습도 가득한 나날이 이어지다가, 어제 오후부터 모처럼 파란 하늘이 얼굴을 드러내더니
객석 사옥에 도착할 때쯤엔 말끔히 개더라구요.

구지휘자님 때는 송년회 겸하고 사람이 많아서인지
2층 홀에서 했는데
이번엔 4층 객석 도서실에서 진행되었어요.
분위기 상당히 근사하더라구요.
신을 벗고 들어가는 서늘한 마루바닥의 느낌도 좋고
적당히 오래되어보이는 장서들...^^
우리집이라면 아마 딩굴거리며 하루 종일 시간보내도 좋을 것 같은 공간이었어요.

박용완 편집장의 소개 후에 권민석님은 저 계단을 타고 내려오며 등장하셨지요~^^
85년생, 서울대 작곡과 전공 후 네덜란드 왕립음악원에서 유학중이고
몬트리올 콩쿠르에서 1등 하셨다는 프로필은, 인터뷰 다 끝마칠 무렵에야 조각조각 맞추게 된 정보구요...
실제로 만났을땐 과학자 같기도 하고 모범생이면서 운동도 적당히 하지만
그렇다고 딱딱하지 않은 편안한 멋이 있는 그런 젊은이인 듯 했어요.

객석 페이스북에서 초대받아 갔을 뿐,
사실 리코더는 (누구나 그렇듯) 초등학교 때만 불어본 악기이고 크게 관심두지 않았는데,
그런 리코더에 대해 상상하던 그 이상의 얘기를 들을 수 있었어요.
리코더는 회양목이나 올리브나무 등으로 만드는데,
나무가 습도나 온도의 영향을 받기에 한 시간 이상 계속 연주하진 못한대요.
길이 잘 든 악기는 백 년 정도까지 정점을 찍는 소리를 내다가 나무가 상하므로...
박물관에는 정말 옛날 장인들이 만든 악기가 있는데
손상이 심해서 바이올린이나 비올라처럼
대여해서 연주하긴 어렵다더라구요.
우리가 몇천원 주고 구입해서 부는 플라스틱 리코더로도
가까운곳에서는 그럴싸한 소리를 낼 수 있지만
확실히 나무로 만든 것이 멀리까지 소리를 공명시킨다고 해요.
권민석님은 악기로부터 '배운다'는 표현을 하셨는데,
그 말씀이 참 인상깊었어요.
나무와 함께하며 그 향에 자신이 스미고 한몸이 되는 느낌이 있으니
기회가 되면 꼭 나무로 된 리코더를 연주해보라고 권하시더군요.^^


바흐의 무반주 첼로조곡 2번 중 알르망드를 리코더로 편곡한 것과
마랭 마레의 에스파냐풍의 라 폴리아를 들려주셨네요.
우왕~~ 리코더에서도 그런 비르투오지가 나올 수 있다는 걸 처음 알았어요.
그리고 중간에 즉흥으로 연주하시면서
요 기계로 소리에 중첩과 간섭 효과 등등을 다양하게 주어 신비로운 음악을 만들어내는 과정도 보여주시더라구요.
의자에 앉아 연주하시면서 발가락으로 버튼들을 켰다 껐다...^^

저는 고음악이나 바로크음악은 아는게 없어
당대에 작품이 많이 쓰여진 리코더 음악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였는데요,
소박하면서 깊은 기품이 배어나오는 소리라
윤이상 선생님께서 단소나 대금 같은 우리 피리류와 제일 비슷하다고 하셨다는 그 말씀이 이해될 것도 같았어요.
자세한 내용은 다음 8월호 객석에서...^^
첫댓글 리코더에 푹 빠지신 듯한 후기십니다.
사실 전 페북 초대 메시지 보고 무슨 리코더? 했었는데... 반성합니다. 상록수님의 객석후기 좋아요! ^^
그렇다고 푹 빠진 것 까진 아니고요 ㅎㅎ 25일 금호아트홀에서 권민석님 연주회 있다니 관심있는 분들은 가 보셔도 좋을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