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3월 15일 사순 제4주간 금요일
<그들은 예수님을 잡으려고 하였다. 그러나 그분의 때가 아직 오지 않았다.>
✠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7,1-2.10.25-30 그때에 1 예수님께서는 갈릴래아를 돌아다니셨다. 유다인들이 당신을 죽이려고 하였으므로, 유다에서는 돌아다니기를 원하지 않으셨던 것이다. 2 마침 유다인들의 초막절이 가까웠다. 10 형제들이 축제를 지내러 올라가고 난 뒤에 예수님께서도 올라가셨다. 그러나 드러나지 않게 남몰래 올라가셨다. 25 예루살렘 주민들 가운데 몇 사람이 말하였다. “그들이 죽이려고 하는 이가 저 사람 아닙니까? 26 그런데 보십시오. 저 사람이 드러내 놓고 이야기하는데 그들은 아무 말도 하지 못합니다. 최고 의회 의원들이 정말 저 사람을 메시아로 알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27 그러나 메시아께서 오실 때에는 그분이 어디에서 오시는지 아무도 알지 못할 터인데, 우리는 저 사람이 어디에서 왔는지 알고 있지 않습니까?” 28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성전에서 가르치시며 큰 소리로 말씀하셨다. “너희는 나를 알고 또 내가 어디에서 왔는지도 알고 있다. 그러나 나는 나 스스로 온 것이 아니다. 나를 보내신 분은 참되신데 너희는 그분을 알지 못한다. 29 나는 그분을 안다. 내가 그분에게서 왔고 그분께서 나를 보내셨기 때문이다.” 30 그러자 그들은 예수님을 잡으려고 하였지만, 그분께 손을 대는 자는 아무도 없었다. 그분의 때가 아직 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엄살을 가지고 진단해서는 큰일 납니다.
나는 어려서부터 아프기 때문에 병원에 아주 자주 다녔습니다. 얼마 전에도 여러 가지 병으로 병원을 다녀오면서 치료도 받고, 약도 지어오고, 좋다는 것을 해보면서 병원에 가는 것이 이골이 났습니다. 요즘은 오랫동안 책상에 앉아 있어서인지 허리가 아픈 것을 며칠을 참고 지냈는데 도저히 아파서 참을 수 없어서 동네 병원에 갔더니 별 이상이 없다고 물리치료를 해주고, 주사와 약을 먹고 며칠을 지났는데도 낫지도 않고 책상에 앉을 때마다 뻐근하게 통증이 오는 것이 크게 고장 난 것 같아서 걱정이 되는 것입니다. 아무래도 동네 가정의학과 선생님을 믿을 수 없어서 전문병원에 갔습니다. 의사 선생님은 아주 친절하게 X-lay를 촬영하고 사진을 여러 장 찍은 다음 연골이 많이 나오고, 심줄이 스트레스를 받아서 굳어져 있다고 풀어주어야 한다고 구체적으로 설명을 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많이 걸어야 한다고 충고하면서 사진을 자세히 보면서 구체적으로 그 허리통증의 본질을 설명해 주니까 쉽게 이해하고 믿음이 가면서 걱정이 사라졌습니다. 그런데 의사 선생님의 책상에 십자고상과 성서가 모셔져 있는 것을 본 순간 더 믿음이 커지고 마음이 한결 가벼워지는 것입니다. 나도 심한 편협 된 생각을 가지고 편애가 심한 사람이라는 것을 다시 느끼게 됩니다.
아마도 이런 아픈 증상을 보고 본질이 무엇인지 실마리를 찾을 수는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증상과 현상만으로 본질을 완벽하게 알기는 어렵지만 본질을 알면 현상을 알기는 아주 쉬울 것입니다. 허리가 아픈 증상은 수도 없이 많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디스크인지, 협착증, 인대의 손상, 신경의 손상이나 염증 등 구체적으로 알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본질을 알기 위해서 사진도 찍고, MRI도 찍고, 실험도 하고 의사 선생님의 경험과 진단 사례 등을 모두 모아서 정확하게 진단할 수 있을 것입니다. 사람의 생명에 관한 문제이기 때문에 진단을 할 때에 아주 신중하고 조심해야 합니다.
오늘 의사 선생님도 엄살이 아주 심한 내 말만으로 도저히 확인할 수 없을 것이며, 신빙성이 많이 떨어지는 것을 느꼈을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 가지를 묻고, 내가 대답하는 것을 종합하여 그 속에서 실마리를 발견하고 진단하여 통증의 원인을 밝혀야 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나는 일상생활에서나 학문적 사실에서 내가 아는 학문적 의견을 가지고 그 것이 옳은 것이라고 주장하면서 평생을 살았습니다. 시시비비를 따지면서 다른 사람들에게 충고하고, 권장하고, 어떤 때는 야단치고, 소리 지르고, 화내고 그렇게 살았던 삶이었습니다. 수 없이 많은 말을 하면서 말의 잔치 속에서 풍성한 말의 장단 속에 빠져서 말로써 살아온 삶 속에서 마음을 비우고 살아야 한다고 하면서도 내가 마음을 가득히 채우고 다른 사람들에게 마음을 비우고 살라고 말만 많이 늘어놓고 살았습니다.
장자(莊子) 제물론(齊物論)에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부대도불칭 대변불언 대인불인 대염불겸 대용불기 (夫大道不稱 大辯不言 大仁不仁 大廉不慊 大勇不忮)이란 말입니다.
<무릇 참된 도(道)는 나타낼 수 없고, 참된 밝힘(判斷과 識別)은 말로 하지 못한다. 참된 인(仁)은 인이라 하지 않으며 참으로 청렴하면 겸손하지 않고, 참된 용기는 남을 해치지 않는다.>라는 말입니다.
정말 본질적으로 도(道)를 물건처럼 끄집어내어서 보여줄 수 없습니다. 뿐만 아니라 하느님의 진리를 이 세상 사람들의 말과 글로써 나타낼 수도 없고, 표현할 수도 없을 것입니다. 우리가 사랑을 말한다고 하여도 그 것은 정말 빙산의 일각을 보일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주님은 하느님께서 당신을 보내셨고, 하느님만이 그 진실을 알 수 있으며, 주님만이 그 진실의 안에 계신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분만이 진리이시며, 주님을 보내신 분이라는 것을 말씀하시고 아무도 그분을 거스를 수 없음을 천명하십니다. 밖으로 드러난 것을 중시하는 사람들의 눈에는 주님이 사기꾼처럼 보일 수도 있고, 예수님을 잡아서 죽이려고 벼르고 있는 바리사이들에게는 주님이 가시처럼 느껴지니, 정말 밉상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진실은 항상 그 본질 안에 감추어져 있습니다. 많은 사람이 그 진실을 알아보지 못한다고 하여도 살을 뚫고, 투시해서 감광판에 인식되듯 주님은 그렇게 하느님의 본질을 드러내십니다.
우리가 아무리 외면한다 하더라도 주님의 본질을 외면할 수는 없습니다. 매일 당신 자신을 드러내시며, 우리에게 믿음을 가르쳐 주시는 주님은, 당신의 진실을 우리에게 심고자 하십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본질을 깨닫고 그분의 본질에 적극 참여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 일은 성령께서 도와주시지 않으면 불가능하다는 것을 또한 알고 있어야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