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Daum
  • |
  • 카페
  • |
  • 테이블
  • |
  • 메일
  • |
  • 카페앱 설치
 
카페정보
대륙 조선사 연구회
 
 
 
카페 게시글
역사토론방(출처있는글) 흑룡회의 지나 한족에 대한 견해...
김병섭 추천 0 조회 1,239 11.09.14 15:14 댓글 21
게시글 본문내용
 
다음검색
댓글
  • 11.09.14 15:21

    첫댓글 어느 시기의 역사 이야기인가요??? 이주(移住) 시기요...

  • 작성자 11.09.14 15:33

    이 논문에서는 어느 시기라고 나와있지는 않는데... 최소한 한나라 이전이 아니겠습니까? 한민족이라는 말이 쓰이는 것을 보면...

  • 11.09.14 15:35

    이주(移住)하기 전에 이미 "漢"이라는 낱말을 사용하였나요?
    아니면, 그것이 동(東)-아시아에 정착한 후에 붙여진 이름인가요?

  • 작성자 11.09.14 15:36

    모르겠습니다. 이 논문에는 소개된 것이 이것이 다입니다.

  • 작성자 11.09.14 15:35

    천지이변.... 바이블에 나온 노화의 홍수와 연결되는 대목 같습니다. 중앙아시아의 서사시에도 비슷한 내용이 등장한다고 하는데... 중앙아시아가 사과의 원산지라고 하죠...

  • 11.09.14 15:38

    그렇다면, 그러한 "바이블"의 이야기를 가지고 동(東)쪽으로 온 것은 "漢"이겠죠???

  • 11.09.14 15:39

    한민족(漢民族)은 서부-아시아에 거주하고 있을 때 이미 이집트, 페르시아, 인도의 문화를 섭취하고 상당히 진보한 민족이었음에 틀림없다.
    --------
    관련성이 있군요...

  • 작성자 11.09.14 15:45

    중앙아시아에 전해지는 서사시가 서로 가서 바이블에 영향을 주었을 수도 있습니다. / 아무튼 중요한 것은 이들의 인식에 근거하면 중앙아시아가 예전에는 살기 좋았고 거기에서 동이족이 대문화를 건설했으나... 천재이변으로 황하로 남하했다가... 서부에서 온 한족에 밀려 만주와 몽골 등에 거주하면서 한족과 싸워왔다는 것입니다.

  • 작성자 11.09.14 15:47

    한민족의 터전은 중앙아시아-몽골-만주-한반도-열도라는 인식입니다. 이들은 대화민족이라는 말을 쓰고 있지만... 다 근대어이고... 지나 한족과는 다른 아시아의 원래 민족의 터전이 이곳이고... 황화까지 개척한 것이 한민족이라는 것이지요...

  • 11.09.14 15:52

    동(東)-아시아에는 그 당시 이미 다른 민족(인민?) 곧 야마토(大和) 민족(인민?)이 있었다는 이야기이지요???

  • 작성자 11.09.14 15:56

    그렇게 밖에 해석이 안 됩니다. 아시아의 원래주인은 동이족이라는 것입니다.

  • 11.09.14 16:06

    1932년 무렵에 쓰여진 글이므로, 일제(日帝)의 지나(支那) 대륙 침략을 정당화하는 수단으로 이용되었겠네요...

  • 11.09.14 23:39

    본토를 일본으로 연결한 것은 대놓고 정치적이지만 다른 내용은 용어만 바꾸면 환단고기와도 비슷한거 같고 일본이라는 복잡한 정체를 고려해보면 진실을 드러내서 또 다른 일파가 정치적으로 이용했다고도 볼수 있을듯합니다. 아주 흥미로운 자료입니다.

  • 작성자 11.09.15 20:54

    이 글은 1932년에 작성되었으나 이들의 창립과 주된 활동은 이조 말엽입니다. 일진회를 배후조정했는데 이들의 주장이 먹혔습니다.

  • 11.09.15 23:02

    흑룡회(黑龍會)는 1901년에 만들어졌네요... 대한제국(大韓帝國) 시대이고요...

  • 11.09.15 22:52

    흑룡회(黑龍會)는 1901년 2월 조선에서 활동하던 일본의 낭인 집단인 천우협(天佑俠) 소속의 우치다 료헤이[內田良平], 요시쿠라 오세이[吉倉汪聖], 타케다 한지[武田範之] 등이 일본의 대외침략주의 이념을 실현하기 위해 조선·만주·시베리아에서 활동하고 있던 낭인들을 규합하여 조직했다.
    흑룡회(黑龍會)는 대로개전론(對露開戰論)을 열렬히 주창하는 한편, 조선병합론을 더욱 발전시켜 이른바 대아시아주의를 제창했다. 대아시아주의는 만주·몽골·시베리아 지역까지 일본침략의 외연을 넓힌 것으로, 인종적·문화적 동질성에 기반을 둔 철저한 민족말살의 대륙침략론이었다.
    [출처=다음 백과사전]

  • 11.09.15 22:55

    흑룡회(黑龍會)는 한국병탄(韓國倂呑)에 앞장섰고, 이를 위해 일진회(一進會)를 배후에서 조종하였다.
    병탄 이후에는 만주와 일본 등지에서 한국인 학살을 주도하고 대동아공영권을 주장하였다.
    1920년대 ~ 1930년대에는, 주류 정치단체로 성장하여, 공공연하게 자유주의와 좌익사상을 공격하였다. 이 시기의 회원 수는 수십 명 정도가 넘지 않았으나, 정부와 군부, 재계의 유력인사와의 밀접한 연계로 다른 초국가주의단체보다 훨씬 큰 힘과 영향력을 행사하였다.
    1930년대에는, 초기의 목표였던 러시아에서 유럽과 미국은 물론, 에티오피아, 터키, 모로코, 동남아시아와 남아메리카에까지 활동영역을 넓혔다.
    [출처=위키백과(한국어)]

  • 11.09.17 02:06

    낭인출신의 조직치고는 스케일이 매우 크고 이상과 지적 수준이 남다르네요. 아마도 이들은 시온의정서의 내용도 알고 있지않았을까합니다. 자유주의와 공산주의라는 두 이념 체계가 만들어내는 내분속에서 정신 못차리고 있는 어리석은 반도인들은 꿈도 못꿀 일이죠. 조선인을 학살하고 아시아 패권을 차지하려다가 결국 더큰 조직에 의해 와해되었겠죠. 그들의 아시아를 강탈하려던 과정에 생겨난 비극은 비판받아야하지만, 오늘날 아시아가 유럽,미국에 의해 유린당하는 것을 보면 이상자체로만 보면 결코 나쁘다고는 할 수 없습니다. 과학기술을 천대하고 세계 최강이라는 자만심에 빠져살던 조선은 결국 망할수 밖에 없었습니다.

  • 11.09.15 23:09

    日韓連邦の構想と挫折
    また、日韓連邦建設によって、欧米列強諸国からアジアの独立を護ろうと主張した樽井藤吉の著書、『大東合邦論』に共鳴した、韓国で発生した農民革命運動である東学党の乱の指導者の一人である、韓国一進会の会長李容九と共に、内田良平や武田範之らの黒龍会の会員たちは、日韓連邦建設日韓合邦論を叫んで、日韓が力を合わせ白人の東洋侵略に対抗するべく運動を展開した。
    [출처=위키백과(일본어)]

  • 11.09.15 23:10

    (계속)
    日韓合邦運動は結果的に、日本政府に利用され騙されて、日韓両国が平等に連邦を建設しようという合邦は併合に摩り替えられて、日韓併合への道を拓いた。 そのことに対して、内田良平をはじめとする黒龍会の会員たちは、その道義的な責任を感じて、同光会を結成して、朝鮮統治改革運動を展開して、朝鮮に高度な自治権を施し、朝鮮人にも参政権を与えるべきだと主張した。その結果、朴春琴など朝鮮人の国会議員も戦前には存在していた。
    [출처=위키백과(일본어)]

  • 11.09.15 23:18

    당초의 연방(連邦) 또는 합방(合邦)은 나중에 "병합"(併合)으로 바뀌었다는 내용이네요...

최신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