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시는 신유한(申維翰 1681~1752)이 촉석루(矗石樓)에서 지은 칠언율시(七言律詩)로서, 왜란이 지난 100여 년후 촉석루 주변 경관을 노래한 것인데, 지금 누(樓)의 남강쪽 기둥에 주련(柱聯)으로 씌여져 있다.
신유한은 조선 후기의 문신으로 본관은 영해(寧海), 자는 주백(周伯), 호는 청천(菁泉)이다. 증광문과(增廣文科)에 급제했고 벼슬은 봉상시 첨정(奉常寺僉正)에 머물렀다. 1719년 일본에 통신사의 일원으로 다녀와 《해유록(海遊錄)》을 지었는데 이는 박지원의 《열하일기(熱河日記)》와 비교될 정도로 높이 평가되고 있다.
晉陽城外水東流 叢竹芳蘭綠映洲
天地報君三壯士 江山留客一高樓
歌屛日暖潛鮫舞 劍幕霜侵宿鷺愁
南望斗邊無戰氣 將壇笳皷半春遊
진양성 바깥 강물은 동으로 흐르고 울창한 대숲 아름다운 풀은 모래섬에 푸르다.
이 세상엔 충성다한 삼장사가 있고 강산엔 나그네를 머물게 하는 높은 누각 있도다.
따뜻한 날 병풍치고 노래하니 잠자던 교룡이 춤추고 병영 막사에 서리 내리니 졸던 가마우지 걱정스럽네.
남으로 북두성 바라보니 전쟁기운 없고 장군단에 피리 북소리 봄을 맞아 노닌다네.
「題矗石樓」수련(1,2句)은 진양성(진주성)의 풍광을 나타냈는데 강건너 대숲과 아름다운 풀은 사실적인 경치이기도 하지만 절개와 선비정신을 대유(代喩)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 대상은 함련(3,4句)에 나오는데, 하늘과 땅은 임진왜란에 진주성을 지키다가 순절한 삼장사(三壯士)를 기리고 그 강산에 촉석루가 솟아 나그네를 붙잡는다고 했다. 삼장사는 1593년 6월 진주성 2차전투에서 용전하다가 장렬하게 전사한 김천일(倡義使 金千鎰), 최경회(慶尙兵馬節道使 崔慶會), 황진(忠靑兵馬節道使 黃進)을 일컫는다. 경련(5,6句)은 촉석루에서 본 주변 경치를, 미련(7,8句)은 촉석루에서의 평화로움을 읊었다.
한편, 해산(海山) 정해영(鄭海榮.1800년대)은 청천(菁泉) 신유한의 원운(原韻)에 따라 「矗石樓次板上韻」을 지었다.
一帶藍江不盡流 舊營頹堞泛長洲
春秋日日登臨客 風雨年年自在流
指水盃深懷古恨 落花巖屹至今愁
憑軒擧目山河異 忍看無心蕩子遊
띠 두른듯 푸른 남강 마를 날이 없어라 옛 터전 진주성 무너진 담장 긴 강물 흐르네
통한의 역사어린 촉석루 올라오니 비바람 년년세세 강물은 절로 흘러
잔들어 손짓하던 삼장사 위국순절 슬픈 역사 우뚝솟은 의암바위 꽃잎처럼 떨어진 넋
난간에 기대 바라보니 그때의 산하 아니건만 무심히 볼 수 없어 강물에 탕건씻고 한 수를 읊노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