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톡 메시지와 전화 한 통으로 하나님께서 하신 일!
분명 옥빛 가을 하늘은 맑고 경쾌하고 초목들은 빨강 노랑으로 물들어 절정에 오른 생명의 기운을 혼신을 다하여 뿜어내는데 내 마음은 불덩이를 안고 잿빛으로 타들어갔다. 일들이 손에 잡히지 않고 생각이 뜬 구름처럼 흘러갔다. 세상이 금방 전쟁의 소용돌이에 빠져 살육의 지옥으로 바뀔 것 같다. 스산하다. 불안하다. 그런데 사람들은 이전과 다름없이 잘도 먹고 마시며 삶을 만끽한다. 나만 홀로 괴롭고 아픈가 보다. 나만 혼자 힘들어하나 보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의 끝이 보이지 않는다.
게다가 한반도가 서로 다른 편을 지원해서 간접적으로 충돌이 예상된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전쟁이 이스라엘의 일방적 살육으로 막나가고 있는데 아무도 제재하지 못한다. 아무도 이스라엘의 팔을 묶지 못한다. 우리는 모두다 구경꾼이요, 방관자이다.
미얀마내전의 끝이 보이지 않는다.
동북인도 폭동의 끝도 보이지 않는다.
한반도에 흐르는 무거운 공기가 일촉즉발 상태이다.
미국, 중국, 인도, 이스라엘, 러시아 할 것 없이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의 생명과 인권을 고려하지 않는 강성의 사람들이 정상에 있다. 언제 어디서 누구에 의해 불똥이 튈지 아무도 예측할 수가 없다.
미얀마 난민캠프를 지원하는 일들로 지쳤다.
전쟁으로 집과 생계의 터전을 잃고 살길을 찾아 인도 쪽으로 도망 나온 그들의 절망과 아픔에 공감하며 몸과 마음을 다하여 나눔을 시작하였다. 그러나 4년째로 접어드니 모금을 하는 일이 두렵고 겁나고 힘들고 자꾸만 망설여진다.
동북인도 폭동난민들을 지원하는 일로 마음이 상하였다.
마니푸르의 폭동은 세계적인 이슈가 되지 않아서 설명이 어렵고 특정지역의 소수부족민들의 충돌이어서 도움을 호소하는 것이 쉽지 않다.
며칠 전에 연변에서 온 친구들을 만났다. 그들은 조선어로 교육하는 학교가 사라진 것에 분노하고 있었다. 분노로 벌겋게 타오르는 가슴, 슬픔과 걱정으로 썩어진 가슴을 보여주었다. 그들은 조선인의 자존심으로 조선 글을 지키는데 생애를 바치겠다고 하였다. 그들은 활동비를 간절하게 요청하였다.
첸나이에서 어느 지역의 홍수와 폭풍 피해를 알리는 글과 사진이 무더기로 왔다. 그들은 양식과 생필품 그리고 복구비를 요청하였다. 해마다 반복되는 홍수 피해자 지원이 버거워서 일언지하에 거절하였는데 마음이 편하지 않다.
기타 정해진 장학금, 생활비 지원, 고아원과 야학과 신학교 지원도 넉넉히 잘하고 싶다.
모든 현장의 요청에 부모의 심정으로 더 많이 넉넉하게 지원하고 싶다. 그들의 눈물을 닦아주고 그들이 평화와 안정을 회복할 때까지 사랑으로 감싸고 싶다. 그들의 소박한 꿈, 그들의 간절한 기도가 응답되도록 돕고 싶다. 그러나 현실이 그렇지 못하기에 때때로 하나님께 ‘언제까지 이 일을 해야 되나요?’, ‘왜 저만 힘들게 일해야 되나요?’라고 묻고 또 묻는다.
후원으로 일하는 자로서 나의 아킬레스건은 후원자들의 반응과 삶의 상황에 너무 민감한 것이다. 후원자들의 상황이 좋으면 하늘을 나는 것처럼 기뻐하고 나빠지면 나도 모르게 낙심하고 절망하며 상처를 받는다.
묵묵히 후원하시던 분들이 경제적으로 어려워지고, 건강이 나빠져서 힘들어 하면 내 기도가 부족해서 그런 것 같아 곧잘 죄인의 심정이 된다. 후원자들이 은퇴와 사업의 실패로 힘들어 하면 나 또한 따라서 절망감에 빠진다. 가끔 사업하는 분들에게 모금을 위하여 개톡을 보낼 때 두렵고 떨리는 마음이 된다. 모금할 때 겪게 되는 거부당하는 두려움, 무시당하는 고통을 일찍이 극복했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시시때때로 불안과 우울감에 빠지니 그것들이 여지없이 살아났다.
현장의 현실과 마음은 신속하게 행동하라고 하는데 몸이 따라주지 않았다. 요즘 며칠 동안 모금을 위한 개톡을 보내지 못하였다. 사람들을 만나도 입을 열지 못하였다. 현장에 보내야 하는 메시지도 귀찮아서 쓰지 못하였다. 현장에서 온 편지도 영어가 지겹고 부담에 시달리고 싶지 않아서 오랫동안 읽지 않고 내버려 두었다. 모금과 교류 스트레스에 눌리면서 가만히 있었다. 그대로 며칠 가면 일이 쌓여서 폭발할 것인데도 나는 ‘하나님께서 나를 불쌍히 여기시니 위축되고 병든 마음을 고쳐 주시겠지.’, ‘계속 쓰시려면 강한 손을 펴서 나를 올려주시겠지.’, ‘나를 불쌍히 여겨 회복시켜주시겠지.’ 라고 생각하며 될 대로 되라는 식으로 멍 때리며 눈물 콧물흘리며 열에 부대끼며 지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급하셨을까? 답답하셨을까? 당황하셨을까?
전해 상상해본 적이 없는 카톡 메시지와 전화로 나를 일으켜 세우셨다.
하나님께서 절망과 무의미, 혼란과 혼탁에 빠져 냉담해진 나의 가슴에 불을 지피신 것이다. 하나님께서 뜻밖의 편지로 나를 우울감에서 구출하셨다.
“선생님, 지난주에 저는 일상생활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나누는 사람들을 살펴보았습니다. 그리고 제가 한국에 있을 때 선생님으로부터 그런 사랑을 받았다는 늦게야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선생님께서 제게 사랑으로 사는 것이 어떤 것인지 영감을 주었습니다 .고맙습니다.”
“선생님, 하나님의 거룩한 사람인 선생님을 위해서 기도하는 것은 영광입니다. 특히 위험과 어려움 속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전파하는 사람들을 위해 기도합니다.
선생님은 항상 제 기도 속에 있을 것입니다.
선생님을 위해 시편 91편과 121편을 기도로 바칩니다.
저는 선생님과 카톡을 주고받을 때 마다 선생님에게서 많은 것을 배웁니다.
선생님! 저는 선생님의 하나님을 향한 열정에 존경을 표합니다.”
나를 하나님의 거룩한 사람이라고 표현한 청년의 편지에 당황하였다. 나는 거룩이라는 말에 적합한 사람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믿음으로 자유롭고 태평해 보여도 내 마음은 늘 파도에 흔들리고 있는 "하나님의 거룩한 사람"이라고 부르니 뜨거운 기운이 올라오며 가슴이 뭉클해지고눈물이 주룩 쏟아졌다. 몇 번 밖에 만나지 않은 나의 작은 나눔을 크게 기억하고 나를 위해 기도한다는 그의 말에 가슴에 박힌 얼음이 녹는 듯 하였다.
편지를 보낸 청년은 한국에 와서 3개월 동안 자원 봉사를 하였다. 외국에서 이방인으로 사는 것이 외롭고 어려우므로 나는 두어 번 만나서 그와 함께 한옥마을과 예술인 마을을 구경하고 차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리고 그가 서울 관광을 하러 갈 때 서울에 있는 친구 집을 소개하여 그 곳에서 머물도록 주선해 주었다. 또한 귀국 직전에 함께 식사를 하고 아름다운 호수를 돌면서 그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그 뿐이다. 그런데 그가 날마다 내가 좋아하는 시편 91편과 121편으로 축복하며 바친 기도가 하나님의 몽둥이가 되어 나를 밀어 부쳤다.
시편 91편 14,15절의 “하나님이 가라사대 저가 나를 사랑한즉 내가 저를 건지리라 저가 내 이름을 안즉 내가 저를 높이리라 저가 내게 간구하리니 내가 응답하리라 저희 환난 때에 내가 저와 함께 하여 저를 건지고 영화롭게 하리라.”
시편 121편 7,8절의“여호와께서 너를 지켜 모든 환난을 면케 하시며 또 네 영혼을 지키시로로다 여호와께서 너의 출입을 지금부터 영원까지 지키시리로다.”
청년의 카톡 편지를 읽으며 시편의 말씀으로 영적인 워밍업을 하였다. 불안과 무력감에 빠졌던 영혼이 새털처럼 가벼워졌다. 눈이 뜨이고 다시 나에게 주어진 모든 일들이 하나님의 선물과 은총으로 다가왔다. 아! 아! 그 동안 하나님의 은총과 선물을 감사하며 기뻐하면 그 나머지 일들과 필요를 하나님께서 이루어 가시는 것을 수없이 목격하지 않았던가!
영적 독감이 떨어져 나가며 영혼에 생기가 돌았다.
세상 한쪽에 전쟁이 있고 날마다 세상에 전쟁의 소문이 늘어가도 나는 살며 사랑하면 되는 것이었다. 내가 감당할 수 없는 많은 요청이 들어와도 감사하며 할 수있는 만큼만 하면 되는 거였다. 할 수 없는 일은 주님의 손에 올려 드리며 기도하면 되는 일이었다. 혼란과 어둠의 미로에서 충돌하며 나를 괴롭혔던 생각들이 솔솔 풀리고 있을 때 전화가 왔다.
“선생님, 저 아무개인데요. 곧 약속을 지키게 되어 기뻐서 전화 걸었어요.”
“예에? 권사님?”
“제가 선생님과 약속한 것을 곧 지킨다고요!”
“예에, 권사님!”
“여름에는 빈 병 주워서 팔았는데 지금은 산에 돌아다니며 밤 주워서 팔고 있어요. 며칠 더 산을 돌아다니면 약속한 후원금을 바칠 수 있어요.”
“예에, 권사님.”
“하나님의 은혜로 이제야 힘든 일들을 정리했어요. 제가 접 때 선생님께 전화를 걸었지요.
저도 선생님의 일을 돕고 싶다고요. 근데 마음은 원하는데 그게 뜻대로 안되어서 늘 죄송했고요. 그래서 더 열심히 선생님 위해서 기도했어요.”
“예에, 권사님!”
“선생님, 사실은 몇 년 전에 후원금을 준비했는데 제가 형편이 너무 어려워 써버렸어요. 그때 마음이 죄송하고 면목이 없어 힘들었어요.”
“예에, 권사님!”
“그래서 선생님! 금번에는 그런 실수를 안하려고 미리 말씀드리는 거예요.”
“예에? 권사님!”
“밤을 줍는 일이 참 기뻐요. 신나요. 선생님! 돈이 다 채워지면 다시 연락드릴게요.”
“예에, 권사님!”
“너무 너무 기쁘고 감사해서 제가 전화부터 했어요. 그리 아세요.”
“예에, 권사님!”
그가 전화를 끊었을 때 내면에서 소리가 들렸다.
‘내 딸의 기쁨을 알겠느냐?’
나는 ‘압니다.’라고 대답하며 엎드렸다.
그의 영혼이 기쁨으로 지르는 비명이 얼마나 큰 지 전화기를 타고 와서 내 가슴에 남아 있는 어둠을 몰아냈다. 어린 아이 같은 그의 기쁨, 뜨거운 그의 감사가 나를 한없이 고양시켰다. 하나님과 세상으로부터 받은 몫이 지극히 작은 그의 나눔에의 열망이 나에게 영적 충격을 주었다.
세상의 기준으로 볼 때 아무 것도 아닌 그는 가난하고 늙고 병약한 노인네에 불과하다. 세상에 기대고 의지할 곳이 없는 외로운 그는 주님의 십자가 사랑을 의지하였다. 그는 여느 사람들과 다르게 이웃들의 도움을 받을 때마다 자신도 돕는 자로 살게 해달라고 기도하였다.
어느 날 그는 소식지에서 우리의 고아와 과부 자립 프로젝트 중에 있는 <복돼지 프로젝트>에 눈길이 쏠렸다. 그리고 내게 전화를 걸어 자신처럼 가난한 사람이 어떻게 참여할 수 있는 지를 묻고 자신처럼 가난하고 약한 사람들을 도울 수 있는 길을 알게 되어 기쁘다고 하였다. 그리고 몇 년 후인 지난봄에 전화를 걸어서 나에게 자기가 약속한 사실을 상기시켜주었다.
돼지 12마리!
그는 불우한 고아와 과부들에게 자립의 씨, 희망의 선물을 주고자 지난봄부터 지금까지 빈병을 줍고 파지를 줍고 급기야는 산에 가서 밤을 줍기에 이르렀던 것이다.
적시에 온 카톡의 메시지와 전화 한 통이 나를 쓰러뜨린 영적 독감에서 구출하였다.
감동으로 울고 감사하며 받은 글과 들은 말을 반복적으로 묵상하면서 위로와 새 힘을 얻었다. 걱정과 불안, 부담과 상처, 우울감과 피해의식을 하나씩 둘씩 극복하였다. 그리고 다시 모든 것을 은총과 선물로 받았다.
할렐루야!
이는 카톡을 보낸 청년도, 전화를 걸어준 권사님도 모르게 하나님이 하신 신묘한 일이다.
2024년 11월 1일 금요일 인시
우담초라하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