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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인의 영성 독서와 삶 (2019.8. 4 유럽수양회 workshop. 원고 김해영 )
그를 이끌고 밖으로 나가 이르시되 하늘을 우러러 뭇별을 셀 수 있나 보라 또 그에게 이르시되 네 자손이 이와 같으리라 아브람이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시고(창세기 15: 6-6)
왜 독서를 해야 합니까? 한 마디로 말하면 지금보다도 더욱 성숙하고 풍성한 삶을 살게 하기 때문입니다. 독서는 우리의 시야를 넓히고 막힌 생각을 뚫어 주고, 편견을 없애주고, 좀 더 높은 차원에서 객관적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광대하신 하나님을 바라보게 하는 역할을 합니다. 게으른 시간을 없애주고, 낙심하는 자에게는 소망을 갖게 하고, 새 아침을 맞이하는 자에게 설레이는 하루를 선물 합니다. 결과 나를 끊임없이 돌아보게 하여 성장하는 삶을 살게 합니다. 그리고 사람은 그렇게 조금씩이라도 성장하고 전진 할 때 기쁘고 행복합니다. 멈추는 것은 곧 늙고 썩는 것 입니다. 곧 영적 죽음입니다. 우리는 늙으면 안 됩니다. 익어가야 합니다. 그래야 달콤한 향기가 깊은 포도주 같은 맛이 나는 인생이 됩니다. 그럴 때 죽는 순간까지 나도 행복하고 다른 사람에게도 영향을 베푸는 삶을 살 수 있게 됩니다. 책을 읽으면 늙을 시간이 없습니다. 지루할 시간도 외로울 시간도 없습니다. 최근 김형석 교수의 <백년을 살아보니>라는 책이 있습니다. 제가 한권 가지고 왔는데. 100세가 되었는데도 여전히 글을 쓰고 강의를 합니다. 얼마나 멋집니까! 각자 삶의 모양과 색깔은 다를지라도 요즘 백세 시대 백세까지 정말 향기 나는 멋진 인생을 사시기를 바랍니다.
독서를 하면서 저는 마음과 몸이 건강해졌습니다. 또 건강한 믿음을 갖게 되었습니다. 저는 어디를 가든지 빈 몸으로 나가지 않고 가방을 들고 나갑니다. 책을 닮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여행을 할 때, 누군가 만나기 위해서 커피숍에 갈 때, 병원에 갈 때, 바람 쐬러 바다나 산에 갈 때 어디든 책이 있습니다. 책이 있으면 친구의 약속이 늦어져도 상관없습니다. 진료 순서가 늦어도 상관없습니다. 책을 읽으면 됩니다. 책을 읽으면 끈임 없이 생각이 이어집니다. 좋은 글을 묵상하다보면 글을 쓰게 됩니다. 그렇게 묵상한 글을 또 나눌 수 있습니다. 그렇게 글을 써서 나눈 것이 카스토리에 1,800편이 되었습니다. 여기 계시 분 중에도 제 글을 받아보시는 분들이 있을 것입니다. 요즘 카톡 카스토리 얼마나 좋은지 모릅니다. 방금 묵상한 좋은 글 바로 지금 전 세계로 전달 할 수 있습니다. 미국, 독일, 호주, 로마, 일본, 등 등. 당연 독서에는 성경책은 최고의 앞 자리입니다. 독서를 하면서 저는 정말 성경을 제대로 읽게 되었습니다. 많이 읽지는 않지만 6개월에 한 번씩 일 년 두 번 날마다 꾸준히 10페이지씩 읽어갑니다. 그렇게 하다가 영어성경 읽기를 도전하여 작년에 7개월 일독 목표로 두 번을 읽었습니다. 하루 5시간 7 개월 집중 투자로 두 번을 읽었는데 저도 놀랬습니다. 영어 실력도 없는 내가 어떻게 이걸 해 낼 수 있을까? 독서력 입니다. 그 다음에는 영어 히어링을 도전했습니다. 하루 50페이지 들으며 속독으로 40일 목표로 두 번 들으며 읽기를 했습니다. 지금은 너무 시간이 많이 걸려 하루 10페이지만 한글 성경 읽기와 영어 히어링을 하고 있습니다. 독서를 하면서 성경 묵상이 더 깊어지게 되고 설교문 작성에도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소스가 풍성하고 깊이가 있어집니다. 누군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삶의 변화는 독서로 시작 하라! 만일에 여러분이 오늘을 계기로 해서 독서를 하게 되었다면 평생 주님께 그리고 저에게 감사하게 될 것입니다. 지금도 목사님 때문에 독서가 열린 것에 대해서 감사한다는 이야기를 많이 듣고 있습니다. 앞으로 더 많이 들을 수 있기를 기도 합니다. 피터 드러그와 함께 현대 경영의 창시자로 불리우는 경영의 대가 톰 피터슨이란 사람이 있습니다. 그의 책 <리틀 빅씽>에서 독서에 대해서 이런 말을 했습니다. “나는 어머니에게 항상 감사한다. 어머니는 나를 독서광으로 키워주셨다, 책 읽는 것만큼 내 삶을 행복에 크게 기여한 것은 없다. 앞으로 남은 삶에서도 책이 내게 큰 행복을 줄 것이다. 책을 읽어라. 폭 넓게 읽어라. 여러분이 고른 책들로 스스로를 놀라게 하라. 깊게 읽어라. 자주 읽어라(저는 이 말을 끊임없이 읽어라고 바꿉니다).
독서의 세계에 들어가 보면 우리가 놀라는 것이 있습니다. “아하,그래요? 이 분이 독서관 이었나요? 어쩐지” 그동안 알았던 저명 인사들의 독서력을 보며 새로운 사실에 감탄하게 됩니다. 우먼파워 미국의 최고의 인기 여성, 닮고 싶은 여성 1위 오프라 윈프리는 미국 미시시피 강 근처 흑인 빈민가에서 미혼모의 딸로 태어났습니다. 9살 때 사촌 오빠에게 성폭행을 당하고, 14살의 어린 나이에 미혼모가 되었고, 아기는 2주 만에 죽고, 20살에 마약에 손을 대서 감옥을 드나들고, 그러는 사이에 100kg이 넘는 거구의 못난이가 되었습니다. 희망이 없는 최고의 절망 상태였습니다. 하지만 후에 엄청난 반전을 하여 포춘지 선정 최고의 비즈니스 우먼 2위, 2003년 실시된 해리슨 여론 조사에서 3년 연속 미국인이 좋아하는 방송인 선정이 되었습니다. 영화 tv 프로그램, 인터넷 사업 총 막라 해서 10억 달러 이상 자산을 가지자가 되고, 25년 동안 자기 이름을 딴 토크쇼를 진행했고, 그가 언급하는 물건은 방송 즉시 품절 되고, 그가 특정 정치인을 지목하면 판세가 달라지는 그런 영향력을 가진 여자가 바로 오프라 윈프리입니다. 이런 인생 역전을 하게 된 계기가 바로 독서였다는 것입니다. 아이들에게 아무런 관심이 없는 어머니 밑에서 불행하게 살았지만 뒤 늦게 만난 새 아버지가 조언을 했습니다. “책을 읽어라 그러면 너의 인생이 180도 달라질 것이다.” 그녀는 이 조언을 마음에 새기고, 2주에 한 권씩을 책을 읽고, 독후감을 쓰며 독서 습관을 길러 나가게 되었습니다. 덕분에 글쓰기 어휘 실력이 늘고 공부에도 좋은 결과를 얻게 되고, 시야도 넓어지고 자신감고 갖게 되고 모든 것이 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그 후에 자신도 이렇게 말했습니다. "책을 읽어라. 그러면 너의 인생이 180도 달라질 것이다" 그 후 또 이런 고백을 합니다. "나는 책을 통해 인생에 가능성이 있다는 것과 나처럼 세상에 사는 사람이 또 있다는 것을 알았다. 독서는 내게 희망을 주었다. 책은 내게 열린 문과 같았다." 독서를 가장 사랑하는 이유? "책 읽기를 통해서 더 높은 곳으로 향할 수 있는 능력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더 높은 곳으로 향 할 수 있다! 발명왕 에디슨은 중학교도 나오지 못 했지만 링컨과 마찬가지로 독서광 이었습니다. 그가 평생에 읽은 책은 350만 페이지라고 합니다. 이는 30년 동안 매일 한 권씩 읽을 때 나오는 분량입니다. 매일 연구실에서 연구하고 발명하면서 어떻게 그 많은 책을 읽었는지 의문이 들 정도 입니다. 보통 사람들이 생각할 때 왜 그렇게 책을 많이 읽었는지 그 이유가 무엇일까 의아할 수 있습니다. 발명왕과 수많은 독서와 무슨 관계가 있을까? 상관관계 분명히 있습니다. 지면상 길게 이야기 할 수 없지만 책을 통해서 좁은 사고의 폭이 넓어지고, 다양하고, 풍성하고, 유익한 정신적 영적 세계를 경험하게 되고, 그것이 다양한 창조 세계로 이끌어 그를 발명왕이 되게 했다는 것입니다. 전쟁 영웅 나폴레옹은 ...키가 작고 외적으로 볼품이 없는 사람이 지만 유럽을 정복했습니다. 우리는 그가 ‘불가능이란 내 사전에 없다’는 말을 잘 기억해도 그가 독서 광 이었다는 것은 잘 모릅니다. 나폴레옹은 수많은 전쟁을 치렀는데 전쟁터에 나갈 때 책을 한 마차씩 끌고 갔다고 합니다. 황제가 되기 전 이집트 원정을 나간 적이 있었는데, 그 때는 4주 일의 기간인데도 1,000여권의 책을 싣고 떠났다고 합니다. 나폴레옹은 전쟁 중 막사에서도 틈만 나면 책을 읽고, 심지어 말을 타고 이동할 때도 포화 속에서도 책을 읽었습니다. 나폴레옹을 만든 것은 평생의 독서였던 것입니다. 우리가 잘 아는 빌 게이츠는 최고 명문 대학인 하버드 대학 법학과에 입학했지만,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서 자퇴를 하였습니다. 그러나 대신 도서관에 들어가 수많은 책을 읽었습니다.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오늘의 나를 만든 것은 동네 도서관이었고, 하버드 졸업장보다 소중한 것이 책 읽는 습관이다," 그는 1,000평이 넘는 부지에 개인 도서관을 만들었고, 1만 4,000권이상의 책을 보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매일 1시간 주말에는 3~4 시간 도서관에서 보낸다고 합니다. 시카고프랜이라는 이야기 들어봤는가 모르겠습니다. 지금은 누구라도 명분 시카고 대학을 모르는 사람이 없지만 1929년까지는 모두가 기피하는 3류대학 이었다고 합니다. 그런 대학인 2010년까지 노벨 수상자들 80여명을 배출, 세계 명문대학으로 우뚝 서게 되었는데 그 배경에 시카고 플랜이란 것이 있습니다. 1929년 시카고 대학 청장으로 취임한 로버트 허친스가 인류의 위대한 지적 유산인 철학과 고전을 비롯하여 각종 고전 100권을 읽게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했습니다. 그 책을 읽지 않은 학생은 졸업을 할 수 없게 한 것입니다. 어쩔 수 없이 한 권 한 권 읽기 시작했는데 위대한 사상가 철학가 리더들이 집필한 서적이 그들의 생각과 행동양식을 완벽하게 바꾸고 발전시킨 것입니다. 사람이 바뀌니까 대학도 명문으로 바뀐 것입니다. <너만의 명작을 그려라>라는 책이 있습니다. 책 내용은 둘째로 제목 때문에 사서 읽었습니다. 사람은 만들기 나름입니다. 이미 하나님의 걸작 품으로 니체는 우리 안에 천개의 사람이 있다고 했습니다. 사람은 이미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금광석입니다. 어떻게 자신을 가꾸고 키우는가에 따라 그냥 광석으로 남기도 하고 명작으로 탈바꿈 하기도 한다는 것 입니다.
에밀리 디킨슨은 ... 풍부한 상상력 독서야말로 우리를 무궁 무진한 넓은 세계로 초대한다고 하였습니다. 책에 대한 아주 짧은 시가 있습니다.....넓은 평원을 만들려면클로버 한 개와 벌 한 마리,클로버 한개, 그리고 벌 한 마리,그리고 상상만 있으면 됩니다벌이 드물면 상상만 있으면 되지요머나 먼 세계로 우리를 싣고 가는 데는책 만한 배가 없지요. 책이 정말 우리의 사고를 변화시키고, 이런 책 읽기가 영적으로 우리 신앙의 삶에도 영향을 끼칠 수 있을까요? 저는 과거에 예수님을 믿고 나서 그저 성경 한 권이면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성경 한 권, 기도, 성령 충만하면 되지 무슨 세상초등 학문의 지식이 필요한가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오직 성경, 오직 하나님, 무오한 하나님의 종 교황, 교권을 주장하던 중세 시대의 영적 상태가 어떠하였습니까? 꽉 막혔고, 무지했고, 어리석었으며, 세상의 지탄의 대상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어리석음으로 인해서 수많은 생명들이 하나님 모독이라는 죄로 마녀사냥에 희생되기도 했습니다. 하나님은 빛과 어둠을 창조하셨다고 합니다. 빛만을 주장하며 연구하는 사람은 빛을 잘 모릅니다. 빛 안에 있어도 빛에 감동이 없습니다. 그러나 어둠을 체험하고 아는 사람은 한 줄기 빛이 얼마나 영롱한지 그 빛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늘 감동 속에 살아가게 됩니다. 당연히 성경이 최고이지만 성경만을 읽고 주장하는 사람은 자칫 아집과 교집과 영적 교만으로 닫힌 세계에 살기 쉽다는 것입니다. 좁고 편협한 세계에서 벗어나려면 다양한 독서가 필요 합니다. 제가 독서를 하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추천 도서로 권하는 책들 중에 ‘니체의 책’ 두어 권을 소개 합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에게 ‘신은 죽었다’고 외친 니체의 책을 권하면 거부반응도 있지만 마음이 이미 오픈 되어 책을 읽는 사람은 어떤 책보다 깊은 감동을 받고 이런 책이 있었느냐고 합니다. 일본 교수 사이토 다카시가 쓴 <곁에 두고 읽는 니체>와 유영만씨가 쓴 <니체는 나체다>입니다. 두 번째 책의 네 개 목차만 읽어드리겠습니다. 첫째, 니체처럼 흔들어라(나는 진정 나로 살고 있는가? 둘째, 니체처럼 깨부숴라(낡은 나를 망치로 때려부숴라), 셋째, 니체처럼 변신하라(나에게는 천개의 모습이 있다), 넷 째, 니체처럼 벗어라(껍데기가 아닌 맨몸으로 승부하라). 관심 있는 분은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저는 이 책을 읽으면서 다시 하나님 앞에 벌거벗은 자신을 바라보게 되었습니다. 정말 나 자신의 삶을 살고 있는가? 날마다 자기를 부인하고 죽으며 새 사람으로 살고 있는지? 내 안에 천개의 나가 있음에도 게을리 옛 사람에 머물러 있지 않는지? 날마다 하나님의 위대한 형상을 회복하여 살고 있는지? 끊임없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이르기까지 자라가려고 노력하고 있는지? 여러분, 본문은 최고의 걸작인데 삶의 예화가 빈약하면 본문이 어떻게 전달될까요? 삶의 실천이 부족한 내가 “여러분, 예수님이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십니다 하면” 시쿤둥 합니다. 그런데 머더 데레사가 임종시 “사랑하십니오. 서로 사랑하십니오” 말을 남겼는데 지켜보던 200 만 명 사람들이 감동을 받으며 눈물을 흘렸다는 것입니다. 말씀의 예화가 신선하고 새롭고 감동이 될 때 본문 말씀이 더욱 새롭게 전달된다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달콤 쌉싸롬한 초코릿>이란 책이 있습니다. 주인공이 음식을 만들면 너무 맛있게 잘합니다. 사람들이 묻습니다. 도대체 레시피가 뭔지 비결을 가르쳐달라고 합니다. 마지막 책장을 덮는 끝에 주인공이 이렇게 대답합니다. “음식이 맛있으려면 사랑을 듬뿍 넣어야 해요. 인생이 맛이 있으려면 사랑을 듬뿍 넣어야 해요” 책을 읽으면서 이 한 마디가 얼마나 감동으로 남는지 ...무릎을 쳤습니다. 그 후로 저도 음식을 만들 때 무엇을 할 때 사랑의 소스를 아낌없이 듬북 치려고 노력하는 자로 변했습니다. 사실 말씀 속에서 이미 듣고 알고 있는 말인데 명작 소설 속에 주인공의 한 마디가 다시 ‘모든 것을 사랑으로 하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삶으로 조명해주었다는 것입니다. 명작의 좋은 예화가 높고 고상한 말씀을 현실적으로 가깝게 들리게 하여 쉽게 적용 할 수 있도록 한다는 것 입니다. 맛있는 음식 비결 다른 것 없습니다. 사랑을 듬뿍 치세요. 사랑은 모든 삶을 맛있게 하는 최고의 레시피 소스입니다. 바닷가 근처에 살다보니 바다를 좋아하고, 해물 탕 낙지 간장 게장 등 해산물을 좋아합니다. 그러다보니 간장게장을 잘 만드는 달인이 되었습니다. 그렇게 해마다 시행착오를 거쳐 맛있는 간장 게장을 만들게 되면 꼭 소중한 사람을 초청해서 해물 탕과 더불어 한 식탁을 차려 대접을 합니다. 그럴 때마다 세계 최고라는 찬사를 받습니다. 어느 날 마트에 들렸더니 해저 300m에 사는 털게를 세일로 팔고 있었습니다. ”저걸 사서 한번 만들어볼까?“ 참 귀찮은 일인데 어느새 손에 몇 팩이 들려 있습니다. 게장 만드는 과정이 사실 보통이 아닙니다. 그런데 좋아하고 사랑하다보면 그렇게 됩니다. 마침 중국에서 추방당해 갑자기 한국에 나온 선교사님이 계셨습니다. 저녁 식사에 초대 했습니다. 비장의 털게 간장을 꺼냈습니다. 얼마나 맛있게 드시던지 이제까지 먹어본 것 중에 최고라고 합니다. 눈물 날 정도로 감동을 받은 겁니다. 추방당하고 앞이 막막하고 힘들었는데 주님 사랑을 느끼면서 치유가 되었다고 합니다. 제가 그랬습니다. “사실 먹는 것도 주 안에서는 역사입니다.” “맞습니다. 목사님, 역사입니다.” 그 후 이 선교사님은 사람들을 만날 때 마다 제 이야기를 하며 민망할 정도로 자랑을 합니다. 이런 목사님이라면 어디 던지 따르고 함께 할 수 있다고 합니다. <달콤 쌉싸롬한 초콜릿>이란 책 이야기는 <사랑의 역사>라는 책에 소개하고 있습니다. 즉시로 원본 책을 사서 읽어보았습니다.
여러분 책을 왜 읽습니까? 성경을 왜 읽습니까? 지식 습득 입니까? 지식 자랑 입니까? 이 질문에 답을 얻지 못 하면 책 읽는 것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결국 이 답을 얻어야 합니다. '인생의 버팀목이 되어주는 33가지 이야기'라는 책이 있습니다. 휴게소애서 산 책입니다. 거기에 이런 내용이 있습니다. ‘빌게이츠를 누른 한마디’ 리처드 브랜슨이란 사람은 작은 레코드 가게를 시작으로 세계적인 기업 영국의 '버진 아들란틱' 항공사 사장이 된 분입니다. 하루는 요미우리 홀에서 리처드 브랜슨과 빌 게이츠의 대담이 있었습니다. 사회자가 빌 게이츠에게 "조직은 무엇 입니까?" 빌 게이츠는 망설임 없이 자신의 생각을 논리적으로 말했습니다. 빌게이츠는 이미 세계적인 기업 경영인이고 달변가 이니 얼마나 유창하게 조직에 대해서 말했겠습니까? 사회자가 다음 리처드 브랜슨에게도 같은 질문을 했습니다. “조직이 무엇입니까?” 그는 말을 좀 더듬기도 하고 달변가 빌 게이츠와 상대가 안 되는 사람 이었습니다. 그런 빌게이츠가 모범 답을 말 한 후에 대답하려니 좀 힘들 수 이었습니다. 그런데 그가 마이크를 받은 그는 잠시 침묵하더니 한 마디 했습니다. "……사랑 입니다." 핵심을 집은 촌철살인 같은 한마디에 강연장에는 우레와 같은 박수가 쏟아졌습니다. 사랑 없는 조직은 생각할 수 없으며 사랑과 신뢰로 연결된 조직이 가장 강하다는 깨달음을 더듬거리는 한 단어로 짧게 전한 것입니다. 그러나 청중들에게는 아주 강력하게 길게 어필이 되었던 것입니다. 건강한 교회의 조직이 무엇입니까? 건강한 가정, 건강한 직장도 다 사람이 어울리는 조직입니다. 거기에 사랑과 신뢰보다 더한 것이 없습니다. 그런데 그 것을 어떤 상황에서 얼마만큼 깊이 각인시키는가 하는 것입니다. 이 한마디 읽는 순간 제 가슴에도 콕 박히더라고요. 빌게이츠를 눌러버린 단 한 마디! 한 참 먹먹했죠. 비슷한 이야기하나 더 소개 합니다. 니코스 카잔키스의 아버지는 미할리스 대장 이었습니다. 아홉 살짜리 아들을 데리고 터키인들 손에 교수형에 처해진 기독교인들의 발에 입을 맞추게 했습니다. 그렇게 함으로 그들의 죽음에 경의를 표하게 한 것입니다. 어떻게 보면 그의 아버지 아들에게 최고의 교육자 이죠. 그리고 아들에게 명하였습니다. “ 잘 보고 죽을 때까지 결코 잊어서는 안 된다.” 아들이 묻습니다. “아버지 누가 이들을 죽였습니까?” “자유”
결국 터키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를 통해서 얻은 고귀한 자유를 잃지 않기 위해서 죽음을 택한 것입니다. 보이지 않는 더 본질적인 답을 한 것입니다. 자유에 대해서 알고 싶으면 <그리스인 조르바>라는 책을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이 내용은 <경영학보다 소설에서 배워라>는 책이 있습니다. 위대한 CEO들이 경영학보다 소설을 많이 읽는다고 합니다. 왜 그런지 아시나요? 경영학이나 자기 개발서 같은 것은 정답을 말해주는데 소설은 질문을 하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책을 읽고 나서 인생이란 무엇인가? 삶이 무엇인지? 자신에 대해서 인간과 모든 삶에 대한 깊은 생각을 하게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소설을 읽습니다. 제가 고등학교 때에 미우라 아야꼬의 <빙점>이란 소설을 처음 읽고 한참 먹먹했습니다. 아무 생각 없이 살던 나에게 소설은 사물 속의 보이지 않는 핵심을 보게 하고, 사고의 깊이를 길러주기 시작 하였습니다. “인생 인생이 무엇인가?” 비로소 생각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유능한 CEO들이 단지 흥미로서가 아니라 소설을 많이 읽는다고 합니다. (참고로 박경리의 토지를 읽는 이유? 글도 좋지만 그 속에 다양한 성격의 등장인물이 나온다는 것입니다. 집필기간 25년, 원고지 4만매, 등장인물 600명. 저는 6개월에 걸쳐 읽었습니다.) 그리고 좋은 책이란 다른 것 없습니다. 내 마음과 삶을 흔드는 무엇인가 한 마디만 건져도 좋은 책입니다. 나의 근본을 돌아보도록 질문을 던져주는 책, 그런 책이 좋은 책입니다. 사랑이란 무엇인가? 자유란 무엇인가? 계속 내 마음에 떠나지 않고 질문을 던져준다면 그렇게 베스터셀러 아니더라 좋은 책이 되는 것입니다. 이런 책은 부담 없이 읽기 쉬워서 선물하기도 좋습니다.
사실 세상에 수많은 책들이 있고, 다양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렇지만 이런 책들을 통해서 우리기 일생 살아가면서 배우는 핵심은 거의 똑같습니다. 첫째도 사랑, 둘째도 사랑입니다. 아무리 강조하고 반복해도 부족합니다. 물론 자유도 있습니다. 그러나 사랑 없으면 자유도 없습니다. 우리가 성경이건 수많은 책을 읽던 핵심적으로 배우는 것이 바로 ‘사랑’이란 것 입니다. 이것을 배워야 제대로 배우는 것입니다. 사랑을 빼면 모든 것이 다 껍데기가 되는 겁니다. 성경도, 책을 읽는 것도 지식을 쌓기 위한 것, 교만과 자족감을 나타내는 것이 아니라 결국은 사랑에 도달 하는 것입니다. 쇼펜하워는 그런 책 읽기는 하자 말라고 하였습니다. 그렇지 않은 독서는 오히려 해롭다는 것입니다. 한국에 젊은 베스튼 셀러 이지성 작가가 있습니다. 저도 그분 책을 몇 권 읽어보았는데... 꿈꾸는 다락방 리딩으로 리드하라 등 많습니다. 어떤 책에서 그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수많은 책을 읽고 또 책을 쓰고 권하는데 그 목적이 무엇인가? 결국 사랑이라고 말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그걸 읽으면서 “아. 이 사람이 제대로 가는 작가 이구나” 했습니다. 기독교인이기도 합니다. 왜 우리가 필수로 배워야 할 것이 사랑 이어야 하면 그게 모든 사고 사물의 본질 이기 때문입니다.
일본의 주식회사 어빌리티 트레이닝 대표이사였던 기노시타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사람은 사물의 본질을 깨닫는 순간 변한다. 이 한마디도 제 가슴을 때렸습니다. 나는 그동안 얼마나 미 본질적인 것을 붙들고 살았는가! 성경의 본질, 우리들 삶의 본질, 지식의 본질, 본질이 무엇일까요? 사랑! 이걸 깨달으면 모든 것이 다 변하게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많은 것을 소유하고, 붙들고, 알고 행해도 변하지 않는다면 본질이 아닌 비 본질을 붙잡기 때문입니다. 성경에 어릴 때부터 율법을 다지키며 살아온 부자청년이 영생을 얻고자 예수님께 질문했을 때 예수님 한마디에 그는 물러가고 말았습니다. 그는 본질인 사랑을 놓치고 껍데기 율법의 조항만 지키고 살았던 것입니다. 우리가 삶을 개혁하고 신앙을 개혁하고 무엇인가 변하려고 할 때 이 본질이 개혁되지 않으면 달라지는 것이 없습니다. 애썼지만 나중에 보면 그대로입니다. 우리 단체가 개혁한 후 저는 무엇이 변해야 하는지 고민을 많이 하다가 사랑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오랜 시간이 흘렀지만. 사랑에 다해서 참 많이 묵상하며 칼럼도 쓰고, 책도 쓰고 시도 썼습니다. 못 쓰는 시지만 ‘사랑의 눈을 뜨면’, ‘사랑의 의미’. ‘사랑의 역사’, ‘사랑은 꽃과 같다’. ‘사랑만이 시작이다’. ‘사랑은 들킵니다’. ‘이런 사랑을 하고 싶다’. 등등 지금도 사랑을 배우고 있습니다. 대표로 하나만 읽어드리겠습니다.
사랑의 의미 - 바다해 해영 -과연, 사랑은 인간이 소유한 가장 위대한 능력인가요? 사랑이 없으면 아무런 역사도 기대할 수 없지만, 사랑하면 변화무쌍한 역사 속에 꽃이 피고, 음악이 흐르고,아름다운 시가 써지고, 죽어가는 사람이 살아나고, 무력한 삶에 생기가 솟고, 어두운 세상이 빛으로 밝아지니 말입니다. 사랑의 시작은 곧 생명의 시작이고, 사랑이 그치는 것은 곧 영적 죽음인가봅니다. 사랑이 시작되는 곳에 인생이 태양이 떠오르고, 사랑이 꺼지는 곳에 인생 황혼의 그림자가 드리우니 세상에 사랑보다 더한 것은 없습니다. 모든 삶에 의미를 부여하고 모든 삶을 가치 있게 하는 사랑은 소망이지만 사랑이 식으면 돈도, 재물도 의미가 없어지고, 삶이 기쁨도 사라지니 사랑 없는 삶은 절망입니다. 아무것도 없어도 사랑이 있으면 다 있는 것이고, 모든 것을 가졌어도 사랑이 없으면 아무것도 없는 것입니다. 사랑을 하는 사람은 모든 율법을 다 이룬 사람이며 사랑을 모르는 사람은 아무것도 한 것이 없는 사람입니다. 아직 내 가슴에 사랑이 식지 않았다면 세상은 언제나 희망이 있습니다. 사랑은 정열의 소스, 희l망의 태양이니 비록, 육체의 싱싱한 인생 1막이 끝났어도 우리는 사랑으로 2막의 역사를 더 멋지게 열 수 있습니다. 친구들! 사랑으로 아름다운 세상을 창조하는 역사의 일군들이 되기를 기원하오. 그리하여 영원히 태양이지지 않는 사랑의 마을을 만들고 사랑이 담긴 뜨거운 차 한 잔에 세상에 지친 친구들을 초대하는 것이지요.... 그렇다면 이번엔 독서의 범주는 어떤가? 간단히 생각해보고자 합니다. 우리는 독서 하면 책 읽는 것을 생각 합니다. 그것도 편견입니다. 맞지만 광범위한 독서는 인문 고전 책만 읽는 것이 아닙니다. 에머슨은 숲을 책 이라 하였습니다. "서재에서 책을 읽듯이 숲이라는 책을 읽을 줄 알게 되면 새로운 학위가 주어진다. 숲에 들어가면 뱀이 껍질을 벗어버리듯 사람은 자연 속에서 자신의 나이를 벗어던진다" 이글을 읽을 때 제가 숲 속을 산책하며 산속에 텐트를 치고 글을 읽고 묵상을 하고 있었습니다. 마음에 깊이 새겨지며 참 멋있는 말이다 생각하며 저도 글을 썼습니다. - 숲으로 가라. 하나님 창조의 손 길이 스며있는 숲은 최고의 미와 지혜와 신성의 능력이 보관되어 있는 거대한 도서관이며, 그곳은 시작 시간도 마치는 시간도 없는 자유학교 이며, 지친 몸과 마음과 영혼 누구나 회복 시켜주는 무료 병원이다. 책을 읽고 공부하고 싶으면 숲으로 가라! 잠시 염혼의 쉼을 쉬고 싶으면 숲으로 가라! 건강을 회복하고 싶다면 숲으로 가라! 어떤 형식도 가식에도 매이지 않고 자유하고 싶다면 숲으로 가라! 거기는 하나님의 신성과 능력과 지혜가 사시사철 뿜어져나오니... 가만히만 있어도 많은 것을 듣고 보고 배우고 치유 되리라. 그곳은 하나님이 친히 경영하시는 자연 에너지 충전센터이다! - 독서는 이처럼 귀로도 읽고 눈으로도 읽고 마음으로도 읽습니다. 그래서 저는 등산이나 훅 하니 짐 싸들고 먼 바다로 여행을 떠나는 것을 좋아합니다(자동차). 여행을 다녀오면 많은 것을 보고 듣고 느끼게 됩니다. 사람들이 분비는 도심을 떠나 산과 바다 자체를 읽고, 또 거기서 성경을 읽고, 책을 읽고, 글을 쓰면 자연히 힐링이 되고 채워집니다. 설교 메시지도 거기서 구상이 다됩니다. 고로 책 읽는 것은 결코 삶과 분리 되서는 안 된다고 봅니다. 독서가 삶이고 삶이 독서가 되어야 합니다. 그럴 때 지적 독서를 탈피할 수 있게 되고, 삶 역시 배움과 나눔으로 언제나 풍성해지는 여행처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삶은 아무리 사소하고 작아도 의미화 되고 가치화 되어 감동으로 밀려오게 됩니다. 그러면 즉시 펜을 들어(핸펀 노트) 글을 씁니다. 2-3시간이 훌쩍 지나갑니다. 그리고 즉시 그 날 구어진 신선한 빵 같은 글을 즉시 기다리는 지인들에게 나누어 드립니다. 여행들 좋아하시나요? 한번 씩 여행을 떠나세요. 그리고 여행의 자리에서 삶의 자리로 다시 여행을 하세요. 그러면 늘 새롭고 신선해질 겁니다. 언젠가 기회가 되면 저는 책을 들고 블라디보스톡에서 러시아 횡단 여행을 한번 하고 싶은 마음이 있습니다. 사실 지난 달 블라디보스톡을 다녀왔습니다. ㅋㅋ
<천천히 걸어 희망으로>라는 시한부 독일인이 쓴 책이 있습니다. 소제목으로는 책장 앞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나를 치유한 3,000km 기적의 유럽걷기 여행' 2009년도 참 감동을 받으며 읽은 책입니다. 암말기 선고를 받은 뒤 유럽 도보여행 166일간 3,000km를 걸어서 ..독일 도르트문트에서 로마까지의 여행을 완주했습니다. 독일인 쿠르트 파이페 씨라는 분인데 그는 48년 동안 조경사로 일해온 평범한 직장인 이었 습니다. 61세 때 의사로부터 대장암 말기 선고를 받았습니다. 더 살 수 있는 시간은 6개월. 치료방법은 더 이상 없다는 최종선고를 받고 이제는 그저 죽음을 기다려야 하는 일만 남았습니다. 그런데 그 때 엉뚱한 결심을 합니다. 유럽 걷기 여행 독일과 덴마크의 국경지대 쿠퍼뮐레에서 이탈리아 로마에 이르는 3,350 km의 대 장정 도보여행을 계획한 것입니다. "모두들 내 삶이 끝났다고 했을 때 나는 길을 나섰다" 모든 가족과 의사의 반대를 무릎쓰고 마지막 수술 을 받은 후 한 달만인 2007년 3월 29일 홀로 여행 길에 오릅니다. 인공항문기구를 찬 예순 다섯의 사그러지는 육신에 큰 배낭을 앞 뒤로 짊어지고... 대단한 용기와 결단입니다. 길에서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많은 일을 겪고, 많은 것을 배우며 마침내 166일째 되던 날 목적지 로마 성프 란체스카 청동상 앞에 도착하여 눈물을 쏟으며 감사와 행복의 마음을 전합니다. "생명을 담보로 한 여정에서 고된 일도 많았지만 형언할 수 없는 행복한 순간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에게 6개월은 이제까지 살아온 시간보다 더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더 많은 것을 배우는 시간 이었다고 합니다. 이를 알게 된 독일 신문사가 취재를 했고 한 출판사에서 책을 펴냈습니다. "당신의 삶 자체가 인류에 희망입니다" 다음해 2008년 8월초 책일 출간되는 것을 본 뒤 편안히 생을 마감했습니다. 많은 이야기 중에서 기억 되는 한 마디; "로마는 나에게 실체 목표가 아니었다. 중요한 건 떠난다는 자체였다." 이 분의 용기를 생각하면 건강한 우리 못할 것이 없습니다. 또 하나 깊이 새겨지는 말은 6개월 동안 만난 사람들, 6개월 동안 배운 것이 이제껏 인생 살면서 보다 더 많았다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떠나는 용기, 바로 목표를 향해 한 발자욱 내 딪는 용기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평생의 이아기를 책으로 쓸 것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6개월 동안 여행은 세상에 많은 사람들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전하는 책이 되었습니다. 60평생의 인생보다 6개월의 인생이 더 길었습니다( 저도 이 책을 읽게 되었고, 이 책을 두 권 가져왔습니다. 10유로 입니다.) Wild 라는 책도 좋은데 나중에 기회 있으면 소개 하겠습니다. 마지막 독서 방법에 대해서 조금 말씀 드리고 자 합니다. 이야기를 들어보면 독서하고 싶지 않다고 하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눈이 나뻐서 못 읽는다는 사람 빼고는 다 읽고 싶은데 잘 안 된다는 것입니다. 맞습니다. 결단한다고 해서 되지 않습니다. 계획 없이 이 책 저 책 읽다보면 오래 읽기 어렵습니다. 바쁘고 힘들면 더 못 읽습니다. 그러나 독서를 하는 사람들에게는 어떤 핑계가 없다는 것을 우리는 우선 알아야 합니다. 독서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꾸준함 지속성입니다. 습관을 길들여야 합니다. 한 페이지라도 언제나 읽는 것입니다. 그런데 습관화되기까지 안내 받는 것도 필요하고, 함께 노력하는 것도 필요 합니다. 한꺼번에 밤샘 독서보다 조금식이라도 꾸준히 하는 지속적인 습관을 권 합니다. 100%는 1%가 날마다 쌓여서 어느 날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습관을 낙수 천석에 비유할 수 있습니다. 작은 처마 물방울이 지속적으로 떨어져서 바위에 구멍을 뚫는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거대한 함마로 한 순간에 할 수 없습니다. 독서도 그렇습니다. 지속적인 습관의 시스템화가 필요합니다. <독서는 나를 절대로 배반하지 않는다> 저자는 이를 철로로 비유 합니다. 아무리 좋은 고속 기차를 비싸에 사들이고 준비했어도 철로가 제대로 깔려 있지 않으면 달릴 수 없다는 것입니다. 휴전선에 가며 철마는 달리고 싶다하지 않습니까? 기차가 없어서가 아니라 철로가 끊어졌기 때문입니다. 철로가 연결되면 남한에서 북한을 통해 앞으로 리베리아까지 횡단하는 기차가 운행되는 것은 시간문제 입니다. 목포에서부터 그런 일이 조만간 이루어지면 시베리아 횡단 독서 여행을 한번 하고 싶습니다. 이야기가 삼천포로 빠졌는데 ...이렇게 독서를 꾸준히 잘 하려면 시스템이 철저히 갖추어져야 한다는 이야기입니다. 이 분은 말하기를 기차 레일이 쉬게 두지 말고 고속이던 급행이던 완행이던 언제나 달리게 하라고 합니다. 언제나 읽는 것이 끊어지지 않게 동시 다발 여러 권을 읽도록 권합니다. 보통 대여섯 권, 많은 읽는 사람은 15권도 읽는다고 합니다. 가방에는 언제나 책, 화장실, 침대 머리, 연구실 탁상 위에, 자동차 안.. 언제나 손이 갈 수 있도록, 그리고 다양한 종류의 책들, 읽기 쉬운 수필, 어려운 고전, 장편 소설, 개인개발, 철학 인문 등...3-4개월 목표하는 책, 일주 목표하는 책 등... 어째튼 쉬지 않고 돌리라는 것입니다. 시스템이 잘 갖추어져 있으면 지속뿐 아니라 어떤 책도 읽을 수 있게 됩니다.
저도 그렇게 해서 과거는 생각지 못했고, 읽고 싶어도 엄두도 못낸 장편 소설을 여러 권 읽게 되었습니다. 첫번 도전으로 도스트예프스키 <까라마조프형제들> <안나끼레나> <부활>, 조정래 <한강> 10권, <아리랑> 12권, 최명희 <혼불> 10권, 박경리 <토지> 21권. 거기다가 만화 토지 17권까지 읽었습니다. 만화는 왜 읽었는가 하면 이 만화책을 쓴 오세영 작가의 고백 때문 이었습니다. 거대한 작품 토지를 잘 표현 해 내기 위해서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한 번도 읽기 어려운 책을 30번을 읽었다는 것입니다. 그 이야기 듣고 그만 필을 받아 비싸기에 만지작만 하던 책을 당장 주문해서 읽었습니다. 과연 만화 등장 인물들의 얼굴빛 눈짓, 행동 하나 하나 살펴보니 정말 역시가 잘 그렸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나 역시도 최고의 성경 말씀 그러한 자세로 연구하고 해석하고 풀어야겠다는 것을 배우게 되었습니다. 그 다음에 이재철 목사님 <요한복음강해> 10권, <도행전강해>12권. 몇 년 사이에 읽었습니다. 지금은 로마인의 이야기 15권 중 5권을 읽고 있습니다. 그 시스템에 대입해서 하루 성경읽기 10페이지 일 년 두 차례 꾸준히, 전에 이야기 영어 성경 읽기도 시도하여 하루 5시간 투자 7개월에 한 번 씩 두 번을 읽었고, 히어링 영어 성경 읽기는 하루 50페이지 40일 두 번을 읽으며 들었습니다. 지금은 어떤 두꺼운 책도 두려움이 없습니다. 하루 몇 페이지씩 커피마시며 읽어도 결국은 ending에 도달한다는 것을 많이 체험하였습니다. 개인 독서의 원칙, 조금씩 꾸준히 입니다.
과거에 핍박으로 티벳 한 스님이 빈 몸으로 아무 장비 없이 눈덥힌 히말라야 산을 넘어온 것을 안 기자들이 깜짝 놀라 물었습니다. “스님 어떻게 전문가도 힘든 히말라야 산을 장비 없이 넘으셨습니까?” 그 대답이 또 촌철 살인 입니다. " 한 걸음 한 걸음 걸어서 왔죠" 저도 그 힘을 체험 했습니다, 어떤 잠편도 한 페이지씩 한 페이지씩 읽으면 됩니다. 무엇이던지 원리는 똑같습니다. 평생 한 걸음씩 한 페이지씩, 1mm씩 전진하며 나아가는 것 입니다. 설령 목적지까지 나아가지 못한다할지라도 그 과정 과정이 그 순간 순간 목적지에 이른 것입니다. 전진하는 것 자체가 행복이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독서 시스템에 또 하나 중요한 것은 독서의 정체성 확립입니다. 왜 독서를 해야 하는지 꼭 그렇게 할 필요가 있는가? 그냥 필요할 때 한번 씩 읽는 것이 아닌가? 옷을 팔아서라도 책을 사서 읽어야 하는가? 정체성이 확립이 안 되면 언젠가 중단하게 되는 사건이 생기게 됩니다. 사형 받기 전에 안중군 의사에게 소원이 무엇이냐 물었습니다. 읽던 책을 다 읽게 해달라고 하였습니다. 그 시간은 5분입니다. 죽음 앞에서까지 책을 읽을 필요가 있을까요? 가치와 의미 그게 독서의 정체성 없으면 읽을 수 없을 것입니다. 가치를 잡은 사람은 어떤 상황에서도 독서를 한다는 것입니다. 그 것이 즐거움이고, 그것이 힘이고, 소망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정체성)이 어렵고 힘든 난관이 부딪혀도 책을 중단하지 않게 계속 읽게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떤 책을 읽으면서 왜 책을 읽어야 하는가 독서에 대해 정체성을 심어주며 격려하는 책들도 많이 있습니다. 그런 책들을 함께 읽으면 좋습니다. 제가 처음 책을 읽으려하는 분들에게 임원희 자매의 <10분 몰입독서>와 <독서는 절대 나를 배반하지 않는다>는 책을 소개 합니다. 임원희 자매는 어릴 때 독서광이었는데 중간에 입시관계 등 시시부시 그만 두었습니다. 그러다 서울대 병원 간호사 생황을 하면서 죽을 것 같은 상태서 살기 위해 책을 읽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시간이 없으면 하루 10분이라도 대신 몰입해서 읽을 것을 권 합니다. 바쁘고 힘들고 죽을 지경이라는 상황을 핑계 대지 않고 10분만 10분만 읽기 시작하다가 30분 1시간 이렇게 해서 책을 읽게 되면서 모든 난관을 극복하고 오히려 일어서서 명강사가 되고, 책을 펴내기까지 하며 행복한 사람이 된 이야기를 간증으로 이야기 하는데 감동을 많이 줍니다. 독서로 인생이 180도 달라진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삶이 달라지고 새롭고 싶어 하는 분들에게 복음도 전하지만 독서를 권합니다. 그리고 관심을 가진 분들에게 책을 선물하기도 합니다. 최근 들어 감사하게도 제 주변에 독서를 시작하고 새로운 삶의 은혜를 체험하는 분들이 늘어가고 있습니다. “김 목사님, 책을 받아서 하루 10분 독서의 힘 50 페이지 읽었는데 딴 세상이 열리네요. 책을 멀리하고 살아온 바보 같은 삶 이었네요” “책 보내주셔서 감사, 이제까지 받은 선물 중에서 최고입니다. 어찌하든지 책의 내용을 내 것으로 삼고 싶어지네요. 이제 다른 일들이 흥미 제로입니다. 책만 읽고 싶은 유혹을 어디 해야할지” “목사님, 책을 읽으면서 제 마음이 풍요로움이 밀려오네요. 바로 이것이라고. 제 안에 오아시스를 만들다보니 좀 더 유연해지고 부드러워졌습니다. 독서의 영향이죠”. 신기한 것은 마음의 문제들이 치료되고, 비전을 갖게 되니까 영적인 막힌 문제들도 뚫리더라는 것입니다. 세 번째 형제는 위기의 가정 속에 부부 관계 위기 속에 살아온 형제입니다. 아내에게 남편 대접 못 받고, 자식들에게 아버지 대접을 못 받고 정말 떠나고 싶다고 했습니다. 가정의 어려운 문제를 놓고 고민합니다. 제가 그랬습니다. “일단 문제를 옆에 놔두세요. 지금 문제와 싸워 봐야 못 이깁니다. 그리고 그 문제를 피해도 더 나아지는 것 없습니다. 이제부터 독서하시기 바랍니다. 자기를 돌보고 자기를 키우며 자기 자신에 집중하세요. 내가 크고 장성하면 문제들이 작아질 겁니다. 그 때 되면 새로운 문제해결책이 나올 것입니다.” 책 몇 권을 선택해 주었습니다. 몇 권 읽지 않아서 문자가 왔습니다. “목사님, 감동 감동입니다. 정말 문제가 작아집니다. 목사님 대단 합니다. 식사 같이 하면 어떨까요?”
여러분, 예수님 당시에 사람들 제자들이 독서를 했을까요? 얼마나 책을 읽었겠습니까? 인쇄술이 발달하지 못했으니 랍비나 철학자들 중심으로 대화하며 토론하며 듣는 그런 독서를 했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말씀을 전하시면서 말씀을 듣는 자세가 얼마 중요한 가를 예를 들 때 씨 뿌리는 자의 비유를 들으셨습니다. 자연의 원리를 바라보고 생각으로 읽어보도록 하신 것입니다. 그럴 때 훨씬 말씀이 이해가 잘 되었습니다. 씨 뿌리는 자의 이야기가 귀로 듣는 독서입니다. 그럼 아브라함 당시에는 아브라함이 언제 책을 읽을 기회가 있었습니까? 우리는 아브라함의 신앙 성장 과정에서 얼마가 그가 힘들고 넘어졌다 일어섰다 넘어졌다 했는가를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자식을 주신다고 약속 하셨는데 좀처럼 자식이 생기지 않습니다. 믿음으로 산다고 롯에게 좋은 땅을 양보하고, 또 조카 롯을 목숨 걸고 구원하여 돌아 올 때에도 소돔 왕이 치부했다 할까하여 전리품을 받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유일한 소망인 자식이 없자 피해의식에 사로잡히고 힘들어졌습니다. 하나님이 그를 찾아와 위로하십니다. 그런데 말씀이 하나도 들어오지 않습니다. 자신은 집에서 길리운 자 다메섹 엘리에셀이 자기 자식 삼겠다고 합니다. 그 때 하나님이 하신 일이 무엇입니까? “나를 믿어라. 내가 약속하지 않았느냐? 왜 못 믿느냐?” 그렇게 하지 않으셨다는 것입니다. 그를 끌고 밖으로 나가 하늘의 뭇별을 셀 수 있나 보라도 하였습니다. 거대한 하나님의 자연 도서관으로 데려가서 자연의 책을 읽어보도록 하신 것입니다. “네 자손이 이와 같으리라”(창 15:5-6) 어두운 하늘이 반짝 반짝 빛나는 수많은 별들. 광활한 평지에서는 별들이 땅에서 솟는 것이 장관이라고 합니다. 저는 아직 못 봤습니다. 그것을 보는 순간 아브라함은 자연 속에 하나님의 능력과 신성을 읽게 되고, 현실에 오그라들었던 마음이 열리고 활짝 펴졌습니다. “와!” 그러자 하나님의 말씀이 그냥 믿어졌습니다. “아브라함이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시고.” 여러분 힘들고 어려운 일 있으면 말씀도 안 들어오지요? 막힌 일이 있으면 하늘의 별을 보시기 바랍니다. 정말 믿음이 생기는지... 독서라는 것은 이와 같이 마음의 시야와 지경을 넓혀주는 역할을 합니다. 사실 하나님을 믿는 사람, 믿음이 없는 사람이 없습니다. 모두가 금광석입니다. 자기문제 현실의 문제로 시야가 좁아져서 광대하신 하나님을 바라보지 못해서 그렇지 그것만 뚫어주면 금방 일어설 수 있는 겁니다. 독서 정말 필요 합니다. 새로운 세계가 열립니다.
결론 여러분, 풍성한 삶 성숙한 삶을 살기 위해 꼭 독서 하시기를 바랍니다. 하되 독서와 성경 읽기, 독서와 설교, 독서와 자연, 독서와 삶 연결하시기 바랍니다. 뱀이 이슬을 먹으면 독이 되지만 소가 이슬을 먹으면 우유가 됩니다. 세상에 분리된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잘 연결만 하면 1+1은 2가 아니라 10도 되고 100도 1000도 된다는 것입니다. 영국을 대표하는 작가 E.M 포스터는 연결만 하라고 하였습니다. “연결만 하라. 그것이 삶의 전부이다. 둘다 고상해지게 된다. 인간의 사랑도 정상에서 관망해 보라. 삶은 더 이상 흩어진 조각이 아니다. 흩어진 조각을 연결해서 모두를 빛나게 하라.” 독서와 신앙, 독서와 삶을 연결하면 모두가 빛나게 될 것입니다.
창세기 15: 그를 이끌고 밖으로 나가 이르시되 하늘을 우러러 뭇별을 셀 수 있나 보라 또 그에게 이르시되 네 자손이 이와 같으리라 아브람이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시고 - 김해영 목사 - 주일 생명 말씀(2019.9.22일) 말씀 ; 마태 28:: 20, 계 24:1-4
함께 하시는 하나님
" “3 내가 들으니 보좌에서 큰 음성이 나서 가로되 보라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으매 하나님이 저희와 함께 거하시리니 저희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은 친히 저희와 함께 계셔서 4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씻기시매 다시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
저는 항상 건강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산을 타도 누구보다 더 잘 올랐습니다. 다람쥐라는 별명도 붙었습니다. 나이가 65이지만 저는 나이를 생각지 않았습니다. 언제나 만년 청춘이라는 생각을 하며 살았습니다. 그런데 최근 몇해 전부터 이상 증세들이 생기기 시작하였습니다. 생전 처음 위산과다 역류성 식도염으로 1년 이상 약을 먹고, 피부 알레르기 증상으로 역시 1년 가까이 약을 먹고 있습니다. 얼굴 목에는 피지도 올라오고 피부가 거칩니다. 바로 낫지도 않습니다. 일반적으로는 몸이 약해지면 면역력이 떨어지고 그러다보면 이런 저런 증상들이 나타난다고 합니다. 겸손이 나이 듬을 받아들이고 건강관리를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음식도 잘 먹고 고기도 가끔 먹어주고, 비타민도 섭취해야겠다 생각이 들었습니다. 엘리가 보매준 유산균 활성화하는 약도 먹기 시작했고, 지난 월요일에는 임재범 집사님과 영암 돠갑 한의원에 가서 맥도 집어보고 보약도 생전 처음 지었습니다. 그리고 화요일부터 새벽에 승달산 높은 곳까지 올라가며 근력 강화 훈련을 시작하였습니다. 건강이 약화되면 정신력도 떨어지고 정신력이 떨어지면 영력도 떨어지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니 대비를 해야겠다는 취지에서 였습니다. 화요일 산에서 기도하는데 최스데반 선교사님이 카카오스토리 멜이 왔습니다. 어머니가 돌아가셨다는 것입니다. 최근 찾아뵙지도 못했는데 그렇게 되셨구나 죄송한 마음도 들면서 지난날들이 떠올랐습니다. 알기로는 오직 교회 생활, 기도 생활 그게 다셨는데 그렇게 기도하시다 천국 가신 것입니다. 아주 단순한 삶이셨습니다. 순간적으로 어떻게 사는 것이 잘 사는 것인가 생각해보았습니다. 어머니는 지금 천국에 가셨고, 나는 아직 세상에 남아 있는데 내가 잘 살고 있는 것인가 생각해보았습니다. 어머니가 부럽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요즘 세상을 보면 도대체 기독교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세상에서 어떤 일을 하고 있는지 의문이 들 정도로 혼돈한 세상입니다. 골치 아픈 세상을 떠나 천국 입성하셨으니 축복이 아니겠습니까?
여러분, 우리는 이 세상을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정말 공의의 세상을 만들려고 애쓰는 사람들은 세상으로부터 끊임없이 공격을 당하고, 부정 부패 온상이던 사람들은 머리를 깍고 난리를 피고, 기독교인들은 오히려 세상 불의 편에서 태극기를 흔들며 세상과 공조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살아야 하나요? 조용히 살아야할까요 아니면 끝까지 불의와 싸우며 투쟁을 해야 할까요? 마음 아픈 문제는 기독교인들이 정확하게 새상 문제의 진실을 모르고 무엇이 불의인지 무엇이 정의인지 잘 모르며 양편으로 나뉘어져서 편가르기를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세상의 잣대로 세상을 보면 절대 안 됩니다. 왜냐하면 세상은 절대적인 선이 없습니다. 악인들도 선을 주장하고, 선인도 끝까지 파고 파면 죄가 들어납니다. 이런 시대일 수록 우리는 하나님의 관점에서 세상을 바라보는 믿음과 지혜가 필요 합니다.
2차 세계대전 당시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한 10살 난 유대인 소년이 규칙을 어긴 벌로 교수대에 처형당하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큰 죄도 아닌데 너무나 안타ㅓ깝고 억을한 일이었습니다. 그 때 이 참담한 장면을 보고 있던 한 늙은 유대인의 불평소리가 들렸습니다. “하나님은 어디 있는가?" " 그가 어디에 있단 말인가?" " 그가 어디에 존재하고 있단 말인가?” 그런데 그 장면을 목격하고 있던 엘리위젤(Elie Wiesel,1928) 이라는 한 소년의 마음속에서 다음과 같은 대답이 들렸습니다. “어디에? 그는 바로 여기에 있다." “그는 이 교수대 위에서 교수형에 처해졌다.” 그 때의 사건으로 위젤은 충격을 받고 그 기억을 떨쳐버릴 수가 없었습니다. “하나님은 어디 계신가?” 하나님은 바로 비참하게 죽어 가는 그 소년 안에서 인간의 죄악을 뒤집어쓰고 죽어가고 계던 것입니다. 이 사건도 바로 관점입니다.
세상에서 고통이 없고 슬픔이 없는 것이 축복인 것은 맞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진실의 다는 아닙니다. 그 보다 더 큰 축복이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육신으로 이 악하고 죄악된 세상에 오셔서 우리와 함께 하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거룩하신 하나님이 죄인들인 우리와 함께 하신 것입니다. 우리는 고통도 슬픔도 아픔도 축복도 성공도 승리도 하나님의 관점에서 보아야 합니다. 그 리고 이 세상의 문제들 속에서 영원한 하나님 나라를 바라볼 수 있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잠시의 고통과 잠시의 슬픔, 잠시의 배고픔을 해결해주시기 위해 오신 것이 아니라 영원한 생명과 안식과 평안을 주시기 위해서 오셨기 때문입니다. 계시록 14:1-4을 한번 보겠습니다. “또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보니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없어졌고 바다도 다시 있지 않더라 2 또 내가 보매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니 그 예비한 것이 신부가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것 같더라 3 내가 들으니 보좌에서 큰 음성이 나서 가로되 보라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으매 하나님이 저희와 함께 거하시리니 저희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은 친히 저희와 함께 계셔서 4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씻기시매 다시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
요한이 밧모섬에 갇혀 육신은 고통 중에 있었지만 하늘이 열리고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하늘로부터 내려오는 것을 보았습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서 영원한 정의 영원한 평화를 이룰 수 없습니다.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 이러라는 것입니다. 세상은 아무리 좋아도 나빠도 다 지나갑니다. 믿음이 사람들은 지나가는 것을 붙잡고 사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앞으로 임할 영원한 나라를 바라보며 사는 사람들입니다. 왜 기독교인들이 많은 문제를 일으키고 세상의 지탄의 대상이 되고, 분별없이 행동을 합니까? 이 땅의 일에 목을 매기 때문입니다. 이 땅에서의 건강, 이 땅에서의 성공, 이 땅에서의 축복을 믿음의 승리로 여기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확고한 답은 이 땅에서의 현실의 회복이 아니라 새 하늘과 새 땅에 대한 약속입니다. 그곳에만 죽음이 없고 눈물이 없고 슬픔이 없습니다. 곡하는 것도 다시 없다고 분명히 기록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우리가 문제 많은 세상에서 하나님 나라를 바라보며 살 수 있습니까? 요즘 뉴스를 보면 속이 끓어오르려고 합니다. 불의가 선의 탈을 쓰고 정의 의 사자인 듯 하는 언론과 행위들을 도전히 보기가 어렵습니다. 그래서 될 수 있으면 안 볼려고 합니다. 그럴 때 이 나라를 주관하고 역사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이 하신다는 것을 바라보면 평정이 다시 찾아집니다. 하늘이 보입니다.
우리는 비록 땅에 살아도 언제나 하나님을 믿고 바라보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새 하늘 새 땅의 주인만이 아니나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추하고 더러운 세상의 주인이심을 믿어야 합니다. 믿고 기도 해야 합니다. 분명한 것은 하나님은 살아계셔서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의 고통당하는 현장에서 우리와 함께하신다는 것이며 함께 아파하신다는 것입니다. 무관심하신 것이 아닙니다. 성경은 하나님을 ‘긍휼의 하나님’이시라 합니다. 이 의미는 ‘함께 아파한다’는 뜻입니다. 이 땅에 아픈 사람들이 많습니다. 문제들이 많습니다. 다투고 싸웁니다. 날마다 여러 원인들로 죽습니다. 건강한 사람도 죽고 아픈 사람도 죽습니다. 부자도 죽어 흙으로 돌아가고 가난한 자도 죽으면 구더기가 파먹습니다. 이 땅은 고난의 땅입니다. 저주 받은 땅입니다. 그래도 우리가 희망을 가지고 살 수 있는 이유는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는 것 그것이 건강입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는 것 그게 부자입니다. 하나님과 함께 하는 것 그것이 참된 평화이며 승리입니다. 위에 예화에서 억울하게 죽어가는 소년 역시 하나님이 함께 하셨다면 억울한 죽음이 아니라 축복입니다. 하나님이 어디계시냐고 질문을 던질 때 똑같은 그곳은 비극이요 고통이요 불신의 장소가 되었던 것입니다. 불행이란 하나님 이 함게 하시지 않는 것입니다. 잘 살면 뭐하겠습니까? 하나님이 함께 하지 않는 부자, 하나님이 함께 하지 않는 재벌, 권력자 진자 불행하고 불쌍한 자가 아니겠습니까! 시편에 23편에서 다윗이 이런 고백을 했습니다. “ 1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2그가 나를 푸른 초장에 누이시며 쉴만한 물 가으로 인도하시는도다. 3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도다 . 4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찌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다윗이 정말 시편의 처음 글처럼 부족함이 없었나요? 정말 푸른 초장에 누운 양떼 같았나요? 실제로는 그는 수많은 원수들의 목전에 있었고, 심지어 아들 압살롬에게 맨발로 쫒기는 상황에 이었습니다. 푸른 초장이아니라 풀 한포기 없는 험한 광야 같았습니다. 그러나 그가 푸른초장에 누인 양떼처럼 평화를 누릴 수 있고, 아골 골짜기를 지나도 두렵지 않은 것은 자신과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믿었기 때문 이었습니다. 4절 ‘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압살롬이 반역을 하고, 그의 원수들이 수없이 다윗을 죽이려하였지만 하나님이 함게 하시는 그를 어떻게 할 수 없었습니다. 그는 믿음으로 이겼고 다윗은 마침내 승리의 찬가를 불렀습니다.
창세기 에 보면 에녹에 대해서도 나옵니다. 그가 어떤 삶을 았는지 우리는 전혀 모릅니다. 가난했는지 부자였는지도 모릅니다. 다만 그가 하나님과 30년 동안 동행했다고 나옵니다. 그가 무슨 구체적인 일을 했는가보다도 그 자체가 중요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동행! 우리가 이 땅에서 큰 일 못해도 됩니다. 가난해도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다른 사람보다 무능해도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최금봉 어머니처럼 그저 집에서 교회에서 기도만하고, 말씀만 읽고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심을 믿고 내가 사는 날 동안 주님과 동행하며 살았다면 성공입니다. 재중 집사님 대 기업가 하나도 부럽지 않습니다. 추석 연휴기간 공장에 홀로 남아 일을 해도 주님가 함께 함이 행복입니다. 지홍 집사님 해남 관광호텔에서 카운터 보고 청소도 하지만 오히려 가장 큰 부자입니다. 임재법 집사님 사일마다 푸른 물결 가르고 흑산도 대둔 도에 가서 거주하지만 주님과 함께 하는 도지사입니다. 명남 주정미 집사님 당장 어려운 일 많아도 하나님 함께 하면 그게 평안이고 감사입니다. 많은 사람이 세상에서 성공하고 부자가 되면서 잘 살면서 주님을 놓치는데 사실은 그것이 불행이요 실패 인생입니다. 주님이 함께 하시는 은혜를 누리지 못한다면 부자인 것, 건강한 것, 문제없이 평안히 살아가고 있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반대로 고통과 슬픔 속에서 살아간다 해도 주님이 함께 하시는 위로와 은혜를 누리게 된다면 그것은 축복입니다. 사람들이 고통 중에 하나님이 안 보인다고 어디계시느냐고 질문하는 이유는 하나님이 안 계셔서가 아니라 현실의 문제를 풀어주시는 하나님을 찾기 때문입니다. 고통 중에 함께 아파하시는 하나님을 바라보면 우리는 하나님이 계신 그곳이 바로 천국임을 보게 됩니다. 이 땅에 오신 하나님의 이름이 무엇입니까? 임마누엘입니다. 그 뜻은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심이라’입니다. 하나님은 이 땅에 오셔서 가난하고 약하고 병든 자들 죄인들과 함께 하신다는 것, 함께 하시는 은혜보다 더 큰 것은 없습니다. 그리고 주님은 부활 승천하시면서 제자들에게 마지막 주신 약속의 말씀이 있습니다.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마태 28:20). 역시 함께 하시겠다는 것입니다. 고난의 땅에서 우리가 누릴 수 있는 최고의 축복은 주님과 함께 하는 것입니다. 잊어서는 안됩니다.
결론적으로 신학자들은 이 땅을 고난의 구조라 하였습니다. 어느 누구도 피할 없습니다. 도처에 지진이 있고 기근이 있습니다. 질병이 있고 우리 알 수 없는 불치병이 발생하기도 합니다. 주 안에 있어도 어떤 사람은 어느 날 갑자기 암이 걸려 죽습니다. 어떤 사람은 죽는다고 했는데 벌떡 일어나서 쌩쌩하게 돌아답니다. 누가 복되다고 말 할 수 없습니다. 순서가 있을 뿐입니다. 다만 확신할 수 있는 것은 이 땅에서 가장 큰 은혜는 주님이 나와 함께 하심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 자신도 주님과 함께 죽고 주님과 함께 부활하는 것입니다. 이 한 주간도 저와 여러분 모두 주님과 함께 하는 복된 시간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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