 주셨습니다.
우리는 그러한 사랑을 받기 위해 태어난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주님의 형상대로 태어났습니다.
그리고 사랑받고 사랑하기 위해 태어났습니다.
주님은 주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것처럼 우리도 서로 사랑하게 하시려고
인간의 모습으로 오셨습니다.
주님은 스스로 배고프고, 헐벗고, 병들고, 감옥에 갇히고,
외롭고 버림받는 존재가 되셨습니다.
주님은 "나에게 한 것이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주님은 우리의 사랑을 갈구하십니다.
그리고 그 사랑은 모든 가난한 이들의 갈구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그 갈구하는 이들을 찾아내는 것은 여러분과 나의 몫입니다.
사랑을 갈구하는 이는 바로 우리 가정에 있을지도 모릅니다.
(1화)
예전에 어느 '집'을 방문했다가 잊지 못할 경험을 한 적이 있습니다.
그 '집'은 늙은 부모님들이 자녀와 떨어져 살고 있는 곳이었습니다.
그 자녀들은 부모를 그 곳에 맡겨 놓고는 아마도 잊고 지내는 듯 했습니다.
내가 가서 보니 그 '집'에는 온갖 아름다운 것들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하나같이 문 만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어느 누구도 얼굴에 웃음이 없었습니다.
나는 그 곳 자매에게 물었습니다.
"어떻게 된 일이죠?
여기에는 모든 것이 다 있는데 사람들이 왜 문만 바라보고 있습니까?
왜 얼굴에 웃음이 없습니까?"
나는 함께 있는 사람들이 미소 짓는 모습을 늘 보아왔습니다.
비록 죽어가는 사람들이라고 해도 말입니다.
그 자매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거의 날마다 이렇습니다. 부모님들은 자녀들이 와주기만을 기다리고 있어요.
저분들은 자녀들이 자신들을 잊었다고 생각해 마음 아파하고 계십니다."
사랑이 필요한 곳은 바로 이런 곳입니다.
사랑을 갈구하는 이들은 바로 우리 가정에 있습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가정에서 사랑하는 일을 게을리 합니다.
우리 가족 중에 누군가도 외로움을 느끼고, 아파하고, 근심하고 있을지 모릅니다.
그리고 지금은 누구에게나 어려운 때입니다.
우리가 그 곳에 있습니까?
그곳에서 어머니가 아이를 안아주고 있습니까?
서구 세계에 갔다가 엄청나게 많은 젊은이들이 약물에 빠져 있는 것을 보고
놀란 적이 있습니다. 나는 이유를 알고 싶었습니다.
왜 이렇게 된 걸까?
가족들 누구도 그들을 받아들여주지 않은 것이 바로 그 이유였습니다.
부모님은 너무 바빠 자녀들과 함께 할 시간이 없습니다.
젊은 부모들은 여러 단체에서 일을 합니다.
아이들은 거리로 내몰리고 무언가에 빠져 듭니다.
우리는 평화에 대해 이야기 합니다.
그런데 이런 모든 일들이 평화를 깨뜨리고 있습니다.
하지만 나는 오늘날 평화의 가장 큰 적은 낙태라 생각합니다.
그것은 어머니에 의해 저질러지는 간접적인 전쟁이며 살인이니까요.
성서에서 하느님은 "어머니가 그 아이를 잊는다 해도
나는 너를 잊지 않겠다. 나는 내 손으로 너를 빚어 만들었다.”고
분명히 말씀 하셨습니다.
우리는 주님의 손으로 빚어져 만들어진 존재들입니다.
나를 가장 감동시키는 것은 어머니가 잊는다고 해도
나는 너를 잊지 않으리라는 말씀입니다.
오늘날 평화의 가장 거대한 파괴자는 낙태입니다.
이곳에 서 있는 우리 모두를 우리 부모님들은 원하셨습니다.
만일 우리들 부모님이 우리를 낙태시켰다면 우리는 이곳에 있지 못했을 겁니다.
우리 아이들, 우리는 그들을 원하고 사랑합니다.
하지만 다른 수많은 아이들은 어떻습니까?
많은 사람들이 영양실조와 기아로 죽어가는
인도와 아프리카의 아이들을 많이, 아주 많이 걱정합니다.
하지만 어머니로 인해 죽어가는 수백만 명의 아이들은 어떻습니까?
많은 사람들이 영양실조와 기아로 죽어가는 인도와 아프리카의 아이들을 많이,
아주 많이 걱정합니다.
하지만 어머니로 인해 죽어가는 수백만 명의 아이들은 어떻습니까?
오늘날 평화의 가장 거대한 파괴자들은 바로 이것입니다.
어머니가 자신의 아이들을 죽일 수 있다면,
내가 여러분을 죽이고 여러분이 나를 죽일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그것과 똑같습니다.
"아이를 우리에게 데려 오세요"
나는 인도에서 이렇게 호소했습니다.
그리고 어디에 가든 똑같이 호소합니다.
올해는 어린이의 해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아이들을 위해 무엇을 했습니까?
올 초에 나는 어디를 가도 이렇게 말했습니다.
"올해는 태어난 아이든 태어나지 않은 아이든
어떤 아이라도 받아들이는 해가 되도록 합시다."
한 해의 마지막 날인 오늘, 우리는 정말 모든 아이들을 받아 들였습니까?
(2화)
여러분에게 아주 놀라운 이야기를 하나 하겠습니다.
우리는 입양을 통해 낙태를 없애려 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해서 수천 명의 생명을 구했습니다.
우리는 진료소와 병원과 경찰에 "제발 아이를 없애지 마세요.
우리에게로 데려 오세요'라는 글을 보냈습니다.
그리고 우리 곁에는 미혼모들이 무척 많은데.
언제나 누군가가 그들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자, 우리가 당신을 돌보아 줄게요.
당신의 아이를 우리가 키울게요.
우리가 아이에 게 가정을 만들어 주겠어요'
아이가 없는 부부가 와서 아이를 입양해 가는 일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이 또한 우리에 게는 주님의 축복이 아닐 수 없습니다.
(3화)
우리가 하고 있는 일 중 아름다운 일이 또 있습니다.
우리는 거지와 나병 환자, 빈민가사람들, 집이 없는 사람들에게
자연적인 가족계획을 가르칩니다.
서로 사랑하는 사람들이 이와 같이 자연적인 피임 방법을 사용함으로써
원치 않는 임신으로 태어난 아기들의 수가 몇 년 새에
캘커타에서 61. 273명이나 줄었습니다.
캘커타에서만 말입니다
우리는 사람들에게 체온법을 가르칩니다.
아주 자연스러우면서도 간단한 방법이지요.
그리고 우리 가난한 사람틀은 충분히 이해합니다.
그리고 그 사람들이 내게 뭐라고 말했는지아십니까?
'우리 가족은 건강하고. 우리 가족은 화목해요.
그리고 원할 때면 언제든 아이를 가질 수 있어요.’
나는 주님이 우리 안에서 창조하신 생명을 없애지 않고도
아이를 낳지 않을 수 있는 방법을 더 많은 사람들이 알게 되기를 바랍니다.
가난한사람들은 참으로 위대한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우리에게 너무도 아름다운 것들을 가르쳐줍니다.
언젠가 가난한 사람들 중 하나가 우리에게 와서 감사해 하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수녀님들은 순결을 전하셨어요. 우리에게 가족계획을 가르쳐 주신 훌륭한 분들이십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서로에 대한 사랑으로 자제심을 갖는 것이니까요.
나는 그가 진정 아름다운 말을 했다고 생각합니다.
(4화)
가난한 사란들은 먹을 것이 없는 사람들일 수도 있고.
살 집이 없는 사람일 수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그들은 위대한 사람들입니다.
가난한 사람들은 참으로 훌륭한 사람들입니다.
어느 날 저녁 . 나는 우리 자매들과 함께 거리를 건다가 네 사람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 중 한 사람은 최악의 상황이었습니다.
나는 함께 있던 자매들에게 상황이 가장 나빠 보이는 그 사람을 내가 돌볼 테니
나머지 세 사람을 돌보아 달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나는 그 여인에 게 내 사랑으로 할 수 있는 일을 다 했습니다.
여인을 침대에 눕혔더니,
그 얼굴에 너무나 아름다운 미소가 퍼졌습니다.
여인은 내 손을 잡더니 단 한 마디를 했습니다.
고마워요. 그리고 여인은 숨을 거두었습니다.
나는 그 여인 앞에서 내 양심을 다시 돌아볼 수밖에 없었습니다.
스스로에게 이렇게 물었습니다.
“내가 그 여인과 같은 상황이었다면 나는 어떻게 말했을까?"
내 대답은 아주 간단했어요. 나는 관심을 조금이라도 끌기 위해 노력했을 겁니다.
이렇게 말했겠죠.
“배가 고파요. 나는 죽어가고 있어요. 나는 추워요. 나는 고통스러워요.
나는. 나는... ”
하지만 그 여인은 내게 훨씬 더 많은 것을 주었습니다.
여인은 네게 감 어린 사랑을 주었습니다.
그리고 얼굴에 미소를 띤 채 죽어갔습니다.
(5화)
우리가 시궁창에서 얼굴이 벌레에 반쯤 먹힌 남자를 '집'으로 데려왔을 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남자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저는 평생을 거리에서 짐승처럼 살았습니다.
하지만 이제 사랑받고 보호받으면서 천사처럼 죽어갈 수 있습니다.
그와 같은 말을 할 수 있는, 그 누구도 원망하거나 거주하지도 않고 어떤 것과도 비교하지 않고 그렇게 죽어갈 수 있는 그 사람의 위대함을 볼 수 있어 너무나 가슴 벅찼습니다.
‘천사처럼’ 이는 우리 가난한 사람들의 위대함을 나타내는 말입니다.
그리고 바로 이 때문에 우리는 '나는 굶주리고 헐벗고 머물 곳도 없으며 버림받았고 사랑 받지 못했으며 보살핌도 받지 못했지만 너희가 그것을 내게 해주었다'라고 하신 주님의 말씀을 믿게 됩니다.
우리는 사회사업가가 아닙니다.
사람들의 눈에는 우리가 사회사업을 하는 것으로 보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우리는 진정한 삶 속에 사는 진정한 수도자들입니다.
우리는 하루 24시간 그리스도의 몸을 만지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24시간 주님과 함께 있습니다.
여러분도 그렇고 저 역시도 그렇습니다.
여러분도 주님을 가정에 영접해야 합니다.
함께 기도하는 가정만이 언제나 하나가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우리가 한 가족으로 있는 한 평화를 파괴하거나
평화를 이루기 위해 총과 대포를 사용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저 하나가 됩시다. 서로를 사랑하고. 평화와 기쁨과 서로의 존재가 주는 든든함을 가족 안에 간직합시다.
그러면 이 세상에 있는 모든 사악함을 이길 수 있을 겁니다.
세상에는 너무도 많은 고통과 증오와 불행이 있지만,
우리는 먼저 가정 안에서 기도와 희생을 시작해야합니다.
사랑은 가정에서 시작됩니다.
우리가 얼마나 많은 사랑을 품고 있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우리가 가지고 있는 사랑을 얼마나 실천하느냐가 중요합니다.
그리고 그 사랑은 주님을 향한 사랑이어야 합니다.
우리가 전능하신 주님에 대한사랑을 얼마나 많이 간직하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사랑을 행동으로 실천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우리가 돌보는 사람들 속에 계시는 주님을 향한 넘치는 사랑이야말로 가장 값진 것입니다.
(6화)
얼마 전 캘커타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설탕을 구하기가 아주 어려웠던 때였습니다.
그런데 그런 사실이 어떻게 아이들 사이에서도 알려졌나 봅니다.
어느 힌두교 가정의 네 살짜리 아이 하나가 집에 가서 이렇게 말했답니다.
"앞으로 3일 동안 설탕을 먹지 않을게요. 그 설탕을 데레사 수녀님이 돌보는 아이들에게 주겠어요.”
3일 뒤, 아이는 부모님과 함께 제게 왔습니다.
처음 만나는 아이였는데 내 이름 정도만 간신히 말할 정도의 나이였습니다.
하지만 아이는 자신이 왜 그곳에 왔는지 분명히 알고 있었습니다.
사랑을 나누고 싶어서라는 것을요.
바로 이 때문에 나는 모든 사람들에게 그처럼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것입니다.
이곳에 온 뒤 나는 줄곧 사랑에 둘러싸여 있었습니다.
그것도 진정한 이해가 넘치는 사랑 말입니다.
마치 모든 인도에 있는 모든 사람들,
아프리카에 있는 모든 사람들 하나하나가
여러분들에 게는 특별한 존재인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또한 나는 진정으로 편안함을 느꼈습니다.
마치 캘커타에서 함께 생활하는 자매들과 수도원에 있는 것 같은 느낌입니다.
이곳, 바로 여기가 말할 수 없이 편안합니다.
지금 이 자리에서 여러분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나는 여러분에게 바로 여러분 가정에 있는
가난한 사람을 먼저 찾으시라는 말을 하고 싶습니다.
가정에서부터 사랑을 시작하십시오.
여러분들의 가족과 친지에게 복음을 전하는 사람이 되십시오.
괴리고 여러분의 이웃이 누구인지 살펴보세요.
그들이 누구인지 혹시 알고 계십니까?
(7화)
나는 여덟 명의 자녀를 둔 어느 힌두교 가정에 갔다가
아주 특별한 경험을 한 적이 있습니다.
신사 한 분이 나를 찾아와서는 "수녀님, 아이가 여덟이나 되는 가족이 있는데
아주 오랫동안 굶고 있답니다. 도움을 주셔야겠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얼마간의 쌀을 가지고 당장 그 집으로 갔습니다.
아이들을 보니 너무도 굶주려 눈이 빛날 정도였습니다.
여러분, 굶주린 사람을 보신 적이 있습니까?
나는 너무도 자주 봅니다.
아이들 엄마는 내가 가져간 쌀을 받아서 다른 그릇에 얼마간 담더니
그것을 들고 밖으로 나갔습니다.
그 여인이 돌아오자 나는 어디에 가서 뭘 하고 왔는지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너무도 아무렇지 않게 대답을 하더군요.
"굶주린 사람이 또 있거든요."
가장 놀라웠던 것은 이웃에 굶주린 사람이 있다는 것을
그녀가 알고 있다는 사실이었습니다.
그 이웃은 이슬람교를 믿는 가정이었는데
아이들 엄마는 그들이 굶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던 겁니다.
나는 그날 밤 더 이상의 쌀을 가져다주지는 않았습니다.
그들이 서로 나누는 기쁨을 누리길 원했기 때문이지요.
그리고 그곳에는 사랑을 나눌 줄 아는 엄마가 있어서 기쁨에 빛나고,
그 기쁨을 또 서로 나누는 아이들이 있었습니다.
사랑은 바로 여기, 가정에서 시작된다는 것을 여러분은 아셔야 합니다.
여러분도 실천해 주시길 바랍니다.
나는 이 상을 받은 것에 깊이 감사하고 있습니다.
정말로 굉장한 경험이었습니다.
다음 주,그러니까 15일쯤에 인도로 돌아갈 때
나는 여러분이 주신 사랑을 가지고 갈 것입니다.
여러분이 모든 것이 풍족해 서로 나누는 것이 아님을 나는 잘 알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고통에 처할지라도 서로 나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 어린아이들도 사랑을 나누었습니다.
굶주림에 지친 아이들에게도 넘치는 기쁨이 있다는 것이 놀라웠습니다.
그들과 같은 많은 아이들이 사랑을 필요로 할 것이며,
부모로부터 넘치는 사랑을 받을 것입니다.
우리가 서로를 알 수 있는 기회를 주시고,
서로에 대해 알게 되어서 더욱 가까워졌으니 주님께 감사드립시다.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이제 전 세계에 우리 선교회가 있으므로
전 세계의 어린이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입니다.
이번에 받은 상금으로 나는 집 없는 많은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집을 지으려 합니다.
사랑은 가정에서부터 시작된다는 것을 믿기 때문에,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집을 짓는다면 더 많은 사랑이 세상에 퍼지리라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이해심 넘치는 사랑을 통해서 가난한 사람들에게
평화와 복음을 전해줄 수 있을 것입니다.
먼저 나의 가족. 다음 우리나라, 그리고 이 세계의 가난한 사람들에 게요.
이러한 일을 하기 위해서. 우리의 삶은 기도로 충만해야 합니다.
이해와 나눔을 실천하기 위해서 항상 주님과 함께 해야 합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고통 속에 있습니다.
나는 그리스도의 고난이 다시 시작됨을 느낍니다.
비단 가난한 나라뿐 아니라 전 세계 사람들이 겪는
그러한 고통과 아픔을 함께 나누기 위해
우리가 여기 있는 것 아닐까요?
그런데 나는 서구세계의 가난이 치유되기 더 어렵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길거리에서 거지를 만나면 쌀 한 그릇. 빵 한 조각을 줍니다.
그것으로 그 사람의 허기진 배를 채울 수 있으니 나는 만족합니다.
그러나 세상과 단절된 사람, 버림받은 사람, 사랑받지 못하는 사람,
공포에 떠는 사람, 소외된 사람에게
가난은 너무도 상처가 깊어 치유되기가 아주 어렵습니다.
우리 선교회는 서구 세계에서 그러한 사람들을 위해 활동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우리가 그들에게 희망이 될 수 있도록 기도해 주셔야 합니다.
여러분의 도움이 없이는 그런 일을 할 수가 없습니다.
여러분 각자가 자신의 나라에서 그렇게 해주셔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먼저 가난한 사람에 대해 알아야 합니다.
이 자리에 모인 여러분은 물질적으로 부족함이 없는 사람들일 겁니다.
그러나 우리의 가정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서로에게 미소를 짓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알게 될 겁니다.
여러분 사랑의 시작은 바로 미소입니다.
이제, 서로 만나면 미소를 짓도록 합시다.
미소는 사랑의 시작이며, 일단 서로를 사랑하게 되면
저절로 무언가 해주고 싶어지기 때문입니다.
전 세계에 있는 우리 수녀와 수사들, 협력자들
그리고 나를 위해 기도해 주십시오.
우리가 주님이 주신 은총을 언제까지나 잊지 않고,
주님을 사랑하며 여러분과 함께 가난한 사람들속에 계신
주님을 섬길 수 있도록 기도해 주세요.
여러분이 기도와 주님께 받은 은총을 우리와 함께 나누지 않고
또 끊임없이 베풀지 않았다면,
우리가 지금까지 이룩한 이 모든 것을 아마도 이루지 못했을 겁니다.
하지만 나는 여러분이 풍요로움 속에서 나누길 원치 않습니다.
부족함 속에서 나누길 원합니다.
(8화)
언젠가 20년간 누워 지낸 사람에게서 15달러를 받은 적이 있습니다.
온몸에서 유일하게 움직일 수 있는 부분은 오른손뿐인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그에게 있어 유일한 낙은 담배를 피우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런 사람이 내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일주일 동안 담배를 피우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해서 모은 돈을 보냅니다. "
일주일 동안 담배를 피우지 않는다는 것은 그에게 있어 엄청난 희생이었습니다.
하지만 그가 나눈 사랑은 얼마나 아름답습니까?
나는 그 돈으로 빵을 사서 두 사람의 기쁨과 함께 굶주린 사람에게 주었습니다.
그 사람은 기쁨을 주었고 가난한 사람은 그 기쁨을 받았습니다.
여러분과 나도 이러한 일을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서로 사랑을 나눌 수 있다는 것은 주님이 주신 축복입니다.
서로 사랑을 나누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 사랑은 예수 그리스도를 향한 사랑과 같아야 합니다.
주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것처럼 우리도 서로를 사랑해야 합니다.
그리고 무한한 사랑으로 주님을 사랑해야 합니다.
그리고 이제 크리스마스가 얼마 남지 않았으니
주님을 사랑하고 서로를 사랑하는 기쁨을 모든 이에게 나누어줍시다.
주님을 사랑하는 기쁨을 우리 마음속에 간직하고.
또 그러한 기쁨을 우리가 만나는 모든 이들과 나누어야 합니다.
이처럼 나누는 기쁨은 참된 기쁨입니다.
우리 속에 그리스도가 계신데 우리가 행복하지 않을 이유가 없으니까요.
우리가 만나는 가난한 사람들 속에도,
우리가 주고받는 미소 속에도 그리스도는 살아 계십니다.
그리고 절대 잊어서는 안 되는 것이 있습니다.
어떤 아이라도 버려서는 안 되며 ,
언제나 미소로 서로를 대해야 한다는 것 말입니다.
특히 미소 짓기가 힘들 때는 더욱 그렇습니다.
(8화)
얼마 전 미국의 여러 대학에서 나를 찾아 오셨던 교수님 열네 분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그 분들은 캘커타에 있는 우리 '집'에 오셨습니다. 그리고 내게 죽어가는 사람들의 집
- 우리는 캘커타에 죽어 가는 집에 지금까지 캘커타 거리에서만 3만 6천 명이 넘는 사람들을 데려왔고 그 많은 수의 사람들 중이서 1만 8천명이 넘는 사람들이 아름다운 죽음을 맞았습니다. 그들은 집을 떠나 주님께 간 것입니다. -
에 다녀온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또 나는 그분들과 사랑과 동정에 관한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그런데 그 중 한 분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이 있다면 말씀해 주십시오. “
그래서 나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서로를 보며 웃으세요. 가족들에게 시간을 내 주세요.
서로를 향해 미소를 지으세요."
이번에는 다른 분이 내게 결혼을 했느냐고 물으시길래 이렇게 대답했지요.
“그렇습니다. 그런데 나는 때로 예수님을 보며 미소를 짓기가 참 어렵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분은 이따금씩 너무 많은 것을 바라시니까요.”
이 말은 사실 그대로입니다.
하지만 우리에게 요구되는 것은 너무 많을 때
진정한 사랑이 존재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런 사랑을 기쁘게 주님께 바칠 수 있습니다.
오늘도 얘기했지만 나는 다른 이유로는 천국에 가지 못해도
사람들에게 알려졌다는 이유로는 천국에 갈 것이라고 늘 말해 왔습니다.
왜냐하면 사람들 사이에서 행했던 일들이 나를 깨끗하게 했고
나를 희생하게 했으며 하늘나라로 기꺼이 갈 준비를 하게 했기 때문입니다.
나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우리는 아름답게 살아야 합니다.
우리 가운데는 예수 그리스도가 계시고
그 분은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주님이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사실을 기억할 수만 있다면
우리는 주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것처럼 서로를 사랑할 수 있을 것입니다.
큰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큰 사랑으로 작은 일들을 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러면 노르웨이는 사랑의 둥지가 될 것입니다.
이곳이 전쟁을 없애는 평화의 중심지가 된다면,
이곳에서부터 앞으로 태어날 아이들의 기쁨이 퍼져나간다면
얼마나 멋진 일이 되겠습니까?
여러분이 이 세상의 평화를 위해 스스로 타는 촛불이 된다면
노벨 평화상은 진정 노르웨이 사람들의 축복이 될 것입니다.
주님의 은총이 함께 하기를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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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더 데레사가 가장 즐겨 쓰는 성경구절(마태오 복음 25장 38~40)
‘주님, 저희가 언제 주님께서 굶주리신 것을 보고 먹을 것을 드렸고, 목마르신 것을 보고 마실 것을 드렸습니까? 언제 주님께서 나그네 되신 것을 보고 따뜻이 맞아들였고, 헐벗으신 것을 보고 입을 것을 드렸습니까? 언제 주님께서 병드시거나 감옥에 계신 것을 보고 찾아가 뵈었습니까?’ 그러면 임금이 대답할 것이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내 형제들인 이 가장 작은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해 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 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