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어제 국회에 총리해암권고안과 이재명의원 체포안이 동시에 상정되었다고 합니다.
그럴만한 사유가 있으니 국회에 올려진 것이겠으나
이를 두고 걱정하는 목소리들이 세상 시끄러우니 문장을 살펴보게 됩니다.
언론에 나왔던 문장은 '불체포특권을 포기하겠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어제는 단식을 이어가는 병상에서 본인에 대한 체포동의안 부결을 부추겼다고 하네요.
당나라의 시인이자 승려였던 가도(賈島)가 나귀를 타고 가다 시 한수를 지었는데
'鳥宿池邊樹 僧推月下門(새는 연못가 나무에 자고 중은 달 아래 문을 민다)'라는 구에서
'밀다(推)'라고 쓸까 '두드리다(敲)'라고 쓸까를 고민하다
때마침 지나가는 한유(韓愈)의 행차를 가로막는 실수를 합니다.
가도가 사정을 말하자 한유는 '퇴(推)보다 고(敲)가 좋겠다'라고 말하죠.
여기서 만들어진 말이 '퇴고(堆敲)'입니다.
이런 한유와의 만남이 승복을 벗는 계기가 되기도 하죠.
전문적으로 글을 쓰는 사람이라도 단번에 글을 쓰기란 쉽지가 않을 텐데
그렇지 않은 사람은 글 몇 줄 쓰는 게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닐 겁니다.
게다가 우리말이란 게 쓰잘 데 없이 까다로운 맞춤법 때문에 더욱 더 그렇습니다.
오늘 이야기는 정치인의 '초고'와 '원고'에 대한 것입니다.
생각나는 대로 글을 써놓고 뺄 건 빼고, 보탤 건 보태고,
고칠 건 고쳐야 비로소 글이 완성됩니다.
이렇게 다듬는 것을 '윤문(潤文)'이라 하는데요,
윤문을 하지 않은 처음의 원고를 '초고'라 하는데요, '初稿'가 아니라 '草稿'라 씁니다.
작품이나 지면에 실을 글과 달리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어떤 사실을
처음 본 대로 간략하게 쓴 글을 '초기(草記)'라 합니다.
어떤 일을 하려면 초안을 잡아야 하죠?
'처음 만든 간단한 안건'이란 뜻의 '초안'도 '初案'이 아니라 '草案'이라 씁니다.
이밖에도 지도나 도면 따위의 처음 대강 그린 그림을 '초도(草圖)'라고 하며
단청을 위해 그린 밑그림을 '초상(草像)'이라 합니다.
'처음'이라는 뜻으로 쓰인 '草'는
단순하게 처음을 이르는 '初'와 달리 '만들다'라는 뜻이 내포되어있습니다.
'초록'이라는 말이 있죠.
처음 쓴 기록이라는 뜻으로 '草錄'이라 쓸 수도 있겠지만 쓰지 않는 말입니다.
'초록'은 한자로 '抄錄'이라 씁니다.
'抄'는 '초본(抄本)'이라는 말에서 보듯 '가려뽑을 초'입니다.
따라서 '초록(草綠)'이란 '가려 뽑은 기록'이라는 말입니다.
'원고'는 한자로 '原稿'라 쓰는 데요, '稿'는 '볏짚 고'입니다.
볏짚의 용도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가마니나 새끼, 멍석 등을 만드는 용도로도 쓰이죠.
볏짚은 이러한 물건을 만드는 원자재가 되므로
'완성되지 않은 글'을 뜻하는 말로 가차하여 쓰이는 것입니다.
따라서 '원고(原稿)'의 문자적인 뜻은 '원래의 완성되지 않은 글'입니다.
이 말이 책으로 엮을 '원본의 글'이라는 뜻으로 쓰이는 것입니다.
우리나라의 위대한 역사유물 가운데 <조선왕조실록>이 있습니다.
실록을 만드는 과정은 이렇습니다.
사관(史官)들이 기록한 사초(史草)를 두 벌을 만들어
한 벌은 자신들이 보관하고, 한 벌은 춘추관에 제출합니다.
이렇게 제출된 사초(史草)를 모아 승정원일기 등을 참고하여 초초(初草)를 만들고,
이를 다듬어 중초(中草)를 편찬한 다음 다시 한 번 수정하여 실록을 완성합니다.
광해군 때(선조실록) 부터는 실록이 완성되고 나면 사초, 초초, 중초 등을 모조리 없애는데요.
없애는 방법이 자하문 밖 조지서에서 물로 씻는 것입니다.
먹만 씻어 내고 종이는 재생하는 것이죠.
이렇게 사초를 씻는 것을 '세초(洗草)'라 합니다.
민의의 전당 국회에서는 일어나는 모든 의사진행을 속기록으로 남깁니다.
언론 인터뷰에서는 가끔 정제되지 않은 발언이 나타나기도 합니다.
구설이 되면 실언이라고 변명과 함께 수정 내지는 정정 보도가 나옵니다.
그러나 의정 질문과 대답이라면 일단 가다듬었다고 봐야지요.
지나간 역사를 다시 고쳐 쓸 수는 없겠지만,
이미 써 놓은 글이라 할지라도 가다듬을 수는 있었지 않을까요?
실수든 실언이든 과거사를 뒤짚을 때는 스스로 잘못을 인정해야지요.
그게 용기있는 일일 것이며, 신뢰를 되찾을 기회일 것입니다.
어쨌거나 초고든 원고든 윤문을 거쳐
작은 실수라도 되짚어보는 일도 바람직한 습관일 듯 합니다.
고맙습니다.
-우리말123^*^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