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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챤이라면 누구나 복음의 눈높이를 깨달아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데까지 이르러야 할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데까지 이르는 것은 복음의 눈높이요,
진리의 복음으로 말미암은 성령의 충만한 그 은혜의 역사입니다.
믿음의 분량은 소위 소원성취를 이루는 축원이 아니라 복음의 눈높이, 그 자체이며
성공과 번영의 결과를 이루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랑을 온전히 이루는 성령의 열매입니다.
소원을 이루는 힘은 축원과 발원을 통한 무속적 신앙이요,
주술적 능력을 얻기 위한 영성 신앙은 무속적인 성령의 충만을 발원합니다.
소위 영성신학과 그 신앙은 인본주의 무속신앙의 전형이요
종말론적인 추수마당의 쭉정이요, 가라지입니다.
건강은 도모하는 것이지만 생명은 향유하는 것이요
신념은 목적을 이루기 위한 수단이지만 믿음은 저마다 "내 안에 살아계신 그리스도"를
깨닫고 발견하는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데까지 이르는 길은 영성신학과 그 신앙으로 성취하는 것이 아니라
은혜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주와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예레미야와 에스겔 선지자는 종말론적인 이스라앨의 심판을 목도하면서
새 언약의 지평으로 성령이 임하고 말씀을 마음에 기록하여
그 말씀을 청종하는 것이 아니라 청종하게 되는 하나님 나라의 백성을 계시하였습니다.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라는 바울의 이해는
예레미야와 에스겔 선지자의 계시에 충실한 완전한 하나님 나라 복음의 눈높이입니다.
☞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
이는 우리가 이제부터 어린 아이가 되지 아니하여
사람의 속임수와 간사한 유혹에 빠져 온갖 교훈의 풍조에 밀려 요동하지 않게 하려 함이라
오직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하여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랄지라
그는 머리니 곧 그리스도라(엡4:13-15)
성도를 온전하게 하며 봉사의 일을 하는 것은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하는 것이요,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는 믿음의 기둥입니다.
포도나무인 예수님 안에 거하는 가지는 열매맺는 그의 제자요,
그리스도 안에 거하는 삶은 생명의 빛이요, 그 빛의 열매를 영생으로 맺을 것입니다.
☞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너희가 열매를 많이 맺으면 내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실 것이요 너희는 내 제자가 되리라(요15:7-8)
시내산의 옛 언약은 율법을 지키고 순종하면 하나님의 백성이 되지만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새 언약은 주 예수를 믿음으로
생명의 성령의 법을 그 마음에 새긴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됩니다.
☞ 그러나 그 날 후에 내가 이스라엘 집과 맺을 언약은 이러하니
곧 내가 나의 법을 그들의 속에 두며 그들의 마음에 기록하여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될 것이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31:33)
참으로 그 마음에 성령으로 새긴 하나님의 법이 있는 사람은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될 것이라는 종말론적인 구원의 본질에 대한
하나님 나라의 복음입니다.
☞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 마음과 네 자손의 마음에 할례를 베푸사
너로 마음을 다하며 성품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게 하사 너로 생명을 얻게 하실 것이며(신30:6)
☞ 그 마음에는 하나님의 법이 있으니
그 걸음에 실족함이 없으리로다(시37:31)
☞ 나의 하나님이여 내가 주의 뜻 행하기를 즐기오니
주의 법이 나의 심중에 있나이다 하였나이다(시40:8)
☞ 의를 아는 자들아, 마음에 내 율법이 있는 백성들아,
너희는 나를 듣고 사람의 훼방을 두려워 말라 사람의 비방에 놀라지 말라(사51:7)
☞ 내가 여호와인 줄 아는 마음을 그들에게 주어서 그들로 전심으로 내게 돌아오게 하리니
그들은 내 백성이 되겠고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리라(렘24:7)
☞ 내가 그들에게 복을 주기 위하여 그들을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는 영원한 언약을 그들에게 세우고
나를 경외함을 그들의 마음에 두어 나를 떠나지 않게 하고
내가 기쁨으로 그들에게 복을 주되 분명히 나의 마음과 정성을 다하여 그들을 이 땅에 심으리라 (렘32:40-41)
☞ 내가 그들에게 일치한 마음을 주고 그 속에 새 신을 주며
그 몸에서 굳은 마음을 제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주어서
내 율례를 좇으며 내 규례를 지켜 행하게 하리니
그들은 내 백성이 되고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리라(겔11:19-20)
☞ 맑은 물로 너희에게 뿌려서 너희로 정결케 하되
곧 너희 모든 더러운 것에서와 모든 우상을 섬김에서 너희를 정결케 할 것이며
또 새 영을 너희 속에 두고 새 마음을 너희에게 주되
너희 육신에서 굳은 마음을 제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줄 것이며
또 내 신을 너희 속에 두어 너희로 내 율례를 행하게 하리니 너희가 내 규례를 지켜 행할지라((겔36:25-26)
☞ 내가 그들과 화평의 언약을 세워서 영원한 언약이 되게 하고
또 그들을 견고하고 번영하게 하며 내 성소를 그 가운데에 세워서 영원히 이르게 하리니
내 처소가 그들 가운데에 있을 것이며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되리라
내 성소가 영원토록 그들 가운데에 있으리니
내가 이스라엘을 거룩하게 하는 여호와인 줄을 열국이 알리라 하셨다 하라(겔37:26-28)
☞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율법이 육신으로 말미암아 연약하여 할 수 없는 그것을 하나님은 하시나니
곧 죄로 말미암아 자기 아들을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보내어 육신에 죄를 정하사
육신을 따르지 않고 그 영을 따라 행하는 우리에게 율법의 요구가 이루어지게 하려 하심이니라(롬8:1-4)
☞ 너희는 우리로 말미암아 나타난 그리스도의 편지니 이는 먹으로 쓴 것이 아니요
오직 살아 계신 하나님의 영으로 한 것이며 또 돌비에 쓴 것이 아니요 오직 육의 심비에 한 것이라(고후3:3)
☞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이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갈5:22-23)
☞ 너희가 전에는 어둠이더니 이제는 주 안에서 빛이라 빛의 자녀들처럼 행하라
빛의 열매는 모든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에 있느니라(엡5:8-9)
☞ 또 주께서 가라사대 그 날 후에 내가 이스라엘 집으로 세울 언약이 이것이니
내 법을 저희 생각에 두고 저희 마음에 이것을 기록하리라
나는 저희에게 하나님이 되고 저희는 내게 백성이 되리라(히8:10)
☞ 또한 성령이 우리에게 증언하시되
주께서 이르시되 그 날 후로는 그들과 맺을 언약이 이것이라 하시고
내 법을 그들의 마음에 두고 그들의 생각에 기록하리라 하신 후에
또 그들의 죄와 그들의 불법을 내가 다시 기억하지 아니하리라 하셨으니
이것들을 사하셨은즉 다시 죄를 위하여 제사 드릴 것이 없느니라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나니
그 길은 우리를 위하여 휘장 가운데로 열어 놓으신 새로운 살 길이요 휘장은 곧 그의 육체니라(히10:15-20)
이렇게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복음은 성령과 말씀의 충만한 믿음의 분량과 그 눈높이를 가졌으며
구원의 커트라인은 사람의 계명을 따라 가르치는 인본주의 신앙의 전형입니다.
구원의 커트라인에 대한 설정은
생명의 성령의 법으로 말미맘은 이루게 하시고 되게 하시고 이르게 하시는
하나님의 역사에 대한 인본주의적 인식입니다.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게 하시고 자라게 하시는 성령의 역사는
해를 바라보며 식물이 자라듯 믿음의 주요 온전케 하시는 예수를 믿음과 소망과 사랑으로 바라보게 합니다.
그러나 모세의 자리에 앉은 서기관과 바리새인이 외식함으로 예수님을 대적하였듯이
다른 예수, 다른 영, 다른 복음, 다른 교훈을 가진 거짓 선지자와 거짓 사도와 삯꾼 목자를 비롯하여
적그리스도와 광명한 천사를 가장한 사탄의 일꾼이 혼잡한 말씀으로 순전한 복음을 대적하였습니다.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의 말씀을 온전히 이루는 신앙은
다른 예수, 다른 영, 다른 복음, 다른 교훈을 가진 거짓의 벽을 극복하고 뒤어 넘어야 합니다.
그러나 오늘날 한국 교회는 다른 예수, 다른 영, 다른 복음, 다른 교훈을 분별하지 못하고
그 혼잡한 말씀으로 종말론적인 추수 마당의 쭉정이와 가라지의 길을 가고 있습니다.
☞ 내가 떠난 후에 사나운 이리가 여러분에게 들어와서 그 양 떼를 아끼지 아니하며
또한 여러분 중에서도 제자들을 끌어 자기를 따르게 하려고
어그러진 말을 하는 사람들이 일어날 줄을 내가 아노라
그러므로 여러분이 일께어 내가 삼 년이나 밤낮 쉬지 않고
눈물로 각 사람을 훈계하던 것을 기억하라(행20:29-31)
☞ 우리는 수많은 사람들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혼잡하게 하지 아니하고
곧 순전함으로 하나님께 받은 것 같이 하나님 앞에서와 그리스도 안에서 말하노라(고후2:17)
사도 바울은 하나님의 말씀을 혼잡하게 하지 아니하고 오직 진리를 나타냄으로
하나님 앞에서 각 사람의 양심에 대하여 확신에 넘치는 검증으로 스스로 추천하였습니다.
구약시대 에브라임 곧 이스라엘은 열방과 혼잡하여 뒤집지 않는 전병이 되었듯이
신약 시대 모세의 자리에 앉은 바리새인과 서기관은 외식함으로 사람의 계명을 따라 가르쳤습니다.
☞ 주께서 이르시되 이 백성이 입으로는 나를 가까이하며 입술로는 나를 공경하나
그들의 마음은 내게서 멀리 떠났나니
그들이 나를 경외함은 사람의 계명으로 가르침을 받았을 뿐이라(사29:13)
☞ 이 백성이 입술로는 나를 공경하되 마음은 내게서 멀도다
사람의 계명으로 교훈을 삼아 가르치니 나를 헛되이 경배하는도다 하였느니라(마15:8-9)
☞ 이르시되 이사야가 너희 외식하는 자에 대하여 잘 예언하였도다
기록하였으되 이 백성이 입술로는 나를 공경하되 마음은 내게서 멀도다
사람의 계명으로 교훈을 삼아 가르치니 나를 헛되이 경배하는도다 하였느니라
너희가 하나님의 계명은 버리고 사람의 전통을 지키느니라(막7:6-8)
오늘날 하나님의 말씀을 혼잡케 하는
다른 예수, 다른 영, 다른 복음을 전하는 적그리스도의 주구는 누구입니까?
드러난 이단과 사이비는 물론
프리메이슨의 뿌리를 가진 종교인들일 것입니다.
한국 교회 안에 침투한 종말론적인 가라지는
이단과 사이비로 타락한 교회의 존경을 받고 있습니다.
적극적 사고방식의 노만 빈센트 필과 로버트 술러,
긍정의 힘의 조엘 오스틴,
목적이 이끄는 삶의 릭 웨렌,
더 시크릿(배밀)의 론다 번,
빈야드의 존 윔버,
예수 전도단의 로렌 커닝햄과 존 도우슨,
신사도의 피터 와그너와 베니 힌,
관상기도 레노바레의 리처드 포스터,
CCC를 창제한 빌브라이트, 등등
한결같이 한 때 한국 교회의 등불이 되었던 그들이
알고보니 종말론적인 혼잡한 밀씀의 쭉정이와 가라지였습니다.
한국교회의 정체성이 되었던 적극적 사고방식, 긍정의 힘, 목적이 이끄는 삶을 비롯하여
알파영성을 기반으로 하는 각종 프렌차이즈식의 교회 성장프로그램 등
종교적 성공신화의 대형교회를 만들었던 맘몬신앙으로 깊이 병들게 하였습니다.
이들 모두 한국 교회에 침투한 종말론적인 추수마당의 가라지요,
혼잡한 말씀을 전하는 복음의 외식자들이며 모세의 자리에 앉은 바리새인과 서기관의 후예,
그 의혹을 남겼습니다.
인본주의 영성을 무분별하게 받아들인 결과
오늘날 한국 교회는 강단의 복음이 사라지는 종말론적인 위기를 맞았습니다.
예수 전도단의 로렌 커닝햄과 목적이 이끄는 삶의 릭 위렌을 존경하는 한국 교회는
알파 영성과 땅밟기 기도와 크리슬람과 종교 다원주의 등
그들이 강조하는 혼잡한 말씀의 책임을 져야 할 것입니다.
기독교의 베스트 셀러는 거의 대부분 종말론적인 가라지요,
침묵과 순종과 영적 서밋, 영적도해 등 영성을 비롯한 공동체와 치유를 주제로 한 대부분의 서적은
혼잡한 말씀의 전형입니다.
기독교 인본주의 신앙을 낳은 모든 신학과 사상과 그 신앙은
종말론적인 다른 예수, 다른 복음, 다른 영을 전하는 거짓 선지자요,
하나님의 일꾼을 가장한 사탄의 일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기독교 서적을 읽는 순간.......
혼잡한 말씀의 슈퍼 바이러스에 감염되는 좀비가 됩니다.
기독교에 침투한 혼잡한 말씀의 침투는
바울이 에베소 교회를 염려한 바로 그 현상이 아닐 수 없습니다.
혼잡한 말씀은 기독교 서적을 비롯해서 강단의 설교와 기독교 단체를 통해서 침투하였고
예전주의는 찬양과 말씀 선포와 헌신과 성도의 교제를 교조적 이데올로기로 고착화시켰습니다.
에브라임은 열방에 혼잡한 뒤집지 않은 전병이라고 한 호세아 선지자는
이스라엘의 종말론적인 참 선지자로 인애와 공의를 강조하였습니다.
구약의 선지자들 가운데 "제사"를 강조한 선지자는 없었으며
오늘날 예배를 강조하는 사역자 가운데 하나님의 신탁을 받은 참 선지자의 후예는 없을 것입니다.
참으로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령의 충만한 데까지 이르는 길은
참된 진리의 말씀과 구원의 복음에 깨어 종말론적인 가라지를 온전히 분별하고 그것을 극복해야만 할 것입니다.
오늘날 한국 교회의 고착화된 교조적 예배의 우상화는
그것이 지옥의 문인지 천국의 문인지 알 수 없을 정도로 이단과 사이비의 술수가 되었습니다.
참으로 예배와 제사의 우상화는
성서지대의 경고와 경계의 말씀을 이루는 지옥의 문을 여는 힌놈의 골짜기가 아닐 수 없습니다.
☞ 사무엘이 이르되 여호와께서 번제와 다른 제사를
그의 목소리를 청종하는 것을 좋아하심 같이 좋아하시겠나이까
순종이 제사 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숫양의 기름보다 나으니
이는 거역하는 것은 점치는 죄와 같고 완고한 것은 사신 우상에게 절하는 죄와 같음이라(삼상15:22-23 상)
☞ 주께서 내 귀를 통하여 내게 들려주시기를 제사와 예물을 기뻐하지 아니하시며
번제와 속죄제를 요구하지 아니하신다 하신지라(시40:6)
☞ 너희 소돔의 관원들아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지어다
너희 고모라의 백성아 우리 하나님의 법에 귀를 기울일지어다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너희의 무수한 제물이 내게 무엇이 유익하뇨
나는 숫양의 번제와 살진 짐승의 기름에 배불렀고 나는 수송아지나
어린 양이나 숫염소의 피를 기뻐하지 아니하노라
너희가 내 앞에 보이러 오니 이것을 누가 너희에게 요구하였느냐 내 마당만 밟을 뿐이니라
헛된 제물을 다시 가져오지 말라 분향은 내가 가증히 여기는 바요
월삭과 안식일과 대회로 모이는 것도 그러하니 성회와 아울러 악을 행하는 것을 내가 견디지 못하겠노라
내 마음이 너희의 월삭과 정한 절기를 싫어하나니
그것이 내게 무거운 짐이라 내가 지기에 곤비하였느니라(사1:10-14)
☞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 손이 이 모든 것을 지었으므로 그들이 생겼느니라
무릇 마음이 가난하고 심령에 통회하며 내 말을 듣고 떠는 자 그 사람은 내가 돌보려니와
소를 잡아 드리는 것은 살인함과 다름이 없이 하고
어린 양으로 제사드리는 것은 개의 목을 꺾음과 다름이 없이 하며
드리는 예물은 돼지의 피와 다름이 없이 하고 분향하는 것은
우상을 찬송함과 다름이 없이 행하는 그들의 마음은 가증한 것을 기뻐한즉
나 또한 유혹을 그들에게 택하여 주며 그들이 무서워하는 것을 그들에게 임하게 하리니
이는 내가 불러도 대답하는 자가 없으며 내가 말하여도 그들이 듣지 않고
오직 나의 목전에서 악을 행하며 내가 기뻐하지 아니하는 것을 택하였음이라 하시니라(사66:2-4)
☞ 내가 너희 절기를 미워하여 멸시하며 너희 성회들을 기뻐하지 아니하나니
너희가 내게 번제나 소제를 드릴지라도 내가 받지 아니할 것이요
너희 살진 희생의 화목제도 내가 돌아보지 아니하리라(암5:21-22)
☞ 내가 무엇을 가지고 여호와 앞에 나아가며 높으신 하나님께 경배할까
내가 번제물로 일 년 된 송아지를 가지고 그 앞에 나아갈까
여호와께서 천천의 숫양이나 만만의 강물 같은 기름을 기뻐하실까
내 허물을 위하여 내 맏아들을, 내 영혼의 죄로 말미암아 내 몸의 열매를 드릴까
사람아 주께서 선한 것이 무엇임을 네게 보이셨나니 여호와께서 네게 구하시는 것은
오직 정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하게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 아니냐(미6:6-8)
☞ 나는 인애를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며 번제보다 하나님을 아는 것을 원하노라(호6:6)
이처럼 예전주의적 예배를 강조하는 것은 구약시대 선지자의 몽둥이를 맞은 타락한 제사장의 몫이요,
신약 시대 예배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증거하는 것이요, 그 진리로 새롭게 된 거룩한 삶입니다.
오늘날 형식화된 예베 의식은 예배 중심의 교회라는 하나님의 영광과 그 뜻을 빙자한 외식이요,
사람의 계명을 따라 하나님의 계명을 버리고 전통을 지키는 교조화된 종교적 이데올로기일 뿐입니다.
☞ 이르시되 이사야가 너희 외식하는 자에 대하여 잘 예언하였도다
기록하였으되 이 백성이 입술로는 나를 공경하되 마음은 내게서 멀도다
사람의 계명으로 교훈을 삼아 가르치니 나를 헛되이 경배하는도다 하였느니라
너희가 하나님의 계명은 버리고 사람의 전통을 지키느니라
또 이르시되 너희가 너희 전통을 지키려고 하나님의 계명을 잘 저버리는도다(막7:6-9)
오순절 성령의 강림으로 탄생한 주의 몸된 교회는 의식화된 예배를 드리는 고착화된 것이 아니라
주 예수의 선포된 복음을 전하는 역동적인 본질을 가졌습니다.
예배의 우상화에 빠진 광신의 늪은
중세 타락한 로만 카톨릭의 유산입니다.
참으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령의 충만한 데까지 이르는 길은
나는 인애를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며 번제보다 하나님을 아는 것을 원하노라는
호세아 선지자의 말씀을 청종해야 할 것입니다.
주술적 무속 신앙과 푸닥거리 예배의 늪에 빠진 한국 교회를 바라보시는 주님의 시선은
사람아 주께서 선한 것이 무엇임을 네게 보이셨나니 여호와께서 네게 구하시는 것은
오직 정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하게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 아니냐는 말씀일 것입니다.
참으로 오늘날 한국 교회는
오직 정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하게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 아니냐는
미가서 말씀의 수준에 전혀 미치지 못하고 있습니다.
온갖 이단과 사이비를 다 받아들이면서
신약 성경에 없는 사람의 전통으로 교조화된 주일성수와 예배와 십일조를
진리의 말씀으로 분별하고 비판하면.....
도무지 감당 못해 버럭 성질을 부리며 개거품을 흘립니다.
우상화된 예배의식에 브레인워싱된 상태요,
종교적 집단 최면현상 아닐 수 없습니다.
누가 스스로 종교적 집단 최면현상에서 깨어 날 수 있을 것이며
진리의 복음과 구원의 말씀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를 것인가?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의 충만한 데까지 이르기 위해서는
참된 성령과 말씀의 충만으로 옳게 분별하여 많은 거짓의 산을 넘고 또 넘어야 할 것 같습니다.
종말론적인 추수마당의 쭉정이와 가라지를 분별하고 극복하지 못한다면
성전을 피로 물들인 에스겔의 살육기계를 조우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