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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창골산 봉서방 원문보기 글쓴이: 한상원목사
PW : 믿음 BIW : 거룩함을 가지라 AG : 성도
TS : 믿음이란 하나님의 백성으로 합당하게 하늘의 신령한 세계를 갈망하며 살아가는 것이다.
가장 중요한 것
어느 대학의 수학과 수업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교수님은 강의실에 들어오자마자 칠판에다가 ‘2, 4, 8’이라고 적은 뒤 학생들에게 물었습니다.
“이것의 답은 무엇일까?”
학생들은 앞다투어 손을 들고 말했습니다.
“14입니다. 앞에서부터 더했습니다.“
”제가 보기엔 수열 같습니다. 다음의 올 수를 맞추어야 하는데, 그러므로 답은 16입니다.”
“수열에 곱하기를 응용한 문제 같습니다. 64가 답입니다.”
모든 학생의 답을 들은 뒤에 교수님께서 입을 열었습니다.
“모두들 답을 찾는 데만 혈안이 되어 있구먼, 자네들은 가장 중요한 것을 잊었네.
도대체 어째서 문제가 무엇이냐고 묻는 사람이 단 한 명도 없단 말인가?
문제를 모르는데 어떻게 답을 찾을 수가 있겠나?”
그렇습니다.
올바른 답을 찾기 위해선 먼저 문제가 어떤 것인가를 올바로 알아야 합니다.
눈부신 성공, 부의 축적, 행복한 인간관계, 높아올라가려는 권력과 권세, 명예 등등 이 모두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인생의 요소입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도대체 그런 것들이 왜 필요한가 하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들은 무엇을 위해서, 무엇 때문에 이렇게 피땀 흘리며 정신없이 노력하고 있는지, 그 이유가 무엇인지 생각하며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올바른 삶의 방향이 설정되지 않으면 방향을 잃어버리고 추락하는 비행기와 같습니다.
비행기가 방향을 잃어버리면 곧바로 추락하여 대형사고를 당하게 되듯이, 신앙인들의 삶은 오직 삼위 하나님의 나라와 영광을 위해서 살아야 합니다.
오늘 드려지는 예배는 오직 하나님께 영광과 찬양과 경배를 올려드리는 예배의 시간이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P4.
국회에서 식용개고기를 더 이상 도살할 수 없도록 하는 법안을 만든다고 한다.
육식은 개고기나 돼지고기나 소고기나 염소고기나 말고기나 오리, 닭, 거위 등등 모든 짐승은 다 똑같다.
굳이 개고기가 아니라도 소고기나 염소나 돼지나 오리나 닭고기를 먹어도 충분히 육식을 취할 수 있기 때문에 혐오스런 개고기를 더 이상 식용으로 먹을 수 없도록 금지시킨다는 것이다.
식용개고기를 도살할 수 없는 법안을 만든다면 개고기로 먹고 살아가는 국민들의 삶의 터전을 송두리째 빼앗아 가는 꼴이 된다.
평생 개고기를 가지고 음식점을 삶의 터전으로 살아가던 국민들의 기본적인 생활권을 송두리째 빼앗아야 할 만큼 중대한 문제일까?
대한민국은 헌법으로 자유로운 삶을 보장하는 나라이다.
자유에는 음식에도 포함된다.
호불호에 따라서 개고기를 먹기 싫으면 안 먹으면 되는 것이고, 개고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얼마든지 먹을 수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우리 한민족은 소고기나 돼지고기를 무척이나 좋아하지만, 어느 지역이나 민족은 종교적인 신념으로 인하여 소고기나 돼지고기를 먹지 않는다.
흰두교 지역에서는 소고기에 대하여, 이슬람교와 유대교에서는 돼지고기에 대하여 아주 엄격하게 규제한다.
지금 축구 아시안컵이 진행되는 카타르는 이슬람국가이기 때문에 돼지고기를 먹을 수 없다고 한다.
우리나라는 본래부터 돼지고기를 많이 먹는 민족이기 때문에 축구 선수들도 돼지고기를 먹어야 힘을 쓸 수 있다.
그런데 카타르에서는 돼지고기로 요리할 수 없는 나라이기 때문에 한국 선수들이 머물고 있는 호텔에서는 한국에서 요리사가 파견되어 선수들을 위하여 음식을 만들고 있는데, 콩으로 만든 돼지고기로 요리하여 먹고 있다고 한다.
우리나라는 종교적인 신념도 아니고, 민족 문화적인 신념도 아니고, 단지 세상 사람들이 말하는 반려동물이라는 허울 좋은 미명으로 인하여 더 이상 개고기를 식용할 수 없도록 규제한다는 것은 과연 옳은 처사일까?
애완용 동물을 식용으로 먹겠다는 것이 아니다.
식용할 수 있는 개를 키워서 식용하겠다는 것인데, 왜 굳이 머리 좋기로 유명한 자들이 모인 국회에서 개고기를 도살할 수 없는 법을 만들어야 하는 것인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서 자신들의 취향과 호불호에 의해서 먹든지, 먹지 않든지 판단할 수 있도록 선택의 자유를 허락해야 옳은 일이다.
음식에 대하여 특히 육식에 대하여 하나님께서는 율법 시대에 살았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무엇이라고 말씀하고 계시는가?
여호와 하나님께서 하시는 말씀은 율법 시대에 살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해당하는 말씀이다.
율법 시대가 아니라 예수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심으로 모든 율법의 굴레에서 해방 받고 자유 함을 누리는 은혜의 시대에 살고 있는 신앙인들에게는 어떤 의미로 수용해야 할까?
D4.
① 하나님의 성민이라고 선포해 주시는 하나님.
하나님께서 2절에서 “너는 네 하나님 여호와의 성민이라. 여호와께서 지상 만민 중에서 너를 택하여 자기 기업의 백성으로 삼으셨느니라.”라고 말씀하신다.
21절에서도 “너희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의 성민이라.”라고 말씀하신다.
그런가 하면 1절에서는 “너희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자녀이니,”라고 말씀하신다.
언제나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하여 거룩하신 하나님의 자녀요 성민이라고 불러 주시는 것이다.
하나님의 거룩한 자녀요 성민이기 때문에 세상의 원리를 따라서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거룩한 자녀요 성민답게 살라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우리 주님께서는 우리 신앙인들을 향하여 언제나 내 백성이라고, 내 제자라고, 내 사람이라고 인정하고 불러 주신다.
하나님 앞에서 도무지 구원받을 자격이 없는 죄인임에도 불구하고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 보혈과 복음을 믿는다는 고백 하나 때문에 의인이라고 불러 주신다.
우리 주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면서 흘리신 보혈로 값 주고 산 주님의 몸된 교회요 성전이기 때문에 언제 어디서나 항상 우리들을 향하여 주님의 거룩한 백성이라고, 성도라고 불러 주신다.
신앙인들을 향하여 거룩한 천국의 백성이라고 인정해 주신다.
② 하나님의 백성답게 장례식도 진행하기를 원하시는 하나님.
하나님께서는 1절에서 “너희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자녀이니 죽은 자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베지 말며 눈썹 사이 이마 위의 털을 밀지 말라.”라고 말씀하신다.
중동지역에서는 장례식이 발생했을 때, 그 사자에게 존경이나 헌신이나 애정의 표시로 자신의 몸을 드린다는 의미로 몸에 상처를 낸다든지, 머리를 깎는다든지, 눈썹을 민다든지 하는 행위를 하는 이들이 있었다.
이런 일들은 고고고고고대사회에 중동지역에서 일반적으로 있었던 풍속들 중에 하나이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사람의 주인은 여호와 하나님이시고, 특별히 이스라엘 백성들은 여호와 하나님의 거룩한 자녀들이기 때문에 자신의 몸은 자신의 것이 아니다.
자신의 육신은 여호와 하나님의 것이라는 주인의식에 의해서 죽은 자를 위한다는 명목으로 자신의 몸을 고통스럽게 해서는 안 된다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장례식은 인간적으로 더 이상 만날 수 없는 헤어짐과 이별이지만, 생명의 주인은 여호와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이다.
죽은 사람의 생명도 여호와 하나님께서 주인이시고, 살아 있는 사람의 생명도 여호와 하나님께서 주인이라는 사실이다.
한 생명을 거두어 가시는 분도 여호와 하나님이시고, 남아 있는 사람의 생명도 여호와 하나님께서 주인이시기 때문에 죽은 자를 위하여 남아 있는 사람의 육신에 해를 끼치는 일을 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그런데도 중동지역의 여러 민족들은 죽은 자를 위하여 무언가를 해야만 한다는 의식으로 보편적으로 자신의 몸에 상처를 내거나 털을 밀어버리는 행위를 자행했던 것이다.
고대 시대에는 한 집단의 지배층 계급에 속하는 사람이 죽었을 때, 그 사람의 뒤를 따라 강제로 혹은 자진하여 죽은 자와 함께 산 사람을 묻던 순장제도(殉葬制度)가 있었다.
왕이나 귀족이 죽으면 살아있는 신하나 첩이나 종 등을 함께 묻어서 거대한 장례식을 치르는 순장제도는 실제로 존재 했었던 장례법이다.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그런 세상의 장례법을 따르지 말라고 말씀하고 계시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만드실 때,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을 따라서 흙을 빚으면서 만드시고 생기를 불어넣어 주시면서 생령이 되게 하셨기 때문에 육신은 죽어서 흙으로 돌아가고, 영혼은 하나님의 품으로 돌아가는 것이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그럼으로 장례를 위해서 특별하게 무언가를 해야만 할 것 같은 세상의 장례법을 따르지 말라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호흡이 멈추어 육신이 죽었을 때에는 여호와 하나님께서 정해 주신 장례법을 따라서 흙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장례를 진행하라고 말씀하고 계신다.
③ 하나님의 백성답게 먹을 것과 먹지 못할 것을 구별하기를 원하시는 하나님.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은 거룩한 하나님의 성민이기 때문에 성민으로서 성민답게 먹어야 하는 음식도 구별하라고 말씀하고 계신다.
땅에서 나오는 곡식은 별문제가 없지만, 육식을 먹는 경우에 거룩한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먹을 수 있는 정결한 음식이 있는가 하면, 먹을 수 없는 부정한 음식으로 구별하고 계신다.
정결한 것은 거룩한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먹을 수 있는 양식이지만, 부정한 것은 거룩한 하나님의 백성으로서는 먹어서는 안 된다고 금지시키고 있다.
하나님께서 지정해 주시는 정결한 짐승은 여러 짐승들 중에서 쪽발이면서 동시에 되새김질을 하는 짐승이라야 한다.
쪽발이기는 하지만, 되새김질하지 못하는 짐승도 안 되고, 되새김질은 하지만 쪽발이 아닌 짐승도 안 된다.
쪽발과 되새김질하지 못하는 짐승을 부정한 짐승이라고 단정하고 있다.
물고기도 지느러미와 비늘이 있는 물고기는 정결한 물고기로 먹을 수 있는 물고기이지만, 지느러미가 없거나 비늘이 없으면 부정한 물고기로 단정하여 먹을 수 없다고 말씀하고 계신다.
새들은 곡식을 먹거나 풀을 뜯어먹거나 열매를 먹는 새는 정결한 새로 인정한다.
곧 육식을 하지 않는 새는 정결하지만, 육식을 하는 새들, 죽은 사체를 먹이로 먹는 새들은 부정한 새로 단정하여 먹을 수 없다고 말씀하고 있다.
곤충 중에서도 다리와 날개가 있어서 뛰거나 날아다닐 수 있는 곤충만 정결한 곤충으로 인정하여 먹을 수 있는 곤충으로 분류하지만, 뛰는 다리가 없거나 날아다닐 수 있는 날개가 없어서 배로 기어다니는 곤충은 부정한 곤충으로 단정하여 먹을 수 없다고 말씀하고 있다.
되새김질하는 것이나 쪽발이거나 비늘과 지느러미가 있는 것이나 뛰는 다리가 있거나 날개가 있는 것은 흙, 땅과 연관되어 있다.
땅, 흙은 부정한 존재이다.
흙은 모든 것들을 수용하는 존재이기 때문에 부정한 것으로 인정한다.
그러기 때문에 최대한 부정에서 아주 조금이라도 멀리할 수 있다면 정결한 것이지만, 아주 조금이라도 부정한 흙, 땅을 벗어날 수 없을 때는 부정한 것으로 단정하는 것이다.
정결과 부정이라는 상반되는 개념을 매우 중요하게 여기시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거룩한 하나님의 백성이요 성민답게 하나님 앞에서 부정한 음식은 결단코 먹지 말라고 말씀하고 계신다.
거룩한 하나님의 백성이요 성민답게 하나님 앞에서 정결한 음식을 먹으면서 거룩하고 정결한 백성으로 살아갈 것을 요구하고 계신다.
부정한 음식을 먹어서는 안 되는 이스라엘 백성들은 사냥한 고기나 우상에게 제물로 드렸던 음식은 먹을 수 없다.
노루나 사슴은 정결한 짐승으로 분류되지만, 사냥하는 과정에서 피를 흘리게 되고, 피를 흘림으로 피채 먹지 말라고 말씀하시는 계명을 범하는 꼴이 된다.
피를 흘리는 것 자체가 부정한 것이다.
또한 중동지역에는 온갖 종류의 신들이 존재하기 때문에 그 우상에게 제물로 드렸던 고기들, 그 고기가 정결한 짐승으로 분류된 짐승의 고기라고 하더라도 우상에게 제물로 드려졌던 고기를 먹으면 그 자체가 부정한 일이기 때문에 제물로 바쳐진 음식을 먹어서는 안 되는 것이다.
하지만 신약시대에는 주님의 피로 값 주고 산 교회가 유대인이 아닌 이방인들에게 주님의 복음이 증거되면서 이방인의 교회가 세워지게 된다.
이방인들은 특별하게 육식을 가지고 정결한 음식, 부정한 음식으로 구별하지 않았던 사람들이다.
특별하게 구별하지 않았던 이방인들이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고 주님의 몸된 교회가 세워지면서 자연스럽게 이방인들이 신앙인의 신분으로 바뀌게 되었을 때, 우상에게 제물로 드렸던 제물을 먹을 수 있느냐 없느냐 하는 문제가 발생하게 된다.
특히 고린도교회에서는 심각한 내분이 발생할 처지가 된다.
이에 바울은 신앙인들은 구약성경의 엄격한 율법 시대에서 이제는 은혜의 시대가 되었고, 율법에서 자유인이 되었기 때문에 구약성경에서 규제하는 정결한 음식과 부정한 음식의 개념이 사라졌다고 설명하고 있다.
그래서 자신의 신앙 수준에 따라서 어떤 음식이든 먹을 수 있는 믿음이 있으면 먹을 수 있고, 아직 모든 음식을 먹을 수 있는 믿음이 없다면 먹지 말라고 말씀하신다.
어떤 음식이든 그 음식을 주신 분은 근본적으로 삼위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삼위 하나님께 감사드리고 먹으면 된다고 말씀하신다.
바울 자신도 자기 자신은 얼마든지 제물로 드렸던 음식이라도 먹을 수 있지만, 다른 누군가에게 상처가 되거나 덕을 세우지 못하는 일이라면 그 누군가의 영혼과 믿음을 세우기 위하여 제물로 드렸던 음식을 먹지 않을 수 있다고 말씀하신다.
그러면서 바울은 고린도전서10:31에서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라고 말씀하신다.
예수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면서 흘리신 보혈로 모든 율법을 완성하셨기 때문에 신앙인들에게는 특별하게 부정한 음식과 정결한 음식을 구별해야 할 이유가 사라지고 없다.
아직까지도 율법에 의해서 선지나 어떤 특정 음식을 먹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하는 이들이 있다면, 아직까지도 예수그리스도께서 주신 복음의 은혜를 제대로 깨닫지 못한 상태라고 할 수 있다.
신앙인들은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어떤 음식이든지 먹을 수도 있고, 먹지 않을 수도 있다.
자신의 신앙과 취향과 호불호에 의해서 음식을 먹을 수도 있고, 먹지 않을 수도 있다.
내가 안 먹으니 왜 그런 음식을 먹느냐고 비난해서도 안 되는 일이고, 내가 먹으니 반드시 당신도 먹어야 한다고 강요해서도 안 되는 것이다.
신앙인들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술과 담배, 마약, 독약과 같은 것들은 절대로 섭취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거룩한 하나님의 영이 임재하는 교회와 성전인 성도의 육신과 영혼에 죄악으로 끌어가는 것들을 먹어서는 안 되는 것이다.
하늘의 신령한 양식을 먹는 하나님의 자녀이기 때문에 세상의 음란한 문화, 쾌락, 향락과 도박, 절도와 같은 것들도 먹어서는 안 되는 것이다.
거룩한 하나님의 백성, 성도답게 하늘의 신령한 영의 양식인 하나님의 말씀, 기도, 찬양으로 성령 충만함을 입고 신앙인으로서 살아가는 삶의 도리를 지키면서 살아야 하는 것이다.
④ 하나님의 백성답게 성실하게 십일조를 드리기를 원하시는 하나님.
하나님께서는 22-23절에서 “너는 마땅히 매년 토지 소산의 십일조를 드릴 것이며, 네 하나님 여호와 앞 곧 여호와께서 그의 이름을 두시려고 택하신 곳에서 네 곡식과 포도주와 기름의 십일조를 먹으며, 또 네 소와 양의 처음 난 것을 먹고 네 하나님 여호와 경외하기를 항상 배울 것이니라.”라고 말씀하신다.
28-29절에서는 “매 삼 년 끝에 그 해 소산의 십분의 일을 다 내어 네 성읍에 저축하여, 너희 중에 분깃이나 기업이 없는 레위인과 네 성중에 거류하는 객과 및 고아와 과부들이 와서 먹고 배부르게 하라.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 손으로 하는 범사에 네게 복을 주시리라.”라고 말씀하신다.
하나님의 자녀요 성민들은 토지 소산의 십일조를 하나님께 드림으로서 레위인들과 제사장들과 나그네와 고아와 과부들이 함께 살아갈 수 있는 삶의 터전으로 삼으라고 말씀하고 계신다.
하나님께서 정해주신 성막과 성전이 있는 곳은 이스라엘에 단 한 곳이기 때문에 먼 거리에 있는 이들이 토지 소산물 중에서 십일조를 가지고 성막이나 성전으로 찾아오기가 어려울 때에는 돈으로 가지고 와서 제물을 사서 하나님께 올려 드리라고 말씀하고 계신다.
하나님께 드리는 헌물은 공동체가 살아갈 수 있는 원동력이 된다.
십일조를 제대로 드리지 않으면 마땅한 기업이 없는 레위인들과 고아와 과부와 나그네와 같은 약자들이 살아갈 수 있는 삶의 터전을 세워갈 수 없다.
그러면 이들이 여호와 하나님을 향하여 부르짖게 될 것이고, 하늘에서 이들의 부르짖는 음성을 들으신 하나님께서 십일조를 제대로 드리지 않음으로 동료들의 딱한 처지를 돌아보지 않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하여 징계의 회초리를 사용하게 된다.
그러나 온전하게 십일조를 드림으로써 사회적인 약자들이 살아갈 수 있는 삶의 터전을 마련해 주었을 때에는 그에 상응하는 복과 은혜를 받아 누리게 된다.
L4 & B4.
그러면 신앙인들은 하나님의 백성답게 살려면 어떻게 살아야 하는 것일까?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특별하게 구별하시면서 거룩한 하나님의 자녀, 하나님의 성민이라고 부르시는 것은 하나님의 자녀답게, 하나님의 성민답게 살도록 하기 위해서이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가나안의 문화와 풍습과 전통과 같은 세상의 문화를 따라서 살지 말라고 거듭거듭 누누이 반복하면서 말씀하신다.
먹어야 하는 음식도 거룩한 하나님의 백성답게 구별하여 먹으라고 말씀하신다.
하나님께서 허락해 주신 땅에서 얻어진 소출의 십일조를 반드시 드림으로 힘들고 어려운 이웃들도 함께 살아갈 수 있는 삶의 원천을 이루어 가라고 말씀하신다.
하나님의 자녀요 성민이라고 부르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이렇게 구별되는 삶을 살라고 말씀하시는 하늘 아버지께서 아들 예수님을 인간의 몸을 입혀서 Incarnation 성육신하여 이 땅으로 보내시고 십자가에 못 박혀 피를 흘리면서 죽게 하신 이유는 예수님을 구주로 믿는 모든 신앙인들에게 하나님의 자녀답게, 하나님의 백성답게, 하나님의 성민답게, 신앙인답게 살아가도록 하기 위해서이다.
우리 신앙인들도 하나님 앞에서 구별된 하나님의 자녀요 성민이요 백성이요 성도로서 살아가려고 하면 어떻게 살아야 합당할까?
① 스스로 구별된 삶을 살려는 결단이 필요하다.
예수님을 구주로 믿는 믿음으로 살아가는 신앙인들은 신분이 다르다.
신앙인들은 엄연히 예수님을 믿지 않는 불신자들과는 신분이 다른 사람이다.
바울은 고린도후서5:17에서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라고 말씀하시면서 신앙인들은 하나님 앞에서 새로운 피조물이라는 신분이라고 말씀하고 있다.
베드로는 베드로전서2:9에서 “그러나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라고 말씀하신다.
이처럼 신앙인들은 불신자들과는 신분이 다른 사람이기 때문에 불신자들처럼 똑같이 살아서는 안 되는 것이다.
신앙인의 신분에 합당한 삶을 살아야 하는 것이다.
바울은 로마서 12:1-2에서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라고 말씀하신다.
하나님 앞에서 믿음으로 살아가는 신앙인들은 세상의 조류와 사상에 맞추어서 살아가는 사람이 아니다.
항상 하나님께 영적인 예배를 올려드리고 하나님의 신령한 은혜를 입어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고 좋아하시고 온전하게 살아가는 신앙인의 삶을 살라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예수님께서도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라고 말씀하신다.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가 짊어지고 가야 할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라가는 사람은 날마다 자기 자신을 성찰하면서 살아가는 사람이다.
자기 자신을 성찰하면서 자기 십자가를 지고 살아가는 삶을 사는 사람이라야 예수님을 믿는 믿음으로 살아가는 신분을 가진 사람이라고 말씀하고 계신다.
자기 자신을 성찰하면서 자기가 짊어지고 가야 할 십자가를 짊어지고 예수님을 따라가는 사람은 자기 스스로 구별된 삶을 살아가는 사람이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이라고 고백하면서 세상 사람들이 살아가는 방식 그대로 살아간다면 과연 신앙인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신앙인이라는 가면만 쓴 가나안 사람, 세상 사람이나 뭐가 다를까?
그러기 때문에 적어도 자신은 예수님을 믿는 신앙인이라고 고백하는 신앙인이라면 세상 사람들과 무언가라도 다르게 구별된 사람이라는 의식을 가지고 자기 스스로 무언가 세상 사람과는 구별된 생각을 하고, 구별된 마음을 가지고, 구별된 습관을 가지고 살아가야 하지 않을까?
적어도 예수님께서 직접 지고 골고다로 올라가신 십자가가 자신이 짊어지고 올라가야 할 십자가를 대신 져 주신 십자가라는 믿음으로 고백한다면 예수님께서 살으셨던 삶의 흔적을 1/10000이라도 닮아가려고 노력하며 살아야 하지 않을까?
다른 누군가에게 올바르게 살라고 권고하기 전에 자기 스스로 올바른 삶을 살고 있는가를 체크하면서 하나님 아버지뿐만 아니라 가족들과 이웃들과 성도들과 심지어 자기 자신에게까지도 한점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살아야 하는 것이다.
② 하늘의 신령한 영의 세계를 갈망하며 살아야 한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거룩한 성민이기 때문에 부정한 짐승이나 물고기나 새나 곤충을 먹지 말고, 정결한 짐승과 물고기와 새와 곤충을 양식으로 먹으면서 거룩한 하나님의 백성답게 살라고 말씀하시는 것처럼, 신앙인들은 하늘에 속한 사람이기 때문에 하늘의 신령한 영의 세계를 갈망하면서 살아야 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로마서 8:5-9절에서 “육신을 따르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따르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하나니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이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하지 아니할 뿐 아니라 할 수도 없음이라. 육신에 있는 자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느니라. 만일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 영에 있나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라고 말씀하신다.
하늘의 신령한 세계를 흠모하고 사모하는 신앙인들은 영의 일을 생각하는 사람이라고 말씀하신다.
영의 일을 생각하는 사람은 생명과 평안이라고 말씀하고 계신다.
하지만 육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의 영이 없는 사람이고, 육의 일을 생각하는 사람이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고, 사망의 길을 걸어가는 사람이라고 말씀하고 계신다.
우리 신앙인들은 육의 일을 생각하는 세상 사람이 아니다.
하나님의 영이 임재해 계시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며, 생명과 평안과 거룩함을 추구하고 갈망하면서 살아가는 사람이다.
오늘 우리가 찾아야 할 믿음의 삶이란 거룩한 하나님의 백성답게, 하나님의 자녀답게, 신앙인답게, 직분자답게 거룩한 삶을 살아야 한다.
하나님 앞에서 거룩하신 하나님께서 인정해 주시고,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거룩한 하나님의 백성답게 살아갈 수 있는 신앙인으로 세워지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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