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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참불교공부 일타스님 發心修行章강의 중에서 2007.02. ~~~
高嶽峨岩은 智人所居요
碧松深谷은 行者所捿니라.
고악아암은 높은 곳이고, 벽송심곡은 깊은곳 이라는 말이지요. 저 높이 붙은 암자. 토굴이 고악아암 이고, 벽송심곡은 깊숙한 산골짝에 들어앉아 있는 암자. 토굴입니다.
높은 뫼푸리. 높은 바윗돌은 지인소거라. 지혜로운 사람이 거 할 바다.
푸른 솔 깊은 골짜기는 수행하는 자가 깃들일 판이라. 이랬거든요.
사람이 높은 데 올라가면 시원한 맛이 나거든요.
浩然之氣라고 저 높은 데서 내려다보면 가슴이 툭 트이고, 호연지기와 자적지정이라고, 스스로 턱 하니 泰然自若한 생각이 우러난다 이 말입니다.
누구든지 등산하기를 좋아하고 올라갈 때는 힘들지만, 높이 올라가서 내려다보면 眼界가 툭 트임에 따라서 마음이 환해지니까 견문이 넓은 지혜 있는 사람이 높은 데서 살기를 좋아하는 것이다.
벽송심곡. 푸른 솔 깊은 골짜기는 松風落月에 逍遙自在하는 경지니까 솔바람 소리를 들어가며 칡의 넝쿨 속에 달이 비치는 그런 곳에 떡 하니, 아늑하니 들어앉아서 마음이 흐트러지지 아니하게 수행을 한다 이 말이지요.
도솔천내원궁이 있다 그랬는데, 도솔천내원궁은 말세의 중생들이... 말세 불자들이 참선 수행을 부지런히 잘 한다면 모두 도솔천내원궁에 가서 태어난다. 그랬어요. 미륵상생경에 보면... 도솔천내원궁에는 미륵보살이 계신다. 그랬거든요. 當來下生 미륵보살이 거기에 계시는데, “미륵”이라고 하는 말은 원명이“마이뜨리아”인데요. 미래의 부처님이라는 뜻입니다.
마이= 來. 뜨리아= 뜨도 아니고, 쓰도 아닌 발음인데 기독교에서 말하는 메시아와 똑같은 뜻이고, 미륵이라는 말 입니다. 기독교에서 메시아.= 불교에서 미륵. 미래 세상에 세상을 구원하는 성자다. 이런 뜻이거든요.
미래의 부처님 = 미래의 성자.
도솔천내원궁에 미륵부처님이 계시는데요.
참선을 애써한 사람은 내원궁에 가서 태어나고, 그렇지 않은 사람은 외원궁에서 들락날락한다고 그랬거든요. 그래서 이조시대의 아미타불 정토신앙 이후에, 미륵신앙이 성행할 때에, 모든 스님네들이 극락세계에 가서 태어나는 것은 사바세계를 떠나서 완전히 아미타불 밑에 가서 연화수 생활을 하는 것이고, 금생에 참선을 했으니까 이왕이면 바로 그냥 도솔천에 가서 태어나서 미륵불이 하생할 때에 상수제자로 태어나겠다. 이런 원력들을 가지고 “미륵존 불”을 많이 불렀어요.
그러면서 우리나라에“미륵암”“도솔암”도솔이라는 말이“知足”이라는 뜻입니다. 모든 것을 만족한 줄 알고 산다는 말입니다.
“아이고 이만하면 만족하다” 부족 하지만 항상 만족한줄 알고 사는 사람은 도솔천에 가서 태어난다는 겁니다. 맨 날 부족하기만 한 사람은 도솔천에 가서 태어나지 못한답니다. 모든 것을 만족하게 알아서 알뜰하게 살고, 복을 아끼고 지혜를 닦는 사람은 다 도솔천에 가서 태어난다는 겁니다.
거기에서 또 복을 지으면서 참선을 떡 해서 지혜를 닦는 사람은 내원궁에 가서 태어난다고 그랬거든... 그래서 우리나라에 그렇게“도솔암”이 많고 “내원암”이 많고 그래요. 큰절마다 도솔암. 내원암 은 다 있어요. 해인사에도 도솔암. 내원암이 있고, 범어사에도 내원 암이 있거든요.
도솔암은 저 위에 “미륵암=“도솔암”이지요. 같은 얘기입니다. 통도사에도 내원사가 있는데 내원사가 “내원암”입니다. 저 위에 “백운암”이 바로“미륵암”이지요.
우리나라에 용화사. 다솔사가 전부 다 미륵부처님하고 관계되는 겁니다. “다솔사”라고 하는 말도 “도솔사”와 같은 얘기입니다. “도솔암”이라는 뜻이지요. 큰 것은 “寺” 라고 하고, 작은 것은 “庵”이라고 합니다. 전라도 쪽은 도솔암. 내원암이 많지요.
우리나라에 내원암 숫자가 수십 개 될 겁니다.
“도솔암”을 도솔암이라고 하는 데도 있고, 지족암이라고 하는 데도 있고, 미륵암이라고 하는 데도 있고, 용화사라고 하는 데도 있고, 다솔사라고 하는 데도 있고, 여러 가지 있는데 전부 다 같은 소리입니다.
그래서 ●높은 곳은 “도솔암”이고, 낮은 곳, ●깊숙한 골짜기에 있는 것은 “내원암”입니다. 우리나라도 지형을 따라서 깊수룩한 골짜기 속에 있으면 “내원암”이라고 합니다. 안방에 들어앉았다고...
碧松深谷은 行者所捿니라. 벽송심곡은 “내원암”이라는 얘기지요.
“도솔암”은 바윗돌이 뾰쪽뾰쪽 하잖아요? 高嶽峨岩 이라는 얘기지요. 약수 암 같은 데는 내원인 셈이지요. 벽송심곡이니까요.
행자라는 말은 수행하는 자 라는 말이거든요,
왜 이와 같이 산 속에서 살아야 되느냐?
禪을 닦기 위해서는 산이 필요한 겁니다.
●안의 실속을 차리기 위해서는 ●겉에 모든 외면 환경도 거기에 상응해야 되거든요. 맞아야 된다고요. 우리가 비단옷을 입고 금반지를 끼고, 장식을 하는 것이 남 보라고 하는 것인데요. 그렇게 호화스럽게 하고 산다면 유혹도 많을 것이고, 세상에 사는데 재산도 필요하고 모든 권속들...
온갖 번뇌 망상에 많이 시달리게 되거든요.
그런 것을 다 떠나서 수도하는 사람에게 상응하도록, 수도하는 사람에게 맞도록 하기 위해서는 세속을 버리고 산 속으로 들어가야 됩니다.
집에서 중노릇 할 수 있어? 마을에서는 못 한다고. 어쨌든지 마을에서는 중노릇 할 수가 없고. 또 마을에서는 중노릇한 사람도 없고...
마을에서. 자기 집에서 중노릇한 사람이
세상천지에 어디 있나?
잘 먹고 잘 입고, 편안하고 아주 오욕락을 즐기면서 중노릇 잘한 사람이 없어. 도인된 사람이 하나도 없어 지금까지... 먹고 싶은 것 안 먹고, 갖고 싶은 것 안 갖고, 하고 싶은 것 안 하고, 이렇게 고행수도 해서 다 도인이 됐지, 먹고 싶은 것 다 먹고, 하고 싶은 것 다하고, 갖고 싶은 것 다 갖고서 도인된 사람은 역사이래로 하나도 없습니다.
그렇게 해서 될 수 있다면 부처님은 왜 출가했겠어요? 왕궁에서 삼천궁녀 거느리고 성불하지...
그렇게 안 되기 때문에 부처님도 다 踰城出家하신 겁니다. 설산으로...
선을 닦기 위해서 산으로 들어가더라.
도를 닦기 위해서 돈을 버리고 산속으로 들어가더라.
법을 배우기 위해서 잘 먹는 밥을 그만 딱 버렸더라.
굶어 죽지 않을 정도로만 먹고...
잘 먹고 잘 입는 그런 밥을 버렸더라.
법과 밥. ←(홀소리 ㅓ. ㅏ.)
도와 돈. ←(닿소리 ㄴ을 빼고 넣고)
선과 산. ←(홀소리 ㅓ. ㅏ.)
이렇게 漢文도 國文도 다 대조가 되는 겁니다.
飢餓木果하야 慰其飢腸하고
그렇지요. 깊은 산속에 들어가면 뭐 먹을 것이 있나요?
먹을 것이 없거든요. 이 높은 산꼭대기에 옛날에 이 신작로길 아니 났을 때, “가야동”이라는 마을도 있는 둥 마는 둥 하고, 옛날에는“야로”가 조금 큰 동네입니다.
노스님이 서별당에 살 때, 서별당이 초가지붕이거든요. 초가지붕에 짚을 이으기 위해서 새벽 3시에 예불하고 나서, 밥한 술 삶아먹고 바랑끈을 길게 두 개를 해서 둘러메고, “야로”까지 걸어갑니다. 야로에 가서 짚을 10단 얻고서, 그것을 짊어지고 꾸벅꾸벅 집에 오면 저녁 때 됩니다. 한숨 곯아떨어지고 자고서는 또 가는 겁니다.
큰 스님은 주무시고 날마다 새벽에 바랑지고 또 갑니다. 그렇게 열흘이나 보름을 져다가 그것으로 지붕하고 그랬대요. 얼마나 살기가 어려웠습니까?
더군다나 이 도솔암 같은 데는 20년 전만 하더라도 내가 오기 전에는 오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밥해먹기 싫으니 큰 절에 가서 밥한 그릇 얻어먹고... 얻어 와서 먹고... 그렇게 혼자 살았습니다. 이 높은데 뭐가 있나요?
“스님. 지족암에 사십니까?”
“지족암이 아니라 不足암에 삽니다”
飢餓木果과 하야 慰其飢腸하고 도토리. 꿀밤 같은 걸 주워서 주린 창자를 위로한다 그 말입니다. 요즘처럼 좋은 과일이 있을 턱이 있나? 옛날에 벼슬하는 사람들이 벼슬을 버리고 야인이 되어서, 두메산골에 와서는 도토리 주워 먹고 살았던 선비들도 많아요. 옛날에 서울에서 정승 판서하던 선비가 깊은 산골짝에와서 도토리 주워먹고 살면서 지은 글 들이 있어요.
금년에 상수리 도토리는 열매를 많이 맺었구나.
바람이 불어서 일만 가지를 다 흔들어서
금 조각이 우수수수 쏟아지는구나.
그 먹을 것이 떨어지니까 금 조각이 쏟아지는 것과 같다 이 말입니다.
동쪽 냇가에서 이것을 푹푹 삶아서 울궈서 먹으니까
그 전에 내가 벼슬할 때 오정식보다 (오정식= 임금님이 내려주던 만반진수) 훨씬 맛이 좋네.
아침에 일찌감치 나가서 꿀밤을 주우러 동산 저 높은 꼭대기로 올라가고,
저녁이면 꿀밤을 주우러 동산 저 밑자락으로 돌아다닌다. 아침마다아침마다 저녁마다저녁마다 꿀밤을 주우러 다니다보니 옷이 다 찢겨서 깁는 것도 싫지 않다. 옛날 그 가난한 선비들이 꿀밤 주워 먹고 살던 그런 시입니다.
기찬목과하야 위기기장 하고 주릴 때 나무과일을 먹고 주린 창자를 위로한다는 소리가 무슨 천도복숭아나 따 먹고 좋은 과일 따 먹는 것이 아니고, 도토리 꿀밤을 주워서 주린 창자를 위로한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내가 70년도에 인도네시아를 가서, 숲 속으로 숲 속으로 가다가 자동차 빵구가 나서 자동차를 한 쪽에 세워놓고, 바퀴를 갈아 끼우는 동안, 바람도 쏘일겸 숲 속으로 들어갔더니, 아주 이상스런 향기가 진동을 하는 겁니다. 들어가 보니까 망고. 바나나. 이상스런 이름도 모르는 과일들이 수북히 떨어져서 썩고, 쳐지고 있고, 아주 과일이 많아요. 그 깊은 산속에 주인도 없는 겁니다. 거기서는 정말 그런 것만 따 먹고도 살겠더군요. 대갈통만한 과일. 하나만 주워오면 하루 종일 먹고도 남지요.
기찬목과하야 위기기장 하고 주릴 때 나무과일을 주워먹고 주린 창자를 위로하고,
渴飮流水하야 息其渴情이어다.
목마를 때는 흐르는 물을 마셔서 그 갈증을 쉴지니라.
신라 최고운 선생이
요즘 문교부 장관 같은 한림학사라는 벼슬을 했는데..
어릴 때 중국에 가서 대 문장가가 되어서 돌아 왔거든.
그래서 그이를 絲入中國이라가 錦衣還鄕이라. 실로 중국에 갔다가 비단이 되어서 고향으로 돌아왔다.
중국에서도 알아주는 대문장가입니다. 와서 문교부 장관까지 올라갔는데... 신라 말년이 되어서, 어찌나 시시비비가 많고, 임금은 날마다 궁녀들과 희희낙락하며 술이나 먹고, 도무지 나라 정치에 힘을 쓰지 않으니 나라가 망하게 되었지. 나라 망하는 꼴을 볼 수가 없다고 해서, 한림학사 자리를 턱 팽개쳐 버리고,
率妻子入伽倻라.
처자를 데리고 가야산으로 들어가서 고운암에 자리를 잡고 살았습니다. 홍류동 골짜기를 들어오는데 목이 마르거든요. 갈음류수라. 촐촐촐 흐르는 물을 손으로 떠서 마시니 맛이 기가 막히게 좋거든... 그래서 떠서 들여다봤더니, 해가 저물었던가 봐. 달이 손바닥에 둥실 떠 있거든... 국수하니 월재수로구나. 물을 움켜쥐었더니만, 달이 손바닥에 들어왔구나.
고운암에 가서 꽃밭도 가꿔놓고, 정원도 가꿔놓고 살면서, 마누라는 산에 가서 산나물을 뜯어다가 삶아서 그것만 먹고 사는 겁니다. 마누라가 산에 가서 산나물을 뜯어오는 것으로 만족한다는 이야기가, 그 예기가 ...
나물먹고 물마시고 팔을 베고 누웠으니
대장부 살림살이 이만하면 만족하다는 겁니다.
거기서 나온 것이지요.
꽃밭을 가꾸다가 일어서서 책을 들여다보려니까 어디서 향기가 나거든요.
여기서도 꽃향기. 저기서도 꽃향기. 옷에서도 꽃향기가 나거든.
롱화하니 향만의로구나. 꽃밭을 희롱하다보니 향기가 몸에 가득 배었구나.
국수하니 월재수하고, 물을 움켜잡으니까 달이 손바닥에 있고...
꽃밭을 희롱하다보니 향기가 몸에 가득 배었구나. 유명한 글입니다.
掬水(국수)하니 月在手요. 弄花하니 香滿衣라. 그렇게 즐겁게 사는 경계가. 모든 명예를 떠나서 사는 경계가 모든 번뇌를 제거하는 길이거든요.
飢餓木果하야 慰其飢腸하고 渴飮流水하야 息其渴情이이라.
그 갈증을 다 쉬더라 이 말입니다.
옛날 큰 스님네들은, 도를 통한 스님네들이... 도를 깨달은 스님네들이 산속에 가서 앉았으면---> 새들이 꽃을 따다가 올리고, 원숭이들이 산에 가서 좋은 과일들을 따다가 스님한테 올리고 그랬답니다.
그런 것을 나무꾼들이 보고 ‘아! 도인이로구나! 도인이 아니면 어떻게 저렇게 새들이 이상한 좋은 꽃들을 따다가 스님한테 올리고 저런 과일을 갖다가 올리겠느냐?’ 소문이 나서는 그곳이 큰 도량이 되고 그랬습니다.
치문에 보면 유산 용호선사 같은 이들도 그랬다고 그랬거든요.
이것이 기찬목과하야 위기기장 하고 갈음류수하야 식기갈정이라. 하는 거.
喫甘愛養하여도 此身은 定壞요
着柔守護하여도 命必有終이니라.
단 것을 먹여서. 맛있는 것을 먹여서. 고량진미를 먹여서 애양하여도. 이 몸뚱이를 사랑하고 잘 키운다 하더라도, 차신은 정괴라. 이 몸뚱이는 결정코 무너지는 것이다 이 말입니다. 이 몸뚱이는 아무리 잘 먹고 살아도 결정코 죽음이 있는 것이다 이 말입니다.
着柔守護하여도 命必有終이니라.
부드럽고 좋은 능라비단으로 감싸고 산다 하더라도, 그야말로 밍크코트를 입는다 하더라도 명필유종이니라. 命이라고 하는 것은, 사람의 목숨이라고 하는 것은 반드시 마칠 때가 있는 것이다.
오래 보존하지 못하는 것이다 이 말입니다. 사람이 잘 못 먹으면, ‘아이고 내가 못 먹어서 이런가 보다. 영양실조가 되어서 이거 안 되겠네. 어지럽고 안 되겠네. 뭘 좀 잘 먹어야겠다’이런 생각들을 흔히 하게 되는데. 영양실조가 되어서 죽는 것이 아니고 잘 못 먹으면 영양이 부족해서 죽는다 하는
그 생각 때문에 죽는 것이다 이 말입니다. 그 생각이 없으면 절대 죽는 것이 아닙니다. 영양실조 된다고 죽는 것이 아닙니다.
이를테면 정신이상자는요. 그런 생각이 없거든요. ‘먹었다. 안 먹었다’‘잤다. 안 잤다’하는 생각이 없거든요. 일주일. 열흘 동안 안 먹고 안자도 끄떡없어요. 기운이 다른 사람보다 몇 배 더 세요.
그것은 분별심이 없기 때문에
그래요.
정신이상자는‘내가 안 먹었다’는 생각.‘내가 잠 안 잤다’는 생각. ‘영양실조 됐다’는 생각이 애당초 없으니까 끄떡없는 것이지요. 기운이 더 펄펄 하는 겁니다.
또 거지들은요. 쓰레기통 뒤져서 균 버덕버덕 묻은 것을 먹고도 살거든요. 그 추운데, 아무데나 거적 데기 깔고 자도 감기는 무슨 감기입니까? 감기 안 걸립니다. 찌끄러기 막 먹어도 배만 채우면 그만이거든요. 찌끄러기 아무거나 막 먹어도 배탈 나거나 위장병 걸리는 일도 애당초 없습니다. 관절이나 폐렴에 걸리는 그런 것 없어요.
인도에 가면 “갠지스강”이라는 강이 있는데... 거기 가니까 물이 뿌여니 아주 구정물이거든... 그 강가에는 사람 시체를 베로 뚤뚤뚤뚤 감아서 나무에다 껍데기만 스스르 끄슬러요. 껍데기만 끄슬러서 물에다 담그거든요.
보통 쇠나 돌 같은 것을 묶어서 담그면 물속으로 들어가는데, 잘 못 묶어서 둥둥둥 뜨는 것이 많아서 시체를 개가 뜯어 먹기도 합니다. 물속으로 들어가는 시체가 하루에 한 두 개가 아니고, 수 백 개구씩 그런다고.
火葬연기가 여기서도 연기 나고 저기서도 연기 나고, 그 뒤쪽에는 빌딩. 별장들이 쭉 있는데, 거부장자들이 자기가 죽을 때 거기와서 죽으려고 지어놓은 것이지... 인도 사람들은 전통적으로 생각하기를 갠지스강은 죄를 전부 씻어버리는 강이라고 합니다. 모든 업장을 다 씻어버리는 강이라고 믿습니다. 그 물을 마시고, 그 물에 목욕을 하면 모든 죄업이 다 씻어진다고 믿습니다. 전통이 그러니까 전부가 그 강물에 빠져 죽기가 願이지요. 자살로서 빠져 죽기는 않고, 거기 와서 염불을 하면서 죽는 시간을 기다립니다. 죽으면 권속들이 불에다 태우거든요. 불에다 끄슬러서 넣어주면 끝입니다. 水葬이지요. 화장. 埋葬. 風葬이 있는데요. 수장을 하니까 물이 깨끗 할리가 없지요. 더럽지요.
그렇지만 사람들이 그 물을 벌컥벌컥 마십니다. 그 물 마시러 수만리를 찾아오기도 합니다. 그 물을 마시고, 그 물을 덮어 쓰면서 목욕을 하면서 기도를 하고... 좋은 금단지에 그 물을 길어 가기도 합니다. 수 천리를 길어갑니다. 길어 가서 자기 집에 보배단지처럼 놔놓고, 아이들이 어디를 다쳐도 그것 한 방울 발라주면 금방 나아요. 배가 아파도 그것 한 숟갈만 먹이면 배가 낫고요. 머리 아파도 그것 한 숟갈만 발라주면 낫고요. 그것이 만병통치약입니다. 인도 사람들은 갠지스 강물이 최고 좋은 약입니다. 갠지스 강물이 인도 사람들의 보약이기 때문에, 거기사람들이 한국 사람보고 “갠지스 강물 얼마나 길어 가느냐?”고 묻는대요. “아이고 그 더러운 물. 대장균이 바글바글한 것을 왜 길어 가느냐?”고 하면... “저 사람이 정신없는 사람”이라고 한답니다.
인도 사람들에게는 갠지스 강물이 聖水이지요.
사람의 정신력이. 믿음의 힘이 그 만큼 강하다 그런 말입니다.
사람을 죽게 하는 것은 ‘영양이 부족해서 내가 죽는다’하는 그 생각이
사람을 죽게 하는 것입니다.
‘내가 잘 먹어야지’‘내가 보약을 먹어야지’‘내가 이렇고 저렇고 한데’‘내가 피를 많이 흘렸는데.’‘내가 무엇이 부족한데’ 이런 줄 아는 그 생각이 결국에 그렇게 되게 만든다 그 말입니다.
그런 모든 분별심만 없으면,
‘내가 대장균이 바글바글한 쓰레기통 음식을 먹으면 큰일 난다’ ‘큰일 난다’하면 큰일 나는 겁니다. 그 큰일 난다는 생각에 지배되지 않을 것 같으면, 아무 일 없는 겁니다. 그 생각에 지배받는 사람만이 그 병에 걸리는 겁니다. 그러므로 이 정신력이 그 만큼 무서운 겁니다.
위생학적으로 봐서 갠지스 강물에는 대장균이 바글바글하거든요. 얼마나 더러운 것입니까? 더러운 것이지만, 정신력이 위생학을 수십 배. 수백 배 능가 해버리는 겁니다.
그러니까 “육체의 노예가 되지 말라” 이 육체의 노예가 되지 말고 정신을 가다듬어서. 결정심을 가지고 “견성성불 하겠다”는 신심과 원력을 가지면 아무 일 없는 것입니다. 어디까지나 인과응보를 생각하고 “육체의 노예가 되지 말고 정신이 완전한 주체자가 되라.”그 말입니다.
喫甘愛養하여도 此身은 定壞요
着柔守護하여도 命必有終이니라.
아무리 맛있게 먹여줘도 차신은 정괴요이 몸은 결정코 무너지는 것이다.
아무리 잘 입혀줘도 명필유종이라. 우리의 생명은 마침이 있는 것이다.
아무리 부자라고 해도 하루에 밥 세 그릇 이상 먹나? 아무도 밥 세 그릇 이상은 못 먹거든... 많이 먹어서 배탈 나지, 적게 먹어서 배탈 나는 법은 없습니다. ‘아이고 좀 많은데...’싶을 때 한 두 숟갈 더 먹으면 그만 그것이 탈나거든요. 좀 적은 듯이 ‘몇 숟갈 더 먹었으면, 입이 얌얌하다’싶을 때 안 먹으면 소화 잘 되고, 몸에 살이 되어 좋은 겁니다.
助響岩穴로 爲念佛堂하고
哀鳴鴨鳥로 爲歡心友니라.
“산중에 자연을 벗 삼아서 그렇게 살아라”그런 말인데...
옛날에 어떤 도인이 숲 속에서 턱 하니 도를 닦고 있는데, 그 밑에 뱀 한 마리. 비둘기 한 마리. 까마귀 한 마리. 사슴 한 마리... 네 놈이 스님의 상좌가 되어서 스님 곁에서 살더랍니다.
낮에는 가서 먹을 것 구해서 먹고, 저녁에는 와서 스님한테 법문 듣고 누워 자고 그러거든.
“이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것이 무엇인가?”하룻저녁은 잠이 안 온다고 네 놈이 그걸 가지고 토론을 하는데,
●까마귀→“나는 이 세상에 제일 겁나는 일이 배고픈 거다. 배가 고프면 정신이 없어서 물도 불도 가리지 않고 아무것이나 먹으려고 달려들다가 그물에 얽히고 화살에 맞아서 내 생명을 잃는 수가 있으니, 나는 제일 괴로운 것이 배고픈 거라고 생각한다”
●비둘기→“나는 음욕심이 제일 고통이더라.”비둘기는 온종일 구구구구. 지 짝 찾느라고 구구구구 한답니다. “내가 음욕심이 너무 많아서, 음욕심이 발동하면 물도 불도 생각하지 않고, 매나 다른 짐승들이 와서 잡아먹는 것도 잊어버려 죽음을 당하게 되니 음욕심이 제일 고통이라고 생각한다”
●사슴→“나는 겁나는 생각이 제일 苦더라. 나는 어찌 그렇게 놀란 장 닭처럼 겁이 많은지 버스럭 소리만 해도 그냥 포수가 나를 잡으러 오는가 싶고, 사자, 호랑이가 나를 잡으러 오는가 싶어서 덮어놓고 그냥 뛰다보면, 언덕배기든 구렁텅이든 모로 그냥 툭 떨어져서 다리가 부러지고, 죽음을 당하는 수가 너무 많으니 겁나는 마음이 제일 괴롭다”
●스님이 그 소리를 듣고 있다가 하는 말이, “에이 이놈들아, 너희는 다 지엽적인 것만 알았지 진짜는 몰랐다. 너희는 가지. 잎만 얘기했지 근본을 너희는 모른다. 근본은 이 몸뚱이가 고통이니라. 이 몸뚱이를 받아서 이 세상에 나올 때부터 고통의 근본 이니라 이 몸뚱이라는 것이... 머리 꼭대기에서부터 발가락 끝까지 이 몸뚱이가 있는 한 고통 아닌 것이 없다. 모든 것이 괴로운 것이다”이런 이야기를 스님이 떡하니 함으로서 그 짐승들이 스님의 법문을 듣고 발심을 했더랍니다.
高嶽峨岩... 바윗돌. 저 깊은 골짜기에서“이 세상은 다 괴로운 것이다”이렇게 알고, “이 세상은 다 허망한 것이다”공으로 알아라 이 말입니다.
이 세상은 다 무상한 것인 줄 알고, 이 세상은 다 실체가 없는 것이다.“나”라는 것이 없다. 이 말입니다. 역시 四念處하고 비슷합니다.
고· 공· 무상· 무아를 뒤집으면, 그러니 그것을 깨달으면
苦→ 樂이 되고,
無常→ 常이 되고,
無我→ 我가 되고,
空→ 淸淨한 것이 됩니다.
이것이 상· 낙· 아· 정입니다.
●수도를 하는 사람은 고· 공· 무상· 무아...
이 세상은 괴로운 것이요. 공한 것이요. 무상한 것이요. 무아한 것이다.“나”라는 것이 없다! 이렇게 알아야 됩니다.
●턱하니 도를 깨친 사람은 상· 낙· 아· 정입니다. 이 세상은 영원한 것이요. 항상된 것이요. 이 세상은 언제나 즐거운 곳이요. 이 세상은 “나”라고 하는 것이 영원한 것이요. 이 세상은 어디까지나 청정한 것이다. 청정한 열반의 세계다. 이렇게 알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모든 攀緣을 끊지 못하고 마음에 걸림이 있는 그대로 산 속에 가 있는 사람은 그렇지 못하거든요. 어떤 도인이 산 속에 가서 도를 닦는다고 떡 앉아 있는데, 어찌나 번뇌 망상이 뒤끓는지 견딜 수가 없거든... 서울 어떤 보살이 자기 남편이 속 썩인다고 여기 와서 한 열흘 기도 한다고 하더니, 사흘 만에 걱정이 된다고 다시 가듯이... 모든 걱정꺼리가 꽉 차서 아무래도 안 되겠거든요.
큰 절에 그 전에 “찰떡 보살”이라고 있었는데, 그 보살이 10 ~ 20년을 큰절 살림살이를 살았어. 여기 해인사에서 중 된 학인들은 전부 올 때부터 큰 스님이 될 때까지 다 찰떡 보살이 키운 스님들이거든 쉽게 말해서... 그러니까 강원스님 네들은 찰떡 보살한테는 꼼짝을 못하거든요. 강원스님 네들이 찰떡 보살한테 잘 보이면 오만 것 다 얻어먹고 그래요. 이 보살이 댓새 있다가 온다고 하고 나가서 하룻밤 자고 곧 오고... 열흘 있다가 온다고 하고 하룻밤 자고 곧 오고 그래요. 왜 그렇게 빨리 오느냐고 했더니, 어떤 사람이 와서 장 다 퍼가는 것 같고, 고추장 다 퍼가는 것 같고, 살림살이 다 없어지는 것 같아서 걱정이 되어 바깥에서 못 잔대요.
부지런히 곧 돌아와야 된다는 겁니다.
“큰절 비구 스님들이 살림살이 뭐 알겠느냐?”고...
“다 짊어지고 가도 천지도 모른다”는 겁니다. 그러니 걱정이 되어서 부지런히 곧 와야 된다고 하듯이...
도인이 산 속에 도 닦으려고 가만히 앉아 있으면, 번뇌 망상이 어떻게나 많이 끓는지 안 되겠거든... ‘왜 이렇게 망상이 끓을까?’이러고 있는데, 어떤 사람이 산에 나무를 하러 와서 쿵 베거든... 베더니 밧줄을 나무에다 묶어서 잡아당기거든요. 그것이 술술 끌려가나요? 나무 가지가 이리 걸리고 저리 걸려서 도무지 안 되거든요. 도무지 안 되니까 도끼로 나무 가지를 이리저리 탁탁탁 자르고서 가운데 둥치만 만드니까 줄줄줄 끌려가거든.
‘옳거니 알았다. 모든 번뇌 망상을 먼저 끊어버려야 된다. 번뇌 망상을 다 끊어버리고, 정리할 것 정리하고서 마음을 탁 가다듬어서 일심정진 해야 된다’이렇게 깨달았다는 겁니다.
이렇게 깨달으면 모든 중생에게 자비한 마음이 생기고, 자기가 먹을 것을 안 먹고 가질 것 안 갖고 할 것 안 하니까 자꾸 복은 생기고... 복과 지혜와 자비가 나타날 때, 모든 것은 즐겁고 기쁜 것뿐이거든요. 그래서
助響巖穴로 爲念佛堂하고
哀鳴鴨鳥로 爲歡心友니라.
메아리를 돕는 바윗굴로서 염불당을 삼고, 저 깊은 산속에 앉아서 염불 한 마디“나무아미타불”부르면 앞산에서 나무아미타불 소리가 척 나거든요.
목탁 치면 앞산에서도 쩌렁쩌렁 울려온다 이 말입니다. 사방 바윗돌이 쌓여 있으니까... 메아리를 도와주는 바윗돌 굴... 그런 데가 바로 아주 좋은 일등염불당... 일등 좋은 불당이요 법당이다 이 말입니다.
슬피슬피 울고 가는 기러기 떼들. 이런 것을 쳐다보면 한없이 마음이 기쁘고 즐겁다 이 말입니다. 그것만 보고 기쁘고 즐거운 것이 아니지...
천지삼라만상 모든 것이 기쁘고 즐겁지 아니한 것이 없지...
신심이라고 하는 것은 바로 이 환희심 하고 통하는 것입니다. 신심은 바로 환희심입니다. 환희심이 생기면 바로 그것이 신심이고, 환희심이 나타났을 때 괴로움은 있을 수 없거든요. 언제든지 기쁘고 즐겁고 편안하고...
♪기♪쁘♪구♪나♪ ♪즐♪겁♪구♪나♪
♪편♪안♪하♪구♪나♪ 하는 그런 노래가 있잖아요.
이것이 신심 있는 사람이 가는 길... 수행자들이 가는 길입니다.
원효스님이 인물이 좋고, 학문이 높고, 키가 크고, 아주 인격이 너무 훌륭하니까 서울(경주)시내에서 멋쟁이 보살들도 많이 따르고, 유혹도 심하고 선덕여왕. 덕만여왕 여왕들이 원효대사를 유혹하려고 난리들이고...
여왕뿐인가요? 요석공주로부터 모든 궁녀들이 원효스님 한 번 보려고 난리들이거든요. 어떻게 하든지 원효스님 한 번 가까이 하려고 난리들이어서, 번뇌 망상이 자꾸 일어나니까 다 털어 버리고, 산 속에 가서 수도하는 모습을 턱 하니 밝히신 겁니다. 이것이 발심해서 수행하는 모습들이거든요.
飢餓木果하야 慰其飢腸하고
渴飮流水하야 息其渴情이니라.
주릴 때 나무 과일을 먹고 주린 창자를 위로하고,
목마를 때는 흐르는 물을 마셔서 식기갈정이니라. 그 갈증을 쉬더라.
최고운 선생이 손으로 물을 떠먹다가,‘아뿔사, 표주박이 있는데 내가 왜 표주박으로 안 떠먹고 손으로 떠먹었지?’해서 표주박을 꺼내서 물을 떠먹으니 맛이 없더랍니다. 손으로 움켜먹으니 훨씬 맛이 있고...
그래서 손으로 움켜잡고 한참 들여다보니까, 달이 둥둥둥둥 떠있는 손바닥을 들여다보며 그 물을 마시니까 그렇게 맛이 좋더라는 소리가 있는데요.
그것이 오늘 날 과학적으로도, 그릇으로 떠먹는 것 보다 손으로 떠먹는 것이 훨씬 좋답니다. 위생적으로도 좋답니다. 왜 그러냐?하면 그릇으로 떠먹으면 그냥 생수이고, 손으로 떠먹으면 손바닥에 우라늄 기운이 있대... 원자탄 만드는 방사능 기운이 있다는 겁니다. 손으로 턱 하니 물을 뜰 때, 물속에 있는 결이 금방 삭아버린다는 겁니다. 그래서 위장에도 좋고 맛이 훨씬 낫답니다. 몰라 그렇지... 그래서 표주박을 깨뜨려 버렸답니다. 그 다음부터는 표주박이 필요 없으니까요.
喫甘愛養하여도 此身 定壞요. 아무리 잘 먹여주고 잘 입혀주고 보약을 먹여주고, 이래서 몸뚱이를 위해준다 하더라도, 이 몸뚱이는 결정코 무너지는 것이다. 着柔守護하여도 아무리 비단옷을 입히고 부드러운 것을 입혀서 이 몸뚱이를 수호한다 하더라도, 命必有終이니라. 명대로 살다가 죽는 것이지 잘 입는다고 명이 오래가는 것이 아니다.
거지들이 그 겨울에 추운데서 자도 감기 안 걸리는 것 보세요. 참 이상한 일이거든요. 그러므로 중 이야 할 일이
뭐 있어요? 할 일이 없는데, 자기할 일에 맞춰서 일심지성으로 정신을 가다듬으면 이 까짓것 몸뚱이 하나 끝내는 것은 문제 아닙니다. 명대로 사는 거니까...
‘아이고 내가 못 먹어서 이렇다’‘보약 먹어야 되겠다’그런 생각 함부로 하지 말고, 보약을 먹으려거든 부처님한테 얻어먹으세요.
꿈 가운데 부처님한테 보약 한 그릇 얻어먹으면 건강해지는 것이고...
어떤 이는 매일 어디가든지 부처님한테 올렸던 다기를 꿀떡꿀떡 한 사발씩 다 먹는답니다. 다기물이 있는가 하고 들여다보고 다기물이 있으면 들이마신답니다. 그것 참 좋은 겁니다 실지로... 다기물을 마시면 부처님한테 감로수를 얻어먹는다는 생각니 있어서 좋고, 생리적으로도 떠다놨던 물 먹으면 좋답니다. 생물먹지 말고 서너 댓 시간 결이 삭은 물을 먹으면 좋답니다
이상구 박사가 찬물 먹으라는 강의를 여러 번 했었잖아요. 고기 같은 것 먹지 말고, 기름기 너무 먹지 말고, 어쨌든지 간에 물을 많이 마시라고...
물을 많이 먹으면 혈액순환이 잘 되고, 위장의 청소가 잘 되어서 건강 하다고 그랬잖아요. 모든 것이 엄살 때문에 죽는 것이고,
‘무엇이 부족해서 죽는다’하는 그 생각이
사람을 죽게 하는 것이지, 무엇이 부족해서 죽는 것은 절대 아닙니다.
喫甘愛養하여도 此身은 定壞요. 단 것을 먹여서. 단 것이나 고량진미 마찬가지입니다. 꼭 단 것만이 아니고..맛이 좋은 그런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 몸뚱이는 결정코 무너지는 것이요.
着柔守護하여도 부드러운 것을 입혀서 보호한다 하더라도,
命必有終이니라. 명은 반드시 마침이 있는 것이다.
助響巖穴로 메아리를 돕는 바윗굴로,
爲念佛堂하고 염불당을 삼고,
哀鳴鴨鳥로 슬피 우는 기러기 떼를 더불어,
爲歡心友니라. 환희심 가운데 벗을 삼으라 이 말입니다.
그렇게 소요자재하고 모든 애욕에 구질구질한데 걸리지 않고, 탈속하게 지내라는 얘기야... 한가롭고 부질없이 쓸데없이 잡담하는 것은 시간 아깝잖아. 공부해야지, 공부 아니 하고 쓸데없이 잡담하고 T V보고 신문보고 비디오 보며 시간 보낼 수 없지요. T V를 한 시간 들여다봐야 나한테 소득 되는 것이 없어. 시간을 유용하게 쓰지 못하는 것을 한가롭고 부질없다고 하고,
슬피우는 기러기로 환희스런 마음으로 떡하니 벗을 삼고, 메아리를 돕는 바윗굴로, 염불당을 삼아서, 항상 부처님을 念하니까 바로 생각이 집중된 곳이거든... ●입으로 읊조리는 것은 염불이 아니라 口佛입니다. ●생각으로. 항상 생각이 집중되어 있기 때문에 번뇌 망상에 끌려가지 않는 것. 오직 일심삼매 가운데 집중되는 것을 念佛堂이라고 합니다.
發心修行章 제 9 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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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고맙습니다 _()()()_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