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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명목상으로나마 악인의 철학에 대해서 밝히고 있는 최초의 책이다. 책에 따르면 자신들이 밀고와 날조를 행하여 있지도 않은 죄를 만들어내고, 그로써 다른 이들을 모략하는 이유는 모두 ‘황제의 뜻’에 맞추기 위해서라는 것이다. 아니 적어도 그렇게 보여져야만 한다. 이른바 악인의 품격이다. 이들에 따르면 ‘행동의 이유를 갖춘’ 악인은 악을 저지를 때 당당해야 하며, 저지르는 동안과 후에도 아무런 낌새를 주지 말아야 한다. 그 외에도 책은 이른바 ‘모략 지침서’로서의 『나직경』의 모습을 우리에게 하나씩 제시한다. 우리에게는 『맨 얼굴의 중국사』로 유명한 빠이양(柏楊) 선생은 이 책에 관해 “겨우 16년의 역사를 가진 무측천의 주왕조가 인류 문화에 끼친 가장 큰 공헌은 바로 『나직경』이다”라고 주장하고 있기도 하다. 그렇다면 보통 사람인 우리들이 보는 악인의 모습은 과연 무엇일까?
저자 : 쉬후이
저자 쉬후이(許暉)는 1969년 허난성에서 태어났다. 세계 이곳저곳을 돌아다닌 후 베이징에서 떠돌이 생활을 하다가 윈난 따리에 정착하여 역사 분야의 집필 활동에 전념하기 시작했다. 찾을 수 있는 모든 사료를 활용하여 역사의 흐름을 가로세로로 교차하는 그의 역사 서술은 내용의 풍성함과 참신함, 저자 특유의 날카로운 해석이 어우러진 역사 분야의 새로운 저술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거대한 역사적 사건을 배경으로, 그 시대를 살아갔던 각계각층 인물들의 삶을 ‘마치 한 편의 CF를 찍어내듯’ 강렬하게 제시하는 그의 저작들은 소설적 상상력과 역사를 예리하게 꿰뚫는 통찰력으로 대중과 평단의 시선을 동시에 끌어당기고 있다. 사회?권력?욕망 앞에 놓인 보편적 인간의 모습을 성찰하게 만드는 강렬한 서사이자 설득력 있는 역사서이기도 하다.『‘60년대’ 기질「六十年代」 氣質』, 『중국 역사의 뒷문中國歷史的後門』을 책임 편집했으며, 『난세의표본亂世的標本』 , 『신체적 미술: 중국 역사의 신체정치학身體的媚術?中國歷史上的身體政治學』, 『재미있는 역사 이야기趣讀史記』 시리즈(공저), 『대당시대가장 문제적 인간 30인大唐盛世最有爭議的30個人』(공저) 등 10여 권의 책을 집필했다.
역자 : 이기흥
역자 이기흥은 1948년 평안남도 순천에서 태어나 한국 전쟁 중 가족과 함께 월남하여 남쪽에 정착했다. 중등학교에서 국어를 가르치는 동안 틈틈이 중국의 인물에 관심을 가지고 공부해왔다. 『난세기담30』은 그동안 우리말로 옮긴 여러 중국어권 작품 가운데 독자에게 보내는 첫 번째 작품이다.
1 적반하장賊反荷杖, 도둑이 도리어 몽둥이를 들다
1. 주군을 요리해 그의 아들에게 먹인 철새 정치인 한착 10
2. 나라의 병사를 써서 강도질로 돈을 모은 희대의 부자 석숭 24
3. 자신의 과거를 소설로 미화한 바람둥이 대시인 원진 41
4. 형을 죽이고 역사서를 뜯어고친 쿠데타 출신 황제 조광의 56
역사는 진실을 말하지 않는다 - 희극의 주인공으로만 기억되는 역사의 인물 정교금 72
2 면후심흑面厚心黑, 얼굴은 성벽처럼 두껍고, 마음은 석탄처럼 검다
5. 나라를 바꾸어가며 미인을 차지한 고약한 사내 무신 86
6. 밀고와 무고로 세상을 뒤흔든 페르시아 출신 고문 전문가 삭원례 96
7. 자신을 포장하여 두 나라를 뒤흔든 고려 출신 공녀 기씨 110
8. 벌거벗고 거리를 달린 주정뱅이 황제 고양 122
3 종남첩경終南捷徑, 아닌 체하는 자가 도리어 이득을 탐하다
9. 미모와 학식으로 세상을 취하게 만든 공리공담의 창시자 하안 140
10. 은둔을 무기삼아 부귀영화를 누린 거짓 은자 종방 161
11. 반역을 꾀하다 4천2백 번 칼질을 당한 환관 유근 178
역사는 진실을 말하지 않는다 - 납치된 황녀를 사칭한 비운의 여인 이정선 194
4 교토삼굴狡兎三窟, 영리한 토끼는 굴을 세 개 마련한다
12. 나라를 팔고도 황제의 감사를 받은 황제의 처남 가사도 208
13. 세 치 혓바닥으로 희대의 간신을 구워삶은 음모가 조고 222
14. 존재하지 않는 것들로 한무제를 속인 박수무당 난대 242
15. 국적을 바꿔가며 살아남은 시대의 용병 이전 258
5 양조영수?朝領袖, 충의를 버리고 자신만을 위하다
16. 자신의 목숨을 위해 두 나라를 섬긴 유학의 태두 전겸익 280
17. 환관과 부부가 되어 반역을 도모한 황제의 유모 객씨 298
18. 임산부의 배를 가른 삼촌금련의 발명자 소보권 310
19. 쿠데타로 즉위하고 쿠데타로 실각한 황제 이융기 320
6 단수지벽斷袖之癖, 그릇된 욕망으로 화를 부르다
20. 황후를 독살한 후 태자를 독살하려 한 욕망의 화신 곽씨 344
21. 아버지를 쫓아내고 나라가 망하도록 재물을 모은 황후 유씨 356
22. 소유욕 때문에 사형당한 사법 살인의 피해자 여류시인 어현기 368
23. 천하를 이어받을 뻔한 황제의 남자 애인 동현 381
역사는 진실을 말하지 않는다 - 간통 사건으로 권력에 희생된 대당서역기의 필사자 변기 392
7 시인인야猜忍人也, 시기심이 강하고 잔인하다
24. 아들을 요리해 바쳐 권력을 얻은 요리사 역아 408
25. 본처를 돼지로 만들어 아들에게 먹인 최고의 악녀 여치 423
26. 마누라 죽이고 출세한 희대의 병법가 오기 435
27. 호의도 악의로 갚은 못생긴 여인 가남풍 449
옮기고 나서 473
부록
중국 역대 왕조 왕계표 475
참고 문헌 504
고대현대중국지명발음대조표 510
성벽처럼 두꺼운 얼굴, 석탄처럼 검은 마음으로 중국역사를 수놓은 기인들의 이야기!
인간의 역사, 권력 속 인간의 역사는 희비극의 무한반복사다!
기상천외한 악인들의 전모를 통사적으로 적나라하게 파헤친다!
“성벽처럼 두꺼운 얼굴, 석탄처럼 검은 마음으로 5천년 중국역사를 수놓은
기상천외한 인간들의 전모를 치밀한 역사적 고증과 상상력으로 파헤친 역작!”
악인은 타고나는 것인가, 만들어지는 것인가?
악인(惡人). 악인의 사전적 정의는 ‘남을 해치려 하거나 미워하는 악한 사람’이다. 악인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늘 우리 곁에 존재해왔다. 『난세기담 30』에 등장하는 몇몇 악인들은 그야말로 상상을 초월하는(?) 엽기적이고 기이한 악행을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저지른다. 황제에게 잘 보이려고 자신의 친아들을 쪄서 요리로 바친다거나, 단지 아들인지 딸인지 궁금하다는 이유로 멀쩡히 살아있는 임산부의 배를 갈라서 확인하고, 출세를 하기 위해 자신의 부인을 죽여버리는 등 보통 사람으로서는 도저히 행할 수 없는 지독하고도 엽기적인 악행이다.
때론 악인이 악인에 의해 비참한 결말을 맞이하기도 한다. 자신이 당했던 폭행을 자신의 종에게 그대로 가함으로써 사형당한 여류시인 어현기는 당대의 법 기준에 맞춰보면 사실 지나친 판결을 받은 사람이다. 어현기를 흠모하던 당대의 권력자들이 ‘내가 갖지 못할 바에야 차라리’라는 심정으로 징역 1년 정도의 형벌을 부풀려 사형을 언도해버린 것이다.
게다가 악인으로 평가받지만 사실상 악인이 아닌 사람도 있다. 『대당서역기』의 필사자인 변기는 공주와의 간통으로 사형을 당하지만 그 내용을 살펴보면 간통 역시 존재하지 않았으며, 그저 권력 다툼의 사이에서 희생양으로 처벌된 것에 불과하다. 우리에게는 일대 여걸로 알려지기도 한 고려인 공녀 출신 ‘기황후’의 경우 저자는 ‘근본을 버리고 고국인 고려를 침략한 점’에서 그 악의 근원을 찾고 있지만, 내면을 따져보면 그녀는 외국인이면서 권력의 자리에 머물러야 했던 강박 관념의 희생양으로 풀이할 수도 있다. 그리고 어떤 이는 갈 데 없는 악인이면서도 세인의 존경과 명예를 한 몸에 받고, 평안함 속에서 조용히 세상을 뜨기도 하는데, 책을 읽어보면 불행히도 이러한 이들이 응분의 처벌을 받은 이의 수에 거의 필적한다.
이쯤에서 우리는 한번쯤 의문을 가지지 않을 수 없다. 과연 악인의 유전자는 선천적으로 타고나는 것인가? 아니면 살아가면서 만들어지는 것인가? 아니, 어떤 사람이 악인이며, 어떤 사람이 악인이 아닌가? 악인은 언제나 응분의 대가를 받는 것일까? 책 속에 나오는 30인의 인물들은 각자의 시대에서 악인이기도 했고, 때론 사람들에게 선인으로 추앙받기도 했지만 오늘날 역사가의 판단에 따르면 모두 더할 나위 없는 악인이다. 저자에 따르면 난세에 이러한 악인들이 두드러지게 나타나며, 바꾸어 말하면 이런 악인들이 있기에 난세가 더욱 난세가 된다는 것이다. 책 속에는 난세가 만들어낸 인간들과 난세를 만들어낸 인간들이 모두 등장한다. 어떤 이들은 그 악행에도 불구하고 평화로운 인생을 살며, 어떤 이는 전혀 악하지 않았지만 악인의 꼬리표가 붙어 있기도 하다. 그러나 판단은 어디까지나 이 책을 읽을 독자의 몫이다. 저자의 말에 따르면, ‘역사가조차 때로는 실수하고 마는 것’이니까.
중국 역사상 최고의 기상천외한 악마성을 대표하는 30인의 적나라한 전모!
현대 중국의 신예 역사 칼럼니스트이자 기인이기도 한 저자 쉬후이는 이 책, 『난세기담30』을 통해 역사서 속에서 발굴해낸 30여 인의 이름들을 ‘악’이라는 이름 앞으로 우리 앞에 소환해놓는다. 그러나 ‘악’이라고는 해도 앞에서 보았듯, 저자가 말하는 악은 그리 단순하지만은 않다. 오히려 우리가 주목해야 할 점은 이들 악인이 세상 속에서 살아가는 모습이다.
저자가 제시하는 악인들 속에서 우리는 오늘날 우리 곁에서 볼 수 있는 이들의 모습들을 어렵지 않게 발견해낼 수 있다. 국적을 이리저리 바꾸며 권력을 추구하는 철새정치인은 물론이거니와, 권력을 이용하여 소위 ‘강도질’로 돈을 모은 부자 이야기, 부정한 자신을 숨기기 위해 ‘역사를 날조’하는 황제며 쿠데타로 즉위한 후 사랑하는 여인과 함께 쿠데타로 패망한 황제 이야기까지. 때론 선한 이이지만 무고로 인해 악인으로 지탄받게 되는 사람까지 존재한다. 나라가 망할 때까지 재산을 모아댔다가 나중에 내 재산은 고작 ‘화장대 하나뿐’이라고 주장하는 황제의 부인 유씨에 이르면 역사의 반복에 그만 할 말이 없어진다. 역사가 희비극을 반복하며 끝없이 순환하는 까닭은 바로 역사 속을 사는 인물이 과거를 잊고 같은 실수를 저지르기 때문은 아닐까? 그 실수가 지극히 고의적인 것일지라도 말이다.
인간의 역사, 특히 권력을 가운데 둔 인간의 역사는 희극과 비극의 무한반복사다!
우리나라 숙종 2년, 소현세자의 유복자를 자청하는 처경(處瓊)이란 자가 나타났다. 그는 “낳을 때에 모친 강빈이 손수 생년월일을 써서 주었으며 민간에 숨어서 자라났다”고 주장하며 ‘소현세자 유복자 을유 사월 모일생’이라고 씌어 있는 글을 조정에 올렸다. 의문의 죽음을 당했던 소현세자의 숨겨진 아들이 나타나자 온 나라가 떠들썩했지만, 조사 끝에 결국 거짓으로 판명되었다. 유일하게 살아남은 소현세자의 아들 경안군의 출생일과 처경의 출생일이 고작 7개월 차이밖에 나지 않았던 것이다.
이와 비슷한 일이 중국의 남송 고종 시대에도 일어났다. 남송이 생긴 지 4년째 되던 해, 현 황제인 고종 앞에 4년 전 금나라에 납치됐던 이복누이 유복제희라고 주장하는 여인이 나타났던 것이다. 고작 4년 전 일이라 진위를 판단하기 쉬울 것 같았지만 그럴 수 없는 사정이 있었다. 당시에는 조정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금나라로 끌려갔기에 조정에 유복제희를 뚜렷히 기억하는 사람이 거의 없었고, 게다가 고종의 아버지인 휘종의 자식은 무려 70여 명, 정작 고종 자신도 예전에 유복제희를 본 적이 없었던 것이다. 결국 여러 차례에 걸친 조사 후 그 여인은 진짜로 인정을 받고 고종의 사랑을 한몸에 받게 되지만 그로부터 12년 후, 고종의 생모가 금나라에서 돌아오자 새로운 사실이 밝혀지고 만다. 지금의 유복제희는 가짜라는 것이다.
당연한 수순처럼 가짜 유복제희는 사형을 당하고 말지만 저자는 여기에서 또 다른 반전을 우리 앞에 제시해놓는다. 고종의 생모와 유복제희는 금나라에서 같이 관기 생활을 했으며, 이 부끄러운 사실을 은폐하기 위해 유일한 목격자인 유복제희를 가짜로 몰아 죽여버렸다는 것이다. 이렇게 역사적 기록은 유복제희를 악인으로 정의해버렸지만, 저자는 치밀한 사료 분석을 통해 역사를 뒤엎는 새로운 사실을 발굴해낸다.
악인도 나름의 품격과 철학이 있어서 악인의 등급을 구분짓게 한다
악인과 악인이 서로 꼬리를 물고 얽힌 유복제희 사건과 달리, 모두가 명백한 악인이라 인정하는 악인의 얘기 역시 존재한다. 측천무후 시대, 삭원례라는 페르시아인은 의붓아들인 설회의(그는 측천무후의 남자 애인이었다)의 추천으로 하루아침에 오늘날 ‘검찰총장’에 해당되는 직위에 올라 수천 명에 달하는 사람들을 죽음으로 몰아넣는다. 그가 주로 사용한 방법은 ‘밀고에 의한 구속’과 ‘고문에 의한 증거날조’였다. 죄가 있고 없고는 그에게 중요하지 않았고 오직 황제의 마음에 맞춰 사람들을 잡아들였으며, 그 결과 권력의 총애를 한몸에 받아 승승장구했다. 오늘날 정권의 초기나 말기에도 종종 등장하는 전형적인 악인이랄까? 그러나 비록 사대를 공포에 떨게 한 악인이기는 해도 오늘날 자주 보는 이러한 악인이 우리의 앞에 제시되는 것은 그가 남긴 『나직경』이라는 열두 권의 책 때문이다.
“사건이 크지 않으면 사람들을 놀라게 할 수 없다. 또 사건에 연루된 사람이 많지 않으면 자랑할 공로가 없어진다.”
- 『나직경』 중에서
삭원례가 나준신과 함께 펼쳐낸 『나직경』은 오늘날 최초의 ‘고문 관련 서적’이자 ‘탐관오리의 처세 철학 서적’으로, 외국인이면서도 중국 문화에 대해 보이는 해박한 이해와 인간에 대한 강렬한 통찰이 오늘날 우리들을 놀라움에 젖어들게 한다. 더구나 이 책은 흔히 ‘권력의 개’ 정도로 멸시받는 이들에 대한 구체적 행동지침서, 그것도 최초의 책이라는 점에서 남다른 의미가 있다.
“『나직경』은 사악한 지혜를 집대성한 계략 전서이다. 더구나 간신이 충신보다 무슨 까닭으로 훨씬 더 잘 사는지 그 수수께끼, 즉 권모술수와 후흑에 대하여 처음으로 밝힌 책이다.”
- 본문 중에서
게다가 이 책은 명목상으로나마 악인의 철학에 대해서 밝히고 있는 최초의 책이다. 책에 따르면 자신들이 밀고와 날조를 행하여 있지도 않은 죄를 만들어내고, 그로써 다른 이들을 모략하는 이유는 모두 ‘황제의 뜻’에 맞추기 위해서라는 것이다. 아니 적어도 그렇게 보여져야만 한다. 이른바 악인의 품격이다. 이들에 따르면 ‘행동의 이유를 갖춘’ 악인은 악을 저지를 때 당당해야 하며, 저지르는 동안과 후에도 아무런 낌새를 주지 말아야 한다. 그 외에도 책은 이른바 ‘모략 지침서’로서의 『나직경』의 모습을 우리에게 하나씩 제시한다. 우리에게는 『맨 얼굴의 중국사』로 유명한 빠이양(柏楊) 선생은 이 책에 관해 “겨우 16년의 역사를 가진 무측천의 주왕조가 인류 문화에 끼친 가장 큰 공헌은 바로 『나직경』이다”라고 주장하고 있기도 하다. 그렇다면 보통 사람인 우리들이 보는 악인의 모습은 과연 무엇일까?
시대를 관통하는 화두 - 난세 속에서 인간은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
그러나 이러한 복잡한 생각을 접어두고 이 책을 읽어보면 『난세기담30』은 선악과 반전이 뒤섞인 서른 가지 흥미로운 역사 이야기이다. 그리고 이러한 이야기들을 통해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다름 아닌 ‘사람’이다. ‘역사 속의 훌륭한 인물들을 부활시키는 것도 우리의 책무이지만 고약한 인물을 찾아내어 채찍질하는 것도 우리가 마땅히 해야 할 일’이다. 더구나 이 책 속에는 오늘날 우리 주변에서 볼 수 있는 갖은 인간군상이 수많은 사료 속에서 발굴해낸 저자의 서술 속에 녹아 있다. 이러한 이야기는 저자의 흥미로운 각색과, 반전에 반전을 잇는 평으로 우리의 지적 호기심을 자극해댄다. 그리고 우리에게 두 개의 질문을 남겨놓는다.
‘사람이란 무엇인가?’ ‘사람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물론 이 질문에 대한 해답을 찾는 일은 우리들 독자의 몫이다. 하지만 이 책을 차분히 읽어가다 보면 이 질문에 대한 해답의 한 부분이나마 찾아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답이 보이지 않는다고 걱정하지 말자. 난세라는 시대는 그 속을 사는 이에게는 선악을 구분하기 힘들어지는 시기이기도 하니까.
당나라 때 사용하던 언어로 유추하여 볼 때 ‘진眞’’이나 ‘선仙’은 아름다운 여인을 가리켰으며, ‘경망스럽다’는 뜻까지 내포하고 있다. 심지어는 ‘요염한 여인’이나 ‘방탕한 기질을 가진 여자 도사’를 가리키는 등 다양하게 쓰이며, 또 남자에게 먼저 집적거리는 방탕한 여인을 뜻하기도 했다. 이로 미루어볼 때 원진이 이 소설의 제목으로 『회진기』를 취하면서 얼마나 심사숙고했는지 알 수 있다. 원진의 눈에는 최앵앵도 오가다 우연히 만난 ‘진眞’이나 ‘선仙’으로서 그저 ‘요염한 미녀’에 지나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니까 ‘회진會眞’은 고작 한 번의 러브스토리일 따름이라는 것이다.
- 「자신의 과거를 소설로 미화한 바람둥이 대시인 원진」
두 사람이 죽은 뒤 『나직경』은 마침내 세상에 얼굴을 드러냈다. 이때부터 이 책은 관계에 널리 퍼져 관리들이 남몰래 읽으며 깊이 연구하는 경전이 되었다. 전하는 바에 의하면 악랄하기로 이름난 관리 주흥은 죽기 바로 전에 이 책을 읽은 뒤 자기도 모르게 깊은 한숨을 내쉬며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나야말로 헛되이 혹리노릇을 했구나. 이 책을 보니 어떤 이를 혹리라고 하는지 알겠구나! 이제 알았으니 죽어도 한이 없구나!”
말을 마치자 기쁘게 죽음을 맞았다.
재상 적인걸도 『나직경』을 다 읽고 온몸이 식은땀으로 젖었다고 한다. 무측천 역시 『나직경』을 끝까지 읽은 뒤 이렇게 탄식했다고 한다.
“이렇게 심보가 고약하다니 짐도 따르지 못하겠구나.”
- 「밀고와 무고로 세상을 뒤흔든 페르시아 출신 고문 전문가 삭원례」
각지에서 산해진미가 들어오면 기씨는 먼저 종묘로 보내 원조의 조상들이 먼저 든 뒤에야 자기가 입에 댔다. 물론 이것도 하나의 연출이었다. 이런 산해진미를 올려도 세상을 떠난 지 몇 년이나 된 조상들은 젓가락 한 번 대지 못할 게 뻔하지 않은가! …… 기씨가 저지른 가장 큰 잘못은 스스로 퇴로를 차단하고 자기 무덤을 자기가 팠다는 점이다. 고려 백성과 조국에 등을 돌림으로써 후방의 원군을 잃었던 것이다.
- 「자신을 포장하여 두 나라를 뒤흔든 고려 출신 공녀 기씨」 중에서
스스로 죽기를 자처한, 황당하기 짝이 없는 상주문을 받아든 진2세는 뜻밖에도 몹시 기뻐하면서 조고에게 이 글을 펼쳐 보였다. 그러면서 다른 이의 재앙을 오히려 즐긴다는 듯 이렇게 말했다.
“이렇게 급하단 말이오?”
조고는 유쾌하게 대답했다.
“폐하, 보시옵소서. 대신들이 제 목숨 달아날까 이렇게 짬이 없는데 언제 모반을 꾸밀 맘이나 먹겠습니까?”
- 『세 치 혓바닥으로 희대의 간신을 구워삶은 음모가 조고』 중에서
악인이 바라는 것은 무엇인가? 악인은 죽은 뒤에 가야 할 지옥 같은 것은 두려워하지도 않는다. 그런 걱정을 한다면 아마 악인은 더이상 악인이 아닐 것이다. 악인이 바라는 것은 눈앞에 놓인 권력, 눈앞에 놓인 돈, 눈앞에 차려진 맛있는 술, 그리고 눈앞에 있는 아름다운 여인이 아니겠는가? 이 세상 악인이 바라는 것은 이렇게 간단하다. 차이점이 있다면 단지 나쁜 술책을 부리는 수단만 다를 뿐이다. 그런데, 사실 악인이 나쁜 술책을 부리는 수단도 거기서 거기다. 차이점이 있다면 나쁜 술책을 부리는 대상이 다를 뿐이다.
- 「존재하지 않는 것들로 한무제를 속인 박수무당 난대」 중에서
어현기가 등롱을 내걸고 문을 닫은 뒤 녹교를 자기 침실로 불러 심문을 할 때, 우리는 이억 부인의 모습을 떠올리게 된다. 당시 이억의 부인도 바로 이렇게 어현기를 다루었을 것이다. 그 시각, 어현기는 자기도 모르게 본처의 배역으로 연기를 하고 있었다. 어현기가 녹교의 옷을 벗기고 대나무 몽둥이로 수백 대를 내리쳤던 그 순간 어현기는 본처의 신분이 되어 폭력을 휘두른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녀는 일찍이 ‘첩’의 신분이기에 제 몸에 내려졌던 모든 징벌을 같은 모양으로 ‘비’의 몸에 가하고 있는 것이다.
- 「소유욕 때문에 사형당한 사법 살인의 피해자 여류시인 어현기」
“일개 졸병일 뿐인 당신 아들 몸에 난 악창의 고름을 장군이 제 입으로 빨아냈다니 부하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알겠소. 그런데 울기는 왜 우오? 그래, 감동의 눈물을 흘리는 거요?”
하지만 그녀는 이렇게 대답했다.
“허튼 소리 마시오. 감동은 무슨 감동이란 말이오! 그 해 제 아비도 악창이 났었는데 오기 장군이 고름을 입으로 빨아냈었지요. 깊은 은혜에 보답한다며 싸움터에서 용감히 적을 죽이다 목숨을 잃고 말았
소. 이제 오기 장군이 또 그 짓을 했소. 내 아들 목숨도 얼마 남지 않았으니 통곡하는 거요!”
- 「마누라 죽이고 출세한 희대의 병법가 오기」 중에서
첫댓글 쉬후이 지음 / 역자 이기흥 옮김 / 출판사 미다스북스 | 2012.11.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