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07. 20
작년 아시안컵 준결승에서 아랍에미리트(UAE)가 카타르에 4대0으로 패하자 홈팀인 UAE 관중들이 경기장으로 신발을 벗어 던지며 분풀이를 했다. 2017년 단교할 만큼 사이가 나쁜 카타르에 대패했기 때문이다. 신발 투척을 중대한 모욕 행위로 간주한 아시아축구연맹은 UAE에 벌금 15만달러를 부과하고 UAE에서 열릴 다음 아시안컵 경기는 무관중으로 치르라고 했다.
▶ 사람을 향해 신발을 던지는 건 어느 나라에서나 불쾌하고 무례한 짓이지만 특히 아랍권에서는 가장 모욕적인 행위이다. 신발은 가장 밑바닥을 뜻하며 그것을 집어 던진다는 것은 상대가 밑바닥보다 못하다는 의사 표현이다. 2008년 바그다드에서 이라크 총리와 함께 기자회견을 하던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에게 이라크 기자가 욕설을 하며 신발 두 짝을 모두 벗어 던졌다. 그 5년 전 후세인 정권이 망했을 때 이라크인들은 후세인 동상을 끌어내려 신발로 동상 얼굴을 때리기도 했다.
▶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도 2012년 가자지구를 방문했다가 팔레스타인 시위대로부터 신발 세례를 받았다. 유엔이 이스라엘 편을 든다는 이유였다. 2011년 스포츠 브랜드 푸마가 UAE 독립 40주년을 기념해 한정판 운동화에 UAE 국기를 새겨넣었다가 "신발에 웬 국기냐"는 항의를 받고 전량 회수하기도 했다. 밥은 오른손으로 먹고 왼손으로는 용변을 처리하거나 코를 푸는 아랍인들은 신발을 만질 때도 왼손을 쓴다.
▶ 우리나라에서 신발 던지기는 일종의 레크리에이션 게임으로 활용된다. 요양원에서는 노인들에게 실내화를 던지게 해 두 짝이 가까이 붙으면 상품을 주곤 한다. 초등학교 체육 시간엔 신발을 신은 채 누가 멀리 날려보내나 같은 게임도 한다. 시중에는 다트판처럼 생긴 신발 던지기용 과녁도 판매된다. 시위에서 신발을 던지는 경우는 흔치 않다. 반도체 관련 회사 하이디스가 대만에 팔린 뒤 정리해고자들이 회사 임원들 사진을 걸어놓고 신발을 던져 맞히는 시위를 한 적이 있다. 이때 법원은 시위대에 모욕죄를 적용해 벌금형을 선고했다.
▶ 며칠 전 국회에서 한 50대 남성이 대통령을 향해 신발을 벗어 던졌다. 그는 “국민이 느끼는 치욕을 대통령도 느껴보라고 던졌다”고 했다. 지난 주말엔 정부 부동산 규제에 항의하는 시위대 수백 명이 일제히 신발을 집어 던지는 시위를 했다. 달걀과는 달리 사람을 향해 신발을 던지는 건 위험한 행동이다. 그러나 ‘신발 열사’라는 말이 유행하고 해당 기사에 “못 맞혔으니 멀리건을 주자”는 댓글이 달리는 민심도 읽어야 한다.
한현우 논설위원 hwhan@chosun.com
조선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