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도 바오로의 코린토 1서 말씀입니다.15,1-11
1 형제 여러분, 내가 이미 전한 복음을 여러분에게 상기시키고자 합니다.
여러분은 이 복음을 받아들여 그 안에 굳건히 서 있습니다.
2 내가 여러분에게 전한 이 복음 말씀을 굳게 지킨다면,
또 여러분이 헛되이 믿게 된 것이 아니라면,
여러분은 이 복음으로 구원을 받습니다.
3 나도 전해 받았고 여러분에게 무엇보다 먼저 전해 준 복음은 이렇습니다.
곧 그리스도께서는 성경 말씀대로 우리의 죄 때문에 돌아가시고 4 묻히셨으며,
성경 말씀대로 사흗날에 되살아나시어,
5 케파에게, 또 이어서 열두 사도에게 나타나셨습니다.
6 그다음에는 한 번에 오백 명이 넘는 형제들에게 나타나셨는데,
그 가운데 더러는 이미 세상을 떠났지만 대부분은 아직도 살아 있습니다.
7 그다음에는 야고보에게, 또 이어서 다른 모든 사도에게 나타나셨습니다.
8 맨 마지막으로는 칠삭둥이 같은 나에게도 나타나셨습니다.
9 사실 나는 사도들 가운데 가장 보잘것없는 자로서,
사도라고 불릴 자격조차 없는 몸입니다.
하느님의 교회를 박해하였기 때문입니다.
10 그러나 하느님의 은총으로 지금의 내가 되었습니다.
하느님께서 나에게 베푸신 은총은 헛되지 않았습니다.
나는 그들 가운데 누구보다도 애를 많이 썼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내가 아니라 나와 함께 있는 하느님의 은총이 한 것입니다.
11 그리하여 나나 그들이나, 우리 모두 이렇게 선포하고 있으며
여러분도 이렇게 믿게 되었습니다.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7,36-50
그때에 36 바리사이 가운데 어떤 이가
자기와 함께 음식을 먹자고 예수님을 초청하였다.
그리하여 예수님께서는 그 바리사이의 집에 들어가시어 식탁에 앉으셨다.
37 그 고을에 죄인인 여자가 하나 있었는데,
예수님께서 바리사이의 집에서 음식을 잡수시고 계시다는 것을 알고 왔다.
그 여자는 향유가 든 옥합을 들고서 38 예수님 뒤쪽 발치에 서서 울며,
눈물로 그분의 발을 적시기 시작하더니 자기의 머리카락으로 닦고 나서,
그 발에 입을 맞추고 향유를 부어 발랐다.
39 예수님을 초대한 바리사이가 그것을 보고,
‘저 사람이 예언자라면, 자기에게 손을 대는 여자가 누구이며 어떤 사람인지,
곧 죄인인 줄 알 터인데.’ 하고 속으로 말하였다.
40 그때에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시몬아, 너에게 할 말이 있다.”
시몬이 “스승님, 말씀하십시오.” 하였다.
41 “어떤 채권자에게 채무자가 둘 있었다.
한 사람은 오백 데나리온을 빚지고 다른 사람은 오십 데나리온을 빚졌다.
42 둘 다 갚을 길이 없으므로 채권자는 그들에게 빚을 탕감해 주었다.
그러면 그들 가운데 누가 그 채권자를 더 사랑하겠느냐?”
43 시몬이 “더 많이 탕감받은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하고 대답하자,
예수님께서 “옳게 판단하였다.” 하고 말씀하셨다.
44 그리고 그 여자를 돌아보시며 시몬에게 이르셨다.
“이 여자를 보아라.
내가 네 집에 들어왔을 때 너는 나에게 발 씻을 물도 주지 않았다.
그러나 이 여자는 눈물로 내 발을 적시고 자기의 머리카락으로 닦아 주었다.
45 너는 나에게 입을 맞추지 않았지만,
이 여자는 내가 들어왔을 때부터 줄곧 내 발에 입을 맞추었다.
46 너는 내 머리에 기름을 부어 발라 주지 않았다.
그러나 이 여자는 내 발에 향유를 부어 발라 주었다.
47 그러므로 내가 너에게 말한다.
이 여자는 그 많은 죄를 용서받았다. 그래서 큰 사랑을 드러낸 것이다.
그러나 적게 용서받은 사람은 적게 사랑한다.”
48 그러고 나서 예수님께서는 그 여자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죄를 용서받았다.”
49 그러자 식탁에 함께 앉아 있던 이들이 속으로,
‘저 사람이 누구이기에 죄까지 용서해 주는가?’ 하고 말하였다.
50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 여자에게 이르셨다.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평안히 가거라.”
지난 8월 24일에 성가대에서 ‘한 여름 밤의 작은 음악회’를 준비했습니다. 합창곡으로 ‘바람의 노래와 다시 살아나신 주’를 준비하였고, 9명의 단원이 독창을 준비하였습니다. 합창이 멋진 화음과 넘치는 열정을 보여주었다면, 독창은 내면의 깊이와 영혼의 울림을 보여주었습니다. 성악을 전공한 지휘자의 가르침과 그 가르침을 잘 따르는 단원들이 만들어낸 ‘한 여름 밤의 작은 음악회’였습니다. 태양을 중심으로 9개의 행성이 빛을 내듯이, 지휘자를 중심으로 9명의 단원이 위로와 용기의 빛을 전하였습니다. 믿음과 사랑의 빛을 전하였습니다. 감사와 찬양의 빛을 전하였습니다. 그날에 ‘임마누엘 어린이 합창단’이 문을 열었습니다. 19명의 어린이가 고운 목소리로 주님을 찬양하기 위해서 모였습니다. 아모르 성가대가 현재의 빛이라면, 임마누엘 어린이 합창단은 미래의 빛이 될 것입니다. 주님께서 함께 하시는 성가대가 아름다운 노래로 주님의 사랑을 전한다면 그것 또한 복음입니다.
오늘 독서에서 바오로 사도는 ‘복음’에 대해서 이야기합니다. 복음의 뜻은 전쟁에서 승리한 소식을 가져오는 ‘군인’이었다고 합니다. 전쟁이 끝나기 때문에 복음입니다. 군인들이 고향으로 돌아오기 때문에 복음입니다. 승리한 전쟁으로 평화가 지켜지기 때문에 복음입니다. 우리들 개인의 삶에도 복음이 있습니다. 냉랭하던 여인이 마침내 청혼을 받아들였다면 마음 졸이던 남자에게 복음입니다. 오랜 기다림 끝에 태어난 아이의 울음도 엄마에게는 복음입니다. 군 생활을 마치고 마침내 다가온 제대의 날은 복음입니다. 서류 미비자에게 마침내 주어지는 그린카드는 복음입니다. 의식불명의 상태에서 마침내 눈을 뜨고 깨어난 환자의 미소는 가족들에게 복음입니다. 제게도 복음이 있었습니다. 신학교 벽보에 쓰여 있던 저의 이름이 복음이었습니다. 제가 신학교에 합격했음을 알리는 이름이었습니다. 항상 기도하고, 언제나 감사하고, 늘 기뻐하는 사람에게는 매일매일이 복음일 것입니다.
교회는 복음을 3가지 의미로 설명합니다. 첫 번째는 예수님께서 선포하신 ‘하느님 나라’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하느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너희는 회개하고 복음을 믿어라.” 이사야 예언자는 하느님의 나라를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그때 눈먼 이들은 눈이 열리고 귀먹은 이들은 귀가 열리리라. 그때 다리 저는 이는 사슴처럼 뛰고 말 못 하는 이의 혀는 환성을 터뜨리리라. 광야에서는 물이 터져 나오고 사막에서는 냇물이 흐르리라. 그들은 환호하며 시온에 들어서리니 끝없는 즐거움이 그들 머리 위에 넘치고 기쁨과 즐거움이 그들과 함께하여 슬픔과 탄식이 사라지리라.” 하느님의 나라는 하느님의 의로움과 하느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나라입니다. 두 번째는 예수님께서 보여주신 말씀과 표징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회당에서 이사야 예언자의 말씀을 읽었습니다. 말씀은 이렇습니다. “주님께서 나에게 기름을 부어 주시니 주님의 영이 내 위에 내리셨다. 주님께서 나를 보내시어 가난한 이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고 잡혀간 이들에게 해방을 선포하며 눈먼 이들을 다시 보게 하고 억압받는 이들을 해방시켜 내보내며 주님의 은혜로운 해를 선포하게 하셨다.” 그리고 이 말씀이 지금 이루어졌다고 선포하셨습니다.
세 번째는 오늘 바오로 사도가 선포한 복음입니다. 바오로 사도는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성경 말씀대로 우리의 죄 때문에 돌아가시고 묻히셨으며, 성경 말씀대로 사흗날에 되살아나시어, 케파에게, 또 이어서 열두 사도에게 나타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복음은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서 죽었지만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우리를 기쁘게 하는 것은, 우리를 구원에로 이끄는 것은, 우리를 행복에로 이끄는 것은 보는 것이 전부가 아닙니다. 하느님의 말씀을 믿는 것, 힘들고 어려운 이웃과 함께 하는 것, 세상을 긍정의 눈으로 바라보는 것, 바로 이런 것들을 통해서 우리는 눈에 보이는 것을 넘어 참된 진리를 볼 수 있습니다.(조재형신부)
오늘의 묵상
어제 독서에서 보았던 것을 오늘 복음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복음에 나오는 바리사이는 소란한 꽹과리와 같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율법을 열심히 지키고 기도와 단식과 자선도 실천하는 사람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하느님께 무엇을 받았다고 생각하기보다 자신이 하느님께 드리는 것, 자신의 공로를 생각하기 때문에 하느님께 감사드리거나 하느님을 사랑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니 그가 실천한 율법과 기도와 단식과 자선은 영원히 남을 수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 반면 그의 집으로 예수님을 찾아와 발을 닦아 드린 여자는 선행도 공로도 내세울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자신의 죄를 용서하여 주시는 하느님의 은혜를 알았기에 많이 사랑하였고, 그 사랑은 천국에서까지 남아 있을 것이었습니다. 그 여자의 죄가 사라지고 나면, 예수님께 보여 드린 그 사랑은 길이 남을 것입니다.
“이 여자는 그 많은 죄를 용서받았다. 그래서 큰 사랑을 드러낸 것이다.”(루카 7,47)라는 말씀이 눈에 띕니다. 예수님께서는 그 여자가 큰 사랑을 드러내었기 때문에 많은 죄를 용서받았다고 하시지 않고, 많은 죄를 용서받았기에 큰 사랑을 드러내었다고 말씀하십니다. 하느님께 드리는 사랑이 순전히 인간 자신에게서 시작된다면 그 사랑이라는 것도 또 하나의 업적이 될 것입니다. 그런데 그 사랑의 출발점은 하느님이십니다. 먼저 사랑하여 주신 하느님의 사랑을 깨달을 때 비로소 하느님을 사랑하게 됩니다.
오늘도 바오로 사도는 하느님께서 베풀어 주신 은총으로 지금의 자신이 되었고 복음을 선포하였으며 신자들이 자신을 믿게 되었다고 말합니다. 그는 많은 사람에게 복음을 전하여서 은총을 받은 것이 아니라 은총을 받았기에 복음을 전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안소근 실비아 수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