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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어나 빛을 발하라(이사야 60:1-5)
오늘은 신년감사주일입니다. 두해동안 우리는 코로나로 인해 어둡고 힘든 시간을 보냈습니다. 지금도 여전히 계속되고 있지만 우리는 염려하지 않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이 모든 역사의 주권자가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이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의 섭리에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에벤에셀의 하나님을 찬양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여기까지 인도하시고 변함없는 사랑으로 우리에게 새로운 한 해를 주셨습니다. 우리는 새로운 마음으로 하나님이 행하실 새해를 바라보고 믿음으로 담대하게 나아가는 성도가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어둡고 힘든 현실속에 있는 이스라엘백성들에게 하나님이 행하실 미래를 바볼수 있도록 새로운 예언의 말씀을 주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70년간의 바벨론 포로생활을 마치고 그렇게 그리워하던 고국 이스라엘로 희망을 안고 돌아왔습니다. 그러나 막상 돌아와 보니 폐허가 된 예루살렘 성과 너무나 피폐한 경제적 현실앞에 두려움과 절망이 앞을 가리고 있었습니다.
뿐 만 아니라 그들을 대적하는 적들은 여전히 그들을 둘러싸고 있으며, 여러 가지 삶의 여건이 매우 암담했습니다. 그러니 예루살렘 거민들은 주저 앉아서 낙담과 원망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하나님이 살아계시다면 과연 이럴 수 있는가?", "예루살렘은 다시 거룩한 도성이 될 수 있을 것인가?" "바벨론 포로생활보다 나은 삶은 과연 가능한가?" 답답한 현실 앞에 원망과 불평하며 주저앉아 있을 때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이사야선지자를 통해 소망의 메세지를 들려주신 것입니다.
그러나 이 말씀은 회복되고 부흥에 대한 약속입니다. 그러나 이 말씀 속에는 이스라엘이 마땅히 해야 할 명령도 들어 있습니다. "일어나라, 빛을 발하라. 이는 네 빛이 이르렀고 여호와의 영광이 네 위에 임하였다"고 선포하였습니다. 이스라엘백성들은 아직 해가 뜨지 않은 어두운 밤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하나님은 말씀하시기를 이미 네 위에 빛이 임하였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빛이 그 백성 위에 비치기 시작하였다는 것입니다.
영광의 아침이 동터 오는데 이 빛을 바라보지 못하고 여전히 두려움과 염려에 사로잡혀 주저앉아있는 이스라엘 자손들에 대한 희망의 메시지를 전하고 있습니다. “일어나라 빛을 발하라” 저는 이 말씀이 새해를 준비하면서 계속 제 뇌리를 맴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오늘 이 말씀을 여러분과 함께 나누려고 하는 것입니다. 어둡습니까? 염려가 되고 두렵습니까? 우리는 하나님을 믿고 사는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사는 자들입니다.
새해를 시작하면서 선지자 이사야를 통해 주신 말씀 "일어나라 빛을 발하라"는 말씀을 잘 듣고 이 시대에 주신 사명을 다시한번 새롭게 다짐하고 일어서는 양문의 성도들이 되시기를 예수님이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1. 첫번째 주신 말씀은 일어나라는 것입니다.
일어나라는 말을 '이제 깨어서 행동하라'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영적인 무감각으로 인해서 하나님의 백성들이 마땅히 해야 할 사명을 깨닫지 못하고 깊은 잠에 빠져 있었다는 것입니다. 현실이 매우 어렵습니다. 그렇다고 저들이 주저앉아 있으면 무엇이 해결되겠습 니까? 오히려 원망이나 하고 절망하고 불신앙의 늪에 빠져서 마귀의 종노릇이나 할 뿐입니다. 먼저 자기가 처한 현실을 정확하게 인식해야 합니다.
지금 내가 영적으로 어떤 상태에 있는가? 그렇다고 시간이 가면 저절로 해결되는 문제가 아닙니다. 일어나야 합니다. 저는 기도하면서 종종 우리의 영적인 실상을 볼 때 답답할 때가 있습니다. 양문교회가 건강한 교회가 되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교회가 되려고 하면 아무리 어렵고 힘들어도 지금 이 상태로 마냥 앉아 있으면 안되겠다는 긴장감이 있습니다. 그때마다 하나님이 저에게 주시는 말씀은 일어나라는 것입니다.
영적 현실을 바로 직시하고 일어나라고 말씀하십니다. 성경에 보면, 세 가지 종류의 사람에 대하여 일어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첫째는 죽은 사람들에게 일어나라고 하셨습니다. 나인성 과부의 죽은 아들을 향해서 예수님께서 “청년아 일어나라.” 외치실 때에 죽은 청년이 일어났습니다. 야이로의 죽은 딸을 향해서 “달리다굼”(소녀야 일어나라)고 외칠 때에 죽었던 어린 소녀가 일어나 앉은 것입니다. 성경에 보면, 두 가지 종류의 죽음이 있습니다.
하나는 육신의 죽음, 또 하나는 영의 죽음입니다. 육신이 죽었으나 영이 살수도 있고, 육신은 비록 살았으나 영이 또한 죽을 수도 있는 것입니다. 사실 예수님은 창조주이시기 때문에 죽은 육신도 죽은 영혼도 살릴 수 있는 분이십니다.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신 근본적인 사명은 죽은 영혼을 살리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떠나고 하나님을 모르는 영혼은 죽은 영혼입니다. 하나님은 생명의 근본이 되시는 하나님을 떠난 영혼은 생명이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께서도 이와 같이 죽은 영혼을 향해서 일어나라고 지금도 외치는 것입니다.(엡 5:14) “그러므로 이르시기를 잠자는 자여 깨어서 죽은 자들 가운데서 일어나라 그리스도께서 너에게 비추이시리라 하셨느니라”
에스겔 선지자가 본 해골 골짜기에 대한 이상에 대해 아실 것입니다. 큰 골짜기에 해골로 가득 채워져 있습니다. 어떻게 뼈가 말랐든지 희게 되었다고 기록되었습니다. 그렇지마는 선지자가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이 해골을 향해서 일어나라고 대언할 때에 이 마른 뼈들이 서로 연결이 되고 힘줄이 생기고 피부가 생기고 일어나서 새로운 생명이 될뿐더러 이 사람들로 말미암아 큰 군대가 되는 이상을 보았습니다.
이 예언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땅에 오셔서 해골과 같이 죽은 영혼에게 새로운 생명을 주셔서 부활하고 소생하시겠다고 하는 메시야적 예언인 것입니다. (요 5:25)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죽은 자들이 하나님의 아들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듣는 자는 살아나리라”죽은 영혼이 하나님의 아들의 음성을 들으면 살아난다는 말씀을 예수님이 하셨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자는 살아납니다.
말씀을 사랑하고 말씀을 통해 주님의 음성을 듣는 성도가 되셔서 날마다 새생명을 얻고 부활의 은혜를 체험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 다음에는 병든 자를 향해서 일어나라고 외쳤습니다. 베데스다 못 가에서 38년 된 환자를 주님께서 보시고 일어나라고 말씀하셨을 때에 그 환자가 일어났습니다. 가버나움에 계실 때에 네 사람이 메고 온 반신불수를 향해서 일어나 그 상을 가지고 가라고 말씀하셨을 때에 반신불수가 일어나서 자기가 누웠던 상을 가지고 걸어간 것입니다.
병든 자들을 예수님께서 일으켜 준 것입니다. 오늘도 주님은 치료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주님의 말씀을 잘 듣고 믿음으로 순종하는 사람은 육신의 질병으로부터 자유함으로 받고 치료의 은혜를 체험할 줄로 믿습니다. 사람의 영혼도 병든 영혼이 있습니다. 하나님을 아주 떠나지는 아니했습니다. 하나님과의 관계는 가지고 있습니다. 그 생명이 아주 죽은 것은 아닙니다. 그렇지마는 그 심령 속 어떤 자리에 병이 들었습니다. 어떤 사람은 탐심의 병이 들었습니다.
교만의 병이 들었습니다. 시기의 병이 들었습니다. 원망의 병이 들었습니다. 혹은 좋지 못한 악한 습관, 부정적인 생각으로 남을 비난하고 비판하는 어둠에 속한 병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을 향해서 예수님께서 일어나라고 외치십니다. 누구든지 주의 음성을 듣고 주님의 음성에 순종해서 일어나면, 예수님께서는 그 병을 고쳐주시고 주를 위해서 충성하는 성도로 삼아주실 것입니다.
그리고 셋째로는 자는 자들을 향해서 일어나라 말씀하셨습니다. 전에 선지자 요나가 하나님의 사명을 거역하고 멀리 다시스로 방향을 바꾸어 가면서 배 밑에 내려가 깊은 잠에 빠졌습니다. 그 때에 마침 그 바다에는 큰 풍랑이 일기 시작했습니다. 배안에 있는 모든 사람들은 두려워서 자기의 신을 찾고 외칩니다. 그 때에 선장이 배 밑에서 잠자는 요나를 발견했습니다. 선장이 요나를 깨우며 말합니다. “자는 자여 어찌함이냐 일어나서 네 하나님께 구하라” 자는 요나를 깨웠습니다.
신약에서는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앞에 두시고 겟세마네 동산에서 피땀을 흘리며 기도를 하시는데 제자들은 피곤한 가운데 잠만 자고 있었습니다. 주님께서 잠자는 제자들에게 와서 세 번이나 깨우셨습니다. 마지막으로 “일어나라, 함께 가자.” 자는 제자들을 일으켰습니다. 자는 사람들은 자기의 사명이 무엇인지 깨닫지 못합니다. 자는 자들은 자기가 지금 무엇을 해야할지도 모릅니다. 이와같이 이 시대가 어느 때인지 모르고 자기의 책임도 모릅니다.
죽지도 않고, 병들지도 않았는데, 자는 심령이 없지 않아 있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자는 자들을 향해서 예수님께서 명령하십니다. “자는 자여, 일어나라.” 오늘도 우리 가운데 그 영혼이 아주 죽지는 아니했지만, 혹은 그 영혼이 어떠한 병도 걸리지 않았는데, 단순히 이 시대가 어떤 시대인지 헤아릴 줄 모르고 자기의 사명이 무엇인지 깨닫지 못하고 자는 자들이 있습니까? 오늘 아침, 주님의 이 음성을 듣고 일어나는 심령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지난 달에 묵상했던 베드로전서 4:17절 말씀이 마음에 와 닿았습니다. 벧전4:7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이 왔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여 기도하라”
지금은 일어나야 할 때입니다. 일어나라는 명령은 현재형입니다. 그리고 계속형입니다. 지금 일어나라는 것입니다. 한 번 일어나려고 하다가 주저앉지 말고 계속해서 일어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언제나 현재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언제나 현재 역사하시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지금 일어나야 합니다. 다음이라고 다짐만 하고 있지 말라는 것입니다. 지금 당장 일어나십시오. 청산하지 못하고 있는 나쁜 습관에서 일어나시기 바랍니다.
2. 두번째 명령은 빛을 발하라는 말씀입니다.
"빛을 발하라"는 말은 빛을 받아들이라는 말과 같습니다. 빛이 올 때 그 빛을 받으면 그 빛이 우리를 변화시켜 그 빛을 반사하게 되어 마치 우리 속에서 빛이 나오는 것처럼 보이는 것입니다. 그래서 선지자는 빛을 반사하라고 하지 않고 "빛을 발하라"고 외치고 있습니다. 우리가 참 빛을 영접하면 그 빛은 우리 자신을 변화시킬 뿐 아니라 우리에게서 나간 빛이 또 다른 사람을 변화시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향하여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세상의 빛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따르는 제자들을 통하여 그 빛은 강력하게 이 세상을 비추는 빛이 될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예수를 믿는 사람들 모두가 그리스도의 제자라면 우리 믿는 사람들은 모두가 세상을 비추는 참 빛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그러므로 일어나라는 것은 빛을 발하기 위해서 일어나라는 것입니다. 주저앉아서는 빛을 발할 수가 없습니다. 드러누워서는 빛을 발할 수 없기 때문에 먼저 일어나라는 것입니다.
2절,"보라 어둠이 땅을 덮을 것이며 캄캄함이 만민을 가리려니와 오직 여호와께서 네 위에 임하실 것이며 그의 영광이 네 위에 나타나리니"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마치 구름이 해를 가린 것처럼 어둠의 세력이 빛을 가릴 때가 있음을 뜻합니다. 그러나 그 구름 위에는 태양이 여전히 빛나는 것처럼 주님의 영광이 하나님의 백성들 위에 빛나고 있다는 것입니다.
하루에도 몇 번씩 구름이 끼었다 해가 나왔다가 하는 것처럼, 우리의 삶에도 해가 빛나는 때처럼 즐거운 날들이 있는가 하면, 짙은 구름이 끼인 것처럼 질병이나 어려운 문제들 때문에 근심 걱정과 번뇌에 휩싸일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그 근심의 구름 위에는 항상 주님의 영광의 빛이 빛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지금 여러분의 가정에 구름이 끼었다고 해서 낙심하지 마십시오. 그 구름 위에는 여전히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가 빛나고 있음을 잊지 마십시오. 지금 우리 사회 속에 코로나라는 구름이 끼어 있어서 어둡고 혼란스럽지만, 그러나 낙심하지 않고 그 구름위에 빛나는 주님의 영광의 빛이 있다는 사실을 확신하고 그 구름이 걷히는 날까지 우리는 세상의 빛의 사명을 감당해야 합니다.
주님을 우리를 통해서 빛을 발하고 이 땅의 어둠은 물리치고 빛의 질서와 열매가 맺히시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또 그영광이 온 땅을 덮을 때를 기다리며 준비해야 할 것입니다. 지금 우리 사회는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념갈등으로 두 진영이 대립하는 모습을 보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깨어서 기도해야 합니다.
역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께서 하나님을 경외하고 정직한 지도자가 대통령으로 뽑혀서 모든 국민의 존경을 받고 질서가 회복되는 그날을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구름이 끼어서 좀처럼 걷히지 않고 있지만, 그러나 그 위에는 역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의 영광의 빛이 환히 빛나고 있음을 우리가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마침내 이 구름이 걷히는 날 이 땅을 뒤덮었던 불신과 갈등이 사라지고 신뢰와 사랑이 회복되는 그 날이 이루어질 것입니다.
여러분, 지금 코로나로 인해 전세계가 어둠에 덮힌 것처럼 느껴집니다. 그러나 코로나보다 더 심각한 어둠은 인간의 죄악입니다. 혼돈과 무질서입니다. 도덕적 타락이 극에 달해 있습니다. 하나님의 불심판을 받은 소돔과 고모라를 방불하는 죄가 만연되어 있습니다. 복음의 빛이 점점 꺼져가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없는 기갈입니다. 그래서 양심이 마비되었고 도덕성이 상실되어가고 있습니다. 히브리민족이 출애굽하기 전 하나님은 애굽 땅에 흑암의 재앙을 내렸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숨을 거두시기 전 3시간 동안 하나님은 빛을 거두어 가셨습니다. 이 시대의 그리스도인인 여러분은 지금 무엇을 하고 있습니까? 어떤 사명을 감당하고 있습니까? 생명의 빛입니다. 세상이 어둡기때문에 빛의 사명이 더 필요한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 시대에 빛의 사명을 감당하고 있습니까? 세상이 어둡다고 실망하기 전에 내가 빛을 발하고 있는가를 돌아보십시오. 빛을 비추고 있습니까? 아니면 빛을 가리고 있습니까?
영광을 나타냄이 아니라 영광을 가리우지는 않습니까? 빛은 발광체가 있고 반사체가 있습니다. 태양은 발광체이지만 달은 빛의 반사체입니다. 예수님은 자기 자신을 가리켜 요1:9 "참 빛 곧 세상에 와서 각 사람에게 비추는 빛"이라고 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참 빛이십니다. 생명의 빛이십니다. 그는 빛의 발광체이십니다. 그 예수의 빛이 우리 안에 들어와서 우리는 빛의 반사체로서의 빛을 발하는 것입니다.
빛을 발하라는 것은 내가 스스로 네 빛을 발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내 안에 계신 그리스도가 비취도록 내 자신을 헌신하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빛을 밝히는 전구에 불과합니다. 빛을 발하기 위해서는 발전소에서 보내는 전기를 받아 필라멘트를 통하여 빛을 반사해야 합니다. 마찬가지로 저와 여러분들 안에 빛의 발광체이신 예수님이 계십니다. 이제 저와 여러분들은 그 빛을 비추는 역할을 해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헌신과 섬김과 전도입니다
빛은 생명을 줍니다. 마찬가지로 그리스도의 빛은 저와 여러분들에게 영원한 생명을 선물로 줍니다. 지금의 시대는 말로만 전도해서 되지 않습니다. 사람들이 우리가 무슨 말을 할지 다 압니다. 그러므로 말보다는 삶이 더 중요합니다. (마 5:16) “이같이 너희 빛이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빛은 우리의 착한 행실입니다. 이제는 행동으로 보여주는 그리스도를 보여주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여러분 우리가 착한 행실을 보여주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그것은 바로 내가 하나님의 말씀에 붙잡혀 살아야 합니다. 성경이 가르치는 착한 삶이란 도덕적이고 윤리적인 착함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그 이상입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는 삶인 것입니다. 말씀에 순종하면 착한 삶이고 말씀에 불순종하면 죄악된 삶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저와 여러분은 하나님의 말씀이 나의 삶의 잣대가 되어 말씀이 서라 하면 서고, 말씀이 가라 하면 갈 수 있는 성도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이것이 말씀중심의 삶인 것입니다. 그렇게 될 때 저와 여러분을 통해서 누가 드러납니까?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 지금 우리의 모습은 어떻습니까?
헬라 사람들에게 이런 이야기가 전승되고 있습니다. 어떤 맹인이 밤길을 가게 되었습니다. 그는 밤인 것을 알기에 길을 가다가 누구하고 부딪칠 것만 같아 걱정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자신에게는 필요도 없는 등불이지만 눈뜬 사람들이 그의 등불을 보고 비켜갈 수 있도록 등불을 켜서 들고 밤거리를 나섰습니다. 그런데 뜻밖에도 어떤 사람과 부딪치고 말았습니다. "당신은 눈도 없소?" 맹인이 소리치자 상대방은 어리둥절합니다. "어두워서 보지를 못했습니다." "내 등불이 안 보인다는 말입니까?"
그제야 그 사람이 자세히 살펴보니 맹인은 불꺼진 등을 들고 있었습니다. "당신은 지금 꺼진 등불을 들고 있지 않습니까? 어디, 직접 한번 만져보시오." 맹인이 등을 만져보니 정말 싸늘했습니다. 그러니까 바람에 불이 꺼진 것도 모른 채 그대로 등불을 들고 밤거리를 돌아다닌 것입니다. 혹 우리가 불꺼진 등을 가지고 있지 않습니까?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꺼진 불을 가지고 다니면서 내게 불이 있다고 자부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생명의 빛이신 주님을 가까이 하십시오, 주님의 빛이 내안에 비추이는 만큼 나도 세상의 빛을 비출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올해도 표어 말씀과 기도로 성령충만한 교회입니다. 말씀과 기도는 주님과 연결된 통로입니다. 그 통로가 연결되어 있으면 성령충만한 성도가 될 수 있습니다. 성령충만은 빛이 충만하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므로 말씀과 기도로 주님과 동행함으로 빛의 사명을 잘 감당하는 성도가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3. 세번째 말씀은 보라는 말씀입니다.
2-3절,"보라 어둠이 땅을 덮을 것이며 캄캄함이 만민을 가리려니와 오직 여호와께서 네 위에 임하실 것이며 그의 영광이 네 위에 나타나리니 [3] 나라들은 네 빛으로, 왕들은 비치는 네 광명으로 나아오리라" 보라- 바라보라는 명령입니다. 빛을 발하는 성도는 바라볼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믿음의 주요 나를 온전케하시는 예수님이십니다.
주님을 바라보면 내 믿음이 온전해집니다. 주님을 바라보면 주님의 마음을 품게 됩니다. 주님의 뜻을 알게 됩니다. 일어나서 빛을 발하기 위해서 우리가 할 일은 주님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또 주님을 바라본다는 것은 하나님이 하실 일을 바라보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그리스도인의 비젼입니다. 지금 내눈에 보이지 않고 내 귀에 들리지 않아도 하나님이 이루실 약속을 바라보고 하나님이 행하실 일을 기대하면서 믿음으로 내 속에 품으라는 것입니다.
믿음은 하나님이 행하실 일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하나님의 기적을 바라보고 하나님의 축복을 바라보는 것이 바로 믿음입니다. 4,5절에서 구체적으로 말씀하고 있습니다. “네 눈을 들어 사방을 보라 무리가 다 모여 네게로 오느니라 네 아들들은 먼 곳에서 오겠고 네 딸들은 안기어 올 것이라 [5] 그 때에 네가 보고 기쁜 빛을 내며 네 마음이 놀라고 또 화창하리니 이는 바다의 부가 네게로 돌아오며 이방 나라들의 재물이 네게로 옴이라”고 했습니다.
네 눈을 들어 무엇을 보라는 것입니까? 사면은 보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약속하신 땅을 바라보라는 것입니다. 마치 아브라함에게 “… 너는 눈을 들어 너 있는 곳에서 동서남북을 바라보라”(창13:14) 고 말씀하셨던 것처럼 하나님이 주실 축복의 땅을 바라보라는 것입니다. 비록 지금 눈에 보이는 것 없고 환경적으로 위기가 닥쳐왔지만 하나님은 우리로 하여금 눈을 들어 하나님이 행하실 역사를 바라보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믿음입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입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을 통해 행하실 하나님의 위대한 역사를 바라보십시오.
이제 말씀을 맺겠습니다.
일어나라. 빛을 발하라. 죽은 영혼도 일어나십시다. 병든 영혼도 일어나십시다. 잠자는 심령도 일어나십시다. 그래서 등불이 되고, 등대가 되고. 밤하늘의 별이 되어서 이 캄캄한 세상에 빛을 비추는 사명을 감당하시기 바랍니다. 그러기 위해서 무엇보다도 믿음의 주요 온전케 하시는 예수님을 바라보십시다. 이것은 2022년도에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의 명령이요 약속입니다. 우리가 일하고 있는 현장에서 빛의 사명을 온전히 감당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