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현우의 「세례」 평설 / 임지훈
세례
정현우
잠자리 날개를 잘랐다.
장롱이 기울어졌다.
삐걱이는 의자에 앉아
나는 본 적 없는 장면을 슬퍼했다.
산파가 어머니의 몸을 가르고
아버지가 나를 안았을 때,
땅속에 심은 개가
흰 수국으로 필 때.
인간은
기형의 바닷바람,
얼음나무 숲을 쓰러뜨려도
그칠 수 없는 눈물이
갈비뼈에 진주알로 박혀 있다는 생각
그것을 꺼내고 싶다는 생각
내가 태어났을 때
세상의 절반은
전염병에 눈이 없어진 불구로 가득했다.
창밖 자목련이 바람을 비틀고
빛이 들지 않는 미래
사랑에 눈이 먼 누나들은
서로의 눈곱을 떼어주고
나는 까치발을 들고
귓속에 붙은 천사들을 창밖으로 털었다.
⸺시집 『나는 천사에게 말을 배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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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자는 세계를 관찰한다. 화자의 관찰 속에서 나타나는 세계는 기묘한 인과로 엮여 있다. 통상적인 인간의 언어로 볼 때 역설, 모순, 인과의 불일치로만 이해되는 세계의 모습을 표면적으로 화자의 착시와 착란의 정도를 증상적 언어를 통해 제시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예컨대 “잠자리 날개를” 자르자 “장롱이 기울어”지는 모습은 통상적인 인과의 관계로 설명되지 않으며, 이러한 인과는 오직 화자의 언어 속에서만 가능하다. 그러한 의미에서 화자의 언어란 통상의 언어가 포착할 수 없는 인과의 잔여를 포착하는 언어이면서, 동시에 이러한 인과를 단순히 “잠자리 날개를 잘랐다/ 장롱이 기울어졌다”라고 밖에는 설명할 수 없는 언어이다.
화자가 이렇게 언어화될 수 없는 인과의 지점을 포착할 수 있는 것은 시집의 제목에서처럼 ‘천사’에게서 말을 배웠기 때문이다. 인간의 언어가 될 수 없는 잔여들로 이루어진 그 언어를 통해 형성된 화자의 의식구조 속에서, 세계의 인과는 통상의 언어를 통해 형성된 인식 구조를 초과한다. 비극은, 이러한 인식 구조와 그가 인간이기에 인간의 언어를 사용할 수밖에 없다는 한계 사이에 있다. 그는 ‘볼 수 있다’. 그러나 ‘말할 수 없다’. 볼 수 있음에도 말할 수 없다는 딜레마를 그는 인과가 성립되지 않는 문장을 통해 발화하고 있는 셈이다. 시의 몸체를 이루고 있는 불일치의 서사들은 화자의 세계에서 분출되는 정념들, 불화들, 궁극적으로는 슬픔들이 통상적인 언어로는 진술될 수 없는 모종의 인과에 의해 성립된 것임을 증언한다.
그러나 「세례」가 좀더 의미심장하게 다가오는 것은 인지와 언어 사이의 간극 때문만은 아니다. 이 시를 비극적으로 만드는 것은 그가 자신의 귀에 붙은 천사들을, 자신에게 언어를 알려준 천사들을 스스로 털어내 버리는 마지막 문장을 통해서이다. 이것은 크게 두 가지의 의미로 해석될 수 있다. 하나는 스스로를 병리적인 인간으로 몰아세울 뿐, 어떠한 해결책을 내놓을 수 없다는 무능력함에 대한 진술이다. 예컨대 이 모든 상황 속에서 그는 단지 관찰자로 남아 있어야만 했을 뿐, 어떠한 개입도 할 수 없었다는 것. 다른 하나는 천사의 언어조차 온전한 언어가 아니기에 모든 인과를 파악하지는 못한다는 것, 즉 전지(全知)의 언어는 아니라는 슬픈 고백이기도 할 것이다. 그의 시집을 관통하는 슬픔은 이 두 문제에 대한 고민의 흔적이며, 동시에 천사의 언어와 인간의 언어 사이에서 배회할 운명을 지닌 자의 숙명에 대한 토로이기도 하다.
임지훈(문학평론가)
첫댓글 창밖 자목련이 바람을 비틀고
빛이 들지 않는 미래
사랑에 눈이 먼 누나들은
서로의 눈곱을 떼어주고
나는 까치발을 들고
귓속에 붙은 천사들을 창밖으로 털었다.
정현우 ⸺시집 『나는 천사에게 말을 배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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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자는 세계를 관찰한다. 화자의 관찰 속에서 나타나는 세계는 기묘한 인과로 엮여 있다. 통상적인 인간의 언어로 볼 때 역설, 모순, 인과의 불일치로만 이해되는 세계의 모습을 표면적으로 화자의 착시와 착란의 정도를 증상적 언어를 통해 제시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예컨대 “잠자리 날개를” 자르자 “장롱이 기울어”지는 모습은 통상적인 인과의 관계로 설명되지 않으며, 이러한 인과는 오직 화자의 언어 속에서만 가능하다. 그러한 의미에서 화자의 언어란 통상의 언어가 포착할 수 없는 인과의 잔여를 포착하는 언어이면서, 동시에 이러한 인과를 단순히 “잠자리 날개를 잘랐다/ 장롱이 기울어졌다”라고 밖에는 설명할 수 없는 언어이다(임지훈).
*임지훈님이 시를 잘 복 잘 분걱하고 글을 잘 엮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