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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할 수 없는 심판 그러나
호세아서 5:1~7
1 제사장들아 이를 들으라 이스라엘 족속들아 깨달으라 왕족들아 귀를 기울이라 너희에게 심판이 있나니 너희가 미스바에 대하여 올무가 되며 다볼 위에 친 그물이 됨이라
2 패역자가 살육죄에 깊이 빠졌으매 내가 그들을 다 벌하노라
3 에브라임은 내가 알고 이스라엘은 내게 숨기지 못하나니 에브라임아 이제 네가 음행하였고 이스라엘이 더러워졌느니라
4 그들의 행위가 그들로 자기 하나님에게 돌아가지 못하게 하나니 이는 음란한 마음이 그 속에 있어 여호와를 알지 못하는 까닭이라
5 이스라엘의 교만이 그 얼굴에 드러났나니 그 죄악으로 말미암아 이스라엘과 에브라임이 넘어지고 유다도 그들과 함께 넘어지리라
6 그들이 양 떼와 소 떼를 끌고 여호와를 찾으러 갈지라도 만나지 못할 것은 이미 그들에게서 떠나셨음이라
7 그들이 여호와께 정조를 지키지 아니하고 사생아를 낳았으니 그러므로 새 달이 그들과 그 기업을 함께 삼키리로다
저는 여태껏 살아오면서 음식을 먹고 소화하지 못하여 고통을 겪은 적이 없었습니다. 제 위와 내장이 튼튼해서 그런 줄 알았습니다. 그러다 건강검진을 받은 적이 있었습니다. 수면 내시경을 통하여 저의 대장에 용종이 몇 개가 발견되었습니다. 겉으로 볼 때는 아무런 문제가 없고 무척 건강해 보였는데, 몸속 깊은 곳에 나도 모르게 작은 종양이 자라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는 겉모습을 화장이나 멋진 옷으로 꾸밀 수 있지만, 우리 몸속의 상태를 숨길 수는 없습니다.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호세아 5장의 말씀은, 마치 영적인 MRI 촬영 결과와도 같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타락한 이스라엘 백성들, 특히 백성을 올바른 길로 이끌어야 할 제사장들과 지도자들의 숨겨진 영적 상태를 낱낱이 드러내시며 심판을 선고하십니다. 호세아 선지자의 말씀은 죄로 인해 깊이 병든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안타까운 탄식과 엄중한 경고를 담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사랑이 한없이 많으신 분이지만, 동시에 죄를 결코 가볍게 넘기지 않으시는 거룩하고 공의로우신 분입니다.
오늘 본문은 이스라엘이 왜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수 없는지 그 분명한 이유를 세 가지로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메시지는 절망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피할 수 없는 심판의 자리에 찾아온 은혜, 그 놀라운 복음을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첫째, 생명을 살리는 존재에서 살인자로 타락했기 때문입니다.
호 5:1 “제사장들아 이를 들으라 이스라엘 족속들아 깨달으라 왕족들아 귀를 기울이라 너희에게 심판이 있나니 너희가 미스바에 대하여 올무가 되며 다볼 위에 친 그물이 됨이라”고 하셨습니다. 여기서 ‘미스바’는 야곱이 그의 삼촌 라반과 언약을 세웠던 곳을 말하며, ‘다볼’은 요단 서편에 있는 곳으로 어쩌면 숲이 우거져 새와 짐승들을 잡기에 적합한 장소였기에 상징적으로 사용된 것으로 성서 신학자들은 해석하고 있습니다.
본 절은 이스라엘의 통치자들이 새를 잡는 것처럼 백성들에게 올무와 그물을 놓고 있음을 책망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미스바와 다볼 산 위에서 거짓 우상을 섬기라고 부추겼던 사실을 의미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백성들을 악한 길로 인도하였다는 것을 가리키고 있음은 명백합니다. 그들은 백성들의 지도자가 되기는커녕 도리어 도덕적 부패와 우상숭배에 빠져 멸망의 길에서 허덕이며 백성들을 미혹했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제사장들과 이스라엘 족속, 그리고 왕족들을 부르시며 꾸짖으십니다. 이들은 하나님이 택하신 백성들을 영적으로 돌보고, 생명의 길로 인도하며, 외부의 위험으로부터 보호해야 할 생명을 살리는 사명을 받은 자들입니다.
이처럼 그들에 대하여 호 5:2 “패역자가 살육죄에 깊이 빠졌으매 내가 그들을 다 벌하노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살륙죄’는 히브리어 ‘솨하타’라고 하였습니다. 이는 ‘펼치다’, ‘늘이다’등의 뜻을 지닌 것으로 백성들을 우상숭배의 길로 인도하고 그에 따른 학살을 자행함으로써 파멸을 자초하고 있는 지도자들의 죄악을 말하고 있습니다.
미스바와 다볼 산에서 짐승을 잡는 희생 제사를 드리면서, 겉으로는 하나님을 섬기는 척했지만 실제로는 우상숭배의 덫과 그물이 되어 백성들을 영적 죽음으로 몰아넣었습니다. 생명을 살려야 할 자들이 생명을 죽이는 자들로 타락했을 때, 하나님의 심판은 피할 수 없는 것이 됩니다.
이 말씀은 오늘을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을 향하여도 마찬가지입니다.
벧전 2:9 “그러나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 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고 하였습니다. 이 말씀에서 보이는 것처럼 우리들의 부르심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이웃에게 구원에 이르는 빛을 비추는 역할이 우리에 있음을 밝히 보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위에 있는 모든 분에게 구원의 소식에 관하여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전해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에스겔 33장 6절에서 “그러나 칼이 임함을 파수꾼이 보고도 나팔을 불지 아니하여 백성에게 경고하지 아니하므로 그 중의 한 사람이 그 임하는 칼에 제거 당하면 그는 자기 죄악으로 말미암아 죽으려니와 그 죄는 내가 파수꾼의 손에서 찾으리라”고 엄중하게 말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말씀은 진리나 위험을 먼저 깨달은 사람인 구원 받은 저와 여러분이 영적 파수꾼으로 다른 이들에게 임박한 위기를 경고하여 생명을 살려야 할 무거운 책임이 있음을 강조합니다. 만약 그 역할을 게을리하거나 침묵한다면, 그 탓에 죽음을 맞은 사람의 피 값을 하나님께서 직접 파수꾼에게 묻으시겠다는 매우 단호하고 강력한 메시지입니다.
둘째, 하나님께 드러난 죄악은 결코 숨길 수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호 5:3절에서 “에브라임은 내가 알고 이스라엘은 내게 숨기지 못하나니”라고 말씀하십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신들의 은밀한 우상숭배와 음행, 그리고 마음속의 탐욕을 하나님이 모르실 것이라고 착각했습니다. 사람들의 눈은 속일 수 있었을지 몰라도, 불꽃 같은 눈동자로 감찰하시는 하나님의 눈길을 피할 수는 없었습니다.
어린아이들과 숨바꼭질을 해보신 적이 있으실 것입니다. 서너 살 된 아이들은 커튼 뒤에 숨어서 자기 눈만 꼭 가린 채 “나 다 숨었다!”라고 외칩니다. 어른들의 눈에는 아이의 발과 몸이 다 보이지만, 아이는 자기 눈에 아무것도 안 보이니까 남들도 자신을 못 볼 것이라고 착각합니다.
우리가 짓는 은밀한 죄가 바로 이와 같습니다. 우리는 어두운 곳에서, 혹은 마음속 깊은 곳에서 죄를 지으며 완전 범죄를 꿈꾸지만, 하나님 앞에서는 대낮처럼 모든 것이 벌거벗은 듯이 드러납니다. 숨길 수 없는 죄악은 결국 피할 수 없는 심판을 부릅니다.
셋째, 하나님의 공의 앞에서 인간의 죄는 반드시 정죄받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5절부터 7절을 보면, 이스라엘의 교만이 그들의 얼굴에 드러났으며, 그들이 양 떼와 소 떼를 몰고 여호와를 찾으러 갈지라도 결코 만나지 못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왜냐하면 그들이 이미 여호와께 정조를 지키지 않고 거짓을 행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거룩하십니다. 거룩하고 공의로우신 하나님 앞에서는 그 어떤 작고 사소한 죄라도 반드시 그 대가를 치러야만 합니다. 죄를 짓고도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적당히 제물을 바치며 무마하려는 이스라엘의 얄팍한 태도를 하나님은 역겨워하셨습니다. 공의의 법정에서는 눈물이 죄를 덮어주지 못하며, 반드시 죄에 대한 합당한 형벌, 즉 정죄가 있어야만 합니다.
그러나 누구나 피할 수 없는 엄중한 심판에서 이길 수 있는 비결이 있습니다.
생명을 죽이는 살인자가 되었고, 하나님 앞에 모든 죄악이 까발려졌으며, 공의의 법정에서 사형 선고를 받을 수밖에 없는 이스라엘. 그리고 이것이 바로 하나님 앞에 선 우리 자신의 진짜 모습입니다. 우리는 스스로 힘으로 이 피할 수 없는 심판의 자리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이 절망적인 선고 뒤에 하나님은 우리를 위해 놀라운 반전을 준비하셨습니다. 하나님의 공의는 죄에 대한 심판을 요구했지만, 하나님의 사랑은 우리를 죽게 내버려 두지 않으셨습니다. 우리가 받아야 할 그 무서운 심판, 우리가 짊어져야 할 그 무거운 정죄를 대신 감당하시기 위해 이 땅에 오신 분이 계십니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십자가에서 흘려야 할 피를 대신 흘리셨고, 우리가 받아야 할 하나님의 진노를 온몸으로 받아내셨습니다.
하나님의 엄위하신 심판을 피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내 선행이나 노력이 아닙니다. 오직 나의 모든 죄를 대신 짊어지시고 십자가에서 죽으신 뒤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구주로 믿고 그분의 십자가 뒤로 숨는 것뿐입니다.
오직 예수를 믿음으로 심판을 이기고 온전한 구원을 이룰 수 있는 이유는 하나님께서 사람을 향하신 잣대가 다름이 아닌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마 5:48 “그러므로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도 하셨고, 벧전 1:16 “기록되었으되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 하셨느니라”고 하였습니다. 피조물인 인간을 향하여 하나님처럼 되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가능합니까?
전혀 불가능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골탕을 먹이시려고 그렇게 하신 것입니까?
길을 가다가 보니 한 동물병원의 간판에 이런 글이 실려 있었습니다. “야옹아! 멍멍이에게 야옹해 보라고 해봐!“라는 글귀였습니다. 하잖은 미물에 불과한 고양이도 개처럼 멍멍하며 짖을 수 없습니다. 하물며 창조주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하나님의 온전함과 거룩함을 요구하는 것은 억지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억지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지으실 때 비록 육은 땅의 흙으로 만드셨지만, 그 영혼은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대로 지으셨습니다. 그리고 처음 사람 아담의 갈비뼈를 취하여 하와를 만드시고 서로 사랑하며 하나님의 온전함과 거룩함을 드러내도록 하셨습니다.
이런 하나님의 원대한 계획을 저버리고 하나님의 사랑을 의심하고 받아들이지 않으므로 내 이웃을 진정으로 사랑할 수 없게 된 것이 죄입니다. 이 죄의 깊이가 더해지면 질수록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에서 벗어나 하나님을 대적으로 거슬리는 마귀의 흉측한 모습으로 변화되어 버렸습니다. 마귀의 형상으로 공의가 흐르는 심판대 앞에서 벗어날 영혼은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내가 아무리 노력하고 힘을 써도 하나님의 온전함과 거룩함에 이를 수 없습니다.
하늘에 날아다니는 독수리를 바라보면서 나도 날아 보겠다고 천만년을 노력하더라도 절대 하늘을 날 수 없습니다. 죄인이 노력한다고 의인이 되기는 더욱 어렵습니다. 이런 절망스런 존재가 바로 사람입니다.
할 수 없는 것을 이루라고 말씀하신 하나님은 우리에게 오직 한 길을 예비하셔서 그것을 믿음으로 받아들이므로 온전함과 거룩함에 이르도록 하였습니다. 그것은 예수님을 나의 구주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본체로서 온전하며 거룩하신 분이십니다. 이를 우리에게 주시려고 말씀이 육신이 되어 이 땅에 오셨고, 예수님을 믿은 사람에게 예수님께서 세상에 오셨을 때 그 육체에 담아 오셨던 성령을 우리에게 베풀어 주셨습니다. 예수님이 성령으로 피조물이요, 죄인인 우리 안에 거룩함을 이루도록 하셨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성령으로 온전함과 거룩함을 이룰 수 있을까요?
호 5:1 “제사장들아 이를 들으라 이스라엘 족속들아 깨달으라 왕족들아 귀를 기울이라”고 하였습니다. ‘들으라’, ‘깨달으라’, ‘귀를 기울이라’는 점증 법적인 방법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귀담아 듣고 내가 어떤 사람인지 깨닫고 회개하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오시기 전에는 하나님이 선포하시는 말씀이 곧 예수님을 예표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므로 구약에서 말씀을 기억과 말씀을 그 마음에 품는 것을 장차 이 땅에 구원자로 오실 예수님을 받아들이는 것이 됩니다.
이처럼 신약 시대에 살고 있는 믿음의 성도는 예수 그리스도의 영 성령과 함께 하나님의 온전함과 거룩함을 이룰 수 있습니다.
잠 3:6 “너는 범사에 그를 인정하라 그리하면 네 길을 지도하시리라”고 하였습니다. 성령인 내 안에서 활동하시는 것은 감각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오직 믿음으로 가능합니다. 성령은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뜻이 내 안에서 이뤄지게 하시는 분입니다. 그러므로 성령이 내 안에 계심을 믿음으로 하나님의 말씀이 내게 새겨지고 그 말씀이 하나씩 성취되므로 나는 하나님의 거룩함이 이뤄지게 됩니다.
저는 노년에 대한 준비가 하나도 되어 있지 않아서 마음이 불안하고 염려가 끊이지 않은 적이 있었습니다. 이를 놓고 하나님께 기도하던 중 시 37:5 “네 길을 여호와께 맡기라 그를 의지하면 그가 이루시고”라는 말씀이 내 안에서 떠올려졌습니다. 저는 그 말씀을 아멘으로 화답하고 그렇게 이뤄질 줄 믿었습니다. 그럴 때 제 마음에서 근심과 두려움이 사라지고 하나님께 제 앞날을 예비하심을 믿고 감사하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하는 것이 성령과 함께 하는 삶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부지런히 듣고 마음에 새기십시오! 그리고 그 명령에 아멘으로 수긍하며 성령께서 이뤄 주실 줄 믿으십시오! 안 믿어지면 그 부분에 대하여 믿음이 없는 것을 회개하십시오! 그럴 때 예수님의 장성한 분량으로 한걸음씩 나갈 수 있고, 심판대에서 승리하는 기쁨을 누릴 수 있습니다.
이런 축복의 은혜가 저와 여러분에게 있어지시길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