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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을 것도 각오 하였노라
(사도행전 21장 < 1 >)
하나님은 우리가 우리의 생각이 아니라
하나님의 생각으로 세상을 살기를 원하십니다.
주님의 뜻대로 살기 위해서는 우리의 생각은 버려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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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가보라하는 선지자가
유대로부터 와서 예언 하기를 바울이
예루살렘에 가면 결박 당하고 이방인에게 넘겨진다고 했습니다.
그러니 예루살렘에 가지 말라고
아가보 선지자가 권면하였고 여러
제자들도 만류하였지만 사도 바울의 대답은 명료하였습니다.
"나는 주 예수의 이름을 위하여
결박 당할 뿐 아니라 예루살렘에서 죽을 것도 각오 하였노라"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말하지만, 사실은
나 자신의 뜻을 존중하며 살았습니다. 나의 뜻을 하나님의
뜻이라는 이름으로 포장하여 내 욕심을 감추며 살아온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은 우리를 예수님의 길로
가게 하는 것입니다. 만약 그 길에서 나의
유익을 따진다면,그것은 이미 예수님을 향한 길이 아닙니다.
바울의 뜻이 완고하여 권면을 받지 않으므로
만류하던 제자들과 선지자도 어쩔 수 없이 주님의
뜻대로 이루어 지기를 바라면서 더 이상 권면하지 못했습니다.
복음을 전하고자 하는 마음은 같지만,
제자들은 잘 살아서, 잘 해보자는 것이고, 사도 바울은
죽고 사는 것은 상관없고, 복음만 잘 전하면 된다는 것입니다.
살려고 하면, 여러 상황에 제약을
받을 수 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죽고자 하면,
상황에 제약이 없습니다. 죽어도 상관없기에 불사조가 됩니다.
죽음에 게의치 않는 사람은 무소불위의
권력자가 될 것입니다.진정 영혼이 자유롭고,
행동에도 거침이 없어.하나님 향한 열정만이 남아 있을 겁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결박을 당하고
죽음에 이르는 위험이 있다 할지라도 그 길을
마다하지 않고 두려워하지 않고 가는 것을 기뻐하고 원하십니다.
1. 두로에서 예루살렘 가는 길을 만류함.
"우리가 저희를 작별하고
행선하여 바로 고스로 가서 이튿날 로도에 이르러
거기서부터 바다라로 가서 베니게로 건너가는 배를 만나서
타고 가다가 구브로를 바라보고 이를 왼편에 두고 수리아로
행선하여 두로에서 상륙하니 거기서 배가 짐을 풀려 함이러라"
(사도행전 21 :1-3)
바울은 밀레도에서 에베소 교회 장로들과 작별하고
예루살렘을 향하여 행선을 계속했습니다. 빠른 시일에
예루살렘에 도착하려고 행선 코스를 따라 여러 배를 가라 탔습니다.
바울은 예루살렘으로
향하는 길에 잠시 잠시 머물러
있었던 곳마다 예루살렘에서 당할 위험을 성령으로 경고 받았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자신의
의지를 굽히지 않고 복음을
위하여 예루살렘에서 죽을 것도 각오한 그의 결심을 나타냈습니다.
바울이 여러 곳에 있는
성도들로부터 예루살렘으로 가지 말 것을 권고
받았는데 이런 권고는 한결같이 성령으로 말미암아 나타났습니다.
"제자들을 찾아 거기서 이례를 머물더니 그 제자들이
성령의 감동으로 바울더러 예루살렘에 들어가지 말라 하더라"
(사도행전 21 :4)
바울이 두로에 도착
했을 때 그 곳에 거하는 제자들을 찾아 이레간을 머물게 되었습니다.
이 교회는 바울이
세운 교회는 아니었지만 그리스도 안에서
사랑으로 영접한 그곳 성도들은 바울에게 깊은 호의를 베풀었습니다.
그런데 이 두로 교회에는 예언의
은사를 받은 성도들이 여러 명 있어서 성령의
감동으로 바울에게 예루살렘으로 들어가지 말 것을 권면했던 것입니다.
"이 여러 날을 지난 후 우리가 떠나갈새 저희가 다 그 처자와 함께
성문 밖까지 전송하거늘 우리가 바닷가에서 무릎을 꿇어 기도하
고 서로 작별한 후 우리는 배에 오르고 저희는 집으로 돌아가니라"
(사도행전 21 :5-6)
바울 일행은 두로에서 여러 날을 지난 후 작별할 때
제자들은 그들의 아내와 자녀들과 함께 바울 일행을 성문
밖까지 전송했으며 바닷가에서 함께 무릎 꿇고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바울은 기도를 통해 두로의 제자들의 평안과
신앙의 성장과 열매 맺기를 위해 하나님께 간구하며
의탁하였을 것이고 두로의 제자들은 바울 일행의 예루살렘 방문을
안전하게 지켜 주실 것과 전도사역을 위해 간구하며 의탁했을 것입니다.
"두로로부터 수로를 다 행하여 돌레마이에 이르러 형제들에게
안부를 묻고 그들과 함께 하루를 있다가 이튿날 떠나 가이사랴에
이르러 일곱 집사 중 하나인 전도자 빌립의 집에 들어가서 유하니라"
(사도행전 21 :7-8)
바울 일행은 두로를 떠나 둘레마이에서
하루를 머물면서 그곳의 형제들과 교제하였고
이튿날 가이사랴에 이르러 전도자 빌립의 집에 들어가 유하였습니다.
빌립은
예루살렘 교회가
구제와 봉사의 일을 위해 선택하여 세웠던 일곱 명 중 한 사람입니다.
그 일곱 명의 직무는 집사의 직무입니다.
빌립은 또 하나님의 은혜로 사마리아에 최초로 복음을
전했고 에디오피아 여왕의 내시에게 복음을 전한 전도자였습니다.
2. 예언하는 빌립의 네 딸들과 아가보 선지자의 만류.
"그에게 딸 넷이 있으니 처녀로 예언하는 자라 여러
날 있더니 한 선지자 아가보라 하는 이가 유대로부터
내려와 우리에게 와서 바울의 띠를 가져다가 자기 수족을
잡아매고 말하기를 성령이 말씀하시되 예루살렘에서 유대인들이
이같이 이 띠 임자를 결박하여 이방인의 손에 넘겨 주리라 하거늘"
(사도행전 21 :9-11)
빌립에게는 네 딸들이 있었는데
그들은 다 처녀들로서 예언하는 자들이었습니다. 이것은
남녀에게 동등하게 주어지는 하나님의 은혜의 특권을 증거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구약 시대에 선지자나 제사장이나 왕의
직분에 일반적으로 남자를 세워 그의 일을 행하셨고 신약
시대에도 사도와 목사와 장로와 집사의 직분에 남자를 세우셨습니다.
그러나 비상시에는 예외적으로
여자들에게도 예언이나 기다 은사를
주셨습니다.구약 시대에 미리암과 드보라의 경우가 그러하였습니다.
사도 시대에는 사도들
외에도 예언의 은사를 받은
평신도들이 있었습니다. 선지자 아가보도 그 중의 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유대로부터 가이사랴에 내려과 바울에 대해
예언했습니다. 그는 바울의 띠를 가져다가 자기 손과
발을 잡아매고 성령으로 예언하기를 예루살렘에서 유대인들이
이 띠 주인을 결박하여 이방인의 손에 넘겨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바울은 이미 밀레도에서
에베소에서 온 장로들에게 '성령이 각 성에서
내게 증거하여 결박과 환난이 나를 기다린다' 고 증거하였습니다.
(사도행전 20 :23참조)
3. 주의 뜻대로 되기를 기도함.
"우리가 그 말을 듣고 그 곳 사람들로 더불어 바울에게 예루살렘
으로 올라가지 말라 권하니 바울이 대답하되 너희가 어찌하여 울어
내 마음을 상하게 하느냐 나는 주 예수의 이름을 위하여 결박 받을
뿐 아니라 예루살렘에서 죽을 것도 각오하였노라 하니 저가 권함을
받지 아니하므로 우리가 주의 뜻대로 이루어지이다 하고 그쳤노라"
(사도행전 21 : 12-14)
바울은 가이사랴 교회 형제들에게
'너희가 어찌하여 울어 내 마음을 상하게 하느냐
나는 주 예수의 이름을 위하여 결박 받을 뿐 아니라
예루살렘에서 죽을 것도 각오하였노라'고 심정을 토로하였습니다.
바울이 이처럼 '죽을 것도
각오하였노라' 고 한 말에서
바울의 복음을 전하는 진실한 자세를 바라보게 되는 것입니다.
바울의 이런 신앙적인 결단은 어디에 온 것입니까?
예수님을 만난 후의 그의 인생관과 그가 그리스도 안에서 바라본
위대한 상급에 대한 소망으로 말미암은 것임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바울은 '살든지 죽든지 내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히 되게 하려 하나니 이는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함이니라'고 말했습니다.
(빌립보서 1:20-21)참조).
그들은 바울을
설득하여 죽음의 사지로
들어가지 말 것을 말렸지만 바울은 그들의 권함을 듣지 않았습니다.
결박 뿐 아니라 죽기를 각오한 바울에게 결박이 두려워 몸을
도사릴 그가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할 수 없이 다 함께 기도하기를
'주의 뜻대로 이루어지이다'고 기도하는 것으로 그쳤다고 했습니다.
4. 예루살렘에서 야고보를 만남.
"이 여러 날 후에 행장을 준비하여 예루살렘으로
올라갈새 가이사랴의 몇 제자가 함께 가며 한 오랜 제자 구브로
사람 나손을 데리고 가니 이는 우리가 그의 집에 유하려 함이라"
(사도행전 21 :15-16)
바울은 가이사랴에 여러 날 머문 후 행장을 준비하여
예루살렘으로 올라갔습니다. 몇몇 가이사랴의 제자들도
함께 올라갔고 특히 오랜 제자 구브로 사람 나손도 함께
하였는데 바울의 전도단 일행이 그의 집에 유하려고 했기 때문입니다.
"예루살렘에 이르니 형제들이 우리를 기꺼이 영접하거늘 그 이튿날
바울이 우리와 함께 야고보에게로 들어가니 장로들도 다 있더라"
(사도행전 21 :17-18)
바울은 드디어 예루살렘에 이르렀습니다.
바울이 예루살렘에 온 표면적 이유는 하나님께
드릴 제물과 예루살렘 성도들에게 전해 줄 구제금의 전달이었습니다.
그러나 실상은 바울의 예루살렘 방문은 복음의 보다 큰 사역을
이루기 위해서입니다. 바울은 과연 자신이 예언한 대로 예루살렘에서
주의 복음을 위해 결박 뿐 아니라 더 심한 핍박을 당하게 된 것입니다.
바울이
예루살렘에 도착하자
그 곳 형제들의 영접을 받았으며 이튿날 아고보를 방문하게 되었습니다.
야고보는 요한의 형제인 사도 야고보를 가리킴이 아닙니다.
야고보 사도는 이미 헤롯왕에 의해 칼로 죽임을 당했습니다.
이곳에 나오는 야고보는 주님의 형제가 되는 야고보를 말합니다.
야고보는 사도는 아니었지만
예수님의 형제라는 이름 때문에
그 당시 예루살렘 교회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습니다.
5. 바울의 선교 보고.
"바울이 문안하고 하나님이 자기의 봉사로 말미암아 이방
가운데서 하신 일을 낱낱이 고하니 저희가 듣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바울 더러 이르되 형제여 그대도 보는 바에
유대인 중에 믿는 자 수만 명이 있으니 다 율법에 열심 있는 자라"
(사도행전 21 :19-20)
야고보에게는 이해심과 사랑이 있었습니다.
바울을 처음 만난 야고보는 지금까지 좋지 않은 소문이 예루살렘에
들려 왔기 때문에 바울에 대해 오해할 만한 요소가 많이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반갑게 맞이하여 그의 봉사로 말미암은 복음 사역에
대하여 보고를 들었습니다. 그리고 바울이 이방인 가운데서 어렵게
복음을 전한 사실을 낱낱이 듣고 모두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
우리는 혹 사람들이 전하는
풍문으로 다소 오해 받을 만한 일이 있어도
사랑과 이해심을 가지고 사실 여부를 규명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바울로 말미암아 문제점이 제기 되었을 때
야고보는 슬기롭게 대처해 나갔습니다. 예루살렘
교회는 아직 영적으로 미숙한 초대교회인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됩니다.
이 교회에는 많은 성도들이
있었지만 그들은 아직까지 다 율법에
열심있는 율법주의적 생활에 깊숙이 젖어 있는 유대인들이었습니다.
그들의 머리와 생활에 스며 있는
율법주의적인 사고와 생활은 그리스도를
영접하였다고 하루아침에 사라져 버릴 수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예루살렘에 믿는
유대인들 중 수 만 명이 율법에 열심 있는 자들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야고보는 바울이
예루살렘 교회에서 인정 받으려면 이들이
가지고 있는 잘못된 바울에 대한 오해를 풀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여기서 야고보는 바울에게 한가지 제안을
했습니다. 그 제안이란 바울에 대하여 유대인들이 듣고
있는 바가 사실이 아님을 행동으로 증거를 삼아 보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서원한 네 사람의 경비를
부담하고 결례를 행하고 머리를 깎게 하라는
것입니다. 바울은 이 야고보의 제안을 좋게 여겨 받아 드렸습니다.
네 사람의 서원이란
나실인의 서원으로 이들은 율법에 의해 결례를 행해야 하는 것입니다.
바울은 율법의 의를
인정치 않았지만 의롭다 함을
얻으려는 목적이 아닌 복음을 위해 율법에 대해 관대하기로 했습니다.
거룩하신 아버지 하나님
바울은 그의 생애를 오직 그리스도를 위하여
자신의 모든 것을 바치는 일에 헌신했음을 봅니다.
사도 바울은 후회 없는 생애를 살았고 모든 성도들의
귀감이 되는 삶을 살았습니다. '예루살렘에서 죽을 것도
각오했노라'고 고백한 바울 사도의 그 굳은 믿음의 심지를 본 받아
우리의 생애도 주를 위하여 죽을 것도 각오한 생애, 주의 뜻대로
이루어지기를 원하는 생애를 보낼 수 있기를 간절히 원합니다.
성령하나님께서 늘 우리와 동행하셔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삶으로 우리를 인도하시고 도와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2024. 8. 5. -샬롬- 예수님 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