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부시인의 밭 일구다
한 밤중에 고향 선배가 쓴 시집
호미 하나 들고 옛 시인의 슬픔과 김매기를 한다
30년 전 내놓은 첫 번 째
달빛 보다 여린 마음을 이엉엮어
이 지상에 산다는 것
파란 하늘색 표지에 둘러앉은 성죽골
얼룩배기 소와 붉은 감나무 초가지붕엔
고추가 널려있는 가을 등신들
부비고 사는 육신 속고 속는
참깨 마늘, 고추도 아예 훠어이
토라진 밭뙈기에 칠십주름 우리 누님
복합영농 참말이었지 참 잘못이었어
해거리*에서 목에 감긴 소리를 적는다
수박농사에 흑요석을 가득 담았다는 농부시인
내 안과밖의 풍물 소용도는 고단함에도
새벽 이슬을 털어 시어를 모으던
석가정 시인은
미리 돌아갈 때를 알고서
시 한 편을 그날 읽어주면 좋겠소
막걸리를 사 주시며 푸성귀손
봄꿩이로다 인연일세 떠나신 지
아제 십 년이 더 지났는데 나는 쓴다
무공해 텃밭에서 시장토 골목에서
내 땅에 심은 것 내 땅에!를 힘주어
내 설 땅 어딨는가 뙈기 일궈 살던 기억
호미질을 하듯 고운 씨앗들을 골라쓴다
어금니가 빠져버린 잇몸같은 이랑에는
송곳니도 사랑니도 벌레가 먹어버린 밭농사
오직 하나 호젓한 산길 옆
수줍은 아낙네 시비(詩碑) 아내에게
다사한/ 초가집 짓고
이엉 엮어 덮는 정
일구는 가난한 마음 씨 뿌리며 삽니다
섬 마을 외대파 배추밭 호미마다
바닷가 그물마다 아리랑은 남아 흐르는데
한 웅큼 화엄의 두엄을 고르듯
섬마을 농부시인 석가정의 시집을 사경한다.
-박남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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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부시인의 밭 일구다 / 박남인
김완(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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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12.19 08: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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