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울에 찾은 불국사와 동해안(중)
불국사 부근에 있는 적당한 모텔에 숙소를 정하려고 수학여행 온
학생들이 주로 이용하는 유스호스텔과 모텔이 모여 있는 동네를
두 바퀴나 둘러보아도 겨울철 비수기로 인하여 동네 전체가 적막
속에 쌓인 개점휴업상태라서 다른 곳으로 이동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관광호텔, 콘도 및 모텔 등 경주시에서 숙박업소가 제일
잘 조성된 보문단지에서 숙소를 찾아보려고 그 쪽으로 달리다가
도로표지판에서 경주 부근 바닷가에 위치한 ‘감포’라는 지명을
보는 순간, 차라리 감포항 바닷가에서 싱싱한 생선회로 저녁
식사를 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우리 두 사람의 머리 속에 동시에
떠올라 진로를 그쪽으로 바꾸어버렸다.
신라의 유적지 몇 군데를 둘러보고, 박물관을 찾아 ‘에밀레종’을
꼭 참견하려던 본래의 계획은 순식간에 허공으로 날아가 버렸다.
하긴 전에도 몇 번 관람했던 곳이니 그냥 지나쳐도 문제될 게
없다고 둘이서 자위하면서 꼬불꼬불한 시골길을 한 시간 정도
달린 끝에 감포읍내로 들어섰다.
도로 양쪽에는 허름한 건물들이 연이어 늘어서 있으나 편도 1차
선 도로에는 인도가 전혀 없어 이런 곳에서는 아이들을 키우기가
너무 위험하겠다는 등의 잡담을 하면서 읍내 구간을 잠시 달려가던
중 갑자기 아내가 깜짝 놀란 목소리로
“저기 좀 봐요! 김명수 젓갈이 바로 저기 있네!”
라고 외치면서 차를 멈칫거리는 게 아닌가?
곧바로 차를 골목 입구의 갓길에 정차하고 나서 주변에서 마땅한
곳을 찾아 주차시킨 후, 50미터 후방의 그 점포를 찾아갔다.
감포에 있는 ‘김명수 젓갈’이 최고로 좋다면서 고향친구들과
몇 차례나 전화로 주문한 적이 있는 바로 그 젓갈 집은
전국적으로 소문난 유명한 집인데, 최근에 신축한 2층 빌딩의
1층에 자리하고 있었고, 주차장까지 널찍하게 갖추고 있는
매장으로 들어갔더니 여러 명의 고객들이 북적이고 있었다.
그렇지 않아도 전화를 해서 달마다 친목 모임을 갖고 있는 친구들과
1병씩 사야겠다고 생각 중이었는데, 지나는 길에 이렇게도 우연히
그 점포를 찾아냈으니 이런 행운이 어디냐며 한 병에 15,000원씩 하는
멸치젓 4병을 구입하였다. 마치 공짜로 보물이라도 주운 듯 신바람이
난 아내를 곁에서 지켜보는 나까지도 덩달아 기분이 좋아졌다.
잠시 후 차창 밖에 펼쳐진 감포 앞바다에서는 방파제에 파도가
부딪치면서 흰 포말을 일으키고 쏴아, 쏴아~하는 소리를 계속
만들어내고 있었고, 서쪽 방향 해안으로는 문무대왕의 수중능이
있는 지점이 멀리 보이는 탁 트인 곳에 우리가 찾던 바로 그런
장소가 우리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최근에 신축한 듯한 8층 건물은 ‘늘시원 회타운'으로 횟집, 모텔과
함께 노래방까지 함께 영업을 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건물 앞에 일단 주차를 하면서 살펴보니 주차장에는 몇 대의 승용차
외에도 관광버스 한 대가 주차해 있었다.
모텔 로비로 올라가 우리들이 선호하는 온돌방을 찾았으나 단체
손님들 때문에 침대방, 그것도 8층에 딱 하나만 남아 있다는 말을
듣고는 그나마 다행이라고 생각되어 우린 한 침대에서 잠을 잘 수
없다면서 별도의 이부자리를 제공 받는 조건으로 숙박료를
지불하고 키를 받아 방에 짐을 풀었다.
관광지이지만 겨울철 비수기여서 그런지 숙박료 3만원에
비하면 침실이 상당히 깨끗해서 횡재를 만난 기분이었다.
그 때 시간이 저녁식사를 하기에는 너무 일찍한 5시 반이어서
다시 내려와 주차장을 지나 해변 쪽으로 동해바다 구경도 할 겸
산책을 하러 나갔다.
우리가 묵게 된 ‘늘시원 회타운' 바로 곁에 또 하나의 큰 횟집이
있는데, 음식점 정문 앞에는 유흥주점 앞에나 있음직한 야릇한
조각상이 하나 설치되어 있었다. 젊은 여인이 윗도리 옷을 벗고
있는 아주 색시한 모습이었다.
모텔에서 운영하는 ‘늘시원’횟집에 들어가서 자리를 잡고
벽에 붙은 메뉴를 살피면서,
"모듬회 1인분에 15,00원이면 괜찮은것 같은데..."
라면서 우리끼리 이야기를 주고받는데, 도우미 아주머니가
“모듬회는 1인분에 15,000원이지만 양식한 거라서 고기맛이 좀
떨어져요. 자연산 참돔으로 1킬로만 잡수어보세요!“ 라면서
비싼 회를 추문하도록 우리를 부추겼다.
“그래요? 어디 한 번 먹어볼까요? ”
이렇게 해서 1킬로에 5만원으로 값이 매겨진 도미회를 안주로
집에서 갖고 간 ‘옥로주’ 생 막걸리를 한 잔씩 마시게 되었다.
도미회에 막걸리가 별로 어울리지는 않지만, 동해 바닷가
횟집에서 마시는 막걸리 맛은 색다른 것 같았다.
우리가 낯선 막걸리를 마시는 광경을 곁에서 신기한 듯 지켜보던
도우미 아주머니한테도 이 막걸리는 무형문화재로 빚은 아주 귀한
거라면서 한 잔을 권했다.
술맛이 참 좋다고 하는 말은 들은 아내가 남은 술을 병채로
그녀에게 선사하였더니, 주방의 다른 아주머니들과 함께
맛보겠다면서 무척이나 고마워하였다.
아주 길었던 하루를 마무리할 시간이 되어 취침 준비를 하는
중이데 내 휴대폰이 울렸다. 멀리 고향 문경에서 작은 농장을
갖고 있어 우리부부가 종종 신세를 지기도 했던 중학교 후배
부인이 전화를 걸어 생일을 축하해주는 것이었다.
그날 오전 우리가 문경시를 지나오는 시간에도 남대문 부근에서
참치횟집을 운영하는 또다른 후배 부인도 전화로 생일을 축하해
주었는데, 참으로 감동적인 사건이 아닌가?
가까운 친척이나 친구도 아닌 고향의 중학교 후배의 부인들이
친형제도 잊어먹기 쉬운 내 생일을 기억했다니 정말로 놀랄만한
일이었다. 물론 이번 생일이 칠순이라는 별도의 칭호가 붙은 날이긴
하지만, 이렇게 뜻 깊고 멋진 생일은 내 평생에 처음으로 맞는 것 같아
흐뭇한 마음으로 동해바다의 파도소리를 들으며 잠자리에 들었다.
첫댓글 7 순이라니? 부인께서 ? 내 생일이 아니지 헛 갈리네요. 잘 일ㄱ고 갑니다. ..
태원형, 친절하신 댓글 고맙습니다. 우리 집사람의 칠순은 금년이 맞지요.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