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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어느 부처님을 닮았을까?
비로전의 “천불 가운데 석가모니 탄생불이 맨 먼저
눈에 띄면 아들을 얻는 영험이 있다”고 한다. 그러나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우리도 부처가 될 수 있다는
믿음을 주기 위해 특별히 탄생불을 모셨을 것이다.
비로전의 천불을 통해 내가 어느 부처님을 닮았는가
미래의 나는 어떤 부처님일까? 생각해봄직도 하다.
이처럼 직지사의 차별화된 성보를 눈으로, 마음으로
느껴보는 것 또한 또 다른 ‘직지(直指)’일 것이다
직지사 비로전 천불과 탄생불. 17세기 중엽에 경주 옥돌로 조성되었다. 어느 부처님이 먼저 보이시나요?
해발1111m 황악산(黃岳山)에 자리한 직지사는 선종(禪宗)의 “직지인심 견성성불(直指人心 見性成佛)”의 ‘직지’에서 유래되었다. 또 신라 눌지왕 2년(418) 아도화상이 선산 도리사에서 손가락으로 가리킨 곳에 절을 지어 ‘직지사’라 했다고 한다. 어찌 손가락을 가리킨 장소뿐이겠는가. 자기 마음을 가리켜 본래 그대로 부처가 되는 절이 바로 직지사이다. 그러한 연유로 ‘동국제일가람(東國第一伽藍)’이란 명성을 얻게 되었다.
사명대사 출가 설화 그리고 구국충절
특히 직지사는 사명대사 유정스님이 16세인 명종14년(1559)에 출가한 사찰로 유명하다. 대사의 출가 설화에 “직지사 주지 신묵(信默)스님의 꿈에 황룡이 나타나 천왕문 앞 은행나무를 감고 있었다. 이를 이상하게 여겨 가보았는데, 한 아이가 돌 위에서 잠들어 있었다. 대사는 불교를 지킬 큰 인물로 여겨 제자로 받아들였다”고 한다. 이후 사명대사는 명종16년(1561) 18세에 승과에 장원급제하였으며, 30세에 직지사 주지가 되었다. 1575년 32세에 묘향산 보현사로 서산대사를 찾아가 선의 종지(宗旨)를 이어받았다.
사명각(四溟閣) 외벽의 벽화 ‘사명대사 일본가는 길’. 불교를 업신여기던 조선의 사대부가 말고삐를 잡고 일산을 받쳐 들고 대사를 따르는 모습이 눈길을 끈다.
사명대사는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에 참여해 의승군 약 5000여 명을 지휘하여 평양성을 탈환했다. 전쟁이 끝나자 일본으로 건너가 1605년 6월 전쟁포로로 잡혀간 3500여 명의 백성을 데리고 돌아오는 등 혁혁한 공을 세웠다. 이러한 대사의 구국충절을 기리기 위해 정조 11년(1787)에 사명각을 건립했다. 사명각 외벽에는 사명대사가 일본으로 가는 장면과 일본에서의 이적(異蹟)이 그려져 있다. 특히 갓을 쓴 조선의 사대부들이 말고삐를 잡고 일산을 받쳐 들며 대사를 따르고 있어 대사의 위엄이 느껴진다.
직지사 대웅전과 동서 삼층석탑.
다른 사찰에서 볼 수 없는 문화재 즐비
이런 명성에 걸맞게 직지사에는 타 사찰에서 볼 수 없는 차별화된 문화재가 즐비하다. 먼저 천왕문의 소조(塑造) 사천왕은 1665년에 조성했는데 높이가 443cm로 앉은 모습의 사천왕 중 가장 크다. 그 가운데 눈여겨볼 것은 지국천왕이 비파를 들고 노래하니 비파 위에 있던 푸른 색깔의 서수(瑞獸)가 입을 벌려 노래를 따라 부르는 모습이 재미있다. 만세루 밑 계단을 오르면 멀리 황악산과 동서 삼층석탑(불탑), 대웅전이 시원스럽게 눈에 들어온다. 보물로 지정된 동서 삼층불탑은 원래 문경 도천사 터에 있던 것을 1976년에 직지사로 옮겨 놓았다. 단층 기단에 초층 몸돌이 길어 훤칠한 느낌을 주는 석탑이다.
조선후기 삼세불화를 대표할 빼어난 작품으로 꼽히는 대웅전 삼세불화.
대웅대광명전(大雄大光明殿)이라고 불린 대웅전은 보물로 중층의 건물이었지만 임진왜란 때 불타서 단층 건물로 다시 세웠다고 한다. 대웅전 외벽 공포(包)에 조각된 48마리 용이 전각 내부의 삼세불화, 보단 등 보물을 사방에서 철통 경비를 서고 있어 이채롭다. 영조20년(1744)에 조성된 삼세불화는 조선후기 삼세불화를 대표할 수작(秀作)으로 중앙에 항마촉지인을 한 사바세계 교주 석가모니불의 영산회(靈山會). 동쪽에는 약합을 든 동방만월세계 교주 약사유리광불의 약사회(藥師會). 서쪽에는 설법인의 서방극락세계 교주 아미타불의 미타회(彌陀會)를 나타냈다. 각각 주재하는 불국토를 교리적으로 공간적인 삼세계(三世界)를 그렸다. 영산회도는 644×298cm, 약사회도와 미타회도는 각각 644×238cm크기이다.
목공예의 진수 목조불단 ‘보단’
보물로 지정된 직지사 보단(寶壇)은 1651년 대웅전의 중건과 함께 제작된 목조 불단으로 높이는 146cm이며, 상대ㆍ중대ㆍ하대의 3단으로 이루어졌다. 직지사 보단은 부처님의 세계는 절대 평등의 세계임을 느끼게 하는 다양한 소재와 문양들로 꾸며져 있다. 장식된 보단은 고부조의 투각과 화려한 채색으로 조선후기 목공예의 진수를 보여주고 있다.
특히 중단에는 알라딘 램프 같은 푸른 물병에서 여의주를 문 작은 용이 불꽃과 오색구름을 일으키며 튀어나온다. 용보다 훨씬 큰 검은 잠자리는 화들짝 놀라며 날개를 편다. 잠자리를 ‘드래곤플라이(dragonfiy)’라 하지 않던가? 약 370년 전 스님들은 알라딘 램프의 비밀을 알고 있었을까? 용은 “주인님 부르셨습니까?”하며 부처님께 달려가는 듯하다. 또 다른 곳에서는 개구리에 눌려 빠져나오려고 애쓰는 용도 있다. 얼마나 작으면 연잎 위에 올라앉은 개구리와 흐드러지게 핀 연꽃 사이에 눌려 숨쉬기도 힘든 듯, 이빨을 악물고 삐쳐 나오려고 안간힘을 쓴다. 이와는 달리 세분 부처님을 모시기 위해 바닥에서 솟아오른 용들은 연꽃을 입에 물고 보단을 들고 있어 경건함이 느껴진다.
대웅전에서 또 다른 볼거리는 내부 서쪽 벽에 그려진 청룡을 탄 관세음보살이다. 용의 머리 위에 올라서서 파도를 헤치며 중생을 구제하는 백의관음보살의 모습은 다른 곳에서는 볼 수 없는 감동을 준다. 아미타불을 정대(頂戴)한 높은 보관에 백색 천의를 휘날리며 두 손을 모아 교차한 모습은 보고 또 보고 싶다. 용의 등에 올라선 살 상투의 선재동자는 정병을 가슴에 품고 다소곳한 모습으로 관세음보살을 따른다. 여의주를 발에 쥔 청룡은 관세음보살이 원하는 곳이면 어디라도 모시고 갈 듯, 두 눈을 크게 뜨고 관세음보살을 올려다보는 모습도 재미있다.
현겁천불을 모신 비로전
비로전(毘盧殿)은 현겁천불(現劫千佛)을 모신 천불전으로 17세기 중엽에 경주 옥돌로 조성되었다. <현재현겁천불명경>에 “현겁에는 석가모니불 등 천불이 출현하여 중생을 구제하는데 이렇게 많은 부처님이 출현하는 시기이므로 현겁이라 한다”고 했다. 모든 중생이 깨닫지 못할 자가 없음을 보여주는 사상이 바로 천불사상이다. 비로전의 “천불 가운데 석가모니 탄생불이 맨 먼저 눈에 띄면 아들을 얻는 영험이 있다”고 한다. 그러나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우리도 부처가 될 수 있다는 믿음을 일깨워주기 위해 특별히 탄생불을 모셨을 것이다. 비로전의 천불을 통해 내가 어느 부처님을 닮았는가를 살펴보면 미래의 나는 어떤 부처님일까? 생각해봄직도 하다. 이처럼 직지사의 차별화된 성보를 눈으로, 마음으로 느껴보는 것 또한 또 다른 직지(直指)일 것이다.
[불교신문 3734호/2022년9월20일자]
첫댓글 감사합니다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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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전 가본 직지사 언제 다시 가보고 싶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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