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께서 특히 우리나라를 많이 축복하신 것 같습니다. 한 세대 전에 비하면 정말 모든 삶이 풍요로워졌습니다. 이것이 시간이 지나면서 마치 모든 인간세상이 발전하는 것처럼, 그래서 우리가 전보다 지금이 풍성한 것처럼 생각하지만 그것이 오해라는 것을 외국에 나가보면 압니다. 전 세계 나라 중에서 전보다 발전한 국가도 있지만 수많은 나라들이 전보다 못하고, 그리고 전체적인 통계로 볼 때 옛날보다 지금 기근과 가난에 허덕이는 사람이 훨씬 더 많아졌다는 사실입니다. 그런 와중에서도 하나님께서는 우리나라를 축복하시고, 우리의 삶을 축복하셔서 한 세대 전보다 지금이 우리를 낫게 하신 것을 다시한번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이렇게 풍요로운 삶을 살게 될 때에 더욱더 우리의 마음을 다해서 하나님 앞에 감사해야 되겠습니다. 감사하는 마음이 빠진 풍요는 우리에게 축복이라 할 수 없습니다. 왜냐면 사람은 없을 때보다 있을 때 감사하는 마음이 없고, 이 세상의 것이 많을 때 오히려 그것에 대해 더 집착하게 됩니다. 모든 재물, 모든 물건을 누리는 순간에 감사하지 못하면 집착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집착하게 되는 표현이 감사하지 못하는 마음입니다. 집착이란 무엇입니까? ‘어떤 사물이나 어떤 사람이 없이는 내가 행복해질 수 없다. 반드시 이것이 있어야만 내가 행복하다. 물질이 있어야만 내가 행복하다. 이 사람이 있어야 행복하다.’ 이렇게 느끼는 것이 집착입니다. 집착에서 어떻게 해방될 수 있습니까? 감사할 때입니다. 모든 것을 내가 누리는 것이 내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확인하며, 거저 주시는 은혜에 대해 감사할 때 집착에서 멀어집니다. 오늘 시편의 내용도 바로 그러한 감사입니다. 시편을 보면 여러 종류의 시편이 있습니다. 제일 먼저 지혜의 시, 시편 1편이나 시편 78편이 바로 그런 것들입니다. 그 시를 통해 지혜를 얻게 만드는 지혜의 시가 있고, 또한 메시야의 오심을 고대하는 메시야의 시들이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시편 2편이 그런 것이죠? 그리고 오직 하나님의 품성과 하나님의 그 존재 자체를 찬양하는 시가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나의 모든 어려움과 힘듦을 내놓고 간구하는 탄식의 기도가 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감사의 찬송이 있습니다. 이 감사의 찬송은 하나님을 찬양하는 찬송과는 조금 다릅니다. 찬양하는 찬송은 하나님의 품성, 영원하심, 선하심, 하나님 되심, 거룩하심 이것을 찬미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감사의 찬송은 실제 우리 삶 속에서 하나님께서 내게 하신 모든 일, 예를 들어서 병에서 건강하게 해 주셨다거나, 내 어려운 문제를 해결해 주셨다거나, 내가 정말 하나님 앞에 간구 한 것에 대해 응답을 받았다거나 이러할 때 하나님께 그 감사의 이유를 달아서 하나님께 찬양하는 찬양입니다. 시편 100편은 바로 이러한 감사의 시입니다. 감사의 시라서 하나님께 감사하고 찬양하자는 말이 계속 나옵니다. 지금 현재적으로 우리가 성전에 올라가면서, 하나님 앞에 나아가면서 감사합니다. 이 구절이 거기 1절, 2절에 있습니다. 그리고 4절에 나옵니다. “감사하고 찬양하자, 하나님 앞에 나아가자.” 그러면서 그 감사의 이유를 우리에게 이야기 해주는 것이 3절과 5절에 입니다. 감사의 이유가 이제 3절에서는 과거적으로 돌아갑니다. “여호와가 우리 하나님이 신 줄을 너희는 알지어다. 그는 우리를 지으신 자요 우리는 그의 것이니 우리는 그의 백성이요 그의 기르시는 양이로다.” 지금 현재 내가 누구냐면 “하나님이 지으시고 하나님께서 이렇게 나를 인도하시는 목자 되셨다. 지난 과거를 회상하며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 감사하자.” 과거적인 이유입니다. 5절부터는 미래적인 이유입니다. “그런 하나님이 앞으로도 내게 그러하시리로다. 대저 여호와는 성실하고 영원하며 그 성실하심이 대대에 미침이로다.” 과거를 바라볼 때, 미래를 바라볼 때, 지금 현재 하나님 앞에 감사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감사의 이유를 대며 감사하는 것입니다. 제일 먼저 감사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1절, 2절을 한번 봅시다. “온 땅이여 여호와께 즐거이 부를 찌로다.” 누가 부릅니까? 온 땅입니다. 이 세상의 모든 사람이 하나님께 감사해야합니다. 이 세상뿐만 아니라 심지어는 천지까지도 하나님께 감사의 찬송을 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그 감사의 찬송은 여호와께 해야 합니다. 우리가 이 세상을 살다보면 감사해야할 사람이 많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 모든 일에 감사해야 할 대상이 그 사람들 뿐 아니라 궁극적으로는 하나님임을 인정하고 먼저 하나님께 감사해야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크고 작은 인생길에 대해서 먼저 하나님께 감사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 다음에 여러분을 돕는 그 사람에게 감사하십시오. 하나님은 여러 가지 많은 경우에, 거의 대부분의 경우에 여러분의 주변사람들을 통해 역사하십니다. 그러니까 그 사람들한테 감사할 수 있죠. 그런데 그 감사가 먼저 하나님께 향하지 않고서는 인간끼리의 감사도 진정한 감사가 될 수 없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사람들을 소위 “관리” 합니다. 조금이라도 감사할 일이 있으면 얼른 전화해주고, 편지해주고, 감사의 카드도 주고, 감사의 말도 전하고, 그 일이 정말 감사해서도 있지만 앞으로도 또 혹시 그 사람에게 기댈 일이 있을지 모르니 미리 미리 관계를 저축해두는 겁니다. 그게 진정한 감사입니까? 그건 아니죠. 그러나 우리의 감사의 근본이 하나님께로부터 왔다는 사실을 인정할 때 감사할 때 비로소 진정한 마음으로 감사할 수 있습니다. 마음을 터놓고, 마음에 숨겨 놓은 게 없고 그 사람들에게 있는 그대로 지금 현재에 감사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 앞에 참된 감사를 해야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감사해야 합니까? 제일 먼저 “즐거이 부를찌어다” 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을 즐거이 부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모든 사람을 도우시는 것을 경험하고 알 것인데 이런 모든 것을 알 때 하나님을 즐거이 부르라, 즉 감사의 표시를 하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감사하십시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모든 것에 감사의 표시를 하십시오. 찬송을 하시고, 기뻐하시고, 그리고 하나님께 나아올 때 감사의 연보를 드리고 그게 감사하는 것입니다. 몇 주전부터 추수감사주일이라고 하나님께 감사하라고 하면서 실제로 우리 속에 정말 기쁘고 감사하는 마음이 있는지 그걸 다시한번 생각해 봤습니다. 뒤에 보면 “기쁨으로 여호와를 섬기라.” 이런 말도 있는데 정말 우리가 추수감사주일을 맞이해서 기쁨으로 이 모든 것을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 생각을 하고 그래서 부랴부랴 생각한 것이 우리가 추수감사축제를 하자는 것이었습니다. 우리가 화정동으로 이사오면서 장소도 있고 넉넉하니까 그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렇지만 늦게 준비를 시작해서, 제가 믿음이 약해서 우리가 먹을 것을 좀 적게 하자고 했더니 이 행사를 맡은 팀들은 저보다 훨씬 믿음이 컸어요. 엄청나게 크게 준비한 겁니다. 그래서 어제 그 일들이 벌어진 것입니다. 스피커만 해도 제가 들으니 굉장히 비싼 것이라는데 그거 갖다놓고 전체가 하나님 앞에서 기뻐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감사하는 방법 중 하나가 실제 우리 삶에서 기쁨을 누리면 사는 것입니다. 믿는 백성이 안 믿는 백성보다 더 기쁨을 누리며 사는 것입니다. 그것이 우리 삶 속에 있을 때 비로소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삶이 되는 것입니다. 전에는 소위 경건이라는 이름으로 웃어서도 안 되고, 항상 하나님 앞에서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경외 하는 마음으로 나왔습니다. 그런데 성경에 언제나 절기마다 하나님 앞에서 즐거이 뛰놀며 절기를 즐기는 면에 대해서는 우리가 간과했던 면이 있습니다. 그래서 어제 모여보니까, 솔직히 우리 성도들이 그런 줄 몰랐습니다. 평소에는 조용하고 조신하신 분들이 어제는 덩실덩실 춤도 추더라구요. 하나님의 사랑을 입은 백성들이 그렇게 하는 것입니다. 모든 성도들이 합하여서 함께 기뻐하며 여호와께 나의 모든 찬양을 돌리는 순간들, 저는 절기 때마다 그런 일이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일이 있을 때마다 마음이 더욱 어떻습니까? 여러분 실제로 경험해 보니 어떻습니까? 너무 좋지 않습니까? “하나님은 정말 선하신 분이시구나. 하나님은 내 인생에 복을 주시는 분이구나!” 이것이 마음속 깊이, 뼛속깊이 우리에게 경험되는 삶입니다. 감사에 대한 표시, 기쁘게 하나님 앞에 감사드리는 것이 오히려 내 삶에 더욱 안식과 샬롬을 누리게 하는 것입니다. 표현을 해요. 하나님께 감사하다고 연보를 내기도 하지만 하나님께 정말 감사함으로 기쁨으로 온 성도들이 함께 모여서 절기를 지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함께 기쁨을 나누는 일에는 역시 섬김도 있습니다. “기쁨으로 여호와를 섬기라.” 그런데 그 섬김이 어떤 경우는 내가 이 세상을 살면서 하나님을 섬긴다는 마음이 없으면 시험들 때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서 가정에서 예수님 같지 않은 부모님, 예수님 같지 않은 남편과 아내, 예수님 같지 않을 때 시험들 수 있습니다. 그분들을 섬기는데 어려움을 겪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 모든 일이 하나님께서 내게 준 일이요, 하나님을 섬기듯이 그 일을 하면 기쁨으로 할 수 있다는 말입니다. 여러분의 직장에서 직장 상사들을 섬기는 게 아니고 궁극적으로 내가 하나님을 섬기면서 일을 한다고 할 때 사람을 보지 않고 기쁨과 즐거움으로 일을 할 수 있습니다. 교회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저를 보고 일하지 마십시오. 수많은 우리 장로님이나 모든 기관장들을 보고 일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을 섬기는 마음으로 하는 것입니다. 기쁨으로!!! 어제도 보니까 각 여전도회마다 음식 부스 하나씩 해놓고 전부 엄청나게 먹었습니다. 고기를 2000인분 했는데 다 동이 나고 다시 2차파티 한 거 아십니까? 온 지역주민들 같이 오셨고, 그런데 섬기는데 즐겁습니다. 거기서 일하시는 분들이 엄청 많았어요. 많은 분들이 의자에서 즐기는 동안 뒤에서는 계속 청소하고 있었어요. 그러니까 일곱시 반에 끝냈는데 여덟 시쯤 되니까 완전히 정리가 다 되었어요. 정말 우리교회 성도님들 대단하십니다. 어제 일하신 분들 다시한번 감사합니다.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께서 내게 모든 것을 주셨다는 것을 고백할 때 하나님의 능력과 은혜가 나타나는 것입니다. “기쁨으로 여호와를 섬기자.” 섬김이 교회 안에서도 나타나도 여러분의 가정에서도 나타나고 여러분의 실제 삶의 현장에서도 나타나고 내가 하나님 대하듯이 기쁨으로 일하자는 것입니다. 그 모든 것이 나의 모든 삶 속에서 하나님을 향한 감사 찬송이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찬송하자는 이야기입니다. 성실하게, 격려하고, 교제하고, 돕고, 전도하고, 훈련시키고, 이 모든 일을 하나님을 섬기듯이 기쁨으로, 서로 짐을 나누듯이 말입니다. 나만 일하는 게 아닙니다. 어제 볼 때 느낀 것이 무엇입니까? 각자 교회 각 부서에서 일할 때 어떨 때는 꼭 나 혼자만 일하는 것 같고 힘들 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축제 한마당에서는 모든 사람들이 함께 일하고 함께 즐기는 것을 느끼니까 ‘아! 그렇구나. 같이 일하는 구나! 하나님 나라는 이렇구나!’ 이것을 느끼면서 일을 하면서도 기쁘고 즐겁습니다. 이것을 우리가 경험해 봐야합니다. 이 경험이 아주 귀하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님께 가장 영광돌리는 삶은 어떤 삶입니까? 감사하며 기뻐하는 삶입니다. 기쁨을 서로 나누는 삶입니다. 서로서로 기쁨을 나눌 때 더욱 우리의 기쁨이 충만해지는 것입니다. 감사절은 바로 그런 날입니다. 모두 하나님 앞에 감사하며 기쁨을 나누는 그러한 절기가 되었으면 합니다. 그러면서 “다같이 하나님께 기쁨으로 여호와를 섬기고 감사하자. 그리고 우리의 찬양으로 감사하자.” 이렇게 이야기하면서 그 이유를 3절에서 이야기하죠? 이유가 뭡니까? 과거적인 것부터 먼저 이야기합니다. “여호와가 우리의 하나님이심을 너희가 알지어다.” 여호와가 우리 하나님! 이 천지만물을 지으신 하나님! 안 믿는 사람들에게도 역사 하시는 하나님! 믿는 백성들에게 모든 면에서 복을 주시는 하나님! 나의 아버지! 나의 주님! 이것을 보고 찬송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기뻐하며 찬송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믿는 백성들에게는 우선 얼굴에 나타나야합니다. 즐거움과 기쁨이 나타나야합니다. 저는 처음에 예수님을 안 믿을 때 예수님 믿는 사람들을 보면 상당히 꾀재재해 보였어요. 제가 고등학교 다닐 때 보통 쓰는 말로 “꼰대” 라는 말이 있었는데, 예수님 믿는 사람들을 “꼰대” 라고 했어요. 꽉 막히고 아무런 융통성도 없는 사람이라는 뜻으로요. 그런데 제가 예수님 믿고 선교활동하면서 느끼는 것은 믿는 사람들은 믿지 않은 사람들보다 훨씬 더 즐거워할 줄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훨씬 더 안 믿는 사람들보다 즐거워야할 이유가 있습니다. 왜냐면 여호와 하나님이 나의 아버님이시니까, 여호와 하나님이 나의 목자시니까요. 정말 기뻐할 수 있는 것 아닙니까? 그분이 나를 인도하시고 주관하시고 지키시니까요. 그런데 옛날에는 많은 교회가 잘못 생각한 점도 물론 있습니다. 물론 그 당시에는 중요했었습니다. 경건이라는 이유로 웃지도 마라, 하나님 앞에서 경건하지 못 하다하면서 소리내지도 못하고, 화장실 앞에서 용변 보는 사람들처럼 얼굴에 심각한 표정을 하고 있습니다. 가장 대표적인 것으로 화장실 가보십시오. 특히 고속도로 휴게소 화장실에 가서 옆에 보면 정말 심각한 얼굴들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 얼굴을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 얼굴은 화장실에서만 하면 족합니다. 언제나 기쁨의 얼굴이 있어야 합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십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의 것이고 그의 백성이요, 그의 기르시는 양이라. 그는 우리를 지으신 자라.” 그걸 아십니까? 여러분이 얼마만큼 하나님의 놀라운 작품인지 아십니까? 조각품 중에 역시 최고의 조각품들은 인체를 조각한 것입니다. 그런데 이 인체를 조각한 것 중에 최고는 제가 알기로 미켈란젤로의 다비드상이라 생각해요. 여러 곳에 그것들이 있지만 진짜는 이태리 피렌체에 있는 아카데미 박물관에 있습니다. 거기에는 미켈란젤로 조각품이 제일 많아요. 미완성품도 많이 있고요. 그런데 그 중에 역시 다른 건 별로 없습니다. 다비드상이 있습니다. 피렌체 중앙에도 다비드상이 있고 어디든지 가도 많이 있는데 다 모조품이에요. 진품은 바로 아카데미 박물관에 있어요. 가서보면 정말 다른 조각들과 다릅니다. 근육이 보이면서 핏줄이 다 있어요. 인체해부학을 다 공부하고 조각했기 때문에 핏줄이 다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기가 막히게 조각이 되어있습니다. 그게 진품이에요. 그런데 그 다비드상도 결국은 사람의 몸을 조각해 놓은 겁니다. 그걸 보면 다비드상도 하나님의 작품을 모조한 모조품입니다. 진품은 어디 있습니까? 진품들이 여기 다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진품들, 하나님의 창작품들, 하나하나 따로 만들어서 얼굴들이 다 다른 진짜 진품들이 여기 앉아 있잖습니까? 피렌체까지 갈 필요 없이 여기가 진품이에요. 하나님의 창작품들요. 그걸 알아야 합니다. 스스로 ‘나는 걸어 다니는 하나님의 진품이다.’ 이러고 다니십시오. 이게 느껴지면 기쁨으로, 감사함으로 여호와를 섬길 수 있다는 것입니다. 진품은 진품인데 조금 오래되지 않았습니까? 어느 할머니가 왼쪽 다리가 비만 오면 쑤시고 해서 병원에 갔는데 의사 선생님이 보시고 “할머니 나이 들면 다 그러는 것이니깐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했더니 할머니가 하는 말이 “여보쇼 의사양반, 안 아픈 오른쪽다리도 나이는 동갑이여.” 했다는 겁니다. 그렇죠. 나이가 든다고 꼭 아픈 것은 아니잖아요. 그렇더라도 기계를 생각하더라도 칠팔십 년을 무리 없이 사용하는 기계가 이 세상에 어디 있습니까? 우리가 나이가 들고 쑤시고 아픈 것은 이 세상이 불안정하고 죄악적이고 썩어져 가는 세상이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현재 이곳에서의 장막 집이 무너지고 천국에 가면 완전히 새로운 신령한 몸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죽지 않는 몸, 늙지 않는 몸, 쑤시지 않는 몸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진정함 진품, 여러분이 바로 그렇다는 사실입니다. 이러한 은혜를 주신 하나님께 먼저 감사하는 우리의 삶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다시 4절부터 하나님을 찬양하는 면이 나옵니다. “감사함으로 그 문에 들어가며, 찬송함으로 그 궁전에 들어가서 그에게 감사하며 그에게 송축할 찌어다.” 성전에 올라가는 얘기입니다. 우리가 함께 모이는 것입니다. 함께 모일 때마다 이런 찬송도 있죠? “감사함으로 그 문에 들어가며 그의 궁정에 들어가~” 모든 사람들이 모일 때 하나님 앞에 찬양하는 것입니다. 감사하고 기뻐하는 것입니다. 나만 기뻐하는 것이 아니고 성도들이 함께 모여 기뻐할 때 그 기쁨이 더욱 충만해 지는 것입니다. 이게 성전에 올라가면서 부르는 노래입니다. “그에게 감사하자.” 여러분의 삶 속에 언제나 이러한 감사의 마음이 충만해야합니다. 왜냐면 전에도 말했지만 말세의 징조 중 하나가 감사하지 않는 것입니다. 디모데전서 3장 1절부터 보면 “네가 이것을 알라. 말세에 고통 하는 때가 이르리니 사람들은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자긍하며 교만하며 훼방하며 부모를 거역하며 감사치 아니하니.” 이게 전부 다른 종류가 아닙니다. 이것을 하고 저것을 안 한다는 게 아닙니다. 사람의 마음의 상태가, 감사하지 않는 마음상태가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자긍하며, 교만하며, 훼방하며, 부모를 거역한다는 겁니다. 감사치 않는 마음의 상태입니다. 그런데 하나님 앞에 감사하는 마음상태는 이기적인 마음이 버려지고 모든 권위도 그 자체로 인정하는 마음이 생기고, 교만하지 아니하고, 자긍하지 아니하는 이런 마음이 저절로 생깁니다. 같이 가는 거에요. 우리 삶에서 정말 필요한 것이 이 감사하는 마음인 것입니다. 그리고 오직 하나님을 인정하고 그분을 경배하고 찬양하는 그 마음. 여기에 진정한 우리 마음의 자유함이 있습니다. 이 세상의 것은 가지면 가질수록 거기에 노예가 됩니다. 아까 이야기했죠? 집착하게 됩니다. 집착은 곧 노예입니다. 그런데 감사의 마음은 집착의 마음을 버리게 하고 오직 하나님 앞에 하나님이 내게 주는 샬롬, 그 안식을 경험하는 삶을 살게 해 줍니다. 과거에도 나를 지으시고 지금까지 인도하심에 감사하는 마음을 갖게 되고 이제 마지막에 “대저 여호와는 선하시니 그 인자하심이 영원하시고 지금 뿐 아니라 앞으로도 영원하시고 그 성실하심이 대대에 미치리라. 이제까지 나를 사랑하시는 그 품성이 영원하리라. 하늘 나라에 갈 때까지 영원하시리로다.” 이 소망이 있을 때에 감사하는 것입니다. 지금 삶 속에 어렵더라도 결국 이 모든 일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실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축복하시며 우리의 기쁨과 즐거움을 보시길 원하십니다. 우리가 보기에는 축복의 길이 안보여도 사실은 우리를 가장 복 주시는 과정으로 인도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그것을 감사하는 것입니다. 우리 인생을 이야기할 때 세상적인 눈으로 보면 우리 인생은 끝없는 문제의 연속입니다. 산다는 것 자체가 계속, 문제가 하나 지나가면 또 한 문제가 있고 또 한 문제가 있고 이렇게 느껴지고, 사실 우리 인생이 고달프다고 느낄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알고, 그 하나님의 선하심과 복 주심과 나를 사랑하심을 알 때에 우리 인생은 전혀 다른 안목으로 보입니다. 어떤 분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 모든 인생은, 우리가 산다는 것은 풀어야할 문제가 아니고 경험해야할 신비다.” 라고 했습니다. 문제라는 것도 크고 작은 문제들이 바로 하나님을 경험할 수 있는 계기들의 연속이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알지 못한 새로운 하나님을 하루하루 살아가면서 경험하고 그 신비로움을 기대하며 살아갑니다. 여러분 오늘아침 어떤 마음으로 일어났습니까? 내일 아침에 일어날 때 어떤 마음으로 일어나길 원하십니까? 오늘은 과연 하나님께서 어떻게 나와 함께 하실까? 오늘은 하나님께서 내 인생에 어떠한 경험을 하게 하실까? 그것을 기대하며, 고대하며 하루 눈을 뜨십시오. 그 기간 동안에 여러분이 달콤한 여러분의 인생을 맛볼 수도 있고, 인생의 쓴맛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쓴맛, 단맛, 모든 오미를 느껴가면서 누리는 것이 우리의 인생길입니다. 그리고 그것에 대해 정말 감사하며 그 감사를 상기하는 날이 바로 맥추 감사주일, 추수감사주일 이런 날입니다. 다시한번 나에게 주신 주님의 그 놀라운 은혜를 생각하고 감사하고 새롭게 기쁨으로 이 절기를 지냅시다. 기쁨으로 성도들끼리 교제합시다. 기쁨으로 우리 인생길을 살아가며 그 다시 오는, 새롭게 오는 인생의 신비를 경험하기 위해서 고대하며 살아가는 복된 주의 백성들 되길 축원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