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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롱당하시는 예수님19:1~5
1 이에 빌라도가 예수를 데려다가 채찍질하더라
2 군인들이 가시나무로 관을 엮어 그의 머리에 씌우고 자색 옷을 입히고 3 앞에 가서 이르되 유대인의 왕이여 평안할지어다 하며 손으로 때리더라
4 빌라도가 다시 밖에 나가 말하되 보라 이 사람을 데리고 너희에게 나오나니 이는 내가 그에게서 아무 죄도 찾지 못한 것을 너희로 알게 하려 함이로라 하더라
5 이에 예수께서 가시관을 쓰고 자색 옷을 입고 나오시니 빌라도가 그들에게 말하되 보라 이 사람이로다 하매
빌라도의 갈등, 무리의 압박19:6~13
6 대제사장들과 아랫사람들이 예수를 보고 소리 질러 이르되 십자가에 못 박으소서 십자가에 못 박으소서 하는지라 빌라도가 이르되 너희가 친히 데려다가 십자가에 못 박으라 나는 그에게서 죄를 찾지 못하였노라
7 유대인들이 대답하되 우리에게 법이 있으니 그 법대로 하면 그가 당연히 죽을 것은 그가 자기를 하나님의 아들이라 함이니이다
8 빌라도가 이 말을 듣고 더욱 두려워하여 9 다시 관정에 들어가서 예수께 말하되 너는 어디로부터냐 하되 예수께서 대답하여 주지 아니하시는지라
10 빌라도가 이르되 내게 말하지 아니하느냐 내가 너를 놓을 권한도 있고 십자가에 못 박을 권한도 있는 줄 알지 못하느냐 11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위에서 주지 아니하셨더라면 나를 해할 권한이 없었으리니 그러므로 나를 네게 넘겨준 자의 죄는 더 크다 하시니라
12 이러하므로 빌라도가 예수를 놓으려고 힘썼으나 유대인들이 소리 질러 이르되 이 사람을 놓으면 가이사의 충신이 아니니이다 무릇 자기를 왕이라 하는 자는 가이사를 반역하는 것이니이다
13 빌라도가 이 말을 듣고 예수를 끌고 나가서 돌을 깐 뜰(히브리 말로 가바다)에 있는 재판석에 앉아 있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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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말씀 요약]
빌라도는 예수님을 채찍질하고 군인들은 예수님께 가시관을 씌우고 조롱합니다. 빌라도가 예수님에게서 죄를 찾지 못했다고 말하자, 자칭 하나님 아들이라 한 사람은 죽어 마땅하다고 유대인들이 소리칩니다. 예수님을 놓아주면 가이사의 충신이 아니라는 말을 듣고 빌라도가 재판석에 앉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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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롱당하시는 예수님19:1~5
예수님이 채찍에 맞으심으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습니다(사 53:5). 성경의 예언대로 예수님은 채찍질과 희롱을 당하십니다. 군인들은 예수님 머리에 가시나무 관을 씌우고 자색 옷을 입혀 왕의 모습으로 꾸밉니다. 그러고는 예수님을 조롱의 대상으로 삼아 “유대인의 왕이여 평안할지어다”(3절)라고 외치며 손으로 때립니다. 빌라도는 채찍질로 만신창이가 된 예수님을 무리에게 보이며 “보라 이 사람이로다”(5절)라고 말합니다. 자칭 유대인의 왕이라고 주장하는 사람이 이렇게 연약하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치유와 구원은 거저 주어진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 아들이 우리를 대신해 채찍에 맞으시고 십자가를 지신 결과입니다.
● 더 깊은 묵상
예수님은 로마 군인들로부터 어떤 수모를 겪으셨나요?
나를 위해 모든 수모를 참으신 예수님을 기억하며 내가 인내할 일은 무엇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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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라도의 갈등, 무리의 압박19:6~13
종교 지도자들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소리칩니다. 믿는 이들은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고백했지만(1:49; 11:27), 종교 지도자들은 이 칭호를 문제 삼습니다. 빌라도는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말에 두려움을 느낍니다. 신적 인물에 대한 위협은 자신에게 해롭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는 예수님께 그분의 출처에 관해 물으며, 처형 권한이 자신에게 있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빌라도가 가진 처형 권한도 하나님이 부여하신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자칭 왕이라고 말하는 이를 놓아주는 것은 가이사에게 반역하는 죄라며 빌라도를 압박합니다. 더는 예수님 편에 설 수 없는 빌라도는 재판석에 앉습니다. 그는 자신의 안위와 진실한 재판 중에서 하나를 선택해야 합니다.
● 더 깊은 묵상
빌라도가 자신의 권한이라고 여긴 일은 실상 어디에서 온 것인가요?
내게 권한을 주신 하나님을 기억하고 바르게 행할 일은 무엇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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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가 고난을 견딜 이유
미국의 사회 심리학자인 로이 바우마이스터 교수는 그동안 학계의 정설이던 ‘낮은 자존심이 폭력을 유발한다’는 주장에 대해 ‘위협받는 자부심 이론’을 제기해 반박했습니다. 부모가 오냐오냐 해서 자녀의 자존심을 키워 놓았더니, 그 자녀는 원하는 것을 갖지 못하거나 자기보다 잘하는 사람을 만나면 폭력을 휘두르더라는 겁니다. 이 이론을 뒷받침하는 가장 극단적인 사례는 자신에 대한 폭력적 행동, 즉 자살입니다. 높은 자부심이 공격당할 때 폭력적인 성향을 나타내고 자살을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모욕과 조롱을 받으면 사람들은 죽음까지 생각할 정도로 괴로워합니다. 그런데 창조주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도 십자가에서 수치와 조롱을 당하셨습니다. 사랑하고 사랑받는 것도 중요하지만, 수치와 모욕을 잘 감당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내가 누군데, 우리 집안이 어떤 집안인데!”라며 눈을 부라린다면 사랑을 잘못 받은 것입니다. 사랑을 잘 받은 사람이 수치와 모욕을 잘 감당할 수 있습니다.
주님은 십자가를 지시며 모든 수치와 조롱, 멸시를 받으셨습니다. 악하고 음란한 세상에서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수치와 조롱을 받으셔야 했습니다. 그 주님을 바라보고, 우리에게 주어진 사명을 위해 끝까지 인내하며 십자가를 잘 감당하길 바랍니다.
뜨겁게 행하라 / 김양재_ 두란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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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절묵상:요한복음 19장 3절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만왕의 왕이십니다. 그러나 죄와 무지 가운데 있는 사람들은 예수님을 알지 못합니다. 그런 사람들은 예수님을 조롱하고 모욕하며 때리기까지 합니다. 예수님은 침묵으로 모든 수모를 견디십니다. 인류를 죄와 사망에서 구원하시기 위함입니다. 오늘날 세상은 여전히 예수님을 왕으로 인정하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유대인만의 왕이 아니라 모든 사람의 왕이십니다. 예수님을 우리 삶의 왕으로 인정하고 섬기는 자만이 구원을 얻습니다.
주님의 은혜로 지배받지 않으면 우리는 혐오스러운 자기 의지에 지배당한다. - 아서 핑크
오늘의 기도
하나님, 하나님보다 사람들의 반응이 두려워 옳은 일을 하지 못했음을 용서해 주소서. 권력과 지위가 지닌 힘보다, 그 권한을 주신 하나님 손에 모든 것이 달려 있음을 믿음으로 고백합니다. 오직 모든 것을 주관하시고 계획하시는 하나님의 뜻을 구하고 따르게 하소서.
요한복음19:1-13절
우리에게 주시는 교훈은 빌라도는 예수님을 채찍질 하여 유대인들이 예수님에 대한 분노를
누그러 뜨릴려고 했습니다
본문은 빌라도가 예수님을 풀어주려고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우리가 읽은 본문에서 빌라도는 예수님이 죄가 없음을 3번이나 말하고 있습니다
첫번째, 18:38절에 "나는 그에게서 아무 죄도 찾지 못하였노라"
두번째, 빌라도는 예수님을 채찍하여 채찍에 맞은 모습을 종교지도자들에게 보여주었습니다
이렇게 한 이유는 종교지도자들의 분노를 누그러 뜨림이요
궁극적으로 예수님이 죄가 없음을 알리기 위해서였습니다
4절 하반절에 "내가 그에게서 아무 죄도 찾지 못한 것을 너희로 알게 하려 함이로라 "
마지막 세번째 그러나 군중들은 에수님을 못 박으라합니다
이때 빌라도는 다시 예수님에게는 죄가 없다고 했습니다
6절 하반절입니다 "너희가 친히 데려다가 십자가에 못박으라 나는 그에게서 죄를 찾지 못하였노라"
빌라도가 3번씩이나 예수님의 죄 없음을 보고 풀어주려고 했습니다
12절에 보면 빌라다고 예수님을 풀어주려고 힘썼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결국은 풀어주지 못했습니다
이유는 자신의 안전 때문입니다
여기서 우리에게 주시는 교훈은 안전도 중요하겠지만 안전 보다 중요한 것은 옳은 것을 구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빌라도는 자신의 안전을 지키기 위해 옳은것을 말하지 않고 타협했습니다
빌라도는 옳지 않은 종교지도자들의 말보다 옳은 예수님을 지켜주어야 했습니다
안전보다 중요한 것은 옳은 것을 택하는 것입니다
안전을 지키려다가 오히려 안전을 잃어버렸습니다
다음은 빌리도는 예수님이 죄가 없음을 알면서도 즉각 풀어주지 않고 오래 지체하고 말았습니다
예수님이 죄가 없다고 했을때 종교지도자들과 무리들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했습니다
빌라도가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다시 지체할때 종교지도자들은 가이사의 충신이 아니라고
협박했습니다
종교지도자들 입에서 가이사의 충신이 아니라는 말을 들었을때
가이사에게 신뢰를 잃게 될수 있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그래서 더이상 예수님을 풀어줄수 없게 되었습니다
빌라도는 오래 지체하였고 오래 지체할수록 통제할수 없게 되었습니다
죄와 타협할때도 그렇습니다 죄와 타협할때 죄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죄라고 깨닫게 되면 즉시로 회개하여 죄의 지배에 들어가지 않는 것이 지혜로운 것입니다
죄가 아닌 옳은 것을 선택하는 것이 지혜로운 것입니다
우리가 이것을 빌라도를 통해 배우는 것입니다
진리이신 말씀편에 서서 말씀을 선택하는 우리 모두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오늘 본문은 어떻게 빌라도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도록 넘겨주었는지를 보여 줍니다.
1절을 보면 빌라도가 예수님을 채찍질한 이유는 예수님을 풀어주기 위함이었습니다.
빌라도는 예수님을 풀어 주기 위해 여러 방법을 사용합니다.
왜냐하면, 빌라도는 예수님께서 죄가 없다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빌라도는 10절에서 “내가 너를 놓을 권한도 있고 십자가에 못 박을 권한도 있는줄 알지 못하느냐”라고 말했지만 결국 빌라도는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도록 내어 줄 수밖에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그의 후견인이었던 세잔루스가 숙청되어 죽게 되자 자신의 입지가 약해지고 있음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바로 이 사실을 안 대제사장과 유대인들은 “이 사람을 놓으면 가이사의 충신이 아니니이다”라고 말함으로써 가이샤에 대한 빌라도의 충성심에 도전합니다.
빌라도는 예수님이 죄가 없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진리의 편에 서지 못하고 자신의 욕심과 지위, 권력 앞에서 굴복하고 맙니다.
그러나 이러한 모든 일의 배후에는 하나님께서 계신다는 것을 예수님의 증언 속에서 알 수 있습니다.
11절을 보면, “위에서 주지 아니하셨더라면 나를 해할 권한이 없었으리니 그러므로 나를 네게 넘겨준 자의 죄는 더 크다 하시니라” 빌라도는 세상의 왕인 로마의 황제가 두려워서 예수님을 내어 준 것처럼 보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주장했던 유대인의 입에서 “가이사 외에는 우리에게 왕이 없나이다”라는 고백이 나오는 것을 볼 때 세상의 권세가 하늘의 권세를 이기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은 유대인들이 생각했던 것처럼 로마로부터 그들을 해방해 줄 전사의 모습으로 오신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제단에 바쳐질 어린 양의 모습으로 이 땅에 오셨습니다. 그래서 로마의 군병들에게, 유대인들에게 수모를 당하시는 것입니다. 금관을 쓰시고 이 땅을 다스리는 것이 아니라 가시 면류관을 쓰시고 수모를 당하심으로 그의 사랑을 표현하십니다.
우리는 자색 옷을 입으신 예수님을 목격하게 됩니다. 이 모습은 구약의 예언이 이루어지기 위함입니다. 이사야 63장 1-3절을 보면, “에돔에서 오는 이 누구며 붉은 옷을 입고 보스라에서 오는 이 누구냐 그의 화려한 의복 큰 능력으로 걷는 이가 누구냐
그는 나이니 공의를 말하는 이요 구원하는 능력을 가진이니라 어찌하여 네 의복이 붉으며 네 옷이 포도즙 틀을 밟은 자 같으냐 만민 가운데 나와 함께 한 자가 없이 내가 홀로 포도 즙들을 밟았는데 내가 노함으로 말미암아 무리를 밟았고 분함으로 말미암아 짓밟았으므로 그들의 선혈이 내 옷에 튀어 내 의복을 다 더럽혔음이니” 하나님의 심판을 행하는 메시아의 모습을 붉은 옷, 자색 옷을 입은 자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의 참 의미를 아셨습니다. 십자가는 심판의 상징입니다. 모든 하나님의 백성들이 받아야 할 심판을 흠이 없는 어린 양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담당하시기에 그는 자색 옷을 입으신 것입니다. 바로 이 일이 유월절에 이루어졌습니다. 마치 유월절 날에 양의 피가 유대인들의 집 문설주에 뿌려져서 그들의 장자가 구원받은 것처럼 예수님의 피가 우리에게 뿌려져 우리가 구원을 받게 된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십자가의 참 의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세상의 권세를 좇는 자가 아니라 하늘의 권세를 좇는 자입니다. 왜냐하면 여러분을 위해서 예수 그리스도가 가시 면류관을 쓰시고 채찍질을 당하시며 자색 옷을 입으시고 세상으로부터 멸시와 조소를 당하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그의 몸을 드려서 우리를 죄에서부터 구원하셨기 때문에 우리는 하늘의 권세를 좇는 자가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세상의 논리가 우리의 신앙으로 들어오면 안 됩니다. 마찬가지로 세상의 논리가 교회 안에 들어오면 안 됩니다. 우리가 다시 한번 심각하게 고민해야 하는 것은 우리가 누구를 쫓고 있는가입니다.
우리는 우리가 만든 금관의 예수를 쫓고 있는가? 아니면 우리를 위해 자신의 몸을 십자가에 내어 주신 예수님을 쫓고 있는가를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자신을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외치는 자들을 위해 울고 계시는 예수님께서 지금 우리를 보시고 울고 계신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너무나도 감사한 것은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 예수님을 주라고 고백한다는 사실입니다. 죄로부터 구원받은 은혜를 오늘 하루도 풍성히 누리시는 여러분들이 되길 소원합니다.
➲ 주님의 침묵과 순종을 기억해야 합니다(4~11절).
빌라도는 예수님을 채찍질을 하고 조롱을 한 후에 다시금 밖으로 나와 무리들 앞에서 무죄 방면할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군중들의 반응은 ‘...십자가에 못 박으소서 십자가에 못 박으소서...’(6절)라고 소리 질렀습니다. 이에 대한 빌라도의 반응은 ‘.,..너희가 친히 데려다가 십자가에 못 박으라...’(6절b)며 군중들의 반응에 화가 나서 조롱하는 투로 이 말을 던졌습니다.
유대인들은 자신들에게도 법이 있는데, 그 법대로 하면 예수님은 신성모독죄를 범했다는 것(7절)입니다. 이에 빌라도는 두려워하여 다시 관정으로 들어가 예수님께 ‘...너는 어디로부터냐?’질문하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대답하여 주시지 않으십니다. 예수님의 침묵에 대하여 빌라도는 자신에게 예수님의 생사를 결정할 권한이 있다고 말합니다(10절).
예수님은 하늘의 권세를 언급하시면서 빌라도의 권세는 그에게 속한 것이 아님을 분명히 하십니다(11절). 즉 예
수님의 생사여부는 빌라도가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에게 있음을 분명하게 선언하신 것입니다.
세상의 모든 권세는 하나님으로부터 비롯된 것이고, 하나님이 정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음 또한 빌라도의 권세에서 비롯된 것도 아니고, 유대인들의 집요함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정하신 뜻 안에서 이루어진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놀라운 구속 계획을 성취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본래 하나님의 본체이셨지만 동등됨을 취하지 않으시고 종의 형체를 입고 세상에 오셔서 십자가에 죽기까지 하나님의 뜻에 복종하심으로 하나님의 구속 계획을 완성하셨습니다(빌 2:5~11). 바울은 이런 예수님의 마음을 배우라고 권면합니다. 그러므로 내 자신은 항상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하나님의 뜻에 복종함으로 구원을 이루어 가야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침묵하셨고, 끝까지 순종의 길을 걸으셨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세상의 권세에 따라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권세에 순복함으로 세상의 부당한 고난과 조롱도 넉넉히 이겨내는 삶을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십자가의 주님을 따른 삶이란 그래서 주님의 침묵과 순종을 기억하여 살아가는 삶이어야 합니다.
➲ 주님의 인내와 승리를 신뢰해야 합니다(12~16절).
빌라도는 예수님을 놓아주려고 했지만, 유대인들은 그러면 그가 가이사의 충신이 아니라 반역자가 될 것이라며 오히려 빌라도를 위협합니다. 빌라도는 양자 택일이라는 기로에 서게 되었습니다. 빌라도는 재판석에 앉아 마지막으로 판결을 내리기 전에 유대인들에게 다시한 번 조롱하며 말합니다.
‘...보라 너희 왕이로다...’(14절). 그들은 소리 소리를 지르며 ‘...없이 하소서. 없이 하소서. 그를 십자가에 못 박게 하소서...’라고 외칩니다. 뿐만 아니라 그들은 가이사 외에는 자신들에게 왕이 없다고 하는 배교의 말까지 내뱉습니다. 이들의 이러한 말은 이제 하나님을 섬기지 않겠으며, 유대인들이 그토록 기다려 왔던 메시아를 인정하지 않겠다고 하는 선언과 같은 말입니다. ‘이에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도록 그들에게 넘겨 주니라...’(16절).
세상에 참 빛이 왔지만, 사람들은 그 빛을 믿지도 받아들이지도 않았고, 도리어 자신들의 죄악이 드러날 것을 두려워하여 빛을 거부하기에 이르렀습니다. 그럼에도 예수님은 묵묵히 십자가의 길을 걸으셨고, 그 걸음은 실패가 아닌 승리의 걸음이었습니다. 현실에서 진리를 위협하는 상황을 자주 맞닥뜨릴 수 있습니다.
그럴 때라도 진리이신 예수님을 인정하는 길을 선택해야 합니다. 현실의 이익보다 진리를 더욱 기뻐할 때, 예수님을 드러내는 능력을 나타낼 수 있습니다. 끝까지 인내하며 결국 승리하게 될 진리의 편에 서 있는 삶이어야 하겠습니다. 십자가의 주님을 따른 삶이란 그래서 주님의 인내와 승리를 신뢰하는 삶이어야 합니다.
오늘도 세상에서 얻는 이익을 위해 세상의 방법대로가 아닌 진리를 위한 희생과 실천을 하는 삶을 살아갈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권세에 온전히 순복함으로 세상의 부당한 고난과 조롱에서도 넉넉히 이겨내며 주님이 걸으신 십자가의 길을 따라 걷는 삶을 살아갈 수 있기를(요 18:39~19:16절)...
예수님의 십자가형을 언도함으로써 사도신경을 통해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으사'라고 선포되어지고 있는 비운의 사나이(?) 빌라도가 예수님을 심문하는 과정을 묘사한 대목으로 그는 예수님의 무죄를 확신했지만 유대인들을 두려워하여 예수님에게 십자가형을 선고하게 됩니다.
예수님은 불법적 재판과 정치적 목적에 의하여 조롱과 모욕을 당하고 십자가를 지신다는 것을 아셨지만 죄인인 우리를 위해 묵묵히 감당해 주신 것을 깊이 묵상하며 감사드려야 됩니다.
빌라도는 예수님이 무죄인 것을 알면서도 사람들을 무서워하여 유죄판결을 내리게 됩니다.
그는 자신은 정치적 이익과 권세를 유지하기 위해 잘못된 결정을 내린 것입니다.
나는 하나님과 사람 중 어느 쪽을 두려워하며 살아가고 있습니까?
요즘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사람과 일이 무엇인지, 하나님을 바라보면서도 여전히 세상의 힘과 성공을 추구하지는 않는지 살펴봅시다.
아무리 선한 동기와 열정이라도 내 마음에 하나님보다 더 높은 자리에 있는 것이라면 그것이 바로 우상입니다.
너를 놓아줄 권세도 있고 십자가에 죽일 권세도 있다고 말하는 빌라도에게 예수님은 그것은 위에 계신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라고 하십니다.
우리도 모든 권세(부모, 직장의 윗사람, 선생님, 나라의 지도자 등)는 하나님이 주신 것임을 인정하고 순종하는 사람이 되어야 하고 뿐만 아니라 주변의 사람들이나 환경도 하나님이 허락하셨음을 믿고 감사하며 살아야 하겠습니다.
무엇이든지 우리를 지배하는 것이 우리의 주인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지배하시도록 모든 것을 내어드리고 그분의 다스림에 순복함으로써 세상을 이기는 삶을 살아가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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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라도의 재판은 불법 투성이에 엉망이라 죄도 정하지 않고 형벌부터 집행했고, 실컷 때리고 나서는 아무 죄도 찾지 못했다며 석방하겠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우리 주님은 이런 불법 투성이의 재판도 다 참으시고 우리를 위해 세 가지 가혹한 형벌을 모두 감내하셨습니다 첫째는 채찍에 맞으셨습니다 주께서 채찍질 당하심으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습니다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사53:5)
여기서 “나음”은 히브리어로 “רפא"(라파)인데 치료를 뜻합니다 예전에는 우리가 치료를 받지 못했습니다 "어찌하여 치료하지 아니하시나이까"(렘14:19) 그러나 이제는 치료 받게 되었습니다 "나는 너희를 치료하는 여호와임이라"(출15:26) 둘째는 가시에 찔리셨습니다 주께서 가시나무 면류관에 찔리심으로 우리의 허물이 사함을 받았습니다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사53:5)
예전에는 우리의 땅과 집에 가시가 나서 안팎으로 괴로움을 당했습니다 "내 백성의 땅에 가시와 찔레가 나며 모든 집에 나리니"(사32:13) 그러나 이제는 가시가 없게 되었습니다 "찌르는 가시와 아프게 하는 가시가 다시는 없으리니"(겔28:24) 셋째는 조롱을 당하셨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왕복 색깔인 흰색 옷 대신에 세상 임금의 왕복 색깔인 자색 옷을 입히고 손으로 치며 조롱했습니다 조롱은 마음을 가시로 찌르는 것이고 마음을 채찍질 하여 찢는 것입니다
그러나 주께서 우리 대신 징계를 받아 몸과 마음을 상하심으로 우리의 죄악이 사함을 받았고 평화를 누리게 되었습니다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도다"(사53:5) 그래서 우리가 평화를 간구하기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평화를 빼앗는 원수로부터 구원해 달라고 주의 이름으로 간구하기 원합니다 "여호와여 나와 다투는 자와 다투시고 나와 싸우는 자와 싸우소서 내 영혼에게 나는 네 구원이라 이르소서"(시35:1~3)
또한 우리의 평화를 깨뜨리는 원통함을 풀어달라고 간구하기 원합니다 그리하면 예전에는 원통함이 많았을지라도, "나의 원통함과 격분됨이 많기 때문이니이다",(삼상1:16) 이제는 원통함을 풀어 주실 줄 믿습니다 "주여 주께서 내 심령의 원통함을 풀어 주셨고 내 생명을 속량하셨나이다"(애3:58)
지난 밤에 불법으로 체포되신 예수님이 안나스, 가야바 대제사장을 거쳐서
새벽에 로마의 총독 빌라도에게 심문을 받았다.
3번에 걸친 심문의 결과는 나는 그에게서 아무 죄도 찾지 못하노라(요18:38)였다.
그래서 유월절 전례를 들어서 예수님을 놓아 줄려고 하지만
유대인들은 예수님 대신에 강도 바라바를 놓아 달라고 소리쳤다.
일말의 양심은 있었던 빌라도는 유대인들과 협상을 위하여
예수를 데려다가 채찍질을 하고 석방하려고 노력을 했다.(요19:1)
빌라도가 예수님에게서 아무 죄도 찾지 못한 것을 알게하기 위함이였다.(요19:4)
그러나 대제사장과 경비병들은
십자가에 못 박게 하소서, 십자가에 못 박게 하소서(6)하고 미친듯이 외쳤다.
적어도 종교지도자라면 허물이 많고 큰 실수를 저질러서
중벌을 받게 된 경우라 해도 용서해 주기를 간청해야 할 사람이다.
대제사장은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중보자 역할을 해야 할 사람이다.
그러나 오히려 정치 권력을 가진 빌라도는 죄가 없음을 알고 석방하길 원하나
종교지도자들이 기득권에 문제와 시기와 질투심에서 결코 해서는 안될 말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외치고 있다.
이에 빌라도는 너희가 친히 데려다가 십자가에 못 박으라(6)
나는 그에게서 죄를 찾지 못하노라(6) 한다.
빌라도는 이미 3번이나 예수님이 죄 없음을 선언했다.
유대인들이 자기가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했으니 우리 법 되로하면
당연히 처형되어야 합니다(7)라고 우겼다.
예수님을 처음 고발하던 내용과 전혀 다른 내용으로 와 버렸다.
예수님을 고발 할 때의 고소장에는 로마에 반역을 한다는 것이었다.
갈릴리에서 백성을 선동하고 로마 황제에 반역한다는 정치범으로 고발을 했다.
그런데 지금 유대인들은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했다는
종교적인 신성모독죄를 적용해서 처형해야 한다고 우긴다.
고소장과 다르게 처벌을 할 수가 없는 것이다.
빌라도가 이 말을 듣고 두려워한다(8)
아마도 아내가 이야기 해 준 꿈 생각도(마27:19)났을 것이다.
만약에 예수님이 정말 하나님의 아들이라면
큰 일일 거라 생각하니 두렵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빌라도는 다시 관정으로 들어갔다(9)
로마의 총독이라는 자가 몇 번씩이나 나왔다 들어갔다 하는지 모르겠다.
예수를 놓아 줄려고 무척 애를썼다.(12)
그러나 유대인들은 소리를 지른다.
이 사람을 놓으면 가이사의 충신이 아닙니다.
자기를 왕이라 하는 자는 가이사 황제를 반역하는 것입니다.(12)라고 협박한다.
결국 자신의 정치적인 약점을 집요하게 물고 늘어지는 군중들과
기득권을 놓지 않으려는 권력에 대한 욕심 때문에
정의를 무시하고 군중의 소리에 귀를 기울려서
인류 역사상 가장 잘못된 판결을 내리고 말았다.
드디어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그가 곤욕을 당하여 괴로울 때에도 그의 입을 열지 아니하였음이여 마치 도수장으로 끌려가는 어린 양과 털 깎는 자 앞에서 잠잠한 양 같이 그의 입을 열지 아니하였도다
그는 곤욕과 심문을 당하고 끌려갔으나 그 세대 중에 누가 생각하기를 그가 살아있는 자들의 땅에서 끊어짐은 마땅히 형벌받을 내 백성의 허물 때문이라 하였으리요.(사 53:6~8)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하시니라.(마 11:28~30)
마리아가 가서 예수와 함께 하던 사람들이 슬퍼하며 울고 있는 중에 이 일을 알리매
그들은 예수께서 살아나셨다는 것과 마리아에게 보이셨다는 것을 듣고도 믿지 아니하니라.(막 16:10~11)
이튿날 요한이 예수께서 자기에게 나아오심을 보고 이르되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
내가 전에 말하기를 내 뒤에 오는 사람이 있는데 나보다 앞선 것은 그가 나보다 먼저 계심이라 한 것이 이 사람을 가리킴이라.(요 1:29~30)
내가 너희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아니하고 너희에게로 오리라
조금 있으면 세상은 다시 나를 보지 못할 것이로되 너희는 나를 보리니 이는 내가 살아 있고 너희도 살아 있겠음이라.(요 14:18~19)
우리가 아직 연약할 때에 기약대로 그리스도께서 경건하지 않은 자를 위하여 죽으셨도다
의인을 위하여 죽는 자가 쉽지 않고 선인을 위하여 용감히 죽는 자가 혹 있거니와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롬 5:6~8)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받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고전 1:18)
그러므로 너희는 죄가 너희 죽을 몸을 지배하지 못하게 하여 몸의 사욕에 순종하지 말고 또한 너희 지체를 불의의 무기로 죄에게 내주지 말고 오직 너희 자신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난 자 같이 하나님께 드리며 너희 지체를 의의 무기로 하나님께 드리라 - 로마서 6:12-13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의 자녀로 회복시켜 주시고, 그 창조의 비밀을 따라 세상의 생육하고 번성하며 다스리는 권세를 누리고 지키게 하신 놀라운 은혜와 사랑을 찬양하며 감사와 영광을 올려 드립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그 마음이 상한 곳으로 걸어가며, 맡겨주신 달란트와 생명을 아버지의 나라와 의를 위하여 충성으로 행하는 주님의 제자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우리를 대신하여 그 수치와 고통을 감당하신 주님을 바라보며, 우리에게 주어진 십자가를 겸손과 순종으로 그 생명 다할 때까지 감당하는 인생의 여정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 시간에도 열방 가운데 주님의 귀한 사명 감당하고 계신 선교사님들의 가정과 사역에 길을 부어주시고, 그 모든 필요에 넘치도록 아버지께서 풍성하게 채워 공급하여 주시옵소서. 이 나라와 백성이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분의 뜻 안에서 생명과 평안을 누리도록 선하게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지금도 질병과 말할 수 없는 고통 가운데 있는 주님의 백성들을 수렁에서 건지시고, 회복과 치유의 손길로 덮어 주시옵소서. 감사와 찬양을 아버지께 올려 드리며, 우리의 길과 진리와 생명 되신 예수님의 거룩하신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