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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시 창작 10계명 ⑤> 시의 숨결 불어넣기, 리듬, 운율 살리는 법 / 권갑하 시인
<어떻게 하면 좋은 시를 쓸 수 있을까?> 다섯 번째 강의 시간이다.
리듬과 운율이 살아 있는 시조
시를 읽을 때 리드미컬하게 읽히는 시가 있는 반면, 잘 읽히지 않는 시가 있죠.
잘 읽히지 않는다 하여 반드시 나쁜 시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답답한 시보다는 시원하게 잘 읽히는 시가 아무래도 더 좋은 시겠죠.
그렇다면, 읽기에 답답하고 맥이 빠지는 죽은 시가 아닌 가락이 입에 착착 감기고, ‘심장이 펄떡펄떡 살아 숨 쉬는 시’를 쓰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기차 / 이종문(1955~ )
철커덕, 철컥철컥, 기차가 지나가네
초등학교 동창생들 대처로 간 철길 위로
마흔 해 뒤의 기차가 철커덕, 철컥철컥,
철커덕, 철컥철컥, 기차가 지나가네
감꽃이 떨어지는, 주울 이 간 데 없는,
우물도 마른 마을로 철커덕, 철컥철컥,
철커덕, 철컥철컥, 기차가 지나가네
작년에 태어난 아이 단 한 명도 없었다는
영양군 청기면으로 철커덕, 철컥철컥,
철커덕, 철컥철컥, 기차가 지나가네
예순 해 해로한 아내 꽃상여에 오르던 날
오늘은 누가 죽었소? 철커덕, 철컥철컥...
이종문 시인의 <기차>라는 시조인데요. “철커덕, 철컥철컥” “기차가 지나가네” 구절이 반복되면서 절묘한 리듬을 만들어냅니다.
환청처럼 울리는 기차소리의 리듬뿐만 아니라 기차가 지나가는 시간성에 맞춰, 감꽃이 떨어져도 주울 이가 없는, 우물도 마른 마을과 작년에 태어난 아이 단 한 명도 없었다는 마을을 삽화처럼 그려내고, 예순 해 해로한 아내 꽃상여에 오르던 날, 오늘은 누가 죽었소? 묻는 것 같은 기차소리가 이입되면서 이농과 도시화가 불러온 우리 시대의 아픈 농촌의 현실을 공감각적으로 그려낸 멋진 시조입니다.
시를 읽을 때 저절로 율동이 이는 이러한 아름다운 리듬은 같은 구절의 반복 외에 3.4조의 율조에 의해서도 멋지게 창출되고 있습니다.
시의 리듬은 시의 뿌리가 노래였다는 데서 태생적이라 할 수 있죠. 특히 시조(시절가조, 時節歌調)는 명칭 자체가, 그 시대의 가락, 유행가라는 뜻이니 노래와는 더욱 떨어질 수 없는 시 장르라 하겠습니다. 고대 시가는 물론 고려 시대 노래인 <청산별곡>도 다르지가 않습니다.
살어리 살어리랏다
청산(靑山)에 살어리랏다
머루랑 다래랑 먹고
청산(靑山)에 살어리랏다
얄리얄리 얄라성 얄라리 얄라
울어라 울어라 새여
자고니러 울어라 새여
널아와 시름한 나도
자고니러 우니노라
얄리얄리 얄라성 얄라리 얄라
고려속요 가운데 가장 뛰어난 작품으로 평가받는 <청산별곡> 앞부분입니다.
주제는 화자의 관점에 따라 다를 수 있지만, 삶의 고뇌와 비애를 노래한 작품이라 하겠습니다. 3/3/2조의 음수율, 3음보 율격에, 낱말과 어구의 반복, 동일한 후렴구 반복이 만들어내는 리듬이 환상적입니다.
무엇보다 우리말이 만들어내는 빼어난 음악성에 감동하게 되죠.
음악성을 잃어가고 있는 현대시
그런데, 오늘날 우리 현대시는 이런 매력적인 음악성을 잃어가고 있다는 게 중론입니다. 시와 노래가 한 몸이던 시가문학이 근대에 이르러 분리되고 또 활자 중심의 현대시에서 이미지가 강조되면서 시의 운율, 리듬이 무시되고 있다는 지적입니다.
시가 쓸데없이 길어지고 또 재미를 잃고 있는 것도 리듬을 잃은 데 그 원인이 있지 않나 생각됩니다. 그런데, 현대시가 이미지를 중시한다 하여 리듬을 무시해도 되는 것으로 오해는 경우가 있는데요. 하지만 그렇지가 않습니다.
리듬은 시의 숨결과 같다
사람이 숨을 쉬지 않으면 살 수 없듯이 시도 리듬을 잃으면 죽은 시와 다름없으니까요.
시가 산문과 다른 점은 우선 행갈이에 있는데요. 행을 가르는 의미를 이승훈 전 한양대 교수는 하나는 리듬 때문이고 다른 하나는 리듬이 함축하는 의미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산문시라 해도 산문과는 다른 훨씬 정교하고 내밀한 호흡이 있고 시의 분위기나 의미에 어울리는 음성적 배려가 있다는 뜻인데요. 이러한 리듬(rhythm)이 바로 율동이고, 운율입니다.
운율은 비유와 함께 시의 가장 기본적인 요소입니다. 운율을 어떻게 운용하느냐에 따라, 다시 말해 행과 연의 구분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시가 달라집니다. 특히 소리의 반복은 읽고 듣는 사람에게 상당한 심리적 효과를 주며, 그것이 규칙성을 지닐 때 정서적 효과는 더욱 큽니다. 시의 운율은 일반적으로 리듬을 가리키지만, 경기대 이지엽 교수는 말소리의 모든 자질은 물론 호흡을 쉬는 휴지와 의미, 행을 나누는 것, 절의 구분, 구두점의 종류 및 유무, 심지어는 한글과 한자의 시각적 효과에까지 시의 운율이 불가분의 관계를 갖는다고 말합니다.
운율(韻律)
운율(韻律)은 압운 또는 라임rhyme을 뜻하는 ‘운’과 율격 메타meter를 뜻하는 ‘율’을 아우르는 말입니다.
압운은 행의 처음에 들어가는 두운, 행의 가운데 들어가는 요운, 끝에 들어가는 각운으로 나뉘는데, 우리 시는 압운의 요소가 매우 약한 편입니다.
다만, 종결어미인 각운의 반복이 가져오는 음성적 효과의 운율미는 상대적으로 크다고 하겠습니다.
“해야/ 솟아라 // 해야 / 솟아라//
말갛게 / 씻은 얼굴 // 고운 해야 솟아라 //”
-박두진 <해> 앞부분
그런 땅, 그런 나라에
어머니가 계셨네(...)
맨 먼저 이곳에 와서
고개를 숙이네
-이우걸 <꺼지지 않는 불꽃> 종장 부분
박두진의 <해>에서 ‘~라’의 종결어미 반복이 단호하고 힘찬 느낌을 준다면, 이우걸의 시조에서 ‘~네’의 종결어미 반복은 유연하고 관조적인 분위기를 형성한다. 일반적으로 시에 많이 쓰이는 ‘~다’ 종결어미의 반복은 분명하고 객관적인 시선을 부여한다.
이처럼 각운이 주는 음성적 효과는 매우 크다. 시에서는 문법에서 벗어난 축약어, 조어 등 소위 ‘시적 허용’도 운율적 효과를 고려한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우리 어머니’를 ‘울엄니’로, ‘먼’을 ‘머언’으로 ‘하얀’을 ‘하이얀’으로 표현하는 경우가 그런 예이다.
율은 음수율, 음보율, 내재율 등으로 나눈다.
우리 시에서는 강약, 고저, 장단의 율격은 미약한 편이다. 우리 시의 운율 체계에 대한 논의는 1920년대 시조 부흥운동 당시 시조 형식과 창작방법을 검토하는 과정에서 조윤제에 의해 제시된 음수율이 시작이었다.
음수율은 글자나, 구, 행 구성에서 일정한 음절을 배열하는 율격으로, 4.4조(3.4조)가 대표적이다.
시조와 가사, 민요, 일본에서 도입되었다는 7.5조는 물론 현대시에서도 중요한 운율 요소로 작용하고 있다. 그런데 1950년대 말부터는 음수율에 대한 반론이 제기되어 정병욱 등에 의해 음보율이 제시되었다.
시의 형태로 보면, 음절이 모여 음보가 되고, 음보가 모여 행이 되고, 행이 모여 연이 되고, 연이 모여 한 편의 시가 되는 구조다.
정형시 시조는, 음절이 모여 음보(音步)가 되고, 2개의 음보가 결합해 구(句)가 되고, 2개의 구가 결합해 장(章)이 되며, 장이 3개 모여 한 수(首)의 시조가 되는 구조입니다.
음보율은 어절이 끝날 다음에 오는 휴지(休止)에 의해 구분되는 율격적 단위를 말한다. 보통 3음절 또는 4음절이 휴지의 한 주기로 설정되는데, 시조에서는 ‘등가성’이라는 용어로 한 음보 당 동일한 시간성을 부여한다.
기본은 4음절 평음보이고, 그에 부족하면 소음보, 초과되면 과음보라 한다.
태산이(3:소) / 높다하되(4:평) / 하늘 아래(4:평) / 뫼이로다(4:평)
오르고(3:소) / 또 오르면(4:평) / 못 오를 리(4:평)/ 없건 만은(4:평)
사람이(3:소) / 제 아니 오르고(6:과)/ 뫼만 높다(4:평)/하더라(3:소)
소/평/소/평
소/평/소/평
소/과/평/소
이에 따르면 시조 한수는 초장과 중장은 ‘소평소평’ 음보 구조이고 종장의 음보는 ‘소과평소’의 전환과 마무리의 구조다.
자유시는 정형의 구조가 아니고 복잡하기 때문에 음수율이나 음보율의 일정한 적용은 불가능합니다. 하지만 자유시에서도 음보율은 정서적 상태와 밀접한 관련을 갖습니다.
2음보는 경쾌하고 활달한 정서를 줍니다.
“해야/ 솟아라 // 해야 / 솟아라”처럼 박두진의 <해>는 2음보 율격으로, 경쾌하고 힘찬 리듬감을 보여줍니다.
“아리랑 /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 고개를 / 넘어간다”
<아리랑>은 3음보 율격입니다. 이런 3음보는 서정적이고 부드러운 정서를 표출합니다.
“태산이 / 높다하되 / 하늘 아래 / 뫼이로다”
시조 형식의 4음보 율격은 장중하고 안정된 정서를 표출하기에 적합한 운율 구조이죠.
자유시 탄생은 19세기 후반, 프랑스에서는 J. 라포르그, 영국에서 T.S 엘리엇, 미국에서는 W. 휘트먼 등에 의해 기존 시의 운율을 깨뜨리는 형태로 시작되었습니다.
이 자유시 문장 안에 깃들은 잠재적 운율이 내재율이죠.
앞에서 읽은 박두진의 <해>도 그런 산문시 속의 내재율로서 2음보 율격이라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현대시는 고정된 율격이 아닌 매번 새롭고 자유로운 율격을 창출합니다. 그런 만큼 내재율을 한마디로 설명하기란 쉽지가 않습니다.
음보율 만큼 중요한 현대시의 행과 연의 운용
현대시에서 음보보다 상위 체계에서 운율에 영향을 주는 요소는 행과 연입니다. 시의 의미와 개성을 부여하기 위해 매번 새롭게 창조되는 것이 ‘연과 행’인데, 그만큼 운용이 다양하죠.
행과 연은 시를 끊고 이어 읽는 구분이 되는 기준인 만큼 시 낭송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줍니다. 자유시라도 정지용의 시가 일정한 규칙으로 고전적인 운율 미학을 따른 편이라면, 서정주의 시는 들쑥날쑥 변화무쌍한 운율을 구사한 편이죠.
행과 연 구분에서 특이한 운율 운용은 의미를 강조하고 긴장감을 표현하기 위해 구사되는 ‘시행의 엇붙임’ 경우입니다.
전화벨이 울렸다. 계속
전화벨이 울리고 있다
-이근석, <여름의 돌>(2021 동아일보 신춘문예 당선작) 끝 구절
위 시에서 “계속 / 전화벨이 울리고 있다” 구절의 앞부분 ‘계속’이 앞의 시행 꼬리에 붙는 방식이 ‘엇붙임’ 기법입니다. 바로 이러한 ‘시행의 엇붙임’은 의미를 강화하고 운율의 속도감을 높이기 위해 의도적으로 행을 분절하는 기법입니다.
시의 운율을 효과적으로 살리는 방법
그렇다면 시의 리듬, 시의 운율을 어떻게 효과적으로 살릴 수 있을까요? 이지엽 교수는 다음을 이야기 한다.
운율은 ① 동일 음운 반복, ② 동일 음절수의 반복, ③ 의성어, 의태어의 반복, ④ 통사구조의 반복 등 같거나 비슷한 짜임의 문장을 반복, 사용함으로써 나타난다고 했다.
철과 오크 / 송승언(1986~ )
수십 명의 나무꾼들은 수백 번의 도끼질을 할 수 있고
수천 그루 나무를 수만 더미 장작으로 만들 수 있고
빛은 영원하다는 듯이 장작을 태울 수 있고
장작은 열 개비가 적당하고 그 불이면 영원도 밝힐 수 있고
(하략)
송승언 시인은 2011년 <현대문학>으로 등단한 젊은 시인인데요. 미래파의 난해한 흐름도 보이지만, 반복을 통한 리듬감의 생성으로 독자들의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시인입니다.
자유시로 내재율이긴 하지만, <철과 오크> 시편은 ‘있고’라는 각운에서 동일 음운의 반복을 통한 시의 리듬감을 보여줍니다.
입술이 붉은 열여섯 / 오봉옥(1961~ )
그녀는 동갑내기였다 입술이 붉은 열여섯
그녀는 꽃봉오리였다 하루라도 빨리 피고 싶어 안달하는
그래서 그녀는 날 숨막히게 했다
밤 몰래 담 넘어 올래?
초생달처럼 와선 문고릴 두 번만 잡아다닐래?
하여 치렁치렁 늘어트린 긴 머리칼 한쪽으로 묶어내리고
오자마자 나 어때 어때 하며 안겨들던 그녀는
고작 열여섯이었다 꽃봉오리였다
그녀는 동갑내기였다 입술이 붉은 열여섯
그래서 그녀는 날 숨막히게 했다.
제 오라비가 쓸 신혼방이라며
쉬쉬하며 끄을고 가기도 했던
장롱 속의 새 이불 꺼내며
한 번도 쓰지 못한 그 이불 꺼내며
더럽히면 안 돼 안 돼 하며 목부터 끌어안던 그녀는
내가 미처 사내가 아니어서
내가 미처 사내가 아니어서
“야‘ 하고 소리를 지르기도 했던 그녀는
시의 마지막에서 웃음을 참을 길 없는 반전이 압권인 오봉옥의 <입술이 붉은 열여섯>은 전라도 사투리의 묘미에 내용은 물론 운율적 특성도 잘 살린 명작입니다.
동일 음절, 동일 구절의 반복 등 운율의 운용이 무척 자연스럽고 매력적입니다. “그녀는 동갑내기였다 입술이 붉은 열여섯” “그래서 그녀는 날 숨막히게 했다” “내가 미처 사내가 아니어서” 같은 구절의 반복과 ‘~였다’ ‘~했다’의 과거시제 종결어미의 반복도 내재율의 멋질 리듬을 만들어 냅니다.
“유사한 어구의 반복이 거의 모든 시에 나타나는 점도 그의 시를 노래에 가깝게 만든다. 반복은 리듬을 유지하기 위한 중요한 시적 수사다. 그의 시에서 잦은 반복의 사용은 리듬을 살리면서 찢겨진 삶들을 위무하는 주술적 효과까지 얻어내는 경우가 많다.”
해설을 쓴 안도현 시인의 찬사인데요. 안 시인의 말대로 오봉옥의 시는 전라도 말의 거침없음과 반복이 주는 리듬감으로 한 편의 아름다운 노래가 되어 독자의 가슴을 적십니다.
참외 / 정의홍(1944~1996)
무엇에 반항하듯
불끈 쥔 두 주먹들이 무섭다.
그녀의 젖무덤처럼 익어
색만 쓰는 그 음탕함도 무섭다
꺾어버릴 수가 없다.
모르는 척 팽개칠 수도 없다
아프다 너무 아프다
맞붙어 속삭이는
저 노오란 비밀의 이야기가 아프다
타오르는 불길 속에
마구 벗어던진
그녀의 속옷 같은 잎들의 눈짓
오-눈짓이 무섭다
저들은 무언가 외칠 것만 같다
불끈 쥔 주먹을 휘두르며
일어설 것만 같다
저들은 무엇을 외칠 것만 같다
무섭다 세상 모든 것이 무섭다
익을대로 익은 내 생각의
빛깔도 무섭다.
‘무섭다’라는 언어의 반복과 조응을 이루는 ‘없다’나 ‘아프다’라는 단정적인 언어, 이들 사고를 뒷받침하는 “불끈 쥔 주먹” “타오르는 불길”같은 격정적인 언어들이 시를 강열하게 만들고 있다.
‘무섭다’라는 언어의 반복과 격정적이고 육감적인 이러한 어휘의 효과적인 배열이 ‘무섭다’라는 인식의 통일성을 가져온다고 이지엽 교수는 말한다.
‘~다’로 끝나는 종결어미의 반복인 각운 또한 분명하고 객관적인 정서를 부여하고 있죠.
현대시와 운율
오늘날 자유시는 리듬에서 자유로워지려는 경향이 강합니다.
2000년대 등장한 미래파 시는 아예 ‘리듬의 소멸’을 추구하는 경향을 보이기도 했죠. 하지만 앞에서 살펴보았듯이, 좋은 시, 독자들의 사랑을 받는 시는 시의 음악성, 리듬, 운율을 잘 살린 시라고 하겠습니다.
문학평론가 이혜원은 전통적인 리듬이라 하여 무조건적인 부정이나 해체를 하려 하기보다는 전통적인 운율과의 부단한 교섭 속에서 새로운 운율을 찬조해가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강조합니다.
운율을 무시한 것이 자유로운 자유시의 지향에 상응한다는 잘못된 착각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지적이죠.
그렇습니다. ‘내용과 의사 전달에만 급급한 조각난 시’가 아닌 리듬이 살아 잇는 운율의 재창조 또한 시 창작에서 중요한 요소임을 인식해야 하겠습니다.
마지막으로 이종문 시인의 시조 <깨가 쏟아지게 살게>를 통해 우리말의 맛과 멋을 느낄 수 있는 시조 형식의 멋진 리듬과 운율의 묘미를 느껴보시죠.
깨가 쏟아지게 살게 / 이종문(1955~ )
익어 간다는 것은 매 맞을 날 온다는 것
익기가 겁이 나네, 매 맞기가 무섭다네
하지만 매를 맞아야 깨가 쏟아지는 것을
그래, 익자 익자, 매 맞을 날 기다리며
어차피 맞을 거면 속 시원히 맞고 말자
아무렴 사랑의 맨데 고까짓 거 못 맞을까.
우와! 때가 왔다, 와 이렇게 좋노 몰라
어르듯이 달래듯이 찰싹찰싹 때려다오
깨알이 찰찰 쏟아져 깨가 쏟아지게 살게
<출처 : 권갑하 감성TV. 좋은 시 창작 10계명 ⑤> 시의 숨결 불어넣기, 리듬, 운율 살리는 법! / 권갑하 시인, 수필가, 문학평론가
https://youtu.be/KvkJJCjgpNA
<참고 서적>
이지엽, 「현대시 창작 강의」(2006)
이승훈, 「이승훈의 알기쉬운 현대시작법」(2004)
이혜원, <현대시의 운율> 「현대시론」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