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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10월 27일 벨빌교회 김국현목사
요한복음 17장은 예수님의 마지막 대제사장적 기도로 유명하다.
우선 17장의 구조를 살펴보면
1절부터 5절까지 예수님 자신을 위한 기도를 드린다.
6절부터 19절까지 제자들을 위한 기도를 드리고,
20절부터 26절까지 제자들을 통해 예수님을 믿게 될 사람들을 위한 기도를 드리신다.
먼저 예수님 자신을 위한 기도에서는
아들을 영화롭게 하사 아들로 아버지를 영화롭게 하게 하옵소서.
모든 사람에게 영생을 주게 하시려고 아들에게 만민을 다스리는 권세를 주셨습니다.
영생은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입니다.
아버지와 함께 나를 영화롭게 하옵소서
제자들을 위한 기도에서는
그들이 아버지의 것이며 아버지의 말씀을 지켰습니다.
아버지의 말씀을 받고 내가 아버지께로부터 나온 것을 알고 믿었습니다.
그들은 아버지의 것입니다.
내게 주신 아버지의 이름으로 그들을 거룩하게 하사 우리와 같이 그들도 하나가 되게 하옵소서.
내게 주신 아버지의 이름으로 그들을 보전하고 지켰습니다.
내 기쁨을 그들 안에 충만하게 하옵소서.
악에 빠지지 않게 보전하옵소서. 진리로 그들을 거룩하게 하옵소서.
아버지께서 나를 세상에 보내신 것 같이 나도 그들을 세상에 보내었사오니 그들을 진리로 거룩하게 하옵소서.
제자들을 통해 예수님을 믿게 될 사람들을 위한 기도에서는
하나 되어 우리 안에 있게 하옵소서. (아버지께서 내 안에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 같이)
세상으로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믿도록.
우리가 하나가 된 것 같이 그들도 하나가 되도록.
내가 그들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어 그들로 온전함을 이루어 하나 되게 하소서.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과 아버지께서 그들을 사랑하신 것을 세상으로 알게 하소서.
내게 주신 아버지의 영광을 보게 하소서.
아버지의 사랑이 그들 안에 있게 하시고 나도 그들 안에 있게 하소서.
우리는 우리가 원하는 삶이 아니라 우리의 주인이신 예수님께서 원하시는 삶을 살아야 한다.
이 마지막 기도를 통해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삶이 어떤 것인지 살펴보고 그러한 삶을 살 수 있도록 허락하신 은혜에 감사하기 원한다.
먼저 예수님께서 기도하는 중요한 핵심은 하나되게 해 달라는 것이다.
(요 17:21, 개정) 아버지여, 아버지께서 내 안에,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 같이 그들도 다 하나가 되어 우리 안에 있게 하사 세상으로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믿게 하옵소서
(요 17:22, 개정) 내게 주신 영광을 내가 그들에게 주었사오니 이는 우리가 하나가 된 것 같이 그들도 하나가 되게 하려 함이니이다
(요 17:23, 개정) 곧 내가 그들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어 그들로 온전함을 이루어 하나가 되게 하려 함은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과 또 나를 사랑하심 같이 그들도 사랑하신 것을 세상으로 알게 하려 함이로소이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위한 기도에서도 하나됨을 위해 기도하셨다. (11절)
하나됨은 바로 하나님의 속성이다.
삼위일체 하나님을 주인으로 모셨기 때문에 하나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이러한 하나됨의 목적은 무엇인가?
(요 17:21, 개정) 아버지여, 아버지께서 내 안에,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 같이 그들도 다 하나가 되어 우리 안에 있게 하사 세상으로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믿게 하옵소서
여기서는 두 가지로 말씀하신다.
하나가 되어 하나님 안에 있게 하는 것이다.
예수님을 마음에 주인으로 모신 자들이 하나가 되어 자신들끼리 잘 지내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그렇게 하나가 되어 하나님 안에 거해야 한다.
하나가 되었기 때문에 이제 우리 스스로 무엇을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안에 있어야 한다.
하나님을 떠나서는, 예수님을 떠나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 하나 되어 하나님 안에 있게 됨을 통해 세상으로 아버지께서 예수님을 보내신 것을 믿게 하는 것이다.
하나된 교회 공동체가 하나님 안에 있게 되면 사람들은 하나된 교회 공동체를 통해 하나님을 보게 된다.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셨다는 것을 믿게 된다.
예수님이 하나님이심을 믿게 된다는 말이다.
그들이 이 세상에서 볼 수 없는 하나됨을 이루어 하나님 안에 있는 것을 이 세상이 볼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예수님을 보내셨고, 그 예수님이 하나님이심을 믿게 되는 것은 바로 영생을 얻게 되는 것이고, 바꾸어 말하면 세상이 구원을 얻게 하는 것이다.
교회 공동체가 하나 되어 하나님 안에 있게 되면 교회가 무엇을 하지 않아도 이 세상은 하나님을 알게 되어 구원을 받게 된다는 말이다.
또 23절에서는 이렇게 말씀하신다.
(요 17:23, 개정) 곧 내가 그들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어 그들로 온전함을 이루어 하나가 되게 하려 함은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과 또 나를 사랑하심 같이 그들도 사랑하신 것을 세상으로 알게 하려 함이로소이다
아버지께서 예수님을 보내신 것을 세상으로 알게 하기 위해서이다.
세상이 하나님을 알고 예수님을 알게 된다고 하신다.
바로 교회가 하나 되기만 한다면..
또 다른 하나는 아버지께서 예수님을 사랑하신 것 같이 세상을 사랑하신다는 것을 알게 하기 위해서이다.
이제는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얼마나 사랑하시는지를 알게 된다.
아버지 하나님께서 아들 예수님을 사랑하신 것과 같이 이 세상을 사랑하신다는 것을 세상이 알게 된다.
이는 하나님이신 예수님께서 모든 사람을 위하여 십자가에서 자신의 생명을 내어 주심으로 하나님의 사랑이 어떤 것인지를 세상이 알게 된다는 말이다.
그리스도 안에서 전능자의 생명을 버리는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한 사람들은 자신들도 생명을 버리는 사랑을 하게 된다.
이렇게 생명을 다해 서로 사랑하게 되면 그들이 예수님의 제자인 것을 모든 사람이 알게 된다.
예수님의 제자인 것을 알게 된다는 말은 예수님을 알게 되는 것이고, 하나님의 사랑이 얼마나 놀라운 것인지 알게 된다는 말이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하나됨의 모델
(요 17:21, 개정) 아버지여, 아버지께서 내 안에,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 같이 그들도 다 하나가 되어 우리 안에 있게 하사 세상으로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믿게 하옵소서
아버지께서 예수님 안에, 예수님께서 아버지 안에 있다는 것은 창세 전부터 함께 하셨던 삼위일체 하나님께서 함께 계시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성부 하나님과 성자 예수님이 서로 안에 계신 것 같이 교회 공동체도 서로 안에서 하나 되어야 한다는 의미이다.
(요 17:22, 개정) 내게 주신 영광을 내가 그들에게 주었사오니 이는 우리가 하나가 된 것 같이 그들도 하나가 되게 하려 함이니이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아버지께서 예수님에게 주신 영광을 교회에 주셨다.
영광을 주신 이유는 바로 삼위일체 하나님께서 하나이신 것처럼 교회 공동체도 하나가 되게 하기 위해서이다.
하나님께서 예수님에게 주신 영광은 무엇인가?
영광은 하나님의 성품에서 흘러나오는 빛이다.
하나님께서 예수님에게 하나님의 성품, 즉 사랑과 거룩과 인내와 자비 용서 등을 주셨는데 예수님께 있는 바로 그 하나님의 성품을 제자들에게도 주셨다는 말이다.
따라서 예수님을 본 사람은 아버지를 보았다고 말씀하셨던 것처럼 하나님의 성품을 우리에게도 주셨기 때문에 우리에게 허락하신 하나님의 영광 즉 하나님의 성품을 통해서 우리는 하나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요 17:23, 개정) 곧 내가 그들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어 그들로 온전함을 이루어 하나가 되게 하려 함은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과 또 나를 사랑하심 같이 그들도 사랑하신 것을 세상으로 알게 하려 함이로소이다
그리고 이제는 아버지를 모시고 계신 예수님께서 우리 안에 오셔서 온전함을 이루어 하나가 되게 하신다.
여기 온전함을 이루어 하나가 되게 하신다는 것은 영어 표현처럼 온전한 하나됨(complete unity)을 의미한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됨이 흐트러지거나 깨지지 않는 완전한 하나됨을 이룰 수 있게 되는 것을 기도하신다.
예수님께서 기도하신 것은 반드시 이루어질 것을 믿는다.
예수님을 모시고 살 때만 우리는 온전한 하나됨을 이룰 수 있다.
예수님을 모시지 않고는 온전한 하나됨을 이룰 수 없다.
이러한 하나됨이 이루어질 때 세상은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보내신 것과 예수님을 사랑하신 것 같이 세상을 사랑하신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세상이 에수님이 하늘에서 오신 분이라는 것과 하나님의 사랑을 알게 된다는 의미는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세상이 영생을 얻게 되어 구원을 받게 된다는 말이다.
예수님께서는 이 세상이 교회 공동체의 하나됨을 통해서 하나님을 알게 되고 하나님의 사랑을 알게 되어 구원을 받게 되기 원하신 것이다.
왜냐하면 교회 공동체가 하나되는 것을 세상이 볼 때 그것을 통해서 세상은 하나님의 실존과 하나님의 사랑을 알게 되고 하나님 앞에 나오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렇기 기도하신 예수님은 우리가 예수님과 함께 있기 원하신다.
(요 17:24, 개정) 아버지여 내게 주신 자도 나 있는 곳에 나와 함께 있어 아버지께서 창세 전부터 나를 사랑하시므로 내게 주신 나의 영광을 그들로 보게 하시기를 원하옵나이다
예수님께서 계신 곳에 우리가 함께 있기를 기도하신다.
우리는 이미 그리스도와 함께 하늘에 앉혀진 자가 되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계신 곳에 우리가 함께 있는 존재가 된 것이다.
그렇게 하신 이유는 예수님의 영광, 즉 예수님께서 창세 전부터 가지셨던 바로 그 영광을 보게 되기 원하신다.
우리 삶 가운데 예수님의 영광을 날마다 보기 원한다.
예수님께서 계신 곳에 함께 있어서 말씀이 성취되고 하나님의 성품이 나타나고 성령의 역사가 나타나 하나님의 영광을 매 순간 볼 수 있게 되기 원한다.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안에 있기를 원하신다.
(요 17:26, 개정) 내가 아버지의 이름을 그들에게 알게 하였고 또 알게 하리니 이는 나를 사랑하신 사랑이 그들 안에 있고 나도 그들 안에 있게 하려 함이니이다
아버지의 이름은 창조주, 전능자, 구원자, 치료하시는 하나님, 승리하게 하시는 하나님, 인도하시는 하나님, 준비하시는 하나님, 어디든지 계시는 하나님, 영존하시는 아버지, 평강의 왕 등 다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많다.
이러한 하나님의 이름을 알게 하시는 것은 독생자 예수님을 사랑하신 사랑이 우리 안에 있게 하기 위해서이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자기 목숨을 버리심으로 보여주신 하나님의 사랑은 이미 성령으로 말미암아 우리 마음에 부어졌다.
예수님께서 공생애를 통해 하나님 아버지의 이름을 우리에게 알게 해 주신 것은 그 하나님의 사랑이 얼마나 크고 놀라운지, 그 사랑을 우리 마음에 넣어 주기 위해서 그렇게 하신 것이다.
따라서 우리 안에 하나님의 사랑이 없다고 말할 수 없다.
왜냐하면 이미 하나님의 사랑은 우리 마음에 부어져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이미 하나님의 사랑으로 사랑할 수 있는 존재가 된 것이다.
특별히 예수님께서 우리 안에 있기 원하신다.
(요 17:26, 개정) 내가 아버지의 이름을 그들에게 알게 하였고 또 알게 하리니 이는 나를 사랑하신 사랑이 그들 안에 있고 나도 그들 안에 있게 하려 함이니이다
예수님의 마지막 기도에 예수님의 마음이 다 함축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예수님은 예수님을 주인으로 모신 교회 공동체 안에 함께 있고 싶어하신다.
예수님께서 우리 죄를 짊어지고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십자가에서 처참하게 죽으신 이유가 단순히 우리의 죄 문제 하나를 해결해 주기 위해서가 아닌 것이다.
죄를 해결해야만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함께 하실 수 있기 때문에 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자신의 생명을 내어 주신 것이다.
죄 문제가 해결 되었기 때문에 이제 나는 하나님 나라에 갈 수 있는 자가 되었다고 예수님과 관계없는 삶을 사는 것이 아니라 죄 문제가 해결되었기 때문에 이제 예수님과 동행하며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자가 되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예수님의 십자가에서 내 죄 문제가 해결되었음을 믿고 예수님을 주인으로 모신 사람은 신앙의 모든 것을 다 이룬 것이 아니라 예수님과 모든 것을 함께 하는 삶을 이제야 비로소 시작한 것이다.
예수님의 기도를 통해서 우리는 우리 신앙생활의 목표를 정확하게 해야 한다.
죄 사함 받고 하나님 나라에 가는 것이 우리 신앙생활의 목표인가?
죄 사함 받았으니 이제 내가 하나님을 위해 사역을 하는 것, 즉 교회 봉사를 하고, 선교를 하고, 전도하고, 찬양하고, 예배하고 하나님을 위해서 무엇인가를 하는 것이 신앙생활의 목표인가?
죄 사함 받았으니 사역도 중요하지만 교회 공동체가 하나 되게 하는 것이 신앙생활의 목표인가?
죄 사함 받았으니 사역보다 교회 공동체의 하나됨 보다 예수님과 계속 동행하는 것이 신앙생활의 목표인가?
예수님을 만나고 신앙생활을 시작할 때는 하나님 나라 가는 것이 신앙생활의 목표였다.
은혜를 받고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을 깨닫게 되었을 때는 사명을 감당하는 것이 신앙생활의 목표였다.
그리고 사역에 지쳐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싶어졌을 때 교회 공동체의 하나됨을 이루는 것이 신앙생활의 목표가 되었다.
그런데 성령의 역사를 경험하면서 내 삶 속에 들어와 모든 것을 나와 함께 하고 싶어하시는 예수님을 알게 되면서 사명을 감당하는 것보다, 교회 공동체의 하나됨을 위해 내가 무엇을 하는 것보다 정말 나와 함께 하고 싶어하시는 예수님을 인지하고 예수님과 동행하며 임재를 누리는 삶을 예수님께서 가장 원하신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예수님과 함께 동행하며 교제하며 인도하심 가운데 있으면 성령께서 사람들을 주께 돌아오게 하시고, 교회 공동체의 하나됨을 이루게 하시고, 변화되게 하시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내가 할 수 있는 것, 예수님과 동행하고 예수님께 집중하면 다른 것은 모두 성령께서 하시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나를 부르신 것은 나에게 무엇인가 시키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의 생명을 지불하고 구원하신 나와 함께 하기 위해서라는 것이다.
오늘 하루 나와 함께 하기 원하셔서 그것을 위해 십자가를 앞에 두고 간절히 기도하셨던 예수님과 함께 동행하는 삶 살기 원한다.
기도합시다.
찬송: 220장 사랑하는 주님 앞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