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당신은 저의 성채,
저의 자애로운 하느님이시니
저의 힘이시여,당신께 노래하오리다
(시편59,18).
“저의 힘이시여”가 10절에 이어 다시 등장한다.10절에서 시인은 구원이신 하느님의 힘을 기다림으로써 원수들의 공격에 대응했다.여기서는 하느님의 힘이 찬양의 동기가 되고,시인은 하느님이 자신의 힘의 원천임을 인정하게 된다.하느님은 그를 구원하실 힘일 뿐 아니라 원수들의 맹습에 직면하여 충실히 인내할 수 있는 힘을 주신다.그는하느님의 피신처에서 보호를 받는다.2절에서“저를 보호하소서”라고 바친 기도가 여기서 응답되었으며 시인은 감사 기도로 시편을 마친다.
시편59편의 전체적 의미:시편 59편은 절박한 위험 앞에서 적들로부터 구원을 바라며 드리는 기도다.시인은 악한 원수들의 공격을 받고 있다.특히 원수들의 악한 말이 그를 위협한다.이 시편에서는 말의 잔인한 힘이 강조된다(8절).악인들은 사람을 죽이는 말과 저주와 거짓말을 할 뿐 아니라 말로써 하느님을 거스르는 교만을 드러낸다.악인들의 이런 태도와 공격에 대해 시인은 하느님을 신뢰하고 하느님께 의존하는 자세를 드러낸다.비록 악인들에 대한 하느님의 심판을 구하는 시인의 말이 과격하게 들리긴 하지만 그것은 악인들의 문제가 심각함을 나타낸다.위기에 직면한 시인은“저의 힘이시여,당신만을 바랍니다”(10절)라고 고백한다.그는 자신을 보호해 주시는 하느님을 성채와 피신처로 고백하며 찬양한다.이 시편은 우리가 위험한 상황에 처해 있을 때 하느님께 모든 문제를 드러내고 그분이 해결해 주실 것을 전적으로 믿고 기도하도록 이끌어 준다.
(거룩한 독서를 위한 구약성경 주해 23-2 시편 42-89편/바오로딸)
(정동 04/16)
Ⅴ.세계적 불평등
48. 인간 환경과 자연환경은 함께 악화됩니다.우리가 인간과 사회의 훼손의 원인들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다면 환경 훼손에 적절히 맞서 싸울 수 없습니다.사실 환경과 사회의 훼손은 특히 이 세상의 가장 취약한 이들에게 영향을 미칩니다.“일상생활의 체험과 과학 연구는 가장 가난한 이들이 모든 환경 훼손의 가장 심각한 영향을 받는다는 것을 보여 줍니다.”예를 들어,물고기 개체 수의 감소는 다른 생계 수단이 마땅치 않은 영세 어민들에게 특히 어려움을 주게 됩니다.수질 오염은 특히 생수를 살 수 없는 가난한 이들에게 영향을 미칩니다.해수면 상승은 주로 해안 주변에 사는 달리 갈 곳이 없는 가난한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칩니다.현재의 이러한 불균형의 영향은 많은 가난한 이들의 이른 사망,자원의 결핍으로 일어나는 분쟁,국제적 논의에서 제대로 다루어지지 않는 많은 다른 문제들에서 나타납니다.
49. 특히 소외된 이들에게 영향을 미치는 문제들을 사람들이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언급할 필요가 있습니다.소외된 이들은 수십 억 명에 이르러 인류의 대다수를 차지합니다.이들은 오늘날 국제적 정치와 경제 토론에서 언급되고는 있지만,그들의 문제는 거의 의무감에 못 이겨 또는 미미하게 다루는 부록으로 제시 되거나,아니면 그저 부수적 피해로만 여겨질 수도 있다는 인상을 빈번히 줍니다.사실,모든 것이 정리되고 나서 보면 소외된 이들의 문제는 가장 뒷전으로 밀려나 있습니다.부분적으로 그 이유는 많은 전문가,여론 선도자,통신 매체,권력의 핵심들이 부유한 도시지역에 위치하여 가난한 이들로부터 멀리 떨어져 가난한 이들의 문제에 거의 직접적으로 관여하지 않기 때문입니다.그들은 높은 수준의 발전에 따른 편안한 위치에서 세상의 대부분 사람들이 범접하지 못하는 삶의 질을 누리며 생활하고 생각합니다.이렇게 사람들과의 직접적인 접촉과 만남의 결여는 종종 도시의 해체로 촉발되며 양심을 무디게 하고 현실에 있는 것을 무시하는 편행된 분석을 낳습니다.때로 사람들은 말로는‘환경’을 옹호하면서도 이러한 태도를 취합니다.그러나 오늘날 우리는 참된 생태론적 접근은 언제나 사회적 접근이 된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그러한 접근은 정의의 문제를 환경에 관한 논의에 결부시켜 지구의 부르짖음과 가난한 이들의 부르짖음 모두에 귀를 기울이게 해야 합니다.
50. 가난한 이들의 문제를 해결하고 세상을 바꾸는 방법을 생각하기보다 출생률 감소만을 제안하는 사람도 있습니다.개발 도상국들은 때대로 경제 지원을 특정한‘출산 보건’정책에 연계시키라는 국제적 압력을 받습니다.그러나“인구와 이용 가능한 자원의 불균등한 분배가 개발과 환경의 지속 가능한 이용에 장애가 되는 것은 사실이지만,인구 성장과 통합적이고 공평한 개발은 전혀 모순되지 않는다는 것을 인정해야 합니다.”지나친 선택적 소비주의가 아니라 인구 증가를 비난하는 것은 문제를 회피하려는 술책일 뿐입니다.이는 현재의 분배 방식을 합법화하려는 시도인 것입니다.현재의 분배 방식에서는 소수의 사람들이,보편화될 수 없는 방식으로 소비할 권리가 자신에게만 있다고 믿습니다.지구가 그러한 소비로 발생하는 쓰레기조차 감당할 수 없기에 그렇다는 것입니다.그런데 우리는 생산된 식량 전체의 거의 3분의1이 버려지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우리가“음식을 버릴 때마다,그 음식은 마치 가난한 이들의 식탁에서 훔쳐 온 것과 같은 것입니다.”국가와 세계 차원에서 인구 밀도의 불균형에 대해서도 관심을 기울여야 합니다.소비 증가는 환경 오염과 교통,쓰레기 처리,자원 손실,삶의 질과 관련된 문제들이 서로 얽힌 결과로 복잡한 지역 사정을 일으킵니다.
51. 불평등은 개인에게뿐만 아니라 모든 나라에 영향을 미칩니다.그렇기 때문에 불평등은 우리가 국제 관계의 윤리도 생각해보게 합니다.현실적인‘생태적 빚’은 특히 남만구와 북반구 사이에 발생한 것으로 환경에 영향을 미치는 상업적 불균형,그리고 특정 국가들이 장기간에 걸쳐 천연자원을 지나치게 이용한 사실과 관련됩니다.산업화된 북반구의 시장을 충족시키려고 천연자원을 수출한 결과로 금광 지역의 수은 오염과 동광 지역의 아황산 오염과 같이 지역적 피해가 발생하였습니다.특히 배출된 가스들을 처리하려고 전 세계의 환경 공간을 이용하는 것에 대하여 예측해 보아야 합니다.지난 200년 동안 쌓여 온 가스 분진을 처리하려고 전 세계의 자연 공간의 사용을 계산해야 하는 긴급한 사정이 생겼습니다.이는 전 세계 모든 나라에 영향을 미치는 일입니다.일부 부유한 국가들의 엄청난 소비로 야기된 온난화는 세계의 가장 가난한 지역,특히 아프리카에 영향을 미칩니다.아프리카에서는 기온 상승이 가뭄과 맞물려 농업에 맏개한 피해를 주고 있습니다.고체와 액체 상태의 독성 물질을 개발 도상국에 수출하고,자본을 대는 나라에서는 결코 할 수 없는 방식으로 저개발국에서 기업을 운영한 데 따른 오염으로 발생되는 피해도 있습니다.“우리는 이러한 방식으로 운영되는 기업들이 흔히 다국적이라는 것에 주목합니다.그들은 선진국,이른바‘제일 세계’라고 불리는 국가에서는 절대로 하지 않을 짓을 이곳에서 저지릅니다.일반적으로 그들이 기업 활동을 중단하고 철수하고 나면 실업,활기 없는 마을,천연자원의 고갈,삼림 파괴,지역 농업과 축산업의 몰락,노천광의 웅덩이,훼손돤 언덕,오염된 강,유지가 불가능한 사화 시설과 같은 인간과 환경에 부담이 되는 짐만 남게 됩니다.”
52. 가난한 나라들의 외채는 통제 수단이 되어 버렸지만,생태적 빚은 경우가 다릅니다.가장 중요한 생물권 보존 지역이 있는 개발 도상국들은 자기의 현재와 미래를 희생해 가면서 부유한 국가들의 발전에 계속 이바지하고 있습니다.남반구의 가난한 나라들의 토지는 기름지며 대부분 오염되어 있지 않지만,구조적으로 사악한 상업 관계와 소유권의 체계 때문에 그들의 절실한 필요를 위한 재화와 자원에 대한 소유권이 차단되고 있습니다.선진국들은 재생 불가능한 에너지의 소비를 크게 줄이고 가난한 나라들의 지속 가능한 발전 정책과 계획을 지원하여 이러한 부채를 갚는 데 도움을 주어야 합니다.가장 가난한 지역과 나라들은 환경 영향을 줄일 수 있는 새로운 방식을 채택하기가 어렵습니다.그에 필요한 과정을 개발하고 그 비용을 충당할 만한 여유가 없기 때문입니다.우리는 기후 변화에 관하여 차등적 책임이 있다는 것을 끊임없이 인식해야 합니다.미국의 주교들은“힘 있는 이익 집단이 주도하는 토론에서 가난한 이들과 무력한 이들과 취약한 이들의 요구”에 더욱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고 말하였습니다.우리가 하나의 인류 가족이라는 인식을 더욱 확고히 해야 합니다.우리가 숨을 수 있는 정치적 사회적 국경도 장벽도 존재하지 않습니다.더욱이 무관심의 세계화를 위한 공간은 더욱 존재하지 않습니다.
(프란치스코 교황 회칙 찬미받으소서 개정판)
“정말 있었는지도 알 수 없지만 어쨌거나 신시는 이미 사라졌고 서울이라는 말이 신시를 의미한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도 이제는 거의 없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서울은 과거에도 신시였고,지금도 신시이다.충남 연기군에‘행복도시 세종’조영이 마무리 된 뒤에도 서울은 오랫동안 신시로 남을 것이다.신시는 종교적 동일체의 상징이고 종교적 권위를 표현하는 공간이다.물론 오늘날의 우리는 종교적 구심점을 갖지 못한 희귀한‘단일 민족’이다.그렇다고 서울이라는 말이 무의미해진 것일까?어떤 사람들에게는 하느님도 부처님도 ‘돈 신 神’에 접근하기 위한 중간 신일 뿐이다.자본주의 시대의 신, 物神은 다른 여러 신들을 휘하에 거느린 최고신이 되어 있다.오늘날의 서울은 물신의 도시이며,서울 시민들은 그 물신의 은총 속에서 한국의 다른 도시,다른 지방 사람들이 넘볼 수 없는 특권을 누리며 살고 있다.서울은 중세적 중앙집권국가에서 유교적 王神의 도시로 만들어졌지만,왕신이 그 현실적.상징적 권위를 완전히 상실한 뒤에도 새로운 종교의 성지로 변신하는 데 성공했다.신이 바뀐 뒤에도 살아남은 신시는 마치 佛堂을 개조한 교회처럼 어색하지만, 그 어색함을 직시하는 것이야말로 서울을 제대로 이해하는 단서를 열어줄 것이다.”
(본문20-21쪽)
바로 말해요 망설이지 말아요
내일 아침이 아니에요 지금이에요
바로 말해요 시간이 없어요
사랑한다고 말해요
좋았다고 말해요
보고 싶었다고 말해요
해가 지려고 해요 꽃이 지려고 해요
바람이 불고 있어요 새가 울어요
지금이에요 눈치 보지 말아요
(말아요/나태주의 시집‘사랑만이 남는다’에서)
행복한 봄날 보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