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화 큰스님의 길에는 어둠이 없습니다
/ 남해 염불암 주지 성전 스님
앞 부분 생략하고 154쪽 부터
처음 본 그 순간의 느낌은 환희로움
성전스님은 1988년에 출가했다. 그런데 처음부터 청화스님을 찾아간 것은 아니었다. 의성 고운사와 합천 해인사를 거쳐 곡성 태안사로 갔다.
“처음에 고운사로 갔다가 다시 해인사로 갔습니다. 스승을 찾기 위해서였습니다. 해인사에 가서 만난 한 스님이 ‘도인을 모시고 싶다면 태안사로 가라’고 했습니다.
‘태안사에 누가 계시느냐?’고 물어보니 청화 큰스님이 계시다고 합니다.
그래서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태안사로 갔습니다.”
성전스님이 길을 나섰을 때는 서울올림픽의 열기가 전국을 뒤덮을 때였다. 버스를 몇 번 갈아타고 도착한 태안사도 올림픽을 즐기며 추석을 준비하고 있었다.
태안사에 도착해 큰스님을 찾았습니다. 인사를 드리는데
그렇게 맑고 밝은 눈빛을 가진 사람은 처음 봤습니다.
마른 체구였지만 큰스님의 몸과 눈에서 빛의 입자가 떨어졌어요.
큰스님의 눈과 마주치는데 신비함과 함께 환희로움이 솟아났습니다.
잠깐의 인사를 드리면서 든 생각은 ‘이 어른을 스승으로 모시고 살면 정말 괜찮겠다’는 마음뿐이었습니다. 그렇게 큰스님을 스승으로 모시고 출가를 했습니다.
당시 태안사에는 대중이 많았습니다. 여느 사찰과 다르게 절이 따뜻했습니다. 큰스님께서 대중을 정말 잘 이끌어주셨기 때문에 더 그런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예전에 하동 수정사에서 주석하는 장우 스님한테도 성전 스님의 말씀과 비슷한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장우 스님이 성전 스님의 사형이기 때문에 몇 년 앞선 이야기지만 비슷한 맥락이어서 옮겨본다.
장우 스님이 출가 전 인연이 돼 대흥사 남미륵암으로 청화 큰스님을 만나러 갔다. 물어물어 도착한 남미륵암, 청화 큰스님은 묵언 정진 중이었다.
청화 스님을 만나는 순간, 장우 스님은 푸른빛을 보았다.
“불교 경전이나 어록을 보면 ‘눈 푸른 납자’라는 말이 나오잖아요
저는 남미륵암에서 진짜 눈 푸른 납자를 봤습니다.
큰스님의 눈에서 정말 푸른빛이 나오고 있었습니다. 말 그대로 형형했습니다.
그 빛나던 순간을 저는 잊을 수가 없습니다.
남미륵암에서 큰스님의 온전한 모습을 봤습니다.”
장우스님과 성전 스님 모두 어디에서도 보지못한 진짜 수행자의 모습을 본 것이다.
성전 스님은 정신없이 행자 생활을 했다. ‘정말 밤낮이 없었다’고 한다. 대중 외호와 함께 수많은 재를 준비하는 것은 당연히 행자의 몫이었다.
“그때 태안사에서는 떡도 직접 만들었습니다. 일이 많으면 방앗간에 떡을 맡길 수도 있을 텐데 대중이 직접 다 준비를 했어요. 떡 만드는 것뿐만 아니라 이것저것 바쁜 일이 많았습니다. 당연히 저를 포함한 행자는 많이 힘들어했습니다.
어느 날 큰스님께서 대중을 부르셨습니다.
“자네들 눈에는 안 보일지 모르나 내 눈에는 보이네.
굶주리고 힘들어하는 영가(靈駕)들이 깨달음을 얻고자 하는 일인데,
우리가 영가를 소홀히 대접하면 안 된다네. 신심으로 정성껏 준비하소.”
큰스님의 말씀을 듣는 순간 머리가 띵했어요. 죽비로 한 대 맞은 것 같았습니다.
큰스님과 같은 도인의 눈에는 우리가 보지 못하는 것도 보인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사실을 새삼 확인했습니다.“
행자생활을 마치고 성전 스님은 해인강원에 입학했다. 청화 스님은 수시로 편지를 보내 제자의 공부를 격려했다.
“잘 지내는가? 공부는 열심히 하고 계신가?‘ 하는 짧은 인사였지만 따뜻함이 그대로 담겨 있는 편지였다. 성전 스님도 정성껏 답장을 보냈다.
“큰스님께서는 편지를 보내시면서 항상 10만원 짜리 수표를 같이 주셨습니다. 정성이 담긴 말씀도 감사한데 학비까지 보내주시니 공부를 열심히 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큰스님의 겸손을 배우고파
성전 스님은 해인강원을 마치고 순천 송광사, 곡성 태안사, 미국 삼보사 등의 선원에서 정진했다. 삼보사에 있을 때는 해제 철에 청화 스님을 모시고 짧은 여행을 다녀오기도 했다.
“한번은 광전 스님과 함께 큰스님을 모시고 자동차 여행을 갔습니다. 도중에 공양을 하러 식당에 갔는데 달걀부침이 나왔어요. 큰스님께서 그것을 드시지 않으니 저희도 주저하고 있었어요. 큰스님께서 저희를 보시더니 ”‘괜찮네. 편하게 드소.’라고 하십니다. 그래도 저희는 먹을 수가 없었죠.
큰스님께서는 차를 타고 계셔도 그렇고, 언제 어디에 계시든 시간을 허투루 쓰지 않으셨어요. 차를 타고 계시면 책을 많이 보셨고 또 절에 계실 때는 항상 정진을 하셨습니다. 한번은 제가 장좌불와가 힘들지 않은지 여쭈었습니다.
그때 큰스님께서는 ‘앉아 있는 것보다 누워있는 것이 더 힘드네’라며 웃으셨습니다.“
성전 스님은 청화 스님을 오랫동안 시봉하지는 못했다. 하지만 짧은 시간이었어도 청화 스님을 존경하는 마음은 여느 제자 못지 않았다.
“큰스님께서 태안사에 계실 때는 정말 다양한 사람이 왔습니다. 법을 청하러 온 사람도 있었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었습니다.
대중이 불편해하면 큰스님께서는 ‘내가 저 사람을 거두지 않으면
저 사람이 어디로 가겠는가?’라고 말씀하셨어요.
그렇게 아껴주시던 그 사람은 지금도 제방에서 열심히 정진하고 있습니다.
큰스님께서는 스스로 모든 아픈 사람의 둥지가 되려고 하시는 것 같았습니다.
아니, 어쩌면 이미 둥지로 존재하셨어요. 언제나 그들 앞에서 예의 그 부드러운 미소와 자비로운 손길을 잊지 않으셨습니다.
큰스님께서 또 수행을 하면 기적적인 힘과 안목이 생긴다는 말씀을 여러 번 하셨어요.
‘수행자가 점쟁이보다는 많이 알아야 하지 않겠는가? 부처님을 믿고 수행만 하면 자연스럽게 본인의 운명을 알게 된다네, 그것이 바로 인연인 것이네.’라고 하셨습니다.“
성전 스님이 인연이 돼 쌍계총림 쌍계사 방장 고산스님을 법사로 모셨다. 이런 인연으로 곡성 성륜사에 청화 스님 부도와 비를 조성할 때 고산 스님은 직접 비문을 지어 성전스님에게 보냈다.
“고산 큰스님 또한 전형적인 수행자이십니다. 큰스님 역시 어디를 가시더라도 흐트러짐이 없습니다. 혹여 외국의 성지를 가더라도 매일 새벽이면 예불을 올리고 108배를 하시고 경전을 독송하십니다. 독감에 걸려도 새벽이면 어김없이 법당에 가는 분이 바로 고산 큰스님입니다. 신심과 원력으로 평생을 살아오신 어른입니다. 제가 무슨 복이 있는지 청화 큰스님과 고산 큰스님을 곁에서 모시고 있습니다. 두 어른께 항상 감사할 뿐입니다.”
성전 스님은 청화 스님과의 인연, 가르침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냈다. 세세한 설명보다 ‘결정적 장면’을 중심으로 설명했다. 그러던 중 성전 스님은 청화 스님의 가르침에 대해 한마디 하고싶다고 했다.
“청화 큰스님의 사상은 이름이 ‘염불선’인 것이지, 사람들이 흔히 말하는 염불의 범주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큰스님의 가르침은 초조 달마에서 육조 대사 혜능까지 이어진 순선 시대의 정통선입니다. 또 선의 모든 것을 포괄하는 원통선입니다. 특정 종파의 선이 아닌 것입니다. 이와 함께 부처님 가르침의 근본을 정확히 담아낸 근본선이자 실상선입니다. 있는 그대로의 참모습을 드러내는 가르침인 것이죠.
나아가 진리선입니다. 진리를 올곧게 담은 가르침입니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큰스님의 가르침을 염불이라고 하는 아주 작은 부분에 갇힌 것쯤으로 압니다. 큰스님의 사상에 대한 정확한 연구와 올바른 이해가 시급합니다. 큰스님의 선은 진리 그 자체이고 부처님의 가르침을 온전히 드러내는 것입니다.
성전 스님은 청화 스님의 선 사상 역시 제대로 알려지기를 바라는 마음이 간절했다. 짧은 인터뷰 시간이 야속했다. 성전 스님은 자리를 정리하기 시작했다. 황급히 마지막 질문을 던졌다.
“청화 큰스님의 어떤 점을 닮고 싶습니까?”
“큰스님을 뵐 때면 불안(佛眼)을 생각했습니다. 큰스님의 눈은 정말 부처님의 눈과 다르지 않았어요. 또 큰스님은 불행(佛行)을 보여주셨습니다.
대중에게 인사를 받을 때 가만히 앉아 계시는 모습을 보지 못했습니다. 최소한 무릎을 꿇든지 아니면 맞절을 하셨습니다. 하루는 큰스님께 여쭈었어요.
‘왜 가만히 앉아서 절을 받지 않으십니까?’
‘수행자에게 겸손을 빼면 무엇이 남겠는가?’
제 가슴을 꽝 때리는 말씀이었습니다.
태안사에서 깜깜한 방에 큰스님을 모시고 갈 때면
마치 큰스님 앞길에는 어둠이 없는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거침없이 대중을 제접했던 부처님처럼 말입니다.
태안사 토굴에 계실 때도 그렇게 깔끔하게 사셨습니다.
지금도 그렇지만 큰스님의 토굴 아궁이처럼 깨끗하고 단정한 것은 못 봤습니다.
항상 손수 모든 것을 하셨고 모범이 되셨습니다.
청화 큰스님은 당신의 그림자만 보아도
옷깃을 여미게 되는 그런 스승이십니다.
제가 아무리 노력해도 위대한 수행자인 큰스님과 같아지겠습니까?
하루도 흉내내기 어려운 그런 어른을 닮는다는 표현이 좀 그렇습니다.
다만 제가 닮고 싶은 것은 큰스님의 겸손입니다. 하심입니다.
당신은 낮추시지만
모든 생명을 부처님으로 대해주신 큰스님의 그 모습을
조금이라도 닮고 싶습니다.“ 161쪽 5.28(일) 오전 10:55 타이핑
곡성 태안사 시절에 큰스님이십니다. 청화 큰스님의 사진을 공유해주는 모든 분께 감사드립니다.
첫댓글 감사합니다 아미타불 합장
더이상 무슨 말씀이 필요하겠습니까.
나무아미타불
감사합니다 ...
중생에 오신 부처님....나무아미타불...()()()...고맙습니다....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잘보고갑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