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입니다. ‘라디오 스타’라는 영화를 보았습니다. 영화는 인기가 떨어진 유명 가수와 가수를 도와주는 매니저의 진한 우정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노래만 잘하는 가수는 늘 사고를 치고, 매니저는 가수의 뒷수습을 합니다. 강원도 영월의 방송국 진행자가 된 가수는 솔직한 입담으로 지역에서 인기를 얻습니다. 전국 방송으로 라디오 프로그램이 승격되었고, 가수에게 새로운 기획사에서 함께 일하자는 제안이 들어왔습니다. 단 매니저 없이 가수만 영입하겠다고 합니다. 매니저는 20년 넘게 동고동락했지만, 가수의 미래를 위해서 말없이 떠납니다. 가수는 기획사의 영입 제안을 거절하고, 라디오 프로를 진행하면서 울먹이며 매니저에게 돌아와 달라고 방송합니다. 방송을 듣던 매니저는 다시 가수에게 돌아오면서 영화는 끝납니다. 예전에 이런 글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눈이 오는 추운 겨울에는 소나무와 전나무만이 푸르다.” 여름철에는 녹음이 우거지지만, 추운 겨울에는 낙엽이 되어 떨어지고 소나무와 전나무만이 푸르다는 의미입니다. 진정한 친구는, 진정한 사랑은 고난과 역경의 순간에 드러나기 마련입니다. 영화를 보면서 가슴이 따뜻해졌습니다.
본당에 어린이 합창단이 문을 열었습니다. ‘임마누엘 합창단’이 있었는데 팬데믹의 여파로 문을 닫았다고 합니다. 주보에 어린이 합창단 모집 공고를 하였고, 19명이 합창단에 가입했습니다. 19명의 맑은 눈망울을 보니, 저도 마음이 깨끗해지는 것 같았습니다. 스페인 몬세랏에는 수도원이 있고, 수도원 성당에서 수사님들이 매일 기도합니다. 기도를 마치면서 소년 합창단이 성가를 부릅니다. 지난 4월에 수도원을 방문했고, 그때도 마음이 정화되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새롭게 문을 연 어린이 합창단은 예전에 사용했던 이름을 다시 사용한다고 합니다. 이 아이들이 본당의 날에, 성탄에, 부활에 공연한다고 합니다. 아이들의 고운 노래와 깨끗한 마음이 공동체를 따뜻하게 해 줄 것입니다. 밤하늘에 수많은 별이 있습니다. 스스로 빛을 내는 별은 그리 많지 않다고 합니다. 별 대부분은 스스로 빛을 내는 항성의 빛을 받아서 빛난다고 합니다. 태양계도 스스로 빛을 내는 태양의 빛을 받아서 빛나는 별들이 있습니다. 라디오 스타에서 가수가 빛을 낼 수 있었던 것도 매니저의 헌신과 노력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어린이 합창단의 고운 노래가 본당 공동체를 환하게 비출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오늘 바오로 사도는 ‘사랑’을 이야기합니다. 천사의 말을 한다고 해도 사랑이 없으면 빛이 나지 않는다고 합니다. 심오한 진리를 깨달았다고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빛이 나지 않는다고 합니다. 예언하는 능력이 있고, 산을 옮기는 큰 믿음이 있다고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빛이 나지 않는다고 합니다. 재산을 나누어주고, 목숨까지 내어 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빛이 나지 않는다고 합니다. 바오로는 사랑이라는 추상명사에 구체적인 사랑의 행위를 이야기합니다. 그 사랑의 행위가 있어야, 사랑은 비로소 빛을 낸다고 합니다. “사랑은 참고 기다립니다. 사랑은 친절합니다. 사랑은 시기하지 않고 뽐내지 않으며 교만하지 않습니다. 사랑은 무례하지 않고 자기 이익을 추구하지 않으며 성을 내지 않고 앙심을 품지 않습니다. 사랑은 불의에 기뻐하지 않고 진실을 두고 함께 기뻐합니다. 사랑은 모든 것을 덮어 주고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고 모든 것을 견디어 냅니다.” 이런 사랑의 행위가 어둠에 빛을 주고, 이런 사랑의 행위가 절망 속에 희망을 드러냅니다. 이런 사랑의 행위가 지친 이들에게 용기를 줍니다. 믿음과 희망과 사랑, 이 세 가지는 계속됩니다. 그 가운데에서 으뜸은 사랑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보면 세례자 요한과 예수님을 오해하고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견지망월(見指忘月)’하는 것입니다. 세례자 요한에게서 볼 것은 단식과 옷차림이라는 손가락이 아닙니다. 회개의 세례를 선포한 그의 설교입니다. 하느님의 어린양을 알아보고 ‘나는 저분의 신발 끈을 풀어드릴 자격도 없다.’라고 했던 그의 겸손입니다. 예수님에게 볼 것은 사람들과 어울려 먹고 마시는 겉모습이라는 손가락이 아닙니다. 하느님의 아들이 사람이 되어 오신 그분의 지극한 사랑입니다. 그 사랑 때문에 인류를 위해서 십자가를 지고 가시는 고통입니다. 예수님을 배반하였고, 두려움과 걱정으로 숨어 있던 제자들을 용서하시고 평화를 빌어주시는 자비입니다. 담대한 모습으로 당당하게 복음을 전하는 제자들의 변화된 모습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나병 환자도 깨끗하게 하셨고, 앉은뱅이도 일어나게 하셨고, 눈이 먼 사람은 뜨게 하셨고, 듣지 못하는 사람은 듣게 하셨습니다. 그러나 의심하는 사람은 어찌하실 수 없었습니다. 그 의심이 자꾸만 다른 곳을 보기 때문입니다.
지금 내가 보고 의지하는 건 오해와 거짓이라는 손가락인지 돌아보면 좋겠습니다. 만일 그렇다면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주 예수 그리스도라는 ‘빛’을 보아야 하겠습니다. (조재형신부)
▥ 사도 바오로의 코린토 1서 말씀입니다.12,31─13,13
형제 여러분, 31 여러분은 더 큰 은사를 열심히 구하십시오.
내가 이제 여러분에게 더욱 뛰어난 길을 보여 주겠습니다.
13,1 내가 인간의 여러 언어와 천사의 언어로 말한다 하여도
나에게 사랑이 없으면 나는 요란한 징이나 소란한 꽹과리에 지나지 않습니다.
2 내가 예언하는 능력이 있고,
모든 신비와 모든 지식을 깨닫고 산을 옮길 수 있는 큰 믿음이 있다 하여도
나에게 사랑이 없으면 나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3 내가 모든 재산을 나누어 주고 내 몸까지 자랑스레 넘겨준다 하여도
나에게 사랑이 없으면 나에게는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4 사랑은 참고 기다립니다. 사랑은 친절합니다.
사랑은 시기하지 않고 뽐내지 않으며 교만하지 않습니다.
5 사랑은 무례하지 않고 자기 이익을 추구하지 않으며
성을 내지 않고 앙심을 품지 않습니다.
6 사랑은 불의에 기뻐하지 않고 진실을 두고 함께 기뻐합니다.
7 사랑은 모든 것을 덮어 주고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고 모든 것을 견디어 냅니다.
8 사랑은 언제까지나 스러지지 않습니다.
예언도 없어지고 신령한 언어도 그치고 지식도 없어집니다.
9 우리는 부분적으로 알고 부분적으로 예언합니다.
10 그러나 온전한 것이 오면 부분적인 것은 없어집니다.
11 내가 아이였을 때에는 아이처럼 말하고
아이처럼 생각하고 아이처럼 헤아렸습니다.
그러나 어른이 되어서는 아이 적의 것들을 그만두었습니다.
12 우리가 지금은 거울에 비친 모습처럼 어렴풋이 보지만
그때에는 얼굴과 얼굴을 마주 볼 것입니다.
내가 지금은 부분적으로 알지만 그때에는 하느님께서 나를 온전히 아시듯
나도 온전히 알게 될 것입니다.
13 그러므로 이제 믿음과 희망과 사랑, 이 세 가지는 계속됩니다.
그 가운데에서 으뜸은 사랑입니다.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7,31-35
그때에 주님께서 말씀하셨다.
31 “이 세대 사람들을 무엇에 비기랴? 그들은 무엇과 같은가?
32 장터에 앉아 서로 부르며 이렇게 말하는 아이들과 같다.
‘우리가 피리를 불어 주어도 너희는 춤추지 않고
우리가 곡을 하여도 너희는 울지 않았다.’
33 사실 세례자 요한이 와서 빵을 먹지도 않고 포도주를 마시지도 않자,
‘저자는 마귀가 들렸다.’ 하고 너희는 말한다.
34 그런데 사람의 아들이 와서 먹고 마시자,
‘보라, 저자는 먹보요 술꾼이며 세리와 죄인들의 친구다.’ 하고 너희는 말한다.
35 그러나 지혜가 옳다는 것을 지혜의 모든 자녀가 드러냈다.”
오늘의 묵상
바오로 사도는, 사랑이 없다면 소란한 꽹과리에 지나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사랑이 없으면 시기하고 교만하며 이기적일까요? 꼭 그러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 모든 재산을 나누어 주고 자기 몸까지 넘겨준다 하여도 사랑이 없을 수 있다고 말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더 어렵습니다.
오늘 독서에서 바오로 사도가 말하는 것을 잘 짚어 보면, 사랑은 시기하지 않고 교만하지 않으며 자기 이익을 추구하지 않지만, 시기하지 않고 교만하지 않으며 자기 이익을 추구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사랑이 없을 수는 있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런 사람은 요란한 소리만 낼 뿐입니다. 그가 행한 모든 것은 하느님 앞에 갔을 때는 무의미할 것입니다.
믿음과 희망과 사랑은 계속된다고 말하지만, 우리가 하느님의 얼굴을 마주 뵙고 그분을 환히 알게 될 때에는 믿음이 더는 필요 없습니다. 그리고 모든 것이 완전하게 다 이루어진 다음에는 더 이상 희망할 것도 없습니다. 누가 한 말인지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믿음과 희망은 천국 문 앞까지 가고, 천국 안에서 온전한 것이 왔을 때까지 남는 것은 사랑이라고 하였습니다. 예언과 신령한 언어도 온전한 것이 오기 전의 기간에 의미가 있습니다. 이 세상에서 할 수 있는 다른 선행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온전한 것이 와서 불완전하고 부분적인 것들이 사라질 때, 우리는 빈털터리가 되지는 않을까요? 신령한 언어도 선행도 필요 없는 때가 되었을 때 우리에게 사랑이 없다면, 모든 재산을 나누어 주고 자기 몸까지 내준 일들은 물거품이 될 것입니다.(안소근 실비아 수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