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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 돋보기 - 대중 매체와 가톨릭] 대중 매체에 나타난 천주교
코미디 장르에서 성(聖)과 속(俗)을 넘나들다
1993년 5월 개봉하여 인기를 끈 영화 ‘시스터 액트’(에밀 아돌리노 감독)는 삼류 흑인 가수 ‘들로리스’가 범죄 현장을 우연히 목격하고 쫓기다가 경찰의 보호 조치로 수녀원에 가게 된 이야기다. 말썽을 일으키며 적응하지 못하던 그녀가 성가대 지휘를 맡게 되면서 수녀원과 교회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된다. 이 영화는 이듬해 속편까지 제작될 정도로 흥행에 성공했다.
이 영화보다 앞서 1991년 6월 초연한 뒤 9,200회 이상 최다 공연 기록을 세우며 천만 관객을 동원한 최장수 공연이 있으니, 바로 뮤지컬 ‘넌센스’이다. 의문의 야채수프를 먹고 죽은 수녀들의 장례비 마련을 위해 5명의 수녀가 좌충우돌하는 과정을 그렸다. 쉴 새 없는 수다와 유머, 예측하기 힘든 말과 행동이 관객들에게 시종일관 웃음을 안겨 준다.
2004년 개봉된 허인무 감독의 ‘신부 수업’은 모범적인 신학생 규식이 교황이 축성한 성작(聖爵)을 깨뜨리는 사고를 저지르고, 이른바 ‘영성 강화 훈련’을 명받아 변두리 작은 성당으로 가며 이야기가 펼쳐진다. 설상가상으로 그곳에서 우여곡절 끝에 ‘그녀’에게 첫 입술을 빼앗기고 만다. 더구나 ‘그녀’는 그곳 성당 주임 사제인 남 신부님의 조카다. 제목 ‘신부 수업’은 예비 ‘신부’(神父)와 예비 ‘신부’(新婦)를 모두 담은 중의적 표현이다.
오늘날 코미디 장르에서도 성직자와 수도자, 교회는 성스러운 것과 세속적인 것 사이의 경계를 넘나든다. 고고하고 성스럽다는 고정 관념을 유머 섞인 대사와 행동, 우발적 사건 등을 통해 무너뜨리는 것이다. 그렇다고 무조건 우스꽝스럽게 희화화하거나 조롱하는 것은 아니다. 교회의 규범을 아슬아슬하게 위반하기도 하지만, 귀결은 다분히 교훈적이거나 모두가 수긍할 만한 ‘해피엔드’이다.
멜로물의 배경이 되다
“이영옥이 며칠 전 촬영이 끝난 ‘13월의 정사’라는 영화에서 신부를 유혹하는 여대생 역을 맡았는데 ‘요염한 여인 역을 여러 번 했지만 이번만은 망설여졌다.’고 고백. 극중 이야기지만 신부와의 관계에 저항을 느끼게 된 것은 지난 1월부터 서울 역촌성당에 나가고 있기 때문.”
동아일보 1981년 10월 10일자에 실린 기사의 일부다. 제작사 대표는 물의를 우려하여 “아무래도 영화를 다시 찍어야겠다.”는 뜻을 밝히기도 했다. 결국 이 영화는 ‘13월의 연정’(박용준 감독)으로 제목이 바뀌어 1982년 6월 개봉되었다.
2003년 1월 30일 서울 중림동 약현성당에서는 MBC 미니시리즈 ‘러브레터’의 프롤로그인 사제 서품식 장면이 촬영되었다. 촬영 현장에는 당시 홍창진 신부(과천 별양동성당 주임)가 자문역으로 초빙되었다. 드라마는 ‘사제로서의 길’과 ‘한 여인에 대한 사랑의 길’ 사이에서 고뇌하는 남자의 이야기를 그렸다.
제작진은 주교회의에 2002년 10월 자문을 요청했고, 이에 주교회의 산하 ‘교회일치와 종교간대화 위원회’ 총무 홍창진 신부가 자문에 참여했다. 제작진은 홍 신부의 의견을 전적으로 반영했다. 천주교 사제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사실상 첫 드라마였고, 교회가 제작 과정 자문에 참여한 첫 드라마이기도 했다.
성직자나 교회가 남녀 간 사랑 이야기, 곧 멜로물의 소재와 배경이 되는 경우는 드물지 않다. 우리나라 텔레비전 채널에서도 방영된 콜린 매컬로 원작 ‘가시나무새’가 대표적이다. 로마 가톨릭 사제인 랠프와 성숙한 아가씨로 자란 매기의 평생에 걸친 사랑과 고뇌를 담았다. 이런 멜로물에서는 교회가 제도적으로 금기시하는 것에 대한 위반 가능성과 이를 둘러싼 내외적 갈등이 묘사되곤 한다. 이 점이 시청자나 관객들을 끌어들이는 요소이기도 하다. 자칫하면 지나치게 말초적으로 흐를 위험도 없지 않다.
초자연적 현상과 관계하다
구마 의식을 주요 소재로 하는 영화, 드라마가 2010년대 중반 이후 연이어 나오고 있다. 2015년 11월 개봉하여 540만 관객을 모은 장재현 감독의 ‘검은 사제들’이 대표적이다. 잦은 돌출 행동으로 교회의 눈 밖에 난 ‘김 신부’는 교통사고를 당한 뒤 의문의 증상에 시달리는 소녀를 구하려고 그의 구마 의식을 도울 또 한 명의 사제를 찾는다. 모두가 이를 기피하는 가운데 ‘최 부제’가 선택되고, 그는 그 일을 돕는 것과 동시에 김 신부를 감시하라는 임무도 맡는다는 내용이다.
2018년 9월 OCN에서 방영된 드라마 ‘손 더 게스트’(the guest)는 영매인 ‘윤화평’이 귀신 들린 사람을 찾아내면 사제인 ‘최윤’이 귀신을 쫓아내고, 형사 강길영과 무당 육광이 그런 그들을 돕는다는 내용이다. 그들은 사회 곳곳에서 기이한 힘으로 말미암아 벌어지는 범죄에 맞선다.
손 더 게스트’에 이어 같은 방송사에서 2018년 11월부터 이듬해 1월까지 방영된 ‘프리스트’도 드라마 소재로 구마 의식을 하는 가톨릭 사제를 등장시켰다. 주인공 오 신부는 남부 가톨릭 병원 여의사인 함은호와는 지난날 연인 사이로, 그는 악령에게 빙의된 그녀를 구하고자 지난날의 기억을 지우고 구마 사제가 된다.
이렇게 천주교와 관련 있는 ‘구마’를 소재로 한 드라마가 연이어 제작되는 것에는 지상파 중심이었던 방송계 지형이 다양한 채널로 다변화되었다는 배경이 있다. 지상파 채널에서 특정 종교를 중심 내용으로, 더구나 ‘구마’라는 소재를 직접적으로 구현하기는 쉽지 않다.
이러한 현상을 방송의 관점에서 본다면 적어도 ‘소재의 다양화’라는 흐름으로 볼 수도 있다. OCN에서 2017년 8월 첫 방영한 사이비 종교 집단과 관련한 내용을 담은 드라마 ‘구해줘’, 같은 방송사에서 2018년 3월부터 방영한 이단 교회가 등장하고 ‘신기’(神氣)있는 형사가 주인공인 드라마 ‘작은 신의 아이들’도 비슷한 맥락에서 볼 수 있다.
‘정의의 보루’로서의 교회와 성직자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가톨릭교회와 사제가 등장하는 영화로 큰 인기를 모은 것은 1986년 개봉된 롤랑 조페 감독의 영화 ‘미션’일듯 싶다. 1750년 남미 오지로 선교 활동을 떠나 과라니족 원주민 마을에 교회를 세우려는 가브리엘 신부와 이 원주민들을 사고팔던 악랄한 노예상 멘도자가 하느님의 부르심을 통해 변화해 가는 이야기를 다룬다. “어둠이 빛을 이겨 본 적이 없다!”는 영화 속 명대사로 남았다.
1989년 개봉된 존 듀이건 감독의 ‘로메로’는 엘살바도르 군사 정권의 폭압 속에서 시민을 지키고 성직의 길을 올곧게 걸어간 로메로 주교의 모습을 담았다. 우리나라에서는 1987년 민주 항쟁 이후 촉발된 전반적인 민주화 분위기와 맞물려 이 영화가 상영되었는데, 이 영화는 당시의 ‘80년대 군사 정권 시대’를 다시 들여다보게 해 주었다.
최근 SBS에서 방영된 드라마 ‘열혈 사제’에서 김해일 신부는 전통적인 사제의 이미지와는 정반대의 모습이다. 지난날의 정신적 충격과 상처로 말미암아 ‘분노 조절 장애’를 겪는 그는 사제가 되어서도 말보다 주먹이 앞선다. 그의 은사로 등장하는 이영준 신부는 그와는 완전히 상반되는 배역으로 등장한다.
현실의 부조리와 모순을 개인의 힘으로 극복해 나가기란 어렵다. 우리 사회가 민주화되었다고는 하지만 시민들은 지난 정권의 국정 농단에서 민주화의 퇴행 가능성을 봤다. ‘촛불 혁명’ 이후 새로운 정부가 적폐 청산에 나섰지만, 그렇다고 우리 사회의 많은 문제가 빠른 시간 안에 가시적으로 해결되어 나가는 것 같지도 않다. 이런 점들이 ‘열혈 사제’가 누린 인기의 배경이 아닐까.
상업주의의 자극적 수단으로 오용되기도
2010년 9월 임신한 수녀 모습을 내보낸 ‘안토니오 페데리치’ 아이스크림 광고가 ‘영국 광고 기준청’(ASA)에 의해 광고 금지 조치 처분을 받았다. 특정 종교, 곧 가톨릭을 조롱하고 왜곡했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수녀로 분장한 만삭 모습의 모델이 아이스크림을 떠먹는 광경이 묘사된 광고였다. 안토니오 페데리치 측은 그 전에도 수녀가 상의를 반쯤 벗은 신부와 키스하려는 모습을 담은 광고를 내보냈다가 이 또한 금지 조치를 당한 바 있다.
2005년 3월 청바지 브랜드 ‘마르테 프랑수아 저버’는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최후의 만찬’을 패러디하면서, 여성 예수와 에로틱한 모습의 제자들을 광고에 등장시켰다. 결국 이 광고는 신성 모독이라는 비난을 받았고, 프랑스 법원으로부터 게재 금지 명령을 받았다. 하지만 사진이 이미 널리 유포된 탓에 업체 측은 사실상 광고 효과를 톡톡히 보았다.
의류업체 베네통은 1992년 신부와 수녀 복장을 한 젊은 남녀가 키스하는 모습을 담은 광고를 제작했다가 큰 논란을 일으켰다. 베네통 측은 ‘사랑이 조직과 제복을 초월한다.’는 뜻을 광고에 담고자 했다고 밝혔지만, 종교의 전통과 가치에 대한 모독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결국 많은 비판 속에 광고에는 제대로 사용되지 못했지만, 이 사실이 언론 매체를 통해 이미 널리 알려진 다음이어서 베네통은 이른바 ‘노이즈 마케팅’에 성공한 셈이었다.
이렇듯 교회와 성직자, 수도자의 모습이 광고에서 오용되는 경우는, 유럽에 기반을 둔 업체에서 상대적으로 잦은 편이다. 이것이 우연이기만 할까. 가톨릭 전통과 역사의 종주지라 할 수 있는 유럽이기에, 오히려 그것을 자극적인 상업주의 수단으로 왜곡하고 오용하는 것의 극적 효과를 의도한 것은 아닐까 싶다.
[경향 돋보기 - 대중 매체와 가톨릭] 대중 매체의 가톨릭 묘사에 대한 몇 가지 의문
지금은 ‘영웅 신부님 전성시대’다. 세상에 만연한 악과 대적하는 드라마와 영화 속 사제들은 바쁘다. 구마 예식을 신비롭고 엄숙하게 보여 주려면 라틴어도 잘해야 한다. 사목 활동 가운데 만난 악의 무리와 치열하게 싸우려면 주먹을 쓰거나 피도 흘려야 한다.
가톨릭에 대한 대중문화계의 관심은 내가 일하는 주교회의 홍보국에서도 느껴진다. 실제 수도원을 촬영 장소로 섭외할 수 있는지, 기획 중인 줄거리와 설정이 교리와 관례에 부합하는지 등의 문의가 잦아지고 있다. 이는 전에 없던 새로운 현상이기에, 현재로서는 검증이 잘된 작품에 도움을 줄 인사나 촬영 장소가 될 본당과 수도회를 관할하는 교구와 접촉하도록 안내한다.
예전에도 대중 매체 속 가톨릭은 단편적이나마 좋은 모습이었다. 드라마 등장인물이 성당의 십자고상이나 성모상 앞에서 자신의 불행을 하소연하거나, 가톨릭 신자라는 단서가 없었어도 혼인과 장례만은 성당에서 하는 식이었다. 요컨대 가톨릭은 삶을 축복하고 아픔을 위로하는 상징이며, 지금은 그 기능이 확장된 느낌이다.
제복을 입은 정의의 사도를 찾아
대중 매체는 수용자의 몰입을 위해 희소하고 독특한 소재를 찾아다닌다. 동시에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고 싶어한다. 상상의 힘을 빌려 현세의 대안과 이상향을 제시하는 창작자들은 불의를 처단하고 정의를 실현할 영웅을 창조하려 애쓴다.
한국 드라마와 영화에서 그 역할은 주로 경찰과 법조인이 맡아왔다. 그들에게는 외형상의 공통점이 있다. 바로 단련과 절제, 규율과 원칙의 상징인 제복이다. 그러나 법을 다루는 사람들의 비리로 공권력의 신뢰가 저하되고 여러 작품에서 비슷한 직업군의 인물이 대립하는 구도가 반복되자, 의로운 공직자는 식상한 소재가 되었다.
새로운 정의의 사도를 탐색하던 제작자들에게, 가톨릭 사제와 수도자는 대중의 신뢰감과 궁금증을 동시에 충족할 대안이 되었다. ‘사제물’이라 불릴 법한 콘텐츠의 성공 가능성은 외국 영화 ‘엑소시스트’와 ‘시스터 액트’, ‘신과 함께 가라’, 드라마 ‘브라운 신부’ 등에서 검증된 상태였다. 국내에서는 사제들의 꼼꼼한 감수와 촬영 협조로 제작된 영화 ‘검은 사제들’의 성공이 선례를 남겼다.
낯설지만 궁금한 가톨릭의 매력 자본
‘사제물’은 제복을 입은 이들에 대한 도덕적 기대와 소재의 희소성이 결합되어 탄생했다. 한국의 종교인들 가운데서도 가톨릭 사제들은 잘 단련된 소수 정예 집단으로 인식된다. 다른 주요 종교 성직자보다 적은 인원, 10년에 가까운 긴 양성 기간 때문이다(문화체육관광부 ‘2018년 한국의 종교 현황’에서 한국 개신교 목회자는 28만 3천여 명, 불교 승려는 5만 6천여 명, 천주교 성직자는 5천3백여 명으로 집계된다).
가톨릭 사제와 수도자에게는 특별한 ‘매력 자본’이 있다. 바로 거룩함과 정결이다. 한때는 서양에서 들어왔고, 입교 준비에만 6개월이 걸리며, 판공 성사와 교적으로 실제 신앙생활의 지속 여부를 증명해야 한다는 점이 가톨릭에 대한 심리적 장벽이었다. 하지만 김수환 추기경 선종, 프란치스코 교황 선출과 방한 특집 방송으로 교회의 모습이 널리 알려지자, 가톨릭은 단일한 세계 종교, 전례의 거룩함이 살아 있는 종교라는 우호적 인식이 높아졌다.
성 담론 과잉의 시대에 젊은이의 정결은 희소한 자본이 된다. ‘검은 사제들’의 강동원, ‘손 더 게스트’의 김재욱처럼 용모가 준수한 배우가 사제복을 입으면 팬들은 환호한다. 모두들 탐내지만 누구도 독점할 수 없는 ‘금단의 열매’로 둔갑한 것이다. 그 환호에는 외모의 찬사만 있을 뿐, 정결의 본질에 대한 관심은 없다. 일부 패션 잡지 화보나 핼러윈 의상은 수도복을 노출이 심한 옷으로 변형해 젊은 수녀를 욕정의 화신으로 왜곡하기도 한다. 정결에 대한 조롱이다.
거룩함과 정결에 대한 호응은 역설적으로 현대인들이 잊어버린 가치를 환기시킨다. 그러나 사제직의 고찰, 자료 조사와 검증이 부족한 채 배우의 매력만 강조하는 연출은 경계해야 한다. 특히 젊은 사제의 역경을 강조하고자, 그를 가로막는 선배 사제와 수도자가 실은 악령의 하수인이라는 식의 설정은 비판받아 마땅하다.
용어와 배경 검증, 소통이 필요하다
드라마 ‘프리스트’와 ‘열혈 사제’의 가톨릭 검증 논란을 접하며 생각난 사건이 있다. 주교회의 부서들의 기록물, 교회 기관 선배들의 증언으로 알게 된 일이다.
2005년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 선종 때 국내 언론사, 교회 기관, 가톨릭 언론인들 사이에 심각한 엇갈림이 있었다. 교회 밖 매체들은 봇물 터지듯 쏟아지는 외신들을 적절히 번역하지 못해 교회 용어와 맥락이 어그러진 기사들을 출고했다. 비신자 언론인들은 어느 천주교 기관에 문의해야 하는지 몰라서, 가톨릭 언론인들은 부실한 보도가 이어져 애를 태웠다.
그 시행착오는 교회 기관과 언론사 간의 소통 창구를 정립하는 계기가 되었다. 주교회의 사회홍보위원회의 전신인 매스컴위원회는 언론인 위원들을 주축으로 ‘미디어 종사자를 위한 천주교 용어 · 자료집’ 편찬을 시작했고, 완성된 원고는 홍보국의 교정 교열과 자료 보강, 주교회의 용어위원회의 감수를 거쳐 2011년 발행한 뒤 언론사와 출판사에 배포했다.
주교회의와 교구 홍보국은 교회 밖 매체들과의 소통 체계를 갖추어 나갔고, 주교회의는 교황청 중대 사안 발생에 대비해 참고 자료를 축적했다. 그 결과, 2013년 베네딕토 16세 교황 사임과 프란치스코 교황 선출, 2014년 교황 방한, 2018년 문재인 대통령의 교황청 방문 때 교회와 매체 간 소통, 표준 용어 사용, 인터뷰 섭외, 자료 제공에 괄목할 만한 발전이 있었다. 보도 부문에서도 시행착오와 오랜 조율을 거쳐 왔을진대, 그보다 발걸음을 늦게 떼었고 가상의 이야기를 창작해야 하는 극예술의 가톨릭 묘사에 갈 길이 먼 것은 확실하다.
드라마에서 가톨릭이 다뤄질 때마다 시청자 게시판에는 용어와 설정에 대한 지적이 빗발친다. 서울대교구의 감수를 받은 드라마 ‘열혈 사제’도 초반에는 오류가 잦았다가 점차 개선되었는데, 그 과정에는 오해도 있었다. 한 예로 몬시뇰로 설정된 신부의 복장이 주교 모자(자주색 주케토) 없이 자주색 허리띠만 착용한 것도 몬시뇰 복장이 맞는데 일부 신자들이 주교 복장으로 잘못 알고 항의했던 것이다.
개신교 인구가 가톨릭보다 훨씬 많은 한국의 특성상, 제작진이 대본을 구성할 때 비교적 귀에 익은 개신교 성경과 용어를 쓰기도 한다. 일차적 책임은 제작진의 검증 부족에 있다. 그런데 그들이 적절한 감수자를 찾지 ‘못했다면’ 어떨까? 입장을 바꿔 생각해 보자. 우리가 사전 정보 없이 이웃 종교를 방문할 때 그 종교의 예식과 언어를 얼마나 이해할 수 있는가? 그 종교를 쉽게 설명해 줄 사람을 얼른 찾아낼 수 있는가?
상상의 자유를 보장하면서도 잘 검증된 작품을 만들려면 교회와 제작진이 꾸준히 소통해야 한다. 공신력 있는 교회 기관들이 제작진에게 열려 있어야 하고, 상호 협력한 경험들이 공유되고 축적되어야 한다. 극적 효과를 위해 교회의 모습을 허구로 연출했을 경우, 교회 매체와 사목자들이 설정과 실제를 분별해 준다면 그 자체가 교리교육이 될 수 있다. 무리한 연출에 대한 비판 또한 보장되어야 한다. 작품을 향유하는 이의 권리이자, 장차 만들어질 작품들을 위해서도 필요한 정보이기 때문이다.
편집된 영상, 편집될 수 없는 교회
‘열혈 사제’ 종영 당시 극중 간접 광고(PPL)의 효과를 분석한 기사가 등장하자, “최고의 PPL은 천주교”라는 댓글이 많은 공감을 받았다. 촬영지였던 서울 중림동 약현성당에는 많은 신자와 관광객이 찾았고, 본당 수녀를 연기한 배우는 ‘냉담’을 풀었다고 한다.
대중 매체에 교회가 조명될 때면 많은 이가 선교 효과를 언급한다. 2014년 프란치스코 교황 방한을 앞두고는 고해소를 찾는 냉담 교우가 많아졌다는 사제들의 전언도 있었다. 정말 그럴까? 2003-2018년 ‘한국 천주교회 통계’를 살펴보자.
예비 신자가 전년보다 1만 명 이상 늘어난 해는 2005년(167,100명), 2007년(197,756명), 2009년(167,914명)이었다. 2005년은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 선종, 2009년은 김수환 추기경 선종으로 교회의 매체 노출이 잦았다. 이태석 신부가 선종한 2010년은 예비 신자 대신 주일 미사 참여자(1,418,162명)가 10만여 명 늘었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방한한 2014년에는 예비 신자(124,139명)가 전년보다 5천여 명, 이듬해에는 주일 미사 참여자가 2만여 명 늘었다.
그럼에도 신앙생활 지표들은 장기적으로 하락세다. 최근 15년 사이 연간 예비 신자 총수는 반 이하로 줄었고(2003년 162,732명, 2018년 66,524명), 주일 미사 참여자는 2010년 정점 이후 지금은 1백만 명 선이 위태로울 지경이다(2010년 1,418,162명, 2018년 1,075,089명).
가톨릭에 대한 대중 매체의 우호적 묘사는 단기적 선교에 도움이 되었어도, 새 신자들의 정착, 기존 신자들의 신앙생활 지속, 냉담 교우들이 다시 신앙생활을 하는 데 유의미한 도움을 주지는 못했다. 화면 너머 신앙을 감상하는 사람들은 늘어났어도, 교회 안에서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은 줄어들고 있다.
선교보다 넓은 의미의 복음화에 진정 필요한 것은 근사한 편집본이 아니라 피부에 와닿는 교회의 편집될 수 없는 언행이다. 대중 매체는 교회에 대한 관심을 일깨우는 보조 수단일 뿐, 좋은 원본이 없이는 좋은 편집본도 있을 수 없다. 편집된 영상 속 교회의 좋은 모습에만 도취될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경향 돋보기 - 대중 매체와 가톨릭] 교회의 대중 매체 활용
‘Pope Francis’. 프란치스코 교황의 ‘트위터’ 계정이다. 날마다 두세 줄의 짧은 글이 올라오는 이 트위터에 천팔백만 명이 넘는 팔로워가 연결되어 있다. 2016년 개설한 교황의 ‘인스타그램’ ‘franciscus’은 최단 시간 동안 100만 팔로워를 돌파하면서 교황은 최고의 인스타그램 스타가 되었다.
교회의 최고 어른이 최신의 디지털 미디어를 통해 복음을 전하는 것을 보며 전 세계인이 환호하고 있다. 2000년 전 예수님께서 군중에게 비유로 하느님 나라를 말씀하시고 바오로 사도가 서신으로 교회에 복음을 전했던 것처럼 프란치스코 교황은 현대 기술이 제공하는 ‘미디어’(미디어[Media]는 대중 매체[Mass Media]의 상위 개념이지만 이 글에서는 같은 의미로 혼용하였다.)를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하느님이 누구이신지 알리고 있다.
어떤 이는 ‘교황님이니까 그런 거 아냐?’ 하고 반문할 수도 있겠다. 물론 교황이기 때문에 그 영향력이 더 부각되는 점도 있겠지만 주변을 살펴보면 미디어를 활용하여 복음을 전하려는 사목자와 평신도들의 활동을 볼 수 있다. 아직은 그 걸음이 눈에 띄게 활발하진 않지만 대중 매체와 새로운 미디어를 이용하여 현대 사회와 소통하고 친교를 이루려는 열정이 커지고 있음은 분명해 보인다.
교회는 대중 매체를 활용해 복음을 전하라고 한다. 그런데 왜 대중 매체일까? 왜 미디어일까? 현대 사회에서 텔레비전, 영화, 신문, 인터넷과 같은 매체가 얼마나 중요하고 긴요한 역할을 하는지 모르는 이는 없다. 그럼에도 이런 질문을 한 것은 그에 대한 고민과 답이 교회의 대중 매체 활용에서 첫 번째 단계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대중 매체에 대한 교육, 하느님의 ‘선물’을 알아 가기
비오 12세 교황의 회칙 「놀라운 발명」(Miranda Prorsus, 1957년)은 다음과 같이 시작한다. “우리 시대 인류의 자랑인 저 놀라운 기술적 발명은 비록 인간의 재능과 노력의 산물이지만 우리의 창조주이신 하느님의 선물입니다. 모든 좋은 선물은 하느님에게서 나왔습니다.”
위의 질문에 답한다면, 교회는 대중 매체를 주님께서 주신 ‘선물’로 인식하므로 활용하는 것이다. 물론 이 선물을 함부로 남용하면 어떠한 악영향을 초래하는지 알고 있다. 잠시 생각해 보자. 혹여 위험할지 모른다는 생각으로 대중 매체를 꺼리는 것은 아닌지? 만일 그렇다면 화재가 무서워서 불을 사용하지 않는 것과 같지 않을까?
대중 매체는 주님께서 인간 생활을 더 풍요롭게 하고 이 시대에 복음을 전하는 새로운 도구로써 주신 ‘선물’이다. 그러므로 선물을 주신 분의 뜻에 따라 잘 활용하는 것이 우리의 몫이다. 대중 매체를 바라보는 인식의 긍정적 전환이 필요하다.
그렇다면 어떻게 활용할 수 있을까? 어떤 것을 사용하려면 앎의 과정이 필요하고, 기능을 제대로 사용하려면 선(先)교육도 필요하다. 교회가 복음을 선포하고자 대중 매체를 활용할 때도 마찬가지이다.
대중 매체에 대한 교회의 문헌들은 모두 미디어 교육의 필요성을 강조하였다. 특히 미래 사목자를 양성하는 신학교의 미디어 교육을 중요한 과정으로 권고하였다. 가톨릭 교육성의 「사회 홍보 수단에 관한 사제 양성 지침」(1986년)은 미디어 교육의 목적을 세 가지로 제시한다. 먼저 신학생 본인의 미디어 사용에 대한 훈련을 쌓는 것이고, 신자들이 미디어를 올바로 사용하도록 가르치기 위한 것이며, 사도직 안에서 미디어를 활용하는 방법을 배우기 위한 것이다(4항 참조).
현재 우리나라의 신학교 가운데 미디어 교육을 교과목으로 지정한 곳은 인천과 수원뿐이며 해마다 개설하는 곳은 인천이다. 이는 신학교 교육 과정 가운데 배워야 할 신학과 철학이 많은 점도 있지만, 대중 매체에 대한 긍정적이지 않은 인식과 신학교에서 왜 미디어 교육이 실행되어야 하는지 인지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신학교의 미디어 교육은 신학생의 미디어 능력을 향상시키는 것뿐만 아니라 미래의 하느님 백성을 위한 직무를 수행하는 데 도움이 된다.
최근 몇몇 텔레비전 드라마와 영화 속에서 사제가 자주 등장하였고 신자들도 익숙하지 않은 구마 의식이 여러 매체에서 다뤄지면서 화제가 되었다. 교회에 대한 대중 매체의 재현을 ‘드라마니까’ 또는 ‘영화니까’로 여기며 현실의 교회와 분리하는 것은 단순한 이분법적인 해석일 뿐이다.
드라마의 시청자들은 텔레비전 속의 사제와 교회의 모습이 미디어가 만들어 낸 허구임을 알면서도 때로는 직간접적인 영향을 받는다. 그러므로 신학교에서 이뤄지는 미디어 교육은 대중 매체에 등장하는 종교적, 윤리적, 사회적 문제에 대해 사목자의 눈으로 해석하는 능력을 성장시키고, 종교적 메시지와 상징을 왜곡시키는 미디어를 비평하며, 신자들에게 올바른 복음적 가치를 전하려는 것이다. 나아가 대중 매체에서 일하는 이들을 신앙으로 고무시키며, 직접 콘텐츠를 제작하는 능력을 습득하여 적극적으로 복음을 선포하는 방법을 모색하는 데 자극을 받는다.
실제로 필자의 미디어 수업을 듣는 신학생들이 미디어를 하느님의 선물로 인식하고 이해의 폭을 넓혀 가며 스스로 활용 방법을 찾고자 노력하는 모습을 보면 참으로 감사한 마음이다. 또한 그러한 모습에서 세상 속에 그리스도를 선포하고자 하는 사목자의 열정도 느낀다.
대중 매체 활용, ‘선물’을 함께 나누기
미디어가 하느님의 선물임을 인식하게 되었다면 이제 최신의 미디어를 적극적으로 활용해 보자.
가장 현대적인 미디어를 떠올리면 다양한 디지털 매체가 연상될 것이다. 앞서 보았던 교황의 ‘트위터’나 ‘인스타그램’뿐만 아니라 최근 가장 영향력 있는 ‘유튜브’까지 수많은 디지털 미디어가 있다. 그 가운데 인터넷 라디오라고 할 수 있는 ‘팟캐스트’에 집중해 본다. 팟캐스트에 주목한 이유는 콘텐츠를 만드는 사람과 이용자 모두 쉽게 접근할 수 있는 매체이기 때문이다.
먼저 이용자 편에서 보면, 팟캐스트에는 사회 전반을 아우르는 수많은 콘텐츠가 날마다 또는 일정 주기에 따라 올라온다. 이용자는 관심 있는 분야와 주제에서 채널을 선택하거나 순위별로 제공되는 채널 중에서 자신이 원하는 콘텐츠를 찾을 수 있다. 날마다 해당 채널을 검색하는 노력을 하지 않아도 구독 신청을 하면 자동 업데이트가 되기 때문에 쉽게 청취할 수 있다. 또한 다운로드로 언제 어디서나 재생도 가능하다.
그렇다면 가톨릭 신자들이 들을 수 있는 팟캐스트는 무엇이 있을까? 쉽게 가톨릭 콘텐츠를 찾으려면 [종교] 카테고리에서 여러 개의 가톨릭 채널을 만날 수 있다. 반가운 점은 3년 전 100위 안에 두세 개에 불과했던 가톨릭 채널이 지금은 열 개 정도로 많아진 점이다.
가톨릭 채널에서 제공되는 콘텐츠를 살펴보면, 강론과 복음 묵상, 영성, 교리, 가톨릭평화방송 프로그램 등이 있다. 이용자는 자신이 원하는 채널을 구독해서 에피소드를 듣고 댓글로 소감을 남기거나 응원을 전하면서 채널 운영자와 직접 소통할 수도 있다. 또한 채널 운영자에게 용기와 사명감을 주고자 후원하는 방법도 있다. 이제 팟캐스트에서 들을 수 있는 가톨릭 채널들을 알게 되었다면 오늘의 강론과 묵상을 들으며 하루를 시작하고 마무리하면 어떨까?
다음으로 좀 더 적극적으로 팟캐스트를 활용할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해 보자. 바로 직접 채널을 만드는 것이다. 팟캐스트는 음원 서비스만 제공하기 때문에 다른 매체에 비해 누구나 쉽게 제작할 수 있다. 제작의 간편성은 미디어의 활용 방안을 모색하는 교회에게 충분히 매력적인 점이다. 하지만 제작이 쉬운 것과 별개로 ‘무엇을 말할 것인가’ 하는 내용에서 가톨릭 채널의 고유성과 차별성을 잘 부각시킬 수 있는 창의적인 아이디어와 기획은 사목적인 고민을 필요로 한다.
또한 콘텐츠를 만들어 가는 과정에서 청취자에게 무엇을 전하겠다는 자세보다 열린 마음으로 그들이 듣고 싶은 것에 관심을 갖고 함께 나누는 것도 공감대를 형성하고 친교를 나누는 데 중요하다.
다른 것은 무엇이 있을까? 이웃 종교의 채널을 살펴보는 것도 도움이 될 것이다. 종교 분야의 100위 가운데 70개 이상의 채널이 개신교다. 이들의 콘텐츠를 보면 설교와 묵상, 성경 공부, 성경 읽기, 찬송 성가, 신앙생활 상담, 교회사, 영어 성경 공부, 어린이 성경, 신학에 이르기까지 신자들의 신앙생활 전체를 아우른다. 젊은 신자 중에는 성가를 들으려고 개신교의 CCM 팟캐스트를 듣는다고 한다.
법륜 스님의 팟캐스트는 종교 분야뿐 아니라 전체 분야에서 10위에 해당할 정도로 종교 채널 가운데 구독자가 가장 많다. 이 구독자 중에 가톨릭 신자가 많은 것은 교회에 시사하는 점이 있다. 1,500회가 넘는 에피소드 중에는 불교적 내용을 다룬 것도 있지만 인간관계와 외로움, 아픔과 같은 내면 문제, 사회생활에서 오는 갈등을 상담하는 것이 대부분이다. 한마디로 인생 상담을 하는 채널이다.
우리 교회도 더 다양한 내용의 콘텐츠를 만들어 신자들과 나눠야 한다. 또한 신자들이 듣고 싶은 것은 무엇인지 그들의 목소리를 염두에 두면서 말이다.
교회 안에 있는 풍부한 신앙 유산과 문화는 현실 세상에 가득하다. 그것을 세상과 나누는 방법은 많겠지만 하느님의 선물인 미디어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방안을 모색하면 좋겠다. 또한 미디어를 읽고 해석하고 활용할 줄 아는 능력을 성장시킨다면 더욱 효과적인 복음화 수단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교회의 다양한 지체가 모여 생각과 의견을 나누고 협력한다면 미디어를 통한 복음 선포의 길은 더 넓어지고 더 멀리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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