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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여일 됐나요 우리 교회 회복적 교육센터에 자주 오신 스마일 선생님 한 분이 오셨습니다. 스마일선생님은 그냥 제가 붙인 별명입니다. 회복센터를 운영하신 센터장을 도와 함께 책을 출판하기도 했던 귀하신 분입니다. 스마일 선생님 활짝 웃으시면서 목양실 문을 조용히 열더니 과자봉지를 하나 선물하시고는 급히 나가시는데 제가 그냥 가볍게 흘러 보낸 말로 그랬습니다. 아이고 감사합니다. 선생님 복받으세요 새해 조금 좀 지났지만 그래도 1월 달까지는 새해 복받으세요 라고 하는 말이 괜찮다고 하는데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인사드린 적이 있었습니다. 뭐! 복 받으시라고 했는데 잘못된 말입니까 만 1월 달까지라는 말이 왠지 인사드리고 나서는 부끄러웠습니다.
누군가에게 복이란 말을 하던지 누가 나에게 복 받으라고 하던지 복이란 기분 좋은 말입니다. 새해를 맞이하면 회자되는 말들 중에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건강하세요’ 인사를 주고 받습니다.
며칠 후면 설날 명절이 다가오는데 그래도 고유 명절이기에 새해 자녀들이 세배를 하면 덕담 한마디씩 하는데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건강하세요 라고 하는 말이 나쁘지는 않습니다. 그리스도인으로써 어떤 인사로 덕담 한마디씩 해 줄 것인가 기도해야하겠습니다.
구약성경에서 복을 나타내는 히브리어 단어는 두 가지입니다. 첫째는.... 누구에게나 일반적으로 주어지는 복입니다.
여기에 쓰인 단어가 ‘바라크’(ברך)인데 하나님이 누군가를 축복하거나 신적권위를 가지고 복을 주실 때 사용됐습니다. 이것은 꼭 사람만이 아닌 모든 피조물에게 다 해당되는 복입니다. 이 복은 선행이나 공로와는 상관없이 하나님께서 일방적으로 주시는 복입니다.
그런데 “바라크” 이 복이 제일먼저 누구에게 선포 된 줄 아십니까?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실 때 다섯 번째 모든 생물들을 창조하실 때 복을 선포하셨습니다.
창세기 1:22....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고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여러 바닷물에 충만하라 새들도 땅에 번성하라 하시니라...
그러니까 “바라크” 이 복은 인간이 창조되기 전 모든 생물들을 먼저 창조하시고 복을 선포 하신 것입니다.
둘째는.....하나님께서 인격적인 관계에서 베푸신 복입니다. '에쉐르'(אשר) 단어입니다.
하나님과 언약의 관계 속에서 피조물인 인간의 삶의 자세와 태도로 인해 주시는 복입니다. 이 복은 일방적으로 주시는 복이 아니라 내가 어떻게 사느냐에 따라 주어집니다. 그러니까 누구든 받는 것이 아니요 받지 못할 수도 있는 복입니다.
창세기 12장에 보면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본초 친척 아비집을 떠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은 갈 바도 알지 못하고 갈대아 우르를 떠나게 됩니다. 순종한 믿음의 사람 아브라함을 보신 하나님께서는 "너는 복이 될지라" 더 진솔하게 말하면 너는 복의 근원이 될지라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셨습니다.(창12:2)
그런데 아브라함은 한 평생 사는 동안 발붙일 땅을 얻지 못 한 채 나그네로 삽니다. 자식도 많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하나님이 선포하신대로 복의 근원이 되었습니다. 스스로 복될 뿐만 아니라 모든 민족으로 복되게 했습니다.
종교학 적으로 기독교와 관련된 3대 종교인 기독교, 유대교, 이슬람교가 아브라함을 믿음의 조상으로 높입니다. 아브라함은 모든 인간 중에서 높이 존경을 받는 사람입니다.
그만큼 하나님 앞에 쓰임 받은 복의 그릇으로 살았기에 아브라함의 됨됨이를 보시고 주시는 에쉐르의 복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에 나타난 복 있는 사람도 에쉐르의 복입니다. 하나님앞에 아브라함처럼 어떻게 사느냐에 따라 주시는 복입니다. 저와 여러분에게도 에쉐르의 복을 받아 누려야합니다.
오늘 시편 기자는 복 있는 사람에 대해 말씀하면서 그에 반대되는 악인들을 더 많이 언급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복있는 사람 그리고 악인을 확실히 대조합니다. 어떠습니까? 복있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까?...... 아니면 악인이 되고 싶습니까? 쉽게 판단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서 복있는 사람으로 인정을 받기위해서는 머리로 아는 지식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삶에서 복 있는 사람으로 살아가야 만이 하나님께서 보시고 인정해주시는 것입니다
먼저 1절 말씀부터 봅니다......... “복 있는 사람은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오래 전에 소유한 개역성경에는 ‘악인, 죄인, 오만한 자’를 단수로 취급했습니다. 그러나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개역 개정 성경에서는 ‘악인들, 죄인들, 오만한 자들’을 복수로 번역하고 있습니다. 영적으로 의미 있는 것은 우리가 사는 세상이 너무 악하여 이러한 악인들 죄인들이 훨씬 많다는 것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복 있는 사람’은 단수를 사용합니다. 오직 한 사람입니다. 그만큼 죄를 짓고 악하게 사는 게 쉽다는 것입니다. 죄의 그물망을 벗어나 따로 살아가기가 너무 어렵습니다. 누구든 함께 죄를 짓는 사람이 많으면 많을수록 죄를 깨닫기가 힘이 듭니다. 그만큼 죄란 신기하게 한번 빠져 들면 죄에 대한 적응력이 놀랍게 빨라집니다.
그러나 복 있는 사람은 악인들이 아무리 세상을 장악해도 결코 악인의 길에 서지 않으려는 확실한 기준이 있어요. 그 기준이 2절 말씀에 있습니다.
2절......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도다”
악인이 되고 싶어서 악인이 된 사람이 있습니까? 저와 여러분이 생각하는 악인의 기준이 있습니다..... 세상에서 악한 행동을 하여 사형선고를 받던지 무기징역을 받을 정도로 못된 짓을 하면 악인이라고 판단합니다.
그런데 성경에서 악인의 기준이 너무나 무섭습니다......... 설교자인 제가 악인이 될 수 있습니다...... 악의 기준이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지 않고 여호와의 율법을 묵상하지 않으면 별 수 없이 악인입니다.
악인이 되는 이유는...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기보다 자기의 머리를 더 믿고 사는 겁니다. 우리가 세상에서 살면서 악인들과 죄인들과 오만한 자들을 상대할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이 내 안에 없으면 무슨 재주로 그들을 이겨낼 수 있겠습니까?
세상 사람들은 그렇게 판단하고 살지 몰라도 그리스도인으로써 말씀이 내 삶의 중심에 견고하게 자리 잡지 않으면 죄에 익숙해져서 죄의 삶에서 빠져나올 수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 없는 악한 일을 범하게 되는 겁니다.
오직 저와 여러분은 “율법을 즐거워하고 주야”로 묵상하는 단계까지 가야 합니다.
교회만 왔다 갔다 하면 어느 날 율법이 즐거워지는 게 아닙니다....... 먼저 내 자아를 죽이고 하나님의 말씀의 기준을 따라 내 삶을 끊임없이 복종시키는 매일 매일의 수고와 노력의 대가를 지불해야 합니다.
우리가 잘 아는 다니엘과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는 바벨론 포로로 잡혀갔습니다. 남다른 지혜가 있기에 바벨론나라 왕의 궁에서 최고의 학문을 배울 기회를 얻었습니다. 왕이 먹는 진미를 먹을 수 있는 기회도 주어졌습니다. 그러나 젊은 믿음의 세 사람은 한가지 분명한 것이 있었습니다.
단1:8.... 다니엘은 뜻을 정하여 왕의 음식과 그가 마시는 포도주로 자기를 더럽히지 아니하리라 하고 자기를 더럽히지 아니하도록 환관 장에게 구하니 다니엘이 뜻을 정한 것은 오직 하나님말씀에 흔들리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의 유혹의 꾀에 넘어가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정한 것입니다.
저들이 정해준대로 먹고 마시고 즐겼다면 일순간은 좋을지 몰라도 바벨론문화에 동요되어 하나님 없는 삶을 살았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은 매순간 나는 복있는 사람으로 살기위해 말씀기준으로 살고 있는가 자신을 살펴야 할 것입니다.
3절..... “그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철을 따라 열매를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가 하는 모든 일이 다 형통하리로다”
그는 누구를 말하는 것입니까?..... 복 있는 사람으로 말씀을 묵상하며 내가 있는 삶의 자리를 분별하여 악인의 자리라면 동석하지 않는 사람을 말합니다.
이런 복 있는 사람에게 하나님께서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처럼 철을 따라 열매를 맺게 하십니다. 이것은 무엇을 잘 먹고 잘 산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복있는 사람은 악인들의 집요한 방해를 받으면서도 하나님 말씀을 주야로 묵상하며 살기에 매순간마다 영적으로 풍성한 삶을 누리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올해도 우리교회가 QT묵상으로 살아가지만 오늘 읽은 말씀을 붙잡고 주야로 가정이든 일터이든 사업장이든 여행 중이든 그 자리에서 잠깐 1분이라도 하나님말씀을 묵상해보세요 그 순간 만큼은 철을 따라 열매를 맺게 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성도에게 복있는 사람으로 인정 해 주실 것입니다.
4-5절...... “악인들은 그렇지 아니함이여 오직 바람에 나는 겨와 같도다 그러므로 악인들은 심판을 견디지 못하며 죄인들이 의인들의 모임에 들지 못하리로다”
그런데 악인은 어떠습니까? 바람에 나는 겨와 같다고 했습니다. 겨는 그냥 껍데기, 쭉정이로 바람에 그냥 휩쓸립니다. 알맹이가 없으니 바람 부는 대로 방향 없이 날아갑니다. 동방의 의인 욥이 고난당하는 자신의 모습을 보면서 하는 말이 있어요
욥기21:18.... "그들이 바람 앞에 검불 같이, 폭풍에 날려가는 겨 같이 되었도다"
그렇습니다...... 우리 마음 중심에 말씀이 채워지지 않으면 바람 앞에 검불처럼 근방 타다가 없어지는 인생이 되고 맙니다.
설날이 지나고 정월 대 보름이 되면 어릴 때 짚불놀리 불꽃놀이를 하지요 액운을 없애준다고 그런 풍습이 있지 않습니까? 저도 어릴 때 깡통에 줄을 달고 깡통에 나뭇가지를 집어넣고 불을 붓쳐 돌린 적이 있습니다. 시골에서는 큰 볏단을 올려놓고 불을 피우는데 불꽃이 바람을 타고 날라 갑니다. 그런데요 타는 그 순간은 온 세상을 다 태울 것 같습니다. 그러나 다 타고 남은 건 재 뿐이 남지 않고 타다 남은 재도 다 바람 앞에 모두 다 사라집니다. 이것이 곧 악인이 받는 심판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이 받는 심판의 기준은 죄를 얼마나 지었느냐는 것이 아닙니다. 얼마나 하나님 말씀 뜻대로 살았느냐는 것입니다.
심판의 결과는 천국과 지옥이 아니라 상급과 영광입니다. 구원은 예수님의 피로, 은혜로 아무 공로 없이 받았지만 상급은 어떻게 살았느냐에 따라 다릅니다.
그래서 고후 5:9-10...그런즉 우리는 거하든지 떠나든지 주를 기쁘시게 하는 자 되기를 힘쓰노라 이는 우리가 다 반드시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드러나 각각 선악간에 그 몸으로 행한 것을 따라 받으려 함이라
기독교의 선악은 도덕적인 것 이상입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것, 성령을 따라 사는 것, 하나님을 기쁘시게 사는 것, 비록 내게 고통이 있더라도 주님 편을 택하면서 순종하는 것이 선이요 복있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대로 살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알고도 행치 않고, 내 뜻대로 내 육신대로 살려 하는 것이 악인의 기준이 되는 것입니다.
육신을 입고 오신 예수님도 십자가의 고통이 하나님의 뜻임을 알고 순종하셨습니다.
우리도 주님을 따르는 데는 많은 고난과 어려움이 있습니다. 그러나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라야 할 것입니다. 내 뜻을 포기하고 주님의 뜻대로 살아야 할 것입니다.
6절.... “무릇 의인들의 길은 여호와께서 인정하시나 악인들의 길은 망하리로다”
복있는 자와 악한 자 뚜렸한 대조를 이루지만 하나님께서는 시편기자로 통해 복 있는 자가 누구입니까? 의인들의 길이요 복 있는 자를 하나님께서 인정하신다고 했습니다.
사람들이 어떻게 살든 자유입니다....... 그러나 저와 여러분은 다릅니다. 하나님의 자녀요 그리스도인이기에 하나님이 인정하여 주시는 삶이 곧 복 있는 사람입니다.
그리스도인은 놀랍게도 ‘복의 근원’이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를 구원하여 주시므로 오늘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로 복 있는 자로 누리며 살고 있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올 한 해도 진정 하나님이 인정해주시는 ‘복 있는 사람으로 살아가시기를 축복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