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 귀하게 쓰이는 그릇
설교:나균용목사님
본문 : [딤후2:20-21]
20 큰 집에는 금 그릇과 은 그릇뿐 아니라 나무 그릇과 질그릇도 있어 귀하게 쓰는 것도 있고 천하게 쓰는 것도 있나니
21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런 것에서 자기를 깨끗하게 하면 귀히 쓰는 그릇이 되어 거룩하고 주인의 쓰심에 합당하며 모든 선한 일에 준비함이 되리라
(설교 요약)
진정으로 귀하게 쓰임받고 천국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깨끗하고 거룩한 삶을 살아야 한다. 히브리서 12장 14절에서 말하는 "화평함과 거룩함" 중에서 특히 거룩함이 강조되는데 이것이 없이는 아무도 주를 보지 못한다고 한다. 단순히 교회에 다니고 종교적인 행위를 하는 것으로는 천국에 들어갈 수 없으며, 진정한 회개와 거듭남, 그리고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삶이 필요하다. 또한, 겉으로만 신앙을 지키는 것이 아니라, 성경을 깊이 읽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야 한다.
로마 가톨릭 교회가 유럽을 지배했던 중세시대는 어둠의 시대였다. 당시 교회 지도자들은 진리를 억압하고 거짓을 퍼뜨렸다. 성경에서 하나님의 참된 선지자들이 박해를 받았던 것처럼, 지금의 시대도 악이 팽배해 있다. 현대 사회는 그때보다 더욱 타락했으며, 동성애와 같은 도덕적 타락이 만연하고 있다. 이사야 60장에 “일어나라 빛을 발하라 이는 내 빛이 이르렀고 여호와의 영광이 네 위에 임하였음이라 보라 어둠이 온 땅을 덮을 것이고 캄캄함이 만민을 가리려니와 여호와께서 네 위에 임하시리니”라고 말씀하신다. 이 마지막 때 일어나 빛을 발하며 하나님의 영광이 임하는 나라가 되어야 한다.
여리고성을 무너뜨린 후 이스라엘은 작은 아이 성에서 패배했다. 이는 아간이 하나님의 명령을 어겨 물건을 훔쳤기 때문이다. 겉으로만 깨끗한 것이 아니라 내면까지 깨끗해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세상에서 약하고 낮은 자들을 사용하신다. 그러나 쓰임받기 위해서는 깨끗한 그릇이 되어야 한다. 세상에서 높아지려 하지 말고, 내면을 깨끗하게 하여 하나님께 쓰임 받아야 한다. 예레미야 5장 1절에 보면 한 사람이라도 공의와 진리를 추구하는 자가 있다면 하나님이 예루살렘을 구원하겠다고 말씀 하신다. 깨끗한 사람 한 사람만 있어도 하나님은 놀라운 역사를 이루실 수 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충성된 종으로 칭찬받기 위해, 날마다 자신을 돌아보고 깨끗한 삶을 살아야 한다. 단순히 주변 사람들과 비교하여 "이 정도면 됐다"고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말씀하신 "마음이 청결한 자는 하나님을 볼 것"이라는 기준에 도달해야 한다. 마음이 깨끗해져서 하나님이 보일 때까지 정결해져야 한다. 모세가 하나님을 뵙고 그의 얼굴에 빛이 난 것처럼, 우리도 마음이 청결해지면 내면에 영적인 빛이 생겨나고, 이를 통해 사람들에게 영향을 줄 수 있다.
깨끗하게 되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하는가?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마음을 깨끗하게 하기 위해 다섯 가지 재료를 주셨다.
첫째는 회개로, 이는 물로 비유되며 회개를 통해 선한 양심이 살아난다.
둘째는 말씀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우리의 행실이 깨끗해진다.
셋째는 성령, 넷째는 불로, 성령의 불이 우리를 깨끗하게 하고 능력을 주며 활동하게 만든다. 마지막으로 다섯째는 피, 즉 예수님의 보혈이다.
눈이 항상 깨끗하게 유지되는 것처럼, 우리 마음도 깨끗하게 유지되어야 한다. 눈이 먼지 등을 자동으로 씻어내는 것처럼, 마음에 들어오는 더러운 생각과 유혹들도 즉시 씻어내야 한다. 이를 위해 다섯 가지 방법인 회개, 말씀, 성령, 불, 그리고 보혈이 우리의 생각과 마음에 가득해야 한다. 이 다섯가지 재료가 우리 마음에 자리 잡고 있으면, 더러운 생각이 들어와도 쉽게 제거할 수 있다. 깨끗해졌다고 당장 쓰임받는 것은 아니다. 훈련과 교육을 통해 연단되어 가야 한다. 주님께서 우리와 함께하시고 성령을 보내셔서 새 역사를 이루신다. 우리가 그의 보혈에 젖어서 날마다 주님의 십자가 은혜를 감사하고 찬양하면서 주님 앞에 깨끗하게 살면 하나님은 우리에게 승리를 주시고 놀라운 새 역사를 이루어 주신다.
34.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실 분
설교 : 나균용 목사님
본문 : [마1:21]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니라
예수님이 우리의 죄에서 구원하기 위해 이 땅에 오셨고,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으며, 다시 살아나셨고, 하늘로 올라가셔서 성령을 보내주셨다. 이 모든 과정은 구원의 완성을 위한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의 이름 자체가 "구원"을 의미한다. 구원은 단순히 죄로부터의 구원만을 의미하지 않고, 굶주림, 질병, 재난 등 다양한 상황에서의 구원도 포함된다. 구원은 다양한 상황에서 필요하며, 예수님이 주시는 구원은 단순히 육신의 필요(양식, 질병, 재난 등)를 넘어서, 근본적으로 죄로부터의 구원을 포함한다. 육신의 구원은 덤으로 따라오는 것이며, 가장 중요한 것은 영혼의 구원이다. 특히 현대 사회에서는 육신의 구원에는 관심이 많지만, 영혼의 구원에 대해서는 관심이 부족하다. 따라서 우리는 예수님이 죄에서 구원하신다는 중요성을 깊이 이해하고, 영혼의 구원을 위해 힘써야 한다.
주기도문에서 예수님은 우리의 죄 용서, 시험에서의 보호, 악으로부터의 구원을 기도하라고 가르치셨다. 이 세 가지 기도는 구원의 모든 측면을 포함하며, 구원은 죄에서의 구원뿐만 아니라, 시험과 악으로부터의 구원을 포함한다. 예수님은 육신의 구원, 즉 병자 치유와 기적을 행하셨지만, 영적 구원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셨다. 예수님을 전적으로 믿고, 기도와 신뢰를 통해 걱정 없이 믿음으로 전진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예수님이 주신 새 계명에 따라 서로 사랑해야 한다. 예수님을 믿고 사랑함으로써 하나님의 은혜에 응답하며, 날마다 새 은혜를 경험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35. 세상 죄를 지고 가시는 하나님의 어린양
설교 : 나균용 목사님
본문 : [요 1:29]
이튿날 요한이 예수께서 자기에게 나아오심을 보고 이르되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
(설교 요약)
성경에서 어린 양은 속죄 제사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대표적으로 유월절 어린 양, 속죄 제물로서의 어린 양, 그리고 모리아산에서 이삭 대신 드려진 어린 양이 있다. 예수님은 에베소서 5장 2절에서 향기로운 제물로 하나님께 드려졌고, 히브리서 9장 12절에서는 예수님이 자신의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셨다고 설명한다. 예수님은 번제와 속죄제를 완성하셨기에 더 이상 동물 희생은 필요하지 않다.
신약성경에서 예수님은 화목제물로도 언급된다. 로마서 3장 25절과 요한일서 2장 2절 등에서 예수님이 화목제물로 드려졌음을 볼 수 있다. 대속죄일에는 두 염소가 등장하는데, 하나는 여호와를 위한 염소로, 다른 하나는 아사셀을 위한 염소로 선택된다. 여호와를 위한 염소는 예수님을 상징하며, 아사셀을 위한 염소는 학자들 사이에서 그 의미가 여전히 논의되고 있다.
고린도전서 5장 7절에서 바울은 예수님을 유월절 어린 양으로 설명한다. 이는 예수님이 유월절에 하나님께 드려졌음을 의미한다. 결론적으로, 예수님은 모든 제사의 완성으로서 다양한 상징성을 지니고 있다.
신약 성경에서 예수님을 화목제물로 설명하는 구절이 세 번 반복된다. 이를 통해 예수님이 우리의 죄를 대신 속죄하신 분이라는 사실을 깊이 깨달아야 한다. 예수님은 한 개인의 죄를 위한 속죄 제물로 드려지셨다. 레위기 4장에서는 죄를 속하기 위해 소나 염소가 제물로 드려지며, 염소와 양은 같은 종류로 여겨진다. 예수님은 우리의 죄를 대신한 어린 양으로 하나님께 드려졌으며, 우리는 이 사실을 믿고 감사해야 한다.
유월절 어린 양은 한 가정을 위한 제물이다. 한 가정이 모두 함께 그 양의 고기를 먹으며 유월절을 기념했듯이, 예수님도 우리를 위해 희생된 유월절 어린 양이다. 또 아브라함이 이삭을 하나님께 바치려 했을 때, 하나님은 이삭 대신 어린 양을 예비하셨다. 이 어린 양은 하나님의 예비하심을 상징하며, 우리의 삶에서도 하나님이 모든 것을 미리 준비해두셨음을 알 수 있고, 또 이 사실을 믿어야 한다.
이 설교의 요점은 예수님과 우리가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방법에 대해 설명하는 것입니다. 요약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우리의 눈에 보이지 않지만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예비하셨음을 믿고 믿음으로 기도하는 사람이어야 한다. 하나님이 모든 것을 준비하셨음을 믿고, 자신을 하나님께 드릴 때 그 준비된 것들이 우리의 눈에 보이게 되는 것이다.
예수님은 하나님과 우리 사이를 화목하게 하는 화목 제물이시다. 화목 제사는 하나님과 더 가까워지기 위한 것이며, 이는 죄를 제거하고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 하나님의 뜻에 따르는 삶을 살 때 가능해진다.
히브리인들은 콩팥을 감정과 양심의 자리로 여겼다. 양심은 하나님과 우리의 지식과 뜻이 일치하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의 양심이 하나님과 일치하려면 철저히 회개하고, 새 사람으로 변화되어야 한다.
예수님은 개인, 가정, 민족, 그리고 온 인류를 위한 속죄 제물로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셨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보혈로만 죄를 씻을 수 있으며, 이 사실을 깨닫고 주님 앞에 가까이 나아가야 한다.
36. 아벨에게 가서 물을 것이라
설교 : 나균용 목사님
본문 : [삼하 20:14-19]
14 세바가 이스라엘 모든 집합 가운데 두루 다녀서 아벨과 벧마아가와 베림 온 땅에 이르니 그 무리도 다 모여 그를 따르더라
15 이에 그들이 벧마아가 아벨로 가서 세발을 에우고 그 성읍을 향한 지역 언덕 위에 토성을 쌓고 요압과 함께 한 모든 백성이 성벽을 쳐서 헐고자 하더니
16 그 성읍에서 지혜로운 여인 한 사람이 외쳐 이르되 들을 지어다 들을 지어다 청하건대 너희는 요압에게 이르기를 이리로 가까이 오라 내가 네게 말하려 하노라 한다하라
17 요압이 그 여인에게 가까이 가니 여인이 이르되 당신이 요압이니이까 하니 대답하되 그러하다 하니라 여인이 그에게 이르되 여정의 말을 들으소서 하니 대답하되 내가 들으리라 하니라
18 여인이 말하여 이르되 옛사람들이 흔히 말하기를 아벨에게 가서 물을 것이라 하고 그 일을 끝내었나이다.
19 나는 이스라엘의 화평하고 충성된 자 중 하나이거늘 당신이 이스라엘 가운데 어머니 같은 성을 멸하고자 하시는도다 어찌하여 당신이 여호와의 기업을 삼키고자 하시나이까 하니
(설교 요약)
사무엘하는 비교적 어두운 내용의 이야기이다. 다윗은 밧세바와의 죄로 인해 충성스러운 장군 우리아를 죽이고, 그 결과 아들들 사이에서 분란과 보복이 일어난다. 특히, 아들 압살롬의 반란으로 다윗은 아들로부터 도망쳐야 하는 상황에 처한다. 결국 압살롬은 죽고, 그 뒤로 세바라는 사람이 또 다른 반역을 일으킨다. 세바는 이스라엘 여러 지파를 모아 반란을 일으키고, 북쪽 아벨 성에 숨어버린다. 요압이 성을 포위하고 공격할 계획을 세우는데, 그때 성 안에 있던 한 지혜로운 여인이 요압에게 아벨이라는 성의 지혜로운 전통을 설명하며, 이 성을 무너뜨리지 말아야 한다고 말한다. 아벨은 어려운 문제를 해결하는 지혜로운 사람들이 많이 나온 도시였다는 속담이 있다. 요압은 이를 듣고 이 성을 멸망시키려는 것이 아니라, 반역자 세바를 찾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한다. 그러자 여인은 요압에게 세바의 머리를 성벽에서 던지겠다고 약속하고, 이후 성 안의 사람들이 세바를 처형하여 그의 머리를 요압에게 던진다. 요압은 이를 확인한 후 반역이 진압되었다고 판단하고 군대를 철수시키며, 예루살렘으로 돌아가게 된다. 이 이야기는 오늘날 우리에게 지혜와 문제 해결의 중요성을 상기시킨다.
예수님이 예언하신 대로, 지구 곳곳에서 지진, 전염병, 기근, 전쟁의 소문이 끊이지 않는다. 최근의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과 대만, 중국, 이스라엘-하마스 간의 문제만 봐도 그렇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우리는 "아벨"이라는 속담을 떠올려야 한다. "아벨"은 지혜와 허무를 깨달아야 한다는 의미이다. 성경의 아벨(가인의 형)과는 다르지만, 원래 히브리어에서 "아벨"은 '허무' 또는 '숨'을 뜻한다. 인생의 지혜는 이 세상의 허무함을 깨닫고 하나님을 잘 섬기는 것에서 온다. 전쟁은 문제를 해결하기보다는 오히려 더 큰 문제를 일으키며, 많은 생명과 재산을 잃게 만든다. 전쟁 대신 지혜를 찾아야 한다. 아벨 성은 역사적으로 지혜로운 사람들이 많이 배출된 곳으로, 문제 해결의 지혜를 얻기 위해 사람들이 찾던 장소였다. 지혜는 하나님을 잘 섬기고 그로부터 받은 지혜로부터 비롯된다. 이러한 사람들이 아벨 성에 많았다는 것이다. 이 세상도 마찬가지로 지혜로운 사람들이 많아지면 사회와 국가가 변화하고 평화가 찾아올 것이다. 이를 위해 하나님께 지혜를 구하며 지혜로운 방법으로 세상을 새롭게 만들어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