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사장 : 봉성역린(鳳城逆鱗) - 2
- 세상 밖으로 달려라.
새벽의 찬 기운이 이슬로 적셔지는 인시 중엽(4시), 사공운은 담
장 아래에 웅크리고 앉아 있었다. 그의 시선은 이미 초점을 잃고 있
었으며 몸과 마음은 풀어져 있었다.
서산으로 천천히 기울어 가는 달빛이 그를 감싸고 있었으며, 가
끔 불어오는 바람이 그의 안타까움을 대신하고 있었다.
'나는 또 지켜주지 못했다.'
사공운은 목이 바싹 타오르는 것을 느꼈다.
'술이 있다면.'
그는 간절하게 술이 마시고 싶었다. 그러나 그래선 안 된다는 것
을 안다. 그는 지키고 있는 것이 아니라 버팅기고 있었다. 참고 있
는 것이 아니라 죽어 가고 있다는 말이 옳으리라.
'지금쯤, 지금쯤 아영은......'
더 이상 생각하고 싶지 않았지만 그의 의지와는 다르게 아영의
모습은 더욱 또렷하게 그의 머리 속을 헤집고 나타났다.
벌거숭이로 담황과 엉켜 있는 그녀의 모습이 마치 물 속에서 갓
건져 올린 고기처럼 퍼득거린다. 눈을 감고 귀를 막았지만, 흐느끼
는 듯한 소리가 그의 가슴을 저미고 지나갔다.
'이 한심한 놈아, 그녀가 다른 남자의 품에 안기는 것이 그리 대
수더냐? 그녀가 행복할 수만 있다면......'
그의 외침은 공허한 메아리로 사라진 채, 다시 떠오르는 그녀는
자신을 보고 있었다. 원망의 눈초리 왜 자신을 찾아오지 않았느냐고
그녀는 울고 있었다.
'어떻게 하란 말이요. 내가 당신을 찾아가면 그 다음은 어쩌란 말
이요. 내가 죽는 것은, 내가 욕을 먹는 것은 참을 수 잇지만, 당신
은 간통한 여자로 평생을 손가락질 받을 것이고, 봉성은 명분을 각
게 되오. 죽어간 청룡당의 제자들에게는 뭐라 한단 말이요. 그리고
...... 나는 당신을 납치한 자, 그 죄를 뭐라 사할 것이며, 어떻게 용
서를 바란단 말이오.'
끝없이 변명을 하였지만, 그녀는 고개를 흔든다. 그리고 그녀의
옷자락이 펼쳐지면서 다시 나타나는 그녀의 나신과 그 나신을 안고
있는 담황의 그림자가 그를 몸서리치게 한다.
아득한 기억 속에, 흐느끼며 몸부림하던 그녀가 겹쳐 떠오르며
그를 세상과 완벽하게 격리시키고 있었다. 사공운은 덜덜 떨리는 손
을 마음과 나누느라 한 동안 고생을 해야 했다. 용설아를 안고 희열
에 찬 담황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그리고 그가 그를 보고 웃는다.
자신을 비웃고 있었다.
"형님은 참으로 아둔합니다."
담황이 자신을 보고 말했다. 사공운은 몸을 부르르 떨었다.
환청인가?
그러고 보니 누군가가 자신으로부터 달빛을 가리고 있었다. 그의
고개가 힘겹게 위로 향했고, 그의 붉은 눈에 누군가의 모습이 보였
다. 흐릿한 시선이 점점 밝아지면서 달의 후광을 업고 서 있는 사내
의 모습이 또렷하게 나타났다.
'제길 아직도 환상에서 헤매고 있는가? 정신 차려라 사공운아.'
스스로 자조하면서 고개를 흔들었다. 그리고 다시 전면을 올려
다 보니, 분명 거기에 서 있는 것은 담황이었다.
사공운은 가슴을 타고 오르는 질투심과 살의를 느꼈지만 억눌러
참았다. 호흡을 가다듬고 유령신공을 천천히 끌어올리자 마음이 진
정되어온다.
"담 아운가?"
놀라우리만큼 침착하고 담담한 목소리였다.
"여기 서 있은지 이각이 되었습니다."
"새 신랑이 여기 나와 있으면 어쩌는가? 이제 첫 경험을 한 여자
라 불안해 할 것일세, 곁에 있어 주어야 하지 않겠는가?"
사공운의 말을 들은 담황이 하늘을 보고 조금 쓴웃음을 머금었다.
그것은 새 신랑이 가져야 하는 미소가 아니었다. 사공운도 그것을
느꼈음인가? 조금 의아한 시선으로 그를 보았다.
"그녀는 강한 여자입니다."
사공운은 피식 미소를 지었다.
용부에서 봉성을 향해 다가오면서 정말 강하고 현명하게 잘 견디
어준 여자였다. 그녀와 있는 남자는 편안함을 얻을 수 있다. 용설아
의 진가는 그녀와 함께 해 본 남자만이 알 수 있었다. 지혜롭지만
그 것을 겉으로 들어내지 않으며, 한없이 부드럽지만 속내를 들여다
보면 의지가 곧고 강한 여자였다. 자신이 어떻게 해야 남자가 편하
다는 것을 잘 아는 여자였다.
사공운은 그녀를 생각하다 불현듯 자신의 대답이 너무 늦어지고
있음을 알았다.
"여하튼 축하하네."
"고맙습니다. 근데 형님은 무엇인가 안 좋은 일이 있는 모양입니
다."
"그렇게 보이나?"
"그렇게 보입니다."
"죽은 아내를 생각하고 있었네."
"그럴 거라 생각했습니다."
침묵은 두 사람의 사이에 조금 어색함을 만들었고, 이슬바람은
두 사람을 시원하게 감싸고 지나갔다.
"근데 여긴 왜 왔는가? 새 신랑이."
"답답해서 말입니다."
"답답한가?"
담황은 대답대신 사공운의 곁에 웅크리고 앉았다.
십장 높이의 담 아래 웅크리고 있는 두 남자의 모습은 좋게 보아
도 궁상맞았다. 얼마간의 시간이 다시 흘렀을까?
침묵을 깬 것은 사공운이었다.
"자네, 그녀를 끝까지 지켜주게, 반드시 행복하게 해 주길 바라
네. 여러 가지로 불쌍한 여자일세."
담황은 사공운을 돌아보았다. 그의 그늘진 옆모습을 지켜보던 담
황이 조금 굳은 얼굴로 말했다.
"그것은 내가 아니라 형님의 몫이 아닙니까?"
사공운은 서늘한 시선으로 담황을 보았다.
"자네......"
"형님, 혹시 내 이야기 좀 들어보시겠습니까?"
무엇인가 석연치 않음이 느껴진다. 그래서인가? 사공운은 자신도
모르게 내공을 끌어 모아 사방을 경계했다. 다행히 그들의 이야기를
들을 만한 인적은 주위에 없었다.
담황은 사공운의 상기된 모습을 보면서 말했다.
"여기 원앙실의 뒤, 후원은 형님 이외엔 아무도 없습니다. 이 담
장 너머엔 삼봉검대가 있지만, 후원 뒤쪽은 봉성의 밀지이기에 이
쪽으로 경계를 설 일은 별로 없지요."
사공운의 눈가가 가볍게 찌푸려졌다. 결국 봉성에서는 자신에게
중요한 자리를 내 주진 않았단 말이었다.
"화내지 마십시오. 이 자리에 형님을 빼 돌린 것은 저입니다. 그
래야 방해를 받지 않고 형님을 볼 수 있을 테니 말입니다."
"무슨 뜻인가?"
"들어보십시오."
"말해 보게나."
사공운의 목소리는 긴장하고 있었다. 그는 최강의 적을 앞에 두
었을 때보다도 더 긴장하고 있었다. 왜인지는 그도 모른다. 그것은
그의 본능이었고, 느낌이었다.
"어려서부터 내가 가장 힘겹게 배운 무공이 뭔 줄 아십니까?"
"그게 뭔가?"
사공운이 궁금한 표정으로 물었다.
"섭혼음부신공이란 것입니다."
"섭혼음부신공? 첨 듣는 무공이군, 하지만 어감은 좋지 않아, 마
치 흡정음부사공과 비슷한 느낌이야."
"그럴 것입니다. 실제 섭혼음부사공을 우리 끼린 그렇게 신공으로
바꾸어 부르니까요. 실제 무공 명칭은 섭혼음부사공이 맞습니다."
사공운의 눈이 담황을 보았다. 놀란 표정이었다. 무엇인가 이상함
을 느낀 탓이다. 섭혼음부사공이라면 아무리 좋게 생각해도 흡정음
부사공을 떠올리게 만들었다.
"원래 흡정음부사공은 정확하게 둘로 나뉘어져 있습니다. 하나는
흡정음부사공이고 또 하나는 섭혼음부사공이죠. 흡정음부사공은 알
아도 섭혼음부사공을 아는 사람은 세상에 아무도 없다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 무공을 만들어낸 사람은, 우리 담가의 조상 중 한 분
이셨기에, 우리 가문에서만 알고 있는 비밀이죠."
사공운은 다시 한번 담황을 돌아보았다. 지금 그가 하고자 하는
이야기는 무엇인가? 담황의 시선이 조금 멍하게 하늘을 보고 있었
다. 그의 눈에 떠오른 허탈함과 공허함은 사공운으로 하여금 동정심
을 유발케 하였다. 지금 그가 남을 동정할 처지인가?
"혹시 형님은 우리 가문과 용부가 사돈 지간이 될 때, 장남인 천
형님을 놔두고 하필이면 둘째인 제가 선택되었는지 이상하게 생각
한 적은 없으십니까?"
듣고 보니 그렇다. 아니 오래 전부터 조금은 이상하다 생각하긴
했었다. 그러나 거기엔 이유가 있겠지 싶었었다.
"이상하지 않습니까? 용부를 배경으로 둔 여자라면, 최고의 며느
리감이라 할 수 있죠. 그런데 그 복이 형이 아니라 저에게 왔다면
참으로 신기한 일 아닙니까? 엄연히 장자의 법칙이란 것이 있는데
말이죠."
"그것은 자네의 형님에게 이미 결혼 상대자가 있었기에......"
"그것은 아닙니다. 그리고 형님은 이미 어느 정도 짐작하고 있으
리라 생각하지만, 백발음마는 우리 봉성이 키우고 있습니다. 물론
금강사호도 우리 봉성의 걸작 중 하나지요."
움찔하던 사공운의 모습이 다시 침착해졌다. 어차피 짐작하고 있
던 일이었다. 담황은 사공운을 보았다. 자신이 한 말에 대한 여파를
보고 싶었으리라. 그런데 사공운은 별로 놀라지 않았다. 역시 그는
짐작하고 있었는가?
"상관없네, 난 봉성이 용부를 집어삼키던 말던 상관 안 하네, 영
환호위무사로서 용설아 소공녀만 행복하다면 그것으로 족하네.?"
"형님도 많이 이기적이군요."
"그것이 아닐세. 내 힘이 부족하기 때문일 뿐. 자칫 작은 것 하나
도 얻을 수 없을까 그게 두려울 뿐일세. 난 영웅이 아닐세, 그리고
무슨 초인도 아니고, 내가 택할 수 있는 길은 한계가 있단 말일세,
만약 내가 대의 명분을 따지고 봉성의 음모를 파 해치니 어쩌고 했
다면, 그나마 우리도 살아 남지 못했겠지. 아니 나는 이미 죽었겠
지. 용설아 소공녀야 가치가 있을 테니 죽이진 못했겠지만."
담황은 사공운을 보고 웃었다.
"정말 잘 하셨습니다. 형님의 인내가 한 번의 기회를 줄 것 같습
니다."
사공운이 담황을 보았다. 둘의 시선이 엉켰다가 풀어졌다.
"기회? 나는 아직 경청 중일세."
담황은 다시 웅크린 자세에서 이야기를 이어갔다.
"원래 흡정음부사공이란 것은 남자가 익히되 결코 십성 이상은
터득할 수 없는 무공입니다. 음한지공으로 여자가 익히기에 적합한
무공이기 때문이죠. 그러나 여자가 익힌다면 육십년이 걸려야 십성
에 달할 수 있겠죠. 결국 시간을 단축하고 단시간에 대성하는 방법
이 있는데 그 방법이 다음과 같습니다. 우선 남자가 흡정공으로 여
자의 음기를 흡수하여 음부사공을 십성까지 단시일에 익히게 하고,
그 남자의 음부사공을 전부 채음보양하는 방법입니다."
사공운은 마른침을 꿀꺽하고 삼켰다. 그로서도 처음 듣는 소리였
다. 그리고 지금 그가 하는 이야기가 얼마나 중요한지 새삼스럽게
깨우치는 사공운이었다. 그는 담황을 다시 한번 돌아보았다. 마치
남 이야기하듯이 말하고 있는 그의 눈이 물기로 반짝이고 있었다.
"나한테 이런 이야기를 해도 되는 것인가?"
"그냥......, 그냥 들으십시오. 나도 말하기 싫었습니다. 그러나 지
금 말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용설아 그녀를 위해서입니다. 그리고
나의 어머니를 위해서이기도 합니다."
사공운은 조금 움찔거리며 담황을 보았다. 울고 있는가? 담황이
울고 있었다. 눈물이 흐르고 있기 때문이 아니었다. 그런 강한 슬픔
을 가져 보았기에 사공운은 그의 아픔을 느낄 수 있었다. 그의 소리
없는 통곡이 사공운의 가슴을 가득 채워온다.
'아영을 깊이 사랑하고 있구나.'
사공운은 그의 슬픔 속에 그것을 느낄 수 있었다. 가슴이 답답해
온다.
첫댓글 재미있게잘봤습니다.
감사합니다
잘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ㅎㅎㅎ
즐감~!
감사합니다 잘보았습니다
ㅈㄷㄳ
감사해요~~~^~
ㅈㄷㄱ~~~~~````````````````````
감사합니다.
감사 합니다..
감사합니다
사랑
즐독!!!!!!!!!!1
잘읽었습니다
즐감
즐독 감사합니다^^^
감사...
즐독
잘읽었습니다
재미 있게 읽고 갑니다
항상 건강 하고 행복 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