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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명-신발의 역사
where will this shoe take you?
a walk through the history of footwear
` 나무껍 질과 동물 가죽으로 된
최초의 신발부터 나이키 운동화까지 신발의 발달사를 통해 본 인류의 문화
저-로리 롤러
출- 이지북
독정-2018.2.23.
` 닭고 닳은 신발의 안쪽을 들여다보면 신발 주인의 발가락이 남긴 오목한 부분과 부드럽게 파인 뒤꿈치 자국이 눈에 뛴다. 신발 밑창의 상처들로부터 우리는 신발 주인의 몸의 자세, 걸음걸이, 그가 얼마만큼 돌아 다녔는지 까지를 유추할 수 있다.-낸시 렉퍼드 <말하는 신발 the speaking shoe> 에식스 역사 박물관
`신발에는 이야기가 담겨 있다. 우리는 일생 동안 지구 둘레의 두 바퀴나 두 바퀴 반인 10만5000 킬로미터 정도를 걷는다. 신발을 살펴보면 어디에 갔으며 어디에 있었는지를 알 수 있다. 삶의 방식과 노동 양태, 여가생활에 대해 어떤 물건보다 더 많은 이야기를 하고 들려준다. 자연환경과 문화적 배경. 남녀노소 짐작, 결혼식에서 장례식까지, 대관식에서 사형 집행까지 특별한 행사들과 함께 상징적 역할을 하여 왔다. 미국과 서부 유럽에서는 매년 20만 개 이상의 새로운 신발 모양이 소개된다. 샌들, 부츠, 옥스퍼드(신사용 단화), 펌프(가벼운 댄스용 구두), 클로그(진창위를 걷기 위한 나막신), 뮬(뒤축 없는 슬리퍼) 모카신(바닥이 평평한 가죽신) 등 신발에 관한 표현들을 살펴보면
발 빠르게 움직이다. fast on feet
유력한 발판을 가지다. getting a toehold
발이 묶이다. heel-footed
발이 가볍다 light on your feet
환상적 발놀림 fancy footwork
모래뿐인 뜨거운 사막과 암벽으로 된 높은 산, 춥고 눈 쌓인 툰드라, 습하고 바람 많은 초원 등 다양한 지역에서 사람들은 맨발로 수백, 수천 킬로미터를 걸어서 이동했다. 살속 깊이 파고드는 햇볕과 눈, 비에 적응하기 위해 그들은 평편하거나 커다란 나무껍질, 덩굴이나 질긴 풀을 이용해 발에 묵었고 차차 동물 가죽을 손질해 신발을 만들었다.
맨발로 길을 나선다. 여름 모래사장을 걸을 때 땡볕에 달구어진 모래가 발바닥에 불을 지진다. 한 겨울 눈산을 오를 때는 바람과 찬 공기가 이내 동상에 걸리게 한다. 하지만 신발만 신으면 끄떡없다. 평길을 걷더라도 깨진 유리 조각과 지침, 지저분함에서까지 보호해 준다.
5300년 전 미라가 1991년에 알프스 고원에서 발견되었을 때 풀로 채워진 송아지 가죽 신발을 신고 있었다. 5000년 정 히에라콘폴리스 사원에서 발견된 석판의 그림을 보면 나르메르 왕의 신발을 들고 있는 노예가 그려져 있다. 투탕카멘 왕이 죽은 후 3000년뒤에 발견된 왕의 무덤에서도 신발이 발견되었다. 신발이 죽은 왕이 사후세계를 여행하는데도 도움이 되리라 믿은 탓이다. 전 역사를 보더라도 군인들은 두 다리와 발을 보호하기 위해 부츠를 신엇다. 시골 거친 길 행군이나 얾음 언 강위를 걸어서 건너기, 말 타고 긴 길을 걸을 때를 위해. 고대 그리스와 아시리아 이전부터 부츠를 신었다는 주장도 있다. 4500여년 전, 가시덤불을 헤쳐가기 위해 정강이 중간까지 오는 부츠를 만들어 신은 것 같다. 사는 지방에 따라 그 지방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북극곰 가죽, 사슴 다리 가죽, 순록과 바다표범 가죽 등을 빌려 썼다. 그러나 기근이 들면 이런 동물 가죽으로 만든 신발은 끓여져 사람들의 주린 배를 채우는 한 때 양식으로 돌아가기도 했다. 하지만 1600년대 들면서 버지니아 식민지가 풍부한 수자원과 숲을 가지게 됨으로써, 즉 경제적 풍요로움을 누리게 되면서 사람들은 사치스러운 신발로 자신을 돋보이게 하려는 욕망을 키웠다.
초기 히브리 사제들은 신발을 신고 사원에 들지 못했다. 신성한 땅을 더럽히는 것이라 믿었기 때문이다. 불교의 수도승과 비구니들은 이슬람 추종자들과 마찬가지로 전통 풍습을 따랐다. 오늘날에도 태국의 사원에 들어갈 때 관광객에게 신발을 벗게 하는 규정이 있다.
ㆍ200년 전 중국에서 전족을 한 중국 여성들이 신던 신발은 11세기 타키 여왕이 작고 비틀린 발로 태어났을 때 미래 여왕이 당혹스러워하지 않도록 왕은 아주 작은 발을 가진 여성만이 진정으로 바람직한 여성이라 하며 새로운 포고를 내렸다. 궁궐의 젊은 여성들을 그에 따라 발을 묶어 아름다움과 우아하게 보이도록 하기 위해 자기 발을 묶어 최대한 발을 작게 만들다 발 모양이 뒤틀리고 보폭도 좁아지고 몸의 균형조차 잡기 힘들어 양쪽에서 하인의 부축을 받아야만 제대로 걸을 수 있게 되었단다. 중국 전족 관행은 1902년에 끝났다. 황제는 어떤 어린이의 발도 묶을 수 없다고 공포했다. 그러나 전통은 비밀스럽게 지속되어 1930년 대 내전 때 전족을 하지 않은 소녀들은 공산주의자들의 동조자로 간주되고 전족을 한 소녀들은 자유롭게 다니는 것이 허용되기도 하였다. 150여년 전에도 여성들은 발을 작은 신발 속에 가둬 종종걸음으로 걷고 모든 시간을 집안에서 보내며 연약한 여자가 가장 이상적이라는 틀속에 갇혀 지냈다. 나폴레옹의 왕비 조세핀 역시 작은 슬리퍼를 신다가 작은 구멍이 나 구두 제조공에게 맡겼을 때 제조공은 “아, 무엇이 문제인지 알았어요. 이 신발을 신고 산책을 하셨군요.” 했다. 여성들이 운동에 참가하는 것이 사회적으로 허용된 것은 1860년대였다. 옛날에는 신발의 유행을 선도하는 사람들이 왕과 왕비 몇몇 영향력 있는 사람들에 국한 되었지만 요즘은 영화배우, 패션모델, 록가수 등 연예인들이다.
` 200여 년 전 첨탑 성당이 유럽 곳곳에 생기자 여성의 의상과 구두도 첨탑의 새로운 고딕 양식을 모방했다. 구두 제조공들은 구두의 등을 잘라서 벌어지게 했다. 여성이 입은 밝은 색 옷감이 만들어내는 여러 개의 다른 층이 구두의 벌어진 부분을 통해 보이게 하기 위해서.
`1852에서 1912년까지 한 천황은 대관식에서 벨벳 나무로 된 코마게다를 신고 히로히토 천황은 즉위식에서 비단 나무에 무늬 새긴 코다 게다를 신었다. 신발은 이렇게 권위를 상징하듯
신발은 액땜 도구로도 쓰였다. 병이나 부정에서 탈출하기 위해 네델란드 사람들은 번개 맞은 사람의 신발을 땅에 묻었고 식민지 시대 미국에서는 배 아픈 사람의 배 위에 무거운 신발을 올려두고, 고대 그리스에서는 낡은 가죽 신발 앞부분을 먹임으로 배 아픔을 치료했고 몽골에서는 신발을 아예 없애 소화 기능이 회복되기를 빌었다. 아일랜드에서는 아이를 잃어버리면 아이가 신던 신발을 묻고 아이를 찾을 수 있다고 믿었다. 이런 의식을 보면 신발이 영험한 힘을 갖는다. 동화를 보더라도 그렇다. 프랭크 바움이 쓴 <오즈의 마법사 (The Wonderful Wizard of Oz)>에서 마법의 은색구두는 도로시가 캔자스에 있는 가족에게 날아갈 수 있게 도와준다. <장화 신은 고양이>에서는 장화가 신기한 여행을 돕는 강력한 마법을 주고 <신데렐라>는 구두 한짝 덕택에 신분 상승이 되었으며 안나 피엔버그가 쓴 <타시의 신기한 모험>에서는 타시가 빨간 요술구두를 신고 호랑이 굴에서 누이를 구하기도 한다.
` 그런가 하면 하면 요즈음에도 중국 사람들은 신년에 새 신발을 신으면 행운이 온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