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염치”가 있는 믿음
안녕하세요. 저는 강남향린교회의 이관희 집사입니다.
생명을 살리고 사랑이 넘치는 생명사랑교회에서 강단교류로 말씀을 전할 수 있게 되어 저에게는 큰 영광이고 좋은 기억으로 남을 거 같습니다. 준비하는 기간 동안 생명사랑교회 홈페이지를 둘러보고 최근 주일 설교도 들었습니다. 이제 안식년이 끝난 목사님과 성도님들한테 제가 누가 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2주 전에 생명사랑교회의 김영균 님이 저희 교회에서 설교를 하신 후에 제 아내가 걱정을 많이 하더군요. 저렇게 좋은 말씀을 잘하셨는데 당신이 잘 할 수 있을지 걱정이라면서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열심히 해보겠습니다.
여기 계시는 신도님 중에 아파트에 살고 계시는 분들이 계실텐데요, 아파트에서 관리비를 걷고 청소를 하고 경비를 하는 곳이 관리사무소인데, 저는 아파트 관리사무소에서 관리소장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저희 강남향린교회에는 성서학당이라고 성경을 제대로 배울 수 있는 과정이 있는데요, 성서학당을 다 마치고 신앙생활도 예수님의 길을 따르려고 노력하고, 사회참여 활동도 많이 하는 분들이 계십니다. 제가 신학을 전공한 것도 아니고 믿음도 깊거나 사회활동에 많이 참여하는 게 아니어서 이 자리에 설 자격이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 교회 성도님들이 우리 교회에서 가장 예쁘고 현명한 아내가 있는 이관희 집사가 가야한다고 해서, 아내 덕분에 강단교류 이 자리에 서게 되었습니다.
오늘은 제가 하나님을 믿게 된 얘기와 제 주변의 분들에 대한 간증으로 함께 하고자 합니다. 많은 분 앞에 서는 게 굉장히 낯설고 긴장되지만 이 자리에 서게 하신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며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한 10년 전 쯤의 일입니다. 퇴근하고 집에서 쉬고 있는데 중학교 동창인 친구로부터 전화가 왔습니다. 20대 후반까지 만난 이후 거의 10년 이상 연락도 없던 친구였습니다. 전화를 받았더니 그 친구가 다짜고짜 그러더군요.
“이관희. 너 교회 다닌다고 하는데 그게 사실이냐?”
“뭔 소리야?”
“인터넷 다음 카페에 네가 교회 다닌다고 쓴 글이 있는데 그게 사실이냐고?”
다음 카페에 제가 교회에 다닌다는 글을 본 친구, 20대 후반까지 저를 봤던 그 친구는 제가 교회 다니는 모습은 도저히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라 생각을 해서 제가 교회에 다니는지 직접 확인하겠다고 10년 만에 전화를 한 것입니다.
이렇듯 30대 중반까지의 저에게 교회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그런 곳이었습니다. 교회에 다니는 게 이상한 일이었고, 고사 지내고 점 보고 그러는 문화에서 자라다 보니 아직도 교회에 익숙하지 않은 부분이 많이 있습니다. 특히 부활절에 삶은 계란을 주는 건 아직도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부활을 의미하려면 계란이 부화라도 되야 되는데, 삶은 계란을 주면 부화도 못하는 데 그게 무슨 소용인가 싶어서요. 강남향린교회 여신도회에서 유정란을 판매하는데 부활절엔 강남향린교회 여신도회가 판매하는 유정란을 나눠주면 좋겠다는 생각입니다.
30대 초반까지 사도 바울이 사울이던 시절 기독교 신자를 핍박했던 만큼은 아니지만 교회를 싫어했고, 교회에 대해서 엄청 비판적이었습니다. 교회에 다니는 친구들을 야유하는 그런 청년으로, 전도하러 다니는 분들하고 말싸움 하는 걸 즐겼습니다.
초등학교 때의 일입니다. 2킬로미터 정도 되는 거리를 걸어 다녔는데, 중간에 작은 산등성이를 깎아 만든 예쁜 교회가 하나 있습니다. 교회로 올라가는 계단이 빙 둘러 있는 조그만 시골 교회! 그 교회를 올라가는 계단 입구에 이런 문구가 쓰여 있었습니다.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
그 문구를 보고 제가 친구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거 봐. 교회에 다니면 구원을 얻는다잖아. 그런데 교회에 최소한 헌금은 10원 이상할 거 아냐? 그럼 최소한 1원은 남겨 먹겠다는 거잖아.”
이랬던 제가 교회를 다닌다고 하니, 앞에서 말한 친구가 정말 교회를 다니는지 확인하기 위해 전화를 했던 것입니다.
이런 저에게 하나님이 예비하신 만남이 있었습니다. 바로 아내와의 만남이었습니다.
앞에서 말씀드렸던 강남향린교회에서 가장 예쁘고 현명한 설미진 집사를 만난 얘기입니다. 아내와 함께 오지 않아서 여기 계신 성도님들이 확인을 불가능하실테니까 제가 더 자신있게 말할 수 있는 거 같습니다.
26살에 저는 아버지의 가업을 이어받아 경기도 남양주에서 젖소를 길렀습니다. 시골에서 농사를 짓더라도 진보적인 가치를 계속 간직하고 싶어서 한겨레 신문과 한겨레21이라는 시사주간지를 꾸준하게 구독하였습니다.
한겨레 21은 설날과 추석에 퀴즈대잔치를 합니다. 1998년도 설날에 제가 8,700명 중에 1등으로 당첨이 돼서 컴퓨터를 선물로 받았습니다. 그때가 IMF 직후라 1등 상품이 소형승용차에서 컴퓨터로 바뀌어 아쉬웠지만 컴퓨터를 받은 것은 더 큰 선물을 위한 과정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약 7개월 뒤인 98년 추석에도 퀴즈대잔치가 있었는데, 이미 1등에 당첨되었으니 또 1등에 당첨되더라도 선물을 받을 수 없을 거라고 생각을 한 저는, 각 단계별 받고 싶은 상품을 선택하지 않고 하고 싶은 말을 적는 칸에 이렇게 적었습니다.
“지난 설 퀴즈대잔치 컴퓨터 당첨자입니다. IMF 시대에 기쁨을 함께 나누자는 의미에서 상품 선택을 안했습니다. 저 멋있죠? 멋있다고 생각하시는 만 25살 이하 여성분의 연락을 기다립니다. 012-1838-6395”
대학병원의 간호사였던 아내는 그날 야간 근무를 끝내고 집에 가야 하는데, 저녁에 병원 회식이 있어서 집에 가지 않고 휴게실에서 회식을 기다리며 정기구독하던 [한겨레 21]을 보고 있었습니다.
제 글을 본 아내는 연락 한 번 해볼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 바로 연락을 했고, 그래서 지금에 이르렀습니다. 아내는 지금도 제가 마음에 안 들 때 “그때 연락을 하는 게 아니었어”라고 후회를 하기도 합니다.
사실 그때가 제 인생에서 여성이 제일 많았던 시기였습니다.
제 글을 보고 연락을 한 여성들이 많아서 저는
1번 은평구의 대학병원 간호사 설 모양, 2번 공주교대 여대생 L 모양, 3번 부산의 직장인 김모씨, 4번 구미의 직장인 정 모양, 5번 서울의 대학생 A양.... 이런 식으로 순번을 정해서 한 명씩 만날 계획을 세웠고 그 첫 번째 만난 여인이 바로 아내 였습니다.
연락이 생각보다 많이 와서 첫 번째 만나기로 했던 아가씨와 경기도 가평의 아침고요수목원에서 두 번째 데이트할 때도 연락이 왔는데 제가 아쉽게도 지금 만나는 분이 있다고 전화를 끊었을 정도였습니다.^^
그런 아쉬움을 뒤로 하고 설미진 집사와 결혼을 하였습니다. 아내가 교회에 같이 다니자고 해서, 정말 교회에 가기 싫었어도 가정의 평화를 위해 그냥 교회를 따라만 다녔습니다.
그러다가 아내가 아버지학교 다니면 많이 변한다는 말을 듣고는 아버지학교에 등록하였고, 등록비는 반환이 안된다고 해서 등록비가 아까워서 아버지학교를 5주 동안 다녔습니다.
두란노 아버지학교를 다녔다고 믿음이 생기지는 않았지만, 아버지학교에서 선물로 받은 성경을 한 번 읽어주는 게 예의라고 생각해서 처음으로 성경을 제대로 읽기 시작했습니다.
창세기부터 시작해서 출애굽기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도 넘기고! 사무엘 상, 사무엘 하... 쭉 읽어나갔습니다.
참 재밌더라고요. 이게 여기 나온 얘기구나 하면서 성경을 읽다가 어느 순간 성경을 그냥 휙 집어 던져버렸습니다. 성경에 있던 바로 이 대목 때문인데요. “정복한 땅에 아이들까지 다 죽여라”
그 당시 아들 부시 대통령의 미국이 이라크를 침공해서 수많은 이라크인들이 죽임을 당했는데 그 성경 구절을 보니, “그래서 이라크 아이들까지 다 죽이라는 거야 뭐야? 뭐 이런 게 다 있어.” 하고는 다시는 성경을 거들떠 보지 않았습니다.
그러다가 저에 대한 하나님의 두 번째 계획으로 저는 교회를 다니게 되었습니다.
아버지학교 지부에서 아버지학교를 다녔던 사람들에게 기도모임이 있다고 문자를 보내곤 했는데 정말 우연히 아버지학교 수료자 기도모임에 참석했다가, 그날 모임에서 목사님 말씀을 듣고 교회를 다녀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고 교회를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오늘 본문인 고린도전서 9장 12절, 그리스도의 복음을 위한 권리 포기라는 주제의 설교...
어쩌면 그 설교가 제가 여기에 있도록 한 그런 설교였던 거 같습니다.
그 목사님이 하신 말씀을 한 번 옮겨보겠습니다.
“제가 교회를 개척해 보고 현재 목회 생활을 하다 보니 목회 생활의 어려움을 알겠습니다. 그런 어려움을 이겨내고 교회를 부흥시킨 대형교회 목사님들이 얼마나 대단하고 존경스럽다고 느낄 때가 많습니다. 그래서 대형교회 목사님들이 물질적인 풍요를 누리고 교회에서 왕처럼 행동하는 걸 이해는 합니다. 하지만 바울이 자기가 권리를 쓸 수 있음에도 그 권리를 사용함으로 인해 그리스도 복음에 지장을 준다면 그 권리를 사용하지 않겠다고 했듯이 자신이 하는 행동이 믿지 않는 사람들이 그리스도를 믿는 데 방해가 된다면 그것을 하지 말아야 하는 것이 그리스도를 믿는 자의 자세입니다”.
그 당시 저는 대형교회 목사님들의 문제로 상당히 비판적이었는데
“어, 성경에 이런 것도 있구나” 싶었고 교회를 다녀보기 시작했습니다.ㄱ러나 아직 하나님을 믿지는 않았습니다.
교회를 기웃거리던 제가 하나님을 믿는 계기는 바로 제 아들 이설현 때문이었습니다. (지금 저기에 같이 와 있는데요.)
제 아들 설현이가 세 살 때입니다.
아들이 말을 조금 늦게 해서, 조금 언어가 늦될 뿐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어린이집 선생님이 놀이치료를 받아보라고 해서 갔는데 거기서, 아기발달연구소를 한 번 가보라는 권유하더라고요. 그래서 상담을 받았러 가서 만난 연구소의 원장님이 그러더라고요.
“이 아이는 자폐장애가 있고 자폐로 평생을 살아야 한다”
그 소리를 듣는데 숨이 턱 막혀서 숨을 제대로 쉴 수가 없었습니다. 상담 중에 잠시 나갔다가 숨을 고르고 다시 돌아와 상담을 했습니다.
그 다음날 교회에 나갔는데 계속 눈물이 나서 아내랑 함께 계속 울었습니다. 지금은 시간이 약이라고 눈물도 말랐지만!
그때 참 많이 힘들었습니다. 제힘으로 어떻게 할 수 없는 무력감에, 내가 지은 죄로 인해 저런 장애가 생긴 게 아닌가 하는 자책감까지, 장애를 판정받기 위해 수유역에 있는 정신과 전문의를 찾아갔는데, 그때의 기억 때문인지 지금도 향린공동체 예배를 위해 수유역을 지날 때는 그 당시의 슬픈 기억이 고스란히 살아나더라고요. 설현이가 발달장애 판정을 받고, 인간인 제가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무력감을, 저는 하나님의 믿음을 통해 이겨내고자 했습니다.
저희 주변에는 장애인 부모들이 많습니다. 그런데 저희와는 반대로 믿음이 강했던 분들이 자식이 장애라는 걸 확인하고는 열심히 믿은 나에게 왜 이런 고난을 주는지 이해가 안 된다며 교회를 떠나는 분들도 계십니다.
그때 제 아내 설미진 집사가 해 준 말이 아직도 기억납니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질병이나 시련·고통을 받지 않도록 해주는 것이 아니다. 그런 시련을 당할 때 예수에 대한 믿음의 힘으로 자동차 타이어처럼 그 충격을 완화해줘서 이겨낼 수 있는 것이다”
좌우지간 저희는 자동차 타이어처럼 신앙의 힘으로 그 충격을 잘 이겨낼 수 있었습니다. 설현이가 장애진단을 받았을 때가 제 신앙이 가장 신실했던 거 같습니다. 그러나 그 당시 다니던 보수적인 교회와 저는 잘 맞지 않았습니다. 대한민국의 대형교회가 추구하던 그런 신앙을 쫓던 그 작은 보수교회에서의 신앙생활은 시간이 갈수록 저와 맞지 않아서 참 견디기 힘들더라고요.
여의도 대형교회 목사님처럼 하나님이 믿는 사람들에게는 지금 생에서도 복을 내리고, 죽은 후에는 천국에서 영생할 수 있게 해준다고 하는데 안믿을 이유가 없는 기복신앙으로 전락한 모습에, 진짜 믿음이란 어떤 것인지 고민을 하게 되었고 결국 지금은 예수님을 따르고 실천하는 교회 강남향린교회에 다니며 신앙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여기까지가 제가 신앙을 갖게 된 내용이었습니다.
그럼 제 주변의 분들 중 지금은 고인이 되신 저희 부모님과 아내의 외삼촌 얘기를 해보겠습니다.
강남향린교회의 어떤 집사님이 페이스북에 어머니의 사진과 함께 팥칼국수 사진을 올린 적이 있습니다. 식당에서 팥칼국수를 드셨는데 돌아가신 어머니가 해 주시던 그 팥칼국수가 생각난다면서요.
그 사진을 보면서 저도 우리 어머니 박복례 여사가, 특히나 우리 어머니가 직접 해 주시던 음식들이 생각났습니다.
우리 어머니가 담가주시던 열무김치는 정말 잊을 수가 없습니다. 얼마나 맛있던지 명절에 시골에 내려온 작은어머니들은 열무김치만 드시다 가셨으니까요.
두부를 직접 만드시면서 맛 보았던 순두부, 새참으로 먹던 비빔국수, 겨우내 김장김치와 비계가 가득한 돼지고기를 함께 볶은 김치 등등
그리고 어머니하면 떠오르는 게 있습니다. 바로 보름달 빵입니다.
가난한 시골 살림에 학비라도 벌려고 하루종일 남의 밭에서 배추모종 심기, 김매기 등의 품팔이를 하셨는데, 품팔이 중에 배가 고프니 먹으라고 사다 준 빵을 어머니는 배가 고파도 안드시고 자식을 갖다 주겠다고 갖고 오셨습니다. 어머니의 고생은 생각도 안하고 어린 저희는 어머니를 기다린건지 빵을 기다린건지 그 보름달 빵을 잘도 받아 먹었습니다.
그런 어머니가 치매에 신장병으로 인한 투석 치료 등 지병으로 거의 20년 가까이 투병을 하다가 돌아가셨습니다.
제 딸이 중학교 3학년인데, 딸이 기억하는 할머니의 모습은 요양병원에 누워있으면서 치매로 이상한 말만 하던 무섭고 냄새나는 할머니가 전부입니다. 병에 걸리지 않으셨으면 우리 막내가 낳은 딸이라고 얼마나 예뻐하고 귀여워 하셨을텐데 그런 할머니의 추억을 딸이 갖지 못한 게 제일 아쉬움이 남습니다.
저희 아버지 이성만 님은 참 부지런한 농사꾼이었습니다. 젊어서 미군 부대에 복무해서 서울로 나가서 살 수도 있었지만, 장남이어서 부모님을 모셔야 했기에 시골에서 농사를 지으셨습니다.
말은 거의 없으시고 진짜 부지런한 분이셨습니다. 장마철에도 낮잠을 주무시는 걸 한 번도 보지 못할 정도로 성실한 분이었습니다.
그런 아버지는 파킨슨병으로 고생하시다 돌아가셨습니다.
저랑 아내는 두 분이 살아 계실 때 찾아뵈면, 교회에는 한 번도 나가지 않으셔서 천국에 못 가실 거 같으니, 돌아가실 때 천국에 가시라고 기도를 드리고 아멘 아멘 따라하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면 아버지는 여태 교회 안 다녔는데 이게 무슨 소용이 있겠냐고 하시면서도 아들이 기도하고 아멘 하라고 하면 순순히 따라 하셨습니다. 그런 제 기도가 효과가 있었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아내의 큰외삼촌이 계셨습니다. 장모님의 바로 밑의 남동생이었죠. 저는 결혼식이나 처가 행사에서 몇 번 뵌 것이 다였지만, 장모님은 형제간의 우애가 좋아서 자주 만나고, 여행도 같이 다니고 형제간에 정말 사이가 좋게 잘 지내셨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청천벽력같이 큰외삼촌이 암으로 입원을 하셨습니다. 너무 늦게 발견되어서 건강 상태는 더욱 악화되었습니다.
믿는 사람만이 천국에 간다고 믿었던 장모님은 아내와 함께 외삼촌을 찾아가서는 하나님을 믿으면 천국에 갈 수 있으니 하나님을 믿으라고 여러 차례 권면하였습니다.
그때 외삼촌이 그러시더랍니다.
“여태껏 한 번도 교회에 안 다녔는데, 죽게 됐다고 하나님을 믿을테니 나를 천국 보내달라고 하는 건 너무 염치없는 거 아닙니까?”
결국 외삼촌은 염치를 지키시고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누가복음 23장의 뒷부분에는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실 때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실 때 같이 못 박힌 죄수에게 예수님이 너는 오늘 나와 함께 낙원에 있을 것이다라고 하신 대목입니다.
이 부분이 참 많이 고민되게 합니다.
이 구절을 두고 보수적인 교회에서는 그가 어떤 삶을 살았는지는 중요하지 않고 믿음이 그를 구원했다며 오직 믿음만이 천국에 갈 수 있는 길이니 “예수천국 불신 지옥”을 외치면서 예수를 믿으라고 합니다.
평생을 죄를 짓다가도 죽기 직전에 예수를 믿으면 천국에 가는 게 공정하고 공평한 일인가 하는 의문이 제 머리에서 떠나가지 않습니다.
보수교회를 다닐 때 들은 간증도 생각났습니다. “두부 전도왕”이라는 책을 펴낸 분의 전도를 한 이야기였습니다.
이분은 시골이나 섬마을에 할머니 할아버지들한테 두부를 나눠주면서 전도를 해서 많은 분들이 하나님을 믿게 되었다며 자랑스럽게 간증을 하였습니다. 그 간증의 내용입니다.
<시골 마을에 가면 할머니들이 모여 있는 곳에 가서 두부를 주면서 이렇게 말을 합니다.
“할머니, 저기 아궁이에 타고 있는 장작불에 손을 넣으면 어떨까요?”
“엄청 뜨겁겠지.”
“맞습니다. 인간도 예수 안믿고 죽으면 저런 불구덩이 떨어집니다. 저런 불구덩이에 온몸이 얼마나 뜨겁겠습니까.”라며
할머니 할아버지에게 예수를 고백하고 하고 천국으로 인도했다.>
노인분들에게 겁을 줘서 전도한 이 분의 전도방식이 옳다 그르다 판단할 생각은 없습니다. 죽기 전에 믿는다고만 하면 천국에 갈 수 있다는데 그것보다 더 한 일도 해서 천국으로 인도해야겠죠.
그런데도 믿음이 부족한 저는 계속 찜찜합니다. 그래서 누가복음 23장을 자세히 보겠습니다.
죄수 가운데 한 명은 다른 군중들처럼 “너는 그리스도가 아니냐? 너와 우리를 구원하여라.”며 예수를 모독하며 말하였습니다. 반면 다른 죄수는 예수를 모독한 죄수를 꾸짖으며 “똑같은 처형을 받고 있는 주제에, 너는 하나님이 두렵지도 않으냐? 우리야 우리가 저지른 일 때문에 그에 마땅한 벌을 받고 있으니 당연하지만, 이분은 아무것도 잘못한 일이 없다.” 그리고 나서 그는 예수께 말하였습니다.
“예수님, 주님이 주님의 나라에 들어가실 때에, 나를 기억해 주십시오.”
그러자 예수께서 그에게 “내가 진정으로 네게 말한다. 너는 오늘 나와 함께 낙원에 있을 것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를 대하는 태도로 보아 그는 인간이 죄수라고 칭했을 뿐이지, 전혀 죄수가 아닌 거 같습니다.
겸손한 말투로 보아 그전에도 충분히 올바른 삶을 살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죄수라고 다 나쁜 짓만 하던 사람이 아닐 수도 있겠지요.
그래서 저는 예수와 함께 낙원에 있을 죄수가 그의 믿음 고백만으로 낙원에 갔는지, 그의 이전에 삶에 선행이 있어서인지 확신을 할 수가 없습니다. 그건 하나님이 결정하실 일이지 인간이 결정할 일은 아니라고 믿습니다.
저희 부모님이나 아내의 외삼촌이 돌아가신 이후에 대해서는 인간인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그래도 최소한 염치는 아는 삶이라면, 그가 입으로 믿는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 하여 하나님께서 사랑하는 자식을 버리지는 않으셨을 거 같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하나님을 믿지 않는 분들이 살아 생전에 하나님을 믿도록 하는 일을 계속하겠습니다. 하나님은 생명이고 사랑이시기 때문에 제가 아들로 힘들고 어려울 때 위로를 받아 어려움을 이겨냈듯이, 믿지 않는 다른 분들도 그런 위로와 평안을 받기를 원하기 때문입니다.
세상엔 입으로 예수를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이 너무나도 많은 죄를 짓고 있는 것이 아닌지 의심이 듭니다.
물질의 축복이 하나님의 축복이라며 자연과 동물을 맘껏 정복하고 다스리고 부를 맘껏 축적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합니다. 개발과 물질의 풍요가 자연환경을 파괴하는데도 말이죠.
그냥 십일조만 잘 내면 현재도 축복을 받고, 고통 불행 그런 거 없이 살다가 죽어서는 하나님 나라에서 영생을 얻는다고 설교를 합니다. 기독교가 진짜 안 믿을 이유가 없는 종교가 되었습니다.
예수님을 닮으려고 노력하며,
지금의 세상을 예수님이 말하는 정의가 살아있는 세상으로 만들려고 노력하고,
생명에 대해 관심으로 지구온난화를 예방하기 위해 실천하고,
약자에 대해 관대하고 강자의 폭력에는 맞설 수 있는.....
뭐 이런 것들이 예수님을 닮을 삶을 생각하고 그에 맞게 노력하면
그 다음은 하나님이 하실 일이지,
그걸 인간들이 너는 천국에 간다, 너는 지옥에 간다 뭐 이런 건 교만이 아닐까 싶습니다.
이제 제 말을 마칠까 합니다. 천국에 가느냐 마느냐를 말하기 보다는
어떤 삶이 예수님을 닮으려고 하는 삶인지 저는 이런 신앙인이 되기 위해 노력하고자 합니다.
제 행동이 예수를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는 일에 지장이 되는 그런 존재”가 되는 것은 아닌지
“저 사람이 믿는 예수라면 나도 믿고 싶다”는 생각이 들도록 행동했는지
그래서 최소한 염치가 있는 믿음으로 살아가고 있는지 돌아보며 제 믿음 생활을 해가고자 합니다.
함께 침묵으로 기도하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