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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 게시글
고려 토론방 아무리 생각해도 미스테리일변도인 철령위의 위치
선구자 추천 0 조회 860 14.03.24 19:20 댓글 15
게시글 본문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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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14.03.25 10:08

    첫댓글 말씀하신 대로 왜 명나라는 명나라에서 가까운 평안도 일대는 놔 두고 생뚱맞게 함경도 쪽의 함흥~원산 일대를 요구한 것인가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고려보다는 행동의 주체인 명나라 쪽에서 어떤 생각이었는지를 보는 게 더 중요할 수도 있습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주원장이 생각한 철령은 압록강 이북이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니 주원장 입장에서는 철령위를 설치한다는 게 가까운 곳은 건너뛰고 생뚱맞게 먼 곳을 얻으려는 시도는 아닌 셈입니다. 이는 이는 철령위를 철폐해 달라는 고려사신 박의중에게 주원장이 답하는 말에 잘 드러납니다.

  • 14.03.25 10:19

    "고려가 예전에는 압록강을 경계로 삼았으면서 이제 와서 철령이라 속여 말하니 거짓임이 분명하다"(高麗舊以鴨綠江爲界, 今飾辭鐵嶺, 詐僞昭然)

    위 말은, 주원장이 압록강보다 철령을 경계로 삼는 게 고려에게 더 유리하다고 판단했음을 보여 줍니다. 즉, 철령을 압록강 이북에 위치한다고 주원장은 생각하고 있었던 겁니다. 반면 고려는 철령을 지금의 함흥~원산 일대 지역으로 인식했을 가능성이 큽니다. 이는 고려가 사신 박의중에게 딸려 보낸 글에서도 그 뉘앙스가 풍깁니다. 우선 철령 이북지역이 고려의 영토임을 주장하면서 철령 이북으로 문주, 고주, 화주, 함주를 거쳐 공험진에 이르기까지가 고려의 영역이며 예종이 여진정벌을

  • 14.03.25 10:29

    통해 성을 쌓았음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즉, 고려는 철령이 윤관의 동북9성 일대의 최남단 지역 정도로 인식하고 있다는 것인데, 동북 9성의 범위를 어디까지로 보든간에 함경도 해안가를 따라 올라간다는 건 차이가 없으니 현재의 원산 부근의 흔히 말하는 그 철령을 지칭함은 분명합니다. (참고로 조선 초기에 철령 문제로 이 지역을 언급할 때 조선은 '본국의 동북지방'이라 하므로 조선의 서북방향인 압록강 이북의 철령을 지칭한다 보기는 어렵습니다.)

    요컨대 사신 박의중 건과 관련해 양국의 논의를 보면 서로 '다른 철령'을 지칭하는 게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듭니다. 조선 후기 다산 정약용도 '철령이 두 곳이 있었다'며 그럴

  • 14.03.25 10:29

    가능성을 암시한 바 있습니다.

  • 14.03.25 20:10

    @미주가효 즉 주원장은 압록강 이북을 명나라 영토로 편입하겠다는 뜻이었는데, 고려에서 함흥으로 여기고 군사를 일으켰다는 말씀이시네요? 주원장의 답을 보면 분명 그렇게 느껴지긴 하네요. 거참 쌍방착오에서 고려가 망한 꼴이군요.

  • 14.03.26 10:11

    @돌부처 아, 이건 제 주장일 뿐이고 보통은 주원장이나 명나라가 의도했던 바와 고려가 인식했던 철령 모두 함흥~원산 일대로 동일하다고 보기는 합니다. 아마 일반적으로는 명나라가 원래 함흥~원산 일대를 중심으로 철령위를 설치하려 했다가 (고려의 반발 등으로 인해) 압록강 이북의 본계 인근 지역에 철령위를 뒀다고 보는 것 같습니다. 다만 저는 서로 오해가 있을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습니다.

  • 작성자 14.03.25 20:20

    그렇다면 고려는 철령위를 결코 압록강 이북 서간도지역이는 생각을 안했다라는 것인지요?

  • 14.03.26 10:14

    네, 최소한 고려 입장에서는 철령위를 압록강 이북 지역이라고 보진 않았습니다. 함흥~원산 일대라고 생각하니, 이 지역은 추가령 구조곡을 통해 개경으로 바로 연결되는 지역이라 수도의 안전까지 위협당할 수 있어 고려에서 민감하게 나올 수 밖에 없었지요. 게다가 공민왕 때의 쌍성 회복 성과를 명나라가 무너뜨리는 것은 고려의 자주권 회복 시도를 무력화하는 것으로 인식하기도 했을 겁니다. 명나라가 예상했던 것 이상으로 고려에서 민감하게 나올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지요. (고려에서 보기에) 철령 문제가 압록강 이북이라고 생각했다면 고려 정부가 그토록 격렬하게 저항하진 않았을 겁니다.

  • 14.03.26 10:19

    덧붙이자면 명나라의 원래 의도는 압록강 방면에서 철령위를 두고, 두만강 방면으로는 삼만위를 두어 고려와 여진을 통제하려는 것이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당초 의도가 어쨌든간에 철령위는 압록강 이북에 설치되지 압록강 이남의 고려 땅에 설치되진 않습니다.) 삼만위는 치소를 나중에 옮기긴 하는데, 최초의 설치 지역은 아마 두만강 인근 지역으로서 두만강 이남의 현재의 함경북도 일대라고 보는 견해들이 있습니다. 요양- 압록강 인근의 철령위 - 두만강 인근의 삼만위 식으로 만주지역 통제력을 강화하여 고려-여진을 압박하려 했던 것 같습니다.

  • 14.03.26 10:37

    고려가 철려의 위치를 잘못 생각하고 있었다고는 전혀 생각되지 않습니다. 명에서 철령위를 설치하는 문제로 철령에서 작은 분쟁도 있었는데, 그 위치를 잘못알고 있었다는 얘기는 상식적으로 말이 되지 않는 듯 합니다.

  • 14.03.26 15:27

    그에 대한 설명을 미주가효님이 자세히 설명해 주셨는데 말입니다.

  • 14.03.27 09:53

    @조수아 그냥 자기 하고픈 얘기를 하시고, 저에게 답글은 달지 않아 주셨으면 합니다. 저는 조수아님과 의견을 나누고 싶지는 않습니다.

  • 14.03.27 10:31

    @김정현 답글을 다는 건 내 자유인데 달라 말라... 무섭군요. 하고픈 얘기가 김정현 님이 잘못 생각하신 것에 대한 반론이었습니다. 물론 반론이라 해봤자 근거는 없고 주장만 있는 글에 약간의 의견 제시만 한 것 뿐인데 말 걸지 말라니요

  • 14.03.26 11:19

    동북아의 요동반도는 지금 한참 말 많은 크림반도와 같은 중요한 요충지,
    요동반도를 선점해야 중원과 한반도가 안정이 되니 말입니다. 요녕성에는 아직도 철령이라는 지명이 있습니다.
    중국의 역사학자들에게 묻고 싶네요. 요녕성의 철령과 한반도의 철령이 무슨 차이가 있는것인지?
    문화혁명전까지 요녕성 철령 산맥주변에 있던 고려성은 무엇이냐고? 왜 그곳에 고려성이있는것인지?

  • 14.08.05 17:26

    그리고 동북으로 대수분하 강 좌우에 흑룡강성 동영현에 고려영들이 많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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