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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얀 거짓말
영국에서 전해오는 이야기 입니다.
왕이 한 죄수에게 사형을 언도하자,
신하 두 사람이
죄인을 감옥으로 호송하고 있었습니다.
절망감에 사로잡힌 죄수는 감옥으로 끌려가면서
계속 고함을 질러댔습니다.
"이 못된 왕아!
지옥 불구덩이에 빠져 평생 허우적거려라."
이때 한 신하가 그를 나무랐습니다.
"이 보시게 말이 너무 심하지 않은가?"
하지만 죄수는 더욱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어차피 죽을 목숨인데 무슨 말인들 못하겠소!"
신하들이 궁으로 돌아오자 왕이 물었습니다.
"그래, 죄인이 잘못을 뉘우치던가?"
그때 죄수의 말을 가로막던 착한 심성의
신하가 대답 했습니다.
"예, 자신에게 사형을 내린 폐하를
용서해 달라고 신께 기도했습니다."
신하의 말에 왕은 매우 기뻐하며
그 죄수를 살려주라고 명하였습니다.
그때 다른 신하가 말했습니다.
"폐하, 아닙니다.
그 죄수는 뉘우치기 는 커녕
오히려 폐하를 저주했습니다."
라고 사실대로 말하였습니다.
그런데 왕은 그 신하를 나무랐습니다.
"네가 하는 말이 진실인 것은 나도 안다.
그런데 나는 저 사람의 말과 행동이
더 마음에 드는구나."
사실대로 말한 신하가 말했습니다.
"폐하, 어째서 진실을 마다하고
거짓말이 더 마음에 드신다고 하십니까?"
왕이 말했습니다.
"저 사람이 한 말이 비록 거짓말일지라도
사람을 사랑하는 마음에서 그렇게 말한 거지만,
네 말 속에는 사람을 미워하는 악의가 가득하구나.
때로는 선의의 거짓말이
분란을 일으키는 진실보다 나은 법이니라."
왕은 결국, 거짓말을 한 신하의 말을 믿고
죄수의 목숨을 살려주었습니다.
영국 속담에 거짓말에는 새빨간 거짓말과
하얀 거짓말이 있다고 합니다.
새빨간 거짓말은 나쁜 마음을 가지고
나쁜 의도로 하는 진짜 거짓말이고,
하얀 거짓말은 사람을 사랑하는 마음에서
사람에게 희망과 위안을 주기 위한
선한 거짓말입니다.
의학계에서 전해오는
'플라시보 효과'는 가짜 약을
진짜 약이라고 속여
투약을 해도 약효가 있다는
심리적 호전 현상을 말합니다.
대표적인 선한 거짓말이며,
하얀 거짓말입니다.
살날이 얼마 남지 않은 사람에게
증세를 사실대로 말하면
그 환자는 희망을 잃어버릴 것입니다.
우리가 어린 시절에 읽었던
‘마지막 잎새’에서
'존시'에게 희망을 주기 위해
'베어만' 할아버지는
마지막 잎새를 그려 놓았습니다.
이것 역시 선의의 하얀 거짓말입니다.
우리 사회에 만연 되어 있는 내로남불, 네탓, 가짜뉴스,
통계조작, 선거조작, 왕따, 이지메 등에 동원되는
악의적인 거짓말은 새빨간 거짓말이고,
개그맨 이××처럼 입만 열면
발버릇 처럼 '사랑해…!'를
연발하는 뻔한 거짓말은 하얀 거짓말입니다.
우리 주변에서 하얀 거짓말이 참 많습니다.
간호사가 자주하는 "이 주사 하나도 안 아파요",
예식장 사진사가 말하는
"지금까지 제가 본 신부 중에 제일 예뻐요"
중국집 사장님이 말하는
"예, 지금 바로 출발합니다" 등입니다.
가끔은 악의에 찬 진실보다도
사람을 진심으로 사랑하는 마음이 깃든
선의의 거짓말이 필요할 때도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사랑이 깃든 말, 아름다운 말은
말하는 사람도, 말을 듣는 사람도
행복하게 한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세상에는 없는 것이 3가지 있습니다.
'첫째, 정답이 없다.
둘째, 비밀이 없다. 셋째, 공짜는 없다'입니다.
행복한 삶에도 3가지가 필요합니다.
'첫째, 가벼운 짐,
둘째, 착한 동반자,
셋째, 하얀 거짓말'입니다.
짐(돈, 명예, 일 등)이 무거우면 삶도 무겁습니다.
동반자와 뜻이 맞지 않으면 여정은 괴롭습니다.
하지만 하얀 거짓말은 삶의 윤활유입니다.
새빨간 거짓말은 비난 받아야 마땅하지만
하얀 거짓말은 권장합니다. 그래야 우리 사회가
좀 더 여유롭고 행복한 사회가 될 것입니다.
하얀 거짓말, 새빨간 거짓말, 새파란 거짓말?
"평생 한번도 가짓말을 하지 않았다."는 말이다. 사람은 누구나 선의든 악의든 필요에 따라 거짓말은 하게 마련이다. '인생에 있어 무엇보다 어려운 것은 거짓말을 않고 사는 것'이라고 러시아의 문호 도스토예프스키가 말했듯 거짓말 하지 않고 살아가기란 여간 쉽지가 않다. 거짓말도 종류가 있다. 첫째, '하얀 거짓말(white lie)이라고 불리워지는 거짓말'이다. 병든 부모가 자식들이 걱정을 할까봐 "난 괜찮아"하고 말하는 경우처럼 남을 위하거나 근심과 걱정을 덜어주고자 상대방을 배려하는 거짓말이다. 둘째, 남을 즐겁게 해주지만 자신에게 돌아올 반사적 이익도 생각하는 가식의 거짓말이다. 일상적인 거짓말은 대체로 이 부류다. 허언, 공치사, 아부 등도 이 거짓말에 속한다. 셋째, 방자한 거짓말, 즉 '통계의 거짓말'로 기관이나 단체가 흔히 저지르기 쉬운 거짓말이다. 실제와는 다른 거짓 조사결과를 들이대며 사실이라고 우기는 경우다. 넷째, 검은 거짓말(black lie)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 남에게 피해를 주는 '악의의 거짓말'이다. '검은 거짓말(black lie)' 또는 '새빨간 거짓말'이라고도 한다. 도덕적 종교적 비난의 대상이며 법적으로 문제가 되는 경우가 많다. 거짓말도 잘만 하면 논 닷 마지기보다 낫다는 말이 있다. 거짓말도 잘 하면 처세(處世)에 도움이 된다는 뜻인데 거짓과 거짓말을 함부로 일삼으면...? 패가망신뿐 아니라 패망의 지름길이 될 수도 있다. - 보내 온 글(작자 미상) - 덕향의 미국편지(308) '하얀 거짓말' 중앙정보국(CIA) 요원 발레리 플레임의 신분을 의도적으로 유출했다는 의혹으로 기소된 루이스 리비 전 부통령 비서실장은 지난 주 위증죄로 유죄평결을 받아 최고 30년까지 징역형을 받을 위기에 처해졌다. 1972년에 터진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닉슨 대통령이 탄핵되어 물러난 것도 그가 한 행위자체보다 진실을 은폐하려고 거짓말을 했기 때문이다. 이처럼 법앞에서 진실을 말했냐 아니냐를 엄중히 다루는 것은 한국처럼 글로된 성문법이 아니라 오랜 관습이 바로 법이 되는 불문법이기 때문이다. "우리 이렇게 하기로 하자"는 말이 곧 법의 기반이므로 이것이 진실되지 못 하면 법전체가 흔들림으로 위증죄를 가혹하리만큼 세게 처벌한다. 그러나 실제 가정에서는 어려서부터 이중잣대를 갖게 가르친다. 부모들은 "링컨대통령처럼 정직해야 한다" 고 하면서 동시에 "할머니 모자가 이상해도 잘 어울린다고 해야 착한 아이"라고 가르친다. 이때 자녀들은 진실을 말해야 하지만 오히려 진실을 말한 것이 '더 나쁠 수 있다'는 이중적 메시지를 입력한다. 이것은 미국에서는 사람과의 관계에서 서로의 기분을 상하지 않게 함으로써 직접적인 감정충돌을 피하는 것을 가장 성숙한 사회로 보기 때문이다. 개인의 감정을 최대한 억제하고 상대방을 좋게 해주는 것이 '성숙한' 대인관계며 동시에 시민의 자세다. 그러기 위해 필요한 것이 바로 남을 배려하여 하는 '적절한 거짓말' 즉 '화이트 라이(White Lie)'다. 한국문화에는 없는 '하얀 거짓말 문화'라 하겠다. 아파트에서 옆집이 시끄러우면 우리는 당장 문을 두드리면서 "당신들 혼자 사는 것 아니잖아요?"하며 감정과 감정이 맞짱을 뜸으로써 해결을 본다. 그러나 '성숙한 시민사회'를 지향하는 미국인들은 당사자 앞에서는 활짝 웃으며 "오늘 좋아 보이시네요"라고 말한다. 그리고 매니저에게 달려가 "도저히 살 수 없으니 당장 조치를 취해 달라"고 한다. 이러한 '화이트 라이 문화'를 연구한 사회심리학자 로버트 펠드먼은 "미국인은 평균적으로 10분마다 2가지 심한 사람은 12가지 거짓말을 하고 있다"며 사회에서 인기있고 성공할수록 이 능력이 뛰어났다고 설명했다. 현대인들의 출세능력과 사교술의 하나인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남을 배려해서 한다는 그 '적절한' 기준이 어디냐 하는 것이다. 한번 거짓말로 효과를 보았을 때 유사한 상황에 부딪치면 응용력이 생겨 자신도 모르게 더 자주 더 고강도로 하게 되기 때문이다. 자칫 양심과 윤리의 선을 넘어 마비될 수 있다. 계속 사회에서 도덕성이 거론되는 것도 여기서 비롯된다. 클린턴이 르윈스키와의 스캔들로 TV에 나와 "난 절대 안했다"고 거짓말했을 때 미국 부모들의 고민이 "정말이냐"고 묻는 아이들에게 어떻게 답해야 하는가였다. '대통령이 지금 거짓말 하고 있다'고 말할 순 없기 때문이다. 지금 홈런왕 배리 본즈가 "약물인 줄 몰랐다"고 뻔한 거짓말을 하는 것을 보고 남녀노소 팬들이 착잡한 것도 마찬가지다. '화이트 라이'는 원래는 '남'을 위한 순수한 배려일 때만 하는 것이다. 따라서 좋은 의도다. 그러나 점점 '남'이란 기준선에서 '내 이득'쪽으로 넘어섰기 때문에 문제가 된다. 자녀에게 혼란을 주지 않으려면 어려서부터 원칙선을 그어 주어야 한다. "진실만을 말해라. 부득이 거짓말을 하게 될 때는 그것이 '그 사람'에게 정말 도움이 될 때만 해라." |
선생님이 들려주는 과학 이야기 우래제 '보은 회인중 교사' 과학자들은 모든 것을 실험에 의해 증명된 사실을 말한다. 과학적으로 분석한다는 것은 누구나가 믿을 만한 보편타당하고 증명된 방법에 의해 분석한다는 의미이다. 정말 과학자들은 진실만을 말할까? 그런데 과학자들이 하는 하얀 거짓말, 새파란 거짓말은 무엇이고 새빨간 거짓말은 무엇인가? 살다 보면 피치 못 할 거짓말을 해야 할 상황이 있다. 이른바 화이트 라이(white lie)가 그것이다. 일상생활에서 "만나서 반가워.", "차가 너무 밀려 꼼짝 못 했어.", "음식이 아주 맛있네." 등 곤란한 상황을 피하기 위해, 상대를 언짢게 하지 않으려 우리는 마음에도 없는 말을 하는 것이 여기에 속한다. 새빨간 거짓말은 '뻔히 드러날 만큼 터무니없는 거짓말'로 과학자들은 이 새빨간 거짓말과는 거리가 좀 먼 것으로 생각된다. 그러나 요즘 과학에서 문제가 되는 것이 새파란 거짓말이다. 지구온난화가 이산화탄소의 온실효과라는 기존의 논리가 녹색산업과 일부 정치집단의 이해 관계를 반영하기 위한 새파란 거짓말이라는 것이다. 2007년 유엔 과학자 전문집단인 '기후변화 국제패널(IPCC)'은 3,000쪽짜리 방대한 보고서를 제출했는데 핵심은 지구 온난화의 원인은 명백히 인간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이 보고서로 인해 수많은 온난화 연구가 진행되었고 더불어 많은 녹색산업이 형성되었다. 인간이 만든 이산화탄소 때문에 지구가 온난화되었으니 이산화탄소 배출을 줄이면 지구온난화를 줄일 수 있다는 논리다. 그러나 녹색정책의 교본이었던 이 보고서의 신뢰성이 의심을 받고 있다. "지금보다 인구가 적고 공업화가 덜 돼 있던 중세시대가 지금보다 더 뜨거웠다"는 주장과 "지난 15년간 지구가 뜨거워지고 있다는 통계적 근거는 없다"는 주장과 함께 "지구온난화 원인이 인간 때문이라고 결론을 내릴 수 있는 근거가 부족하다"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IPCC의 보고서는 녹색산업과 일부 정치집단을 위한 새파란 거짓말이거나, 인류에게 경각심을 일깨우기 위한 악의 없는 하얀 거짓말로 의심을 받고 있다. 이 보고서가 하얀 거짓말이든 새파란 거짓말이든 새빨간 거짓말이 아닌 이상 우리에게 여러 가지를 생각하게 한다. 아무리 좋은 목적이라도 과학을 하는 사람들은 확실하고 보편타당한 근거에 의해 결론을 얻어야 하고 아무리 불편한 진실이라도 과학자들은 사실에 근거하여 논리를 펴야 신뢰성에 문제가 생기지 않는다. 또 하나 자연의 일부로 지구상에 태어난 인류는 자연을 인류의 소유인 양 마구잡이로 개발(파괴)해 왔다. 이제는 자연의 개발보다는 자연과 조화를 이루고 자연에 동화하여 살아가는 방향으로 지혜를 모아야 할 때가 아닐까? ‘하얀 거짓말’을 하자 세상에 널린 게 거짓말이다. 우리는 매일 거짓말의 바다에 둘러싸여 허우적거리며 살고 있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미국의 소설가 마크 트웨인은 “세상의 거짓말에는 8백69가지의 형태가 있다”고 주장했다. 사실은, 거짓말의 스펙트럼이 워낙 다양해 모든 거짓말을 포괄하는 간단한 분류법을 만들 수 없다는 뜻의 ‘애교있는 거짓말’이기도 하다. 중세 신학자 토머스 아퀴나스는 이 무진장한 거짓말을 목적에 따라 크게 3가지로 나눴다. 악의적인 거짓말, 이타적인(유용한) 거짓말, 그리고 선의의(익살스런) 거짓말이 그것이다. 우리가 도덕시간에 배운 거짓말의 분류도 이 방법에 기초한 것이다. 악의적인 거짓말은 다른 사람에게 해를 끼칠 목적으로 한다. 평소 밉보았던 친구에게 도둑 누명을 씌우는 따위다. 반면, 이타적인 거짓말은 다른 사람을 돕거나 어려움으로부터 구하기 위해 하는 거짓말이다. 강도가 누군가의 집 주소를 물어봤을 때, 엉뚱한 주소를 가르쳐 줬다면 이타적인 거짓말이다. 선의의 거짓말은 남을 유쾌하게 할 목적으로 하는 하얀 거짓 말(White lie)이다. 아내가 정성껏 만들어 준 반찬이 입에 맞지 않아도 “맛있다”고 하는 것은 하얀 거짓말에 속한다. 그러나 거짓말이란 이런 식으로 쉽게 나눠지지 않는다. 악의적인 거짓말이라도 그 결과는 천양지차다. 치명적인 재앙을 불러올 수도 있고, 남에게 아주 사소한 해를 입히는 데 그칠 수도 있다. 히틀러 거짓말은 2차 대전을 불러왔을 만큼 아주 치명적이었다. 반면, 총각선생님을 골려주기 위해 아이들이 “와이셔츠에 여자 머리카락이 붙어 있어요”라고 하는 것은 상대방의 기분을 상하게 하는 정도에 그친다. 일말의 진실에 기초를 두고 있지만, 허풍, 과장 등을 통한 조직적인 왜곡을 거쳐 유포되는 거짓말도 있다. 완전한 진실도, 완전한 거짓말도 아닌 애매모호한 거짓말이다. 이런 거짓말은 어떤 특정인에게 해악을 끼치려는 것은 아니지만, 불특정 다수에게 특수한 목적을 주입시키려는 의도를 갖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일종의 상징 조작인 셈이며, 아주 큰 거짓말에 속한다. 대표적인 것이 통계이다. 정부의 공식적인 물가지수는 늘 우리의 장바구니 물가보다 낮게 나타나게 마련이다. 광고도 마찬가지다. 어떤 화장품인든지 바르기만 하면 모두 미인이 된다. 거짓말의 외연을 좀더 확장하면, 무지에서 나오는 ‘거짓말 아닌 거짓말’도 있다. 소설, 영화, 연극, 쇼 따위도 넓은 의미에서는 거짓말이나, 애초 출발부터 허구를 전제로 한 거짓말이다. 이 두가지의 거짓말은 ‘양심에 위배되는’ 일반적인 거짓말과는 다소 거리가 멀다. 이용인 기자 © 한겨레신문사 1997년 05월 15일 “모든 사람을 얼마동안 속일 수 있고, 몇 사람을 늘 속일 수는 있다. 하지만 모든 사람을 늘 속일 수는 없다.” 미국의 16대 대통령 에이브라함 링컨(1809~1865)이 한 말이랍니다. 미국인들이 가장 존경하고 사랑하는 역대 대통령 순위에서 항상 1위를 차지하는 대통령이 바로 에이브라함 링컨입니다. 늘 2위에 올라 있는 대통령은 초대 대통령 조지 워싱턴이고요. 그런데 이 두 명의 대통령이 지닌 덕목의 공통점은 정직(honesty), 성실(earnest), 그리고 용기(bravery)입니다. 위기에 빠진 국가를 구하기 위해 국민들에게 솔직하게 어려움을 털어놓았고 성실하게 임무를 수행했으며 자신을 내던지는 용기를 발휘했습니다. 그 결과 워싱턴은 독립전쟁을 승리로 이끌었고 링컨은 남북전쟁에서 승리 국가의 분열을 막아 냈습니다. 거짓말을 하지 않고 평생을 산다는 건 어려운 일입니다. 그래서인지 거짓말을 가장 큰 악덕으로 여기는 영국 사람들도 악의 없는 거짓말을 하얀 거짓말(a white lie)로 표현해 의도적이고 악의에 찬 까만 거짓말(a black lie)과 구분합니다. 조선 후기의 포의시인(布衣詩人) 정수동은 술과 시로 한 평생을 살면서 거짓말을 밥 먹듯 하고 다녔지만 당대나 후대 사람들이 그를 거짓말쟁이라고 욕하지 않았습니다. 그의 거짓말은 사람들을 배꼽잡고 웃게 만들거나 감동하게 했지 손해를 보거나 마음에 상처를 받게 하지는 않았기 때문입니다. 임기응변의 거짓말로 위기를 벗어난 사례도 있습니다. 삼국지에 등장하는 조조가 부대를 이끌고 행군을 하는데 여름 무더위에 지친 병사들이 갈증을 이기지 못 하고 연달아 주저앉자 조조는 이런 거짓말을 했답니다. “조금만 더 가면 매실 나무가 우거진 숲이 나온다. 지금쯤 탐스런 매실이 주렁주렁 달렸을 것이다.” 그 말을 들은 병사들은 금세 입안에 침이 고여 갈증을 풀고 행군을 계속할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세설신어(世說新語)에 나오는 망매해갈(望梅解渴)의 고사입니다. 지휘관의 의도적인 거짓말이 부하들의 고통을 덜어주었으니 간웅(奸雄)의 악의로 해석하기보다는 번쩍이는 용병의 지혜로 보아야 할 것 같습니다. 공자는 논어 계씨(季氏) 편에서 “이득을 보거든 먼저 의로운 것인지를 생각하라 (見得思義)”라고 가르칩니다. 맹자도 양(梁)나라 혜왕(惠王)을 만난 자리에서 중의경리(重義輕利) 사상을 설파합니다. 지도자가 이익에 집착하면 그 아래 관리와 대부들 그리고 백성들까지 오직 이익을 얻기 위해 의로움을 저버리게 되고 마침내 불의와 거짓이 번져 나라를 망친다는 주장입니다. 이익을 위해 거짓말을 예사로 하고 불의를 보고도 침묵하는 세상이 되면 볼 장 다 본 거란 가르침입니다. 조선 중기의 문장가이며 학자였고 영의정까지 지낸 상촌 신흠(1566~1628)은 거짓된 공인들의 언행을 경계해 이런 글을 남겼습니다. “흰 것을 희다 하면 참이지만 검다하면 거짓이다. 그런 참과 거짓은 아녀자도 금방 알아채지만 장님은 모른다. 종(鐘)과 경(磬)은 하인들도 구별하지만 귀머거리는 헷갈린다. 눈을 가리고(蔽) 귀를 가리기 때문이다. 흑백이나 종경을 혼동하는 건 눈과 귀의 가림 때문이지만 국가의 대사를 혼동하는 건 더 큰 가림이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어진 이를 삿되다 하고 삿된 이를 어질다 한다. 이건 거짓이다. (以賢爲邪 以邪爲賢 是僞也)” 분명한 사실을 아니라고 우겨대고 죄상이 천하에 드러났는데도 결백하다고 주장하며 옳은 일을 그르다고 까뭉개는 공인들이 결국 나라 일을 그르친다는 꾸지람입니다. 상대방이 옳은 말을 해도 온갖 구실을 붙이고 토를 달아 폄하해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들, 자신에게는 한없이 너그럽고 상대방에겐 혹독한 사람들, 그들이 지금 거리 곳곳에서 온갖 거짓말을 동원해 상대편 깎아내리는 일에 열중하고 있습니다. 흰 것과 검은 것을 가려내고 종과 경을 구별하는 유권자의 눈과 귀가 거짓된 정치인의 등장을 가로막는 최후의 보루가 될 것입니다. |
옮겨온 글 편집
첫댓글 남을 배려하는 마음에서 악의 없이 하는 거짓말은 사회를 부드럽게 할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감사합니다.
청산님의 긴 이야기에 하얀 거짓말의 감동을 줄이는가?아니면 늙어서 이해의 폭이 줄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