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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이름 강의
uri3486@daum.net
역이름-신도시 이름작명 <땅이름> 저서 부록 마리북스 간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 / 심의 심사 과정애서
역명 신도시명 이름짓기 / 역이름, 신도시 이름 등 작명 배경
<압구정로데오역> 청수나루역이냐 (새)압구정역이냐?
2012년 7월 말, 해당 지자체인 강남구청에서는 압구정동과 청담동 사이에 건설된 분당선의 한 신설역명을 주민들의 의견을 들어 압구정로데오역, 청수나루역 두 이름 중에 선택 결정해 줄 것을 한국철도공사에 요구해 왔다. 이에, 공사에서는 8월 8일 역명 심의위원회(위원장: 배우리. 한국땅이름학회장)를 열었고, 위원회에서는 표결을 통해 청수나루역으로 결정했다.
그러나, 압구정동의 한 상권을 중심으로 한 주민들이 이 이름을 받아들일 수 없다며 지자체인 강남구청을 통해 ‘압구정로데오역’ 단일명으로 해 달라고 강력히 요구해 왔다. 나는 이미 결정한 사안(청수나루역 결정)아나 재심의는 불가하다고 통보했다.
워낙 지자체의 요구가 강해 나는 다시 위원회를 소집할 수밖에 없었다. 결국 위원회를 열어 투표를 실시했다. 그런데 결과가 찬성표(압구정로데오역)와 반대표(청수나루역)가 똑같은 푯수로 나왔다. 위원장인 나의 한 표로 결정될 수밖에 없어 한동안 고민에 빠졌다. 생각해 보니 ‘압구정로데오역’이 지역 특성에 잘 맞는 것도 같았다. 망설이던 중에 갑자기 강남 구청장이 찾아와 ‘압구정로데오역’으로 결정해 달라며 매달리다시피 요구해 왔다. 이 이름이 아니면 그 일대 주민들로부터 심한 항의에 직면하게 된다는 것이다.
마음이 약했던 나, 결국 ‘압구정로데오역’쪽에 도장을 찍어 주었다.
잘 된 이름인지는 모르나 지나 놓고 보니 괜찮은 것도 같았다. 지금은 이 역이름을 내가 결정했노라고 당당히 말한다.
<천안아산역> 천안역이냐 아산역이냐?
아산역이냐? 천안역이냐?
2003년 봄. 역이름 문제로 두 지역(천안-아산)간의 첨예한 갈등이 벌어졌다. 그 갈등 속에 나를 비롯한 역이름 제정 위원들(주로 교수, 학회장 등)은 여러 달 애를 먹었다.
2002년 초부터 충남 아산-천안에 신도시가 생기고 여기에 고속철도역이 생긴다는 소식이 나돌자, 전국의 이목이 집중되었고, 해당 지자체는 개발 기대감으로 잔뜩 마음이 들떴다. 역 개통 전에 역이름을 확정해야 해서 고속철도 역명 제정위원회가 구성되었다. 나도 한국땅이름학회장 자격으로 위원회의 한 사람으로 참여하였다. 그런데, 천안과 아산 사이의 역이름을 두고 두 지역의 대립이 만만치 않았다. 천안시와 아산시가 서로 자기 지역 이름이 들어간 역이름이 되어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아산시의 ‘아산역’ 주장은 역사(驛舍)가 있는 지역이 아산 땅이라는 것이고, 천안시의 '천안역' 주장은 이 역의 이용자 대분분이 서울과 천안을 왕복하는 사람들이니 이용자 위주로 이름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아산시에서는 역이 아산시 배방면 장재리에 있어 ‘아산역’이 아니면 차선으로 '장재역'으로 해야 한다고도 했다. 인물이 많이 난 아산 고을이니 '충의역'이나 '이순신역'으로 해도 좋다고 했다. 천안시쪽에서는 '천안역'이 안 된다면 '신천안역'이나 '천안아산역'으로 하자고 대안을 제시했다.
위원회에서는 두 지역 이름에서 한 글자씩 따서 '천산역', '아천역', '아안역' 중의 하나로 하자고도 했으나 양측이 모두 반대해 모두 어감이 좋지 않아 논의에서 배제되었다.
'천안역' 또는 '천안아산역'으로 이름이 거의 확정되는 단계에까지 이르자, 2003년 4월 말, 아산시측에서는 역이름이 꼭 '아산역'이 되어야 한다는 요지의 글을 여러 요소에 올렸다. 역 건물의 위치가 아산 땅인 데다가, 아산에는 유적지도 많고, 역사적인 인물도 많아 역이름에 '천안'은 어울리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역이 들어설 곳에 아산신도시도 생길 것이니 더욱 그렇다고 했다.
하필 천안역의 위치가 아산과 천안의 중간 지점이라 이런 일이 생긴 것이다.
그러나 위원회의 결정은 천안아산역.
이름 결정 후에도 아산시측은 이를 반대하고 주요 기관에 이에 부당함을 알리는 등 '아산역'으로 결정해야 한다는 등 대대적인 운동을 폈다. 그러자, 아산시의 입장을 일부 고려해 최종 결정 기관에서는 부역명으로 '온양온천역'을 ( ) 안에 넣어 주기로 하는 것으로 마무리했다. 그래서 지금도 이 곳의 역이름이 부역명인 '온양온천역'이 들어가 있다. 이는 아산시를 배려한 조치다.
<김천(구미)역> 김천역이냐 구미역이냐?
역이름을 정할 때는 순조롭지 않을 때가 많다. 역의 위치가 두 지역에 걸쳐 있을 때는 ‘역명 쟁탈전’이 벌어지기도 한다. 이런 과정에서 두 지역이 서로 어느 정도 수긍할 수 있는 이름으로 결정하는 일이 많다. 두 지역을 합성해 좋은 ‘천안아산역; 같은 이름이 나온 것이 그 예이다.
경북 김천혁신도시에 완공된 KTX 역사의 명칭을 놓고도 논란이 일었다.
김천(구미)역은 2010년 11월 경부고속선 2단계 구간 개통과 함께 영업을 시작한 김천시 남면 옥산리에 위치한 역이다. 지역사회의 오랜 노력 끝에 김천과 구미의 산업단지와 김천혁신도시의 접근성을 높이기 위한 고속철도역 신설이 확정되면서 주민들의 큰 환영을 받았다.
이 역의 이름을 정할 때 위원으로 참여한 나도 김천역, 구미역 중 어느 이름으로 정할까 하는 데는 고민이 따를 수밖에 없었다.
구미시와 김천시는 역이름을 두고 서로 의견을 좁히지 못했다. 김천시는 역이름을 확정짓기 위해 지역 기관장 및 범시민공공기관유치위원 간담회 등을 통해 여론수렴 등 절차를 진행하였다. 이 결과 ‘김천역’을 내세우기로 했다. 그러나 구미시는 이 결정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KTX 역사 건립 확정 당시 구미시가 역이름에 구미를 명기한다는 조건으로 지방분담금 중 많은 액수를 부담키로 했기 때문이다. 역은 구미시 경계에서 10㎞쯤 떨어져 있다. 구미시는 역사 명칭이 ‘김천역’ 또는 ‘신김천역’으로 최종 결정될 경우 분담금을 낼 수 없다고 버티며 경북도와 국토해양부를 항의 방문까지 하였다.
KTX 역사 명칭은 국토부의 철도건설사업 지침에 따라 한국철도시설공단은 해당 지자체의 의견 수렴과 역명심사위원회를 통해 결정한 뒤 국토부 장관 명의의 고시로 확정되게 되어 있다.
철도공사에서는 역명 제정 심의위원회를 열어 김천시와 구미시에서 각각 제시한 역명을 놓고 회의를 거듭하였다. 그 결과 구미시의 양보를 얻어 역이름은 김천(구미역)으로 확정되었다.
역명제정위원회의 일원인 나는 이와 같이 변칙적(?) 이름이 나오는 것이 못마땅해 양 지자체 중 어느 한 곳이 양보하여 ‘김천역’ 또는 ‘구미역’으로 할 것을 강력히 요구했으나 어느 한쪽에서도 양보를 얻어내지 못했다. 결국 두 지역 이름이 들어간 김천(구미)역으로 확정되었다.
<광운대역> 성북역이냐 광운대역이냐?
광운대역은 원래 성북역이었다.
일제강점기인 1939년 7월 25일 개통한 이래 경원선의 핵심역을 맡았고, 1974년 8월 15일 서울지하철 1호선이 개통되면서 일반열차 정차역과 함께 전철역 기능도 맡게 되었다.
개업 당시에는 연촌역(硯村驛)으로 불렀고, 1963년 성북역으로, 2013년 2월 25일 광운대역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성북역은 현재 노원구에 속해 있자만 성북구에 소재하는 것으로 오인할 우려가 있어 이용객들의 혼란을 방지하기 위하여 개정을 추진하였다.
노원구청에서 주민들을 상대로 명칭 공모 결과 광운대역(광운대입구역 포함)을 원하는 의견이 80.1%로 대다수 주민들이 광운대역을 선호하여 지자체에서 성북역 역명 개정을 추진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대학교 명칭은 역명으로 정하지 않는 것이 원칙이나, 적합하다면 예외 규정에 따른다.
역이 있는 곳은 원래 성북구(1963년)였다가 도봉구(1973년)를 거쳐 현재 노원구(1988년)에 속해 있어 ‘성북역’이라는 이름은 맞지 않는다. 즉 ‘성북역’이란 이름은 단지 예전의 행정구역 소재에서 비롯하여 사용되어 온 명칭으로 현재의 해당 지역과는 연관성이 없어 개정의 필요성이 생긴 것이다.
역명 제정위원회에 참여한 나는 이곳의 옛 땅이름을 역이름으로 넣자고 주장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결국 주민들이 원하는 이름인 ‘광운대역’이 되었다. 광운대학교는 성북역 주변에서 공공성을 가진 유일한 기관인 데다 이 역 주변 500m 반경에는 공공성을 가진 대표 기관이 없고 아파트 및 일반주택가와 광운학원 산하의 학교(광운대학교, 광운전자공업고등학교, 광운중학교, 광운초등학교, 광운유치원)가 분포해 있어, 광운대학교를 대표적인 기관으로 보아 이 이름으로 정하게 된 것이다.
<울산역(통도사)> 울산역이냐 통도사역이냐?
경부고속철도 울산역(가칭) 이름으로 어떤 것이 가장 좋을까? 울산시가 시민들을 대상으로 명칭 공모에 들어간 것은 2010년 4월 말부터 한 달 동안. 그 결과 260건에 112가지나 되는 다양한 명칭이 접수됐다. 서울산역, 신울산역, 통도사역, 울산역, 울산역(통도사)에다 고래역, 돌고래역, 통도사역, ‘울산포유(Ulsan for You)역’이란 이름의 응모도 있었다.
규정에 따라 관할 지방자치단체(울주군)의 의견도 물었다. 물론 ‘역명(驛名) 제정 기준’에도 맞춰야 한다. 한글 역이름이면 6자를 넘지 않아야 하고 한글, 한자, 로마자로 표기하게 된다. 신설역 이름이 동해남부선의 기존역 이름과 겹치면 기존역 이름은 다른 것으로 바꿔야 한다.
울산시 교통정책과는 여론수렴을 거쳐 걸맞는 역이름 하나를 골라 한국철도공사에 최종 작명을 의뢰하였다.
당시, 울산시의회 산업건설위에서 진행된 ‘경부고속철도 울산역(가칭) 명칭 선정 관련 업무보고’도 여론수렴 절차의 하나였다. 가장 선호한 역이름은 ‘울산역’이었다. ‘울산역’은 현 시점에서는 사실상 울산 유일의 역. 하지만 공정 71%(2010년 5월말 기준)의 경부고속철도 울산역이 개통되는 그 해 11월 이전에 그 이름을 뺏길지도 모르는 운명이 앞을 가로막았다. 그야말로 ‘간이역’ 신세로 전락할 처지에 놓인 것이다.
그 대안이 될 만한 이름 몇 가지를 내놓았다. 남울산역, 동울산역, 삼산역 등. 그러나 혼동 일으킬 가능성 때문에 ‘남울산역’은 배제되어야 한다는 의견이 나왔다. 경부고속철도가 장차 중국과 러시아로 이어질 날을 염두에 두고 역이름을 짓는 게 좋겠다는 의견도 나왔다.
울산시에 속한 울주군은 바람직한 역이름으로 ‘울산역’ 카드를 꺼냈다. 9km 거리의 통도사를 감안해 ‘울산역(통도사)’이 좋겠다는 것이었다. 그러자 고속철도 울산역(통도사) 역명이 통도사가 울산에 있는 것으로 오해하게 하는 등 사람들에게 혼선과 불편을 주고 있어 역명 변경이 절실하다는 지적이 나왔다.
양산시에서는 “현재의 울산역(통도사) 역명에 통도사가 부기돼 있지만 양산이라는 지명이 미표기되어 통도사가 울산에 위치한 걸로 오인하게 만드는 등 적지않은 혼선과 불편을 초래하고 있다”고 지적하며 ‘울산역(통도사)’을 ‘울산역(양산 통도사)’으로 역명을 변경해 달라고 했다. 그러나 국토교통부와 코레일 등 관계기관에서는 이를 반영하지 않았다.
울산역(통도사) 이용객은 하루 평균 1만7천여 명으로 경부선 KTX정차역 중 서울역과 부산역, 동대구역, 대전역, 광명역 다음으로 이용객이 많다. 2010년 개통 당시 하루 8500명보다 지금은 2배 이상 증가했다. KTX 울산역은 양산 통도사와 불과 10㎞ 거리에 있어 양산 이용객도 상당수를 차지한다.
<오송역> 오송역이냐 청주오송역이냐?
충북 청주시 청원군 강외면 오송리에 들어선 고속철도역의 이름은 ‘오송역’이다.
한국철도공사는 2010년 7월 경부고속철 제1차 역명 심사위원회 개최를 앞두고 충북도에 역명에 관련된 의견을 제공해 달라는 공문을 발송했다. 이에 충북도는 청주시의 '청주오송역', 청원군의 '오송역' 중 청원군의 역명 의견을 수용해 철도공사에 제출했다. 당시 충북도는 청원군 안으로 결정한 이유에 대해 제정시 옛 지명, 자연마을 명칭을 사용하고, 향후 오송이 대내적으로 인지도가 부각되고 있는 점을 감안했다고 공문을 통해 설명했다.
그러나 전자는 지명학자들이 주장하는 '고속철도 역명의 경우 역사가 위치한 지점의 시·군명이 적절하다'라는 주장과 배치되는 내용이다. 또 후자는 첨복단지, 메디칼시티 등 오송의 각종 기반시설만을 염두에 둔 것으로, 향후 청주·청원 통합은 전혀 고려하지 않았음을 보여 주고 있다.
반면 청주시는 역명을 '청주오송역'으로 해야 하는 이유로 '오송'의 인지도가 낮아 외지인이 '청주'로 찾아오는데 불편이 예상된다는 점을 들었다. 또 차후 청주시와 청원군이 통합되면 '가칭 오송역' 지역이 청주시로 편입돼, 당연히 '청주'가 역명에 표기되어야 한다는 점을 거론했다. 청주시의 안은 현재의 상황을 정확히 꿰뚫은 것으로, 만약 청주안으로 최종 결정됐으면 지금의 갈등이 발생하지 않았을 것으로 보인다. 이에 비해 청원군은 오송역으로 결정한 배경에 대하여 그 사유를 명기하지 않았다.
여론 주도층을 대상으로 조사해 보니 '청주오송역' 71.4%, '오송역' 18.7%로 나타났다. 역명 제정 위원회에서는 청원군, 충북도가 요구한 ‘오송역’과 청주시가 주장한 ‘청주오송역’에 대한 의견이 팽팽히 맞섰다. 역명 심의위원들간의 의견이 하나로 결집되지 않자 비밀투표를 했다. 그 결과 ‘오송역’이 많이 나옴에 따라 1안인 '오송역'으로 결정하였다.
나는 ‘오송역’을 강하게 주장하였다. 이름은 짧을수록 좋다고도 강조하였다.
지금은 오송공업단지, 오송바이오밸리 등 여러 시설이 들어서 있다. ‘오송역’ 이름의 결정은 참으로 적절한 것이었다.
<평촌역> 평촌역이냐 벌말역이냐?
우리나라의 지하철 역이름들을 보면 너무나 한심한 생각이 든다.
당국에선 지하철 손님들을 모두 대학생으로만 알고 있는지 '○○대학역', '○○대학입구역' 투성이다. 그런데, 그런 역에서 내려 막상 그 대학을 찾아가 보면 보통 거리가 아닌 경우가 많다. 예컨대, 서울대입구역에서 서울대 정문까지 가는 데만도 2km가 훨씬 넘는다. 걸어서 가기엔 너무 버겁다. 그래서 '서울대'란 이름을 여기에 단 것은 너무 불합리하다.
관행 때문인지 이젠 지하철의 새 노선이 생겨서 새로운 역이 생길 때마다 그 근처의 대학교에선 그 학교 이름을 넣어 달라고 요구한다. 학교에서뿐 아니라 그 일대의 주민들까지도 학교 이름을 넣어 달라고 한 목소리를 낸다. 한 예로, 상도동쪽에 들어선 새 역을 '살피재역'이라고 임시로 붙이고 공사를 한창 진행 중이었을 때 주민들이 '숭실대입구역'이라고 해 줄 것을 강하게 요구하여 그렇게 역이름이 정해졌다.
안양쪽으로 지나가는 과천선의 한 역이름은 원래 '벌말역'이었다. 이 이름을 잘 사용해 왔는데, 그 얼마 뒤 이것을 '평촌역'으로 바꾸어 놓았다.
이 곳은 '평촌' 이전에 '벌말'이 원이름이었다. 넓은 벌판 한가운데 있는 마을이라 해서 '벌말'이었다. 이 '벌말'을 한자로 바꾸어 표기한 것이 '평촌(坪村)'이다. 시민들의 입에 익히 익어 왔던 역이름을 딴 이름으로 고쳐서 혼선을 스스로 불러들였다.
1998년 1월 7일 나는 안양시장으로부터 한 통의 공문을 받았다. 그 며칠 전에 한국땅이름학회의 이름으로 보낸 공문에 대한 답신이었다. 안양시장 앞으로 ‘평촌역을 벌말역으로 돌려 달라’고 요구한 내용이었는데, 지역 주민들의 반대로 그 요구가 불가하다는 것이었다. 정말 지역 주민들이 반대했는지 알 수는 없지만, ‘지역 주민들의 반대’라는 간단한 이유를 들었다. 왜 반대하는지는 알 수 없었다.
주민들의 반대? 어떤 주민들이 반대했을까? 반대를 했다면 아마 그들은 타지에서 이곳의 아파트 지역으로 새로 이사 온 사람들이었을 것이다. 만약 이 곳에 오래 살아 온 사람들이라면 오랫동안 불러 왔던 그 ‘벌말’이란 토박이 땅이름이 역이름에 들어가는 것을 반대했을까?
아현동의 한 역이름이 '애오개'로 정해지려 하자, 지역인 일부가 '남아현역'으로 해 줄 것을 건의했었다. 나는 이를 반대했다. 엄연희 ‘애오개’란 이름이 있는데 이를 방위성 이름으로 바꾸는 것은 옳지 않다고 했다. 이에, 결국 ‘남아현’ 건의는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지하철 역이름은 잘만 정하면 우리의 옛 땅이름을 잘 살려 낼 수 있는 좋은 표본이다. 아파트단지 이름도 마찬가지고, 그 지역에 들어서는 공원이름, 길이름도 마찬가지다.
이제 여러 가지 방법으로 우리의 옛 땅이름을 하나하나 찾아 나가야 한다. 우리 한아비들의 얼을 잘 지켜 내야 한다. 이런 일은 우리가 흔히 말하는 그 애국(愛國)의 차원을 넘는다. 연세대학교 사회교육원에서 내가 땅이름 연구 과정을 개설한 것은 그런 뜻에서 큰 의미가 있다.
<서동탄역> 서동탄역이냐 삼미역이냐?
2009년 10월, 전철 역사 명칭을 놓고 경기도의 화성시와 오산시 사이에 갈등을 빚어 왔던 병점차량기지의 역명이 '서동탄역'으로 결정됐다.
한국철도공사는 역명심의위원회(위원장 배우리)의 위원들이 참석한 가운데 역사명칭에 대한 양 지자체의 입장을 듣고 화성시가 제안한 '서동탄역' 명칭을 최종 결정했다.
오산시는 그동안 병점차량기지 역사(驛舍)가 오산시 외삼미동에 70%가 속해 있는 만큼 '삼미역'으로 명명해 줄 것을 줄기차게 요구했었다. 반면 화성시는 역사 건립에 필요한 건립비 340억원은 동탄신도시 입주민이 낸 세금임을 설명하고 지난 2005년부터 기지 역사에 전철역을 만들기 위해 진행해 온 그 동안의 노력들을 일일이 열거했다. 특히 화성시에서는 "역사 명칭은 투쟁과 쟁취로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정성과 땀으로 얻을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며 서동탄역을 건립하기 위해 시민과 공무원들이 겪어야 했던 힘든 과정을 위원들에게 호소했다.
한편 브리핑 과정에서 새로운 사실도 밝혀졌다. 화성시는 2007년 역사 건립과 관련해 오산시에 의견을 물었지만, 당시 오산시는 병점차량 기지역은 오산시민의 접근성이 나쁘고 이용률이 저조하다며 사업비 분담은 곤란하다는 의견을 냈던 것이다. 화성시 관계자는 "양 시가 공동으로 합의해 모든 시민이 희망하는 역사를 건립하려 했지만 거부당하고 2004년부터 역사 명칭문제만 거론해 와 골치를 앓았다"고 말했다.
위원장인 나는 역명은 지역성을 띠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하고 ‘삼미역’으로 하려 했다. 그러나 그 뜻을 이루지 못했다. 역이름에서는 지역명의 인지도가 중요하다는 것을 다시금 크게 느꼈다. ‘삼미’라는 이름은 ‘동탄’이란 이름에 비해 인지도가 너무 낮았다.
<위례신도시> 위례신도시냐 송파신도시냐?
서울 송파구 거여동, 장지동 일대와 경기도 하남시 학암동, 성남시 수정구 창곡동, 복정동 일대, 즉 남한산성이 있는 청량산 서쪽, 이곳의 너른 평야는 개발 시작 때부터 원래 '송파신도시'로 불려졌었다.
이 '송파신도시'를 다른 이름으로 바꾸게 된 것은 서울 송파구와 함께 이 지역의 신도시를 삼분하고 있는 경기도 성남시와 하남시가 신도시 이름에서 '송파'를 빼 달라고 요구해 왔기 때문이다.
이에 한국땅이름학회, 한국지명학회, 국학연구소 소속의 전문 학자 등 11명으로 명칭공모 심사위원단(위원장 배우리)을 구성하였고, 2007년 5월, 약 2시간에 걸친 심사 끝에 '위례신도시'를 선정했다. 이렇게 해서 이 때부터 이 지역의 이름이 ‘위례신도시’라는 이름으로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학자들은 위례가 '담'이나 '울타리'를 뜻한다고 보고 있다. '울' 또는 '우리(울애)'에서 나왔다는 설과도 거의 일치한다.
나는 지금도 위의 과정을 설명하며 ‘위례신도시’라는 이름이 내가 결정해 나온 이름이라고 자랑삼아 말한다. 아울러 새 도시가 형성되면 이처럼 우리의 옛 이름을 살려 지어 붙이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빛가람신도시> 빛가람신도시냐 한빛시냐?
광주·전남공동혁신도시 공식명칭이 2007년 12월 ‘빛가람신도시’로 선정됐다.
전남도와 광주광역시는 공동혁신도시의 지명도를 높이기 위해 지난 그 해 9월 한 달 동안 전 국민을 대상으로 혁신도시 명칭공모를 통해 접수된 이름들 중 ‘빛가람신도시’를 선정했다.
최종심의를 거쳐 명칭이 확정됨에 따라 지금까지 광주·전남 공동혁신도시로 불리던 것을 ‘빛가람신도시’로 공식 사용하게 됐다. 혁신도시 명칭심사 위원회에서 이 이름을 최종 결정한 것이다. 물론 이름을 심의한 나도 ‘빛가람신도시’를 강력히 주장했다. 많은 위원들이 이 주장에 동참해 쉽게 정할 수 있었다. ‘빛여울’, ‘한빛시’, ‘비추벌’, ‘샛별’, ‘하나혁신도시’라는 이름도 거론되었으나 논의 중에 배제되었다.
정해진 ‘빛가람’은 광주를 대표하는 ‘빛’과 전남의 젖줄인 영산강(가람)을 조합해 공동혁신도시의 상징성과 지역적 특성을 잘 표현하였다는 평가가 나왔다. ‘빛’과 ‘가람’은 순수 우리말로 누구나 쉽게 부를 수 있고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브랜드 가치를 가진다는 면에서 대중성과 국제성을 잘 나타냈다는 평가를 받았다.
마침, 이 신도시에 한국전력 등 에너지나 인터넷 업체 등의 기업들이 속속 들어서면서 이 이름은 더욱 빛을 발하게 되었다.
<경춘선역> 가평역이냐 남이섬역이냐?
“남이섬 가려는데 어떻게 가지?
“경춘선 타고 가면 되지.
“경춘선에 남이섬역이 없잖아?
“있어.
“근처에 가평역이 있을 뿐인데...
“그게 남이섬역이야.
알고 있을까? 경춘선역에 남이섬역이 있다는 사실을. 그러나 이 역이름은 부역명이기 때문에 '가평'이란 글자 밑에 ( ) 안에 '자라섬-남이섬'이라고 써 놓고 있어 잘 알지 못한다.
왜 이렇게 했을까?
2010년 9월 8일, 코레일 역명 심의위원회에 위원장으로 참석해 이 역이름을 부역명으로 넣기로 결정했다.
잘한 일일까?
나도 선뜻 결론을 못 지었다. 가평 시내를 찾아가는 사람도, 남이섬을 가려는 사람도 경춘선의 어느 역에서 내려야 하는지를 알게 하려면 이처럼 부역명으로 넣는 방법도 괜찮을 것 같았다. 그러나 역이름을 둘 이상의 이름으로 결정해 버리면 사람들에게 혼선을 줄 수 있다는 생각도 했다. 그런데, 남이섬역까지는 좋은데, ‘자라섬역’이란 것은 또 뭔가? 이것은 가평역 근처에 ‘자라섬’이란 작은 섬이 아주 가까이 있기 때문이다.
철도역에서 병기역, 부기역 이름으로 되어 있는 것이 한둘이 아니다.
- 천안아산역-온양온천역
- 울산역-통도사역
- 김천-구미역
- 이촌역-국립박물관역
- 숙대입구역-갈월역
그런데 일반인은 이처럼 병기역명, 부역명으로 되어 있다는 사실을 잘 알지 못한다. 그러나 지하철을 이용하는 사람들은 역이름들 중에는 주역명 외에 부역명이나 부기역명이 있다는 사실을 알아 둘 필요도 있다.
<당시의 뉴스> 2010.09.13. 아시아경제
“경춘선 복선전철 부기역 이름 결정. 코레일, 7개역 확정…춘천역 ‘한림대’, 남춘천역 ‘강원대’, 백양리역 ‘엘리시안 강촌’ 등 / 경춘선 복선전철 부기역명이 결정됐다. 부기역명이란 원래 역 이름과 함께 나타내는 역명이다. 부기역명은 역명 아래에 괄호로 적혀 있다. 코레일은 2010년 12월 경춘선 복선전철 구간이 개통됨에 따라 역명부기심의위원회(위원장 배우리)를 열어 7개역 8개 기관 부기역명을 최종 확정하여 발표했다.”
<부기역명의 예>
▲춘천역 ‘한림대’
▲남춘천역 ‘강원대’
▲백양리역 ‘엘리시안 강촌’
▲굴봉산역 ‘제이드가든’
▲가평역 ‘자라섬-남이섬’
▲상천역 ‘호명호수’
▲갈매역 ‘삼육대’
<미사대교> 미사대교냐 덕소대교냐?
2008년 9월 서울지방 국토관리청 대회의실에서 경기도 하남시와 남양주시 사이 한강에 놓인 다리 이름을 짓기 위한 위원회가 열렸다. 위원장은 한국땅이름학회 회장인 내가 맡았다. 먼저 각 지자체 대표의 충분한 의견을 듣고, 토의를 했는데 미사대교와 덕소대교의 주장이 팽팽해 맞섰다.
하남시에서는 전체 교량의 대부분이 하남시에 위치해 있고 미사 선사유적, 미사리 조정경기장 등 역사성, 상징성, 가치성이 높다고 주장했고, 남양주시 에서는 서울 춘천간 고속도로 이용자는 주로 남양주 시민이고 남양주를 지나는 도로 길이가 무척 길며. 주거 인접 지역으로 ‘덕소’라는 지명의 인지도가 높다고 주장했다. 위원 일부에서는 제3의 이름인 아리수대교나 미호대교를 제시하기도 했다. 미사덕소대교나 덕소미사대교, 또는 미덕(미사+덕소)대교 같은 이름도 거론되었다.
회의에서는 미사대교와 덕소대교 중에서만 택일하기로 결정하고 투표에 붙인 결과 하남시의 미사대교가 다수로 나와 이를 확정지었다. 미사대교 이름 확정 후 위원장인 나는 남양주 시민들로부터 엄청난 항의를 받았다.
<두성호> 시추선 이름에 대통령 이름이?
1983년 겨울이었고, 전두환 대통령 시절이었다. 당시 거제조선소(대우조선)에 의해 우리나라 최초의 석유 시추선의 건조가 완성되는 단계였는데, 이 회사의 이사 한 분이 대리를 대동하고 나를 찾아왔다. 석유 시추선이 순전히 우리 기술 우리 힘으로 만들어져 이름이 필요하다며 작명을 의뢰했다. 우리의 기술에 만들어진 시추선이기에 우리식 이름을 요구했다.
“세계의 바다, 태평양, 대서양, 인도양 등을 누비며 해저 자원을 살필 우리나라 최초의 시추선. 그 이름을 짓는다?”
상당히 의미 있는 일을 맡았다는 것에 마음이 뿌듯했다. 더구나 우리식 이름을 요구해 오니 당연히 내가 할 일이라고 생각했다. 이 이름만큼은 정말 잘 지어야겠구나 하고 생각했다. 여러 날을 두고 이름짓기에 정성을 쏟았다. 바다의 시설물이기에 우선 바다를 생각했고, 그 바다를 제패할 이름이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결국 며칠 후에 결과물을 만들어 냈다. ‘미르칸’. ‘바다의 왕(용왕)’의 의미를 가진 이름이었다. ‘미르’는 ‘용(龍)’, ‘칸’은 ‘으뜸을 뜻한다. 조선소측에서는 누구도 생각할 수 없는 기발한 이름이 나왔다며 좋아했다.
얼마 후, 드디어 조선소에서 이 이름이 채택되었다는 소식이 왔다. 이 얼마나 기쁜 일인가? 정말 날아갈 곳 같은 기분이었다.
곧 시추선을 바다에 띄워 명명식을 경남 거제에서 가질 예정이고, 대통령과 관련 장관 등 내빈들이 올 것이란다. 미르칸 이름의 뜻을 설명하는 브리핑까지 계획되었다. 진수식에서 당당히 이름 설명을 하게 된 것이 자랑스럽기도 했다. 더욱이 대통령 내외가 입회한 자리여서 브리핑 원고를 몇 번씩 고치고 다듬었다.
얼마 후, 진수식을 한다는 통보가 왔다. 조선소측에서는 차를 보낼 것이라고 했다.
진수식 날이 왔다. 나는 모든 준비와 함께 말끔히 정장을 하고 차가 오기를 기다렸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온다던 그 시간이 많이 지났는데도 오지 않는 것이었다. 늦게라도 오겠지. 진수식 시간이 좀 늦춰졌나 하며 계속 기다리는 동안, 시간은 갔고 하루가 저물었다.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인지 알 수가 없어 무척 답답하고 초조했다.
그 날 저녁 뉴스에 이 진수식 소식이 나왔다. 흥분된 가슴을 안고 “시추선의 이름은 '미르칸'으로 지어져...‘식으로 뉴스가 전해지기를 바랐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두성호로 명명된 이 시추선은 앞으로 우리의 근해는 몰론 멀리 해외에까지 나아가....”
뉴스는 이렇게 나가고 있었다. 아, 까무러칠 것 같은 순간이었다. 정신을 차렸다. 뉴스가 잘못 나간 것이겠지. 채택된 이름 ‘미르칸’이 설마 날아가 버렸을까? 의심을 하면서도 계속 이 뉴스의 내용을 부정하고 있었다.
그렇게 며칠이 지났다. 얼마 후 그 선박회사의 대리가 찾아왔다. 그만한 사정이 있었다고 했다. 그 ‘미르칸’은 다른 이름으로 대체되었는데 그 전후 사실을 말해 줄 수가 없다고 했다. 이유는 나중에 알게 될 것이라 했다. 나는 할 말을 잃었다. (차츰 알게 되겠지.)
그가 가고 간 후에 주고 간 기념품을 뜯어 보았다. 탁상 시계였는데, 거기에는 이런 글귀가 있었다.
“한국석유시추선 斗星號. 준공 및 명명식 1984.4. ○○석유개발○○. ○○조선공업(주)”
이 기념품을 통해 ‘미르칸’이란 이름은 멀리 날아가 버렸다는 것과 시추선 이름이 ‘두성호’로 확정된 것을 알게 되었다. 한숨도 나오지 않는 시간이 한참 갔다.
그런데 그 진실을 얼마 후에 알게 되었다.
아들 이름을 짓기 위해 나를 찾아온 손님으로부터 ‘미르칸’이 ‘두성호’로 바꾸게 된 사연을 들을 수 있었다. 그는 그 조선소 담당 부서에 근무해서 두성호 이름 결정에 관한 그간의 전후 사정을 모두 알고 있었다. 그는 이 일은 대통령과 관련 있어 아직 이 사실을 세상에 알리지 말라고 당부하며 이야기해 주었다. 조선소에서는 ‘미르칸’을 결정했으나, 청와대에서 진수식 바로 전날에 느닷없이 ‘두성호(斗星號)’라는 이름을 보내 왔다는 것이었다. 이 이름은 당시 전두환 대통령 이름 ‘두환’의 첫글자와 그 부인 이순자의 본향 성주(星州)에서 한 글자씩 따서 지은 것이란다.
분노가 치밀었다. 선박 이름에 대통령이 왜 개입해야 하나? 그리고 시추선 이름에 왜 대통령 관련의 글자가 들어가야 하나? 청와대로 달려가 따지고 싶었다. 그렇지만 나는 이 분통 터지는 사실을 세상에 바로 알릴 수 없었다. 만약 이런 사실을 발설하면 큰 문제가 생길 수 있다는 생각도 들었다.
“임금님의 귀는 당나귀 귀”
나는 한동안 신라 경문왕의 ‘귀 설화’의 이발사처럼 입을 꾹 다물고 살 수밖에 없었다.
사람들은 석유 시추선이 ‘두성호’라는 것은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이 이름 결정 이전의 ‘미르칸’ 작명의 진실을 누가 알겠는가.
<하나은행> 은행 이름에 한글이름이 처음 들어가게 된 사연
우리나라에는 우리은행, 하나은행 등 순 우리말 은행들이 있다. 한빛은행, 서울은행, 보람은행 등의 우리말 이름 은행도 있었다.
우리나라 최초의 우리말 이름 은행은 '하나은행'이다. 이 이름이 나오게 된 배경에 내가 있었다는 사실을 자랑처럼 말하고 싶다.
1991년 2월 19일 낮 2시쯤 '○○투자금융'의 김○○ 부장과 김○○ 차장이 사무실을 찾아왔다. 새로 설립할 은행의 이름을 부탁했다. 당시 두 사람은 은행 설립을 위해 일본의 금융 기관들을 먼저 돌아보고 왔다면서, 그 나라에서 '토마토은행'이란 화끈한(?) 이름에 크게 눈이 갔다고 했다. 그것을 보고 우리나라에서도 이처럼 우리식 은행 이름을 지을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면서, 그러자면 기존의 한자식 이름 대신 우리식 이름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는 것이다.
이에 앞서 직원들의 공모를 먼저 받아 보았는데, 그 여러 이름들을 참고하여 새로 짓거나 선택해 달라고 했다. 나는 이제 우리나라에서도 은행 이름이 우리말로 탄생된다는 너무도 고마웠다. 그리고 그런 일을 내가 하게 되었다는 것이 자랑스러웠다.
그 동안 우리나라에는 조흥은행, 신탁은행, 제일은행, 상업은행 같은 한자식 이름만 있어 왔는데, 은행계에서도 우리말 이름이 탄생될 수 있는 계기가 되었구나 생각하니 기분도 좋았다. 그래서 더욱 머리를 써야 했다.
얼마 후 이름 5개(하나은행, 서로은행, 한그루은행, 가마은행, 한가득은행)를 지어 주었다. 며칠 후 '하나은행'으로 결정했다는 통보를 해 왔다.
이것이 인연이 되어 몇 년 뒤, 그 은행에 딸린 '한마음연수원'이란 이름도 지어 주었다. 당시 이름을 받아 간 하나은행 직원인 교육기획 담당 팀장은 '하나은행'의 작명 사실을 윗분으로부터 들었다면서 윗사람의 감사의 말을 대신 전했다.
하나은행은 이제 많이 알려진 이름이다. 아쉬운 것은 이런 우리말 이름의 은행 중 '한빛은행', '서울은행', '보람은행'도 있었는데, 이 이름들이 없어졌다는 점이다.
<사랑채> 청와대 부속 건물 이름
2011년 4월, 청와대에서 연락이 왔다. 경호처의 주무관을 통해서였다. 그 당시 새로 지은 한옥식 건물의 이름을 우리말로 지어 달라는 것이었다. 이 주무관은 조경에 관해서는 전문성이 대단한 분이었다.
주무관의 연락을 받고 해당 건물이 있는 청와대쪽으로 갔다. 정말 멋있는 건물이었다. 주위의 조경도 잘 되어 있었다. 이 건물은 주로 외국 손님이 우리나라를 방문했을 때 맞이하는 장소로 이용한다고 했다. 주무관은 건물 이름을 꼭 우리식으로 멋지게 지어 달라고 했다.
여러 개의 이름을 지었다. 여러 날 작업하여 나온 이름은 ‘한울의집’, ‘사랑마루’, ‘다솜방’, ‘사랑채’, ‘뜨락채’였다. 얼마 후 청와대측에서는 이 이름들 중 ‘사랑채’를 택했다.
청와대에서는 지금까지 한글 이름보다는 한자식 이름을 선호해 왔던 터였다. 그런 의미에서 ‘사랑채’란 우리식 이름의 채택은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