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군대시절 4 - 당시 "퍼세식 화장실"은 겨울이면 곤란할 때가 많다.
쪼그려 앉아서 변을 보면 아래로부터 차곡차곡 얼어서 쌓여 엉덩이에 닿게 된다.
쫄병인 내가 변통에 내려가 도끼로 에베레스트 산 같이 길고 높다란 변산(便山)을 찍어 헐면 변 쪼가리가 눈이고 입이고 얼굴과 옷에 튀기 일쑤다!
냄새는 없다!
다 딱딱하게 굳은 얼음 덩어리기 때문이다.
"주님! 변 아이스크림 까지 먹게 해주심을 감사해요! 사회 나가면 사랑의 아이스크림도 실컷 먹게 해주세요!"
수염이 많은 나는 일주일씩 야외훈련을 나가면 면도를 하지 못해 긴칼만 들면 산적과 다름없어 대대장까지 귀대하면 면도부터 하라고 당부하셨다.
온수를 쓸 수 없어 계곡에서 호스를 타고 내려오는 냉수에 머리를 감으면 몽둥이로 내리치는 통증이 느껴진다!
면도를 하고 나면 피가 나서 얼굴이 벌갰다!
유에녹 군종을 만났다.
훈련병 시절 중대장이 연병장 풀 뽑는 작업을 시키고 잊어버려 세 시간 후에 내다봤더니 유이병 혼자서 풀을 뽑고 있었단다.
임병철 병장은 중대본부 최고참으로 나를 많이 아껴주고 지지해줬다!
이춘근 형제를 만났는데 작은 체구지만 지성이 반짝이며 신앙이 매우 깊었다!
최춘기 형제는 대학을 다니다 입대했는데 어느 작업이라도 못해내는 것이 없는 신실한 일꾼이었다!
서현철 병장은 사람 좋고 친화력이 뛰어나며 많은 지지를 보내주었다!
신실한 박계현, 손훈, 이성룡, 김연태 형제를 만나 서로 지지하며 위로하고 교제했다.
유시민 병사가 중대본부로 전입왔는데 경제학을 아주 쉽게 중대원들에게 설명해 주며 날카로운 지성을 뽐냈다!
가을이 되어 건조해지면 화공작전을 했다. 바람이 북쪽을 향해 불 때 철조망 부터 불을 놓으면 말끔히 수목이 타서 시야가 확보되어 공비들의 침투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이 때 6.25때 매설해 놓은 지뢰들이 수없이 폭발했다.
지뢰는 폭풍지뢰(발목지뢰)는 플라스틱이 재료인데 밟으면 발목만 잘린다.
대인지뢰는 상부에 뿔이 세 개가 있는데 밟으면 전신이 갈기갈기 찢긴다.
누군가 야외에서 응아를 하고 있는데 1-2 미터 앞에 그 뿔이 보였단다.
나오던 떵이 "동작 그만" 했다나 어쨌다나! ㅋ
문제는 한국전쟁 때 미군이 헬기로 폭풍지뢰를 뿌려놓았는데 플라스틱이라 썩지 않고 장마비에 씻겨 유실되어 사고가 나면 그 지역이 소위 지뢰지대이다!
제대 후 들은 소식으론 우리가 앉고 누워 휴식을 취했던 장소에서 지뢰가 터져 장병들이 허벅지가 잘리고 사망사고 까지 있었단다!
휴전선의 가을은 일찍 찾아왔으나 스산하기 이를 데 없다.
나는 유행가를 잘 몰랐으나 "갈테면 가라지. 흐르는 이 청춘. 피고 또 지는 꽃잎처럼" 하는 가사가 어쩜 강원도 최전방 한구석에서 청춘을 썩히고 있는 내 심정을 대변하는듯 하여 저절로 눈시울이 붉어지곤 했다.
"아! 저기 사람하고 군인이 걸어간다는 말이 틀렸구나!
군인도 사람이로구나!"
연대군목이 전방초소 방문을 오셨다!
병사들이 자고있는 내무반에 칠팔 권의 금박성경이 나란히 꽂혀있는 것과 병사들의 예배활동에 대해 듣고 면담을 요청해 오셨다.
입대 후 십 개월만에 보름간 첫 정기휴가를 나왔다.
십 개월만에 여성을 처음으로 보니 저 멀리 있는데도 향기로운 냄새가 맡아졌다.
"아! 제대 후 곧바로 결혼대상자를 선택하지 말라던 말이 진리구나!"
어린이를 본 지가 오래서인지 너무 귀엽고 사랑스럽다!
철책선 근무를 무사히 마치고 훼바로 부대이동을 했다.
주일이 되어 병사들을 인도하여 예배 참석 후 한 하사가 익숙한 지 민가로 인도하여 닭요리를 대접받았다.
민간인이 해주시는 밥이 너무 맛있어서 두고두고 기억이 났다.
"한끼 식사 대접이 이렇게 사람을 행복하게도 할 수 있구나!"
난 배고픈 사람에겐 무조건 밥을 대접하는 원칙이 생겼다!
나는 비파로 연대군종으로 임명되어 연대 무호교회에서 손훈 군종과 근무하게 되었다.
요란스런 연대장님의 안수집사 장립식이 있었고, 연대장님 사모님께서 그렇게 겸손히 군종들을 섬겨주실 수가 없었다.
입대 후 두번째 겨울을 맞았다.
온누리가 새하얗게 눈으로 덮힌 어느날 민통선 가까운 교회를 향해 한 여인이 하이힐을 신고 토닥토닥 걸어오고 있었다.
그녀였다! 대학시절에 매주일 한번씩 만나 성경공부하던 자매였다!
근무하는 부산에서 이틀을 걸려 왔단다.
곧 어둠이 내렸기에 가까운 여관방을 잡고 왜 오셨는지 물었다.
그녀는 자신에게 선을 보자는 요청이 많은데 어쩐지 내 의견을 묻고 싶단다.
그러면서 자신이 직장생활하며 모은 돈으로 내 신학공부할 준비를 마쳐놓았다며 자신이 신부감으로 어떠냐고 물었다.
나는 결혼을 약속한 분이 있어 불가하다고 하고 교회로 돌아갔다가 새벽에 깨워 첫차를 태워 돌려보냈다.
그녀는 폴더폰 인사를 하고 떠났다!
대학에서 교련을 3년간 이수했기에 복무단축 6개월을 받아 27개 월만에 제대했다.
잔여복무기간이 6개 월이나 남은 동기가 너무 미안해 인사도 제대로 못하고 도망치듯 부대를 빠져나왔다!
집으로 곧바로 가지 않고 오산리 기도원에 개구리복을 입은 채로 3주간을 작정하고 금식기도에 돌입했다.
장래를 하나님께 맡기고 부탁드리려는 의도에서다.
구월의 경기 북부의 산속은 밤에 몹시 추웠다.
복받겠다고 담요 두 장깔고 이불을 두 장씩 덮은 기도자들 사이에서, 덮을 담요 한장 없이 달랑 개구리복 한벌을 입고 추위에 덜덜 떨며 강아지 마냥 웅크리고 자는 젊은이에게 아무도 관심을 기울이는 이가 없었다!
대학시절 부르심부터 군대생활에 이르기까지 하나님의 섭리의 손길이 아닌 것이 없었다.
그토록 배고픔이 싫었지만, 3주간의 금식은 전혀 힘들지 않았다.
어떤 분이 내 모습을 보고 다니엘의 3주 금식이 될 거라고 축복해 주셨다!
금식하시는 어떤 노권사님이 계단을 오르지 못하셔서 업고 계단을 오르려니 엉덩이에 힘이 하나도 없어 발걸음이 떼어지지 않았다.
40일 금식하신 주님의 곤고함이 어떠하셨을까?
금식을 마치고 식당에서 무료로 제공하는 시큼한 무우 싱건지가 왜그렇게 맛있는지 과히 환상적이었다!
11.결혼과 사업 - 제대 후, 7년 여를 기다려준 그녀가 고맙기도 하고 미안하기도 해서 아무 것도 가진 것이 없고 장래가 보장된 것이 없지만 결혼을 서두르기로 했다.
결혼식 일주일 전 엄지발톱이 살로 파고들어 간단한 수술을 했는데 당일까지 낫지 않아서 본의 아니게 절름발이가 됐다.
주례를 고향 목사님께 부탁했는데 처음이신지 주례께서 오히려 긴장하셨다.
하얀 드레스를 입은 그녀는 싱글벙글 오히려 여유를 부린다!
"나같은 빈털털이에게 시집와 줘서 고마워!
우리 하나님의 인도하 심을 기대하자!"
글자 그대로 "××만 찬 나"에게 귀한 딸을 시집보내는 처가에 감사했다!
마침 <사랑에 눈먼 처녀>라도 있기에 망정이지, 장가도 못가고 노총각으로 늙을 뻔했다.
그후로도 오랫동안 꿈에 장가를 못가서 고생하곤 했다.ㅋ
어머니께서 마련해 주신 150만 원짜리 덕진동 방 하나 부엌 하나 전세방에 신혼소꿉놀이터를 차렸다.
무엇보다 좋았던 것은 그때까지 내 이불이 없었는데 새 이부자리를 깔아놓고 그 위에서 자라고 하니 왕의 비단금침이 부러울소냐?
더우기 좋았던 것은 나만한 예쁜 장난감이 그 위에 놓여 있는 것이 아닌가?
(읽는 자는 깨달을진저 ㅋ)
주인댁 젊은 부부께서 친절히 대해 주셨는데 30년 후에 장로와 권사로서 헬스크럽에 운동나오셔서 반갑게 인사를 나눴다.
당분간 섬유공장을 경영하시는 큰형님 공장에서 잠깐 직장생활을 했다.
출근하면 아침 8시, 전직원이 마싱 앞에 서서 조회 후에 일을 시작하기 앞서 간단한 몸풀기와 흥사단 시절 희락시간에 눈썰미로 배웠던 몇가지 게임과 노래와 손무용으로 안무를 리드하면 어린 여직원들이 그렇게 좋아할 수가 없다!
"정말 이런 분위기의 직장을 찾았어요!"
고참 여직원의 대부쯤 되는 양(여)계장을 전도했는데 섣불리 마음을 열지 않았다.
마침 12월 하순, 직원의 결혼 축하파티가 열렸는데 사장동생인 내가 마시지 않으면 파티가 끝난다고 큰 맥주 그라스 두 개에 가득 맥주를 따라놓고 양계장이 엄포를 놓는다.
난감하다!
"이 맥주 버리지 않고 비우기만 하면 되죠?"
다들 회심의 미소를 띠며 고개를 끄덕인다.
넥타이를 풀고 양복을 입은 채로 와이셔츠 안에 두 잔을 들이 부었다!
숙연한 분위기가 되었고 파티는 계속되었다.
그 주일 그녀가 교회에 출석했다!
할렐루야!
대전의 침신에 등록했고 아내가 이세를 가졌기에 가장의 책임으로 휴학하고 형제들에게 1,200만원을 2부로 이자를 주기로 하고 빚내서 화장품 할인 센타를 시작했다.
처음 장사에 뛰어들었기에 권리금이 뭔지도 모르고 주었는데, 하루 매출이 십만원이면 그 돈이 이익금인줄 알고 대부분 구제와 운영비로 썼다.
아뿔사! 일년을 버틸 수 없어 빚만 고스란히 남긴채 가게를 접었다.
여호와의 증인으로서 열심있던 주인에게 권리금을 받겠다고 했더니 인정 못하겠으니 그냥 나가란다.너무 억울한 생각이 들었지만 하나님께서 허락지 않는 일이라 생각하고 기독서점에 가서 가죽성경을 한 권 사서 주인에게 선물하며 "권리금을 포기할테니 예수를 잘 믿으시라"고 인사를 건넸다!
한시간 후 주인이 찾아와서 "권리금을 적당히 받아가라!"고.
하나님께서 아내를 시켜 나를 꼭닮은 아들을 선물하셨다!
아빠 닮아 눈이 크고 호남형인 녀석은 아내 친구들과 처제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았다!
그러나 어머니의 평가는 달랐다!
"야! 내 아들보다는 못생겼다!"
과연 아들 잘 생긴 줄 제대로 아시는 현명한 어머니이십니다! ㅋ
"내가 바울 같이 살테니 너도 바울 같이 살라!"는 의미로 "바울"이라 명명했다!
아내가 가게보랴, 애보랴, 너무 수고가 많아 아기 기저귀 절반을 빨았다.
희한한 것은 냄새가 나지 않음은 물론 똥도 예뻤다!
아내 친구들이 놀러와 안방을 내놓고 가게에서 연탄난로를 피워놓고 취침했는데, 새벽녁에 갑자기 토해서 일어났는데 밖으로 나오다 쓰러졌다.
가스중독인 것이다!
부랴부랴 온몸을 주무르고, 싱건지를 마시우고...
소동을 떨다 위기를 넘겼다.
하나님께 감사드렸다!
"마귀가 내가 꿀잼에 빠져있는 것을 시샘하나보다!" ㅋ
하나님께서는 제게 인간적으로 문제를 해결하지 말도록 비싼 등록금을 치루게 하셨다.
서른도 안된 내 인생의 최초의 부도인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