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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쁨을 회복할 그날 16:16~22
16 조금 있으면 너희가 나를 보지 못하겠고 또 조금 있으면 나를 보리라 하시니
17 제자 중에서 서로 말하되 우리에게 말씀하신 바 조금 있으면 나를 보지 못하겠고 또 조금 있으면 나를 보리라 하시며 또 내가 아버지께로 감이라 하신 것이 무슨 말씀이냐 하고
18 또 말하되 조금 있으면이라 하신 말씀이 무슨 말씀이냐 무엇을 말씀하시는지 알지 못하노라 하거늘
19 예수께서 그 묻고자 함을 아시고 이르시되 내 말이 조금 있으면 나를 보지 못하겠고 또 조금 있으면 나를 보리라 하므로 서로 문의하느냐
20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는 곡하고 애통하겠으나 세상은 기뻐하리라 너희는 근심하겠으나 너희 근심이 도리어 기쁨이 되리라
21 여자가 해산하게 되면 그때가 이르렀으므로 근심하나 아기를 낳으면 세상에 사람 난 기쁨으로 말미암아 그 고통을 다시 기억하지 아니하느니라
22 지금은 너희가 근심하나 내가 다시 너희를 보리니 너희 마음이 기쁠 것이요 너희 기쁨을 빼앗을 자가 없으리라
구하고 응답받는 기쁨 16:23~24
23 그날에는 너희가 아무것도 내게 묻지 아니하리라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무엇이든지 아버지께 구하는 것을 내 이름으로 주시리라
24 지금까지는 너희가 내 이름으로 아무것도 구하지 아니하였으나 구하라 그리하면 받으리니 너희 기쁨이 충만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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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말씀 요약]
제자들은 조금 있으면 예수님을 보지 못하겠고, 또 조금 있으면 예수님을 보리라는 말씀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제자들이 지금은 슬퍼하지만 다시 예수님을 볼 때 그들의 기쁨을 빼앗을 자가 없을 것입니다. 지금까지는 예수님 이름으로 아무것도 구하지 않았으나, 구하면 받고 기쁨이 충만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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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쁨을 회복할 그날 16:16~22
성도에게 근심은 잠깐이고 기쁨은 영원합니다. “조금 있으면 나를 보지 못하겠고 또 조금 있으면 나를 보리라.”라는 말이 세 번 반복됩니다(16~17, 19절). ‘보지 못하겠고…보리라’에서 ‘보다’라는 동사는 서로 다른 헬라어를 사용해 미묘한 차이를 줍니다. 전자의 ‘보다’(헬라어로 ‘테오레이테’)는 외적으로 보이는 것에 강조점이 있습니다. 후자의 ‘보다’(헬라어로 ‘옵세스테’)는 내적 깨달음에 강조점이 있습니다. ‘조금 있으면’ 제자들은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을 목격하고, 보혜사 성령이 오심으로 예수님의 존재를 깨닫게 될 것입니다. 여자가 태어난 아기로 인해 해산의 고통을 잊고 기뻐하는 것처럼(21절), 예수님을 다시 볼 때에 제자들은 기쁨을 회복할 것입니다(22절). 성도의 기쁨은 주님이 재림하시는 그날에 완전해집니다.
● 더 깊은 묵상
제자들의 근심이 기쁨으로 변하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근심 뒤에는 기쁨이 오기에 내가 기꺼이 인내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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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하고 응답받는 기쁨 16:23~24
‘그날’에는 예수님께 아무것도 묻지 않을 것입니다(23절). ‘그날’은 보혜사가 오시는 날을 가리킵니다. 보혜사가 오셔서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에 대해 모든 것을 깨닫게 하시면, 제자들은 더는 물을 것이 없어집니다. 한편 예수님은 (그날에) 무엇이든지 구하는 것을 하나님이 ‘예수님 이름으로’ 주신다고 약속하십니다(23절). 그러므로 예수님 이름으로 하나님께 도움을 구하면 응답받고 기쁨이 넘치게 됩니다(24절). 성도는 예수님 이름으로 간구할 때 ‘믿음의 주’이신 예수님과 굳건한 관계를 유지하고 그분 안에서 은혜와 기쁨을 누릴 수 있습니다.
● 더 깊은 묵상
무엇이든 ‘예수님 이름으로’ 구할 때 하나님이 응답해 주시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주님이 내게 주신 응답의 기쁨은 무엇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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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속을 믿는 삶
대한민국 사이비 종교를 주제로 한 다큐멘터리가 TV에서 방영되어 사회적 파장을 일으킨 일이 있었습니다. 저 역시 그 프로그램을 보면서, 상식 밖의 일들을 마구 행하는 이단들의 모습에 매우 놀랐습니다. 문제는 사람들이 그런 이단과 기독교 교회를 동일시하여 바라본다는 것입니다. 진짜가 아닌 것들이 진짜인 것처럼 판을 치고, 본질이 아닌 것들이 기독교를 뒤덮으면서, 교회를 오해하고 손가락질하는 이들이 너무나 많아졌습니다. 어느 세미나에서 한 신학생이 물었습니다. “지금처럼 기독교가 사람들 사이에서 왜곡되고 비난받았던 때가 있었을까요?” 저는 복음을 전하는 그리스도인에게 세상이 우호적이었던 때는 없었다고 대답해 주었습니다. 같은 환경이라도 어떤 이에게는 걸림돌이 되고 다른 이에게는 디딤돌이 되듯, 환경을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따라 결과는 천지 차이가 된다고 말해 주었습니다.
기독교를 가리켜 ‘약속의 종교’라고 말합니다. 주님은 환경을 바라보라 하지 않으시고, 그분의 약속을 믿으라 말씀하십니다. 약속은 환경보다 더 무게가 있습니다. 주님의 약속을 믿을 때 우리는 환경 때문에 넘어지지 않을 수 있습니다.
주님은 늘 위기 가운데서 기회를 만드십니다. 이를 2,000년 교회 역사가 증명합니다. 지금이 우리가 복음을 전할 최고의 기회입니다. 우리가 신경 써야 할 것은 환경이 아니라 오늘 주님이 나를 어디로 이끄시는가 하는 것입니다.
다시, 교회 / 김병삼_ 두란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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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젊묵상:요한복음 16장 21절
주님을 믿는 자는 기쁨으로 살아야 합니다. 주님은 해산하는 여자를 비유로 들어 우리의 근심과 기쁨을 설명하십니다. 이 비유는 창세기에서 '여자가 해산한 아이가 원수의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라는 예언에 기원합니다(창 3:15). 여자가 해산할 아이는 바로 예수님입니다. 구약의 선지자들도 해산과 출산의 비유로 예수님의 탄생을 예언했습니다(시 2:7; 사 7:14 등). 우리는 이 땅에 오신 하나님 아들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근심이 기쁨으로 변화하는 놀라운 일을 경험합니다.
주님의 영원한 보상을 얻고 누리는 길은 이기심을 버리고 그분이 시키신 일에 순종하는 것이다. - 브루스 월킨슨
오늘의 기도
주님, 저희의 근심이 도리어 기쁨이 될 것이라는 주님의 약속이 얼마나 큰 위로가 되는지요. 날마다 저의 간구를 들으시는 주님을 생활 속에서 경험하며 주님께 한 걸음씩 더 나아가길 원합니다. 부활의 기쁨을 주신 주님의 이름을 부르며, 시들지 않는 기쁨을 누리게 하소서.
‘나’에게 말씀하신 것을 적용함
이해가 되지 않고, 적용이 되지 않는 주님의 말씀들을 삶 속에서 깨달아 가고, 주님을 더 깊이 알아가기 위해 노력하자
우리를 불러 주시고, 우리를 당신의 자녀 삼아 주시고, 우리로 당신의 일꾼이 되게 하신 것에 감사하고, 기뻐하며 하루하루를 살아가도록 하자
늘 주님께 구하고, 주님의 도우심을 구하며, 주님께서 베풀어 주시는 은혜 안에 거하도록 하자
요한목음16:16-24절
우리에게 주시는 교훈은
예수님의말씀 너희가 나를 보지 못하겠고
조금 있으면 나를 보리라는 말씀을
이해 하지 못한 제자들에게
너희 근심이 기쁨이 될것을 말씀합니다
예수꼐서 제자들에게
다음의 말씀을 하십니다
16절입니다
"조금 있으면 너희가 나를 보지 못하겠고
또 조금 있으면 나를 보리라 하시니"
그런데 제자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이해하지 못하고
뿐만 아니라 근심합니다
예수님은 근심하는 제자들에게
20절하반절에
"너희는 근심하겠으나 너희 근심이 도리어 기쁨이 되리라"
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의 너희가 나를 보지 못한다는 말씀은
예수님의 십자가를 말하며
잠시 후 본다는 말씀은
예수님의 부활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로
제자들은 근심하겠지만
예수님의 부활하심으로
제자들은 기뻐할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은 예를들어 해산한 여자를
예를 드십니다
21절입니다
"여자가 해산하게 되면 그때가 이르렀으므로
근심하나 아기를 낳으면 세상에 사람 난 기쁨으로
말미암아 고통을 다시 기억하지 아니하느니라"
여자분들이 임신을 하고
해산을 앞두고
해산할 날이 되어 해산하면
아기를 보며 근심은 사라지고
기쁨이 충만합니다
예수님의 가져올 기쁨이
그런 것입니다
우리에게 근심이 있습니까?
우리는 해산한 여자와 같습니다
예수님은 해산한 여자와 같은 기쁨을 주실겁니다
곧 아기를 해산하면 아기로 인해 기뻐하는
기쁨을 주실 것입니다
그래서 현재의 근심만 바라볼게 아니라
해산한 여자를 생각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이어서
23절 하반절에
"너희가 아무것도 묻지 아니리라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무엇이든지 아버지께 구하라"
예수님의 말씀은
앞의 말씀과 연관이 됩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시고
또 성령 하나님을 보내어 주실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님께 묻지 말고
예수님의 이름으로 구하라는 것입니다
묻는다는것은
예수님의 십자가로 인하여
예수님을 못 볼때를 말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부활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묻지 말고
예수님의 이름으로 구하라는 말씀입니다
물으면, 그리고 묻기만 하면
진보가 없습니다
그러나 구하면 받게 될 것이기에
기쁨이 충만할 것입니다
24절에
"지금까지는 너희가 내 이름으로 아무것도 구하지
아니하였으니 구하라 그리하면 받으리니
너희 기쁨이 충만하리라"
우리에게는 근심이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말씀하신
우리는 해산할 여인임을
기억해아 합니다
앞의 근심은 잊고
아기로 기쁨이 충만할것입니다
묻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그보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구하는 자들이 됩시다
그리하면 기쁨이 충만할것입니다
✔ 누릴 수 있는 복은 무엇입니까?
➲ 함께 계셔서 맡겨진 사명을 감당토록 하십니다(16~18절).
예수님은 ‘...조금 있으면...’ 예수님을 볼 수 없고, ‘...조금 있으면...’예수님을 다시 볼 수 있을 것(16절)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임박한 십자가에서의 죽으심과, 부활하심으로 제자들을 다시 보게 되는 것을 가리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이 말씀은 제자들에게는 수수께끼처럼 들렸나 봅니다.
‘...무슨 말씀이냐... 조금 있으면이라 하신 말씀이 무슨 말씀이냐, 무엇을 말씀하시는지 알지 못하노라...’(17~18절). 제자들의 영적 무지함은 계속되어 왔으나 이제는 그들 스스로가 무지함을 고백합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의 부활을 눈으로 직접 목격하게 될 것입니다. 그런 후에 성령을 받고 그들은 예수님의 증인으로 다시 태어나게 됩니다. 제자들은 부활하신 예수님의 손과 옆구리를 보고 믿었으나 예수님께서는 보지 않고 믿는 자가 복되도다(20:29)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어떤 상황에서도 내 자신을 찾아와 주시고, 함께 하시고, 깨닫게 해 주십니다. 슬픔을 기쁨으로 바꿔주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어떤 상황과 처지에 있다 할지라도 낙심하거나 절망하지 말아야 합니다. 고난 받으시고, 부활하신 예수님이 내 자신의 모든 상황을 이해하시니 내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은 예수님만을 의지하며 살아가면 되는 것입니다. 내 자신의 무지함을 꾸짖지 않으시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자신과 함께 계셔서 맡겨진 사명을 끝까지 감당하도록 역사하시는 예수님께 나아가 은혜와 지혜를 더욱 간절히 구하는 삶을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 함께 계셔서 영원한 기쁨을 누리도록 하십니다(19~22절).
의문이 가득한 제자들에게 예수님은 다시한 번 하셨던 말씀(16절)을 언급하십니다. 그리고 이어서 ‘조금 있으면...’ 일어날 사건이 제자들은 애통하고, 세상은 기뻐하는 일이 될 것이고, ‘조금 있으면...’ 제자들의 근심이 기쁨이 될 것(20절)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의 근심이 마치 해산하는 여인의 고통으로 비유(21절)하십니다. 제자들의 현재의 상태는 산모가 산통을 하듯이 근심과 고통 중에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다시 오실 터인데, 그때 그들은 기뻐할 것입니다.
예수님의 죽음으로 인한 세상의 기쁨은 일시적인 것이지만, 이와는 대조적으로 예수님의 부활로 인한 제자들의 기쁨은 언제까지나 지속 될 것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제자들의 기쁨은 세상이 주는 기쁨과는 다른 것으로 아무도 그 기쁨을 빼앗을 수 없습니다(22절).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죽음으로 영생을 얻었다는 것은 세상 가운데서 마땅히 기뻐해야 할 이유가 됩니다. 다시 사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영원한 기쁨을 주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땅을 살아가면서 핍박을 받을 수 있고, 이유를 알 수 없는 고난을 겪을 수도 있겠으나, 부활의 소망으로 인하여 인내하며 기뻐할 수 있음을 고백합니다.
십자가와 부활의 신앙을 가질 때, 세상이 빼앗을 수 없는 기쁨을 영원히 누릴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고난 당할 때에도 인내할 수 있는 힘을 얻게 됩니다. 성령이 임하시면 ‘...시온에서 슬퍼하는 자에게 화관을 주어 그 재를 대신하며 기쁨의 기름으로 그 슬품을 대신하며 찬송의 옷으로 그 근심을 대신....’(사 61:3)할 것입니다. 늘 언제나 함께 계셔서 영원한 기쁨을 누리도록 역사하시는 우리 주님을 영원토록 찬송하며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 함께 계셔서 기도의 응답을 경험토록 하십니다(23~24절).
예수님의 부활이 제자들에게 가져다 주는 기쁨은 진리를 이해하는 기쁨입니다. 진리의 성령이 제자들을 빛 가운데 인도하여 영적인 깨달음을 주실 것이므로 제자들은 더이상 예수님께 질문하지 않아도 됩니다(16~17절). ‘조금 있으면...’등과 같은 소소한 요구가 필요 없게 된다는 것입니다(23절a). 본질을 붙잡는데 충실해야 합니다.
‘...너희가 무엇이든지 아버지께 구하는 것을 내 이름으로 주시리라...’(23절b).. 제자들은 이제 예수님의 이름을 의지하여 하나님과 직접적으로 교통할 수 있게 되는데, 이는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이 가져다 준 축복의 선물입니다. ‘...구하라 그리하면 받으리니 너희 기쁨이 충만하리라...’(24절)...
예수님 안에 거하여 예수님의 이름으로 구하면 하나님께서 즉각적으로 응답하십니다(마 7:7). 이처럼 하나님께 직접 구하고 직접 응답받음을 통하여 제자들의 기쁨은 충만하게 될 것입니다.
기도의 응답은 일회적인 사건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을 믿고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는 한 내 자신이 무엇을 구하든지 응답 될 것입니다. 예수님은 언제까지나 내 자신과 함께 하실 것이며, 내 자신을 위하여 ‘새 언약의 중보자’(히 9:15)로서의 역할을 계속적으로 감당하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내 안에 계신 성령님을 의지하여 하나님의 뜻을 깨달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예수님의 이름으로 구하는 모든 것을 주시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을 붙잡고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늘 나와 함께 계셔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한 것들이 응답됨으로 충만한 기쁨을 누릴 수 있다는 소망을 가지고, 믿음으로 오늘을 살아갈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오늘도 성령님의 위로하심을 통해 흐르는 애통의 눈물을 기쁨의 웃음으로 바꾸실 은혜를 기대하며 살아갈 뿐만 아니라 죽음을 이기시고 부활하신 예수님을 바라보며 충만한 기쁨을 누릴 수 있다는 소망을 가지고 살아갈 수 있기를(요 16:16~24절)...
예수님은 제자들이 이해하지는 못했지만 부활의 기쁨을 말씀하셨습니다.
위로받는 기쁨
예수님은 당신이 아버지께로 가시면 보혜사 성령을 보내주시겠다는 약속으로 제자들을 위로하십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그 말씀을 듣고 어리둥절해 하면서 서로 무슨 뜻인지를 묻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3년이나 따라다녔지만 세상적 메시아에 관심이 있을 뿐 아직 십자가와 부활에 관한 주님의 말씀을 믿지 못합니다.
다 이해하지 못할지라도 말씀을 믿고 따라가는 사람이 진정한 예수님의 제자이며 위로받는 기쁨을 누릴 수 있습니다.
다시 보는 기쁨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조금 있으면 당신을 보지 못하고 또 조금 있으면 다시 보리라고 하시고, 또 대조법을 사용하여 조금 있으면 너희가 곡하고 애통하지만 조금 있으면 다시 기뻐하리라고 말씀하십니다.
이처럼 예수님은 두 가지 상황을 대조하며 반복하여 설명함으로써 제자들이 예수님의 죽으심으로 갖게 될 근심과 부활로 인한 기쁨을 강조하십니다.
그리고 그 기쁨은 빼앗을 자가 없는 영원한 기쁨이라고 하십니다.
기도 응답의 기쁨
예수님의 약속은 조금 있으면 다시 보는 기쁨에서 제자들이 예수님의 이름으로 구하는 것을 얻게 되는 기쁨으로 이어집니다.
그리고 성도들은 성령님을 통해 하나님의 풍성한 계시를 받기 때문에 예수님께 아무 것도 물을 필요가 없으며, 무엇이든지 예수님의 이름으로 구하는 것은 다 이루어지는 특권을 약속받았습니다.
영원한 기쁨과 풍성한 영적 지식과 기도응답은 하나님의 자녀들이 누리는 특권인 것입니다.
주님은 제자들의 마음에 일어난 근심과 두려움을 아셨습니다.
그래서 변치 않는 영원한 약속을 주셔서 그들의 마음을 격려하셨습니다.
제자들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가 모든 상황 속에서 주님이 말씀하신 기도응답의 약속을 붙들고 믿음으로 나아가야 하겠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의 고난과 부활을 앞두시고 조금 있으면 너희가 나를 보지 못하겠고 또 조금 있으면 나를 보리라 하시며 또 내가 아버지께로 가리라 하시니, 제자들이 이해하지 못하여 조금 있으면 이라 하심은 무슨 뜻이며 아버지께로 감이라 하심은 무슨 뜻인지 서로 물었습니다
그러나 모르는 사람끼리 물으면 어떤 답도 얻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주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는 곡하고 애통하겠으나 세상은 기뻐하리라"(요16:19~20)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실 것과 그것을 세상이 기뻐할 것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세상은 주의 죽으심과 주의 종들의 죽음을 기뻐합니다 "두 선지자가 땅에 사는 자들을 괴롭게 한 고로 땅에 사는 자들이 그들의 죽음을 즐거워하고 기뻐하여 서로 예물을 보내리라"(계11:10) 그러나 우리는 애통할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 감사할 것은 우리의 애통도 복이 되게 하시기 때문입니다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마5:4)
그래서 하나님은 그 애통과 근심을 기쁨으로 역전시켜 주실 것입니다 "너희는 근심하겠으나 너희 근심이 도리어 기쁨이 되리라"(요16:20~21) 참으로 주께서 십자가를 지신 것은 우리에게 생명을 주실 뿐만 아니라, 기쁨을 주시려는 것입니다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빌4:4)
그러나 십자가가 먼저이고 그 후에 영광인 것처럼 근심이 먼저이고 그 후에 기쁨입니다 "지금은 너희가 근심하나 내가 다시 너희를 보리니 너희 마음이 기쁠 것이요 너희 기쁨을 빼앗을 자가 없으리라"(요16:22) 이 기쁨은 주께서 기뻐하시는 그 기쁨이며,
억지 기쁨이 아니라 참을 수 없는 기쁨입니다 "그가 너로 말미암아 기쁨을 이기지 못하시며 너를 잠잠히 사랑하시며 너로 말미암아 즐거이 부르며 기뻐하시리라"(습3:17) 참으로 조금 있으면, 잠시 후면, 주께서 이러한 주의 기쁨을 우리에게 충만하게 하실 줄 믿습니다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어 너희 기쁨을 충만하게 하려 함이라"(요15:11) 뿐만 아니라,
우리의 기도에 응답하심으로 현재의 기쁨도 충만케 하실 줄 믿습니다 "구하라 그리하면 받으리니 너희 기쁨이 충만하리라"(요16:23~24)
마음의 즐거움은 양약이라도 심령의 근심은 뼈를 마르게 하느니라.(잠 17:22)
그러므로 주 만군의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시온에 거주하는 내 백성들아 앗수르가 애굽이 한 것 처럼 막대기로 너를 때리며 몽둥이를 들어 너를 칠지라도 그를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오래지 아니하여 네게는 분을 그치고 그들은 내 진노로 멸하리라 하시도다.(사 10:24~25)
이것을 너희에게 이르는 것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요 16:33)
우리가 지금은 거울로 보는 것 같이 희미하나 그 때에는 얼굴과 얼굴을 대하여 볼 것이요 지금은 내가 부분적으로 아나 그 때에는 주께서 나를 아신 것 같이 내가 온전히 알리라.(고전13:12)
그러므로 우리가 낙심하지 아니하노니 우리의 겉사람은 낡아지나 우리의 속사람은 날로 새로워지도다.(고후 4:16)
그가 낙원으로 이끌려 가서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말을 들었으니 사람이 가히 이르지 못할 말이로다.(고후12:4)
우리가 이것을 씀은 우리의 기쁨이 충만하게 하려 함이라 - 요한일서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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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가운데 지금도 역사하시고 섭리하시는 성령 하나님의 선하신 이끎에 모든 염려와 걱정을 내려놓고 기쁨과 감사가 고백되는 인생 여정 되길 소망합니다. 세상은 여전히 주님을 알지 못하고, 어둠과 사망의 권세에 눌려 헤매고 있지만, 빛의 자녀들이 주님 이기신 그 승리로 담대하게 그 기쁜 소식을 전하며 생명으로 채워가도록 눈동자처럼 지켜 보호하여 주시옵소서.
이 시간에도 열방 구석구석 땀 흘려 구원의 복된 증거로 쓰임 받으시는 선교사님들의 가정과 사역 위에 기름 부어 주시고, 그 모든 필요에 넘치도록 풍성하게 돌보아 주시옵소서. 말할 수 없는 고통과 탄식으로 구원의 손길을 구하는 영혼들을 돌아보셔서, 하나님의 이름으로 일할 일꾼들을 보내시고, 회복과 치유로 인도하여 주소서.
이 나라와 백성이 하나님을 경외하고, 오직 주님의 영광을 위해 쓰임 받는 거룩한 제사장의 사명 넉넉히 감당하게 하소서. 감사와 찬양을 아버지께 올려드리며, 우리의 길과 진리와 생명 되신 예수님의 거룩하신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