퍼온글 입니다... 재미있게 봐주세요 소나기...
이 글은 한때 문학계에 엄청난 파문을 일으킨 화제작으로 제 창작물은 아니지
만 혹시 모르시는 분들께 소개코져 합니다. 아울러 나름대로 약간의 수정을
가했습니다.
....................... 소 나 기 (15년 후) ..........................
청년은 개울가에서 20대 초반의 아가씨를 보자 곧 건너마을 박초시 딸이라는
것을 알수가 있었다.
서울서는 이런 개울물을 보지 못하기나 한듯이 벌써 며칠째 청년이 읍내에서
퇴근하는 길에 자전거를 타고 이 개울가에 이르면 소녀는 이 개울가에서 물
장난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가만히 보니 소녀는 물장난을 치는게 아니라 민물고기를 잡아 회를 쳐
서 초고추장에 찍어먹고 있는것이었다.
(음~ 잘도 쳐먹는군, 저러다간 고기가 씨가 마르겠어...)
어제까지는 개울가에서 하더니 오늘은 징검다리 한가운데서 하고 있었다.
그곳이 바위가 많아 고기가 많은 모양이었다.
청년은 개울가 기슭에 털썩 앉아버렸다. 소녀가 비키기를 기다리자는 것이다
청년의 기억은 15년전 어린시절로 거슬러 올라갔다.
그가 국민학생이었을때 지금의 이 개울가에서 그또래의 소녀를 만났었다.
그때 그 소녀가 물장난을 치고 있던 이 징검다리를 부끄러움이 많은 그 소년
이 건너지 못하고 건너편 개울가에서 한숨만 푹푹쉬고 있을때
하얗고 조그만 조약돌을 그에게 던지며 "이 바보~~~"라고 놀렸다.
그리고 긴 머리카락을 너풀거리며 저녁 하늘이 불그스레한 노을을 등지며 긴
머리칵락을 너풀거리면서 개울가를 달려 떠났다.
작고 소중했던 사랑은 거기서 부터였다.
유년의 소중한 사랑이야기는 그 소녀가 소나기를 맞은후 병이 악화되어 죽는
것으로 해서 끝이 났고, 슬픔을 이기지 못한 소년은 국민학교를 마치고 상경
하여 중,고,대학교를 졸업하고 씩씩하게 방위병으로 병역의 의무도 필하고 말
았다.
바로 은행에 입사시험을 치르고 합격했다.
.........................................................................
그래서 고향을 떠난지 15년이 지나서야 그는 할머니와 할어버지가 쓸쓸히 선
산을 지키고 있는 고향으로 다시 돌아왔다.
워낙 외지라서 그런지 그의 고향은 변화가 없이 옛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
었다.
그가 떠날때 눈물을 흘리고 떠났던 개울가의 징검다리 조차 그대로 였다.
그는 고향을 떠나기 전이나 돌아온 후에도 어릴적의 순수함과 그때 그 소나기
를 맞았던 조그만 소녀와의 사랑을 가슴에 간직하고 있었다.
한편..............
건너편에서 그가 자전거를 세워둔채 그녀가 징검다리를 비켜주기를 기다리는
지 모르는지 그녀는 고기를 잡아 회를 쳐먹는데만 열중하고 있었다.
해는 벌써 서산너머 숨어버렸다.
이윽고 고기를 다 잡아먹었는지 트림을 끄윽~~~하고 걸찍하게 한 소녀가 물속
에서 무엇을 하나 꺼냈다.
주먹만한 하얀 조약돌이었다.
그가 털썩 주저 앉아 있느 쪽으로 소녀가 돌아섰다. 입가에는 예쁘게 고추장
이 남아 있었다.
소녀의 얼굴은 희고 맑았다. 긴머리카락이 개울물과 조화되어 물결치듯이 보
였다.
" 바보~~~"
소녀가 그에게 하얀 조약돌을 던졌다.
' 딱~ '
"으악~~!"
아아..슬픈 사랑이야기는이렇게 시작 되려나....
15년전에 작은 들국화 같았던 그 소녀가 던진 조약돌은 아주 작은 동전만한
것이었다.
하지만 이번에 날아온 돌은 주먹만한 말그대로 짱똘이었다.
소녀가 바람에 지나가는듯한 웃음을 터트렸다...
웃음을 띄우며 던진 조약돌이 청년의 이마에 정통으로 명중된것이다.
청년은 이마에 구멍이 나며 뒤로 조용히 넘어갔다.
'으윽 아프다... 아니 이거 미친년 아냐? 왜 돌을 던지는 거야?'
머리에서 피가 흐르자 피를 본 청년은 제정신이 아니였다.
그녀가 던진 돌보다 열배는 더 큰 바위를 들어 그녀에게 던졌다.
" 너도 맛좀 봐라"
" 쓰투라이쿠~ "
바위에 정통으로 명중된 그녀는 찍소리 한번내지 못하고 쭉 뻗었다.
저녁하늘 기울어진 햇빛의 건너편에 창백한 하얀달이 떠올랐다.
신나게 자전거를 몰고 존덴버의 "SOMEDAYS DIAMOND, SOMEDAYS STONE"을 부르
면서 체인이 덜커덩 거리는 자전거를 시속 100km로 몰아 집으로 왔다.
혹시 소녀가 집채만한 바위를 들고 쫓아올지 몰랐기 때문이다.
집에 돌아와 보니 그 소녀가 던진 짱돌이 주머니에 들어있었다.
다음날 퇴근길에 소녀는 개울가에 없었다.
다음날에도.. 그 다음날에도..
"음... 돌은 인간을 침묵시키는 무서운 힘이 있었군!"
어느날부터인가 청년은 주머니속에 불룩 나온 하얀 짱돌을 문지르는 버릇이
생겼다.청년은 자전거를 세워두고 소녀가 앉아있던 자리에 앉아 소녀가 하던
대로 물을 움키면서 고기를 잡아보았다.
잘안되었다.
"멍청한 고기는 다 그때 잡아먹히고 약은 놈들만 남았군..."
그때 징검다리 끝에서 하얀 광목 덩어리가 건너오는 것이 보였다.
청년이 움찔 놀라 바라보았을때 그것은 광목덩어리가 아니라 순백색의 광목천
으로 머리를 싸맨 소녀였다.
마치 아라비아인들이 머리에 두르는 터번 같았다.
그때 맞은 상처인듯 싶다.
'내가 하던것을 숨어서 엿보고 있었구나!'
청년은 부끄러움에 벌떡 일어서서 자전거를 타고 달렸다.
스치는 귓바람 사이로 "바보~~바보~~"하고 놀리는것 같았다.
........................................................................
정신없이 달렸다. 소녀의 놀리는 소리가 아직 따라오는것 같았다.
그런데 재수가 없으려니 너무나 속력을 내던 자전거가 중심을 잃고 길옆으로
나동그라 지면서 김씨아저씨네 돼지우리를 들이받고 말았다.
청년은 그만 걸쭉한 늪같은 돼지 화장실로 머리부터 풍덩 박혀버렸다.
한낮의 뜨거운 햇빛을 받은 탓인지 메탄가스로 인해 돼지화장실의 진흙뻘 같
은 것이 부글부글 끓고 있었다.
'음... 근래에 겪어보지 못한 개망신이군...'
그가 돼지 화장실에서 빠져나와 허둥지둥 털어내고 있을때 어느새 왔는지 소
녀가 머리를 싸매고 있던 광목을 풀어헤쳐 흔들며 밝은 미소를 던졌다.
"고거 쌤통!!!"
소녀가 빙긋이 웃으며 여유스럽게 말을 했다.
청년은 아에 상대를 하지 않으려고 일어나 자전거를 일으켜 세우며
자리를 뜨려했다.
그때 소녀는 예의 그 환한 미소를 지으며 누런 종이에 싼것을
그에게 내밀었다.
" 아가씨~ 이게 뭐죠..? "
" 다이너마이트예요. 사북 탄광에서 하나 훔쳐 왔어요."
" ......."
" 우리 이거가지고 개울가로 메기나 잡으러 가요. 한방이면 매운탕 열그릇은
나오지요."
청년은 얼굴을 들어 소녀를 보았다.
그 맑은 웃음은 아직 사라지지 않은채 입가에 여전히 남아 있었다.
다이너마이트를 아무말없이 뿌리친 청년은 망가진 자전거를 들쳐메고 집으로
돌아왔다.
읍내 자전거 1급 정비공장에 자전거를 맡긴 청년은 버스도 다니지 않는 20리
길을 걸어다녔다.
퇴근후 부지런히 걸어도 자정이나 집에 도착하기 때문에 소녀를 볼래야 볼수
가 없었다.
토요일이었다.
은행업무를 마감한 후 고친 자전거를 타고 마지막 늦여름 따가운 햇볕을 받으
며 동네 산골 어귀길을 돌아 개울가에 도착했을때 며칠동안 보지 못했던 소녀
가 물고기를 잡고 있었다.
바위에 맞은 머리는 다 나았는지 광목으로 둘렀던 것도 풀고 없었다.
비스듬이 숙인 소녀의 긴머리카락이 물결따라 하늘거렸다.
청년의 눈에 비친 개울가의 소녀와 맑은 개울물의 삽화같은 풍경은 15년전의
여름, 그 소녀를 만났을때와 너무나 흡사한 모습이었다.
그 때나 지금이나 청년의 순진함과 수줍음은 달라진게 없었다.
아는체 하기가 부끄럽고 귀찮아진 청년은 자전거를 들쳐메고 허들 경기를
하는 육상선수처럼 징검다리를 달려서 건너 뛰기 시작했다.
' 흐흐흐~ 나비같이 날아서 곰같은 자세로 멋지게 징검다리를
건너는 거여! 저년이 미쳐 말걸틈도 없게 말이야...'
징검다리 한개를 밟고 다시 몸을 날려 두개와 세개째를 연속으로 밟고 가운데
쯤 있는 일곱번째 돌을 밟으려는 순간이었다.
어제까지 분명히 있던 징검다리가 두개나 없어진 것이다.
' 아아아아악... 가랭이 찢어진다아아아...'
' 찌이이익~ '
' 풍덩~ '
청년은 자전거를 멘채 물속에 꼬꾸라져 허부적 거렸다.
소녀가 조용히 징검다리 한가운데로 다가왔다.
" 고거 쌤통2~~~ "
알고보니 소녀가 징검다리 돌을 없애버린것이었다.
물속에서 허부적 거리는 청년을 보는 소녀의 왼쪽볼에 살포시
보조개가 패였다.
먼저 돼지화장실에 빠졌을때는 '고거 쌤통 1'이었나?
겨우 자전거를 밀치고 청년이 일어났다.
그런데 청년은 얼어붙은듯 꼼짝할 수 없었다.
아무래도 바지가랭이 부분이 찢어진것 같다.
그런 청년의 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소녀는 고거 쌤통이다라는 환한 웃음을
연전히 짓고 있었다.
그런 소녀를 본척 만척한채 어기적거리며 징검다리를 간신히 건넜다.
청년이 자전거를 손보고 있는동안 소녀가 다가오며 말을 걸었다.
그 환한 웃음은 여전히 입가를 떠나지 않고 있었다.
" 너 저 산너머에 가본적이 있니? "
" 없어요! "
' 아니 이년이 언제 봤다고 반말이야? 나이도 어린것이...'
" 우리 가보지 않을래? 시골오니까 혼자 심심해서 못견디겠다."
" 시로요...!"
' 이게 꼬박 꼬박 반말이군..'
" 그럼 우리집에 가서 비디오나 볼래? 우리집에 <반금련>하고
<전라농염>이라고 죽이는 비디오 있다! 오리지날이야! "
" 서울 친구 동환이네 집에서 벌써 봤어요..."
' 내참 꼴에 수준은 높군.. 그런 걸작을 볼줄도 알고..'
" 너 저 산너머에 뭐가 있는줄 아니?"
" 음... 무지개가 있어요, 잊혀진 사랑이 있고, 마포대교 새벽같은 음울한 바
람이 머무는 곳이죠."
" 움마 움마 움마...무지개가... 잊혀진 어쩌고 저쩌고가 바람이라고~~?
와우~ 되게 멋진 곳이겠다! 나좀 데려가줄래? 응? 부탁이야!!! "
' 잊혀진 사랑이 개코나 있냐? 내가 오랜만에 문학냄새 한번 피워봤다...
어쩔씨구리....저저 눈동자 풀리는것 봐라...
고저 애미나이래 다 조렇다니께리...'
청년은 거절할 수 없는 어떤 힘을 느꼈다.
지금 이 분위기가 15년전 그 때랑 너무나 닮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더욱 중요한 이유는 불끈쥐고 있는 소녀의 주먹이
주먹대장 만큼이나 컸기 때문이다......
" 좋아요..."
자기가 지금 대답하는것이 마치 꿈속에서대답하는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청년의 마음이 흔들렸다.
유년시절 이 곳에서 알았던 그 소녀의 죽음 이후로 그는 여자 친구를 가지지
못했었다.
가슴 깊은곳에 15년전 소녀의 모습이 줄곧 떠나지를 않았다.
" 저, 이름이 뭐예요? "
" 응.. 내 이름은 떡순이라고 해! "
' 떡순! 박떡순! 흠... 비교적 섹시한 이름이라고나 할까... '
" 네 이름은 뭐니?"
" 덧없이 살다가 가을 바람에 늙어 버린 나그네 같은 사내라 하오."
청년은 이대목에서 목소리를 '말론 브란도'보다 더 중후하레 깔았다.
소녀의 눈동자가 더 풀렸다.
자전거를 숲속에 숨겨두고 청년이 앞장을 서서 뛰었다.
소녀가 신이 나서 뒤따라 뛰었다.
' 그래 15년전에도 이렇게 저 산너머를 향해 달렸었지...'
논 사잇길로 들어섰다.
벼 가을곁이 하는 곁을 지났다.
허수아비가 서 있었다. 청년이 허수아비를 흔들었다.
그바람에 허수아비 목이 떨어졌다.
청년은 순간 기겁을 했다.
그러는 동안 소녀가 역전을 해서 앞질러 갔따.
소녀는 병약해 보이는 얼굴인데도 달리기를 아주 잘 했다.
청년이 소녀의 뒤를 쫓기 시작했다.
소녀의 창백한 뺨이 붉그스레 물이 들었다.
열심히 쫓아도 소녀는 아직 저만치다.
청년이 힘을 내서 쫓았다. 그래도 소녀의 달음박질은 보통이 아니다.
논둑길을 지나 큰길가를 지나 산 밑의 조그만 길까지 달릴때까지도 청년은 소
녀를 따라잡지 못했다.
' 여자한테 질수 없지. 특히 저런 또라이 같은 지지배 한테는 특히...'
청년이 있는 힘을 다해 소녀를 쫓았다. 소녀와 거리가 좁혀지자 청년이 여유
로운 웃음을 보냈다.
소녀의 표정이 이상하게 변하더니 속력을 높였다. 청년도 질세라 가속을 했다
그렇게 거의 두시간이 흘렀다. 두시간째 앞만보고 달리던 소녀가 이젠 지쳤는
지 길옆의 풀섶으로 누워버렸다.
가쁜 숨을 몰아쉬며 청년에게 물었다.
" 헉헉...헥헥...아까 개울가에서 본 산으로 올라가는 길이 아직도 멀었니?..
후악....벌써 두시간이나 달렸는데....우엑..."
" 하악 하악... 거긴 벌써 1시간 40분전에 지났어요...푸학..."
" 우아앙악... 뭐시라고? 근데 왜 여기까지 뛰었니? 카악... 퉤!"
' 뭔 여자애가 어찌저리 드러울꼬...쯧쯧...'
소녀가 씩씩 거리며 천년묵은 여우처럼 흰자위만 보이면서 청년을 한참동안
째려보았다.
소녀의 입가에 머물던 빙그레 웃음이 청년의 입가로 옮겨왔다.
비굴한 아부끼가 농후한 웃음으로 바뀌어...
" 언니 한 번만 살려주신다면 무지개가 살고있는...어쩌고...저쩌고
쫑알..옹알...그곳으로 모셔다 드립지요..."
바로 그때 하늘이 먹구름으로 덮히더니 이른 저녁 어스름한 어둠처럼 주위가
희미해졌다.
산길 옆의 참나무 잎에 빗방울 깨지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빗방울 깨지는 소리?! 우와 그건 빗방울이 아니라 스머프 주먹만한 우박이었
다.
급히 길을 재촉했으나 우박줄기는 그들 앞을 가로막았다.
세찬 바람이 몰아치면서 소나기 같은 우박이 쏟아붇기 시작했다.
둘은 달리기 시작했다.
' 우째 오늘은 달리기만 한다냐~~~'
한참을 달렸다. 이젠 우박과 소나기가 함께 쏟아졌다.
산기슭을 보니 바둑판 처럼 조그만 논들이 있고 그옆으로 원두막이 있었다.
마을이 아주 멀리 내려다 보였다. 그리로 가서 피했다.
참외밭을 걷어 낸지 얼마 안되는지 원두막은 아직 깨끗한 상태로 남아있었다.
원두막은 논과 참외밭 사이의 중간에 서있었다.
며칠전까지 원두막을 사용했던 모양인지 조그만 이불도 있었다.
' 아니? 필요한건 다 갖춰져있군...'
창문 모양으로 난 덮개를 닫아 비 들이치는것을 막고 이불을 덮으니 아늑했다.
이젠 우박대신 억수같은 소나기만 퍼붓고 있었다.
소녀는 이미 옷이 다 젖어 떨고 있었다.
하얀 셔츠가 젖자 몸에 달라붙어 윤곽이 다 드러났다.
청년의 눈동자가 자리를 찾지 못하고 짐짓 원두막 바깥을 보는채 기웃 거렸다.
그러다가 소녀의 얼굴을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다.
" 뭘 보니? 내 얼굴에 뭐가 묻었어? "
" 아니요.. 그게 아니고 언제 머리가 그렇게 커졌죠? 눈은 작아지고...
우와~ 입술도 엄청나게 불었어요!!!"
" 뭐라고 ...?"
소녀는 조그마한 손거울을 양말에서 꺼냈다.
" 아휴 참 지저분한 지지배로구만.."
소녀는 거울속의 이상한 괴물을 보곤 기겁을 했다.
알고 보니 아까 그 스머프 주먹에 맞아 이렇게 된것이었다.
" 우앙 난 몰라 내 얼굴 물어내! "
"......"
" 흠... 그런데 넌 왜 얼굴이 아무렇지도 않지? "
"...아아... 그건 전 이 잠바를 뒤집어 쓰고 뛰었거든요..."
소녀는 한참을 시무룩하게 멍하니 앉아 있었다.
그런 소녀를 청년은 힐끔 힐끔 쳐다보고만 있었다.
" 너... 왜 자꾸 힐끔 거리는 거지? 지금 나한테 이상한 생각을 하고 있지?
그렇지? 그렇지? 그치?"
소녀가 이불로 몸을 가리면서 물었다.
그러는 소녀의 뺨이 발갛게 물들어 있었다.
" 하느님께 맹세해요! 내가 만약 이상한 생각을 했다면
하늘에서 벼락이 내리칠겁니다."
이 말이 끝나자마자 세찬 비바람 가운데로 엄청난 굉음을 내며 원두막으로
벼락이 떨어졌다.
원두막 기둥을 때리면서 굵은 기둥하나를 박살내 버리고 불이 붙었다.
소녀와 청년이 너무 놀라 정신이 반쯤 나갔다가 제정신을 차리고 허둥지둥거
리자 부러진 기둥이 부러지며 원두막이 중심을 잃고 참외밭 아랫쪽 논으로 넘
어가기 시작했다.
소녀와 청년은 이구동성으로 외쳤다.
" 넘..어..간..다..다..다..아..아..아... "
원두막이 아랫쪽으로 넘어가면서 소녀와 청년은 논바닥 진흙으로 꼬꾸라 박혀
버렸다.
소녀의 얼굴은 논에 반쯤 박혀 허부적 거리고 있었다.
그녀의 하얀 브라우스는 진흙으로 인해 검게 변해 있었다.
청년의 옷과 구두도 엉망이 되어버렸다.
잠시 후에 비가 그쳤다. 해가 발게 산기슭을 비추기 시작했다.
소녀를 보니 넘어가면서 원두막 기둥에 걸려서 다치지는 않았지만 브라우스가
찢어져 있었다.
소녀가 울었다.
" 흑흑...왜 오자고 해서 이 고생을 시키는 거야...엉엉엉~~ "
" 내가 오자고 한게 아닌데요!"
" 시끄러!!! 변증법적으로 보면 네가 오자고 한거나 마찬 가지야! 엉엉..."
" 많이 변증법적으로 살아오셨나 봐요? "
소녀를 일으켜서 참외밭 끝에 있는 계곡가로 데려 갔다.
청년은 옷을 벗고 빨아서 와이셔츠와 잠바는 다시 입고 난닝구를 그녀에게 내
밀었다.
" 이거 입으세요 "
"......"
소녀와 청년이 자신들의 개울가에 도착하니 세찬 소나기로 인해
개울물이 엄청나게 불어있었다.
시뻘건 흙탕물이었다.
청년이 소녀를 보고 등에 업히라고 했다. 소녀가 싫다면서 뒤로 뺏으나 청년
이 소녀를 완강하게 끌어당겼다.
" 너~ 나를 등에 업고서 엉큼한 생각할라고 그러지? "
" 무슨 소리예요...? 내가 만약 음흉한 생각을 한다면
마른 하늘에서 날벼......"
청년이 말을 하다 말고 실눈을 뜨고 하늘을 올려다 보았다.
소나기 내린 토요일 오후는 그렇게 저물었다.
....................................................................
그가 다음날 개울가에 도착 했을때 소녀는 보이지 않았다.
그 다음날도 소녀를 보지 못했다.
소녀를 다시 개울가에서 본것은 열흘이나 지난뒤였다.
퇴근을 하고 개울가에 도착하니 소녀가 개울가에 앉아 있었다.
소녀의 얼굴은 많이 달라져 있었다.
" 나 징허게 많이 뚜드려 맞았다. 아부지 한테...,
처녀가 밤낮 싸돌아다닌다고...그리고 몸도 원래 아팠고..."
" 그날 소나기 맞은것 때문에 더 심해요?"
소녀가 고개를 끄덕 거렸다.
소녀의 얼굴은 그때 스머프 주먹만한 우박과 아부지에게 맞은 상처와는
또 다르게 병색이 완연했다.
" 이거 멋있니?"
소녀가 웃도리를 벗자 붉그스름하게 물이든 난닝구가 그녀의 하얀 속살 사이
에 걸쳐 있었다. 그가 벗어준 난닝구 였다.
그런데 굉장히 짧아져 있었다.
" 요즘 유행하는 배꼽티 스타일이야.."
" 빠숀에 대해 센스가 많으신가 봐요.."
" 이거 입으니까 '에이리언2'의 '시고니 위버'같아 보이지?
그치? 그치? 그치?"
남자 난닝구를 여자가 입으면 더욱 요염하게 보인다는 사실을 새로이 깨달은
청년은 눈동자를 아래로 깔았다. 그녀의 불룩 나온... 아랫배를 계속 보기가
민망했다.
" 이거 먹어봐! "
소녀가 주머니에서 탐스런 고구마를 하나 꺼내어 그에게 건넸다.
' 그때 15년전에 그애는 알이 굵은 대추를 내게 주었었지...'
" 그리구...저, 우리 이번에 얼마있다가 집내주게 됐다. "
"......"
" 또 이사가야 한다. "
청년은 소녀네가 이사오기 전에 벌써 어른들의 이야기를 들어 박초시가
서울에 벌여놓은 사업에 실패해서 고향집까지 날리게 되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박초시는 원래 노름꾼이었다.
그는 서울가서 화투판에 뛰어들어 광만 팔아서 재벌이 되었던 사람이다.
광을 팔아도 똥광만 팔았다.
가끔 비가오는 날은 비광도 팔고, 기분내키면 8광이나 5광도 팔았다.
절대로 빈손으로 돌아오는 법이 없었다.
섭발이 없는 날이면 개평이라도 뜯어서 왔다.
돈을 어느정도 벌자 도박판을 떠나 회사를 차렸다.
그를 부자로 만들어 준 화투짝 이름을 따서 "비광 실업"이라고 이름을 붙였고,
자매회사로 "개평 인터내셔널"이란 무역회사도 만들었다.
그의 회사는 일제 화투짝을 수입해서 국내 백화점 및 유명 구멍가게에 납품하
는 회사였는데 일제 좋아하는 국민성을 노린게 적중하여 나날이 급성장을 하
게 되었다.
그가 수입한 상품은 칼라 모니터로 유명한 일본의 NEC사에서 만든
이라는 것으로 화투에 혁신을 가져온 것이었다.
이 상품은 기존의 딱딱한 플라스틱 화투와는 달리 화투를 초소형 TV나 전자
계산기에 쓰이는 칼라액정모니터를 부착하여 초박형으로 만든것으로 잡기 편
하고 속임수를 쓰지 못하게 만들었다.
NEC사에서 만든는 상품은 전부가 그렇듯이 이것도 멀티 기능과 인공지능을 첨
가했는데 어두운 곳에서도 조명없이 칠수있고 색맹인 사람이 칼라구별을 못해
서 잘못 칠것을 대비해 사용자 칼라지정 기능이 있었다.
또 고스톱을 칠때 피껍데기가 모자라 피박을 쓰면 자동으로 경고음이 울려서
판을 먹은 사람이 승리에 도취해 피박값을 잊어 못받는것을
방지하게 해주었다.
흔들고 칠때는 상대방 빵빠레가 울려 한층 화투판의 분위기를 살려주는 대단
한 화투였다.
그리고 따따블에 오광과 피박을 동시에 하면 화투짝 안에 내장된 스피커를
통해 '람바다'가 흘러 나왔다.
그리고 액정화면이기 때문에 조금만 옆에서 봐도 화면이 보이지 않아서 본인
이 아닌 다른 사람의 컨닝을 방지할 수도 있었다.
또 광을 팔고 멀뚱멀뚱있는 사람을 위해 TV수신기능을 첨가했다.
게다가 치는데 너무 시간을 끄는 사람이 있을때를 대비해
<안나오면 쳐들어간다 뿜빠라 뿜빠!>,
<화투를 못치면 장가를 못가지!>등등 야유가 섞인노래 50곡을 내장했다.
그러나 세계적으로 유명한 일본 제품들도 문제점이 지적되었으니...
제품상 큰 하자가 발견되었는데 그것은 내장 태양열 베터리가 문제였다.
내장된 베터리에서 방전이 되는 결함이 생겨서 몇개월을 사용하고 나면
화투를 치는 중에 찌릿 찌릿 전기에 감전이 되어 화투를 떨어뜨리는
낙장사태가 발생했다.
<[주]낙장불입이라하여 내민 화투장은 다시 바꾸어 칠 수 없음>
또 8광 화투짝에 둥그런 보름달이 사라지는 것이다. 광을 세개나 먹고도 "기
본 3점이 났다....아니다... 달모양이 없으니 2.5점이다."라면서 큰 시비가
생겨 유혈사태를 일으키기도 했다.
결정적인 결함이 또하나 있었다.
액정화면으로 플라스틱 화투판을 대신해서 다기능이고 고성능인 화투를 만든
것은 좋았으나 전기가 흐르는 이 제품에 전자 유해파 방지 장치를 하지 못한
것이었다.
노름꾼들이나 잔치집, 병원 영안실 같은데서 수십벌씩 구입해 간 이 화투가
처음에는 거의 국내 시장을 독점하여 국산 업자들이 대부분 도산을 하였으나,
전자파 탓으로 밤새도록 계속 이 화투를 사용하면 눈이 아프고
뒷골이 땡기며 구토와 설사증세가 수반 되었다.
심할때는 머리카락이 빠지고 팔다리에 마비 증세가 일어나고 혀가 마비되어
끝발이 한참 오르는 판에도 "고!"를 부를수가 없어서 막대한 재산적 손해를
보는 이들이 속출하곤 했다.
이리하여 연인 반품사태가 일어나고 손발이 마비된 사람들이 손해배상을 요구
하였으니 처음에 기세좋게 성장하던 박초시네 회사는 부도를 내고
도산을 하였다.
그리고 빚에 쪼들려 시골에 남은 집마저 남의 손으로 넘어가게 되었다.
하지만 한편으로 사회 정화 효과를 가져오기도 하였다.
많은 수의 도박꾼들이 혀와 손,발이 도박을 할 수 없는 상태가 되어 건실하게
새 생활을 시작하기도 했다.
전에 없이 소녀의 까만눈에 쓸쓸한 빛이 떠돌았다.
소녀와 헤어져 돌아오면서 청년은 소녀네가 이사를 간다는 말을
수없이 되뇌어 보았다.
무어 그리 안타까울것도 서러울것도 없었다.
청년은 소녀가 준 고구마를 먹으며 목이 메었다.
떫은 고구마가 목메게 한건지 아니면 소녀가 목메게 한건지 그는 몰랐다.
그 날밤 청년은 몰래 재순이 할아버지네 사과밭으로 갔다.
낮에 봐두었던 나무로 올라갔다.
그리고 봐두었던 나뭇가지를 향해 작대기를 내리쳤다.
' 15년 전에는 그 소녀를 주려고 덕쇠할아버지네 호두를 따러 갔었지...'
청년의 기억은 다시 15년 전을 회상했다.
이번에는 근동에서 제일 무섭다고 소문난 재철이 할어버지네 사과밭에서
아주 조심 스럽게 행동했다.
그때 갑자기 사과밭 끝머리의 집에서 재철이네 할아버지가 달빛아래로 쏜살같
이 뛰어나왔다.
조심했는데도 들킨 모양이었다.
" 어떤놈이 사과를 훔쳐가는 것이야, 어떤놈이냐!"
청년이 매달려있는 사과나무로 재철이 할어버지가 달려오는데 손에 작대기 같
은 것이 들려있었다.
가만히 보니 그것은 작대기가 아니라 사냥용 엽총 이었다.
재철이 아버지가 서울서 총포상을 한다더니 사과밭을 지키는데 총을 사용하는
모양이었다.
혼비백산을 한 청년이 사과 몇개를 급히 쑤셔넣고 나무를 내려와
울타리를 넘어 황급히 도망을 가기 시작했다.
" 투~앙! 타~앙! 탕! 탕! "
" 이 사과 도둑놈아 게섰거라! "
총을 쏘며 재철이네 할아버지는 노인네 답지 않게 엄청 빠른 속도로 쫓아왔다.
" 으악~~~ 세상에, 아무리 시골 인심이 변했다지만 사과 몇개 땄다고
총을 쏘다니... 에고고 걸음아 날 살려라~~~ "
집쪽으로 가면 눈치를 채고 잡힐것 같아 청년은 다른 동네에서
온것 처럼 보이게 하려고 동구밖길로 나서서 도망을 갔다.
한참을 달렸는데도 재철이네 할아버지는 노인네가 지치지도 않는지
소리를 고래고래 지르며 산탄총을 계속 쏘아대며 쫓아오고 있었다.
밤중이라 제대로 겨냥하지 못하는 것이 천만다행이었다.
청년이 있는 힘을 다해 동구밖 길을 벗어나 은냇골을 지나 봉서산을 끼고
돌을 때까지 재철이 할아버지는 쫓아왔다.
' 달리기 귀신이 씌었나... 우째 요즘은 계속 달리는 구나... 헉헉~ '
귀신이 나온다는 소문이 있는 샘골로 들어서도 계속 쫓아오자 늦여름에 벌써
서리가 내리는 무지막지하게 높은 운악산 꼭대기까지 도망을 쳤다.
그제서야 노인네는 지쳤는지 산등성이로 오르는 길목에서
겨우 따돌릴 수 있었다.
얼만전에 서울서 내려온 남자가 자살을 했다는 이 운악산의 절벽위에 서서
혼자 있으려니 청년은 공포와 추위로 몸이 덜덜 떨렸다.
수십리 길이나 떨어진 집으로 터덜 터덜 힘없이 돌아가던 청년은 아차 싶었다.
소녀더러 몸이 좀 웬만해지거들랑 개울가로 나와달라는 말을 해두지 못한
것이었다.
' 바보같으니라고...에이, 왜 내가 하는 일은 늘 이 모양이란말인가...'
퇴근길에 개울가에서 한참을 기다려도 소녀는 나타나지 않았다.
며칠을 그렇게 기다렸으나 볼 수 가 없었다.
그렇게 며칠이 지난후 퇴근길에 돌아오니 할아버지가 나들이 옷으로 갈아 입고
나갈 채비를 하고 있었다.
" 어디를 가세요? 서울집에 아버지 만나러 가세요? "
" 아니다. 건너 마을 박초시가 고향 떠난다고 송별회를 하자는 구나."
읍내 캬바레를 세내서 질펀나게 놀기로 했지 뭐냐...
옛날에 배운 지루박하고 탱고는 안까먹었는가 몰르것다.
" 할멈은 쫓아오지 말어~ 쪽팔리니께..."
개울물은 날로 여물어 갔다.
청년은 저녁 무렵 전에 없이 개울가로 나가보았으나 소녀는 보이지 않았다.
무심하게 개울물만 흘러가고 있었다.
소녀에게 주려고 따다놓은 선반위의 사과는 시들어가고 있었다.
그날 저녁 청년은 자리에 누워서도 소녀 생각 뿐이었다.
" 내가 그애를 사랑하는것 같은데... 사랑하는것 같은데......쿨 쿨~~~"
그러다가 깜빡 잠이 들었는데,
" 허어~ 참 세상일두..."
읍내에 놀러 가셨던 할아버지가 언제 오셨는지 약간 술기운을 풍기며,
" 박초시 댁도 말이 아니여... 그 많이도 번 돈을 다 날리더니 대대로
살아오던 집까지 남에게 넘기고 또 악상까지 당하는 것을 보면..."
희미한 형광등 밑에서 바느질을 하던 할머니가 물었다.
" 자식이라고는 그 계집애 하나뿐이었지요?"
" 그려. 하나뿐이었지. 그앤 꽤 오랫동안 앓는걸 약도 변변히 못써봤다는군.
지금 같아서는 박초시네두 대가 끊긴 셈이지..."
" 그런데 그 나이도 많지 않은 처녀애가 여간 음흉 스럽지가 않어.
글쎄 죽기전에 웬 남자 난닝구를 입고 있다지 뭐여!
넘사스럽게 처녀가 왜 남자 난닝구를 입고 있었을까...?
무슨 말 못할 사연이 있는걸거여.
그리고 죽기전에 숨을 몰아쉬며 겨우 이 말을 유언으로 남겼다는군.
이 옷을 입은채로 묻어 주세요, 난닝구는 역시 ***표가 캡이라고 "
유년의 아픈 사랑이 미처 가시기도 전에 청년의 사랑은 또 그렇게 쓸쓸하게
개울가를 떠났습니다.
소나기가 차갑게 내리는 어느 계절에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