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2025. 11. 30. 일요일.
햇볕이 나고 맑으니 덜 춥다. 많이 늙어서 꼬부랑거리는 나한테는 정말로 다행이다.
오늘은 11월 마지막 날이다.
내일부터는 12월 연말이 시작된다.
내 고등학교 여자친구 카페에 올린 내 글을 퍼서 <한국국보문학카페>에도 올린다.
내 여자친구의 카페에서는 글 초안을 올려서 수시로 글 다듬는다.
얼추 다 다듬은 뒤에서야 이를 퍼서 <한국국보문학카페>에 올린다.
<국보문학카페>에서는 글 정확하게 써서 올려야 한다.
퍼온 글
아직도 무덤, 제사 등을 숭상하는 시대인가?
최윤환
1.
오늘은 2025. 11. 26. 수요일.
2025년 11월18일 서울 종로구 세운4구역(오른쪽 빈터) 일대 모습. 종로 건너편으로 종묘가 한눈에 보인다.
한겨레 21 뉴스에 위 기사가 떴다.
서울 종묘 앞 세운4구역 재개발을 두고 크게 두 가지 관점에서 논쟁이 이뤄지고 있다.
하나는 초고층 빌딩으로 지역을 대표하는 랜드마크를 짓자는 개발주의다. 오세훈 서울시장과 국민의힘이 다수인 서울시의회가 이 관점을 주장한다.
다른 하나는 유네스코 세계유산인 종묘와 180m 거리에 초고층 빌딩을 짓는 건 종묘의 문화적 가치에 악영향이 우려된다는 문화유산 보존주의다. 국가유산청과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이 이 관점을 주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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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운4구역 고층 빌딩이 서울시의 용적률 상향으로 애초 계획보다 두 배 높은 최고 145m로 들어서면 개발이익 역시 최대 1조원으로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이하 생략...
나는 지리 측면에서 검색한다. 종묘 위치를...
1-1
밤중에 <한겨레 신문>에 기사가 떴다.
종묘 앞 재개발, 고층만 답 아니다…“역사공원지구·지하공간 조성을”
사진과 기사 내용 가운데 일부만 퍼서 여기에 올린다.
정말로 소중한 자료이다.
나는 일전 고교 친구들과 함께 서울 종로구 북악산에 올라가서, 정상에서 멀리 보이는 남쪽 종묘 언저리를 내려다보았다.
엄청한 도시건물로 종묘 일대가 잘 보이지 않았기에, 집에 돌아와 컴퓨터로 종묘 일대 사진을 검색했다.
사진도 2025년 우후죽순으로 가득 찬 지금의 건물 때문에 종묘 지역이 잘 보이지 않았다.
오늘 위 한겨레 신문 덕분에 1930년대의 종묘 일대를 확인한다.
그 당시에도 대단한 도시 중심지라는 사실에 그저 놀라워 한다.
1930년대 비행기에서 내려다본 종묘와 종로3가 일대 전경. 미국 의회도서관에 소장된 희귀한 사진 자료다. 종묘 주변에 기와집 말고는 복층건물이 거의 없었고 지금보다 훨씬 반듯한 권역과 울창한 수림을 지녔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종묘가 지닌 공간적 권위가 여실히 느껴지는 사진이다.
1930년 9월25일 돈화문로 일대와 그 옆 종묘 숲 모습. 미국 의회도서관이 소장한 일제강점기 서울 사진들 가운데 일부다.
1967년 10월13일 이른바 종삼으로 불렸던 종묘 일대 도시계획 예정 지구의 모습을 찍은 사진. 서울역사박물관 제공
1983년 6월24일 촬영한 서울 종묘 앞 일대와 종로 거리. 휴게쉼터와 주차장으로 정비되기 직전 모습으로 건물들이 들어차 있다. 서울역사박물관 제공
1945년 9월8일 미 해군 전투기가 서울 상공을 날면서 사진으로 포착한 종묘와 종로3가 일대의 모습. 이날 토론자로 나온 정기황 건축가가 공개한 것으로 당시 일제가 종묘 앞에 미군 폭격에 대비해 조성한 소개공지의 모습을 볼 수 있는 유일한 사진이다.
김종헌 배재대 건축학과 교수는 역사 도시 서울의 핵심적 공간인 국가 사당 종묘를 시내 5대 궁궐과 ‘그랜드 팰리스’(대궁궐) 공원지구 등으로 묶어 세계적으로 유례없는 도시의 상징성과 개발 가치를 창출할 수 있다고 제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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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헌 교수는 ‘종로-세운상가군 일대 도시 건축의 흐름과 현재적 고찰’에 대해 발제했다. 1930년대 종묘 일대와 종로3가 항공사진과 1946년 해방 직후와 1950년 한국전쟁 당시 항공사진 등 희귀 사료를 공개하면서 역사적 격변 속에서도 온전하게 영역을 지켜온 종묘의 역사적 가치를 도시 개발과 조화시키기 위한 패러다임 전환이 필요하다고 짚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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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맥락에서 서울의 5대 궁궐과 종묘사직을 하나로 묶어 센트럴 팰리스 혹은 그랜드 팰리스란 가칭 아래 도심의 핵심 역사 공간으로 조성하는 종합적 도시계획을 진행하면 미국 뉴욕 센트럴파크나 워싱턴디시 스미스소니언몰을 넘어서는 곳으로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2.
엄청나게 소중한 자료이다.
자료와 사진을 임의로 퍼 온다.
용서해 주실 것이다.
앞으로 공부를 더 해야겠다.
옛 서울은 “무덤의 도시”…마포·이태원 부촌, 공동묘지 위에 지어졌다 [서울지리지]
[출처] 옛 서울은 “무덤의 도시”…마포·이태원 부촌, 공동묘지 위에 지어졌다 [서울지리지]|작성자 보라빛 소
신당동 공동묘지.
광희문 밖의 신당리(중구 신당동) 일대는 청구동, 황학동을 포함해 공동묘지가 광범위하게 분포했다. 신당리 묘지는 1929년 폐쇄되고 그 자리에 택지가 들어섰다. [서울역사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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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동쪽 경계, 중랑구 망우리 공동묘지(현재 명칭 망우역사문화공원)는 삶과 죽음이 공존하는 희한한 지대다. 망우산 전체가 묘지로 가득 차 있지만, 평일에도 산책하는 사람, 등산객, 심지어 아이를 동반한 가족 나들이객들로 늘 북적인다.
모두들 아무렇지 않은 듯 무덤 사이를 활보하며, 심지어 묘역은 간식을 먹는 장소로 애용된다. 죽은자의 구역이 시민들이 즐겨찾는 도심공원으로 탈바꿈한 것이다.
망우리 공동묘지는 서울의 공동묘지로 사용되던 미아리 묘지가 포화조짐을 보이자 1933년 조성하기 시작해 1973년 매장이 금지되기까지 총 2만8500기의 분묘가 들어섰다.
이태원 제1묘지(이태원, 한남동 일원의 묘지)가 택지화하면서 3만7000여 기 분묘 가운데 무연고 묘가 화장돼 망우리 묘지에 합장됐고, 마포 노고산 공동묘지의 무연고 무덤도 합동으로 이곳으로 이장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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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희문 밖 신당동 공동묘지 지도.
1922년 ‘경성도’. 주황색은 조선인 묘지, 푸른색은 일본인 묘지이다. [서울역사박물관]
신당리묘지는 1920년대 전원주택지 건설이 추진되며 1929년 폐지되고 분묘는 홍제동(서대문), 수철리(금호·옥수동) 묘지로 이장됐다. 신당동 주택단지는 14만평 규모로 개발돼 일본인과 상류층 조선인에 공급됐다.
광희문 밖 신당동 공동묘지.
1900년대 초반 촬영된 신당동 공동묘지 모습. 도성의 성벽 밖으로 분묘가 가득하다. [서울역사박물관(독일 성 베네딕도 상트 오틸리엔 수도원 소장 서울사진)]
[출처] 옛 서울은 “무덤의 도시”…마포·이태원 부촌, 공동묘지 위에 지어졌다 [서울지리지]|작성자 보라빛 소
1958년 미아리 공동묘지
3.
서울 빈민촌
일본인에 밀려난 청계천 일대 한국인의 빈민촌(1)
1920년 청계천 일대에 빈민촌이 형성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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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과 자료는 뉴스에서 임의로 퍼 온다.
용서해 주실 것이다.
사진에 마우스를 대고 누르면 사진이 크게 보인다.
위 기사 덕분에 한양/서울 지리와 건축에 관해서 공부를 더 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