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Daum
  • |
  • 카페
  • |
  • 메일
  • |
 
카페정보
카페 프로필 이미지
THIS IS TOTAL WAR
카페 가입하기
 
 
 
카페 게시글
자유게시판 잡담 [잡설] 가문이란 게 뭘까요?
포레스트벨 추천 0 조회 525 14.01.04 01:16 댓글 27
게시글 본문내용
 
다음검색
댓글
  • 14.01.04 01:47

    첫댓글 덕국을 보면 왕가들이 여러개가 있습니다. 그들중에선 아직도 부자인 경우도 있고, 가난하여 이것저것 경매에 붙히는 경우도 있죠. 그렇지만 그렇다고 가문을 포기하지는 않는 분위기가 강한듯 합니다. 그닥 부유하지 않은 샐러리맨인 젊은 가주더라도 가문을 사이드잡형식으로라도 이끌고 있더군요. 그래서 어느 가문에서 결혼식같은걸 하면 거기에 여러가문들이 모이는데 거기에도 일일히 참석하더라는... 아무리 나이가 젊고 가난하다 하더라도 가문을 지키고싶은 생각이 없으리란법은 아닌듯염.

  • 14.01.04 13:05

    그래서 그런지 최근까지도 귀천상혼에 대해 엄격한 잣대를 가한 가문이 있었죠. (그러고보니 호엔촐레른 가는 로마노프까지 겸해서 ㅎㄷㄷ)

  • 14.01.04 01:48

    저희 가족은 할아버지부터 새로 시작해서 가문이 없어요.
    큰집이랑 끊고 제사도 할아버지 제사밖에 안 지낸답니다.

  • 14.01.04 22:45

    분가... 보다는 아예 독립하신건가요?

  • 14.01.04 02:57

    재산 나눠먹고 귀찮은거 더 안하려는거 같내요

  • 14.01.04 03:18

    저희 집안도 듣기로는 나름 족보있는 집안이라고 하는데 전 딱히
    아무래도 상관없더군요..애초에 그게 사실인지도 모르겠고
    제게 있어서 친가란 그냥 연 끊은지 오래된 족속들일 뿐이라..

  • 14.01.04 04:13

    저희 집안은 함종 어씨 양숙공파로 함종어씨 자체에선 유명한 문인들이 많이 나왔습니다. (저희 본관은 사실 북한에 있어서 찾아가보지도 못하는 불편한 현실..)사실 왕가와도 연이 닿았기도 했고요. 요즘에야 뭐 양반이니 뭐니 다 유명무실하긴 하지만 그래도 가풍같은 것은 왠만하면 지키려고 노력중입니다. 특히 집안이 집안인지라 아버님도 저보로 학자로 나가라고 거듭 말씀하시고요. 근데 하나 걱정인건 제 나이때 이런 집안 경조사에 관심있는 애들이 별로 없어보인다는 겁니다... 저희 종친회는 소 종친회(뭐 지부라 해두죠)라서 규모가 작아서 그런지 제가 코찔찔이 시절부터 제 또래는 저밖에 없더군요...

  • 14.01.04 07:41

    요즘 가문같은거 별로 안 알아주니까.근데 요즘 또 세습적인 계급이 출현하고 있지요.조선양반가문과는 전혀 관계없는 현대식 계급.조선양반들은 일제시대,육이오등을 통해 철저히 작살났고 현대에는 새로운 계급제가 출현하는중

  • 14.01.04 07:59

    솔까 잘사는 가문아니면 그게 당연한거죠 머
    가문이 밥먹여 주는 시대도 아니고 코가 석자면...우리 가문도 윗세대가 다 해먹어서 남은 땅이 없음... 순천에 제실도 관리가 안될듯...

  • 14.01.04 09:07

    종친회가 그래도 족보만드는건 하는데 의외네요.

  • 작성자 14.01.04 09:47

    그러니 어이가 없죠. 이미 있으나 마나한 존재이긴 했으나 이런식으로 한 분파가 사라질 수도 있구나 싶더라구요.

  • 14.01.05 08:25

    한국사회에서 전통적으로 이어져온 '가문-문중'의 역할이 소멸하면서 나타나는 자연적인 현상으로 봅니다...-_-; 이웃 일본의 경우, 전통적으로 가장과 자녀 및 기타 구성원으로 이루어진 '핵가족'의 형태를 가졌기 때문에 한국 전통사회에세 가문의 역할을 '무라(村)'라는 지역공동체가 해왔거든요. 게다가 일본의 경우는 농민과 무사를 토지와 봉록에 매어두는 대신 상속이 안정적으로 이루어지는 형태를 전제로 했기 때문에, 한국 전통사회와는 달리 '상속권'이 장자에게만 돌아갔습니다. 분할상속하는 순간 ㅈㅁ테크를 타기 때문... 높은 유아사망률로 인하여 여러 아들 및 딸을 두었지만 정작 팔요한 것은 장남이었기 때문에

  • 14.01.04 17:48

    차남 이하의 아들들이나 딸들은 영아살해의 대상이 되거나 아들들은 특히 아예 결혼하지 못하는 경우가 대다수였어요. 에도시대 에도의 인구 중 대다수는 이런 시골의 '잉여'들이었고, 이들의 조기 사망률은 거의 40%를 넘었습니다.

    각설하고 한국 전통사회의 경우는 국가가 운영하는 보호장치 외에도 문중이나 가문을 중심으로 재산을 공유하고 서로 인맥을 형성하여 [사회적 보호장치]로써 강력한 형태를 갖추게 됩니다. 양반일지라도 갈수록 재산이 분할상속되었기 때문에 개인적으로 경제적 지위를 유지하기가 꽤나 어려워진 것도 한 원인이고요...^^; 이웃의 중국도 문혁이전까지만 해도 이런 유교적 가종공동체를 유지했습니다.

  • 14.01.04 10:22

    시간이 흐르면서 한국사회도 많이 바뀌어서 "산업화에 맞추어 발달된 일본식 핵가족화"가 이루어집니다. 그러니 당연히 전통적인 가문의 역할이 소멸하는 것이죠...ㅎㅎ;;

  • 작성자 14.01.04 10:42

    @★海東天子☆ 하긴 예전과 달리 가문이 해줄 수 있는게 아무것도 없으니 돈될 때 빨리 해치워 먹고 털어버리는게 합리적일 수도 있겠습니다... 그래도 먼가 허무하네요.

  • 14.01.04 10:32

    종친회.. 은근 돈들어갈데가 많죠. 이게 보통 종가에서 주도를 하고, 다른 친족(특히 장손)들이 도와주는데..
    예전 같이 장손우대하는 시대도 아닌 법적으로 1/n 상속받는 입장에서 장손의 부담이 크죠. 거기에 대를 잇기 위한 친족 양자가 흔한 시대도 아니고, 보통 1명 낳는 시대에 그게 아들이라는 보장도 없구요.
    저희집 종친회는 아직 그럭저럭 굴러가는듯하지만, 저희대 또는 제 자식대에서 유명무실해지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 14.01.04 11:35

    아시는 분중에 후지와라 씨가 있는데 정말 후지와라 씨가 맞냐고 물어보니 니가 생각하는 후지와라가 맞다네요. 연세가 65세 이신데 확실히 이쪽도 마음대로 결혼하는게 아니더군요.

    부인은 일본 총리 따님이시고 교육도 일본왕족 + 귀족들이랑 같이 받았다네요..뭐 50년전이니 지금이야 모르겠지만..일본 철강 사장님이시고. 어느 나라이든지 잘나가는 가문은 잘나가는

    가문끼리 끼리끼리 혈연관계를 맺는듯.

  • 작성자 14.01.04 11:37

    그런 분과의 인맥이 있는 chao님도 신기해요ㅎㅎ

  • 14.01.04 22:47

    우왕 니가 생각하는 후지와라라니... 그게 설마 제가 생각하는 후지와라인가요?ㄷㄷㄷ 굉장한 인맥이시네요

  • 14.01.05 08:29

    후지와라 셋칸케(藤原 攝關家)...ㄷㄷ 뭐 전전에는 귀족으로 취급받았었죠. 아마 가쿠슈인 출신인 것 같고... 쇼와 시기의 총리대신인 고노에 후미마로도 후지와라 5섭가 중의 하나인 고노에가의 자손...

  • 14.01.04 13:22

    파평 윤씨라고 하는데 전혀 그런 감이 안오는게.....이미 할아버지때부터 소작농이어서 걍 족보 샀거나 갑오경장 이후 어떻게 넣어버린듯..
    저희 아버지는 가문이나 집안 도움을 전혀 못 받아서 그런가 냉소적이긴 합니다. 저도 냉소적이라서.ㅎㅎ

  • 14.01.05 19:44

    파평 윤씨면 시조가 고려초의 공신인 윤신달 장군 맞나요?...드라마 태조 왕건에 나온 분이시죠?...^-^

  • 14.01.04 16:59

    자기 증조부 위로부터는 웬만해서 가문 족보는 안 파헤치는게 정신에 이롭다는 교수님 말씀

  • 14.01.04 20:46

    인동 장씨라 하고 실제 화수회?에도 이름이 적혀 있지만 뭐...

    애초에 양반이 전국민 1퍼도 안되고 증식(?)을 했다 해도 소수일텐데 뭐 농부였을듯

  • 14.01.04 23:12

    한양 조씨 양경궁파 라는데 그 이상은 모르겠네요.

  • 14.01.05 01:52

    ㅋㅋ 나도 한양 조씬데... 우리는 종손이 일찍 돌아가셔서 과부가 되신 할머니께서 돈 받고 족보를 열람해 주신다는... 그냥 연 끊고 삼.

  • 14.01.05 00:43

    여산 송씨 이고 나름 10대째 장손이라서.. 문중에서 연락도 오고 아버지는 시제도 가시더군요... 증조할아버지 때는 전주 향교에서 제문도 읽으실 정도로 나름 알아주는 동네 유학자였는데 일제 시대 넘기며 돈이 없으니 자연히 집안이 허접해지더군요. 받은 건 없지만 그래도 묘하게 뭔가 해줘야 된다는 생각만 하고 있습니다.

최신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