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히 적은 수의 영화에 출연하되 출연하기로 마음먹고 나면 충격적일 만큼 경이로운 변신을 감행하는 괴물 같은 남자. 가급적 출연작을 엄선하는 것으로 소문난 그는 이에 대하여 이렇게 말합니다.
“단순히 내가 좋아하지 않는 것들을 아주 빨리 알아차릴 뿐입니다. 또한 나를 작업으로 잡아끄는 충동을 알아차릴 수 있죠. 그리고 나이가 들수록 충동이 찾아드는 횟수가 줄어들게 마련이고요.”
스필버그 감독의 8년의 구애 끝에 출연한 영화 <링컨>에서 세 번째 아카데미 주연상을 움켜잡은 다니엘 데이 루이스,
* 영화 <링컨> 제작중 스필버그와 링컨의 부인 메리 토드로 출연한 셸리 필드와 함께
삶이 자기 몸에 깃들 때까지 초기 석유 시추업자들의 도구를 익히고(<데어 윌 비 블러드>), 두달 동안 19세기 귀족의 의상을 걸치고 현대 뉴욕을 활보하는가 하면(<순수의 시대>), 갈비뼈가 부러질 때까지 휠체어에서 일어서려 하지 않았던(<나의 왼발>) 영화의 노예. 그러므로 대니얼 데이 루이스는 쏟아지는 러브콜에 예스 혹은 노의 특권을 획득한 몇 안되는 배우일 겁니다.
영화로 회귀하고자 하는 욕망이, 그의 지독한 도피욕(그는 2007년 영화 <더 복서>를 끝낸 후 가족과 함께 이탈리아 피렌체 근방으로 도피하여 구두쟁이(제화공)를 하며 살았습니다)을 매번 능가하는 까닭입니다.
2008년, 80돌을 맞이한 오스카는 <데어 윌비 블러드>의 주인공을 열연한 다니엘 데이 루이스를 남우 주연상 수상자로 선택했다. 그리고 2013년 <링컨>으로 또 다시 아카데미상 수상.
* <링컨>에서
이미 1990년 <나의 왼발>로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수상했었지만 그는 진정 두번, 아니 세번 네번을 받아도 지나칠 게 없는 남자입니다. 수많은 사람들에게 장애인에 대한 편견을 접게 한 크리스티 브라운을 연기했던 <나의 왼발> 뿐 아니라, 참을 수 없는 ‘가벼운 바람둥이’ 토마스를 연기했던 <프라하의 봄>에서, 오리지널보다 더 오리지널 같은 인디언 ‘호크아이’를 연기했던 <라스트 모히칸>에서, 시대적 광풍의 희생양이 되는 아일랜드 청년 ‘제리 콘론’을 연기했던 <아버지의 이름으로>에서…
* <라스트 모히칸>에서
폴 토마스 앤더슨 감독의 <데어 윌 비 블러드>에서 그는 석유를 캐기 위해서라면 똥통에라도 들어갈 수 있는 철저한 자본주의의 화신으로 명연기를 펼쳤죠. 인간미는 있지만 아무 것도 가진 게 없는 초라한 은광 광부가 어떻게 피도 눈물도 없는 악독한 석유재벌로 변하는가에 대한, 어쩌면 꽤 상투적일 수 있는 이야기를 굵직하게 빛나게 한 건 순전히 그의 공이었습니다.
사실 최근 10년을 돌이켜 보면 그가 출연한 영화는 고작 6편에 불과합니다. 하지만 그는 다년간 영화를 위해 충전한 에너지를 철저하게 영화에 바칩니다. <아버지의 이름으로>에서는 실감나는 연기를 위해 감방 생활을 마다하지 않았으며, <데어 윌 비 블러드>를 찍으면서는 텍사스의 황량한 사막에 아예 텐트까지 쳐놓고 살면서 연기를 했다던, 말 그대로 ‘연기에 영혼을 바친 남자’인 다니엘 데이 루이스.
* <데어 윌비 블러드>에서
다니엘 데이 루이스는 ‘평범함’과는 철저히 거리를 두고 있는 배우입니다. 185센티가 넘는 큰 키와 마른 외모, 소년의 모습을 그대로 담고 있는 듯한 맑은 눈매와 그의 나이를 깨닫게 하는 희끗희끗한 은발. 이는 선남선녀들이 지배하는 주류 영화계의 주연 배우에 적당한 외모는 절대 아니죠.
그의 비범한 외모에 덧붙여, 1971년 데뷔한 이래 30년 동안 겨우 스무 편 남짓한 출연작에서 다니엘 데이 루이스에게서 하나의 일관된 이미지를 뽑아내기는 힘듭니다. 마이클 만의 <라스트 모히칸>의 사랑하는 연인을 갈구하던 ‘호크 아이’와 필립 카우프먼의 <프라하의 봄>에서 음악을 흥얼대며 수술을 하는 바람둥이 내과 의사 그리고 인간 승리의 본보기를 보여주는 크리스티 브라운을 연기한 <나의 왼발>까지, 다니엘 데이 루이스는 천차만별인 캐릭터를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능력을 지닌 배우입니다.
자신이 맡은 캐릭터 속으로 100% 녹아 든다는 이야기입니다. 그의 캐릭터에 대한 철두철미한 분석력과 그에 따른 완벽한 연기력 덕분에, 대부분의 캐스팅 디렉터들과 감독들은 그들의 신작 주연감으로 첫손에 다니엘 데이 루이스를 꼽고 있습니다.
* <순수의 시대>에서
[다니엘 데이 루이스의 생애]
다니엘 데이 루이스는 1957년 4월 29일 영국 런던에서 계관 시인이자 사회학자였던 세실 데이 루이스와 여배우였던 질 밸콘 사이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어렸을 적 다니엘 데이 루이스는 집에서건 학교에서건 언제나 아웃사이더였습니다. 아웃사이더이자 소심한 성격의 다니엘이 사회와의 연대를 시작한 계기는 브리스톨 올드 빅 스쿨에서의 연기 공부였습니다.
연기를 통해 그는 비로소 사회와의 연대를 시작한 것이죠. 그의 이런 전략은 대성공을 거둔 셈입니다. 다니엘 데이 루이스가 다른 사람의 인생을 사는 것에 대해 완전히 매료되어, 배우로서의 삶을 살기로 결정했기 때문입니다.
1985년은 다니엘 데이 루이스에게 있어 의미가 깊은 해입니다. 그의 가장 중요한 초기 작들로 평가되는 스티븐 프리어즈의 <나의 아름다운 세탁소>와 제임스 아이보리의 <전망 좋은 방>에 출연하게 된 것.
미국 뉴욕에서 같은 날 동시에 개봉된 두 영화는 관객과 평론가들에게 그의 놀라운 연기 영역을 확인하게 했으며, 그의 재능을 되짚기에 부족함이 없었습니다.
* <라스트 모히칸>에서
본격적인 주연의 자리를 점하게 된 필립 카우프먼의 <프라하의 봄>을 거쳐 다니엘 데이 루이스는 짐 셰리단의 감동적인 드라마 <나의 왼발>에 출연합니다. 온몸이 마비된 예술가 크리스티 브라운을 완벽히 채화해낸 그의 놀라운 연기력에 감탄한 전 세계의 영화인들은 미국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포함하여 일제히 남우주연상 트로피를 안겼습니다.
<나의 왼발> 이전 그는 할리우드에서 <프라하의 봄>의 바람둥이 의사 정도에 여겨졌지만, 이후 그는 ‘지적인 역할’로 가장 처음 거론되는 배우가 되었으며, 미국 피플지가 선정한 ‘50인의 아름다운 사람 리스트’에 이름을 올릴 정도로 배우로서 최고의 인기를 얻었습니다.
1992년 다니엘 데이 루이스는 마이클 만 감독의 <라스트 모히칸>에 출연했습니다. <라스트 모히칸>은 영화에 대한 평가는 찬,반으로 갈렸지만, 흥행에서는 다니엘 데이 루이스 주연작 중 최고의 히트를 기록했습니다.
* <라스트 모히칸>에서
마이클 만은 “다니엘은 연기라기 보다는 그 자신이 직접 그 캐릭터가 되어 버립니다. 캐릭터와 똑같이 생활하고 느끼고 자신 안에 그 캐릭터를 심어놓는 거죠. 그는 머리가 아니라 가슴으로 연기를 합니다”라고 말합니다. 연인을 향해 달려가던 마지막 모히칸 ‘호크아이’를 절대 잊을 수 없는 것은 그 때문입니다.
다니엘 데이 루이스는 미국의 유명한 극작가 아서 밀러의 딸 레베카 밀러와 행복한 결혼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1989년부터 1994년까지 5년 동안 그가 이자벨 아자니와 가진 로맨스는 너무도 유명한 이야기. 다니엘 데이 루이스는 프랑스 여배우 이자벨 아자니와의 사이에서 얻은 가브리엘 케인 아자니를 포함, 로난과 캐셜 등 세 아들을 둔 아버지입니다.
* 영화 <링컨>에 얽힌 스필버그와 다니엘 이야기
영화 <링컨>으로 2013년 아카데미에서 남우주연상을 수상하며 남자 배우로는 처음으로 아카데미에서 세 번이나 주연상을 거머쥔 다니엘 데이-루이스가 ‘링컨’ 역을 무려 8년이나 고사해 왔다고 합니다.
<링컨>을 연출한 스티븐 스필버그가 원했던 링컨의 모습은 남북전쟁의 파고 속에서 노예제도 폐지를 이루고자 하는 지도자 링컨의 모습부터 한 가정의 연약한 아버지까지 입체적인 모습의 링컨이였습니다.
이래서 스티븐 스필버그가 낙점한 배우는 다니엘 데이-루이스였습니다. 그러나 '다니엘이 거절하면 어쩌나’라는 것을 가장 큰 걱정으로 달고 살았다고 합니다. 그의 우려처럼 다니엘 데이 루이스는 <링컨>의 캐스팅을 거절했습니다.
* <링컨>에서
다니엘 데이 루이스는 “미국 역사상 가장 위대한 대통령이자 19세기 가장 훌륭한 위인에 대한 기억을 망치고 싶지 않았다.”며, “너무도 막중한 책임이 따르는 일이었다.”라고 당시의 거부 이유를 밝혔죠. 하지만 스티븐 스필버그는 끈질겼습니다. 무려 8년간의 러브콜을 다니엘 데이 루이스에게 보냈습니다.
스티븐 스필버그는 퓰리처상과 토니상 수상자인 각본가 토니 커쉬너의 섬세한 각본을 들고 다니엘을 찾아갔고, 영화의 원작소설인 퓰리처상 수상 작가 도리스 퀀스 굿윈의 <권력의 조건>을 들고 또 다시 찾아갔습니다.
다니엘 데이 루이스는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에게 몇 번이나 한 말이지만, 도리스가 쓴 책을 읽고 나니 더 이상 거절할 핑계거리가 바닥나고 말았다.”라며 수락 이유를 밝혔습니다. 이러한 선택은 다니엘 데이-루이스를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안기며, 그가 남자 배우 중 가장 특별한 배우임을 전 세계에 다시 한번 알리게 했죠.
* 아카데미 시상식장에서
다니엘 데이-루이스는 아카데미 남우주연상 수상 소감으로 “스필버그 감독은 창의적인 분이다. 자신감이 넘치고 그 에너지를 주변 사람에게 전해준다. 스필버그 감독이 원하는 링컨을 완벽하게 그릴 수 있도록 도움이 되고 싶었다.”라며 감독에게 감사의 뜻을 전했습니다.
무려 8년 간을 고생시킨 것에 비하면 간단한 답변이었지만, 그 만큼 존경의 뜻이 담긴 멘트였던 것입니다.
[그의 대표작 4편 소개]
<프라하의 봄(1988)>
밀란 쿤테라의 소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을 영화화한 이 작품은 1968년 체코의 자유화 개혁과 소련의 침공이 이루어지는 시기의 이야기입니다. 영화의 등장인물에게 ‘프라하의 봄’은 너무나 짧았고 한없이 가벼운 삶을 살고자 하는 그들에게 부닥친 현실은 너무나 길고 무겁습니다.
이 영화에서 다니엘 데이 루이스는 인생을 가볍게 살려고 하는 바람둥이 토마스를 연기합니다. 이즈음 그는 이미 연기 뿐 아니라 걸작을 만들 수 있는 감독을 고르는 눈까지 갖게 된 듯 하지요. 아니, 필립 카우프만을 비롯한 명장들의 눈에 다니엘 데이 루이스가 콕 박히게 된 시점이었다는 게 더 정확할 지도 모릅니다.
<나의 왼발 (1989)>
이토록 소름끼치는 연기가 있을까요? 스크린 속에서의 크리스티(다니엘 연기)는 100분에 가까운 러닝 타임 동안 다니엘이 아니라 진짜 크리스티였습니다. 뇌성마비로 온몸이 뒤틀려 왼발가락 밖에 쓸 수 없는 장애인 크리스티. 곁가지 없이 관객들이 장애인에 대한 편견을 버리고 그들도 정상인과 같은, 정상인보다 더 강인한 열정과 정신을 갖고 있다는 것을 일깨우게 해 준 힘은 오로지 다니엘의 소름끼치는 연기일 겁니다.
순전히 그의 연기력만으로 <나의 왼발>은 20년 동안 장애인에 대한 인식을 바로잡아줄 수 있는 교훈적인 영화로 자리매김하고 있습니다. 분명 캠페인 영화가 아님에도 불구하고도 말이죠. 다니엘 데이 루이스는 이 영화로 생애 첫 번째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수상합니다.
<라스트 모히칸 (1992)>
<나의 왼발> 이후 아르헨티나에서 <뉴저지의 미소>란 영화를 찍은 다니엘 데이 루이스는 그 후 할리우드로 건너가 마이클 만이라는 흥행 감독과 작업을 하게 됩니다. 인디언의 손에 키워진 백인인 ‘호크아이’를 연기하는데 그의 필모그래피 중 가장 대중적으로 인기가 많은 캐릭터가 아닐까 합니다.
그가 마치 종이를 뚫고 튀어나올 것 같던 포스터는 90년대 카페의 장식용으로 절정의 인기를 누렸다고 합니다. 서구인들에게 몰려 퇴락하는 인디언들의 마지막 모습을 잘 담아내기도 했지만 마이클 만 감독은 이 영화를 전형적인 액션 멜로물로 만들었고 다니엘 데이 루이스는 드라마 뿐 아니라 액션 연기도 훌륭하게 소화해낼 수 있다는 걸 증명한 작품입니다.
<아버지의 이름으로 (1993)>
남자 영화 팬들에게 다니엘 데이 루이스는 이 영화로 가장 각인되어 있을 듯 합니다. 영국으로부터 핍박받는 1970년대 아일랜드의 사회적 혼돈을 잘 담았을 뿐더러 남자라면 가질 수밖에 없는 아버지에 대한 애끓는 정을 제대로 묘사한 수작이니 말입니다. 무고하게 15년을 복역한 아일랜드 젊은이 제리 콘론의 분노와 투쟁도 인상 깊었지만 아버지인 조세프 콘론과의 기나긴 오해와 화해의 과정이 가슴에 더 콕 박힙니다.
<나의 왼발>의 짐 쉐리단 감독과 다시 호흡을 맞춘 이 작품으로 다시 한번 강력한 아카데미 남우주연 후보로 거론되었으나 아쉽게도 그해 오스카의 영광은 <필라델피아>의 톰 행크스에게 돌아갔습니다. 그에게 남우주연상을 또 주기엔 텀이 너무 짧았던 걸까요. 하지만 <아버지의 이름으로>에서의 그의 연기는 <나의 왼발>의 그것과 필적할 만큼 강렬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