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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GV와 롯데시네마가,
연말 시즌 최고의 영화 <호빗> 죽이기에 나섰다.
서울에서는 <호빗>을 상영하는 영화관을 찾기가 어려울 지경이다.
40여 개 극장에서만 상영되고,
나머지 55개 극장에서는 아예 상영하지 않는다.
1. CGV-롯데시네마 오너들, 호구-상병신들인가?
CGV와 롯데시네마는,
<호빗> 대신 무슨 영화를 프로모션하고 있을까?
30여년 전,
“공산 혁명이 일어나면 당신 같은 사람은 죽어!”라고 담당 검사를 협박했던
으스스한 급진 지하 조직 <부림>(1981년 사건)을
[민주화 운동]으로 미화한 <변호인>을 띄웠다.
그래서 이상야릇한 결과가 나왔다.
<호빗>과 <변호인>의 스크린 점유율이
서울과 비(非)서울에서 정반대가 된 것이다.
서울에서는
<호빗>을 걸은 스크린의 숫자가 <변호인>의 반 밖에 안 된다.
반면,
비(非)서울에서는
<호빗>이 <변호인>의 1.65배나 된다.
지역 |
호빗 |
변호인 |
비율( =호빗/변호인) |
서울 |
74 |
147 |
0.5 |
비(非)서울 |
735 |
444 |
1.65 |
전체 |
809 |
591 |
CGV와 롯데시네마가,
호빗 죽이기에 나서며 내걸은 명분이 가관이다.
“영화관 몫으로 50%를 달라고 했는데,
안 주길래
영화 걸지 말라고 했다”
그으래?
예전엔 몇 % 먹었었는데?
40% 먹었다.
한마디로,
이제까지 아무 소리 안 하고 40% 먹어오던 비율을
느닷없이 50%로 인상하겠다고 배급사에 통고했다.
배급사가 이에 응할 리 없다.
그러자 “싫음 말고!”라며,
서울에서 <호빗>을 밀어버렸다.
그리고는 그 자리에 <변호인>을 걸은 것이다.
30여년 전 <부림>사건을 담당했던 검사 고영주는,
이제 어느덧 법조계 원로 변호사가 되어 있다.
그는 아무런 이해관계가 없는 담담한 사람이다.
그런 사람이 명백히 이렇게 증언한다.
“부림은 공산주의자들의 지하조직이다.
그 핵심 멤버가 나더러
[공산혁명이 일어나면 당신은 죽어!]라고
협박했었다”
편잡자 주:
광주 5.18 이후 1980년 여름에 <학림>이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학림>은 1981년 여름 검거될 당시에 수사기관이 붙인 이름이다.
정확한 명칭으로는
<전국민주노동자연맹>(전민노련)과
<전국민주학생연맹>(전민학련) 쌍둥이 조직이었다.
이 글의 필자인 박성현은 <전민학련>의 수도권 조직책이었다.
80년 여름에 <학림>이 탄생하게 된 배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 이전 상황을 좀 참고할 필요가 있다.80년 겨울,
1960년대 중반 이후 20년 가까이 서울대 학생운동을 지도해 온
지하 인맥이 검거된 사건이 있었다.
이 인맥에 대해 수사기관은 <무림>이란 이름을 붙였다.
당시 전체 운동 역량의 90%가 서울대였기 때문에
<무림>은 전체 급진운동 역량의 핵심 인맥이었다고 보아야 한다.<무림>은 80년 봄에 조직 실체가 드러났다.
그래서 <무림>은
"역량을 보존해야 한다"라는 명분을 내세워
80년 광주 이후, 80년 여름부터
"동면 상태로 들어가야 한다"라고 주장했다.동면이냐 저항이냐?
이것이 문제가 되었다.
전투적 관점을 가진 사람들이
기존의 리더십을 가지고 있던 <무림>에 대해 반발해서
저항을 주장했다.
이들이 <학림>을 만들었다.<학림>은,
6.25 이후 처음 만들어진 [북한에 대해 비판적인 전투적 지하 조직]이었다.
영화 <변호인>이 다루는 <부림>은,
<학림>의 부산지역 조직으로서
그 안에는 [노동자 파트]와 [학생 파트] 양쪽이 모두 존재했다.<부림>은,
이 글 필자 박성현과 전혀 상관없이,
<전민노련>을 만든 이태복이 직접 구축했다.
이태복은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10 년 가까이 징역을 살고 나와
DJ 정부에서 보사부 장관을 역임했다.
박성현은,
자신이 했던 운동이 [공산주의의 통일전선 노선]을 따랐다고 생각해서,
<학림> 사건에 대해 재심을 청구하지도 않았고,
민주화운동 보상을 받지도 않았다.
<학림>의 후신이,
80년대 최대의
[자생적 공산주의 조직](북한에 대해 맹렬히 비판하는 마르크스-레닌주의 조직) 사건으로 꼽히는<깃발>(1985년 검거)이다.
<깃발>에 의해,
레닌 책이,
6.25 이후 처음으로 번역되어 지하 출판되었다.<깃발>의 후신이,
1987년에 검거된 <제헌의회> 그룹이다.이 그룹에 의해 마르크스의 책이,
625 이후 처음으로 번역되어 출판되었다.<제헌의회> 그룹의 후신은 둘이다.
하나는 민중당(이우재 장기표 이재오 김문수 등)이며,
다른 하나는 사노맹(박노해 백태웅 조국 은수미 등)이다.
한마디로 <학림>은,
PD(북한과 관계없는 순수 마르크스-레닌주의) 운동권의 출발점이다.
PD는,
90년 경까지는
[김일성주의](NL = 민족해방노선 = 주체사상파)와
맹렬한 사상투쟁을 벌였다.1980년 출발시기에서 1990년경까지
PD는,
북한을 [제대로된 사회주의 국가]로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90년 경까지는,
[평양에 대해 비판적/적대적 입장을 가지고 있던 마르크스-레닌주의](PD)와,
[북한-전체주의를 추종하는 민족해방노선](NL)이
팽팽한 긴장을 이루었다.
그러나 민주화가 이루어진 다음에,
6.25이후 35년 이상 숨죽여 왔던 [구세대 종북] 인사들이
대거 지상으로 튀어나오면서
NL이 득세하는 상황으로 변했다.
또한 북한 최고위 간첩 이선실이
80년대 말에서 90년대 초에 걸쳐,
천문학적 거액을 뿌리면서 <중부지역당>을 조직하면서
NL이 압도적으로 득세했다.
예를 들어
[북한에 대해 비판적 입장을 가진 양심적 통일운동 지식인]으로 알려졌던
최고급지식인 원로 김낙중은,
이때 백만달러 이상의 돈과 권총과 난수표를 받아 챙겼다.이선실의 가장 중요한 임무는,
[PD 성향 (=당시에는 북한-전체주의에 대해 비판적 성향)을 가졌던
민중당 핵심 인사를 포섭해서,
NL과 결합시키는 것]이었다.[구세대 종북]의 활성화와 북한의 공작에 의해,
90년대 초반 이후,
PD는 NL에 완전히 굴종하는 상황이 되었다.
PD를 NL에 굴종시키는 것--
이것이야말로 김정일이
가장 공을 많이 들여 가장 큰 성공을 거둔 대남공작이다.이 굴종은
사실상 [마르크스-레닌주의]의 사망을 뜻한다.[김일성-전체주의]는
북한에서는,
[숙청]을 통해 [마르크스-레닌주의자]들을 개잡듯 잡아 죽였다.
대한민국에서는,
거물간첩의 공작과 돈을 통해 [마르크스-레닌주의]를 안락사시켰다.
90년대 초반 이후에 대한민국에는
[북한에 대해 비판적인
마르크스-레닌주의](진짜 급진 좌파-진짜 빨갱이)가 없다.
이름만 PD일 뿐,
모두 [김일성-전체주의] 부역자로 보면 된다.이 까닭에 이 글의 필자 박성현은,
[빨갱이]나 [급진 좌파]라는 용어를 사용하지 않는다.
박성현의 시각에선,
이들은 모두 급진좌파가 아니라 웰빙이며,
[김일성-전체주의]의 부역자-옹호자-변호자에 지나지 않는다.
따라서 지금 싸움의 전선은,
이 까닭에 박성현은,
[전체주의냐, 자유민주주의냐?
거짓이냐 진실이냐?
굴종이냐 자유통일이냐?
죽음이냐 생명이냐?]가
된다.
자유민주주의-자유통일-세계시장을 [대한민국의 공화 가치]라고 규정하고,
스스로를 [공화주의자]라 칭한다.
그런데
영화 <변호인>은 이를 [민주화 운동]으로만 미화한다.
뒤가 켕겼는지,
영화 시작할 때 자막을 통해 웃기는 소리를 한다.
“실화에 바탕한 허구이다”
개가 풀 뜯어 먹는 소리다.
모든 허구(fiction)는 실화에 바탕하고 있기 때문이다.
마치 우리가 꿈 속에서 보는 광경이 아무리 기괴하더라도,
결국엔 모두 현실세계에서 보았던 빛-색깔-형상을 재구성한 것에 지나지 않는 것처럼.
따라서 새삼 [실화에 바탕한]이란 소리를 덧붙여야 할 이유가 없다.
<변호인>은 그냥 허구인 것이다.
거기에 거창하게 <부림>이니 <노무현>이니...
정치적 아우라(Aura)를 입혀서는 안 되었던 작품이다.
그러나 그들은 기획-제작-유통 모든 단계에서,
그 아우라를 입혔다.
그리고 그것이 마치
<부림사건>과 <노무현>에 관한 이야기인 것처럼 떠들어 왔다.
이 같은 과정을 통해 영화 <변호인>은,
정치 아지프로(=agipro, 선동선전)로 완성되었다.
CGV와 롯데시네마는,
서울 지역에서 이 아지프로를,
좀 더 화끈하게 좀 더 확실하게 틀어대기 위해,
영화 <호빗>을 밀어낸 것이다.
CGV와 롯데시네마는,
[종친떼](종북+친북+떼촛불) 문화권력의 음모에 자발적으로 협조하고 있는 것일까?
아니면,
너무나 순진한 나머지 음모에 말려든 것일까?
아니면,
CGV-롯데시네마의 주요 의사결정자들이,
[종친떼] 음모 서클의 멤버들인 것일까?
어느 경우든,
CGV-롯데시네마의 오너들은
호구-상병신-골빈 인종들에 지나지 않는다.
오너가 호구-상병신-골빈 인종이면
아랫것들이 [종친떼] 지랄을 떨어도
그저 헤헤호호 잘 살 수 있다.
망할 때까지는.
2. [종친떼]는 [호빗]을 증오한다
[종친떼]는 <호빗>을 증오한다.
[종친떼]는 북한의 [김조(金朝)-전체주의]를 추종-옹호-변호하는 자들인 반면에,
[호빗]은 [전체주의와 싸우는 건강한 개인]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종친떼] 문화권력이
서울에서 영화 <호빗>을 밀어내 버리고 스크린을 <변호인>으로 채운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그들은 [호빗]의 실체를 이해하는 순간,
온 몸에 두드러기가 나고 숨이 켁켁 막히는 자들이기 때문이다.
그 자세한 사정을 살펴 보자.
뱀발(사족):
[전체주의]는 노동계급-민족-수령을 내세워서
“이승에서 한 방에 천국과 같은 국가를 만든다”라고 믿는
정치-종교(political religion),
즉 정치-사교(邪敎)다.[전체주의]는 개인을 가루로 부수어
[천국-국가]를 위한 재료로 삼는다.
러시아나 중국에서는,
절망상태에 빠진 광범위한 지식층의 고통과 사나운 민중반란의 피바다에서
[공산-전체주의]가 나왔다.
피비린내 나는 거대한 에너지가 먼저 화산 폭발하고,
그 분화구로부터 [전체주의]가 나온 것이다.
편집자 주 :
인간을
[개인]이 아니라 [떼],
사회를
[실험대상],
즉 인간을 [품종개량의 대상]으로 보고
사회를 [엔지니어링의 대상]으로 보는 것이
[전체주의]다.이런 [전체주의]에서는 항상
[피바다]가 빚어졌다.
▲舊 소련 내무 인민위원회 위원 에조프가 스탈린에게 바친 사형자 명단은
책으로 383권인데 모두 4,500만 명이 넘는 인원을 죽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위 사진은 러시아 공산혁명 당시 학살당한 사람들의 시신이다.
히틀러의 나치 전체주의가 벌인 유태인 대학살.
일본 천황전체주의가 저지른 난징대학살.
월평균 4만명씩 처형한 스탈린 전체주의의 대학살.모택동 전체주의에 의해 벌어진 [대약진운동](1958~1962).
역시 모택동 전체주의가 주도한 [문화대혁명](1966~1976).
그리고 크메르 루주에 의해 저질러진 [킬링필드](1975~1979) 아니던가?
[스탈린 대학살]의 희생자는 약 4천5백만명.
[대약진운동]의 희생자는 약 4천5백여만명.
[문화대혁명]의 희생자는 약 2천5백만~3천여만명.
[유태인대학살] 희생자는 약 6백만명.
[킬링필드]의 희생자는 캄보디아 전인구 4분의 1에 달하는 2백여만명.
특히 [대약진운동]과 관련,
영국에서 가장 권위를 인정받는
논픽션상인 BBC <새뮤얼 존슨상>의
2011년 수상작으로
홍콩대 프랑크 디쾨터 교수(런던대 박사)가
쓴 <마오의 기근>에 따르면,
그동안 2,500만명 정도로 알려진 희생자수가
최근 중국 공산당이
공개하기 시작한 문서를 통해
4,500여만명에 육박한다는 것으로 밝혀졌다.2010년 9월 출간된 이 책은
<이코노미스트>, <인디펜던트>,
<선데이타임스>, <이브닝스탠더드> 등의
<2010년 올해의 책>으로 선정됐다.
반면 북한의 경우에는,
이 같은 거대한 에너지의 폭발 없이,
소련의 스탈린과 중공(당시엔 중국이 아니었다!)의 모택동으로부터
사악한 음모-학살-처형 테크닉만을 배운 김일성 일파가 만들었다.
소련과 중공의 [전체주의]는,
[자생적-내생적(endogenous) 전체주의]임에 반해,
북한의 [김조(金朝)-전체주의]는,
[타율적-외생적(外生的, exogenous) 전체주의]인 것이다.
또한 [김조-전체주의]는,
해괴망측한 [3종 교배 전체주의]이다.
기본 프레임을 소련이 만들었다는 점에서는
[스탈린-전체주의]이고,
매우 공격적이고 배타적인 민족주의 색채라는 점에서는
[모택동-전체주의]이며,
김씨 혈통을 신격화했다는 점에서는
[천황-전체주의](Mikadoism)이다.
▲ 방부제 속에 누워 영생을 꿈꾸는 [귀태 중의 귀태] 김일성.
수백만명의 동족을 학살한
흉측한 [전체주의 사교] 집단의 정교일치 교주.
또한, [김조-전체주의]라고 이름하는 것은,
평양의 김씨 일족을 김조(金朝)라고 부른 것은 김정일 본인이기 때문이다.
김정일은 1999년 통일전선부에게
<이조(李朝)실록>에 대응하는 <김조실록>을 만들라고 지시했다.
이 역사적 미친 짓에 종사하다가 남쪽으로 튄 사람이 바로,
유명한 탈북시인 장진성이다.
편집자 주
장진성은 평양의 김일성대학을 나온 수재다
김정일에게 발탁되어 통전부에서 근무하며,
[평양것들] 권력 내부서 돌아가는 사정을 눈-코-귀-피부로 인지했다.
북한을 탈축해 현재 탈북자신문 <뉴포커스> 대표로 있다.
탈북해서 <내 딸을 백원에 팝니다>는 시집을 출간한 시인이다.
2012년 런던올림픽 전야행사로 런던에서 개최된
시 축제 <더 포이트리 파르나소스>(The Poetry Parnassus)에
북한대표로 초대됐다.
런던 올림픽 참가 204개국 대표시인이 참석하는 시인 올림픽이다.
영국 옥스퍼드 워덤 컬레지는
2012년 올해 <렉스 워너상>의 주인공으로 장진성을 선정했다.
<렉스 워너상>은 1610년에 세워진 워덤 컬레지가 주는 문학상이다.
워덤 컬레지는
영국의 유명한 고전학자이며 작가인 렉스 워너의 생애를 기념하기 위해
<렉스 워너상>을 제정하고
해마다 세계문단에서 한 명의 작가와 작품을 발굴하여 1등상과 상장을 준다.
소설 <호빗>의 저자 톨킨(J. R. R. Tolkien)은
20세기 중엽, 옥스포드대학교 교수였던 판타지 작가이다.
그의 작품은
[자유로운 개인과 전체주의 사이의 투쟁]을 그린다.
그의 대표작 <반지의 제왕>에서
사우론은 [전체주의] 악령(惡靈)을 상징하며
흑마법사(necromancer) 사루만은
그 악령에 빙의된 사람—[전체주의자]를 가리킨다.
소설 <호빗>은,
<반지의 제왕>에 선행한 프로토타입(prototype, 시험용 모델)이었다.
이 소설은,
평온한 삶을 살아 오던 건강한 개인(호빗 ‘빌보어 배긴스’)이 모험에 나섰다가
악령(용 ‘스마우그’)과 싸우게 되는 과정을 그린다.
이 악령이 [전체주의]를 상징하고 있다는 것이 또렷이 나타난 작품이
바로 <반지의 제왕>이다.
<반지의 제왕>에서,
사루만은 실체가 없는 악령을 모시며,
사루만의 [인민]은 개체성(individuality)이 없는 [기계화된 떼]이다.
[전체주의]는 악령의 정치학이다.
세계 최초로 공산혁명을 성공시켰던 러시아 공산주의자들,
[마르크스-레닌-스탈린주의]라는
[전체주의]를 만들어냈던 러시아 공산주의자들은,
악령에 빙의된 자들이었다.
이들의 원조는 19세기 후반의 혁명가 나차예프(Nachayev)이다.
도스토예프스키의 소설 <악령>에 등장하는 인물 <표토르 스떼파노비치>는
나차예프를 형상화한 캐릭터이다.
나차예프는 <혁명가를 위한 교리문답>이란 글을 남겼다.
그 글에는 악령의 숨결이 깊게 스며 있다.
첫 머리를 살펴보자.
“혁명가는 저주받은 인간이다.
그에게는 아무런 사적(私的) 이해관계가 없다.
연애도 없고,
감정도 없고,
유대도 없고,
재산도 없고,
심지어 이름도 없다.그의 존재 전체는
하나의 목적-하나의 생각-하나의 열정에 함몰되어 있다.
이 목적-생각-열정은 바로 [혁명]이다.
그는 마음과 영혼으로,
그의 말 뿐 아니라 행동으로,
모든 사회질서와의 연관을 단절시켰으며
모든 문명세계와의 연결을 끊어냈다.
그는,
세상의 모든 법률-바른행실-직위-도덕률 전체와 결별했다.
그는 세상을 불구대천의 원수로 삼았다.
그가 세상 속에 사는 이유는 단 하나이다.
세상을 부숴버리는 것--그것이 그가 세상 속에 사는 이유이다.“
이런 악령에 빙의된 인간이,
“이승에서 천국과 같은 국가를 만들 수 있다.
개인을 부수어
천국-국가를 위한 재료로 삼으면 된다”라는 망상을 가지게 되면,
[전체주의자]로서 완성된다.
[러시아 공산주의]는,
나차예프 유형의 인간이 [마르크스주의]를 받아들여서 만들어낸
정치-사교(邪敎)이다.
나차예프 유형을 [무정부주의적-허무주의자](Anarcho-nihilist)라고 부른다.
톨킨의 우화는,
항상 전체주의 악령에 대항해서 싸우는 소박하고 건강하고 자유로운 개인을 그린다.
이 알레고리가 너무나 심오하기 때문에
아무도 선뜻 이를 영화로 만들 엄두를 내지 못 했었다.
그러다 마침내 2001년에서 2003년에 걸쳐
뉴질랜드 출신의 천재 감독 <피터 잭슨>이 <반지의 제왕>을 3부작으로 만들어냈다.
그리고 7년을 쉬다가
2010년에 <호빗I>을 출품했고,
올해 12월 <호빗II>를 내놓았다.
<호빗>은 영화 기술에서 있어서도 획기적인 작품이다.
기존에 초당 24 프레임으로 촬영하던 방식이 아니라,
그 두 배인 초당 48 프레임 촬영기술을 썼다.
선명한 이미지와 자연스런 움직임이 극대화되기 때문에
3D에서 가끔 나타나는 깜박거림 현상(judder)이 없어진다.
CGV와 롯데시네마 종사자들은,
30년전 공산주의 성향의 지하 조직을 미화한 영화에 지나지 않는 <변호인>을 띄우기 위해
이 같은 훌륭한 영화를 밀어내 버린 것이다.
직업 윤리가 썩어 문드러진 [개양아치들]에 지나지 않는다.
그 오너들은,
문화공간으로서의 영화관을 소유한 문화인이 아니다,
개양아치들을 직원으로 거느린 [양아치 두목]에 지나지 않는다.
3. 노무현은
[80년대의 열기가 만들어낸 바보]로 남아야 한다
영화 <변호인>은
노무현을 모델로 삼은 인물인
송우석의 복잡한 심리를 부각시킬 용기가 없었다.
노무현은
매우 복합적이고 복잡한 성격을 가진 인물이다.
영화는 그 캐릭터를 파고 들어가는 대신에,
그를 미화하는 데에 급급했다.
심지어 당시 운동권이 읽었던 서적 중의 하나인
<역사란 무엇인가?>(이.에치.카아, E.H. Carr 저)를 내세워서
“이게 용공 서적이야? 이게 용공 서적이야?”라고 들이대느라고 오랜 시간을 보낸다.
그래서 영화는 상당히 지루하게 진행될 수밖에 없다.
뱀발(사족):
<역사란 무엇인가?> 자체는 차분한 책이지만,
카아(E. H. Carr)가 매우 세련된 영국 스탈린지지자였던 것은 사실이다.
조지 오웰은 카아에 대해
“자신의 정체를 깊이 감추고 있는 공산주의자이며 소련 간첩”이라고 평했다.
카아가 실은 맹렬 스탈린지지자였다는 진실을 알려면,
그의 대표작인 <볼셰비키 혁명>(The Bolshevik Revolution)과
기타 평론들을 읽어 보어야 한다.그러면 다음과 같은 진실을 알아 차릴 수 있다.
첫째, 그는 소련 공산혁명을 엄청 높게 평가한다.
둘째, 그는 스탈린 시대 경제개발을 찬양한다.
셋째, 그는 스탈린의 대량 숙청-집단수용소-대량학살에 대해서는
입도 벙긋하지 않는다.
영화 <변호인>의 제작진은 교양을 좀 더 쌓아야 한다.
<부림> 관련자들이 카아의 <역사란 무엇인가>를 읽었다는 점을 내세워서
“그들은 공산주의자가 아니었다”라고 주장하는 것은,
마치 김일성의 전기 <세기와 더불어>를 읽었다는 점을 내세워서
“그들은 주체사상파가 아니었다”라고 주장하는 것만큼이나 우스꽝스런 짓이다.본인들이 무식한 것은 좋은데,
그것을 그럴싸한 영상으로 표현해서 순진한 대중을 속이니까 문제다.
원래, 열에 들뜬 무식한 예술쟁이들이 여러 사람 죽이는 법이다.
이왕 말 나온 김에 한 마디 더 하자.
당시 운동권은 카아를 읽고 음미할만한 수준도 못 됐다.
우선 80년대 중반까지 카아 책 중에 한글로 번역되었던 책은
<역사란 무엇인가?> 한 종 뿐이었다.
나는 1979년에 영어로 <볼셰비키 혁명>을 모두 읽었는데,
그 후 5~6년 동안
그걸 읽었다는 운동권 지식인을 단 한 명도 본 적이 없다.
편집자 주 :
조갑제 기자가
E.H 카에 대해 쓴 여러 편의 글 중에 다음과 같은 부분을 소개한다.
스탈린과 소련의 [전체주의]를 가장 오랫동안,
가장 심하게 왜곡한 사람은,
역사학자 E.H.카였다.그는 2차 대전 직전까지 스탈린과 히틀러를 동시에 옹호하였다.
공산주의와 파시즘이 자본주의와 개인주의에 대한 반발로 생긴 것이라면서,
챔벌린 영국 정부의 對히틀러 유화정책도 지지하였다.
2차 대전의 문을 연 獨蘇(독소) 불가침 조약까지도 옹호하였다.
그는 14권짜리 소련 역사를 썼는데, 왜곡의 결정판이다.
지금은 웃음꺼리가 되고 있다.
카는,
마르크시즘이 가장 성공적인 전체주의라면서
소련의 사회복지 정책은 유럽보다 더 진보적이라고 격찬하였다.
그는 소련을 비판하는 사람들을 향하여
[눈먼 사람, 치유가 불가능한 사람]이란 악담도 쏟아 부었다.
1970년대 말,
등소평(鄧小平)이 모택동(毛澤東) 노선을 버리고 개방과 개혁으로 나아가자
[퇴보적]이라고 비방하였다.노르만 앙겔은 카를 [도덕적 허무주의]라고 혹평하였다.
송두율 같은 E.H.카를 좋아하는 한국인들이 많은 것은,
미국의 리처드 파이프스는,
카의 소련 옹호는 유태인 학살 옹호와 같다고 경멸하였다.
지적(知的) 천박성의 한 증거일 것이다.
조지 오웰의 리스트에 오른 찬소(親蘇) 지식인들 가운데,
상당수는 동성연애자와 변태성욕자들이었다.
이들은 변태장면이 KGB에 약점으로 잡혀,
소련을 위한 위선적 言動(언동)을 하였을 가능성이 많다고 한다.
<변호인> 제작자들에게 조금이라도 [머리의 정직성](intellectual integrity) 이 있다면,
당시 운동권에게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책들을 집어 들었어야 한다.
바로 (빨갱이의 대부) 리영희의 <전환시대의 논리>, <우상과 이성>
그리고 박현채의 <민족경제론>이다.
리영희는
중국의
대약진(약 4천만명이 굶어 죽었다)과
문화혁명(약 천 만명이 맞아 죽었다)을 극찬하는 책을 팔아
갑부가 된 [이상한 사람]이었다.
편집자 주:
[깡통진보]의 상징인 <리영희>는,
<전환시대의 논리> <8억인과의 대화> <우상과 이성> 등의 저서에서
그런 모택동을 숭배하는 풍조를 퍼뜨렸다.<리영희>는,
이런 학살자를 찬양했다.386 운동권은,
이런 <리영희>를 정신적 사부로 모시고 있다.이런 [깡통 시류]를 추종한
노무현 대통령은
2003년 "모택동을 존경한다"는 발언을 했다.
박현채는 10대 때에 총을 들고 빨치산을 했던 사람으로서,
“자급자족 민족경제만이 진정한 경제개발에 이르는 길이다”라는
새빨간 거짓말을 책으로 써서
서교동에 빌딩을 사고 자제를 미국에 유학보낸 [이상한 사람]이었다.
편집자주 :
소설가 조정래는
자신의 광주일고 선배인 박현채의 지리산 빨치산 활동을 소설 <태백산맥>의 모델로 담았다.
그는 DJ의 저서로 알려진 <대중경제론>을 대필했으며, 그 내용은 추후 <민족경제론>이란 이름으로
자신의 저서로 다시 출판되었다.
80년대 초반까지의 운동권은
죄다 리영희와 박현채의 사상적 제자들이다.
이 책들을 집어들고 비평해야 한다.
리영희의 책은,
김일성이 표방한 [민족해방]을 합리화시켜주는 토대가 되었고,
박현채의 책은,
김일성이 표방한 [주체경제]를 합리화시켜주는 발판이 되었다.
<변호인> 제작진은,
그 당시 운동권의 머리를 망가뜨려 세뇌시킨 대표적인 두 명의 가짜 지식인—
리영희-박현채를 조명하면 금새 그 실체가 드러나니까,
초점을 카아(Carr)로 맞추고
부산 주재 영국영사관에 가서 카메라를 돌리고 지랄 난리 부르스를 땡겼다.
추잡한 사대주의로 촌놈 겁주자는 수작이다.
그래,
당신들은 그런 천박한 사대주의와,
그런 사악한 계산속으로 살아라.
당신들 인생의 총량 무게는,
사대주의와 사악,
그것을 못 벗어 난다.
노무현을 영화로 만들지 말고,
좀 쉬게 내버려 둬라.
왜?
그는,
[비극적 인물이 되어야 마땅함에도,
그 비극성에 이르지 못 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영화는 둘 중 하나가 된다.
[비극을 완성시키지 못 한 찌질이]로 비웃든가,
혹은 [비극 앞에서 주저하다 주저앉은 인물에 대한 철학적 연민]이 되든가.
전자(前者)는 사나운 정치 코메디가 되며
후자(後者)는 지루한 철학적 연민이 된다.
전자는 자살로 인생을 마감한 대통령에 대한 조롱이 되며,
후자는 흥행에 참패하는 패배가 된다.
흥행으로만 보자면
[비극을 완성시키지 못 한 찌질이]에 대한 사나운 조롱이어야 하지만…
이는 차마 할 짓이 못 된다.
그러니 노무현은 아직 영화로 다루면 안 된다.
그냥 땅 속에서 편히 쉬도록 내버려 두는 편이 낫다.
사정이 이러함에도
그들은 노무현을 소재로 정치 아지프로를 만들었다.
입으로는
“우리는 노무현을 사랑합니다”라고 떠든다.
사랑은 개뿔!
쉬고 있는 사람의 시신을 끄집어내어
[시신-곰탕국]을 우려내 먹은 사람들이다.
그들은 [지옥의 문]을 열은 것이다.
정치적으로 노무현을 싫어하는 진영에서는
이제 영화 <변호인>에 대한 반발로,
노무현을 [비극을 완성시키지 못 한 찌질이]로 사납게 조롱하는 영화를 만들 판이다.
나는 그런 사나운 영화가 만들어지지 않기 바란다.
그래서 이제 그 캐릭터의 비밀에 대해 이야기할 수 밖에 없게 되었다.
비밀을 알면 조금 덜 사나와지기 때문이다.
노무현은,
[되다만 비극]이요 [되다만 햄릿]이다.
왜 비극이 되다 말았을까?
그 싸이키(psyche)가 햄릿처럼 단단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노무현은
심한 기분변화,
현대 정신심리학 용어로
조울증(bi-polar depression)과 비슷한 성향의 기분변화를 보였던 사람이다.
이렇게 기분변화가 심한 사람은
[비극의 주인공]이 될 수 없다.
비극이란,
두 개의 진실,
두 개의 타당성이 서로 정면 충돌하는 상황이다.
상호 충돌하는 두 개의 진실을 직시하는 사람만이 비극의 주인공이 될 수 있다.
그런데,
조울증 성향은,
[진실을 마주대할 용기가 없는 심리 유형]에서 나타난다.
자기자신을 잘 속이는 심리유형에서 나타난다.
조울증은,
[우울증을 두려워한 기층심리가
짐짓, 일부러, 가짜의 흥분상태(=조증)]를
주기적으로 만들어내는 증상]이다.
자기 자신의 우울을 회피하는 인간은,
[상호충돌하는 두 개의 살 떨리는 진실]을 마주할 그릇이 못 된다.
그래서 조울증 성향의 사람은 결코 [비극의 주인공]이 될 수 없다.
뱀발:
나는 감히 노무현을 [조울증]이라고 예단하는 것이 아니다.
내게는 그럴 자격이 없다.
그러나 나는 그가 야인이었던 시절,
지방자치실무연구소를 했을 때,
무료 강사로서 봉사했던 적이 있다.
그에 관한 여러 일화를 들을 기회가 있었다.
그래서 [조울증과 비슷한 성향]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잠깐 [서로 충돌하는 두 개의 진실]이 무엇인지 상상해 볼 필요가 있다.
비극 스토리는 그리스에서 완성되었다.
삶에 깃들어 있는 원초적 비극성을 아름다운 스토리로 승화시켜낸 사람들은,
그리스인들이다.
니체(Nietzsche)는,
그리스 비극의 숨은 의미를 명확하게 꿰뚫어 본 사람이다.
그래서 그가 쓴 첫 작품이 바로 <비극의 탄생>(The Birth of Tragedy)이다.
그리스 비극의 대표적 인물인 안티고네를 보자.
그녀는 오이디푸스의 딸이다.
오이디푸스는,
아버지가 아버지인 줄 모르고 때려죽인 다음에,
어머니가 어머니인 줄 모르고 아내로 삼아
왕이 된 사나이다.
오이디푸스는 이 진실을 뒤늦게 알고 난 다음에
두 눈을 파내고 왕위를 떠난다.
오이디푸스의 매제가 왕이 되자,
오이디푸스의 아들(안티고네의 오빠)이 반란을 일으켰다 죽는다.
안티고네는 상호충돌하는 두 진실 사이에 끼어 납작하게 눌린다.
진실 1)
개판이 된 왕국을 수습하기 위해선
[반란을 일으켰다 죽은 사람(오빠)의 시체를 묻지 말아야 한다]는
관습법을 지켜야 한다.
진실 2)
인간의 도리로서,
오빠의 주검을 수습해야 한다.
이것조차 하지 않는다면,
나(안티고네)는 자기 에미랑 붙어 먹은 개새끼의 딸(오이디푸스)이란 것을
다시 한 번 증명할 뿐이다.
안티고네는 오빠를 묻어주고 죽음을 택한다.
그리스 비극의 또 한 명의 대표적 인물인 오레스테스를 보자.
그는 트로이 정벌군의 대장이었던 아가멤논의 아들이다.
아가멤논은 트로이 정벌군 대장으로서의 리더십을 확립하기 위해,
출정하기 직전에,
자기 딸 이피게니아를 인간 제물로 삼아 죽인다.
아가멤논의 아내는 이때부터 남편에 대해 깊은 원한을 품는다.
남편이 트로이에 가 있는 동안
아내는 시동생과 잠자리를 같이하며 남편을 죽일 음모를 짠다.
아내와 시동생은,
아가멤논이 전쟁에서 승리하고 돌아오자
목욕탕에서 그물을 뒤집어 씌워 제압해 놓고는 잔인하게 죽인다.
오레스테스는 상호충돌하는 두 진실 사이에 끼어 납작하게 눌린다.
진실 1)
아버지를 죽인 사람을 죽여서 아버지의 복수를 해드려야 한다.
진실 2)
아들로서 어머니를 죽일 수는 없다
어찌보면 햄릿은 덴마크 판 오레스테스이다.
(햄릿의 무대는 덴마크이다)
노무현에게도 두 개의 상호충돌하는 진실이 있었다.
1) 정치적 동지들을 배반하지 않아야 한다
2) (대통령이 되고 나니까,
이 정치적 동지란 놈들이 대부분 종친떼(종북+친북+떼촛불)임을 뒤늦게 발견했다.)
[대한민국의 대통령]이란 존재는
오직 대한민국 자체에 대한 충성 하나만을 미덕으로 삼아야 한다.
(이 미덕에서 벗어나는 순간 온갖 오욕을 뒤집어 쓰게 된다)
노무현은,
치밀한 계획에 따라 정치적 동지들을 제거해 나가기에는 너무 순진한 사람이었고,
“[대한민국의 대통령]이란 존재는
오직 대한민국 자체에 대한 충성 하나만을 미덕으로 삼아야 한다”라는
이치를 깨닫기에는 너무 부족한 사람이었다.
그래서 그는,
자기 앞에 던져진 두 개의 상호충돌하는 진실을
명징하게 마주대하지 못 했던 사람이었다.
비극적 존재는 아무나 되는 게 아니다.
두 개의 진실이 충돌하고 있다는 것을 명징하게 깨닫는 사람만,
비극적 존재가 될 수 있다.
그것을 알면서도
충돌 임팩트 속으로 몸을 던져 넣을 수 있는 담백한 용기를 가진 사람만
비극적 존재가 될 수 있다.
총명과 담백—
이것이 바로 [비극의 주인공]이 되기 위한 조건이다.
나머지는?
[불운의 주인공]이 될 뿐이다.
노무현은 불운한 사람일 뿐, 비극적인 사람이 못 된다.
우리는,
한때 엄청 인기가 좋았던 대통령이
[비극의 주인공]이 될 자격이 없이
단지 [불운의 주인공] 밖에 되지 못 한 사람이었다는
[불운] 속에 살았다.
그래서 노무현은,
까닥하면 [비극조차 되지 못 한 찌질이]로서
사나운 조롱의 대상이 되기 십상이다.
그러니 그를 제발 무덤 밖으로 파내지 마라.
나는 그가 차마 그런 조롱의 대상이 되는 꼴까지는 보고 싶지 않다.
그는 [80년대의 열기가 만들어낸 바보]로 남는 편이 우리 모두의 행복이다.
그 자신이 생전에 택했던 카피가 [바보 노무현] 아니었던가?
박성현 저술가/뉴데일리 주필.
서울대 정치학과를 중퇴하고,
미국 조지워싱턴대학교 경제학과를 졸업했다.
1980년대 최초의 전국 지하 학생운동조직이자
PD계열의 시발이 된
'전국민주학생연맹(학림)'의 핵심 멤버 중 한 명이었다.
그는 이 사건에 대해 재심을 청구하지도
민주화보상법에 따른 보상도 일체 청구하지 않았다.
한국일보 기자, (주)나우콤 대표이사로 일했다.
본지에 논설과 칼럼을 쓰며,
두두리 www.duduri.net 를 운영중이다.
저서 : <개인이라 불리는 기적> <망치로 정치하기>
역서 : 니체의 <짜라두짜는 이렇게 말했지>
웹사이트 : www.bangmo.net
이메일 : bangmo@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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