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역반장 월례연수] 구약 안에서 희년 : 레위기 25장 8-55절
1. 레위기 신앙
우리 교회가 기념하는 희년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온전히 실현된 구원의 체험을 기념하기 위한 것이지만, 그 희년의 뿌리는 구약성경에 두고 있기에, 희년이 유래한 구약 전통 안에서 희년의 의미를 살펴보고자 합니다. 이를 위해 레위기 전반에 걸쳐 신앙의 문맥을 살펴보고, 이어서 레위기 25장의 희년에 관한 말씀에 집중할 것입니다.
먼저 희년을 규정하는 25장을 잘 이해하기 위해 더 큰 맥락에서 시작하려 합니다. 즉 레위기에 대해서 간략하게 알아봅시다. 레위기가 쓰여진 시기는 기원전 587년 유다가 바빌론에게 멸망한 이후이지만 레위기의 시대적 배경은 이스라엘인이 이집트를 탈출하여 시나이 반도에 머물고 있을 때입니다. 사제계 그룹에 의해 기록된 레위기는 유배 중에 있는 백성에게 선택된 민족으로서의 정체성을 강조하고, 하느님의 힘에 의한 제2의 탈출의 희망을 보여 주고 있으며, 이 하느님의 힘은 그들이 거룩하게 살 때 나타나게 될 것이라고 말합니다.
따라서 레위기는 이집트 탈출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습니다. 증언 궤를 만들고, 만남의 천막을 세운 다음(탈출 40,20-22 참조) 그곳을 주님께서 당신의 성소로 받아들이신다는 탈출기 끝부분과 레위기 1장 1절의 “주님께서 모세를 부르신 다음, 만남의 천막에서 그에게 말씀하셨다.”라는 구절은 하나로 연결됩니다. 이전에는 주님께서 산으로 모세를 불러 말씀하셨지만, 시나이산에서 이스라엘 백성과 계약을 맺어 이들을 당신 백성으로 삼으신 후에는 만남의 천막에서, 즉 이스라엘 공동체 안으로 내려오시어 그들 삶의 한 가운데서 가르침을 주시게 된 것입니다. 여기에 레위기의 핵심, 오경 전체의 핵심이 나타납니다. 신약에 이르러, 이 만남의 천막에서 말씀하신 하느님이, 사람이 되시어 우리 가운데 사신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시라고 요한 복음은 선포합니다.
탈출이라는 구원 사건은 일회적 체험이 아닙니다. 이 구원 체험을 제사에 관한 법(1-10장), 정한 것과 부정한 것에 관한 규정(11-15장), 성결법(17-26장)으로 규정하여 살아가는 동안 계속적인 체험이 될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즉 이집트로부터의 탈출 사건과 시나이산에서의 하느님 현현사건을 경신례와 율법을 통해 지금 이 자리에서도 체험하고 살아갈 수 있게 된 것입니다. 경신례란 공동체가 하느님께 드리는 공적인 최고의 예배행위로써, 이 순간 하느님의 구원 사건을 기억하고, 이 기억을 통해 노예생활로부터 해방되는 탈출 사건이 재현되는 것입니다.
또 정한 것과 부정한 것에 관한 규정은 이 구원사건이 가정의 먹거리, 출산에서부터 사회전반에 걸친 제도(성결법, 안식년, 희년)에 이르기까지 나타나고 실현될 수 있도록 정해진 가르침이라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오경 안에서 레위기의 역할은 탈출이라는 구원사건을 보존하고 재현하는 것으로, 이스라엘 공동체가 진정한 의미의 해방 공동체가 되고, 가정에서부터 시작하여 매일의 삶이 거룩한 경신례가 되어야 함을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 경신례에 관한 규정들은 이스라엘 백성의 삶 속에서 사회정의와 이웃사랑에 대한 실천을 요구하는데, 이러한 정신은 특별하게 레위기 25장의 희년 정신에 드러납니다. 그래서 레위기의 핵심 정신은 희년의 실천에 담겨져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바로 이와 같은 큰 맥락 안에서 레위기 25장의 희년에 관한 정신을 이해해야 하겠습니다.
2. 레위기 25장 8-55절에 나타난 희년의 내용들
2.1. 희년의 법 선포(25,8-13)
“너희는 안식년을 일곱 번, 곧 일곱 해를 일곱 번 헤아려라. 그러면 안식년이 일곱 번 지나 마흔아홉 해가 된다. 그 일곱째 달 초열홀날 곧 속죄일에 나팔 소리를 크게 울려라. 너희가 사는 온 땅에 나팔 소리를 울려라. 너희는 이 오십 년째 해를 거룩한 해로 선언하고, 너희 땅에 사는 모든 주민에게 해방을 선포하여라. 이 해는 너희의 희년이다. 너희는 저마다 제 소유지를 되찾고, 저마다 자기 씨족에게 돌아가야 한다.”(레위 25,8-10)
레위기 25장 8-10절은 희년에 관한 말씀의 요약이고 핵심이라 할 수 있습니다. 먼저 희년을 계산하는 방법과 기본적인 성격이 나타나 있습니다. 즉, 희년은 이스라엘이 가나안에 들어가고 땅을 분배받은 다음부터 일곱 번째 맞는 안식년이 지난 다음의 해가 됩니다. 희년에는 잃은 땅을 찾고, 종이 자유를 얻으며, 모든 빚은 탕감됩니다. 이렇게 하여 희년은 이스라엘의 빈부의 차이를 없애고 자유와 평등을 유지시키는 제도였습니다.
희년에 관한 가장 중요한 핵심 단어는 25장 10절에 나타납니다. 즉, ‘해방’을 선포하는 것입니다. 희년은 무엇보다도 해방의 체험입니다. 해방은 ‘자유’라는 말이며 이 자유는 삶의 모든 영역에서 체험되는 것입니다. 즉, 희년에는 토지가 원주인에게 돌아가고 노예들은 해방되어 자유를 얻게 됩니다. 이 희년의 진정한 자유는 “죄의 종살이에서의 자유”로서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참된 자유로 완성될 것입니다.
희년에 행해야 할 일들이 13절부터 17절까지 나옵니다. 대표적으로, “제 소유지를 되찾아야”(13절)합니다. 이 소유지는 가나안 땅에 들어오고 각 지파별로 분배받은 것입니다(여호 14-21장 참조). 여기서 땅의 분배는 하느님의 약속의 실현(여호 21,43 참조)이라는 깊은 신앙의 뜻이 담겨져 있습니다. 그래서 이 땅은 자손에게 대대로 이어졌고, 매매가 금지되었습니다. 그러나 후대에 사람들이 이를 매매하였고, 그래서 자기땅을 팔고 다른 곳에서 살던 사람이 희년이 되어 원땅에 돌아온다는 것입니다.
2.2. 땅에 관한 법(25,23-28)
이스라엘은 하느님 곁에 머무르는 이방인이고 거류민일 따름입니다(레위 25,23 참조). 이 부분에서 토지의 소유에 관한 중요한 기본 원칙들이 제시됩니다. 즉 땅의 주인은 오직 하느님이시며, 그러므로 땅을 자기 소유인 것처럼 여기며 팔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토지 거래는 이스라엘에서 실재적으로 있었고, 이로 인해 빈익빈 부익부 현상이 생겨나게 되었습니다. 가난한 이들의 커지는 고통의 현실에서 하느님께서는 희년을 맞이하여 토지를 소유자에게 돌려주어야 할 것을 선포하십니다. 이것은 하느님께서 하느님으로서, 즉 땅의 참주인으로서 권리를 행사하시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희년의 대전제입니다. 이를 따라 이스라엘 백성은 땅이 타인의 손에 넘어가지 않도록 하였으며, 부득이하게 땅을 팔았더라도 혈족 안에 머무를 수 있도록 배려해줬습니다. 이는 ‘고엘’ 제도로 나타나는데 ‘고엘’이란 가족의 권리를 유지하거나 그 연속성을 보존하기 위해 그 문제에 개입하는 혈족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이는 더 나아가 구원자 개념으로 발전합니다(25절 참조). 예수님을 통해 우리는 아버지 하느님을 모시는 형제자매가 되었고, 그렇기에 우리 모두는 내 옆의 형제자매의 고통과 아픔을 적극적으로 ‘사야하는’ ‘고엘’로 불리움을 받았다는 것이 중요합니다. 우리도 누군가의 구원자라는 묵상을 할 수 있습니다.
3. 맺음글
레위기 25장의 말씀이 길고 조금은 어려울 수 있지만 지금까지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나머지 부분도 계속해서 잘 읽어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이어지는 주택문제, 그리고 가난한 이에 대한 도움의 중요한 문제, 종의 해방문제들이 바로 희년의 중요한 정신이기 때문입니다. ‘해방의 체험’인 희년은 바로 땅은 하느님의 것이고 이스라엘은 거류민이고 주님의 종이라는 점을 기억하며 다음달부터 신약과 예수님 안에서 희년의 발전과 실현을 살펴보겠습니다.
[소공동체와 영적 성장을 위한 길잡이, 2024년 3월호, 이정민 신부(사목국 교육지원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