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책소개
우리는 왜 어머니를 숭배하고, 또 미워하는가
모성에 대한 관점을 전환하는 페미니즘 필독서
‘맘충’ 논란에서 볼 수 있듯, 가부장제 사회에서 모성은 손쉬운 비난과 숭배의 대상이다. 어머니들은 완벽해야 하고, 그렇지 못하면 자녀의 실패(뿐 아니라 가정의 모든 실패)에 대해 책임을 요구받는다. 이러한 모성 신화를 예리하게 비판해낸 『숭배와 혐오』(Mothers: An Essay on Love and Cruelty)가 출간되었다. 저자 재클린 로즈(Jacqueline Rose)는 페미니즘, 정신분석, 문학을 오가는 글쓰기 작업으로 저명한 작가이자 페미니스트 학자로, 『숭배와 혐오』는 한국에 처음 소개되는 저서다.
재클린 로즈는 모성에 대한 서구 이론가들의 연구와 데이터를 망라해 어머니가 사회적으로 어떤 대우를 받는지, 어머니가 아이에게 실제로 무엇을 느끼는지, 어머니로 산다는 것이 어떤 경험인지 탐구한다. 그리고 어머니가 공적 영역에서 배제된다는 페미니즘의 익숙한 주장에 하나의 차원을 더한다. ‘숭고한 모성’의 신화를 믿지 않고도 낯선 이를 품어 키운다는 확장된 모성의 가능성을 탐색함으로써 어머니가 된다는 개인적 경험을 사회적으로 확장할 수 있다는 것이다. 페미니스트로서 어머니가 된다는 것에 대해 고민하는 독자라면 로즈의 분석에서 유의미한 통찰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여성주의와 인간의 조건, 문명사를 연결하는 고전”(정희진)으로, 모성에 대한 관점을 전환하는 페미니즘 필독서라 할 만하다.
👩🏫 저자 소개
재클린 로즈 Jacqueline Rose
페미니즘, 정신분석, 문학을 오가는 글쓰기 작업으로 널리 알려진 작가이자 페미니스트 학자. 현재 런던대학교 버벡 칼리지에 인문학 교수로 있다. 대표작으로 『실비아 플라스의 유령』(The Haunting of Sylvia Plath), 20세기의 선구적 페미니스트들을 다룬 『암흑시대의 여자들』(Women in Dark Times)과 소설 『알베르틴』(Albertine) 등이 있다.
🖋 출판사 서평
모성 신화에 맞서는 어머니들
어머니는 페미니즘의 역사에서 상대적으로 홀대받아온 영역으로, 비교적 최근에야 ‘모성 연구/어머니 연구’(motherhood studies)라는 독립적인 연구 분야가 자리 잡게 되었다. 어머니 연구의 관심은 섹슈얼리티의 문제부터 평화, 종교, 제도, 문학, 일, 대중문화, 보건, 돌봄, 인종, 종족성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주제를 망라한다. 페미니즘은 ‘제도’로서의 모성과 ‘경험’으로서의 모성을 구분해 한편에서는 제도화된 모성의 신화를 해체하는 동시에 다른 한편에서는 모성의 경험을 페미니즘적으로 전유하는 이중의 작업을 수행하고 있다. 두 작업은 서로 긴밀히 연결될 수밖에 없지만, 굳이 구분하자면 이 책은 후자에 가깝다고 볼 수 있다.
이 책은 시간적으로는 고대 그리스 시대부터 21세기 현대까지, 공간적으로는 유럽과 미국에서 남아프리카공화국과 시리아까지, 또 장르적으로는 그리스비극과 셰익스피어의 극, 근현대 소설과 시와 같은 본격문학에서 영화, TV 드라마, 만화, 뮤직비디오 같은 대중문화까지 아우르며 다양한 모성 경험을 해부한다. 이는 하나같이 가부장제하 모성의 이상 아래 고통받으면서도 그에 맞서 욕망하고 싸우는 어머니들의 “고통과 희열”을 보여주는 기록들이다. 로즈는 이 기록들을 통해 “어머니는 본성상 체제 전복적이며, 한번도 겉보기나 세상의 기대치와 일치했던 적이 없다”(30면)는 점을 상기시킨다.
우리는 모두 여자에게서 태어난 인간이다
로즈의 모성 연구의 또다른 특징은 모성의 신화를 요구하고 유지하는 사회 정치적 기제에 대한 분석보다 오히려 그 심연에 자리한 무의식적인 심리작용에 대한 탐색에 주안점을 둔다는 점이다. 그가 일관되게 지적하는 것은 우리 시대에 어머니는 공적·정치적 세계에서 배제된 존재라는 점이다. 그러나 어머니가 가정을 벗어나 공적 세계의 당당한 일원이 되어야 한다는 익숙한 주장과는 거리가 멀다. 모성에 대한 숭배와 혐오라는 우리의 이중적 태도가 단순히 평등이나 권리 회복으로 해결할 수 없는, 훨씬 더 뿌리 깊은 대립에 기초한다는 분석이 로즈의 모성 연구가 차별화되는 지점이다.
로즈는 영국에서 매년 자그마치 5만 4천명의 여성이 임신했다는 이유로 일자리를 잃고 있으며 새로 어머니가 된 여성 중 77퍼센트가 일터에서 차별과 모욕, 고용인과 국가에 짐이 된다는 암시 등 부정적 대우를 경험했다는 통계를 제시하며 신자유주의의 모성 혐오를 지적한다. 물론 이는 신자유주의의 무자비한 이윤 추구와 긴밀히 관련되어 있지만 그 아래에는 무의식적 혐오가 개입되어 있다는 점에 초점을 맞춘다. 그에 따르면 어머니와 모성에 대한 가학증과 혐오의 바탕에는 자신에게 의존적 시기가 있었다는 것을 부정하려는 무의식적인 두려움과 공포가 자리한다. 완벽한 자족이라는 이상을 소리 높여 외치는 우파 정치인이 난민, 가난한 어머니, 싱글맘을 향해 더 가혹한 잣대를 들이대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다시 말해 어머니는 우리 모두가 ‘여자에게서 태어난 인간’임을 환기함으로써 우리가 자족적이며 독립적인 개인이라는 믿음, “우리의 몸은 우리의 재산이며 우리의 마음은 우리의 의지에 종속”된다(211면)는 근대적 믿음을 흔드는 존재다. 그래서 사회는 어머니의 육체를 공적 영역에서 지우고자 한다.
어머니 되기란 낯선 이를 사랑하는 것
로즈는 어머니 경험을 가장 진실하게 그려낸 작품으로 엘레나 페란떼의 ‘나뽈리 4부작’을 꼽으며 많은 분량을 할애한다. 페란떼의 세계에서 묘사되는 어머니들은 이상적인 모성과는 정반대다. 모녀 관계는 불편하기 이를 데 없고, 임신은 자신과 타인의 경계가 허물어지는 경험이다. 아이들은 어머니들에게 버림받고 잊히기 일쑤이며 어머니가 남자를 만나는 데 이용되기도 한다. 페란떼는 어머니의 진솔한 감정과 욕구를 전면에 드러냄으로써 가부장제 사회의 잘못을 까발린다. 로즈는 페란떼의 소설에 드러난 모성의 양가성(사랑이자 잔인함)을 온전히 받아들여야만 모성 신화를 깨뜨릴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그럼으로써 사회가 외면하고자 했던 우리의 본래적 취약성을 끌어안고, 새로운 윤리의 길을 탐색할 수 있다는 것이다.
로즈는 보부아르와 크리스떼바 등 전 세대 페미니스트의 뒤를 이어 새로운 차원의 어머니 되기를 제안한다. 즉 ‘숭고한 모성’의 신화를 넘어서서 모성을 ‘자기 아이’가 아닌 ‘타인’의 행복을 바라는 일로 생각함으로써 확장된 차원에서 ‘어머니 되기’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럴 수 있다면 ‘우리 가족’은 더이상 넓디넓은 세상에서 필사적으로 사수해야 하는 유일하게 중요한 것이 아니게 된다. 로즈는 미 행정부의 잔혹한 이민 정책과 강제 추방 조치에 항의하고 이들에게 정의와 연민을 보여줄 것을 요구한 어머니들의 운동(맘스라이징)을 예로 들며 자기 가족만을 바라보는 모성애가 아니라, 타인을 위해 행동할 수 있는, 그럼으로써 다시 사적 영역과 공적 영역을 통합하는 모성의 가능성을 논한다.
행동하는 지식인, 재클린 로즈
재클린 로즈는 한국 독자들에게는 낯선 이름이다. 학술 논문에 간간이 인용되었을 뿐, 그의 사상의 전모가 소개되거나 분석의 대상이 된 적은 없으며 또 그의 저작이 한국어로 번역된 것도 이번이 처음이다. 서구 학계와 지성계에서 그가 차지하는 위상을 고려할 때 상당히 이례적이다. 연구자이자 이론가로서 그의 성취가 가장 돋보이는 영역은 정신분석과 페미니즘으로, 전통적으로 남성 중심적이라고 간주되어온 정신분석의 재해석을 통해 정신분석의 페미니즘적 수용을 주도했으며, 영미 페미니즘의 정신분석적 전환을 촉발한 인물로 평가받는다.
로즈는 또한 유럽뿐 아니라 전 세계의 긴급한 이슈에 대해 적극적으로 개입해온 활동가이기도 하다.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정책, 미국의 이라크 침공과 남아프리카공화국 ‘진실과 화해 위원회’와 같은 거대한 지구 정치적 이슈에서부터 수치와 트라우마 등 개인의 내밀한 심리적 이슈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쟁점에 대해 발언하고 있다. ‘개인적인 것이 정치적인 것’이라는 페미니즘의 원칙을 실천하며, 행동하는 지식인의 본보기를 보여주는 인물이다.
『숭배와 혐오』에서 로즈가 제시하는 모성에 대한 새로운 관념은 “국가 간, 개인 간 경계를 견고히 하며 스스로를 돌보고 확고하게 지키는 것만이 우리의 가장 중요한 윤리적 의무라고 소리 높여 외치는 목소리”(16면)가 점점 커져가는 이 시대에 깊은 울림을 준다. 풍부하고 흥미로운 레퍼런스와 예리한 통찰과 모순을 짚어내는 탁월한 능력으로 많은 시사점을 던진다. 어머니가 된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탐구하고 싶은 페미니스트 독자는 물론, 일반 독자에게도 권할 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