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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0.6(주일) 욥기 40:1~24 ‘이해가 안되는 사건 앞에서’ 예산수정교회
우리는 때때로 세상을 이해하려고 노력하지만, 세상은 너무나 광대하고 복잡하여 우리의 지식으로는 감당하기 어려울 때가 많습니다. 특히 고난과 같은 어려운 상황에 직면했을 때, 우리는 세상의 불공정함과 나의 무력함을 느끼며 좌절하기도 합니다. 오늘 본문에서 하나님은 욥에게 자신의 위대하심을 보여주시며, 인간의 유한함을 일깨워주십니다. ‘이해가 안되는 사건’ 앞에서 과연 나는 어떤 사람이고, 어떤 삶을 살아야 할까요? 오늘 본문 말씀을 통해서 살펴보기를 원합니다.
1. 하나님을 탓하는 자입니다(1~5절).
본문은 고난 속에서 하나님을 향해 불평하고 원망하는 욥에게 하나님께서 직접 응답하시는 장면입니다. 하나님은 욥에게 그의 견해가 얼마나 부족하고 어리석은 지를 일깨워 주시며, 자신과 다툴 수 있는 존재가 아니라는 것을 명확히 하십니다. 욥과 같이 고난 중에 있는 우리 속에 일어나는 모든 원망과 불평의 마음 속에는 ‘하나님이 내게 이러시면 안되지’라는 생각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욥이 지금까지 많은 말을 쏟아놓은 것도 하나님이 잘못하신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이런 욥을 향하여 2절에 “트집잡는 자가 전능자와 다투겠느냐 하나님을 탓하는 자는 대답할지니라”고 말씀하시면서 욥을 ‘하나님을 탓하는 자’로 규정하고 계십니다. "
개역개정 성경: "트집 잡는 자가 전능자와 다투겠느냐 하나님을 탓하는 자는 대답할지니라"
이 번역은 욥이 하나님께 트집을 잡고 다투는 것처럼 보인다는 점을 강조합니다.
새 번역: "트집을 잡는 자가 전능하신 분과 다투겠느냐? 하나님을 탓하는 자가 대답할 수 있겠느냐?"
개역개정과 유사하게 욥의 행동을 비판적으로 바라보며,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강조합니다.
공동번역: "반항하는 자가 전능하신 하느님과 맞설 수 있겠느냐? 하느님을 비난하는 자가 대답할 수 있겠느냐?"
욥의 행동을 '반항'이라고 표현하여 더 강한 어감을 주고, 하느님의 위엄을 강조합니다.
현대인의 성경: "하나님께 뭐라고 떠들어 대는 자가 감히 전능하신 하나님과 맞설 수 있겠느냐?"
욥의 행동을 '떠들어 대는'이라는 표현으로 더욱 구체적으로 표현하며, 하나님의 위엄을 강조합니다.
NIV (New International Version): "Can anyone who contends with the Almighty and goes unpunished? Can anyone who challenges God to a lawsuit?"
'contends with' (다투다), 'challenges to a lawsuit' (소송을 걸다) 등의 표현을 사용하여 욥의 행동을 법정에서 소송을 거는 것처럼 비유하며, 하나님의 권위를 강조합니다.
“트집 잡다, 반항하다, 떠들어 대다”라는 표현은 욥이 하나님의 뜻에 불평하고 의문을 제기하는 행위를 다양한 표현으로 나타냅니다.
“다투다, 맞서다, 소송을 걸다”는 표현은 욥이 하나님과 대등한 위치에서 논쟁을 벌이는 듯한 모습을 비유적으로 표현합니다.
그러므로 각 번역본은 "하나님을 탓하는 자"라는 표현을 통해 욥의 행동을 비판하고, 하나님의 전지전능하심과 인간의 유한함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탓하는 자"(2절)라는 표현은 단순히 하나님을 비난하는 것을 넘어, 자신의 고통에 대한 해답을 하나님에게서만 찾으려는 인간의 오만함을 드러냅니다. 욥은 고난 속에서 의로운 자신이 왜 고통받아야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고, 하나님께 그 이유를 묻고 따졌습니다. 이는 마치 전지전능하신 하나님께 자신의 기준으로 판단을 요구하고, 자신이 옳다고 주장하는 것과 같습니다. 이러한 욥의 태도는 우리 자신에게도 투영될 수 있습니다. 우리는 고난이나 어려움에 직면했을 때, 왜 나에게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 묻고, 하나님께 불평하거나 원망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마치 하나님께서 우리의 고통에 책임이 있는 것처럼 생각하며, 자신만의 정의로운 기준으로 하나님을 판단하려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전지전능하시고 모든 것을 아시는 분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계획과 뜻을 온전히 이해할 수 없으며, 우리의 시각으로 하나님을 판단할 수 없습니다. 우리에게 하나님 앞에서 겸손해야 한다는 것을 가르쳐줍니다. 우리의 고통은 우리의 유한함과 불완전함에서 비롯된 것이며,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모든 것을 아시고 가장 좋은 길로 인도하십니다. 적용) 나의 죄와 잘못을 보지 못한 채 하나님을 탓하고 있는 것은 무엇입니까?
2. 하나님처럼 높아지려는 교만한 자입니다(6~14절).
본문은 욥이 자신의 고난에 대한 불평과 의문을 제기한 후, 하나님께서 직접 응답하시는 장면입니다. 욥은 의로운 자신을 고난에 처하게 하신 것은 하나님의 불공평한 일이라고 불평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욥이 그 분을 판단하려고 시도한 것에 그의 능력을 입증해 보이라고 요구하십니다. 하나님은 욥에게 8,9절의 질문은 통하여 그의 무지와 교만을 드러내시며, 자신과 비교할 수 없는 존재임을 강조하십니다. 욥은 자신이 고난을 받을 만한 어떠한 잘못도 저지르지 않았다고 주장하며, 자신의 의를 강조했습니다. 이는 곧 하나님의 판단에 의문을 제기하고, 자신이 더 정의롭다고 생각하는 교만한 태도입니다. 욥은 하나님께 질문하고 논쟁하며, 마치 하나님과 동등한 위치에서 대화를 나누려고 합니다. 이는 인간이 하나님과 같은 존재가 될 수 있다는 오만한 생각을 드러냅니다. 하나님은 욥에게 세상의 모든 만물을 다스리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를 보여주며, 욥의 교만을 깨뜨립니다(11~14절). 이는 욥과 같이 모든 인간이 스스로가 세상 모든 것을 이해하고 통제할 수 있다는 허황된 꿈을 가지고 있음을 시사합니다.
성경은 교만을 죄악으로 여기며, 교만한 자의 멸망을 경고합니다. 교만은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고, 다른 사람을 무시하며, 결국에는 파멸로 이어지는 위험한 죄입니다. 성경에서 교만에 대한 경고는 다음과 같은 주제로 나타납니다.
1) 하나님을 향한 교만: 자신을 하나님과 동등하게 여기거나,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는 것
2) 사람을 향한 교만: 다른 사람을 업신여기고, 자기 자신을 과대평가하는 것
3) 물질을 향한 교만: 물질적인 소유를 자랑하고, 그것에 의지하는 것
4) 지식을 향한 교만: 자신의 지식을 자랑하고, 다른 사람을 무시하는 것
성경 속에 나타난 교만의 사건들을 우리는 볼 수 있습니다.
1) 바벨탑 사건: 인간이 하늘에 닿는 탑을 쌓아 하나님과 같이 되려 했던 사건은 인간의 교만이 가져오는 파멸을 보여줍니다.
2) 사울 왕: 이스라엘의 첫 번째 왕인 사울은 하나님의 명령을 거역하고 스스로 제사를 드림으로써 교만에 빠졌고, 결국 왕위를 잃게 되었습니다.
3) 바리새인: 예수님 당시 바리새인들은 율법을 지킨다고 자랑하며 다른 사람을 업신여겼고, 예수님을 배척했습니다.
교만이 가져오는 결과를 살펴보면,
1) 하나님과의 단절: 교만은 하나님을 향한 겸손한 마음을 잃게 하고, 하나님과의 관계를 단절시킵니다.
2) 타인과의 갈등: 교만한 사람은 다른 사람을 무시하고 비난하며, 관계를 파괴합니다.
3) 자신의 파멸: 교만은 결국 자신을 파멸로 이끌게 됩니다.
그러면 현대 사회에서의 교만은 어떤 형태로 나타날까요? 현대 사회에서도 교만은 다양한 형태로 나타납니다. 물질적인 성공, 사회적인 지위, 지식 등을 자랑하고 다른 사람을 무시하는 태도는 모두 교만의 한 형태입니다. 우리는 끊임없이 자신을 돌아보고, 교만한 마음을 버리고 겸손하게 살아가야 합니다.
적용) 하나님께 도전하면서 그 분을 거부하는 나의 교만은 무엇입니까?
* 치과의사였지만, 아내와 딸의 암으로 인해 자신의 교만을 깨닫고 주님께로 돌아온 이승근 님의 큐티인 간증입니다.
[고난을 만나야 했던 이유] [이승근, 큐티인 묵상간증]
저는 안정적으로 잘살고자 치과대학에 진학했습니다. 이후 믿는 아내와 결혼하여 치과를 개원했지만, 돈의 노예가 되어 음란을 즐기다가 불륜과 낙태의 죄를 지었습니다. 이로 인해 아내는 큰 상처를 받았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습니다. 사람과 관계 맺는 것이 서툰 저는 환자는 물론 직원들과의 소통도 힘들어 치과 운영에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그래서 부동산투자와 다단계에도 손을 대보았지만 더 큰 손해만 입었습니다.
그러나 아내가 난소암 진단을 받고 수술과 항암치료를 받았습니다. 그런 와중에도 저희 부부는 세상 욕심으로 자기 의를 세우고자 대출을 받아 치과를 옮겨 개원했습니다. 하지만 몇 년 후, 인간관계가 안되는 저의 근본적인 문제 때문에 빚만 진 채 폐원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2주 뒤 하나님은 교만한 저를 낮추시고자 고3인 외동딸이 대장암에 걸린 사실을 알게 하셨습니다. 눈처럼 쌓인 빚과 아내와 딸 모두 암이라는 현실 앞에 저의 삶의 의지가 모두 꺾였습니다. 처음에는 내 인생을 이렇게 가혹하게 몰아치시는 하나님이 원망스러웠습니다. 하지만 공동체에 속해 있다 보니 고난이 축복이 되어 예배와 소그룹 모임을 사모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소그룹 모임에서 지체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내가 얼마나 관계 맺기가 안 되고 나 밖에 모르는 이기주의자인지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동안 제가 지은 악하고 음란한 죄를 소그룹에서 모두 고백하고 진심으로 회개기도를 드렸습니다. 이렇게 사건이 말씀으로 해석되고 내 죄를 보게 되니 아내와의 관계도 조금씩 회복되었습니다.
만약 제가 아내와 딸의 암이라는 고난을 만나지 않았다면, 저는 교만하게 하나님을 탓하다가 지옥에 갔을 인생입니다(2절). 그러나 베헤못을 지으셨듯이 저를 지으신 하나님은 빚과 암으로부터 저와 우리 가정을 구원해주셨습니다(15절). 할렐루야!! 적용) 아내가 부탁하는 일을 토 달지 않고 하겠습니다. 동네 이웃들을 무뚝뚝하게 대했는데, 앞으로는 친근하게 대하며 [큐티인]을 전하겠습니다.
3.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는 인생입니다(15~24절).
하나님은 욥에게 ‘베헤못(15절)이라는 거대한 생물을 보여주며, 인간의 한계와 하나님의 무한한 능력을 대비시킵니다. 베헤못은 물가에 살면서 몸집이 크고 힘이 센 동물인 하마, 코끼리, 물소 등을 가리키는 데요. 개역한글 성경에는 ’하마‘, 현대인의 성경에는 ’하마처럼 생긴 괴물‘로 번역되었습니다. 이를 통해 하나님은 욥에게 자신을 의지하지 않고 스스로 해결하려는 태도가 얼마나 어리석은 것인지를 일깨워줍니다. 비록 풀을 먹지만 강한 힘 때문에 인간이 통제하지 못하는 ’베헤못‘(하마)의 위용을 통해 하나님은 그 분의 ’절대주권과 인간의 한계‘를 보여주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창조하신 피조물도 감당하지 못하는 인간이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이 얼마나 미련한 짓인지를 지적하십니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은 욥의 어리석음을 깨우치려는 ’하나님의 열정‘(God's fervor for His people)입니다. 사람이 아무리 강해도 들짐승조차 이기지 못하는 연약한 존재임을 상기시키는 것입니다.
인간은 완전한 존재가 아닌, 다양한 측면에서 연약함을 가진 존재입니다. 이러한 연약함은 단순히 물리적인 약함을 넘어, 우리의 삶 전반에 영향을 미치는 심리적, 정신적인 부분까지 포괄합니다.
첫째, 인간은 신체적 연약함을 갖고 있습니다.
1) 질병과 노화: 인간은 질병에 취약하며, 시간이 지남에 따라 노화되어 신체 기능이 저하됩니다. 작은 감기부터 심각한 질병까지, 우리는 언제든지 병에 걸릴 수 있으며, 노화는 피할 수 없는 자연의 법칙입니다.
2) 외부 환경에 대한 취약성: 추위, 더위, 자연재해 등 외부 환경의 변화에 취약하게 반응하며, 이러한 변화에 적응하는 데 어려움을 겪을 수 있습니다.
3) 제한된 신체 능력: 인간은 다른 동물에 비해 뛰어난 지능을 가지고 있지만, 육체적인 힘이나 속도는 제한적입니다.
3) 죽음: 모든 생명체는 죽음을 맞이해야 합니다. 인간 역시 죽음이라는 불가피한 현실 앞에서 두려움과 불안을 느끼며 살아갑니다.
둘째, 인간은 정신적 연약함을 갖고 있습니다.
1) 감정의 기복: 인간은 기쁨, 슬픔, 분노, 두려움 등 다양한 감정을 느끼며 살아갑니다. 이러한 감정들은 때로는 우리를 힘들게 하고, 불안정한 상태로 만들 수 있습니다.
2) 불안과 스트레스: 현대 사회는 경쟁이 심하고 불확실성이 높아 많은 사람들이 불안과 스트레스를 느끼며 살아갑니다.
3) 고독감: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지만, 때로는 고립되고 외로운 느낌을 받을 수 있습니다.
4) 불완전함에 대한 자괴감: 인간은 완벽하지 못하고 실수를 저지르기 때문에, 자신을 비난하고 자책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5) 의미에 대한 갈망: 인생의 목적과 의미를 찾지 못하고 방황하며, 허무함을 느낄 수 있습니다.
이렇게 인간의 연약함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이 중요한 이유는
1) 자기 자신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됩니다. 자신의 연약함을 인정함으로써 자신을 더 잘 이해하고, 건강한 자존감을 형성할 수 있습니다.
2) 타인과의 관계 개선에 도움이 됩니다. 다른 사람들도 자신과 마찬가지로 연약한 존재임을 이해하고, 서로를 공감하고 배려할 수 있습니다.
3) 하나님께 더 가까이 나아가는 계기가 됩니다. 자신의 연약함을 인정하고 하나님의 도움을 구할 때, 더욱 깊은 신앙생활을 할 수 있습니다.
우리 인간은 오직 하나님을 의지하도록 창조되었습니다. 그런데 에덴동산의 아담과 하와의 타락으로 이런 것을 상실하게 되었지요. 그러나 우리는 우리의 중보자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을 의지함을 회복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의지하는 인생으로 삶을 살아갈 때 진정으로 행복한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의지하는 인생의 특징을 간단히 살펴보면,
1) 하나님을 의지하는 인생은 어려움 속에서도 믿음을 잃지 않습니다. 욥은 모든 것을 잃었지만, 하나님을 향한 믿음을 굳게 지켰습니다(욥기 1장). 욥기 1:21에 “내가 빈손으로 모태에서 나왔사오니 빈손으로 거기로 돌아가리이다 주신 이도 여호와시요 거두어 가신 이도 여호와시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 것이니이다” 2) 하나님을 의지하는 인생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합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부르심에 순종하여 낯선 땅으로 떠났습니다(창세기 12장). 3) 하나님을 의지하는 인생은 하나님의 뜻을 구합니다. 다윗은 어려운 상황에서도 하나님께 기도하며 지혜를 구했습니다(사무엘상 23장). 다윗은 죄를 지었음에도 불구하고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아와 용서를 받았습니다. 4) 하나님을 의지하는 인생은 고난 중에서도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바울은 감옥에서도 하나님께 감사하며 찬송했습니다(빌립보서 4장).
하나님을 더욱 깊이 신뢰하고 의지하는 것은 하루아침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꾸준히 노력하고, 인내하며, 하나님과의 관계를 소중히 여기는 것이 중요합니다.
"너는 마음을 다하여 여호와를 신뢰하고 네 명철을 의지하지 말라 범사에 그를 인정하라 그리하면 네 길을 지도하시리라." (잠언 3:5-6)
하나님을 의지할 때 우리는 비로소 진정한 자유와 평안을 얻을 수 있습니다.
적용) 하나님이 지으신 피조물을 보면서 나의 한계와 연약함을 깨달은 적이 있습니까? 현재 내가 의지하고 있는 것은 무엇입니까?
결 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욥처럼 이해할 수 없는 고난을 경험할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 우리는 왜 나에게 이런 일이 일어나는지 의문을 품고 하나님을 원망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욥기 40장은 우리에게 중요한 교훈을 줍니다. 바로 하나님의 섭리는 우리의 이해를 뛰어넘는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나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을 다 알 수 없지만, 하나님을 신뢰하고 의지할 때 평안을 얻을 수 있습니다. 비록 지금은 어둠 속에 있더라도, 전능하시고, 나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손을 붙잡고 나아가면 반드시 빛을 보게 될 것입니다.
고난은 우리를 힘들게 하지만, 동시에 자신의 한계를 깨닫고 겸손해질 수 있는 기회가 되며, 하나님을 더욱 의지하고 신뢰하게 되는 계기가 되며, 인생의 우선순위를 재정립하고 진정한 가치를 깨닫는 시간이 될 수 있습니다. 욥의 고난은 그를 더욱 깊은 신앙으로 이끌었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로 고난을 통해 하나님을 더욱 가까이 알아가고, 신앙이 성숙해질 수 있습니다. 내 삶에 일어나는 ‘이해가 안되는 사건 앞에서’ 하나님을 탓하거나 교만하여 자신을 의지하지 말고, 이제부터는 모든 것을 다 알 수는 없지만, 하나님과 그 분의 계획을 신뢰하고 의지하며 살아갑시다.
“나의 가는 길을 오직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정금같이 나오리라”(욥23:10).
내 생각과 판단을 내려놓고, 100% 옳으신 하나님을 신뢰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