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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론강단-467 거듭나야 하리라(요한복음3장1-8절)
성경말씀은 요한복음 3장 1절에서 8절까지 봉독합니다.
[요한복음 3장]
1 바리새인 중에 니고데모라 하는 사람이 있으니 유대인의 관원이라
2 그가 밤에 예수께 와서 가로되 랍비여 우리가 당신은 하나님께로서 오신 선생인 줄 아나이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지 아니하시면 당신의 행하시는 이 표적을 아무라도 할 수 없음이니이다
3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
4 니고데모가 가로되 사람이 늙으면 어떻게 날 수 있삽나이까 두번째 모태에 들어갔다가 날 수 있삽나이까
5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6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성령으로 난 것은 영이니
7 내가 네게 거듭나야 하겠다 하는 말을 기이히 여기지 말라
8 바람이 임의로 불매 네가 그 소리를 들어도 어디서 오며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나니 성령으로 난 사람은 다 이러하니라
요한복음에만 이 말씀이 나오기 때문에 귀담아 듣고 우리 스스로의 신앙을 다시 점검해 볼 수 있는 그런 시간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대체로 예수님을 찾아왔던 사람들이 병이 들었거나 혹은 귀신이 들었거나 아니면 어려움을 겪어서 그렇게 찾아오거나 아니면 가족이 찾아오거나 아니면 병 들었거나 이렇게 해서 찾아 왔는데, 성경에 그저 한 두 사람 정도가 그런 문제가 아니고, 이 세상에서 뭘 얻고 더 누리고 이런 것을 넘어서서 영원한 생명 문제, 죽음 이후의 문제 이런 것을 가지고 찾아왔던 사람이 오늘 니고데모와 또 다른 복음서에 보면 부자청년이라고, 그 두 사람은 병들거나 해서 찾아온게 아니었어요.
우리 성도님들은 맨 처음에 교회에 갈 때 무엇을 추구하고 갔는지 잘 모르겠어요.
지난번에 세례요한을 따르던 제자들이 예수님 따라가니까 예수님께서 ‘무엇을 구하느냐?’ 그렇게 물었던 적이 있잖아요.
여러분은 무엇을 구합니까?
여기 니고데모라는 사람은 세상적으로 말하면 더 이상 바라보거나 추구할게 별로 없어요.
이스라엘에서 관원이라 하면 신앙과 학문과 덕망과 어떤 인품과 모든 면에서 인정을 받아야 되고, 한 지파에서 여섯명 정도 이렇게 산헤드린 이라 의회 의원으로 추대되는 것인데,
그러니까 일생동안 앞으로 더 바라볼게 없을 정도로.. 거기에서 더 높아질려면 왕이 되어야 하는데, 왕이 될려면 쿠데타를 해야 하는데, 그렇게 할 수 없는 것 아닙니까?
그래서 니고데모라는 사람은 이 세상에서 더 이상 바라고 추구할게 없는 데까지 올라간 사람이예요.
그리고 부자 청년도 마찬가지죠.
부자이고 청년인데, 아주 경건한 사람이고 또 예수님을 찾아온 목적도 ‘내가 어떻게 하면 좀 더 부자가 되겠느냐?’ 이런게 아니거든요.
‘무슨 선한 일을 해서 영생을 얻겠습니까?’ 이렇게 찾아왔었는데,
이 니고데모도 마찬가지예요.
[요한복음 3장]
1 바리새인 중에 니고데모라 하는 사람이 있으니 유대인의 관원이라
유대인의 ‘관원’이라 하면 헬라어로 ‘아르콘’이예요.
‘아르콘’ 하면 ‘우두머리, 두령’이라는 뜻이예요.
보통 관원은 70인 의회 의원이었다고 보면 됩니다.
2절에,
2 그가 밤에 예수께 와서 가로되 랍비여,
이렇게 하는데 밤에 왔다는 것 때문에, 많은 설교를 들어보면 이목이 두려워서 숨어서 예수님을 찾아왔다 이런 식으로 대부분 이야기를 합니다.
그런데 제가 볼 때는 이분이 이목이 두려워서 밤에 왔다 그럴 수도 있겠죠.
그러나 딱히 그런 것 보다는 일반적으로 볼 때 낮 시간에는 예수님이 굉장히 분주해요.
찾아오는 사람이 너무 많아.
주변이 소란하기 때문에 개인적이고 심도있는 그런 이야기를 나눌 수 없고 이야기가 안 되니까, 심지어 제자들까지 다 물러갔다고 생각하고, 밤이 늦은 시간에 왔던 것 같아요.
그런데 다 일찍 누워자러 하는데, 늘 보면 맨 마지막까지 있다가 예수님이 방에 불 꺼지는 것 보고 집에 돌아가는 그런 사람이 바로 요한이거든요. 성격상..
그래서 이 요한이 니고데모가 찾아온 사실을 요한 혼자만 기록하고 있거든요. 딴 복음서에는 안 나와요.
보나마나 베드로가 제일 먼저 ‘누워자러 가자. 우리가 가야 예수님도 쉬실 것이다.’
그러니까 모르는 거예요.
요한은 이것을 자기 혼자 알고, 나 혼자 있을 때 국회의원이 왔었다고 떠들지 않은 것 같아요. 그렇죠?
전혀 떠들지 않고 자기만 알고 가만히 있다가 다른 사도들은 이미 복음서를 쓸만한 분들은 세상 다 떠났단 말이죠.
그리고 자기만 알고 있던 사실이기 때문에 기록했는데, 아주 소중한 부분이예요.
그래서 예수께 와서 니고데모가 하는 말이,
.. 랍비여 우리가 당신은 하나님께로서 오신 선생인 줄 아나이다
그렇게 인식한다는 말이죠.
그런데 여기 니고데모가 ‘내가’라고 말하지 않고, ‘우리가’라고 말하고 있는데, 지금 ‘우리가’ 할 때 누구까지 포함되었는지 잘 모르겠어요.
자기 가족인지 아니면 바리새인 중에 아리마대 요셉과 몇몇사람인지..
어떻든 제가 보기에는 이 사람이 자기 혼자 이렇게 하지 않고 ‘우리가’라고 한 말은 좀 생각하게 해요.
어떻든 바리새인 전체 다는 아닐지라도 그 바리새인 중에 얼마간은 예수님이 하시는 일에 대해서 긍정적으로 봤거든요.
물론 결과적으로 가면 예수님과 충돌합니다만, 처음에는 사두개인들보다는 바리새인들과 조금 더 가까운 그렇게 인식을 했던 것 같아요.
왜냐하면,
.. 하나님이 함께 하시지 아니하시면 당신의 행하시는 이 표적을 아무라도 할 수 없음이니이다
그렇게 인식하는 근거까지 딱 대면서 당신은 하나님께로서부터 보내심을 받은 사람 같다. 이렇게 이야기 하는데,
예수님께서 왜 그렇게 인식하느냐 이렇게 묻지 않고, 비약을 해요. 이야기를..
왜냐하면 밤이 깊었으니까..
이야기 길게 할 수 없고, 지금 니고데모가 뭘 물을려고 온 것까지 예수님이 다 아시니까 이야기를 비약을 합니다.
바로 3절에 보면,
3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
이런 것을 보면 실제로 앞에 인사치레로 너스레를 떨고 하는 것은 아첨겸 내지는 인사겸 덕담겸 하는 소리이고, 실제 니고데모가 마음에 품고 온 의문은 뭐냐 하면,
‘어떻게 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습니까?’
‘어떻게 하면 내가 죽어서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있겠습니까?’
아마 이런 문제를 가지고 왔던 것 같아요.
그러니까 예수님 비약된 대답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고 많이 생략하고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는 것은 고사하고 볼 수도 없다.’ 이렇게 했던 말이죠.
그렇게 하니까 니고데모가 아주 큰 충격을 받은 거죠.
4 니고데모가 가로되 사람이 늙으면 어떻게 날 수 있삽나이까 두번째 모태에 들어갔다가 날 수 있삽나이까
참 너무 어이없는 거죠.
‘거듭난다’ 하는 말이 예수님 이전에는 아무도 해본 적이 없는 말이예요.
그런데 오늘 우리 사회에서 예수 믿지 않는 사람들도 ‘아 우리 정치계가 거듭나야 된다.’ 그런 말을 하죠?
예사로 기업이 거듭나야 한다는 이런 말을 하고, 거듭난다는 말이 예수님이 시작한 말씀인데, 지금은 거의 일반화 되었어요.
그래서,
5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이게 물과 성령으로 난다는 것은 물은 무엇이며 성령은 무엇이냐?
이것을 가지고 또 어떤 분이 물은 육체가 태어나는 것이고, 성령은 영으로 태어나는 것이다.
그래가지고 성도들을 상당히 혼란스럽게 하는 모양인데, 교리 공부를 안 하니까 그래요.
교리적으로는 물은 물세례입니다. 물세례..
그러니까 우리가 ‘사람이 새로워진다, 거듭난다’ 하는 것은 니고데모가 말한 것처럼 우리가 어머니 뱃속에 들어갔다가 다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첫째는 세례를 통해서, 세례는 그냥 물만 끼얹는 세례가지고 세례가 아니고 반드시 회개를 동반하는 구원얻을 만한 회개를 동반하는 세례예요.
그래서 세례요한의 세례를 ‘회개의 세례’라고 말해요.
회개의 세례..
회개라는 말은 헬라어로 기록될 때는 ‘메타노이아’, ‘노이아를 초월’하는 거예요.
이 ‘노이아’ 하는 것은 그야말로 어떤 사고방식 생각 이런 것을 전부 초월하고 그것을 영어로 할 때는 ‘리펜턴스(repentance)’라고 합니다.
완전히 생각과 의식이 확 바뀐다는 겁니다.
여태까지 삶의 사고방식과 삶의 목적까지 근본적으로 바뀌어지는 그런 회개를 동반하는 세례..
그런 세례가 있을 때 거기 성령이 임하셔서 거듭나게 한다는 거죠.
그래서 혹시 이런 경우가 있어요.
모태로부터 그냥 밋밋한 신앙생활을 한 분이 있어요.
모태로부터 그냥 했는데, 내가 거듭났는지 회개를 했는지 구원을 받았는지 지금 살아가다보면 내가 교회를 다니고 있기는 있는데, 아무런 그런 전격적인 체험이 없이 교회를 다니는 분이 있어요.
상당히 많이 있죠. 모태로부터 신앙들이..
우리는 세상에서 제멋대로 살다가 술도 그저 배가 부를 때까지 마시고 담배도 피워보고 하여튼 그렇게 막 되먹게 살다가, 어느 날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 계신 것을 알고,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서 십자가에 죽으신 것을 알고, 그렇게 갑자기 알게 될 때.. 그것도 머리가 굵어서..
그럴 때는 요란한 거야.
여러분 보니까 홍역이나 수두나 볼거리나 이런 것을 어릴 때에 하면 조용히 넘어가는데, 커서 하면 요란하게 하잖아요.
저 같은 경우에 동네가 시끄러울 정도로 요란하게 그렇게 아주 그런 체험이 있는 거죠. 경험이..
완전히 깨어지는 거야. 완전히..
자기의 어떤 자아라든지 고집이라든지 목적이라든지 소원이라든지 희망 이런 것을 다 내려놓고 다 깨어지고 새로운 출발을 하는 거죠.
이런 것을 거듭난다고 하는데, 결국은 거듭난 삶이 뭐냐 하면, 그 삶의 목적 자체가 하나님을 향하는 것이예요.
살든지 죽든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전 삶의 목적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기 위해서 하나님께 감사하면서 모든 의식들이 하나님과 관계된 삶을 살고 있는 사람은, 몇년도 몇월 몇일에 거듭났는지 몰라도 거듭난 거예요.
그런 것으로 약점을 잡아가지고, 우리가 이 예배당을 사오기 전에 이 예배당 사용하던 분들이 바로 그런 것을 노리고 ‘너 거듭났느냐?’
‘글쎄요. 앞으로 잘 하면 거듭나겠죠.’
그러면 바로 걸려듭니다.
당신은 아직 예수 ‘예’자도 모르는 사람이오.
당신은 거듭나지 못했고 당신은 천국가지 못한다. 바로 걸고 들어가는 거야. 그냥..
그게 이른바 구원파라고 해요.
옛날에 중생파 권신찬파 하던 사람들, 바로 이 예배당을 지었던 사람들이 바로 그 계파예요.
거듭났냐고 물어봐가지고 몇년도 몇월 몇일에 몇시에 거듭났는지 모르면 거듭난게 아니라는 거예요.
거듭나는 것은 놔두고 여러분 육체가 태어난 것은 아세요? 나는 잘 몰라..
우리 어머니가 말하기를 음력으로 8월 23일이다 야야..
그래서 그런 줄 알았지 그것도 한참 커서 알았어.
육체가 난 것도 몰라서 커서 알았는데, 영으로 난 것은 바람이 임의로 불면 어디에서 부는지 모르는데 몰라요. 사람이..
아는 사람도 있어요. 요란하게..
저도 그렇게 요란하게 했지만, 그것이 몇년도 몇월 몇일인지 몰라.
온 동네가 요란하게 했는데, 내가 안 적어 놨어. 몇일인지..
그러면 모르는 거예요.
그래서 저는 그런 구원파나 여호와의 증인이나 이런 사람이 오면 그 사람들 찾아올 때까지 못 기다리고 내가 성질이 급해가지고 내가 먼저 가서 물어봤어.
나와 말 씨름을 해가지고 내가 거듭났는지 씨름을 해봐라..
자기들 보더니 이상하네.. 장로교에서는 거듭나는 일이 없는데, 이상하네.. 그러면서..
그러니까 사람이 거듭난다는 것은 첫째는 세례를 받는데, 회개가 동반된 세례죠.
진정한 회개는 어떻게 볼 수 있느냐?
세례를 받은 후에 10년 20년 30년 후 평생을 가도 다시 안 믿는 쪽으로 돌아가지 않는 믿음이 진짜라는 거예요.
어떤 사람은 교회에 한참 다녀보다가 ‘안 맞네’ 하면서 가요.
그런 사람들은 세례 받아도 아무 것도 아니야.
회개가 동반된 세례가 아닌 거야.
진정 자기가 자기 삶을 완전히 부정하고 ‘내가 잘못 살아왔다.’ 하고 이전의 삶으로 다시는 돌이킬 수 없는 거예요.
여러분 세례의 한 비유로 하면, 옛날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 살다가 홍해 바다를 건너왔어요.
홍해 바다가 갈라지게 해서 그 사이를 건너온 후 합해지면 다시 건너가지 못하는 거죠?
다시는 되돌아갈 수 없는 강을 건너 왔지 않느냐?
그런 회개가 있었느냐? 그게 중요한 거예요.
그래서 어떤 유혹이나 어떤 핍박이나 그런게 온다할지라도 다시는 믿지 않던 옛 생활로 돌아갈 수 없는 길에 들어선 사람은 이미 몇년도 몇월 몇일에 거듭났는지 몰라도 이미 다 거듭나서 생활하고 있는 거예요.
그런데 거듭났다고 할지라도 자기의 헌신적 열정은 달라요. 사람마다..
어떤 사람은 줄기차게 끝까지 계속해서 한치도 정말 쟁기를 잡고 뒤도 안 돌아보고 끊임없이 전진하고 성장하고 그러는 거예요.
베드로가 그러잖아요.
믿음에 덕을 덕에 지식을 지식에 절제를 절제에 인내를 인내에 경건을 경건에 형제우애를 형제우애에 사랑을 더하라.
계속 성장하고 성숙해가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어떤 사람들은 모태신앙인데 나태해가지고 그런 사람이 있어요. 그저 제자리 걸음을 하고 있고..
그래서 나중 된 사람이 먼저 된 사람이 많아. 영적인 세계에서 보면..
그런데 제가 목회하면서 겪어보면 우리처럼 중간에서 헤까닥 하고 전격적으로 깨어지고 무너지고 이래가지고 거듭난 사람들은 열성이 대단해 보입니다. 겉으로 볼 때..
다 커서 늦게 믿었으니까..
그런 사람들은 아직도 기초가 불안해요.
인격의 맨 기초속에 신앙으로 다져진게 없어요. 별로..
그러니까 베드로도 여러분 예수님을 갑자기 믿어가지고 ‘내가 죽는 데까지 따라가겠나이다’ 해 놓고 위험 닥치면 바로 세번씩이나 부정하고..
다 커서 믿으니까 그렇다니까..
그런데 모태로부터 어려서부터 부모님 할머니의 기도로 이렇게 자라난 사람은 평소에 별로 열심이 없는 것 같아. 아무리 봐도. 뭐 시키면 못한다고 하고.. 못해요 신앙이야.
그런데 어려움을 겪어 넘어갈 때 보면 달라요.
우리 같으면 굉장히 어려움을 겪고 난리굿을 피울텐데, 그냥 스무스하게 조용히 잘 넘어가는 거예요.
교회에서 큰 어려움 당해도 별로 바람도 안 타..
늦게 믿은 사람들은 교회가 실망스러운 일 하면 이게 교회냐 하고 시험 드는데, 그런데 오래 어려서부터 믿은 사람은 하도 험한 꼴 교회에서 많이 봤기 때문에 별로 시험도 안 들어.. 그런 것을 많이 봤어요.
그래서 일장일단(一長一短)이 다 있어요.
저같이 중간에 살아가다가 삶이 다 무너지고 이렇게 한 사람은 표가 납니다.
예수 안 믿던 사람은 전격적으로 표가 나는데, 기복이 심해요.
그래서 물과 성령으로..
성령이 하시는 일은 모릅니다.
여러분 성령으로 거듭난다고 하니까 데굴데굴 구르고 누가 찌르르 전기가 왔다든지 가슴이 온 몸이 불 담아 놓은 것처럼..
불 담아 본 사람도 있고 안 담아 본 사람도 있어요. 체험이 다릅니다.
우리는 전혀 불 담아보는 그런 것은 없었는데, 무슨 눈물이 그렇게 나는지 몰라요.
한 몇일 동안 눈물이 나는 거야. 왜 우는지 물으면 모르는 거야.
울면서 슬프냐? 이상하게 우는데 속에서는 기뻐요.
그러니까 누가 보면 미친거죠.
울면서 기뻐하니까 그게 미친거지..
그런데 그렇게 사흘 운것 같아.
제가 참 건조한 편이거든요.
눈물 피도 눈물도 없이 그렇게..
딴 애들은 군에 간다고 울고 전방 간다고 울고 눈물이 많아..
그런데 우리는 룰루랄라 하면서 전혀 군대 가는 것 새로운 곳에 간다고 기대감으로 가는데, 전혀 눈물이 없어.
그래서 예수님을 알았을 때 제일 눈물이 그렇게 났어요.
한가지 이유가 있다면 내가 내 스스로 꽤 착하다고 생각했거든요. 예수 믿기 전에..
예수 믿는 너희들 낮에 죄짓고 밤에 회개하고 그러면서 천당가면 나는 만당간다고 하면서 꽤 교만했었는데, 그게 굉장히 통한히 여겨지는 거야.
교만했던 것이..
내 스스로 착하다고 교만했던 것이 굉장히 참 통한히 여겨지면서 눈물이 나는 거야.
그 외에는 왜 우는지 모르겠어요.
이렇게 전격적인 그런 회개를 동반한 그런 세례.. 물세례가 있고,
그리고 나서 성령으로 세례를 받는 거죠.
여러분 세례라는 말이 헬라어로 하면 ‘벱티조’라는 헬라어인데, 이것은 ‘잠근다. 물에 잠기다.’
그것 때문에 침례교가 나온 거죠.
그래서 물에 잠기면 옛 사람이 죽는 거죠?
물세례라는 것은 씻는다하는 의미도 있지만 죽는 거예요.
죽기 때문에 거듭나는 거죠.
물에 들어간다는 것은 옛 사람이 죽었다는 거예요.
예수 믿기 전에 한 사람은 죽은 것으로 간주하고 물에서 올라올 때 새로 나는데, 대부분은 물세례 받는 그 날에 성령으로 거듭나는 사람이 있습니다.
물세례와 함께 동시에 성령을 받아요.
그런데 그 때는 세례라든지 학습이나 문답이 진실해야 돼요.
정직하고 진실한 문답일 때 인격적인 문답일 때 물세례와 함께 성령으로 거듭나게 되는 거예요.
거듭나게 되면 그 이전의 삶과 달라요. 누가 봐도..
그래서 성경 말씀을 나누거나 창세기부터 계시록까지 진리를 말하면 진리가 들립니다.
제가 그런 거듭나는 체험을 하기 전에는 내가 남의 말귀도 못 알아듣는 그런 숙맥은 아닌데, 무슨 설교를 한마디도 못 알아듣는 거예요. 단 한마디도..
철학자가 뭘 말하면 반짝반짝하고, 성경에 몇장 몇절 하면 하나도 모르고 저게 무슨 소리인지..
그러다가 거듭남의 체험을 한 후에는 성경 말씀이 100% 들리는게 아닙니다.
200% 들리는 거야. 300%도 들려요. 숫자로 표현하는 것은 의미가 없습니다만, 충분히 알아듣고 그보다 더 폭이 넓어져가지고 내가 깨달은 것을 교회에 가서 전도사님께 얘기하면 전도사님이 감동을 받는 거야.
첫째가 귀가 열리는 거야. 귀가 열려서 하나님 말씀이 들리는 거야.
그래서 그 때 깨달은 것이 믿음이 들음에서 난다는 말도 맞는 말이고, 들려야 믿음이 생기는 거예요.
하나님 말씀을 알아듣는 거예요.
거기다가 그러면서도 아직은 지식이 너무 일천하기 때문에 거듭났다고 해서 성경을 한꺼번에 다 보여지는게 아니고, 단계적으로 열리고 보이고 하는데, 그 사람이 소화할만큼, 이해하고 소화할만큼씩 열어져가지고 성경이 탁 뚫리고 열리고 하나님 말씀이 인격적으로 우리에게 들려온다는 거예요.
이게 성령으로 거듭난 사람의 모습들이죠.
..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6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성령으로 난 것은 영이니
7 내가 네게 거듭나야 하겠다 하는 말을 기이히 여기지 말라
8 바람이 임의로 불매 네가 그 소리를 들어도 어디서 오며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나니 성령으로 난 사람은 다 이러하니라
표가 납니다. 나는데, 눈으로 보이는 것은 아니고, 여러분 바람이라는게 소리는 나지만, 바람이 불면 소리도 나고 감각도 있고 갈대가 흔들리고 파도가 치고 하지만 바람 자체는 보이지 않는 거죠.
9 니고데모가 대답하여 가로되 어찌 이러한 일이 있을 수 있나이까
지금 전혀 대화가 안 되죠.
10 예수께서 가라사대 너는 이스라엘의 선생으로서 이러한 일을 알지 못하느냐
11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우리 아는 것을 말하고 본 것을 증거하노라 그러나 너희가 우리 증거를 받지 아니하는도다
‘너희’는 바리새인들 전체죠.
12 내가 땅의 일을 말하여도,
땅에서 실제로 경험하는 일을 말하여도,
.. 너희가 믿지 아니하거든 하물며 하늘 일을 말하면 어떻게 믿겠느냐
13 하늘에서 내려온 자 곧 인자 외에는 하늘에 올라간 자가 없느니라
여러분 지금도 아직까지 아무도 천국에 올라간 사람이 없어요.
전부 낙원이라는 곳에 일정기간 영으로 있다가 우리가 정말 천국에는 부활한 후에 신령한 몸을 입고 그리고 천년 왕국 다 지나간 후에 새 예루살렘에 들어가는 거예요. 그게 영원한 천국이죠.
그러니까 예수님 외에는 정말 진정한 천국에 있던 분이 없다는 말이죠.
14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
‘윅소스’라는 말이 들린다, 높이 사람들 볼 수 있는 곳으로 들려 올려진다는 건데,
15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여기에서 세가지 얘기가 나왔어요.
첫째는 물로 물세례로 거듭나게 되고, 또 물세례와 함께 성령이 임하여 성령세례로 거듭나게 되는데, 그렇게 되면 어떻게 되느냐?
예수님을 믿게 된다는 겁니다.
모세가 뱀을 든 것처럼 예수님이 이렇게 십자가에 달리거나 아니면 들려올라가거나 이런 것을 보면서 믿게 되는데, 그 믿는 자마다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답이 다 나왔어요.
니고데모가 지금 알고 싶어 하는 답이 다 나왔는데, 예수님께서 여기까지 하면 답이 다 나왔음에도 불구하고 부연해서 말씀을 하신는데,
이렇게 된 모든 것이,
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서 예수님을 믿게 되어서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는 이것이 뭐냐, 이처럼 사랑하셨다는 거예요.
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그러니까 반드시 물로 베푸는 세례, 회개를 동반한 세례를 받고 성령으로 거듭나서 예수님을 믿음으로서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된다. 하는게 니고데모가 알고 싶어하던 답이 다 나오는 거죠.
17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왜 이 말을 하느냐?
유대인들의 사고방식에는 ‘메시야가 왔다면 봐라. 로마나 헤롯왕이나 다 세상을 확 심판하고 유대인이 그냥 세계 최고민족이 된다.’ 이런 소원과 욕심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예수님이 온 것은 그렇게 온 것이 아니라, 그렇게 할려고 온게 아니라는 거예요.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로마를 심판하거나 헤롯을 심판하거나 믿지 아니하는 이방인을 심판할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 저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
18 저를 믿는 자는 심판을 받지 아니하는 것이요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의 독생자의 이름을 믿지 아니하므로 벌써 심판을 받은 것이니라
19 그 정죄는 이것이니 곧 빛이 세상에 왔으되 사람들이 자기 행위가 악하므로 빛보다 어두움을 더 사랑한 것이니라
여러분 빛보다 어두움을 더 사랑하고, 회개하고 죄를 드러내고 죄를 버리는 것보다 죄를 즐기고 그렇게 하는 사람들은 곤란해요.
아무리 하나님이 사랑의 하나님이지만, 끝까지 죄를 끌어안고 죄를 즐기고 죄와 짝하고 그러면서 천국까지 가겠다. 그런 것은 안 된다는 거예요.
그리고 회개를 동반하는 세례라는 것은 철저하게 옛 사람이 죽어져야 돼요.
.. 빛이 세상에 왔으되 사람들이 자기 행위가 악하므로 빛보다 어두움을 더 사랑한 것이니라
죄를 어지간히 지어야 되지, 너무 많이 지으면 교회에 잘 못 나와요.
우리 교회는 보니까 과일 나무가 없어서 참 다행인데, 예배당 근방에는 과일 나무 안 심는게 좋아요.
괜히 그것 따먹고 찔려가지고 교회에 못 나온다니까..
진짜예요. 그것 따먹어도 괜찮거든요.
그런데 괜히 그것 때문에 찔려가지고 교회에 못 나오는 거야.
그래서 사람이 교회에 나오는데 걸림돌이 될 만한게 있으면 치워야 돼요.
제사장들이 옛날에 요단강 동편에 세곳 서편에 세곳, 구원의 도피성이라고 살인자의 도피성이 있었잖아요.
도피성의 담당 제사장은 도피성으로 달려오는 길에 돌이 있으면 돌을 치운다는 거야.
마찬가지로 우리가 교회에 나오는데, 혹시라도 뭐 찔리는게 있으면 곤란하니까.. 그런게 없다고 할 필요가 있는 거죠.
자기 행위가 악하면 빛보다 어두움을 더 사랑하는데,
20 악을 행하는 자마다 빛을 미워하여 빛으로 오지 아니하나니 이는 그 행위가 드러날까 함이요
21 진리를 좇는 자는 빛으로 오나니 이는 그 행위가 하나님 안에서 행한 것임을 나타내려 함이라 하시니라
그래서 결국은 모르겠어요.
여기 오신 여러분들이 얼마나 선한지 착한지 잘 모르지만, 그래도 드러낼 죄가 엄청나게 있으면 못 나옵니다. 찔리고 겁나가지고..
그런데 여기 오면 그렇게 성자급으로 착한 것은 아니라도 별로 죄는 안 지었을거예요. 그렇죠? 안 그런가?
그렇게 끔찍한 죄를 지으면 못 나옵니다. 사람이..
죄가 드러날까 싶어서 잘 못 나옵니다.
그래서 믿는다고 해서 다 착한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평균적으로 볼 때 비교적 착합니다. 실제로..
그래서,
21 진리를 좇는 자는 빛으로 오나니 이는 그 행위가 하나님 안에서 행한 것임을 나타내려 함이라 하시니라
그리고 여기까지가 니고데모가 찾아와서 있었던 얘기가 한 단락이 되고,
22절부터는 세례요한이 자기 사역을 끝내어갈 때 즈음에 마지막 증언같은 말씀인데,
22 이 후에 예수께서 제자들과 유대 땅으로 가서 거기 함께 유하시며 세례를 주시더라
세례를 주는게 예수님도 세례를 주고 세례요한도 세례를 주는데, 전부 다 회개를 동반하는 세례죠. 회개의 세례..
23 요한도 살렘 가까운 애논에서,
‘애논’ 하는 곳은 ‘스키도폴리스라고’도 하고 옛날 구약시대에는 벧산이라고도 하는 곳입니다.
거기에서 한 30리 떨어진 곳에 애논이라는 요단강 강가에 거기에서 세례를 주는데 거기에 물이 많으니까..
.. 세례를 주니 거기 물들이 많음이라 사람들이 와서 세례를 받더라
24 요한이 아직 옥에 갇히지 아니하였더라
25 이에 요한의 제자 중에서 한 유대인으로 더불어 결례에 대하여 변론이 되었더니
26 저희가 요한에게 와서 가로되 랍비여 선생님과 함께 요단강 저편에 있던 자 곧 선생님이 증거하시던 자가 세례를 주매 사람이 다 그에게로 가더이다
하면서 지금 세례를 당신이 주는데, 왜 또 예수님께 가서 세례 받습니까?
이렇게 이야기를 하니까,
27 요한이 대답하여 가로되 만일 하늘에서 주신 바 아니면 사람이 아무것도 받을 수 없느니라
28 나의 말한 바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요 그의 앞에 보내심을 받은 자라고 한 것을 증거할 자는 너희니라
29 신부를 취하는 자는 신랑이나 서서 신랑의 음성을 듣는 친구가 크게 기뻐하나니 나는 이러한 기쁨이 충만하였노라
30 그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 하니라
대단한 얘기죠.
이런 기쁨을 ‘들러리의 기쁨이다’ 그런 말도 해요.
정작으로 신랑이 제일 기뻐하겠지만, 들러리도 기뻐하는 것을 세례요한이 자기는 그저 들러리에 불과하다. 선구자에 불과하다. 하면서 지금 나이가 불과 30밖에 안 된 세례요한이 ‘예수님은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
‘나는 조용히 사라져야 될 사람이다.’ 이렇게 이야기 하는 거예요.
대단하지 않습니까?
까딱하면 경쟁의식이나 이런 의식이 생길텐데 전혀 아니고, 자기는 신랑이 아니고 자기는 들러리에 불과하다. 그러면서 예수님은 흥하여야 하겠고 자기는 쇠하여야 하리라. 이렇게 하는 거죠. 대단한 얘기죠.
31 위로부터 오시는 이는 만물 위에 계시고,
이 이야기는 세례요한 같지 않죠. 사도 요한의 예수님에 대한 증언 같아요.
31 위로부터 오시는 이는 만물 위에 계시고 땅에서 난 이는 땅에 속하여 땅에 속한 것을 말하느니라 하늘로서 오시는 이는 만물 위에 계시나니
32 그가 그 보고 들은 것을 증거하되 그의 증거를 받는 이가 없도다
요한이 지금 AD90년 경에 요한복음을 쓰면서 회고하면서 이렇게 생각했다는 거야.
위로부터 오시는 분은 예수님이죠.
만물 위에 계시고, 땅에서 난 자는 땅에 속하여 땅에 속한 것을 말한다. 세례요한이겠죠.
.. 하늘로서 오시는 이는 만물 위에 계시나니
32 그가 그 보고 들은 것을 증거하되 그의 증거를 받는 이가 없도다
하고 애가 타는 말씀을 쓰고 있어요.
33 그의 증거를 받는 이는 하나님을 참되시다 하여 인쳤느니라
여러분 우리가 믿는다 할 때, 믿고 우리가 알면 참 좋겠는데, 아는 것도 제한돼요.
우리가 하나님을 알면 얼마나 알겠어요?
땅에서 흙집에 사는 인간이 콘크리트 벽 속에 갇힌 인간이 하나님을 얼마나 알겠어요?
그렇지만 다 아는 것은 아니지만, 알아야 할만큼 알고 믿어서 하나님은 참되시다..
심지어 요즈음 어떤 사람들은 성경을 읽어보더니 진멸하고 멸절하리라는 말이 많이 나오거든요. 성경에..
그것을 다 세는 거야. 인내심도 대단한거야.
그것을 다 세어가지고 ‘봐라 하나님은 이렇게 잔인한 하나님이다’ 그러면서 그런 것을 볼 때, 기독교 하나님은 못 믿겠다고 하는 거야.
요즈음은 그런 글들이 끝없이 나와요.
그러니까 우리가 하나님을 참으로 믿는 사람은 하나님의 증거는 참되시다 하고, 그리고 한편 강도 있잖아요.
똑같이 십자가에 못 박혔는데 예수님을 참되시다고 한 거야.
하나님은 참되시고 예수님은 참되시다.
심지어 구약성경에 하나님께서 진멸한다는 말이 많이 나오고, 또 그렇게 많은 사람을 하나님께서 정말 죽여버렸는데, 그래도 하나님 하신 일이 옳다 이렇게 믿어져야 믿음이라는 거예요.
하나님이 하신 일이 옳지 않는 것은 없다. 이렇게 믿어져야 돼요.
심지어 마귀가 지옥으로 갈 때도 ‘하나님의 재판은 공정합니다. 하나님 만세!’하고 자기는 지옥으로 가는 거야.
그렇게 되어야 믿음이라는 거예요.
하나님이 하신 것 중에 옳지 않은 것이 없다. 이렇게 믿어져야 되는데, 믿음이 없는 사람들은 하나님이 사람을 죽였다는 거야.
죽였죠. 왜 죽였느냐? 죽을 만하니까 죽인 거예요.
그렇게 말하는 것도 죽어야 돼요. 사실은..
살아있는 것만 해도 감사해야 돼요.
사실로 냉철하게 말하면 2천년 전에 지구라는 별은 끝장나버릴뻔 했잖아요.
예수님께서 우리 세상 죄를 짊어지고 십자가에서 희생되었기 때문에 역사가 연장되어가지고 2009년까지 온 것이지, 그렇지 않으면 태어나지도 못하는 거야.
그런 것도 모르고 진멸하라고 했다고 ‘하나님은 잔인하다. 종교는 잔인하면 못 쓴다.’
그런 요새 안티 사이트를 운영하면서 굉장히 떠들어요.
성도들이 하나님을 정말 제대로 알고 인간이 얼마나 악한지를 알면 그런 말 못해요.
하나님이 참되시다 해야 믿음이라는 거예요.
앞으로 더 많이 죽일건데.. 앞으로는..
어디가서 믿느냐? 지옥가서 믿는 거예요.
‘야 하나님이 맞네.’ 그러면 늦었다는 거예요. 벌써..
이 땅에서 제대로 공부를 해가지고 이 세상에 있는 사람들 다 죽여도 하나님의 공평은 흔들리지 않습니다.
‘죄의 삯은 사망이요’ 하는 법에 아무도 항의를 못해요.
그래서 ‘하나님을 참되시다’ 하여 인 쳤다. 그런 사람이 인 맞았다는 거야.
34 하나님의 보내신 이는 하나님의 말씀을 하나니,
하나님의 보내신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을 한다는 거예요.
.. 이는 하나님이 성령을 한량없이 주심이니라
또 성령을 한량없이 받은 사람이라야 하나님의 말씀을 할 수 있어요.
성령을 한량없이 안 받은 사람은 하나님 말씀을 하지 않고 자꾸 자기 말을 한다니까..
그러면 곤란해요.
제가 이따금 방송으로 하는 설교를 보면 하나님 말씀이 아녜요.
그냥 목회자가 설교를 하는데도 자기가 하고 싶은 얘기를 하는 거야.
잘못된 거죠.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고자 하는 것이 흘러나와야 돼요.
이게 요한이 볼 때 아주 요한은 애매한 것은 용납하지 않는 사람이야. 아주 클리어 해야 하니까..
34 하나님의 보내신 이는 하나님의 말씀을 하나니 이는 하나님이 성령을 한량없이 주심이니라
35 아버지께서 아들을 사랑하사 만물을 다 그 손에 주셨으니
36 아들을 믿는 자는 영생이 있고 아들을 순종치 아니하는 자는 영생을 보지 못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진노가 그 위에 머물러 있느니라
그래서 두가지입니다.
세상에서 사람은 두가지밖에 없어요.
하나님의 진노를 통해서 멸망되는 사람이냐?
하나님을 참되시다 해서 하나님을 믿고 그리고 죄사함 받고 영생을 얻을 사람.. 두가지예요.
중간 입장은 없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중간이 없다는 거예요.
그래서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자는 영원한 생명이 있고, 그래서 여기 3장에 니고데모가 입에 꺼내기도 전에 인사치레 이렇게 할 때, 예수님께서는 그 사람이 가지고 온 질문의 주제를 간파하시고는 바로 사람이 거듭나야 된다.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서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시인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때 이렇게 믿은 사람은 영원한 생명이 있고, 아들을 순종치 아니하는 자는 영생을 보지 못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진노가 임한다.
영원한 생명만 얻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진노가 그 위에 머무른다.
두 가지 밖에 없어요.
영생을 받을 사람이냐?
여러분 영생을 받을 사람은 마지막에 계시록에 가서 보면 휴거가 됩니다.
휴거가 되고, 휴거되지 못하는 사람은 남았다가 일곱 대접의 진노를 퍼마셔야 돼요.
하나님의 진노의 일곱 대접을 마시게 돼요.
그래서 믿음이라고 하는 것은 단지 ‘믿습니다, 믿습니다’ 하는게 아니라, 회개를 동반한 세례, 물세례..
처절한 회개, 옛 사람이 죽어야 돼요.
지금 우리 교단에서도 침례가 공식적으로 허용이 되었어요.
전에는 침례하면 침례교 되는가 싶어서 겁나서 못했는데, 그것도 웃기는 거죠.
성경에 엄연히 ‘침례’라고 되어 있는데, 못하게 하는 것은 뭐요?
물론 겨울에 추운데 침례하다가 심장마비 걸리면 곤란하지만, 그래서 못하게 했는지 모르겠는데, 지금은 교회가 그만큼 성숙했으니까 침례해도 침례하다가 물에 빠져 죽는 사람 없을 것이다. 그래서 침례가 허락되었어요.
그래서 앞으로 우리 샤론교회도 침례를 해볼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우리 교단에서 허락 했으니까..
침례를 하는데 어떻게 하느냐?
저 지리산 경호강에 가서 완전히 물 밑에 집어넣어서 뽀그락 뽀그락 해서 옛 사람은 완전히 죽은 것처럼 저 건너편에 가서 전기 충격기로 펑하면 깨어나게..
옛 사람은 확실히 죽었고 너는 거듭 난 것이다.
물 한방울 끼얹으니까 잘 안 죽어요.
옛 사람이 죽어야 되는데, 안 죽고 살아가지고 자아가 안 깨어지는 거야.
정말 회개를 동반한 그런 세례를 통해서 그리고 그 때에 성령이 임하셔서 새로운 삶을 살게 되고,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어서 영생에 참여할 수 있는 우리 모두가 될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우리가 죄 가운데에서 어두움 가운데에서 그렇게 허우적거리며, 어디로 끌려가는지 알지 못하고 그 악한 어둠의 권세가 끄는 그대로 끌려가고 있는 우리들, 미신에 빠져있고 우상숭배에 빠져있고 자기 욕심의 노예가 되었던 우리들을 하나님께서 건져 주시고,
우리로 하여금 이 복된 말씀을 들어서 회개를 동반한 세례에 참여하게 하시고, 성령에 연합되어서 새생명 가운데 행하게 하심을 감사합니다.
아직도 우리 가운데 이런 은혜에 이르지 못한 사람들, 거듭나지 못한 사람들이 있다면 진실한 회개와 함께 성령이 임하시고, 성령의 사람 하나님의 사람들이 다 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